匈奴遣使求合市
어늘 上
이 冀其交通
하야 不復爲寇
하야 許之
하고 遣越騎司馬
注+[頭註]越人內附以爲騎라 因以名官이라鄭衆
하야 使北匈奴
러니 單于欲令衆拜
어늘 衆
이 不爲屈
하니 單于恐而止
注+[頭註]單于怒하야 圍守하고 閉之不與水火하야 欲脅衆이어늘 衆拔劍自誓하니 單于恐而止하니라라
南匈奴知漢與北虜交使하고 內懷嫌怨欲畔하야 密使人詣北虜하야 令遣兵迎之어늘
鄭衆
이 出塞
하야 得其使人
하고 乃上言
호되 宜更置大將
하야 以防二虜交通
이라하니 由是
로 始置度遼營
注+[釋義]遼水在幽州之域하니 謂出師에 當度遼水也라하다
○ 初
에 帝聞西域有神
하니 其名曰佛
注+[附註]佛地論曰 覺은 覺一切種智니 後能開覺有情하야 如夢라 故名佛이라 又云 佛者는 漢言覺也니 將以覺悟群生也라 (晉)[普]曜經曰 〈佛은〉 兜率〈天〉이 降神於西域迦維國淨飯王宮하야 摩耶夫人이 剖右脅而生이라하니라이라
因遣使
注+[附註]明帝夜夢하니 金人長丈餘가 頭有光明하야 飛行殿庭이어늘 上問群臣한대 傅毅曰 西方有神하니 其名曰佛이라 其形은 長六尺이요 而黃金色이니이다 帝於是에 遣郞中蔡愔及秦京하니 往天竺求之하야 得佛經四十二章及釋伽立像하고 幷與沙門攝摩, 騰竺, 法蘭東還하다 愔之來也에 白馬負經이라하야 因立白馬寺於洛城雍門西하야 以處之하고 其經을 緘于石室蘭臺하고 (只)畫像於淸涼臺及顯節陵上하니라之天竺
注+[頭註]竺은 音竹이니 西域國名이라 在月支東南이니 去長安九千八百里라하야 求其道
하고 得其書及沙門
注+[頭註]漢言息也니 息意去欲而歸于無爲也니 或云桑門이라 唐謂之이요 秦譯云이요 又云善覺이라以來
하니 其書大抵以虛無爲宗
하고 貴慈悲不殺
하며
以爲人死에 精神이 不滅하야 隨復受形하야 生時所行善惡이 皆有報應이라
故로 所貴는 修練精神하야 以至爲佛이요 善爲宏闊勝大之言하야 以勸誘愚俗하며 精於其道者를 號曰沙門이라하니
於是
에 中國
이 始傳其術
하야 圖其形像
호되 而王公貴人
에 獨楚王英
注+[頭註]明帝兄이라이 最先好之
하더라
顯宗
이 果明帝王之道
런들 固不遣使求之
요 就
注+[頭註]猶言縱若이라使已至
라도 必能鑒是非邪正之辨
하야 焚其書
하고 歸其人
하야 逆閉其塗
하야 以防其爲天下後世之禍也
리라
佛者之言其道曰 直指人心하고 見性成佛이라하니 今夫人之所以異乎禽獸者는 爲有夫婦父子君臣也라
若以爲非性인댄 則佛固人耳니 不能舍是三者而有己也요 以爲性耶인댄 則何乃立敎에 使天下之人으로 去此三者以爲心也리오
故로 毒如蛇虎하고 微如蚊蝱이라도 皆所矜憫하야 割肉捐身以啖之하야 無所顧惜하니 誠亦廣矣大矣요 慈悲矣어니와
而獨於夫婦父子君臣엔 則必斷棄除舍하야 不得與蛇虎蚊蝱爲比하니 則慈悲廣大又安在哉오
흉노匈奴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화물貨物을
교역交易할 것을 청하자,
상上은 그들과 교통하여 다시는 침략해 오지 않기를 바라서
흉노匈奴의 요청을 허락하고
월기사마越騎司馬注+[頭註]월越나라 사람이 중국中國에 내부來附하여 기병騎兵이 되었으므로 인하여 이로써 관직을 이름한 것이다. 정중鄭衆을 보내
북흉노北匈奴에게 사신 가게 하였는데,
선우單于가
정중鄭衆에게 절을 하게 하려고 하였으나
정중鄭衆이 굽히지 않으니,
선우單于가 두려워하여 그만두었다.
注+[頭註]선우單于가 노하여 포위해 지키고 폐쇄하여 물과 불을 주지 않아 정중鄭衆을 협박하려 하였으나 정중鄭衆이 칼을 뽑아 스스로 죽어도 선우單于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니, 선우單于가 두려워하여 중지하였다.
이에 정중鄭衆이 출발하여 경사京師로 돌아왔다.
남흉노南匈奴는 한漢과 북흉노北匈奴가 사신을 교환한다는 것을 알고는 속으로 원한을 품고 배반하고자 하여 몰래 사람을 시켜 북흉노北匈奴에 이르러서 군대를 보내 자신을 맞이하도록 하였다.
정중鄭衆이 국경을 나가 그 사신을 잡고는 마침내
상언上言하기를 “마땅히 다시
대장大將을 두어 두 오랑캐의 교통을 막아야 합니다.” 하니, 이로 말미암아 처음으로
도료영度遼營注+[釋義]요수遼水가 유주幽州 지역에 있으니, 도료영度遼營이라 이름한 것은 출군할 때에 마땅히 요수遼水를 건너야 함을 이른 것이다. 을 설치하였다.
