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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3)

근사록집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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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사록집해(3)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17-1 伊川先生 撰明道先生行狀曰
先生 資稟旣異而充養有道하야
資稟 得於天이요 充養 存於己
17-2 純粹如精金하고
純粹而不雜이라
17-3 溫潤如良玉하며
溫良而潤澤이라
17-4 寬而有制하고
寬大而有規矩
17-5 和而不流하며
和易而有撙節이라
17-6 忠誠貫於金石하고
忠誠之至 可貫於金石이라
17-7 孝悌通於神明하며
孝悌之至 可通於鬼神이라
17-8 視其色 其接物也如春陽之溫하고
春陽發達하야 盎然其和
17-9 聽其言 其入人也如時雨之潤이라
優游而不迫하고 沾洽而有餘
17-10 胸懷洞然하야 徹視無間이나 測其蘊則浩乎若滄溟之無際하니
胸次洞達하야 無少隱慝注+按 無間者 無有間隔也 註所謂隱慝 大誤니라이나 然測其學識所蘊하면 則又深博而無涯
[張伯行 註] 是其由內達外皆盛德之符 人得而見之 無從而測之
蓋胸懷灑落하야 如洞開重門하야 徹底空明하고 表裏如一하며
而其學識之所蘊蓄 則深博無涯涘하야 如滄溟之浩浩蕩蕩하야 不知所際하니
朱子所謂賢愚皆獲其益이나 而學者未至 則不可輕議之者乎
17-11 極其德인댄 美言 蓋不足以形容이라
以上一節 言資稟之粹 充養之厚也
17-12 先生行己 內主於敬而行之以恕하야
敬主於身而恕及於物하니 敬則其本正而一이요 恕則其用公而溥니라
17-13 見善 若出諸己하고
與人爲善也
17-14 不欲 勿施於人하며
視人猶己也
17-15 居廣居而行大道하고
居天下之廣居하야 不安於狹陋하고 行天下之大道하야 不由於邪僻이라
17-16 言有物而行有常注+家人象傳 謂事實이라 ○ 中溪張氏曰 物 猶不誠無物之物이니라이러시다
言必有實이라 故曰物이요 行必有度 故曰常이라
○ 以上一節 言行己之本末也
17-17 先生爲學 自十五六時 聞汝南周茂叔論道하시고 遂厭科擧之業하야 慨然有求道之志로되 未知其要하야 泛濫於諸家하고 出入於老釋者 幾十年이러니 返求諸六經而後 得之하시니
按 濂溪先生 爲南安軍司理參軍時 程公珦 攝通守事러니 視其氣貌非常人하고 與語하야 知其爲學知道也
因與爲友하고 且使其二子受學焉하니라
而程氏遺書 有言 再見周茂叔後 吟風弄月以歸하니 有吾與點也之意라하니라
明道學於濂溪者 雖得其大意 然其博求精察하야 益充所聞하야 以抵於成者 尤多自得之功하니라
17-18 明於庶物하고 察於人倫하며
明則有以識其理 察則加詳於明이라
17-19 知盡性至命 必本於孝悌하고 窮神知化 由通於禮樂하며
孝悌 說見第四卷이라
樂記曰 天高地下하니 萬物散殊而禮制行矣 流而不息하야 合同而化而樂興焉注+劉氏曰 禮者 天地之序 樂者 天地之和 高下散殊者 質之具 天地自然之序也어늘 而聖人法之 則禮制行矣 周流同化者 氣之行이니 天地自然之和也어늘 而聖人法之 則樂興焉이니라이라하니라
通乎禮則知萬化散殊之迹이요 通乎樂則窮神化同流之妙
言明乎天 實本乎人也
17-20 辨異端似是之非하야 開百代未明之惑하시니 秦漢而下 未有臻斯理也
