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0 胸懷洞然하야 徹視無間이나 測其蘊則浩乎若滄溟之無際하니
胸次洞達
하야 無少隱慝
注+按 無間者는 無有間隔也니 註所謂隱慝은 大誤니라이나 然測其學識所蘊
하면 則又深博而無涯
라
[張伯行 註] 是其由內達外皆盛德之符니 人得而見之나 無從而測之라
蓋胸懷灑落하야 如洞開重門하야 徹底空明하고 表裏如一하며
而其學識之所蘊蓄은 則深博無涯涘하야 如滄溟之浩浩蕩蕩하야 不知所際하니
朱子所謂賢愚皆獲其益이나 而學者未至면 則不可輕議之者乎아
敬主於身而恕及於物하니 敬則其本正而一이요 恕則其用公而溥니라
居天下之廣居하야 不安於狹陋하고 行天下之大道하야 不由於邪僻이라
17-16 言有物而行有常
注+家人象傳에 物은 謂事實이라 ○ 中溪張氏曰 物은 猶不誠無物之物이니라이러시다
17-17 先生爲學에 自十五六時로 聞汝南周茂叔論道하시고 遂厭科擧之業하야 慨然有求道之志로되 未知其要하야 泛濫於諸家하고 出入於老釋者 幾十年이러니 返求諸六經而後에 得之하시니
按 濂溪先生이 爲南安軍司理參軍時에 程公珦이 攝通守事러니 視其氣貌非常人하고 與語하야 知其爲學知道也라
而程氏遺書에 有言 再見周茂叔後에 吟風弄月以歸하니 有吾與點也之意라하니라
明道學於濂溪者 雖得其大意나 然其博求精察하야 益充所聞하야 以抵於成者는 尤多自得之功하니라
17-19 知盡性至命이 必本於孝悌하고 窮神知化 由通於禮樂하며
樂記曰 天高地下
하니 萬物散殊而禮制行矣
요 流而不息
하야 合同而化而樂興焉
注+劉氏曰 禮者는 天地之序요 樂者는 天地之和라 高下散殊者는 質之具니 天地自然之序也어늘 而聖人法之면 則禮制行矣요 周流同化者는 氣之行이니 天地自然之和也어늘 而聖人法之면 則樂興焉이니라이라하니라
通乎禮則知萬化散殊之迹이요 通乎樂則窮神化同流之妙라
17-20 辨異端似是之非하야 開百代未明之惑하시니 秦漢而下에 未有臻斯理也라
謂孟子沒而聖學不傳이라하사 以興起斯文爲己任하시니 其言曰
昔之惑人也는 乘其迷暗이러니 今之入人也는 因其高明이로다
淺近故로 迷暗者爲所惑이요 深遠故로 高明者反陷其中이니라
17-21 自謂之窮神知化로되 而不足以開物成務하며
堯舜之道 大中至正
하니 窮深極微
는 是過之也
注+按 似非本文正意라 上文自謂之意 止於窮深極微之下하니라라
[張伯行 註] 又以爲窮深極微하야 超出陰陽之外하야 爲不生不滅之說이나
堯舜以來相傳之道가 大中至正하야 其爲敎易明而事易行也라
索隱行怪하야 便不可入堯舜之道면 則與吾道之性命必本孝弟, 神化由通禮樂者로 異矣니라
17-24 天下之學이 非淺陋固滯면 則必入於此라
自道之不明也로 邪誕妖異之說이 競起하야 塗生民之耳目하고 溺天下於汙濁하니 雖高才明智라도 膠於見聞하야 醉生夢死하야 不自覺也하나니
淺陋固滯者는 如刑名功利之習과 訓詁詞章이 是也라
17-25 先生이 進將覺斯人하고 退將明之書러시니 不幸早世하야 皆未及也라
以上一節은 言學道之本末과 與其闢異端正人心之大略也라
學者多矣라 先生之言이 平易易知하야 賢愚皆獲其益하니 如群飮於河에 各充其量이라
先生敎人에 自致知로 至於知止하며 誠意로 至於平天下하고 灑掃應對로 至於窮理盡性하야 循循有序하니라
此一節은 言敎人之道 本末備具而循序漸進호되 惟恐學者厭卑近而務高遠하야 輕自肆而無實得也니라
是非雖明而亦不絶之
注+按 謂雖辨其是非나 而物我無間也니 註說恐非라니라
敎人
에 各因其資
注+按 註說恐非라 誠在言前故로 人自化而易從也요 且非但指學者라而平易明白
