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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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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午]〈晉開運三年이라
병오(946) - 나라 개운開運 3년이다.
○ 是歲 凡四國, 三鎭이라
○ 이해에 모두 네 나라이고 세 이다. -
十一月 契丹主大擧入寇어늘 晉主以杜威爲上將注+[頭註]謂北面行營都招討使也 이러니 威與李守貞注+[頭註]以天平節度使 爲兵馬都監하니라 , 宋彦筠注+[頭註]以前威勝節度使 爲步軍左廂都指揮使하니라 謀降契丹하다
11월에 거란주契丹主가 크게 군대를 일으켜 들어와 침략하자, 진주晉主두위杜威상장上將으로 임명하였는데,注+[頭註]두위杜威상장上將으로 임명하였다는 것은 북면행영도초토사北面行營都招討使로 임명한 것을 이른다.두위杜威이수정李守貞,注+[頭註]이수정李守貞천평절도사天平節度使로서 병마도감兵馬都監이 되었다. 송언균宋彦筠注+[頭註]송언균宋彦筠 위승절도사威勝節度使로서 보군좌상도지휘사步軍左廂都指揮使가 되었다. 함께 거란契丹에 항복할 것을 모의하였다.
契丹主紿之曰 趙延壽威望素淺하야 恐不能帝中國이라
거란주契丹主가 이들을 속여 말하기를 “조연수趙延壽는 위엄과 인망이 본래 부족하여 중국中國의 황제가 되지 못할까 두렵다.
汝果降者 當以汝爲之호리라
너희들이 과연 항복한다면 마땅히 너를 황제로 세우겠다.” 하였다.
威喜하야 遂降하고 命軍士釋甲하니 軍士皆慟哭하야 聲振原野러라
두위杜威가 기뻐하여 마침내 항복하고 군사들에게 갑옷을 벗으라고 명하니, 군사들이 모두 통곡하여 통곡하는 소리가 언덕과 들판에 진동하였다.
張彦澤注+[頭註]彰德節度使 引兵爲前鋒하니라 倍道疾驅하야 夜度白馬津하야 未明 自封丘門으로 斬關而入하야 遷晉主於開封府하다
장언택張彦澤注+[頭註]장언택張彦澤창덕절도사彰德節度使이니, 군대를 이끌고 선봉이 되었다. 행군 속도를 배가하여 급히 달려와서 밤에 백마진白馬津을 건너 날이 밝기 전에 봉구문封丘門으로부터 관문을 부수고 성 안으로 들어와서 진주晉主개봉부開封府로 옮겼다.
○ 契丹 〈會同九年이라
거란契丹 - 회동會同 9년이다. -
歷年圖曰
역년도歷年圖》에 말하였다.
高祖注+[頭註]石敬塘이라 以地尊勢重으로 迫於猜嫌한대 親執臣子之禮하야 以事戎狄하고 賂之土地하야 籍其兵力하야 以取天下하니 羽翼未成이면 不可以高飛 國家未治 不可以應敵이라
고조高祖(石敬塘)는注+[頭註]고조高祖석경당石敬塘이다. 지위가 높고 권세가 중한 이유로 황제의 시기와 혐의에 핍박을 받자, 신하의 예를 친히 행하여 융적戎狄(거란)을 섬기고 토지를 바쳐 병력을 빌려서 이로써 천하를 차지하였으니, 우익羽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높이 날 수가 없고 국가가 다스려지지 않으면 적에 대응할 수가 없는 것이다.
齊王 捨桑維翰之深謀하고 信景延廣之狂策하야 內政不修하고 而外挑彊隣하야 使流民塗野草하고 胡騎汚宮闕하야 生爲降虜하고 死爲羈魄하니 非不幸也니라
제왕齊王(石重貴)은 상유한桑維翰의 깊은 계책을 버리고 경연광景延廣의 미친 계책을 믿고서 내정內政을 닦지 않고 밖으로 강한 이웃나라에 도전하여, 유리하는 백성들로 하여금 들풀에 피를 뿌리게 하고 오랑캐 기병으로 하여금 궁궐을 더럽히게 하여, 살아서는 항복한 포로가 되고 죽어서는 떠돌아다니는 혼백이 되었으니, 이는 불행이 아니라 당연한 것이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少主信景延廣之狂策하야 內政不修하고 外挑强胡
소주少主(石重貴)가 경연광景延廣의 미친 계책을 믿고서 안으로 정사를 닦지 않고 밖으로 강한 오랑캐에게 도전하였다.