謂孟子沒而聖學不傳이라하사 以興起斯文爲己任하시니 其言曰
道之不明 異端 害之也
昔之害 近而易知러니 今之害 深而難辨이로다
昔之惑人也 乘其迷暗이러니 今之入人也 因其高明이로다
昔之害 楊墨申韓是也 今之害 老佛是也
淺近故 迷暗者爲所惑이요 深遠故 高明者反陷其中이니라
17-21 自謂之窮神知化로되 而不足以開物成務하며
自謂通達玄妙 實則不可以有爲於天下
17-22 言爲無不周遍호되 實則外於倫理하며
自謂性周法界 然實則外乎人倫物理
17-23 窮深極微而不可以入堯舜之道
堯舜之道 大中至正하니 窮深極微 是過之也注+按 似非本文正意 上文自謂之意 止於窮深極微之下하니라
[張伯行 註] 又以爲窮深極微하야 超出陰陽之外하야 爲不生不滅之說이나
而不知無淺非深하고 無微非顯이라
堯舜以來相傳之道 大中至正하야 其爲敎易明而事易行也
索隱行怪하야 便不可入堯舜之道 則與吾道之性命必本孝弟, 神化由通禮樂者 異矣니라
17-24 天下之學 非淺陋固滯 則必入於此
自道之不明也 邪誕妖異之說 競起하야 塗生民之耳目하고 溺天下於汙濁하니 雖高才明智라도 膠於見聞하야 醉生夢死하야 不自覺也하나니
是皆正路之蓁蕪 聖門之蔽塞이라
闢之而後 可以入道라하시니라
淺陋固滯者 如刑名功利之習 訓詁詞章 是也
學者不入於淺陋固滯 則必入於老佛之空無니라
17-25 先生 進將覺斯人하고 退將明之書러시니 不幸早世하야 皆未及也
其辨析精微 稍見於世者 學者之所傳耳니라
以上一節 言學道之本末 與其闢異端正人心之大略也
17-26 先生之門
學者多矣 先生之言 平易易知하야 賢愚皆獲其益하니 如群飮於河 各充其量이라
先生敎人 自致知 至於知止하며 誠意 至於平天下하고 灑掃應對 至於窮理盡性하야 循循有序하니라
病世之學者捨近而趨遠하고 處下而闚高
所以輕自大而卒無得也하시니라
此一節 言敎人之道 本末備具而循序漸進호되 惟恐學者厭卑近而務高遠하야 輕自肆而無實得也니라
17-27 先生接物 辨而不間하고
是非雖明而亦不絶之注+按 謂雖辨其是非 而物我無間也 註說恐非니라
17-28 感而能通하며
感而必應이니라
17-29 敎人而人易從하고
敎人 各因其資注+按 註說恐非 誠在言前故 人自化而易從也 且非但指學者而平易明白이라 故易從이니라
17-30 怒人而人不怨하야
怒所當怒而心平氣和 故不怨이니라
17-31 賢愚善惡 咸得其心하야
愛而公이라 故咸得其歡心이니라
17-32 狡僞者獻其誠하고
待人 盡其誠而人不忍欺之
17-33 暴慢者致其恭하며
待人 盡其禮而人不忍以非禮加之
17-34 聞風者誠服하고
誠服者 眞實而非勉强이니 聞風而服이면 則無遠不格矣리라
17-35 覿德者心醉하니
盛德所形 見者熏乎至和하야 如飮醇酎
17-36 雖小人 以趨向之異 顧於利害하야 時見排斥이나 退而省其私하면 未有不以先生爲君子也러라
先生 以議新法不合하야 遂遭排斥이나 然當時用事者亦曰 伯淳 忠信人也라하니 則其言行之懿 有不可誣者니라
○ 以上一節 言接物之道하니라
17-37 先生爲政 治惡以寬하고
開其自新之路하야 改而止
17-38 處煩而裕하사
得其要領하고 且順乎理
17-39 當法令繁密之際하야도 未嘗從衆爲應文逃責之事하사
人皆病於拘礙로되 而先生 處之綽然하고 衆憂以爲甚難이로되 而先生 爲之沛然하사
法令峻密이로되 而先生 未嘗爲苟且應命之事
然而處之有道故 不見其礙하고 爲之有要故 不見其難이니라
[張伯行 註] 法令 易以繩人하니 居下位者不得自行己志하야 相率爲虛文逃責而已
先生 揆之以理하고 爭之以義하사 雖當法令繁密이나 未嘗苟且從衆하고 總欲處得其當而非以爲矯也
故嘗自言曰 職事不可以巧免이라하시니라
