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4-1 今且只將尊德性而道問學
注+中庸本註曰 尊者는 恭敬奉持之意요 德性者는 吾所受於天之正理라하니라爲心
하야 日自求
호되 於問學者
에 有所背否
아 於德性
에 有所懈否
아하라
此義亦是博文約禮, 下學上達
이니 以此警策一年
이면 安得不長
注+中庸曰 君子는 尊德性而道問學이라하니라 ○ 論語子罕篇曰 博我以文이요 約我以禮라하고 同憲問篇曰 不怨天하며 不尤人이요 下學而上達이라하니라이리오
由學問而惟恐背違하고 崇德性而惟恐懈怠하야 日以此自省하야 積之歲月이면 則內外兼進矣리라
尊德性
은 則是約禮上達之事
요 道問學
은 則是博文下學之事
注+按 葉氏는 以尊德性爲上達하고 道問學爲下學이라 然尊德性中에도 亦有下學上達하니 操存은 是下學이요 極高明은 是上達이라 道問學亦然하니 博學이 雖是下學이나 盡精微而道中庸도 亦是下學乎아니라
94-2 每日
에 須求多少爲益
이니 知所亡(無)
하며 改得少不善
注+欄外書曰 益字宜句絶이라 多少爲益은 指下文言이요 知所亡는 論語子夏語니 知字重看이라 亡者는 謂本體雖具나 而未察識者라注+論語註에 亡는 無也니 謂己之所未有라 按 退溪答栗谷曰 須求多少爲益知所亡하며 改得少不善은 此段文義果似未瑩이라 然其大義는 只如葉註之說이라 註中에 不知二字는 貼所亡字하니 乃論語日知其所亡之意也라 但其文嶢崎하야 令人難讀耳라 改得少不善은 謂有少不善이어든 輒改之也니 非欠一多字라하니라 栗谷은 釋求字 在善字下하야 與退溪釋으로 不同하니라이 此德性上之益
이며
學者日省其身
호되 所以曾(增)益其不知者何如
며 所以改治其不善
注+按 多少爲益之益은 卽德性上益이요 問學上益之益은 統言兩益字也라 知所亡者는 日知其所未知也니 此非德性上事요 乃學問上事也며 必日知所亡하야 而改得少不善이 乃屬德性上事矣라 緣葉氏以增益其不知와 改治其不善으로 分作兩脚說이라 故誤看此段文義者多하니 不可不辨이라 且葉氏增益其不知는 文字有病하니 益字下에 有知字라야 乃通이니라者何如
오하야 以是存心
이면 則德日新矣
리라
言每日에 旣以違背懈怠自警策하고 又須於德性問學上에 實得求益工夫라야 方爲有用이라
如吾心中에 有所未知어든 涵泳久而心體自瑩徹하야 便知其所亡하고 吾心中에 未能滿其本然之善이어든 卽是不善이니 磨礪深而不善亦漸少라
是謂改得少不善이니 此乃德性上之益而每日所當知者也라
94-3 讀書에 求義理하고 編書에 須理會有所歸著이요 勿徒寫過하며 又多識前言往行이 此問學上益也니
讀書者는 必窮其義理하고 不徒事章句訓詁之末하며 編書者는 必求其旨歸하고 不徒務博洽紀錄之功하며 多識前哲之言行하야 以廣所知하면 則學日進矣리라
[張伯行 註] 聖賢之書는 皆義理所寓니 不徒文辭而已라
讀聖賢書에 必講求其義理하야 了然心目이요 不僅佔畢字句之習이라
古人之書에 有關於日用倫常者를 吾欲採錄而編輯之면 則必理會其綱領條目과 先後次序하야 使有所歸著이요 勿雜亂湊集하고 汎然寫過하야 以資博洽而已라
又必多識前人之嘉言以廣其識하고 前人之善行以昭其鑑이니 此乃問學上之益而每日之所當知者也니라
94-4 勿使有俄頃閑度(渡)하야 逐日似此하면 三年에 庶幾有進이리라
君子之學
이 一有間斷
이면 則此心外馳
하야 德性日
하고 問學日廢矣
리라
94-1 〈
횡거선생橫渠先生이 말씀하였다.〉
“이제 우선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注+《중용中庸》의 본주本註에 “존尊은 공경하여 받들어 지킨다는 뜻이요, 덕성德性은 내가 하늘에서 받은 정리正理이다.” 하였다.만을 가지고 마음을 삼아 날마다 스스로 찾되
문학問學에 위배되는 바가 있는가,
덕성德性에 게으른 바가 있는가 하라.
