是時에 周室이 微弱하야 諸侯莫朝어늘 而齊獨朝之하니 天下以此로 益賢威王이러라
○ 威王
이 召卽墨
注+[釋義]本萊州邑이니 今膠州縣也라 括地志云 故卽墨城은 在今登州膠水縣南六十里라大夫
하야 語之曰
自子之居卽墨也로 毁言이 日至어늘 吾使人視卽墨하니
召阿
注+[釋義]杜預曰 濟北東阿는 是本齊之柯邑이라 齊桓公이 與魯會柯而盟이 卽此니 今爲祝阿라 括地志云 故城이 在今東平府東阿縣西南이라大夫
하야 語之曰 自子守阿
로 譽言
이 日至
어늘 吾使人視阿
하니
田野不闢
하고 人民貧餒
하고 昔日
에 趙攻鄄
注+[釋義]音絹이니 鄄城縣은 今屬濮州라호되 子不救
하고 衛取薛陵
호되 子不知
하니
於是에 群臣이 悚懼하야 莫敢飾非하고 務盡其情하니 齊國이 大治하야 彊於天下러라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주周나라에 와서 조회하였다.
이때 주周나라 왕실이 미약하여 제후들이 조회하는 자가 없었는데,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홀로 조회하니, 천하 사람들이 이 때문에 위왕威王을 더욱 어질게 여겼다.
제齊나라
위왕威王이
즉묵卽墨注+[釋義]즉묵卽墨은 본래 내주萊州의 고을이니, 지금의 교주현膠州縣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옛 즉묵성卽墨城은 지금의 등주登州 교수현膠水縣 남쪽 60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 大夫를 불러서 말하기를
“그대가 즉묵卽墨에 부임하면서부터 헐뜯는 말이 날로 이르므로 내가 사람을 시켜서 즉묵卽墨을 시찰하게 하였더니,
전야田野가 개간되고 인민人民이 넉넉(풍족)하며 관청官廳이 일이 없어서 동방東方이 편안하였으니,
이는 그대가 나의 좌우 신하를 섬겨 도움을 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고 그에게 만가萬家를 봉해 주었다.
아阿注+[釋義]두예杜預가 말하기를 “제수濟水의 북쪽 동아東阿는 바로 본래 제齊나라의 가읍柯邑이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이 노魯나라와 가柯 땅에서 만나 맹약盟約한 곳이 바로 여기이니, 지금에는 축아祝阿라 한다.” 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옛 성城이 지금의 동평부東平府 동아현東阿縣 서남쪽에 있다.” 하였다. 大夫를 불러서 말하기를 “그대가
아阿를 맡으면서부터 칭찬하는 말이 날로 이르므로 내가 사람을 시켜서
아阿를 시찰하게 하였더니,
전야田野가 개간되지 못하고
인민人民이 가난하고 굶주리며, 옛날에
조趙나라가
견鄄을 공격하였으나
注+[釋義]견鄄은 음이 견이니, 견성현鄄城縣은 지금 복주濮州에 속한다. 그대가 구원하지 않았고
위衛나라가
설릉薛陵을 점령하였으나 그대가 알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대가 많은 폐백幣帛으로 나의 좌우를 섬겨서 칭찬을 구하였기 때문이다.” 하고,
그날로 아대부阿大夫와 좌우 신하로서 일찍이 그를 칭찬했던 자들을 삶아 죽였다.
이에 여러 신하들이 두려워하여 감히 나쁜 것을 좋게 꾸미지 못하고 힘써 그 실정實情을 다하니, 제齊나라가 크게 다스려져서 천하에 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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