人惟爲法令所拘 是以 動多窒礙호되 先生 處之綽然하야 不拘於法하고 亦未嘗戾於法이라
故其自言曰 人雖異之 不至指爲狂人이요 惟以法令爲憂 是以 千難萬難이로되 唯先生 爲之沛然하야 擺脫得開하야 無事不從容이라
故其自言曰 一命之士苟存心愛物이면 於人 必有所濟라하시니 是之謂行所無事者乎인저
17-40 雖當倉卒이나 不動聲色이라
理素明而志素定이라
17-41 方監司競爲嚴急之時하야도 其待先生 率皆寬厚하야 設施之際 有所賴焉이라
忠信懇惻 足以感人이라 故能不徇時好而得遂其所爲
17-42 先生所爲綱條法度 人可效而爲也어니와 至其道(導)之而從하고 動之而和하며 不求物而物應하고 未施信而民信하야는 則人不可及也러라
政令設施 可倣而行이나 道化孚感 不可力而致니라
○ 以上一節 言爲政之道


17-1 이천선생伊川先生명도선생明道先生행장行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선생先生자품資稟이 이미 특이하고 충양充養함이 방도가 있어서
자품資稟은 하늘에서 얻고 충양充養함은 자기 몸에 있는 것이다.
17-2 순수함이 정제精製과 같고
순수하여 잡되지 않은 것이다.
17-3 온윤溫潤함이 좋은 과 같으며
온량溫良하면서 윤택한 것이다.
17-4 너그러우면서도 재제裁制가 있고
관대하면서도 규구規矩(法度)가 있는 것이다.
17-5 하면서도 흐르지 않으며
하면서도 준절撙節(節制)함이 있는 것이다.
17-6 충성忠誠금석金石을 꿰뚫고
충성忠誠의 지극함이 금석金石을 꿰뚫을 수 있다.
17-7 효제孝悌신명神明에 통하며
효제孝悌의 지극함이 귀신鬼神을 통할 수 있다.
17-8 그 얼굴빛을 보면 사람을 접함에 봄볕의 온화함과 같고
봄볕이 발달發達하여 그 함이 성하였다.
17-9 그 말소리를 들으면 사람에게 들어옴이 단비가 적셔줌과 같았다.
우유優游하여 급박하지 않고 흡족하여 유여有餘하다.
17-10 흉중의 회포가 확 트여서 환히 보여 간격이 없었으나 학문學問이 쌓인 것을 헤아려 보면 넓음이 푸른 바다가 끝이 없는 것과 같았으니,
흉차胸次(胸中)가 통달洞達하여 조금도 숨김이 없었으나注+살펴보건대 무간無間이란 간격間隔이 없는 것이니, 에서 은특隱慝이라고 말한 것은 크게 잘못된 것이다. 〔補註〕은특隱慝은 마음속에 숨겨져 있는 사악邪惡함으로 매우 나쁜 것이다. 본문本文무간無間무유간격無有間隔의 뜻이요, 무소간단無少間斷이 아님을 밝힌 것이다. 본인本人억견臆見으로는 오자誤字가 아닌가 여겨진다. 그리하여 은특隱慝을 ‘숨김’으로 해석하였다.학식學識이 쌓인 것을 헤아려 보면 또 깊고 넓어 끝이 없었다.
[張伯行 註] 안으로부터 밖에 이르기까지 모두 성덕盛德의 상징이니, 사람들이 이것을 얻어 볼 수는 있으나 측량하여 알 수가 없다.
가슴속이 깨끗하여 여러 문을 활짝 열어 놓아 끝까지 환하게 밝고 표리表裏가 한결같으며,
학식學識온축蘊蓄한 바는 깊고 넓어 끝이 없어서 넓은 바다가 호호탕탕浩浩蕩蕩하여 끝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과 같았으니,
주자朱子의 이른바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가 모두 그 유익함을 얻을 수 있으나 배우는 자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면 가볍게 의심할 수 없다.’는 것일 것이다.
