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無妄之謂誠
이요 不欺其次矣
注+雲峯胡氏曰 漢儒皆不識誠이러니 李邦直이 始謂不欺之謂誠이라하고 徐仲車謂不息之謂誠이라하며 至程子하야 始曰 无妄之謂誠이라하고 朱子又加以眞實二字하야 誠之說盡矣니라 ○ 程子曰 動以天이 爲无妄이니 動以人欲則妄矣라 无妄者는 至誠也니 至誠者는 天之道也니라 ○ 問此正所謂誠者 天之道也요 思誠者 人之道否잇가 曰 然하다니라
本註云 李邦直
注+按 伊川祭文曰 惟公은 世推文章이요 位登丞輔라 少服公名이러니 晩識公面이라 重以姻媾하야 始終異眷云云하니 邦直은 疑是伊川壻李通直之兄弟也라云 不欺之謂誠
이라하니 便以不欺爲誠
이요 徐仲車云 不息之謂誠
이라하니 中庸言至誠無息
이요 非以無息解誠也
라
○ 無妄者는 實理之自然而無一毫僞妄也라 故謂之誠이요 不欺者는 知實理之當然而不自爲欺니 乃思誠也니라
無妄者는 自然之誠이요 不欺는 是著力去做底라 故曰其次니라
[張伯行 註]此二語
는 因李邦直云 不欺之謂誠
이라하고 徐仲車
注+按 徐積은 字仲車니 山陽人이라 三歲에 父沒한대 事母至孝라 後薦孝廉하야 爲楚州敎授러니 卒에 諡節孝先生이라云 不息之謂誠
이라
故或以問程子에 而程子答之하시니 其所謂誠은 蓋就人言也라
无妄者는 實理自然하야 無一毫之妄이요 不欺者는 眞知實理之當然하야 無一念之欺라
則无妄은 乃自然之誠이니 聖人地位라 在人適如其在天하니 所謂誠者天之道也요
不欺는 是著力去做工夫니 善未明이면 不敢自謂已明하야 必求其明而後已요
身未誠이면 不敢自謂已誠하야 必求其誠而後已니 所謂思誠者人之道也라
若李邦直은 以不欺爲誠하니 是指工夫爲本體라 遺卻誠字正面이요 徐仲車는 以不息爲誠하니 是將功用做道理라 亦與至誠無息之解異矣니
〈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
무망無妄(僞妄이 없음)을
성誠이라 이르고 속이지 않는 것이 그 다음이다.”
注+운봉호씨雲峯胡氏가 말하였다. “한漢나라 유자儒者들은 모두 성誠을 알지 못하였는데, 이방직李邦直이 처음으로 속이지 않는 것을 성誠이라 하였으며, 서중거徐仲車는 쉬지 않는 것을 성誠이라 하였다. 그러다가 정자程子에 이르러서 비로소 거짓됨이 없음을 성誠이라 하였고, 주자朱子가 또 진실眞實 두 글자를 가하여 성誠에 대한 설명이 극진하게 되었다.”
○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동動하기를 천리天理대로 하는 것이 무망无妄이니, 동動하기를 인욕人欲으로 하면 망妄이다. 무망无妄은 지성至誠이니 지성至誠은 하늘의 도道이다.”
○ “이것이 바로 《중용中庸》의 이른바 ‘성실히 함은 하늘의 도道이고 성실할 것을 생각함은 사람의 도道’라는 것입니까?” 하고 묻자, 주자朱子가 “그렇다.” 하였다.
본주本註에 이르기를 “
이방직李邦直注+살펴보건대 이천伊川의 제문祭文에 “공公은 세상에서 문장文章을 추존推尊하고 지위는 승보丞輔에 올랐네. 내 어려서부터 공公의 명성 익히 들었는데 말년에 공公의 얼굴 알게 되었네. 거듭 혼인을 맺어 시종 특별한 사랑을 받았네.” 하였으니, 이방직李邦直은 아마도 이천伊川의 사위인 이통직李通直의 형제인 듯하다.이 속이지 않는 것을
성誠이라 한다.” 하였으니, 곧 속이지 않음을
성誠이라 한 것이요,
서중거徐仲車(徐積)
注+살펴보건대 서적徐積은 자字가 중거仲車이니, 산양山陽 사람이다. 세 살 때 부친이 별세하였는데, 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겼다. 뒤에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초주교수楚州敎授가 되었으며 별세하자 시호를 절효선생節孝先生이라 하였다.는 “쉬지 않는 것을
성誠이라 한다.” 하였으니, 《
중용中庸》의
지성무식至誠無息을 말한 것이고
무식無息으로
성誠을 해석한 것은 아니다.
혹자가 이것을 가지고 선생先生에게 묻자, 선생先生이 위와 같이 말씀하였다.
○ 무망無妄은 진실한 이치가 자연自然하여 털끝만큼이라도 거짓과 망령됨이 없는 것이므로 성誠이라 이르고, 불기不欺는 진실한 이치가 당연함을 알고서 스스로 속이지 않는 것이니, 바로 성실할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무망無妄은 자연自然으로 하는 성誠이요 불기不欺는 힘을 써서 하는 것이므로 그 다음이라 한 것이다.”
이 두 말씀은 이방직李邦直이 ‘속이지 않는 것을 성誠’이라 하고 서중거徐仲車(徐積)가 ‘쉬지 않음을 성誠’이라 한 말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혹자或者가 이것을 가지고 정자程子에게 묻자, 정자程子가 답하신 것이니, 여기에서 말한 성誠은 사람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무망无妄은 진실한 이치가 자연하여 털끝만큼의 망령됨도 없는 것이요, 불기不欺는 진실한 이치의 당연함을 참으로 알아서 한 생각의 속임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망无妄은 바로 자연自然의 성誠이니, 성인聖人의 경지로 사람에 있어서도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니, 《중용中庸》의 이른바 ‘성誠은 하늘의 도道’ 라는 것이다.
불기不欺는 힘을 써서 공부하는 것이니, 선善이 밝지 못하면 감히 스스로 이미 밝다고 이르지 못하여 반드시 그 밝기를 구한 뒤에 그만두는 것이요,
몸이 성실하지 못하면 감히 스스로 이미 성실하다고 이르지 못하여 반드시 그 성실하기를 구한 뒤에 그만두는 것이니, 《중용中庸》에 이른바 ‘성실할 것을 생각함은 사람의 도道’ 라는 것이다.
이방직李邦直은 속이지 않는 것을 성誠이라 하였으니, 이는 공부工夫를 가리켜 본체本體라 한 것으로 성자誠字의 정면正面을 버린 것이요, 서중거徐仲車는 쉬지 않는 것을 성誠이라 하였으니 이는 공용功用을 도리道理라 한 것으로 또한 지성무식至誠無息의 해석과 다르다.
정자程子가 이것을 분별해내면서부터 성자誠字의 뜻이 비로소 분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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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무망지위성이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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