이라 故易從
이니라
誠服者는 眞實而非勉强이니 聞風而服이면 則無遠不格矣리라
17-36 雖小人이 以趨向之異로 顧於利害하야 時見排斥이나 退而省其私하면 未有不以先生爲君子也러라
先生이 以議新法不合하야 遂遭排斥이나 然當時用事者亦曰 伯淳은 忠信人也라하니 則其言行之懿를 有不可誣者니라
17-39 當法令繁密之際하야도 未嘗從衆爲應文逃責之事하사
人皆病於拘礙로되 而先生은 處之綽然하고 衆憂以爲甚難이로되 而先生은 爲之沛然하사
然而處之有道故로 不見其礙하고 爲之有要故로 不見其難이니라
[張伯行 註] 法令이 易以繩人하니 居下位者不得自行己志하야 相率爲虛文逃責而已라
先生은 揆之以理하고 爭之以義하사 雖當法令繁密이나 未嘗苟且從衆하고 總欲處得其當而非以爲矯也라
人惟爲法令所拘라 是以로 動多窒礙호되 先生은 處之綽然하야 不拘於法하고 亦未嘗戾於法이라
故其自言曰 人雖異之나 不至指爲狂人이요 惟以法令爲憂라 是以로 千難萬難이로되 唯先生은 爲之沛然하야 擺脫得開하야 無事不從容이라
故其自言曰 一命之士苟存心愛物이면 於人에 必有所濟라하시니 是之謂行所無事者乎인저
17-41 方監司競爲嚴急之時하야도 其待先生에 率皆寬厚하야 設施之際에 有所賴焉이라
忠信懇惻이 足以感人이라 故能不徇時好而得遂其所爲라
17-42 先生所爲綱條法度는 人可效而爲也어니와 至其道(導)之而從하고 動之而和하며 不求物而物應하고 未施信而民信하야는 則人不可及也러라
政令設施는 可倣而行이나 道化孚感은 不可力而致니라
17-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찬撰한 명도선생明道先生의 행장行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선생先生은 자품資稟이 이미 특이하고 충양充養함이 방도가 있어서
자품資稟은 하늘에서 얻고 충양充養함은 자기 몸에 있는 것이다.
화和하면서도 준절撙節(節制)함이 있는 것이다.
충성忠誠의 지극함이 금석金石을 꿰뚫을 수 있다.
효제孝悌의 지극함이 귀신鬼神을 통할 수 있다.
17-8 그 얼굴빛을 보면 사람을 접함에 봄볕의 온화함과 같고
17-9 그 말소리를 들으면 사람에게 들어옴이 단비가 적셔줌과 같았다.
우유優游하여 급박하지 않고 흡족하여 유여有餘하다.
17-10 흉중의 회포가 확 트여서 환히 보여 간격이 없었으나 학문學問이 쌓인 것을 헤아려 보면 넓음이 푸른 바다가 끝이 없는 것과 같았으니,
흉차胸次(胸中)가
통달洞達하여 조금도 숨김이 없었으나
注+살펴보건대 무간無間이란 간격間隔이 없는 것이니, 주註에서 은특隱慝이라고 말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補註〕은특隱慝은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사악邪惡함으로 매우 나쁜 것이다. 본문本文의 무간無間은 무유간격無有間隔의 뜻이요, 무소간단無少間斷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본인本人의 억견臆見으로는 특慝은 익匿의 오자誤字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리하여 은특隱慝을 ‘숨김’으로 해석하였다. 그
학식學識이 쌓인 것을 헤아려 보면 또 깊고 넓어 끝이 없었다.
