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近思錄集解(2)

근사록집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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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 唐有天下 雖號治平이나 然亦有夷狄之風하야 三綱不正하야 無君臣父子夫婦注+朱子曰 唐太宗 以晉陽宮人으로 侍高祖하니 是致其父於必死之地 便無君臣父子夫婦之義니라하니 其原 始於太宗也
19-1 〈명도선생明道先生이 말씀하였다.〉
나라가 천하天下를 소유했을 적에 비록 잘 다스려지고 태평하다고 일컬어졌으나, 또한 이적夷狄풍습風習이 있어 삼강三綱이 바르지 못하여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윤리倫理가 없었으니, 注+주자朱子가 말씀하였다. “ 태종太宗진양궁晉陽宮에 있는 궁녀宮女에게 고조高祖를 모시고 자게 하였으니, 이는 그 아버지를 반드시 죽을 자리로 몰아넣은 것이니, 군신君臣부자父子부부夫婦가 없는 것이다.”
〔補註〕高祖 이연李淵나라 때 진양晉陽행궁行宮을 관장하는 이 되었는데, 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태종太宗은 부친에게 기병起兵할 것을 권하였으나 이를 따르지 않자, 이연李淵이 술 취한 틈을 타 나라 궁녀宮女를 시켜 모시고 자게 하였다. 황실皇室궁녀宮女를 범한 것은 대역죄大逆罪에 해당하므로 이연李淵은 어쩔 수 없이 기병起兵하여 나라를 세우게 되었다.
근원根原태종太宗에게서 비롯되었다.
故其後世子弟 皆不可止하야 使君不君, 臣不臣이라
그러므로 후세後世자제子弟들이 모두 그칠 수가 없어서 군주가 군주답지 못하고 신하가 신하답지 못하게 하였다.
故藩鎭不賓하고 權臣跋扈하야 陵夷有五代之亂하니라
그러므로 번진藩鎭이 복종하지 않고 권신權臣발호跋扈하여, 침체하여 오대五代의 혼란이 있게 된 것이다.
太宗 以智力劫持取天下하니 其於君臣父子之義 有虧하고 閨門之間 又有慙德하야 三綱 皆已不正이라
태종太宗이 지혜와 힘으로 겁박하여 천하天下를 취하였으니 군신간君臣間부자간父子間의리義理에 손상됨이 있었고, 규문閨門의 안에 또 부끄러운 일이 있어서 삼강三綱이 모두 이미 바르지 못하였다.
是以 後世子孫 氣習相傳하야 綱常陵夷而不可止
이 때문에 후세後世자손子孫기습氣習이 서로 전해져서 강상綱常(三綱五常)이 침체되어 그치게 할 수가 없었다.
玄宗 使肅宗으로 至靈武則自立稱帝하고 使永王璘注+唐史 上皇 命諸子하야 分摠節制한대 諫議大夫高適諫하야 以爲不可라호되 上皇不聽하고 以璘領四道節度都使하야 鎭江陵하다 璘召募勇士數萬人하고 以爲天下大亂 惟南方完富하니 宜據金陵하야 保有江表 如東晉故事라하다 上以高適爲淮南節度使하야 圖璘하니 江南採訪使皇甫詵 遣兵擒殺之하니라으로 使江南則反하니 君臣之道不正하야 遂使藩鎭披猖注+韻會 縱裂貌於外하고閹竪擅專于內하야 馴致五季之極亂也하니라
현종玄宗숙종肅宗으로 하여금 영무靈武에 이르게 하자 스스로 서서 황제皇帝라 칭하였고, 영왕永王 注+나라 역사책에 처음 상황上皇(玄宗)이 여러 아들에게 명하여 나누어 군대를 통제하게 하자, 간의대부諫議大夫 고적高適하여 “불가不可하다.” 하였으나 상황上皇은 듣지 않고 에게 사도절도도사四道節度都使를 겸하게 하여 강릉江陵에 주둔시켰다. 은 수만 명의 용사들을 불러 모으고는 생각하기를 ‘천하가 크게 혼란한데 오직 강남江南지방만이 완전하고 부유하니, 내 마땅히 금릉金陵을 점거하여 강동江東지방을 보유해서 옛날 동진東晉고사故事와 같이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상황上皇고적高適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로 삼아 을 도모하게 하였는데, 강남채방사江南採訪使황보선皇甫詵이 군대를 보내어 을 사로잡아 죽였다.使로 임명하여 강남江南에 보내자 반란하였으니, 군신간君臣間가 바르지 못하여 마침내 번진藩鎭들이 밖에서 날뛰고 注+운회韻會》에 “피창披猖은 풀어져 찢어진 모양이다.” 하였다.
〔補註〕피창披猖창피猖披와 같은 바, 옷을 입고 띠를 묶지 않아 바람에 펄럭이는 모양이라 한다. 우리말의 창피는 여기에서 와전된 것이라 한다.