17-11 그 을 지극히 표현할진댄 아름다운 말로 충분히 형용할 수가 없다.
이상의 일절一節자품資稟의 순수함과 충양充養의 후함을 말하였다.
17-12 선생先生이 자기 몸을 행하실 적에 안으로는 을 주장하고 로써 행하며
은 자기 몸을 주장하고 는 남에게 미치니, 하면 근본根本이 바르고 한결같으며 하면 쓰임이 공정公正하고 넓어진다.
17-13 남의 을 보면 자신에게서 나온 것처럼 여기고
남이 을 하도록 도와준 것이다.
17-14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베풀지 않았으며
남을 보기를 자기 몸과 같이 한 것이다.
17-15 넓은 집(仁)에 거하고 대도大道(義)를 행하고
천하天下의 넓은 집에 거하여 좁고 누추함을 편안히 여기지 않았고, 천하天下대도大道를 행하여 간사하고 편벽됨을 따르지 않았다.
17-16 말은 사물事物에 실증함이 있고, 행실은 떳떳함이 있으셨다.注+주역周易가인괘家人卦상전象傳〉의 에 “사실事實을 이른다.” 하였다.
중계장씨中溪張氏가 말하였다. “은 《중용中庸》에 ‘불성무물不誠無物(誠이 아니면 이 없음)’의 물자物字와 같다.”
말은 반드시 실증함이 있었으므로 이라고 말하였고, 행실은 반드시 법도法度가 있었으므로 이라고 말하였다.
○ 이상의 일절一節은 자기 몸을 행한 본말本末을 말하였다.
17-17 선생先生학문學問을 함에 15, 16세 때로부터 여남汝南주무숙周茂叔(周濂溪)이 를 강론하신다는 말을 들으시고 마침내 과거공부를 싫어하여 개연慨然를 구할 뜻이 있었으나, 그 요점을 알지 못하여 제가諸家에 범람하고 노석老釋(老佛)에 출입한 지가 거의 10이었는데, 육경六經에 돌이켜 찾은 뒤에야 얻으시게 되었다.
살펴보건대 염계선생濂溪先生남안군南安軍 사리참군司理參軍이 되셨을 때에 정공程公 통수通守의 일을 대리代理가 맡았는데, 염계선생濂溪先生기상氣象과 모습이 보통사람이 아닌 것을 보고는 함께 말씀을 해보고서 학문學問하여 를 아는 분임을 알게 되었다.
인하여 벗을 삼고 또 두 아들(明道와 이천伊川)로 하여금 수학受學하게 하였다.
정씨程氏의 《유서遺書》에 이르기를 “두 번 주무숙周茂叔을 본 뒤에 풍월風月을 읊고 희롱하며 돌아오니, ‘내 증점曾點허여許與한다.’는 뜻이 있었다.” 하였다.
명도明道염계濂溪에게 배운 것은 비록 대의大義를 얻었으나 널리 구하고 하게 살펴서 더욱 들은 바를 채워 성취成就함에 이른 것은 자득自得이 더욱 많다.
17-18 여러 사물의 이치에 밝고 인륜人倫을 더욱 살폈으며
은 그 이치를 앎이 있는 것이요, 보다 더 자세한 것이다.
17-19 을 다하고 에 이르는 것이 반드시 효제孝悌에 근본하고, 신명神明의 이치를 연구하고 조화造化를 아는 것이 예악禮樂을 통함에 말미암는다는 것을 알았으며
효제孝悌는 해설이 제 4권에 보인다.