[張伯行 註] 안으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덕盛德의 상징이니, 사람들이 이것을 얻어 볼 수는 있으나 측량하여 알 수가 없다.
가슴속이 깨끗하여 여러 문을 활짝 열어 놓아 끝까지 환하게 밝고 표리表裏가 한결같으며,
그 학식學識의 온축蘊蓄한 바는 깊고 넓어 끝이 없어서 넓은 바다가 호호탕탕浩浩蕩蕩하여 끝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았으니,
주자朱子의 이른바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모두 그 유익함을 얻을 수 있으나 배우는 자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가볍게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17-11 그 덕德을 지극히 표현할진댄 아름다운 말로 충분히 형용할 수가 없다.
이상의 일절一節은 자품資稟의 순수함과 충양充養의 후함을 말하였다.
17-12 선생先生이 자기 몸을 행하실 적에 안으로는 경敬을 주장하고 서恕로써 행하며
경敬은 자기 몸을 주장하고 서恕는 남에게 미치니, 경敬하면 근본根本이 바르고 한결같으며 서恕하면 쓰임이 공정公正하고 넓어진다.
17-13 남의 선善을 보면 자신에게서 나온 것처럼 여기고
17-14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았으며
17-15 넓은 집(仁)에 거하고 대도大道(義)를 행하고
천하天下의 넓은 집에 거하여 좁고 누추함을 편안히 여기지 않았고, 천하天下의 대도大道를 행하여 간사하고 편벽됨을 따르지 않았다.
17-16 말은
사물事物에 실증함이 있고, 행실은 떳떳함이 있으셨다.
注+《주역周易》 가인괘家人卦 〈상전象傳〉의 전傳에 “물物은 사실事實을 이른다.” 하였다.
○ 중계장씨中溪張氏가 말하였다. “물物은 《중용中庸》에 ‘불성무물不誠無物(誠이 아니면 물物이 없음)’의 물자物字와 같다.”
말은 반드시 실증함이 있었으므로 물物이라고 말하였고, 행실은 반드시 법도法度가 있었으므로 상常이라고 말하였다.
○ 이상의 일절一節은 자기 몸을 행한 본말本末을 말하였다.
17-17 선생先生은 학문學問을 함에 15, 16세 때로부터 여남汝南의 주무숙周茂叔(周濂溪)이 도道를 강론하신다는 말을 들으시고 마침내 과거공부를 싫어하여 개연慨然히 도道를 구할 뜻이 있었으나, 그 요점을 알지 못하여 제가諸家에 범람하고 노석老釋(老佛)에 출입한 지가 거의 10연年이었는데, 육경六經에 돌이켜 찾은 뒤에야 얻으시게 되었다.
살펴보건대 염계선생濂溪先生이 남안군南安軍 사리참군司理參軍이 되셨을 때에 정공程公 향珦이 통수通守의 일을 대리代理가 맡았는데, 염계선생濂溪先生의 기상氣象과 모습이 보통사람이 아닌 것을 보고는 함께 말씀을 해보고서 학문學問하여 도道를 아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인하여 벗을 삼고 또 두 아들(明道와 이천伊川)로 하여금 수학受學하게 하였다.
정씨程氏의 《유서遺書》에 이르기를 “두 번 주무숙周茂叔을 본 뒤에 풍월風月을 읊고 희롱하며 돌아오니, ‘내 증점曾點을 허여許與한다.’는 뜻이 있었다.” 하였다.
명도明道가 염계濂溪에게 배운 것은 비록 대의大義를 얻었으나 널리 구하고 정精하게 살펴서 더욱 들은 바를 채워 성취成就함에 이른 것은 자득自得한 공功이 더욱 많다.
17-18 여러 사물의 이치에 밝고 인륜人倫을 더욱 살폈으며
명明은 그 이치를 앎이 있는 것이요, 찰察은 명明보다 더 자세한 것이다.