自陽城一捷之後 顧謂國勢無虞라하야 驕奢益甚하야
그리하여 양성陽城에서 한 번 승리한 뒤로는 도리어 국세國勢가 근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여 교만하고 사치함이 더욱 심하였다.
四方貢獻 皆歸內府하며 廣置宮室하고 崇飾後庭하며 賞賜伶優 多寡無算하고 委任馮玉하야 倚勢弄權이라
그리하여 사방四方에서 공물貢物로 바친 것을 모두 내부內府로 돌리며, 궁실을 널리 건축하고 후정後庭을 성대하게 꾸미며, 광대들에게 을 줄 적에 많고 적음을 따지지 않고 외척인 풍옥馮玉에게 정사를 위임하여 권세를 믿고 농간하게 하였다.
當旱蝗水潦 國脈如線之時하야 方且今年 遣使括民穀하고 明年 遣使括民財하며 迨夫契丹入寇하야 境內皇皇이로되 猶且調鷹苑內하고 排沮人言하야 遂使橫尸蔽野하고 宗廟丘墟하니 跡其人謀하면 豈不幸哉
가뭄이 들고 황충蝗蟲이 발생하며 수해가 들어 국가의 명맥이 실낱 같은 때를 당하여, 도리어 금년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백성들의 곡식을 긁어모으고, 다음해에 사자使者를 보내어 백성들의 재물을 긁어모았으며, 거란이 쳐들어옴에 미쳐서 경내境內가 위급하였으나 오히려 상림원上林苑 안에서 매를 조련하고 사람들의 간언을 배척하고 막아서 마침내 시신이 들을 뒤덮고 종묘宗廟가 폐허가 되게 하였으니, 사람의 잘못된 계책을 살펴보면 어찌 불행이라 하겠는가.
夫以晉之立國 絶滅三綱하고 屛棄五常이라
나라가 건국할 때에 삼강三綱을 끊어 없애고 오상五常(五倫)을 물리쳐 버렸다.
報叔母爲妻하야 而夫婦亂矣 尊夷狄爲父하야 而父子亂矣 爲中國主하야 臣于契丹하야 而君臣亂矣
숙모叔母를 간음하고 아내로 삼아 부부夫婦의 윤리가 문란하였고, 이적夷狄을 높여 아버지라 칭하여 부자父子의 윤리가 혼란하였고, 중국中國의 군주로서 거란契丹에게 신하 노릇하여 군신君臣의 도리가 혼란해졌다.
三綱旣失 中國已淪胥爲夷하니 不待契丹主服赭袍坐崇元殿하야 令百官行入閤禮하고 而風聲氣習之來侵 已非一日矣
삼강三綱을 잃은 뒤에 중국中國이 이미 몰락하여 서로 오랑캐가 되었으니, 굳이 거란契丹의 군주가 붉은 도포를 입고 숭원전崇元殿에 앉아서 백관百官들로 하여금 입합례入閤禮를 행하게 하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오랑캐의 풍성風聲(風敎)과 기습氣習에 침입당한 것이 이미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다.
此蓋人道之大變이요 中國之巨禍
이는 인도人道의 큰 변고이고 중국中國의 큰 이다.
至使斯人으로 與禽獸雜處하야 而又離其害焉하니 此豈容以常理斷哉
그리하여 이 사람들로 하여금 금수禽獸와 함께 처하게 하여 또다시 그 폐해를 입게 하였으니, 이 어찌 떳떳한 이치로 판단할 수 있겠는가.”
右後晉 二主 共十一年이라
이상 후진後晉은 두 군주에 모두 11년이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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