악기樂記〉에 이르기를 “하늘은 높고 땅은 낮으니 만물萬物이 흩어져 다름에 예제禮制가 행해지고, 유행流行하고 쉬지 않아서 합동合同하여 조화造化함에 이 일어난다.”注+유씨劉氏가 말하였다. “천지天地질서秩序이고 천지天地함이다. 높고 낮은 것이 흩어져 다른 것은 이 갖추어진 것이니 천지간天地間에 자연의 질서인데, 성인聖人이 이것을 본받으면 예제禮制가 행해지고, 두루 유행하여 함께 하는 것은 운행運行하는 것이니 천지간天地間에 자연의 화함인데, 성인聖人이 이것을 본받으면 이 일어나는 것이다.” 하였다.
를 달통하면 만 가지 조화造化가 흩어져 다른 자취를 알고, 을 달통하면 신화神化가 함께 유행流行하는 묘리妙理를 연구하게 된다.
이는 하늘을 밝힘이 실로 사람에게 근본함을 말씀한 것이다.
17-20 이단異端의 옳은 듯하면서도 그른 것을 분변하여 백대百代에 밝지 못한 의혹을 여셨으니, 이후로 이 이치에 이른 자가 없다.
맹자孟子가 별세하신 뒤로 성학聖學이 전해지지 못하였다.’ 하시어 사문斯文을 흥기함을 자신의 임무로 여기셨으니,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가 밝아지지 못함은 이단異端이 해쳐서이다.
옛날의 폐해는 천근淺近해서 알기가 쉬웠는데, 지금의 폐해는 심원深遠하여 분변하기가 어렵다.
옛날에 사람을 미혹迷惑하게 함은 혼미하고 어두움을 틈탔는데, 지금에 사람에게 들어감은 고명高明함을 인한다.
옛날의 폐해는 양주楊朱묵적墨翟, 신불해申不害한비韓非가 이것이요, 지금의 폐해는 노장老莊불교佛敎가 이것이다.
천근淺近하기 때문에 혼미하고 어두운 자가 미혹당하고, 심원深遠하기 때문에 고명高明한 자가 도리어 이 가운데에 빠진다.
17-21 들은 스스로 신명神明의 이치를 궁구하고 조화造化를 안다고 말하나 물건을 열고 일을 이루지는 못하며
스스로 현묘玄妙진리眞理를 통달하였다고 말하나 실제는 천하天下에 훌륭한 일을 하지 못한다.
17-22 말은 두루하지 않음이 없다고 하나 실제는 윤리倫理에서 벗어나며
스스로 법계法界를 두루한다고 말하나 실제는 인륜人倫물리物理에서 벗어난다.
17-23 심오深奧한 것을 연구하고 은미隱微한 것을 지극히 하나 에 들어갈 수 없으니,
대중大中하고 지정至正하니, 심원深遠한 것을 연구하고 은미隱微한 것을 지극히 함은 지나친 것이다.注+살펴보건대 본문本文의 바른 뜻이 아닌 듯하다. 윗글에 자위自謂의 뜻은 궁심극미窮深極微의 아래에서 끝난다.
[張伯行 註] 또 심오하고 은미한 것을 궁극히 하여 음양陰陽 밖으로 초탈해서 낳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는다는 말을 한다.
그러나 천근한 것치고 심오하지 않음이 없고 은미한 것치고 드러나지 않음이 없음을 알지 못한 것이다.
이래로 서로 전수한 대중大中하고 지정至正하여 가르침이 알기가 쉽고 일이 행하기가 쉽다.
은미한 것을 찾고 괴이한 짓을 행하여 에 들어가지 못하니, 그렇다면 우리 성명性命이 반드시 효제孝悌에 근본하고 신화神化예악禮樂을 통함에 말미암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17-24 천하天下학문學問천루淺陋하고 고체固滯하지 않으면 반드시 이 에 들어간다.
가 밝지 못한 뒤로부터 사탄邪誕하고 요망妖妄한 말들이 다투어 일어나서 생민生民의 귀와 눈을 가리고, 천하天下를 더럽고 혼탁한 데에 빠뜨리니, 비록 높은 재주와 밝은 지혜라도 견문見聞에 빠져 취하여 살고 꿈속에 죽어서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
이는 모두 바른 길의 우거진 잡초요 성문聖門의 장벽이다.
