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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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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丁未]三年이라
광계光啓 3년(정미 887)
以錢鏐注+[頭註] 音流 又音聊 爲杭州刺史하다
전류錢鏐注+[頭註]는 음이 류이고, 또 다른 음은 료이다. 항주자사杭州刺史로 삼았다.
○ 削田令孜官爵하야 長流端州하다
전령자田令孜의 관작을 삭탈하여 멀리 단주端州로 유배보냈다.
○ 八月 高騈注+[頭註]淮南節度使 部將楊行密注+[附註]高騈 聞秦宗權將寇淮南하고 遣其都將畢師鐸하야 出屯高郵하야 備宗權하다 嬖將呂用之用事하야 宿將 多爲所誅 師鐸 自以黃巢降將이라하야 常自危러니 及與用之有隙 謀誅用之하야 引兵至廣陵하니 用之力戰却之하다 師鐸 乞師於宣州觀察使秦彦하야 攻之城陷하니 用之亡走 師鐸 搜捕用之親黨하야 悉誅之하고 執騈幽之하다 秦彦 自稱淮南節度使하고 以師鐸行軍司馬하다 師鐸 攻廣陵也 用之詐爲高騈牒하야 署廬陵刺史楊行密行軍司馬하야 入援하다 高騈 爲諸道都統하니 朝廷 給空名告身이라 故得署之하니라 行密 帥諸軍하고 抵廣陵하니 秦彦 閉城自守하고 遣師鐸出戰이러니 師鐸 屢敗 秦彦 恐騈內應하야 殺騈하고 幷其親黨無遺하니 行密聞之하고 帥士卒縞素하고 向城大哭三日하니라 (陳)[秦]彦, 師鐸 與秦宗權之弟宗衡合이러니 宗衡副將孫儒 知宗權勢不能久하고 殺宗衡하야 傳首於朱全忠하고 又殺秦彦, 師鐸하니라 自稱淮南留後하다
8월에 고병高騈注+[頭註]고병高騈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이다. 부장部將 양행밀楊行密注+[附註]고병高騈진종권秦宗權이 장차 회남淮南 지방을 침략하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도장都將 필사탁畢師鐸을 보내 고우高郵로 나가 주둔하여 진종권秦宗權을 대비하게 하였다. 당시에 군주가 총애하는 장수인 여용지呂用之용사用事하여 노장老將들이 많이 죽임을 당하였다. 필사탁畢師鐸은 자신이 황소黃巢의 항복한 장수라 하여 항상 스스로 위태롭게 여겼는데, 여용지呂用之와 틈이 생기자 여용지呂用之를 죽일 것을 모의하여 병력을 이끌고 광릉廣陵에 이르니, 여용지呂用之가 강력히 싸워 퇴각시켰다. 필사탁畢師鐸선주관찰사宣州觀察使 진언秦彦에게 구원병을 청해서 여용지呂用之를 공격하여 성이 함락되니, 여용지呂用之가 도망하였다. 필사탁畢師鐸여용지呂用之의 친당들을 수색하여 체포해서 모두 죽이고 고병高騈을 사로잡아 유치하였다. 진언秦彦은 스스로 회남절도사淮南節度使라 칭하고 필사탁畢師鐸행군사마行軍司馬로 임명하였다.
처음에 필사탁畢師鐸광릉廣陵을 공격할 적에 여용지呂用之가 거짓으로 고병高騈을 만들어 여릉자사廬陵刺史 양행밀楊行密행군사마行軍司馬로 임명하여 들어와 구원하게 하였다. 고병高騈제도도통諸道都統이 되니, 조정에서 그에게 공명고신첩空名告身牒을 주었다. 그러므로 양행밀楊行密행군사마行軍司馬로 임명할 수 있었다. 양행밀楊行密제군諸軍을 거느리고 광릉廣陵에 이르니, 진언秦彦은 성문을 닫고 스스로 지키며 필사탁畢師鐸을 보내어 나가서 싸우게 하였는데, 필사탁畢師鐸이 여러 번 패하였다. 진언秦彦고병高騈내응內應할까 두려워하여 고병高騈을 죽이고 아울러 그의 친당들을 남김없이 모두 죽이니, 양행밀楊行密이 이 말을 듣고는 사졸들을 거느려 소복을 입고, 을 향해 3일 동안 크게 통곡하였다. 진언秦彦필사탁畢師鐸진종권秦宗權의 아우 진종형秦宗衡과 연합하였는데, 진종형秦宗衡부장副將손유孫儒진종권秦宗權의 세력이 오래 가지 못할 줄을 알고는 진종형秦宗衡을 죽이고 수급首級주전충朱全忠에게 전달하였으며, 또 진언秦彦필사탁畢師鐸을 살해하였다.
스스로 회남유후淮南留後라 칭하였다.
〈後爲吳하니라
- 뒤에 국호를 라 하였다. -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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