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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1)

근사록집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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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집해(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43-1 明道先生曰
只要鞭辟近裏著己而已注+朱子曰 鞭辟近裏 此是洛中語 如驅辟一般하니 一處 說作鞭約이라 大抵是要鞭督向裏去니라
故切問而近思 則仁在其中矣라하고
鞭辟近裏著己者 切己之謂也
切問近思而不泛遠이면 則心德存矣리라
[張伯行 註] 此 示人切己之學也
所以求道 而道卽在身心之中하니 所謂仁 是也
鞭辟 猶言警策이요 近裏著己 猶言貼身也
言爲學之功 若著一毫虛浮騖外之意 便與道離 只要反求諸身心하야 著實理會 自然能有所得이라
如子夏言切問近思則仁在其中者 胥是道也
蓋問必求其切實이요 思勿忽於淺近이면 則聰明內斂하고 志意眞摯하야 心存而理從此得矣리니 此致知之功近裏著己者也
43-2 言忠信하며 行篤敬이면 雖蠻貊之邦이라도 行矣어니와 言不忠信하며 行不篤敬이면 雖州里 行乎哉
立則見其參於前也 在輿則見其倚於衡也 夫然後注+ 南蠻이요 北狄이라 指忠信篤敬而言이라 ○ 朱子曰 篤 有重厚深沈之意하니 敬而不篤이면 則有拘迫之患이니라 南軒張氏曰 篤敬者 敦篤於敬也라하고 雙峯饒氏曰 凡事詳審不輕發 是篤底意思 戒謹恐懼하야 猶恐失之 是敬底意思 篤自篤, 敬自敬이니라 ○ 按 饒說 與朱張之說不同하니라이라하니 只此是學이니라
言必忠信而無一辭之欺誕하고 行必篤敬而無一事之慢弛 則以是行於遠方異類라도 猶可以誠實感通이어니와 苟不信不敬이면 則雖近而州里之間이라도 其可得而行乎
然非可以暫焉而强爲之也
要必眞積力久하야 隨其所寓하야 常若有見乎忠信篤敬之道而不可須臾離者 如此一於誠實이면 自然信順注+出禮記하니 見下하야 無往而不可니라
○ 以上 皆切己之學이라
切問近思者 致知之事也 言忠信行篤敬者 力行之事也 說並見論語하니라
43-3 質美者 明得盡하야 其次 惟莊敬持養이니 及其至則一也注+退溪曰 明得盡 屬知하니 知之明也 査滓渾化 乃行之之效 語辭 當屬上句 俗讀云却與天地라하니 非是 問心學 以心中有一物爲非어늘 而曰言忠信하고 行篤敬하야 念念不息하야 使參前倚衡이라하니 則莫是偏繫之病否잇가 曰 夫如是故 程子曰 不可着意 又不可不着意라하시니라 ○ 按 性理群書 却與天地爲句하니라니라
朱子曰
査滓 是私意人欲之消未盡者 人與天地本同體로되 只緣査滓未去하야 所以有間隔이니 若無査滓 便與天地同體
質美者明得盡 是見得透徹이라
如顔子克己復禮 天理人欲 截然兩段하야 更無査滓
其次 旣未到此 則須莊敬持養하야 以消去其査滓
如仲弓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注+仲弓問仁한대 子曰 出門如見大賓云云이라
常如此持養하야 久久 亦自明徹矣리라
[張伯行 註] 承上文言호되 同此知行而氣稟不同하니 苟能用力而成功自一也
蓋求仁求行 旣不外切問近思忠信篤敬而得之하니 學者亦可知所用力矣리라
但用力 亦關氣質하니 氣質美者 得天淸明하야 見地容易透徹하야 當其一了百了 私欲淨盡하야 自然不雜이라
其剛健和順 自與天地同體 其次 未易渾化하니 則惟端莊恭敬하고 操持涵養하야 以俟其熟而自至耳
然及其眞積力久하면 亦自消融明淨하야 與天地同體하리니 其造詣固歸於一也
苟能切實爲己 何人不可以勉學哉


43-1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학문學問은 다만 〈마음을〉 채찍질하여 내면內面에 가깝게 하고 자기 몸에 붙게 하려고 할 뿐이다.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편벽근리鞭辟近裏낙양洛陽 지방의 말이다. 구벽驅辟이라는 말과 똑같으니, 한 곳에는 편약鞭約으로 되어 있다. 〈이 말은〉 대체로 채찍질하여 독려해서 안을 향해 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이 그 가운데에 있다.’ 하였고
편벽鞭辟하여 내면內面에 가깝게 하고 자기 몸에 붙게 한다’는 것은 자기 몸에 간절히 함을 이른다.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여 범범泛泛하게 하거나 멀리하지 않으면 마음의 이 보존될 것이다.
