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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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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五年이라
태강太康 5년(갑진 284)
陳群 以吏部不能審覈天下之士라하야 故令郡國하야 各置中正하고 州置大中正하되 皆取本土之人 任朝廷官, 德充才盛者 爲之하야 使銓次注+[釋義]王氏曰 考其才(材)德而等第之 謂之銓次[通鑑要解]取本土之人 見任朝廷之官, 德充而才盛者 爲中正하야 使之銓次等級하야 爲九品也等級하야 以爲九品하야 有言行修著則升之하고 道義虧缺則降之어든
처음에 진군陳群이부吏部에서 천하의 선비들을 자세히 살피고 조사하지 못한다 하여 명령을 내려 군국郡國에는 각각 중정中正을 두고 에는 대중정大中正을 두게 하되, 모두 본토本土 사람 중에 조정의 관직을 맡고 있거나 이 충만하고 재주가 훌륭한 자를 중정中正대중정大中正으로 삼아 이들로 하여금 등급을 전형銓衡하여 차등을 매겨서注+[釋義]王氏가 말하였다. “재주와 덕을 상고하여 차등을 매기는 것을 전차銓次라고 이른다.” [通鑑要解]本土 사람 중에 현재 조정의 관직을 맡고 있거나 이 충만하고 재주가 훌륭한 자를 뽑아 중정中正으로 삼아서 그들로 하여금 등급을 전형銓衡하여 차등을 매기게 하여 구품九品을 만드는 것이다. 구품九品을 만들어, 말이 닦여지고 행실이 드러난 자가 있으면 승급陞級하고 도의道義에 부족하고 모자란 점이 있으면 강등降等하게 하였다.
吏部憑之하야 以補授百官이러니 行之浸久 中正 或非其人하야 奸敝日滋
그리고 이부吏部에서는 이에 의거하여 백관百官보임補任하고 임명하게 하였는데, 이를 시행한 지가 점점 오래되자 중정中正이 혹 적임자가 아니어서 간사한 폐단이 날로 불어났다.
劉毅上疏曰
이에 유의劉毅가 다음과 같이 상소하였다.
今立中正하야 定九品하니 高下任意하고 榮辱在手 操人主之威福하고 奪天朝之權勢하야 公無考校之負하고 私無告之忌하야 用心百態 營求萬端이라
“이제 중정中正을 세워 구품九品을 정하니, 높이고 낮추는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영화롭고 욕됨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어, 군주의 상벌을 주는 권한을 쥐고 천조天朝의 권세를 빼앗아서 공적公的으로는 고과考課할 때에 공정함을 잃는 것을 잘못이라 여기지 않고 사적私的으로는 남의 약점을 고자질하는 것을 꺼리지 않아서 마음 씀이 천태만상이고 이익을 도모하기를 만단萬端으로 합니다.
廉讓之風하고 爭訟之俗하니 竊爲聖朝恥之하노이다
그리하여 청렴하고 겸양하는 풍속이 없어지고 다투고 송사하는 풍속이 이루어지니, 성조聖朝를 위하여 부끄럽게 여깁니다.
蓋中正之設 於損政之道 有八하니 高下逐强弱하고 是非隨興衰하야 一人之身 旬日異狀하니 上品 無寒門하고 下品 無勢族이라
중정中正을 설치한 것이 정사하는 방도에 손해되는 점이 여덟 가지가 있으니, 등급을 높이고 낮출 때에 권세의 강약强弱을 따르며 옳고 그름을 가릴 때에 가문의 성쇠를 따라서 동일한 한 사람에 대해서 열흘 사이에 평가하는 내용이 달라지니, 상품上品에 오른 사람 치고 빈한한 가문이 없고 하품下品에 든 사람 치고 세력 있는 집안이 없습니다.
陛下賞善罰惡 無不裁之以法이어늘 獨置中正하야 委以一國之重하야 曾無賞罰之防하고 又禁人不得訴訟하야 使之縱橫任意하고 無所顧憚케하시니 諸受枉者 抱怨積直하야 不獲上聞이라
폐하께서 선한 자에게 상을 내리고 악한 자에게 벌을 주는 것을 법으로 제한하지 않음이 없으신데, 오직 중정中正을 두어 한 나라의 중임重任을 맡겨서 일찍이 상벌賞罰의 제한이 없고, 또 다른 사람들이 소송하지 못하도록 금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기들 마음대로 횡행하여 돌아보고 꺼리는 바가 없게 하시니, 억울한 일을 당한 자들이 원망을 품으며 직정直情(꾸밈없는 솔직한 심정)을 가슴속에 쌓아 두기만 하고 위로 아뢸 수가 없습니다.
