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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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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庚午]十八年이라
개원開元 18년(경오 730)
四月 以裴光庭으로 兼吏部尙書하다
4월에 배광정裴光庭에게 이부상서吏部尙書를 겸하게 하였다.
先是 選司注官호되 惟視其人之能否하야不次超遷하고老於下位하며 有出身二十餘年 不得祿者하고
이에 앞서 관리를 선발하는 관서(吏部)에서 관원을 주의注擬할 때에 오직 그 사람의 능력 여부를 살펴보아, 혹은 관작의 차례를 뛰어넘어 파격적으로 승진하기도 하고 혹은 낮은 지위에서 늙어 심지어는 출신出身한 지 20여 년이 되도록 녹봉을 얻지 못한 자도 있었다.
又州縣 亦無等級하야 或自大入小하고 或初近後遠하야 皆無定制러니
또한 주현州縣에서도 등급이 없어 혹은 큰 고을에서 작은 고을로 들어가기도 하고, 혹은 처음에는 도성에서 가까운 곳에 관원이 되었다가 뒤에는 먼 곳에 조용調用되어 모두 일정한 제도가 없었다.
光庭 始奏하야循資格하야 各以罷官若干選而集注+[釋義]各以 謂下文官高者卑者也 罷官 謂罷劇就閒者也 若干 數未定之辭 不拘多少하고 爲一選聚集而銓注也[頭註] 又云 一歲爲一選하야 自一選으로 至十二選 視官品高下하야 以定其數호되 因其功過하야 而增損之하니라 호되
배광정裴光庭이 처음으로 아뢰어 순자격循資格을 사용해서 〈관직이 높은 자든 낮은 자든〉각각 파관罷官한 뒤에 전선銓選을 몇 번 거쳤는가에 따라 모아서 전선銓選하였는데,注+[釋義]각이各以는 아랫글의 ‘관직이 높은 자와 낮은 자’를 이르고, 파관罷官은 중요한 직책을 파하고 한직으로 나감을 이른다. 약간若干은 숫자가 정해지지 않은 말이니, 많고 적음에 구애하지 않고 한 번 선발하여 모아서 전주銓注하는 것이다. [頭註] 《신당서新唐書》 〈선거지選擧志〉에 또 이르기를 “1년에 한 번 전선銓選하여 1으로부터 12에 이르기까지 관품官品의 높고 낮음을 보아 숫자를 정하되, 그의 과실過失에 따라 늘리거나 줄인다.” 하였다.
官高者選少하고 卑者選多하야 無問能否하고 選滿則注하며 限年躡級하야 毋得踰越하고 非負譴者 皆有升無降하니
관직이 높은 자는 적게 뽑고 낮은 자는 많이 뽑아서 능력이 어떠한가에 관계없이 선발하는 기한이 차면 주의注擬하고, 자급資級마다 일정한 기한을 두어서 〈기한을 채운 뒤에야〉승진할 수 있고 〈기한을 채우지 않으면〉자급을 넘지 못하게 하였으며, 견책譴責을 받은 자가 아니면 모두 승진함만 있고 강등함은 없게 하니,
其庸愚沈滯者 皆喜하야 謂之聖書로되 而才俊之士 無不怨歎이라
용렬하고 어리석어 침체된 자들은 모두 기뻐하여 배광정裴光庭주장奏章을 ‘성서聖書’라고 말하였으나 재주가 있고 준걸스런 선비들은 원망하고 한탄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宋璟爭之호되 不能得이러라
송경宋璟이 이것을 간쟁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出選擧志及光庭傳〉
- 《신당서新唐書》의 〈선거지選擧志〉와 〈배광정전裴光庭傳〉에 나옴 -
○ 是歲 天下奏死罪 止二十四人이러라
이해에 천하에서 사형 죄를 아뢴 것이 단지 24명이었다.
〈出刑法志〉
- 《신당서新唐書 형법지刑法志》에 나옴 -
○ 是時 頗寵任宦官하야 往往爲三品將軍하야 門施注+[附註]雙枝爲戟이요 單枝爲戈 有衣曰棨이라 漢制 假棨戟以代斧鉞이라 隋志 三品以上 門皆列戟하고 唐制 勳至이면 則列戟以門하고 表以赤黑繒爲衣하니라 하니 奉使過諸州 官吏奉之 惟恐不及하야 所得遺賂 少者不減千緡이라
이때에 이 자못 환관들을 총애하고 신임해서 왕왕 삼품장군三品將軍으로 삼아 문에 계극棨戟을 설치하여 의장儀仗으로 삼으니,注+[附註]두 갈래 창을 이라 하고, 한 갈래 창을 라 하며, 비단으로 감싼 것을 라 한다. 나라 제도에는 계극棨戟을 빌려 부월斧鉞을 대신하였다. 《수서隋書》 〈병지兵志〉에 “3품 이상의 관원은 문앞에 모두 을 나열하였다.” 하였고, 나라 제도에 공훈功勳상주국上柱國에 이르면 문앞에 을 나열하고 겉을 적흑색 비단으로 감쌌다. 이들이 사명使命을 받들고 여러 를 지날 적에 관리들이 이들을 받들기를 행여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여, 이들이 얻은 뇌물이 적을 때에도 천민千緡을 밑돌지 않았다.
由是 京城第舍 郊畿田園參半注+[頭註] 倉含反이니 猶言太半也 參半者 或居三分之一하고 或居其半이라 皆宦官矣러라
이로 인해 경성京城의 저택과 교기郊畿전원田園은 태반이注+[頭註]창함반倉含反(참)이니, 태반이라는 말과 같다. 참반參半은 혹은 3분의 1을 차지하고 혹은 그 반을 차지한 것이다. 모두 환관의 것이 되었다.
楊思勗, 高力士 尤貴幸하야 思勗 屢將兵征討하고 力士 常居中侍衛하야 四方表奏 皆先呈力士然後 奏御하고 事小者 力士卽決之하니 勢傾內外
양사욱楊思勗고역사高力士가 그중에도 더욱 귀하고 총애를 받아서 양사욱楊思勗은 여러 번 군대를 거느리고 출정하여 토벌하였으며, 고역사高力士는 항상 중앙에 있으면서 시위侍衛하여 사방의 표문表文과 아뢰는 글을 다 고역사高力士에게 먼저 올린 뒤에 황제에게 아뢰었고 일 중에 작은 것은 고역사高力士가 바로 결정하니, 그의 권세가 조정 내외內外를 휩쓸었다.
이나 力士小心恭恪이라 終親任之하니라
그러나 고역사高力士는 조심하며 공손하고 삼갔으므로 이 끝내 그를 신임하였다.
〈出宦者傳〉
- 《신당서新唐書 환자전宦者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棨戟 : 계극
역주2 上柱國 : 唐나라에서 上柱國은 武官 勳爵 중에 가장 높은 등급이었으며 柱國이 그 다음이었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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