[張伯行 註] 이는 사람들에게 자기 몸에 간절한 학문을 보여준 것이다.
배움은 를 구하기 위한 것이고 는 바로 자신의 몸과 마음 가운데에 있으니, 이른바 이 이것이다.
편벽鞭辟경책警策이란 말과 같고 근리저기近裏著己첩신貼身(몸에 붙임)이란 말과 같다.
학문하는 공부가 만일 털끝만치라도 허황하고 들떠서 밖으로 달려가려는 뜻이 있으면 곧 와 멀어지니, 다만 자기 몸과 마음에 돌이켜 찾아서 착실히 이해하면 자연히 얻어지는 바가 있을 것이다.
자하子夏가 ‘간절히 묻고 가까이 생각하면 이 이 가운데 있다’ 고 말한 것이 바로 이 이다.
물음은 반드시 절실한 것을 구하여야 하고, 생각은 천근한 것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니, 이렇게 하면 총명聰明이 안에 거두어지고 의지意志가 진지해져서 마음이 보존되어 이치가 이로부터 얻어질 것이니, 이는 치지공부致知工夫내면內面에 가깝게 하고 자기 몸에 붙게 하는 것이다.
‘말이 충신忠信(성실)하고 행실이 독경篤敬(돈후하고 공경함)하면 비록 오랑캐의 나라라도 행해지거니와 말이 충신忠信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지 못하면 비록 자기가 사는 고을과 마을이라 하더라도 행해지겠는가.
서면 〈언충신言忠信행독경行篤敬이〉 앞에 참여됨을 보고, 수레에 있으면 〈언충신言忠信행독경行篤敬이〉 말멍에에 기대고 있는 듯함을 볼 수 있어야 하니, 그런 뒤에야 행해진다.’注+남만南蠻이고 북적北狄이다. 충신忠信독경篤敬을 가리켜 말한 것이다.
주자朱子가 말씀하기를 “중후重厚심침深沈의 뜻이 있으니, 공경하기만 하고 독후하지 못하면 구박拘迫하는 병통이 있다.” 하였고, 남헌장씨南軒張氏는 말하기를 “독경篤敬에 돈독한 것이다.” 하였고, 쌍봉요씨雙峯饒氏(饒魯)는 말하기를 “모든 일을 자세히 살펴서 가볍게 발하지 않는 것이 의 뜻이고, 계근공구戒謹恐懼하여 행여 잃을까 두려워하는 것이 의 뜻이니, 이고 이어서 따로이다.” 하였다.
○ 살펴보건대 요씨饒氏의 말은 주자朱子장남헌張南軒의 말씀과 같지 않다.
하였으니, 다만 이것이 학문學問이다.
말이 반드시 충신忠信하여 한 마디 말도 속이고 허탄함이 없고, 행실이 반드시 독경篤敬하여 한 가지 일이라도 태만하고 해이함이 없으면 이로써 먼 지방과 다른 족류族類(異民族)에게 행하더라도 오히려 성실誠實로써 감통感通할 수 있거니와 만일 〈말이〉 충신忠信하지 못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지 못하면 비록 가까운 주리州里의 사이라도 어찌 행해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잠깐 동안에 억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요컨대 반드시 진실을 쌓고 힘쓰기를 오래하여, 붙여 있는 곳에 따라 항상 충신忠信독경篤敬를 봄이 있는 듯하여 잠시라도 떠나지 않아야 하니, 이와 같이 성실함에 한결같으면 자연 〈사람들이〉 믿고 순하여注+예기禮記》에 나오는 바, 아래에 보인다. 가는 곳마다 불가함이 없을 것이다.
○ 이상은 모두 자기 몸에 간절히 하는 학문學問이다.
절문切問근사近思치지致知의 일이요 언충신言忠信행독경行篤敬역행力行의 일이니, 내용이 모두 《논어論語》에 보인다.