由此論之컨대 職名中正이나 寔爲奸府 事名九品이나 而有八損注+[附註]高下逐强弱하고 是非隨興衰하야 上品無寒門하고 下品無勢族 一也 重其任而輕其人하야 使駁論橫於州里하고 嫌隙結於大臣 二也 立格九品者 才德有優劣하고 倫輩有首尾也어늘 而優劣易地하고 首尾倒錯 三也 中正無賞罰之防하고 又禁人訴訟하야 受枉者 不得上聞 四也 多者千數하니 或流徙異邦하면 面猶不識이어늘 而采譽於臺府하고 納毁於流言하야 任己則有不識之蔽하고 聽受則有彼此之偏 五也 凡求人才 以治民也어늘 今當官著效者 或附卑品하고 在官無績者 更獲高敍하야 長浮華而廢功績 六也 이어늘 今不狀其才之所宜하고 而但第爲九品하야 以品取人하고 或非才能之所長이로되 以狀取人하니 則爲本品之所限하야 徒結白論하야 品狀相妨 七也 所下 不彰其罪하고 所上 不列其善하야 各任愛憎하야 以植其私하니 天下之人 焉得不懈德行而銳人事리오 八也니라하니 古今之失 莫大於此
이것을 가지고 논하건대 관직은 중정中正이라고 이름하나 진실로 간사한 부고府庫가 되고, 일은 구품九品이라고 말하나 여덟 가지 손해되는 것注+[附註]여덟 가지 손해되는 것은, 등급을 높이고 낮출 때에 권세의 강약强弱을 따르고 옳고 그름을 가릴 때에 가문의 성쇠盛衰를 따라서 상품上品 치고 빈한한 가문이 없고 하품下品 치고 세력 있는 집안이 없는 것이 첫 번째요, 그 직임은 중하게 여기면서 그 직임을 맡을 사람은 가볍게 선발하여 반박하는 의론이 주리州里에 제멋대로 행해지고 대신大臣들 사이에 서로 꺼리고 싫어하는 틈이 생기게 하는 것이 두 번째요, 구품九品의 격식을 세운 것은 재주와 덕에 우열優劣의 구분이 있고 동류同類들 사이에 고하高下의 구별이 있어서인데 우열優劣이 뒤바뀌고 고하高下가 전도되는 것이 세 번째요, 중정中正은 상벌의 제한이 없으며 다른 사람들이 소송하지 못하도록 금하여 억울한 일을 당한 자가 위로 아뢸 수 없는 것이 네 번째요, 일국一國의 선비가 많을 경우에는 천 명으로 헤아려지니 혹 다른 고을로 옮겨 가면 얼굴도 알지 못하는데 중정中正대부臺府에서 칭찬하는 말을 듣고 뽑으며 유언비어 중에 그의 잘못을 채택해서 자신의 견해만 믿으면 사람을 알지 못하는 폐단이 있고 남의 견해를 받아들이면 피차의 편벽됨이 있는 것이 다섯 번째요, 무릇 인재를 구함은 백성들을 다스리기 위해서인데 지금 관직을 맡아서 성적이 현저한 자는 혹 낮은 등급에 있고 관직에 있으면서 공적이 없는 자는 도리어 높은 등급을 얻어서 겉으로만 화려함을 조장하고 실제의 공적을 폐지하는 것이 여섯 번째요, 모든 관직은 일이 똑같지 않고 사람은 재능이 똑같지 않은데 이제 그 재주의 마땅한 바를 살피지 않고 다만 등급을 구품九品으로 만들어 등급에 따라 사람을 취하고 혹은 재능이 뛰어난 분야가 아닌데도 평가한 말만 가지고 사람을 취하니, 본래의 등급에 제한되어 한갓 근거 없는 빈 말을 늘어놓아 등급과 평가한 말이 서로 방해가 되는 것이 일곱 번째요, 등급을 강등한 사람은 그들의 죄를 드러내지 않고 등급을 올려 준 사람은 그들의 선을 나열하지 않아서 각각 자기의 사랑하고 미워하는 감정에 따라 사당私黨을 심으니 천하 사람들이 어찌 덕행德行을 닦기를 게을리 하고 인사人事만을 예의주시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여덟 번째이다. 이 있으니, 고금古今의 잘못이 이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愚臣 以爲宜罷中正하고 除九品하야 棄魏氏之敝法하고 更立一代之美制하노이다
어리석은 은 생각건대 마땅히 중정中正을 파하고 구품九品을 없애어 나라의 나쁜 법을 버리고 다시 한 왕조의 아름다운 제도를 세워야 합니다.”