17-19 성性을 다하고 명命에 이르는 것이 반드시 효제孝悌에 근본하고, 신명神明의 이치를 연구하고 조화造化를 아는 것이 예악禮樂을 통함에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았으며
〈
악기樂記〉에 이르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만물萬物이 흩어져 다름에
예제禮制가 행해지고,
유행流行하고 쉬지 않아서
합동合同하여
조화造化함에
악樂이 일어난다.”
注+유씨劉氏가 말하였다. “예禮는 천지天地의 질서秩序이고 악樂는 천지天地의 화和함이다. 높고 낮은 것이 흩어져 다른 것은 질質이 갖추어진 것이니 천지간天地間에 자연의 질서인데, 성인聖人이 이것을 본받으면 예제禮制가 행해지고, 두루 유행하여 함께 화和하는 것은 기氣가 운행運行하는 것이니 천지간天地間에 자연의 화함인데, 성인聖人이 이것을 본받으면 악樂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였다.
예禮를 달통하면 만 가지 조화造化가 흩어져 다른 자취를 알고, 악樂을 달통하면 신화神化가 함께 유행流行하는 묘리妙理를 연구하게 된다.
이는 하늘을 밝힘이 실로 사람에게 근본함을 말씀한 것이다.
17-20 이단異端의 옳은 듯하면서도 그른 것을 분변하여 백대百代에 밝지 못한 의혹을 여셨으니, 진秦‧한漢 이후로 이 이치에 이른 자가 없다.
‘맹자孟子가 별세하신 뒤로 성학聖學이 전해지지 못하였다.’ 하시어 사문斯文을 흥기함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셨으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도道가 밝아지지 못함은 이단異端이 해쳐서이다.
옛날의 폐해는 천근淺近해서 알기가 쉬웠는데, 지금의 폐해는 심원深遠하여 분변하기가 어렵다.
옛날에 사람을 미혹迷惑하게 함은 혼미하고 어두움을 틈탔는데, 지금에 사람에게 들어감은 고명高明함을 인한다.
옛날의 폐해는 양주楊朱와 묵적墨翟, 신불해申不害와 한비韓非가 이것이요, 지금의 폐해는 노장老莊과 불교佛敎가 이것이다.
천근淺近하기 때문에 혼미하고 어두운 자가 미혹당하고, 심원深遠하기 때문에 고명高明한 자가 도리어 이 가운데에 빠진다.
17-21 불佛‧노老들은 스스로 신명神明의 이치를 궁구하고 조화造化를 안다고 말하나 물건을 열고 일을 이루지는 못하며
스스로 현묘玄妙한 진리眞理를 통달하였다고 말하나 실제는 천하天下에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한다.
17-22 말은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나 실제는 윤리倫理에서 벗어나며
스스로 성性이 법계法界를 두루한다고 말하나 실제는 인륜人倫과 물리物理에서 벗어난다.
17-23 심오深奧한 것을 연구하고 은미隱微한 것을 지극히 하나 요堯‧순舜의 도道에 들어갈 수 없으니,
요堯‧
순舜의
도道는
대중大中하고
지정至正하니,
심원深遠한 것을 연구하고
은미隱微한 것을 지극히 함은 지나친 것이다.
注+살펴보건대 본문本文의 바른 뜻이 아닌 듯하다. 윗글에 자위自謂의 뜻은 궁심극미窮深極微의 아래에서 끝난다.
[張伯行 註] 또 심오하고 은미한 것을 궁극히 하여 음양陰陽 밖으로 초탈해서 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천근한 것치고 심오하지 않음이 없고 은미한 것치고 드러나지 않음이 없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요堯‧순舜 이래로 서로 전수한 도道가 대중大中하고 지정至正하여 가르침이 알기가 쉽고 일이 행하기가 쉽다.
은미한 것을 찾고 괴이한 짓을 행하여 요堯‧순舜의 도道에 들어가지 못하니, 그렇다면 우리 도道의 성명性命이 반드시 효제孝悌에 근본하고 신화神化가 예악禮樂을 통함에 말미암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17-24 천하天下의 학문學問이 천루淺陋하고 고체固滯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불佛‧노老에 들어간다.