이 뜻이 또한
박문博文‧
약례約禮요
하학下學‧
상달上達이니, 이것으로 일년동안 경계하고 채찍질한다면
학문學問이 어찌 진전되지 않겠는가.
注+《중용中庸》에 “군자는 덕성德性을 높이면서 문학問學으로 말미암는다.” 하였다.
○ 《논어論語》〈子罕篇〉에 “나를 문文으로써 넓히시고 나를 예禮로써 묶어 주셨다.” 하였으며, 같은 책 〈헌문편憲問篇〉에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사람을 탓하지 않고 아래로 사람의 일을 배워 위로 천리天理를 통달한다.” 하였다.
존尊은 높이고 공경히 잡는 뜻이요 도道는 말미암음이다.
학문學問으로 말미암되 행여 위배될까 두려워하고 덕성德性을 높이되 행여 게으를까 두려워하여, 날마다 이것으로써 스스로 살펴서 세월歲月이 쌓이면 내외內外가 겸하여 진전될 것이다.
존덕성尊德性은
약례約禮와
상달上達의 일이요,
도문학道問學은
박문博文과
하학下學의 일이다.
注+살펴보건대 섭씨葉氏는 존덕성尊德性을 상달上達로, 도문학道問學을 하학下學으로 삼았다. 그러나 존덕성尊德性 가운데에도 또한 하학下學과 상달上達이 있으니, 조존操存은 바로 하학下學이고 극고명極高明은 바로 상달上達이다. 도문학道問學 또한 그러하니, 박학博學이 비록 하학下學이나 정미함을 극진히 하고 중용中庸을 말미암는 것도 하학下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매일 모름지기
다소多少의 유익함을 구하여야 하니, 없는 바(알지 못하는 것)를 알며 조그마한
불선不善이라도 고치는 것
注+《난외서欄外書》에 말하였다. “익자益字에서 마땅히 구句를 떼어야 한다. 다소위익多少爲益은 아랫글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지소망知所亡는 《논어論語》에 있는 자하子夏의 말이니 지자知字를 중요하게 보아야 한다. 망亡라는 것은 본체에 비록 갖추어져 있으나 살펴 알지 못함을 이른다.” 注+《논어論語》의 주註에 “망亡는 없음이니, 자기가 아직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이른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퇴계退溪가 율곡栗谷에게 답한 글에 “‘수구다소위익須求多少爲益 지소망知所亡 개득소불선改得少不善’은 이 단락의 글뜻이 과연 분명치 못한 듯하다. 그러나 그 대의大義는 다만 섭씨葉氏 주註의 내용과 같을 뿐이다. 주註 가운데에 ‘부지不知’ 두 글자는 소망所亡라는 글자에 해당되니, 바로 《논어論語》에 ‘일지기소망日知其所亡’의 뜻이다. 다만 문장文章이 까다로워 사람으로 하여금 읽기가 어렵게 할 뿐이다. ‘개득소불선改得少不善’은 ‘작은 불선不善이라도 있으면 곧 고침’을 이른 것이니, 한 다자多字가 빠져 있는 것이 아니다.” 하였다. 율곡栗谷은 구자求字를 선자善字의 아래에 해석하여 퇴계退溪의 해석과 다르다.이것은
덕성상德性上의 유익함이며
배우는 자가 날마다 자기 몸을 살피되 알지 못하는 것을 더 앎이 어떠하며
불선不善을 고치고 다스림이
注+살펴보건대 다소위익多少爲益의 익益은 바로 덕성상德性上의 유익함이요, 문학상問學上 유익함의 익益은 두 익자益字를 통합하여 말씀한 것이다. ‘지소망知所亡’는 날마다 그 알지 못했던 것을 아는 것이니, 이는 덕성상德性上의 일이 아니고 바로 학문상學問上의 일이며, 반드시 날마다 없는 바를 알고 작은 불선不善이라도 고치는 것이 바로 덕성상德性上의 일에 속한다. 그런데 섭씨葉氏가 ‘증익기부지增益其不知’와 ‘개치기불선改治其不善’을 두 갈래로 나누어 해석하였기 때문에 사람들이 이 단락의 뜻을 잘못 풀이하는 자가 많으니, 분변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섭씨葉氏의 ‘증익기부지增益其不知’는 문자文字에 병통이 있으니, 익자益字 아래에 지자知字가 있어야 뜻이 비로소 통한다. 어떠한가 살펴서 이것을 마음속에 둔다면
덕德이 날로 새로워질 것이다.