帝雖善其言이나 而終不能改也러라
황제가 비록 그 말을 옳게 여겼으나 끝내 고치지 못하였다.
○ 初 帝以才人謝玖 賜太子하야 生皇孫하다
○ 처음에 황제가 재인才人 사구謝玖태자太子에게 내려 황손皇孫 사마휼司馬遹을 낳았다.
宮中 嘗夜失火어늘 帝登樓望之할새
궁궐 안에서 일찍이 밤중에 실화로 불이 났는데, 황제가 누대에 올라 이를 바라보았다.
遹年五歲 牽帝裾하야 入闇中하고暮夜倉猝이라 宜備非常이니 不可令照見人主니이다
이때 사마휼司馬遹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황제의 소매를 끌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며 말하기를 “늦은 밤에 창졸간이어서 비상사태에 대비하여야 하니, 불빛이 비쳐 군주를 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帝由是奇之하야 嘗對群臣 稱遹似宣帝注+[頭註]司馬懿 追尊爲宣帝하니 天下咸歸仰之
황제가 이로 말미암아 기특하게 여겨 항상 신하들을 대할 때에 사마휼司馬遹선제宣帝注+[頭註]선제宣帝사마의司馬懿이니 추존追尊하여 선제宣帝라 하였다. 와 유사하다고 일컬으니, 천하 사람들이 모두 귀복歸服하고 우러렀다.
帝知太子不才 然恃遹明慧
황제는 태자太子가 재주가 없음을 알았으나 사마휼司馬遹의 지혜로움을 믿었다.
無廢立之心이러라
그러므로 태자를 폐립廢立할 마음이 없었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司馬氏 經營大業하야 把握政權 已逾數世
사마씨司馬氏대업大業을 경영하여 정권政權을 장악한 지 이미 여러 대를 지났다.
至武帝得國하고 又能平吳하야 以一天下러니 曾不數年 紀綱板蕩하고 宗廟丘墟하니 其故 何哉
무제武帝(司馬炎)에 이르러 나라를 얻고 또 나라를 평정하여 천하天下를 통일하였는데, 일찍이 몇 년이 못 되어 기강紀綱이 어지러워지고 종묘宗廟가 폐허가 되었으니, 그 까닭은 어째서인가?
蓋自古有天下之君 未有無功德於民而能享國長久者
예로부터 천하天下를 소유한 군주가 백성들에게 공덕功德이 없으면서 나라를 장구하게 누린 자는 있지 않았다.
司馬懿 以陰賊狡險으로 禍人之國하고 而昭, 師 又以廢弑不道 取人之國하고 武帝承平하야 又無遠略하야 荒耽酒色하고 保養奸回하야 風俗尙浮虛하고 士夫賊名檢하야
사마의司馬懿는 음험하고 교활함으로 남의 나라를 에 빠지게 하였고, 사마소司馬昭사마사司馬師는 또 폐위하고 시해하는 무도함으로 남의 나라를 탈취하였으며, 무제武帝는 태평한 때를 이었고 또 원대한 계책이 없어서 주색酒色에 빠지고 간신을 보호하고 길러서 풍속風俗부허浮虛함을 숭상하고 사대부들이 명검名檢(禮法)을 해쳤다.
廉恥道喪하고 賄賂公行하야 罪積數世而功德不及於民하니 欲保邦而長世 得乎
그리하여 염치廉恥가 상실되고 뇌물이 공공연히 행해져 가 몇 대에 걸쳐 누적되고 공덕功德이 백성들에게 미치지 못하였으니, 국가를 보존하여 오래가고자 하나 될 수 있었겠는가.”
역주
역주1 : 알
역주2 一國之士 : 漢나라 초기에는 封建制와 郡縣制를 모두 취하여 천하를 郡과 國으로 나누었는 바, 郡은 中央에 속하고 國은 王과 侯를 봉하였다. 여기의 國은 지방 행정 단위를 가리키는 바, 이는 南北朝 시대까지 유지되었다.
역주3 凡官不同人 事不同能 : 《晉書》 〈劉毅傳〉에는 “凡官不同事 人不同能”으로 되어 있는 바, 역문은 이에 의거하여 해석하였다.
역주4 : 율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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