隋主問取陳之策於高熲한대 對曰 江北은 地寒하야 田收差晩하고 江南은 水田早熟하니
量彼收(獲)[穫]之際하야 微徵士馬하야 聲言掩襲이면 彼必屯兵守禦하리니 足得廢其農時요
彼旣聚兵이어든 我便解甲하야 再三若此면 彼以爲常하야 後更集兵이라도 彼必不信하리니
猶豫
注+[附註]猶는 獸名이니 性多疑하야 聞有聲則登木하야 下上不一이라 故로 不決曰猶豫라 又猶는 犬子也니 人將犬行에 犬好豫在人前하야 待人이라가 又來迎候라 故謂不決曰猶豫라之頃
에 我乃濟師
하야 登陸而戰
이면 兵氣益倍
하리이다
又江南
은 土薄
하야 舍多茅竹
하고 所有儲積
이 皆非地
注+[頭註]窖는 地藏也라니
密遣行人하야 因風縱火하고 待彼修立하야 復更燒之면 不出數年에 自可財力俱盡하리이다
於是
에 楊素, 賀若弼及高勵, 崔仲方
注+[頭註]賀若弼은 吳州總管이요, 高勵는 光州刺史요, 崔仲方은 虢州刺史라等
이 爭獻平江南之策
注+[通鑑要解]晉州刺史皇甫績이 言陳有三可滅하니 大可呑小 一也요 以有道伐無道 二也요 納反臣蕭巖하야 於我有詞 三也라 陛下若命將出士인댄 臣願展絲髮之效하리이다 隋主勞而遣之也하니라이어늘
隋主謂高熲
注+[頭註]尙書右僕射라曰 我爲民父母
하야 豈可限
一衣帶水하야 아
甲子
에 隋出師
할새 命晉王廣
과 秦王俊
注+[頭註]皆文帝子니 廣은 卽煬帝라과 淸河公楊素
하야 皆爲行軍元帥
하야 與韓擒虎
注+[頭註]廬州總管이라, 賀若弼等
으로 率兵五十一萬
하니 東接滄海
하고 西距巴, 蜀
하며 旌旗舟楫
이 橫亘
注+[頭註]亘은 竟也요 又延袤也라數千里
러라
○ 十二月
에 隋軍
이 臨江
하니 高熲
이 謂薛道衡
注+[頭註]行臺의 吏部郎中이라曰 今玆大擧
에 江東
을 必可克乎
아 道衡曰 克之
니라
常(嘗)聞郭璞
注+[頭註]東晉時善卜人이라有言
호되 江東分王三百年
에 復與中國合
이라하니 今此數將周
注+[通鑑要解]晉元帝南渡하야 卽王位於建康하니 歲在丁丑이요 是年이 歲戊申이니 凡二百七十二年이라하니 一也
요
主上
은 恭儉勤勞
하고 叔寶
注+[頭註]陳後主名이라는 荒淫驕侈
하니 二也
요
國之安危는 在所寄任이어늘 彼以江(摠)[總]爲相하고 唯事詩酒하니 三也요
我는 有道而大하고 彼는 無德而小하며 量其甲士컨대 不過十萬하니
西自巫峽으로 東至滄海에 分之則勢懸而力弱하고 聚之則守此而失彼니 四也라
○ 陳主從容謂侍臣曰 王氣在此
注+[頭註]王은 去聲이니 興也라하야 하고 호되 無不摧敗
어늘 彼
는 何爲者邪
아
孔範
注+[頭註]都官尙書라曰 長江天塹
이 하니 今日虜軍
이 豈能飛渡邪
잇가 帝笑以爲然
이라
故
로 不爲深備
하고 奏伎
注+[頭註]伎는 女樂也라, 縱酒, 賦詩
를 不輟
이러라
무신(588) - 진陳나라 정명禎明 2년이고, 수隋나라 개황開皇 8년이다. -
수주隋主가 진陳나라를 취할 계책을 고경高熲에게 묻자, 대답하기를 “강북江北은 지역이 추워서 밭에 심어 수확하는 것이 다소 늦고 강남江南은 논에 심어 수확하는 것이 일찍 성숙하니,
저들이 수확할 시기를 헤아려서 군사와 말을 약간 징집하여 강남江南을 습격하려 한다고 소문을 내면 저들은 반드시 병력을 주둔시켜 방어할 것이니, 충분히 저들의 추수할 시기를 놓치게 할 수 있습니다.
저들이 이미 병력을 모으고 난 뒤에 우리가 곧 갑옷을 벗고 군대를 해산하여 이렇게 하기를 두세 번 하면 저들은 이것을 일상적인 일로 여겨서 이후로는 우리가 다시 병력을 모으더라도 저들은 반드시 믿지 않을 것입니다.
저들이 망설이고 결정하지 못할
注+[附註]유猶는 짐승의 이름이니, 성품이 의심이 많아서 소리가 들리면 나무 위로 올라가서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여러 번 한다. 그러므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유예猶豫라 한다. 또 유猶는 개의 새끼이니, 사람이 개를 데리고 길을 갈 때에 개가 사람보다 앞서 가서 사람을 기다리다가 또다시 사람 앞으로 와서 맞이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므로 결정하지 못하는 것을 일러 유예猶豫라 한다. 때에 우리가 마침내 군대를
도강渡江시켜 육지에 올라가 싸우게 하면 우리 병사들의 사기가 더욱
배가倍加될 것입니다.
또
강남江南은 지대가
저습低濕해서 띠풀과 대나무로 지은 집이 많고 소유하고 있는 저축을 모두 땅의 움
注+[頭註]교窖는 땅속의 창고이다. 속에 보관하지 않으니,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바람을 타고 불을 놓아 저들의 곡식 창고를 불태운 다음 저들이 수리하고 다시 세우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불을 놓아 태운다면 몇 년이 못 되어 저들의 재물과 힘이 모두 고갈될 것입니다.” 하였다.