도道가 밝지 못한 뒤로부터 사탄邪誕하고 요망妖妄한 말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생민生民의 귀와 눈을 가리고, 천하天下를 더럽고 혼탁한 데에 빠뜨리니, 비록 높은 재주와 밝은 지혜라도 견문見聞에 빠져 취하여 살고 꿈속에 죽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이는 모두 바른 길의 우거진 잡초요 성문聖門의 장벽이다.
이것을 연 뒤에야 도道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천루淺陋와 고체固滯는 형명刑名‧공리功利의 익힘과 훈고訓詁‧사장詞章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배우는 자가 천루淺陋하고 고체固滯한 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반드시 노老‧불佛의 공적空寂과 허무虛無로 들어간다.
17-25 선생先生이 나아가서는 장차 이 인민人民을 깨우치고 물러나서는 장차 책에 밝히려 하셨는데,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나 모두 미치지 못하였다.
변석辨析하기를 정미精微하게 한 것이 다소 세상에 나와 있으니, 이는 배운 자들이 전한 것일 뿐이다.
이상의 일절一節은 도道를 배운 본말本末과 이단異端을 물리치고 인심人心을 바로잡은 대략을 말하였다.
17-26 선생先生의 문하門下에 배운 자가 많았다.
선생先生의 말씀은 평이平易하여 알기가 쉬워서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가 모두 유익함을 얻었으니, 여럿이 하수河水에서 물을 마심에 각각 그 양量을 채우는 것과 같다.
선생先生은 사람을 가르치실 적에 치지致知로부터 지지知止에 이르며, 성의誠意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고, 쇄소응대灑掃應對로부터 궁리진성窮理盡性에 이르러 차근차근 순서가 있었다.
세상의 배우는 자들이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데로 나아가며, 낮은 데에 처하여 높은 것을 엿본다.
이 때문에 가볍게 스스로 큰 체하나 마침내 얻음이 없음을 병통으로 여기셨다.
이 일절一節은 사람을 가르치는 방도가 본말本末이 구비되어 순서順序를 따라 점점 나아갔으나, 행여 배우는 자들이 비근卑近한 것을 싫어하고 고원高遠한 것을 힘써서 가볍게 스스로 방사放肆하여 실제로 얻음이 없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17-27 선생先生은 인물人物을 접할 적에 분별하였으나 간격이 없었고
시비是非가 비록 분명하나 또한 끊지 않았다.
注+살펴보건대 비록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하나 남과 내가 간격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주註의 내용內容은 잘못된 듯하다.
17-29 사람을 가르치면 사람들이 쉽게 따르고
사람을 가르칠 적에 각각 그
자품資稟을 따라
注+살펴보건대 주註의 내용內容은 잘못된 듯하다. 성실함이 말하기 이전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스로 교화敎化되어 쉽게 따른 것이요, 또 단지 배우는 자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평이平易하고
명백明白하였으므로 쉽게 따른 것이다.
17-30 사람에게 노여워하되 사람들이 원망하지 않아서
마땅히 노여워할 바를 노여워하여 심기心氣가 화평和平하였으므로 원망하지 않은 것이다.
17-31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 선인善人과 악인惡人이 모두 그 마음을 얻어
사랑하고 공정하였으므로 모두 그 환심歡心을 얻은 것이다.
17-32 교활하고 속이는 자가 성의誠意를 바쳤고
사람을 대할 적에 성의誠意을 다하여 사람들이 차마 속이지 못하였다.
17-33 포악하고 거만한 자가 공손함을 지극히 하였으며
사람을 대할 적에 예禮를 다하여 사람들이 차마 예禮가 아닌 것을 가하지 못하였다.
17-34 풍도風度를 들은 자가 진실로 복종하였고
진실로 복종한다는 것은 진실하여 억지로 힘쓰는 것이 아니니, 풍도風度를 듣고 복종한다면 멀어도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17-35 덕德스러운 모습을 본 자들은 심취心醉하였으니
성대한 덕德이 나타나는 바에 보는 자들이 지극히 화和함에 훈자薰炙되어 순주醇酒를 마신 듯하였다.