자질資質이 아름다운 자는 밝히기(知工夫)를 다하여 찌꺼기가 곧 완전히 변화變化(消化)해서 천지天地와 똑같은 가 되고, 그 다음은 오직 장경莊敬으로 잡아 길러야 하니, 지극함에 이르면 똑같다.”注+퇴계退溪가 말씀하였다. “명득진明得盡에 속하니 앎이 분명한 것이고, 사재혼화査滓渾化는 바로 이것을 한 효험이다. 은 어조사이니, 마땅히 윗구에 속하여야 한다. 세속에서는 ‘각여천지却與天地’라고 읽는데, 옳지 않다.” “심학心學에서는 마음 속에 한 가지 일이라도 있는 것을 나쁘다고 하였는데, 여기에서는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하여, 이것을 생각하고 생각하여 잊지 않아서 〈충신忠信독경篤敬이〉 앞에도 참여함을 볼 수 있고 멍에에 기댈 때에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것은 편벽되이 얽매이는 병통이 아닙니까?” 하고 묻자, 퇴계退溪가 말씀하였다. “이와 같기 때문에 정자程子가 말씀하기를 ‘뜻을 붙여서도 안 되고 또 뜻을 붙이지 않아서도 안 된다’고 하신 것이다.”
○ 살펴보건대 성리군서性理群書에는 ‘각여천지却與天地’를 한 구로 삼았다.
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사재査滓사의私意인욕人慾이 다 사라지지 않은 것이니, 사람이 천지天地와 본래 똑같은 이나 다만 사재査滓를 제거하지 못함으로 인하여 이 때문에 간격이 있는 것이니, 만약 사재査滓가 없다면 곧 천지天地와 똑같은 가 된다.
자질資質이 아름다운 자가 밝히기를 다한다’는 것은 보기를 투철히 하는 것이다.
예컨대 안자顔子극기복례克己復禮와 같은 것이니, 천리天理인욕人慾이 두 단락으로 분명하여 다시 사재査滓가 없는 것이요,
다음은 이미 이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면 모름지기 장경莊敬으로 잡아 길러서 사재査滓를 제거하여야 하니,
예컨대 중궁仲弓의 ‘문에 나가서는 큰 손님을 뵈온 듯이 공경하고 백성을 부리기를 큰 제사를 받들 듯이 조심한다’注+논어論語》〈안연편顔淵篇〉에 “중궁仲弓을 묻자, 공자孔子께서 대답하시기를 문을 나가서는 큰 손님을 뵙는 듯이 하는 것이다.” 하였다.는 것과 같은 것이니,
항상 이와 같이 잡아 길러서 오래되면 또한 저절로 밝아지고 통할 것이다.”
[張伯行 註]상문上文을 이어서 말하기를 ‘이 이 똑같으나 기품氣稟이 똑같지 않으니, 만일 힘을 써서 성공成功하면 저절로 똑같아진다’고 말한 것이다.
을 구하고 을 구하는 것이 이미 절문切問근사近思, 언충신言忠信행독경行篤敬을 벗어나지 않고 얻어지니, 배우는 자가 또한 힘쓸 곳을 알 것이다.
다만 힘쓰는 것이 또한 기질氣質에 관계되니, 기질氣質이 아름다운 자는 하늘의 청명淸明함을 얻어 보는 것이 투철하기가 쉬워서, 한 번 하고 백 번 함에 사욕私欲이 깨끗이 다 없어져 저절로 섞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강건剛健하고 화순和順함이 저절로 천지天地가 같아지는 것이요, 그 다음은 혼화渾化하기가 쉽지 않으니, 오직 단장端莊하고 공경恭敬하며 마음을 잡아지키고 함양涵養하여, 익숙해져서 저절로 이르기를 기다릴 뿐이다.
그러나 진실을 쌓고 힘쓰기를 오래함에 이르면 또한 저절로 사욕私欲이 깨끗이 사라지고 밝아져서 천지天地가 같아질 것이니, 조예造詣가 진실로 똑같음으로 돌아간다.
만일 절실하게 자신을 위한다면 어떤 사람인들 학문에 힘쓰지 못하겠는가.


역주
역주1 其者 : 本文의 ‘立則見其’와 ‘在輿則見其’의 其字를 가리킨 것이다.
역주2 査滓便渾化 却與天地同體 : 語錄體에 却을 위로 붙여 읽는 경우가 있으며 中國本과 漢文大系本 역시 標點이 똑같지 않은바, 却與天地로 뗀 것이 약간 많으므로 本書에서도 이를 따랐음을 밝혀둔다. 退溪의 말씀과 같이 却을 위로 붙여 읽는 것으로는 本書 7권 31항의 ‘只爲而今士大夫道得箇乞字慣却’이 그 例이다.

근사록집해(1)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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