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 天官之職은 須襟懷洪大라야 方看得이니 蓋其規模至大라
若不得此心
하고 欲事事上致曲
注+按 此與中庸之意로 不同하니 借以爲委曲窮究之意니라窮究
하야 湊合此心 如是之大
면 必不能得也
리라
周建六官而天官冢宰 統理邦國하야 內外之政과 小大之事를 無所不總하니 若非心量廣大면 何以包擧四海, 綜理百職이리오
今無此心量하고 但欲每事委曲窮究하면 必不能周悉通貫之矣리라
71-2 釋氏錙銖天地
하니 可謂至大
나 然不嘗爲大
하면 則爲事不得
이니 若畀之一錢
이면 則必亂矣
注+益軒曰 釋氏不能修天下國家之大事業이면 則凡日用之際應事接物에 皆中理不得이니 雖畀之一錢微物하야 而令處其事라도 亦必不能行其事之宜하야 而其所做錯亂了요 非得一錢而悅之하야 其心乃亂了之謂也니라리라
釋氏論性이 極廣大나 然不可以理事니 其體用不相涉也如此니라
蓋無許大心胸包羅하면 記得此에 復忘彼하리니 其混混天下之事를 當如捕龍蛇, 搏虎豹하야 用心力看이라야 方可라
[張伯行 註] 周官에 惟太宰之職이 總兼衆職하야 最爲難看하니 蓋無至大之心胸包括網羅면 則於此而記라가 至彼復忘이라
蓋太宰는 兼衆職之全하니 其混混天下之事를 當如捕龍蛇, 搏虎豹하야 全用其心力求之라야 方可看得이라
若其他五官은 便易看하니 以其所司者止一職也일새라
地官은 以敎化爲職하고 春官은 以禮樂爲職하고 夏官은 以師旅爲職하고 秋官은 以刑罰爲職하고 冬官은 以度地居民爲職하니 非若太宰之兼衆職而無所不統矣라
71-1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씀하였다.〉
“천관天官의 직책은 모름지기 흉금胸襟이 넓고 커야 비로소 볼 수 있으니, 그 규모規模가 지극히 크기 때문이다.
만약 이러한 마음을 얻지 못하고 일마다 그 위에서
곡진曲盡함을 다하여
注+살펴보건대 여기의 치곡致曲은 《중용中庸》의 뜻과 같지 않으니, 이것을 빌어 곡진曲盡하게 궁구窮究하는 뜻으로 삼은 것이다. 연구해서 이 마음을 모아 합하기를 이와 같이 크게 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될 수 없을 것이다.
주周나라는 육관六官을 세웠는데, 천관天官의 총재冢宰가 나라를 통리統理(統治)하여 안팎의 정사政事와 크고 작은 일을 총괄하지 않음이 없으니, 만약 심량心量이 넓고 큰 자가 아니면 어떻게 사해四海를 포괄하여 들고 여러 직책을 종합綜合하여 다스릴 수 있겠는가.
이제 이러한 심량心量이 없고 다만 일마다 곡진하게 궁구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두루 다하여 관통貫通하지 못할 것이다.
71-2
석씨釋氏의
교리敎理는
천지天地를
치수錙銖(극히 작은 것)로 여겼으니, 지극히 크다고 이를 만하나 일찍이 큰일을 해보지 않았으면 일을 할 수가 없으니, 만약 그들에게
일전一錢을 준다면 반드시 혼란해질 것이다.”
注+익헌益軒이 말하였다. “석씨釋氏가 천하 국가의 큰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일상생활하는 사이에 사물에 응접할 때에 모두 이치에 맞게 하지 못하니, 비록 일전一錢의 작은 물건을 주어서 그 일을 처리하게 하더라도 반드시 그 일의 마땅함을 행하지 못하여 하는 바가 착란錯亂되는 것이요, 일전一錢을 얻고 기뻐하여 그 마음이 마침내 어지러워짐을 말한 것이 아니다.”
석씨釋氏가 성性을 논한 것이 지극히 광대廣大하나 이것으로 일을 다스릴 수는 없으니, 그 체體와 용用이 상관없음이 이와 같다.
71-3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또 말씀하였다.
허대許大(큰)한 심흉心胸으로 포괄包括하고 망라網羅함이 없으면 이것을 기억함에 다시 저것을 잊을 것이니, 많고 많은 천하天下의 일을 마땅히 용과 뱀을 잡고 호랑이와 표범을 잡듯이 마음과 힘을 써서 보아야 비로소 될 것이다.
그 밖의 다섯 관직은 보기가 쉬우니, 한 가지 직책에 그친다.”
〈《횡거선생어록橫渠先生語錄》에 보인다. 이하도 같다.〉
[張伯行 註] 《주관周官》 중에 오직 태재太宰의 직책은 여러 직책을 총괄하여 가장 보기가 어려우니, 지극히 큰 마음과 가슴으로 모든 것을 포괄하고 망라하지 않으면 여기서는 기억했다가 저기에 이르면 곧 잊어버리게 된다.
태재太宰는 여러 직책을 완전히 겸하였으니, 많고 많은 천하의 일을 마치 용과 큰 뱀을 잡고 범과 표범을 잡듯이 마음과 힘을 온전히 써서 찾아야 비로소 볼 수 있다.
기타 오관五官으로 말하면 곧 보기가 쉬우니, 맡은 바가 단지 한 직책이기 때문이다.
지관地官은 교화敎化를 직책으로 삼고 춘관春官은 예악禮樂을 직책으로 삼고 하관夏官은 군대軍隊를 직책으로 삼고 추관秋官은 형벌刑罰을 직책으로 삼고 동관冬官은 땅을 헤아려 백성들을 살게 하는 것을 직책으로 삼으니, 여러 직책을 겸하여 통솔하지 않음이 없는 태재太宰와는 같지 않다.
태재太宰의 직책을 보는 자가 어찌 지극히 큰 마음과 가슴이 없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