17-36 비록 소인小人들이 추향趨向이 다르다 하여 이해利害를 돌아보아 때로 배척을 가하였으나, 물러가 사사로이 있을 때를 살펴보면 선생先生을 군자君子라고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선생先生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의논(비판)하다가 부합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배척을 받았으나, 당시에 용사用事하는 자들이 또한 말하기를 “백순伯淳은 충신忠信한 사람이다.” 하였으니, 그 말씀과 행실의 아름다움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 이상의 일절一節은 사물事物을 대하는 방도를 말하였다.
17-37 선생先生은 정사를 할 적에 악惡을 너그러움으로 다스리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열어 주어 고치면 그친 것이다.
17-39 법령法令이 번거롭고 치밀한 때를 당하였으나 일찍이 사람들을 따라 법조문法條文에 응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법령法令에 구애됨을 괴롭게 여겼으나 선생先生은 대처함에 여유가 있었으며, 사람들은 심히 어려운 것이라고 걱정하였으나 선생先生은 시원스럽게 시행하시어
법령法令이 준엄하고 치밀하였으나 선생先生은 일찍이 구차하게 명령에 응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대처함에 방도가 있었으므로 구애됨을 보지 못하였고, 행함에 요령이 있었으므로 어려움을 보지 못하신 것이다.
[張伯行 註]법령法令은 사람을 얽어매기가 쉬우니, 하위下位에 있는 자가 자기 뜻대로 행할 수가 없어서 서로 이끌고서 허위 문서를 만들어 서로 책임을 도피할 뿐이다.
선생先生은 이치로 헤아리고 의義로 다투어 비록 법령法令이 번거롭고 치밀한 때를 당하였으나 일찍이 구차하게 남들을 따르지 않고 모두 대처함에 그 마땅함을 얻어서 거짓으로 꾸미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찍이 스스로 말씀하기를 “직사職事를 교묘히 면할 수 없다.’ 하였다.
사람들은 법령法令에 구애받아 이 때문에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막힘이 많았으나 선생은 여유 있게 대처하여 법에 구애받지도 않고 또한 일찍이 법에 어긋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스스로 말씀하기를 ‘사람이 비록 다르다고 여겼으나 가리켜서 광인狂人이라 함에는 이르지 않았다.’ 하였으며, 사람들이 오직 법령法令을 걱정하여 이 때문에 천 가지로 어렵고 만 가지로 어려웠으나 오직 선생만은 패연沛然하여 헤쳐 나가서 일마다 종용從容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스스로 말씀하기를 ‘일명一命의 선비가 만일 물건을 사랑함에 마음을 둔다면 사람에 대하여 반드시 구제할 바가 있다.’ 하였으니, 이것을 일러 무사無事한 바를 행하는 자라 할 것이다.
17-40 비록 별안간에 위급할 때를 당하더라도 목소리와 얼굴빛을 움직이지 않으셨다.
이치에 대한 지식이 평소 밝고 뜻이 평소 정해져서이다.
17-41 감사監司들이 다투어 엄하게 다그치는 때를 당해서도 감사監司들이 선생先生을 대할 때에 모두 너그럽고 후하여 선생先生이 시설施設하는 즈음에 힘입은 바가 있었다.
충신忠信과 간곡함이 남을 감동시켰으므로 세상의 좋아함을 따르지 않고도 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17-42 선생先生이 행하신 강령綱領과 조목條目의 법도法度는 사람이 본받아서 할 수 있겠지만 인도하면 따르고 흥동興動시키면 화답和答하며 남에게 구하지 않아도 남이 응應하고 신信을 베풀지 않아도 백성들이 믿어줌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미칠 수 없었다.”
정령政令(정사와 법령)과 시설施設은 모방하여 행할 수 있으나, 인도하여 화化하고 믿어 감동함은 힘으로 이룰 수가 없다.
○ 이상의 일절一節은 정사政事하는 방도를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