이것을 연 뒤에야 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천루淺陋고체固滯형명刑名공리功利의 익힘과 훈고訓詁사장詞章과 같은 것이 이것이다.
배우는 자가 천루淺陋하고 고체固滯한 데로 들어가지 않으면 반드시 공적空寂허무虛無로 들어간다.
17-25 선생先生이 나아가서는 장차 이 인민人民을 깨우치고 물러나서는 장차 책에 밝히려 하셨는데, 불행히도 일찍 세상을 떠나 모두 미치지 못하였다.
변석辨析하기를 정미精微하게 한 것이 다소 세상에 나와 있으니, 이는 배운 자들이 전한 것일 뿐이다.
이상의 일절一節를 배운 본말本末이단異端을 물리치고 인심人心을 바로잡은 대략을 말하였다.
17-26 선생先生문하門下에 배운 자가 많았다.
선생先生의 말씀은 평이平易하여 알기가 쉬워서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가 모두 유익함을 얻었으니, 여럿이 하수河水에서 물을 마심에 각각 그 을 채우는 것과 같다.
선생先生은 사람을 가르치실 적에 치지致知로부터 지지知止에 이르며, 성의誠意로부터 평천하平天下에 이르고, 쇄소응대灑掃應對로부터 궁리진성窮理盡性에 이르러 차근차근 순서가 있었다.
세상의 배우는 자들이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데로 나아가며, 낮은 데에 처하여 높은 것을 엿본다.
이 때문에 가볍게 스스로 큰 체하나 마침내 얻음이 없음을 병통으로 여기셨다.
일절一節은 사람을 가르치는 방도가 본말本末이 구비되어 순서順序를 따라 점점 나아갔으나, 행여 배우는 자들이 비근卑近한 것을 싫어하고 고원高遠한 것을 힘써서 가볍게 스스로 방사放肆하여 실제로 얻음이 없을까 두려워한 것이다.
17-27 선생先生인물人物을 접할 적에 분별하였으나 간격이 없었고
시비是非가 비록 분명하나 또한 끊지 않았다.注+살펴보건대 비록 그 옳고 그름을 분별하나 남과 내가 간격이 없음을 말한 것이니, 내용內容은 잘못된 듯하다.
17-28 감동시켜 통하게 하였으며
감동하면 반드시 응한다.
17-29 사람을 가르치면 사람들이 쉽게 따르고
사람을 가르칠 적에 각각 그 자품資稟을 따라注+살펴보건대 내용內容은 잘못된 듯하다. 성실함이 말하기 이전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스스로 교화敎化되어 쉽게 따른 것이요, 또 단지 배우는 자만을 가리킨 것이 아니다.평이平易하고 명백明白하였으므로 쉽게 따른 것이다.
17-30 사람에게 노여워하되 사람들이 원망하지 않아서
마땅히 노여워할 바를 노여워하여 심기心氣화평和平하였으므로 원망하지 않은 것이다.
17-31 어진 이와 어리석은 이, 선인善人악인惡人이 모두 그 마음을 얻어
사랑하고 공정하였으므로 모두 그 환심歡心을 얻은 것이다.
17-32 교활하고 속이는 자가 성의誠意를 바쳤고
사람을 대할 적에 성의誠意을 다하여 사람들이 차마 속이지 못하였다.
17-33 포악하고 거만한 자가 공손함을 지극히 하였으며
사람을 대할 적에 를 다하여 사람들이 차마 가 아닌 것을 가하지 못하였다.
17-34 풍도風度를 들은 자가 진실로 복종하였고
진실로 복종한다는 것은 진실하여 억지로 힘쓰는 것이 아니니, 풍도風度를 듣고 복종한다면 멀어도 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17-35 스러운 모습을 본 자들은 심취心醉하였으니
성대한 이 나타나는 바에 보는 자들이 지극히 함에 훈자薰炙되어 순주醇酒를 마신 듯하였다.
