今年春暮
에 行
하야 明年夏
에 代者至
어든 復留備秋
라가 至過十一月而歸
하여 又
注+按 詩采薇章註에 中春下에 有至春暮三字하니라에 〈至
하고
春暮
에〉 遣次戍者
하야 每秋與冬初
에 兩番戍者 皆在疆圉
注+韻會에 垂(陲)也라하니 乃今之防秋
注+東陽許氏曰 宋遣戍之名이라也
니라
論采薇
注+益軒曰 案 采薇所謂玁狁은 今之所謂韃靼也라遣戍役
이니라
北狄이 畏暑耐寒하고 又秋氣折膠면 則弓弩可用이라 故秋冬에 易爲侵暴하니
古者戍邊之卒徒는 每閱再期而後還하니 再期는 兩周年也라
如今年春暮三月中行이면 明年夏에 代者方至戍所하나니 前之戍卒이 復留而未還하야 以備秋時之警이라가 至過十一月而歸還家하니 卻是再期라
又明年二月中春에 卽遣次番之戍者하야 如此週而復始하니 是는 每秋與冬二季에 初兩番戍卒이 皆在疆埸之上이라
蓋一番은 留以備秋하고 一番은 歸而在道하야 正値冬月하니 如此更番戒備는 乃與今之另設秋防者로 無異也라
所以然者는 秋風凜烈하야 弓弩可用이라 故北狄易侵하니 每留戍以防之然後에 無患也니라
8. 〈이천선생伊川先生이 말씀하였다.〉
“옛날에는 방수防戍(수자리 사는 일)하는 부역이 재기再期(2년)에 돌아왔는 바,
금년今年 늦봄에 가서
명년明年 여름에 교대하는 자가 현지에 도착하면 다시 머물러 가을을 대비하다가 11월이 지나서 돌아와
우명년又明年(2년째 되는 해)
중춘仲春注+살펴보건대 《시경詩經》〈채미장采薇章〉 주註에는 중춘中春 아래에 ‘지춘모至春暮’ 세 글자가 있다.에 집에 이르고,
모춘暮春에 다음
방수防戍하는 자를 보내어 언제나 가을과 겨울 초에는
양번兩番의
방수防戍하는 자가 모두 변방
注+《운회韻會》에 “어圉는 변방이다.” 하였다.에 있었으니, 바로 지금의
방추防秋注+동양허씨東陽許氏가 말하였다. “송宋나라 때 변경에 수자리를 보내는 것의 명칭이다.” 하였다.하는 방법이다.”
《
시경詩經》
채미편采薇篇의
방수防戍하는 부역을 보낸 일을 논한 것이다.
注+익헌益軒이 말하였다. “살펴보건대 〈채미편采薇篇〉의 이른바 험윤玁狁(험윤)은 지금에 말하는 달단韃靼(달단)이다.”
북적北狄은 더위를 두려워하고 추위를 잘 견디며, 또 가을에 기운이 서늘해져 아교풀이 굳어져서 꺾이면 활과 쇠뇌를 사용할 수 있으므로 가을과 겨울에 침략과 사나운 짓을 하기가 쉽다.
그러므로 언제나 머물러 방수防戍하여 막는 것이다.
[張伯行 註] 이는 옛날 변방에 방수防戍하는 법의 좋음을 나타낸 것이다.
옛날 변방에 방수防戍하는 병사들은 매번 재기再期를 넘긴 뒤에 돌아오니, 재기再期는 2주년周年이다.
예컨대 금년 모춘暮春 3월에 가면 명년明年 여름에 교대하는 자가 비로소 방수防戍하는 곳에 이르는데, 전에 방수防戍하던 병사가 다시 남아 돌아오지 않고서 가을철의 경계에 대비하다가 11월이 지나면 집으로 귀환하니, 이것이 재기再期이다.
그리고 우명년又明年 2월 중춘仲春에 곧 다음번의 방수防戍하는 자를 보내어서 이와 같이 돌고 돌아 다시 시작하니, 이는 매번 가을과 겨울 두 계절에 첫 번째와 두 번째에 수자리 사는 군사가 모두 강역疆埸(邊境)의 위에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 번番(上番하는 병사)은 남아서 가을을 대비하고, 한 번番은 돌아오는 도중에 있어서 바로 겨울철을 만나게 되니, 이와 같이 두 번番이 경계하고 대비하는 것은 바로 지금에 특별히 설치한 방추防秋와 다름이 없다.
이렇게 하는 까닭은 가을에는 바람이 차가워서 활과 쇠뇌를 쓸 수 있으므로 북쪽 오랑캐들이 쉽게 쳐들어오기 때문이니, 언제나 남아 방수防戍하여 이것을 방비한 연후에야 근심이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