○ 처음에 황제가 들으니
서역西域에
신神이 있는데 이름을
불佛注+[附註]《불지론佛地論》에 이르기를 “각覺은 일체의 지혜를 깨닫는 것이니, 뒤에 정情이 있는 사람들을 개오開悟하고 각성覺醒하기를 마치 꿈을 깨는 것과 같이 하였으므로 불佛이라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또 이르기를 “불佛이라는 것은 한어漢語로 깨닫는다는 뜻이니, 장차 중생衆生들을 깨우치고자 하는 것이다.” 하였다. 《보요경普曜經》에 이르기를 “부처(釋迦牟尼)는 도솔천兜率天에서 서역西域의 가유국迦維國 정반왕淨飯王 궁중宮中으로 신神을 내려 보내 마야부인摩耶夫人의 배에 잉태되었다가 오른쪽 옆구리를 찢고 탄생했다.” 하였다. 이라 하였다.
인하여
사자使者를 보내어
注+[附註]명제明帝가 밤에 꿈을 꾸었는데, 키가 한 길이 넘는 금인金人이 머리에 광채가 있으면서 궁전 뜰을 날아다녔다. 상上이 여러 신하들에게 꿈을 묻자, 부의傅毅가 대답하기를 “서방西方에 신神이 있으니, 그 이름을 불佛이라 합니다. 그 모습은 신장이 6척이고 황금색입니다.” 하였다. 황제가 이에 낭중郞中 채음蔡愔과 진경秦京을 보내니, 이들이 천축국天竺國에 가서 부처를 구하여 불경佛經 42장章(《四十二章經》)과 석가여래釋伽如來의 입상立像을 얻고 사문沙門인 섭마攝摩, 등축騰竺, 법란法蘭 등과 함께 동쪽으로 돌아왔다. 채음蔡愔이 올 때에 백마白馬에 불경佛經을 싣고 왔다 하여 인하여 백마사白馬寺를 낙양성洛陽城 옹문雍門 서쪽에 세워 승려들을 거처하게 하였으며, 불경佛經을 석실石室 난대蘭臺에 봉함하고 청량대淸涼臺와 현릉顯陵‧절릉節陵의 위에 불상을 그렸다. 천축국天竺國注+[頭註]축竺은 음이 죽(축)이니,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이다. 월지국月支國의 동남쪽에 있으니, 장안長安과의 거리가 9천 8백 리이다. 에 가서 그
도道를 구하고 책과
사문沙門(僧侶)
注+[頭註]사문沙門은 한어漢語로 식息이니, 생각을 쉬고 욕심을 제거하여 무위無爲로 돌아가는 것인 바, 혹은 상문桑門이라 한다. 당唐나라는 근식勤息이라 하고, 요진구마라십姚秦鳩摩羅什은 근행勤行이라 번역하고 또 선각善覺이라 하였다. 을 얻어서 오게 하니, 그 책의 내용이 대체로 허무함을
종주宗主로 삼고
자비慈悲하여 죽이지 않음을 귀하게 여겼으며,
‘사람이 죽음에 정신은 없어지지 아니하여 다시 형체를 받고 태어나며, 살았을 때 행한 바의 선악善惡이 다 응보應報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귀하게 여기는 것은 정신을 수련하여 부처가 됨에 이르는 것이고, 굉장하고 너무 큰 말을 잘하여 어리석은 백성들을 권면하고 유혹하였으며 그 도道에 정통한 자를 사문沙門이라 이름하였다.
이때에
중국中國이 처음으로 그
학술學術을 전하여 그
형상形像을 그렸는데,
왕공王公과
귀인貴人 중에 오직
초왕楚王 영英注+[頭註]초왕楚王 영英은 명제明帝의 형이다. 이 가장 먼저 좋아하였다.
- 《후한서後漢書 서역전西域傳》에 나오나 내용이 대부분 같지 않다. -
“
현종顯宗이 과연
제왕帝王의
도리道理에 밝았더라면 진실로
사자使者를 보내어 부처를 구하지 않았을 것이요, 가령
注+[頭註]취就는 종약縱若(만약)이란 말과 같다. 사자使者가 이미 이르렀더라도 반드시
시비是非와
사정邪正의 분별을 살펴서 그 책을 불태우고 그 사람을 돌려보내어 미리 그 길을 막아서
천하天下와
후세後世에
화禍가 됨을 막았을 것이다.
불자佛者들이 그 도道를 말하기를 ‘사람의 마음을 곧바로 가리키고, 성性을 깨달아 부처가 된다.’고 하니, 지금 사람이 금수禽獸와 다른 까닭은 부부夫婦와 부자父子와 군신君臣의 도리道理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성性이 아니라고 한다면 부처는 진실로 사람이니 이 세 가지를 버리고 자기 몸이 있을 수 없을 것이요, 성性이라고 한다면 어찌 마침내 가르침을 세울 때에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이 세 가지를 버리는 것을 마음으로 삼게 한단 말인가?
또 광대하고 자비로워서 더불어 상대할 자가 없다고 스스로 자랑한다.
그러므로 독사와 호랑이처럼 해독을 끼치고 모기와 등에 같은 미물이라도 모두 불쌍히 여겨서 살을 베어 주고 자기 몸을 바쳐 저들에게 먹여서 돌아보고 아까워하는 바가 없으니, 진실로 또한 넓고 크고 자비롭다.
그러나 오직 부부간夫婦間과 부자간父子間과 군신간君臣間에 있어서는 반드시 끊어 버리고 놓아 버려서 독사와 범과 모기와 등에와 견줄 수가 없으니, 그렇다면 자비하고 광대함이 또 어디에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