17-36 비록 소인小人들이 추향趨向이 다르다 하여 이해利害를 돌아보아 때로 배척을 가하였으나, 물러가 사사로이 있을 때를 살펴보면 선생先生군자君子라고 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선생先生은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을 의논(비판)하다가 부합하지 아니하여 마침내 배척을 받았으나, 당시에 용사用事하는 자들이 또한 말하기를 “백순伯淳충신忠信한 사람이다.” 하였으니, 그 말씀과 행실의 아름다움을 속일 수 없는 것이다.
○ 이상의 일절一節사물事物을 대하는 방도를 말하였다.
17-37 선생先生은 정사를 할 적에 을 너그러움으로 다스리고
스스로 새로워지는 길을 열어 주어 고치면 그친 것이다.
17-38 번거로움에 처해도 여유가 있으시어
요령要領을 얻고 또 이치에 순하기 때문이다.
17-39 법령法令이 번거롭고 치밀한 때를 당하였으나 일찍이 사람들을 따라 법조문法條文에 응하여 책임을 회피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모두 법령法令에 구애됨을 괴롭게 여겼으나 선생先生은 대처함에 여유가 있었으며, 사람들은 심히 어려운 것이라고 걱정하였으나 선생先生은 시원스럽게 시행하시어
법령法令이 준엄하고 치밀하였으나 선생先生은 일찍이 구차하게 명령에 응하는 일을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대처함에 방도가 있었으므로 구애됨을 보지 못하였고, 행함에 요령이 있었으므로 어려움을 보지 못하신 것이다.
[張伯行 註]법령法令은 사람을 얽어매기가 쉬우니, 하위下位에 있는 자가 자기 뜻대로 행할 수가 없어서 서로 이끌고서 허위 문서를 만들어 서로 책임을 도피할 뿐이다.
선생先生은 이치로 헤아리고 로 다투어 비록 법령法令이 번거롭고 치밀한 때를 당하였으나 일찍이 구차하게 남들을 따르지 않고 모두 대처함에 그 마땅함을 얻어서 거짓으로 꾸미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일찍이 스스로 말씀하기를 “직사職事를 교묘히 면할 수 없다.’ 하였다.
사람들은 법령法令에 구애받아 이 때문에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막힘이 많았으나 선생은 여유 있게 대처하여 법에 구애받지도 않고 또한 일찍이 법에 어긋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스스로 말씀하기를 ‘사람이 비록 다르다고 여겼으나 가리켜서 광인狂人이라 함에는 이르지 않았다.’ 하였으며, 사람들이 오직 법령法令을 걱정하여 이 때문에 천 가지로 어렵고 만 가지로 어려웠으나 오직 선생만은 패연沛然하여 헤쳐 나가서 일마다 종용從容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스스로 말씀하기를 ‘일명一命의 선비가 만일 물건을 사랑함에 마음을 둔다면 사람에 대하여 반드시 구제할 바가 있다.’ 하였으니, 이것을 일러 무사無事한 바를 행하는 자라 할 것이다.
17-40 비록 별안간에 위급할 때를 당하더라도 목소리와 얼굴빛을 움직이지 않으셨다.
이치에 대한 지식이 평소 밝고 뜻이 평소 정해져서이다.
17-41 감사監司들이 다투어 엄하게 다그치는 때를 당해서도 감사監司들이 선생先生을 대할 때에 모두 너그럽고 후하여 선생先生시설施設하는 즈음에 힘입은 바가 있었다.
충신忠信과 간곡함이 남을 감동시켰으므로 세상의 좋아함을 따르지 않고도 하는 바를 이룰 수 있었다.
17-42 선생先生이 행하신 강령綱領조목條目법도法度는 사람이 본받아서 할 수 있겠지만 인도하면 따르고 흥동興動시키면 화답和答하며 남에게 구하지 않아도 남이 하고 을 베풀지 않아도 백성들이 믿어줌에 이르러서는 사람들이 미칠 수 없었다.”
정령政令(정사와 법령)과 시설施設은 모방하여 행할 수 있으나, 인도하여 하고 믿어 감동함은 힘으로 이룰 수가 없다.
○ 이상의 일절一節정사政事하는 방도를 말하였다.



근사록집해(3)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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