[張伯行 註] 이 이하는 유익함을 구하는 공부를 보인 것이다.
매일 도리道理에 위배되는가 게으른가를 이미 스스로 경계하고, 또 모름지기 존덕성尊德性과 도문학道問學 상에서 실제로 유익함을 구하는 공부를 얻어야 비로소 유용하다.
만일 내마음 속에 알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오랫동안 함영涵泳하면 마음의 체體가 저절로 밝아져서 곧 알지 못하던 바를 알게 될 것이요, 내마음 속에 본연本然의 선善을 충만하게 하지 못하였으면 곧 이것이 불선不善이니, 갈고 닦기를 깊이 하면 불선不善함이 또한 점점 적어진다.
이것을 일러 적은 불선不善도 고친다고 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존덕성尊德性 상의 유익함으로서 매일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이다.
책을 읽을 적에 의리義理를 찾고, 책을 엮을 적에 모름지기 귀착歸着할 곳이 있음을 이해理解하고 한갓 써 내려가지 말며, 또 선철先哲들의 훌륭한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아는 것 이것은 문학상問學上에 유익함이니,
책을 읽는 자는 반드시 그 의리義理를 연구하고 한갓 장구章句와 훈고訓詁의 지엽적인 것을 일삼지 말며, 책을 엮는 자는 반드시 그 뜻의 귀결되는 바를 찾고 한갓 박흡博洽(박학)과 기록紀錄(기억)하는 공부功夫를 힘쓰지 말며, 선철先哲들의 훌륭한 말씀과 행실을 많이 알아서 아는 바를 넓힌다면 학문學問이 날로 진전될 것이다.
[張伯行 註]성현聖賢의 책은 모두 의리義理가 담겨져 있으니, 한갓 문장일 뿐만이 아니다.
성현聖賢의 책을 읽을 때에 반드시 그 의리義理를 강구講求하여 마음과 눈에 분명하게 해야 하고, 단지 자구字句를 읽어 익힐 뿐만이 아니다.
옛사람의 책 중에 일상생활하는 윤리倫理에 관계되는 것을 자신이 채록採錄하여 편집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그 강령綱領과 조목條目, 선후先後의 차례를 이해하여 귀착歸着하는 곳이 있게 할 것이요, 잡란雜亂하게 모으고 범연汎然히 기록해서 문견을 넓히고 지식을 흡족히 하는 데에 이용할 뿐이서는 안 된다.
또 반드시 옛사람의 훌륭한 말씀을 많이 기억하여 지식을 넓히고, 옛사람의 훌륭한 행실을 많이 알아 밝게 비추어 살필 것이니, 이것이 바로 도문학道問學 상의 유익함으로 매일 마땅히 알아야 할 것들이다.
잠시동안이라도 한가히 보내지 말아, 날마다 이와 같이 하면 3년이면 거의 진전됨이 있을 것이다.”
군자君子의 학문學問이 조금이라도 간단間斷함이 있으면 이 마음이 밖으로 달려서 덕성德性이 날로 무너지고 문학問學이 날로 폐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