수주隋主가 그 계책을 따르니, 진陳나라 사람들이 비로소 곤궁해졌다.
이에
양소楊素‧
하약필賀若弼‧
고려高勵‧
최중방崔仲方注+[頭註]楊素……崔仲方:하약필賀若弼은 오주총관吳州總管이고, 고려高勵는 광주자사光州刺史이고, 최중방崔仲方은 괵주자사虢州刺史였다. 등이 다투어
강남江南을 평정할 계책
注+[通鑑要解]진주자사晉州刺史 황보적皇甫績이 말하기를 “진陳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세 가지 이유가 있으니, 대국大國으로서 소국小國을 병탄한 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유도有道함으로써 무도無道함을 토벌한 것이 두 번째 이유이고, 진陳나라가 우리를 배반한 소암蕭巖을 받아들여 우리에게 군대를 출동할 명분이 있는 것이 세 번째 이유입니다. 폐하께서 만일 장수에게 명하여 군대를 출동시키신다면 신臣은 미력이나마 바치기를 원합니다.” 하였다. 수주隋主가 그를 위로하고 보내었다. 을 올렸다.
수주隋主가
고경高熲注+[頭註]고경高熲은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이다. 에게 이르기를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어찌 옷의 띠처럼 작은 물줄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남江南의 백성들을 구원하지 않겠는가.” 하였다.
갑자일甲子日(10월 28일)에
수隋나라가 군대를 출동하여
진陳나라를 토벌할 적에
진왕晉王 양광楊廣(煬帝)과
진왕秦王 양준楊俊注+[頭註]진왕晉王 양광楊廣과 진왕秦王 양준楊俊은 모두 문제文帝의 아들이니, 양광楊廣은 바로 양제煬帝이다. 과
청하공淸河公 양소楊素을 임명하여 모두
행군원수行軍元帥로 삼아
한금호韓擒虎注+[頭註]한금호韓擒虎는 여주총관廬州總管이다. ‧
하약필賀若弼 등과 함께 51만의 병력을 거느리게 하니, 동쪽으로는
창해滄海에 닿고 서쪽으로는
파巴‧
촉蜀에 이르렀으며
정기旌旗와
주즙舟楫이 수천 리에 걸쳐 뻗쳤다.
注+[頭註]긍亘은 마침이요, 또 뻗어 나감이다.
○ 12월에
수군隋軍이 강가에 임하니
고경高熲이
설도형薛道衡注+[頭註]설도형薛道衡은 행대行臺의 이부낭중吏部郎中이다. 에게 이르기를 “이번에 대거 출병하여
진陳나라를 토벌함에
강동江東을 반드시 이길 수 있겠는가?” 하니,
설도형薛道衡이 대답하기를 “이길 수 있습니다.
제가 일찍이 들으니
곽박郭璞注+[頭註]곽박郭璞은 동진東晉 때 점을 잘 쳤던 사람이다. 이 말하기를 ‘
강동江東 지방이 나뉘어 왕 노릇한 지 300년 만에 다시
중원中原과 통일된다.’고 하였는데, 지금 300년의
주기週期가 다 차려 하니
注+[通鑑要解]진晉나라 원제元帝가 남쪽으로 양자강揚子江을 건너 건강建康에서 왕王에 즉위한 것이 정축년丁丑年(317)이고 이해가 무신년戊申年(588)이니, 모두 272년이다. 이것이 첫 번째 이유이고,
주상主上은 공손하고 검소하고 부지런한데
진숙보陳叔寶注+[頭註]숙보叔寶는 진陳나라 후주後主의 이름이다. 는 주색에 빠져 교만하고 사치하니 이것이 두 번째 이유이고,
국가의 안위安危는 인재를 등용하는 데에 달려 있는데 저들은 강총江總을 재상으로 삼아 오직 시 짓고 술 마시는 것을 일삼으니 이것이 세 번째 이유이고,
우리는 도道가 있으면서 나라가 크고 저들은 덕德이 없으면서 나라가 작으며 저들의 갑사甲士를 헤아려 보건대 십만에 불과하여
서쪽으로 무협巫峽으로부터 동쪽으로 창해滄海에 이르기까지 만약 군대를 나누어 수비하면 형세가 달리고 힘이 약하며 만약 군대를 집결시켜 수비하면 이곳을 지킬 경우 저곳을 잃을 것이니 이것이 네 번째 이유입니다.
형세상 우리 수隋나라가 석권席卷할 것이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였다.
고경高熲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그대가 성패의 이치를 분석한 것을 들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환히 깨닫게 한다.” 하였다.
○
진陳 후주後主가
근신近臣에게 조용히 이르기를 “
흥왕興旺注+[頭註]왕王은 거성去聲이니 흥왕함이다. 하는 기운이 이곳에 있어서
제齊나라 군대가 세 번 쳐들어오고
주周나라 군대가 두 번 쳐들어 왔으나 꺾이고 실패하지 않음이 없었는데, 저
수隋나라 군대는 무엇을 하려는 것인가?” 하니,
공범孔範注+[頭註]공범孔範은 도관상서都官尙書이다. 이 말하기를 “
장강長江의 천연적으로 이루어진 참호가 예로부터 남북을 가로막고 있으니, 오늘날 적군이 어찌
장강長江을 날아서 건너오겠습니까.” 하니,
후주後主가 웃고 옳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깊이 대비하지 않고
여악女樂이
진헌進獻하는
가무歌舞를 즐기며
注+[頭註]기伎는 여자女子 악사樂士이다. 신하들과 술을 마시고 시를 읊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상 진陳나라는 다섯 군주에 합하여 32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