得其門이면 無遠之不可到也니 求入其門인댄 不由於經乎아
今之治經者亦衆矣로되 然而買櫝還珠之弊 人人皆是라
經
은 所以載道也
니 誦其言辭
하고 解其訓詁
하고 而不及道
면 乃無用之糟粕耳
注+論語子張篇曰 得其門者或寡矣라하니라 ○ 莊子天道篇曰 古人之糟粕而已라하니라니라
經所以載道는 猶櫝所以藏珠니 治經而遺乎道면 猶買櫝而還其珠니 說見韓子하니라
異日
에 見卓爾
注+論語註에 卓立貌라 吳氏曰 所謂卓爾는 亦在乎日用行事之間이요 非所謂窈冥昏黙者니라有立於前
注+論語子罕篇曰 如有所立卓爾라하니라하리니 然後
에 不知手之舞, 足之蹈
注+孟子라 新安陳氏曰 手舞足蹈는 天理之眞樂이 形見於動容之間하야 而不自知者也니라하야 不加勉而不能自止矣
리라
〈手帖
注+二程全書六十七卷에 有與方元寀手帖한대 註云 見近思錄이라하니라〉
道非有形狀之可見이나 蓋其志道之切하고 行道之篤하야 視聽言動과 造次顚沛에 不違乎道하야 用力旣久면 所見이 益爲親切하야 如有卓然而立於前者리니 則中心喜樂하야 自然欲罷不能矣리라
15-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방도보方道輔(方元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성인聖人의 도道는 평탄함이 큰 길과 같은데, 배우는 자들이 그 문을 찾지 못하는 것이 병통일 뿐이다.
그 문을 찾으면 아무리 멀어도 이르지 못할 곳이 없으니, 그 문에 들어가기를 바란다면 경전經傳을 거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지금에 경전經傳을 다루는 자들이 또한 많으나 독櫝(궤짝)만 사고 진주眞珠는 돌려주는 병폐가 사람마다 모두 그러하다.
경전經傳은
도道를 싣고 있는 것이니, 그 말만 외고 그
훈고訓詁만 풀이하고
도道에 미치지 않는다면 바로 쓸모없는
조박糟粕(찌꺼기)일 뿐이다.
注+《논어論語》〈자장편子張篇〉에 말하였다. “그 문門을 찾은 자가 혹 적다.”
○ 《장자莊子》〈天道篇〉에 말하였다. “옛사람의 조박糟粕일 뿐이다.”
경전經傳이 도道를 싣고 있음은 독櫝이 진주眞珠를 보관하고 있는 것과 같으니, 경전經傳을 다루면서 도道를 버리면 독櫝만 사고 진주眞珠를 돌려주는 것과 같은 바, 이 내용은 《한비자韓非子》 〈외저설外儲說〉에 보인다.
15-2 바라건대, 족하足下는 경전經傳으로 말미암아 도道를 찾되 힘쓰고 또 힘쓰라.
후일後日에
탁연卓然히 앞에 서 있음
注+《논어論語》 주註에 “탁이卓爾는 우뚝히 서 있는 모양이다.” 하였다. 오씨吳氏가 말하였다. “이른바 탁이卓爾라는 것은 또한 날마다 쓰는 일 사이에 있는 것이요, 이른바 아득하고 어둡고 침묵한다는 것이 아니다.”을 볼 수 있을 것이니,
注+《논어論語》〈자한편子罕篇〉에 말하였다. “마치 서 있는 바가 우뚝한 듯하다.” 그런 뒤에는 자신도 모르게 기뻐서 절로 손이 춤을 추고 발이 뛰어서
注+《맹자孟子》에 보인다. 신안진씨新安陳氏가 말하였다. “수무족도手舞足蹈는 천리天理의 참다운 즐거움이 동용動容하는 사이에 나타나서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더 힘쓰지 않아도 스스로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
〈〈
수첩手帖〉
注+《이정전서二程全書》 67권卷에 “방원채方元寀에게 준 수첩手帖이 있다.” 하였는데, 그 주註에 “《근사록近思錄》에 보인다.” 하였다.에 보인다.〉
도道는 볼 수 있는 형상形狀이 있는 것이 아니나 도道에 뜻함이 간절하고 도道를 행함이 독실하여, 보고 듣고 말하고 동함과 조차造次와 전패顚沛에 도道를 떠나지 아니하여 힘쓰기를 이미 오래하면 보는 바가 더욱 친절하여 마치 탁연卓然히 앞에 서 있는 듯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중심中心이 기쁘고 즐거워 자연 그만두려고 해도 그만둘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