夫止道는 貴乎得宜니 行止를 不能以時而定於一하야 其堅强如此하면 則處世乖戾하야 與物睽絶이라 其危甚矣니라
所貴於止者는 謂各得所宜止而無過與不及也니 苟不度時中하고 而一於限止焉하야 堅執强忍如此면 則違世絶物이라 危厲甚也니라
10-2 人之固止一隅하야 而擧世莫與宜者는 則艱蹇忿畏하야 焚撓其中이니 豈有安裕之理리오
拘固一隅以爲止하야 而擧世之大 至莫與之相宜者는 則身之所處 艱而多阻하고 蹇而多難이라
有所不平則忿하고 有所不得則畏하니 如火之將焚하고 如木之見撓하야 交逼於中이니 豈有安舒寬裕之理리오
本求靜也로되 而動反隨之하고 本求安也로되 而危益甚焉이라
夫心者는 一身視以爲止어늘 而不得其宜하야 遂至於此하니 可見得理則安이요 失禮則危라
10-1 간괘艮卦의 구삼효사九三爻辭에 “한계限界에 멈춤이다.
등뼈를 벌려놓음이니,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 하였는데, 〈이천선생伊川先生의〉 《역전易傳》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멈추는 도道는 마땅함을 얻음을 귀하게 여기니, 가고 멈춤을 때에 맞게 하지 못하고 한 가지에 고정되어 견고하고 강함이 이와 같으면 세상에 처함이 어그러져서 남과 다투고 끊기어서 그 위태로움이 심한 것이다.
인夤은 등심(등뼈)의 살이니, 이 또한 한 몸의 위아래의 한계限界이다.
구삼효九三爻가 내괘內卦의 위에 거하였으니, 실로 내內‧외外의 구분이다.
그러므로 상象을 취함이 모두 한계에 멈추는 뜻이 된다.
멈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각각 마땅히 멈출 곳을 얻어서 과過하거나 불급不及함이 없는 것이니, 만일 시중時中을 헤아리지 않고 한계限界에 그침에 한결같아서 굳게 고집하고 강하게 참음이 이와 같으면 세상과 어그러지고 남과 끊겨서 위태로움이 심한 것이다.
10-2 사람이 한 귀퉁이에 굳게 멈추어서 온 세상과 마땅하게 지내지 못하는 자는 어렵고 분노하고 두려워하여 마음을 태우고 동요할 것이니, 어찌 편안하고 넉넉할 리가 있겠는가.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운다.’는 것은 불안不安한 형세가 마음을 태움을 이른다.”
[張伯行 註] 인하여 위태로움이 마음을 태우는 이유를 취하여 극언極言한 것이다.
한쪽에 구애되고 고집하여 멈춰서 온 세상의 큰 것과 서로 마땅하게 하지 못함에 이르는 자는 몸의 처한 바가 어려워서 막힘이 많고 괴로워서 어려움이 많다.
불평하는 바가 있으면 분해 하고 얻지 못하는 바가 있으면 두려워하니, 불이 장차 타오르려는 것과 같고 나무가 흔들림을 당하는 것과 같아서 마음속에서 서로 핍박하게 되니, 어찌 편안하고 너그러울 이치가 있겠는가.
본래 고요함을 구하나 동함이 도리어 뒤따르고, 본래 편안함을 구하나 위태로움이 더욱 심하다.
여훈심厲薰心은 불안한 형세가 타올라 녹여서 근심하는 생각이 안에 답답함을 이른다.
마음이란 한 몸이 보고서 멈추는 것인데, 그 마땅함을 얻지 못하여 마침내 여기에 이르렀으니, 이치에 맞으면 편안하고 예禮를 잃으면 위태로움을 볼 수 있다.
마땅히 멈춰야 하고 마땅히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의 사이는 또한 이치를 따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