閹竪(宦官)가 안에서 전횡專橫하여 점차 오계五季(五代)의 지극한 혼란을 이르게 하였다.
19-2 漢之治 過於唐하니 大綱正하고 萬目擧하고 本朝 大綱正注+沙溪曰 宋得國不義어늘 何以曰大綱正호되 萬目 亦未盡擧하니라
19-2 나라의 정치는 나라보다 나았으니, 나라는 대강大綱이 올바르고 나라는 만 가지 조목條目이 거행되었으며, 본조本朝(宋)는 대강大綱은 올바르나 注+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나라는 의롭지 않게 나라를 얻었는데, 어찌하여 대강大綱이 바르다고 말씀하였는가.”만 가지 조목條目이 또한 다 거행되지는 못하였다.”
大綱 謂綱常이라
대강大綱강상綱常을 이른다.
唐之治目 若世業注+沙溪曰 謂十分爲率하야 以二分爲世業하고 八分爲口分也 蓋每丁 有父母妻子者 給田百畝호되 內除二十畝하야 永爲己業하고 如無父母妻子者 其口分八十畝 歸官하니라, 若府兵注+按 唐史 唐置十二軍하고 分統關內諸府호되 皆取天星爲名이라 每軍 將副各一人 督以耕戰之務 由是 士馬精强하야 所向無敵하니라, 若租庸調注+按 唐史 歲輸粟二斛 謂之租 隨鄕所出하야 綾絹絁布 各二丈호되 輸綾絹絁者 綿三兩하고 輸布者 麻三斤 謂之調 用人之力호되 歲二十日하고 閏加二日하며 不役者 日爲絹三尺 謂之庸이라 有田則有租하고 有身則有庸하고 有戶則有調하니 粟也 調 賦也 韻會曰 庸 用也 勞也 用勞民力이라 故謂之庸也라하니라, 若省府注+按 唐初定官制 以太尉司徒司空爲三公하고 次尙書門下中書秘書殿中內侍爲六省이요 次御史臺 次太常至太府 爲九寺 次將作監이요 次國子學이요 次天策上將府 次左右衛 至左右領衛 爲十四衛하며 東宮 置三師三少詹事及兩坊三寺十率府하니라 其區畫法制 略放先王之遺意
나라의 정치하는 조목條目세업전世業田注+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십분十分을 비율로 삼아 이분二分세업전世業田으로 삼고 팔분八分구분전口分田으로 삼은 것이다. 매 마다 부모와 처자가 있는 자는 토지 백묘百畝를 주되 그 중에 20를 제하여 영원히 자기의 세업전世業田으로 삼고, 만일 부모와 처자가 없는 자는 구분전口分田 80를 관청에 돌려준다.”부병府兵, 注+살펴보건대 나라 역사책에 나라는 12을 설치하고 관내關內의 여러 를 나누어 통솔하였는데, 모두 하늘의 별을 따서 명칭을 삼았다. 매군每軍장군將軍부장副將 각각 한 사람이 농사짓고 전투하는 일을 감독하였다. 이 때문에 군사와 말이 정예롭고 강하여 향하는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었다.租庸調注+살펴보건대 나라 역사책에 해마다 곡식 2을 바치게 하였는데 이것을 라 하고, 지방地方의 토산물에 따라 를 각각 두 길씩 바치되 를 바치는 자는 솜 3을 내고 베를 바치는 자는 삼 3을 내게 하였는데 이것을 調라 하고, 사람(백성)의 힘을 쓰되 1년에 20일을 하고 윤달이 있는 해에는 이틀을 더하며, 부역을 하지 않는 자는 하루에 3을 내게 하였는데 이것을 이라 하였다. 토지土地가 있으면 가 있고 몸이 있으면 이 있고 가호家戶가 있으면 調가 있는 바, 는 곡식이고 調는 부역이다. 《운회韻會》에 “은 씀이고 수고로움이다.” 하였으니, 백성의 힘을 써서 수고롭게 하므로 이라 이른 것이다.성부省府注+살펴보건대 나라 초기에 관제官制를 정할 적에 태위太尉사도司徒사공司空삼공三公이라 하고, 그 다음은 상서성尙書省문하성門下省중서성中書省비서성秘書省전중성殿中省내시성內侍省육성六省이라 하고, 그 다음은 어사대御史臺이고, 그 다음은 태상太常으로부터 태부太府까지를 구시九寺라 하고, 그 다음은 장작감將作監이고, 그 다음은 국자학國子學이고, 그 다음은 천책상장부天策上將府이고, 그 다음은 좌우위左右衛로부터 좌우령위左右領衛에 이르기까지 십사위十四衛이다. 동궁東宮에는 삼사三師삼소三少첨사詹事양방兩坊삼사三寺십솔부十率府를 두었다.구획區劃하는 법제法制 같은 것이 대략 선왕先王이 남기신 뜻을 따랐다.
故亦足以維持天下하니라
그러므로 또한 천하天下유지維持한 것이다.

근사록집해(2) 책은 2019.04.23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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