蓋有是言則是理明
하고 無是言則天下之理有闕焉
하니 如彼
陶冶之器
를 一不制
면 則生人之道有不足矣
라
耒之首爲耜요 耜之柄爲耒며 範土曰陶요 鑄金曰冶라
蓋將發明天理하야 以覺斯民하시니 猶民生日用之具하야 不可闕也라
5-2 後之人
은 始執卷
이면 則以文章爲先
하야 平生所爲 動多於聖人
注+沙溪曰 動은 動輒之意라하나 然有之無所補
요 無之靡所闕
하니 乃無用之贅言也
라
不止贅而已라 旣不得其要면 則離眞失正하야 反害於道 必矣니라
後人은 徒志於爲文而不足以明理하니 則非徒無益而已라
5-3 來書所謂 欲使後人으로 見其不忘乎善은 此乃世人之私心也라
夫子疾沒世而名不稱焉者는 疾沒身無善可稱云爾요 非謂疾無名也라
名者
는 可以厲中人
이니 君子所存
은 非所汲汲
이니라注+朱長文書中云 欲使後人으로 見其不忘乎善이라하니라 ○ 論語衛靈公篇曰 君子는 疾沒世而名不稱焉이라하니라
5-1 이천선생伊川先生이 주장문朱長文에게 답한 편지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 말씀이 있으면 이 이치가 밝아지고 이 말씀이 없으면 천하天下의 이치가 빠진 부분이 있게 되니, 마치 저 뇌사耒耜(쟁기의 자루와 보습)와 도야陶冶의 기구를 한 번 만들지 않으면 생민生民의 도道가 부족함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러하니 성현聖賢께서 말씀을 비록 그만두려고 하시나 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포함하는 것이 천하天下의 이치를 다하면서도 또한 심히 요약되었다.
뇌耒의 머리를 보습이라 하고 보습의 자루를 뇌耒라 하며 흙으로 빚는 것을 도陶라 하고 쇠를 주조하는 것을 야冶라 한다.
성인聖人의 말씀은 본래 그만둘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차 천리天理를 발명하여 이 백성들을 깨우치려 하셨으니, 민생民生이 날로 쓰는 기구와 같아서 빠뜨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말씀이 적으면서도 이치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고, 또한 말을 많이 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5-2
후세後世 사람들은 처음 책을 잡으면
문장文章을 우선으로 여겨서 평생에 하는 바가 번번이
성인聖人보다 많으나
注+사계沙溪가 말씀하였다. “동動은 동첩動輒(언제나)의 뜻이다.”있어도 도움되는 바가 없고 없어도 부족한 바가 없으니, 바로 쓸데없는 군더더기의 말이다.
군더더기의 말일 뿐만 아니라 이미 요점을 얻지 못하였으면 진리眞理를 이반離叛하고 정도正道를 잃어서 도리어 도道를 해칠 것이 틀림없다.
후세 사람들은 한갓 문장文章을 짓는 데에 뜻을 두어 이치를 밝히지 못하니, 그렇다면 한갓 무익無益할 뿐만이 아니다.
그 근본을 얻지 못하면 간사함과 거짓에 빠짐을 면하지 못하니, 도리어 도道를 해치게 된다.
5-3 보내온 편지에 이른바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선행善行을 잊지 않음을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은 바로 후세 사람들의 사사로운 마음이다.
부자夫子(孔子)께서 종신토록 이름(명예)이 일컬어지지 않음을 싫어하셨던 것은 종신토록 칭찬할 만한 선행善行이 없음을 미워하셨을 뿐이요, 이름이 없음을 싫어하신 것이 아니다.
이름은
중인中人을 힘쓰게 할 수 있는 것이니,
군자君子가 마음에 두는 바는 급급해 하는 것이 아니다.”
注+주장문朱長文의 편지 가운데에 이르기를 “후인後人들로 하여금 선행善行을 잊지 않아야 함을 보게 하고자 한 것이다.” 하였다.
○ 《논어論語》〈衛靈公篇〉에 이르기를 “군자君子는 종신토록 이름이 일컬어지지(알려지지) 않음을 싫어한다.” 하였다.
군자君子는 배워서 자신을 위하니, 만일 남이 알아주기를 바란다면 이는 사심私心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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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천선생이 답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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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천선생이 답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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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천선생이 답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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