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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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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7)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戌]十年이라
개원開元 10년(임술 722)
諸衛府兵注+[附註]兵志 隋置十二衛러니 唐因之 曰翊衛, 曰驍衛, 曰武衛, 曰屯衛, 曰禦衛, 曰侯衛 皆爲左右焉하니 又見下乙(巳)[丑]年이라 凡天下十道 置府六百三十四하니 皆有名號 而關內二百(七)[六]十一 皆隷諸衛하니라 凡府有三等하니 兵千二百人爲上이요 千人爲中이요 八百人爲下 民年二十爲兵하고 六十而免하니 總名曰折衝府 見三十一卷丁壯注하니라從軍하야 六十而免하고 其家又不免雜徭하야 寖以貧弱하니 逃亡略盡이라
당나라 초기에 여러 부병府兵注+[附註]신당서新唐書》 〈병지兵志〉에 “나라가 12를 두었는데 나라가 그대로 인습하였다. 익위翊衛효위驍衛무위武衛둔위屯衛어위禦衛후위侯衛에 모두 좌‧우가 있어 12위니, 또 아래 을축년조乙丑年條(725)에 보인다. 천하의 10도에 634를 설치하니 모두 명칭이 있고, 관내關內의 261는 모두 여러 에 예속되었다. 모든 에는 3등급이 있으니, 병력 1200명을 상부上府라 하고 1000명을 중부中府라 하고 800명을 하부下府라 하였다. 남자는 20세가 되면 병졸이 되고 60세가 되면 병역을 면제받으니, 총칭하여 절충부折衝府라 한다.” 하였다. 31권의 ‘정장丁壯에 보인다. 성정成丁의 나이로부터 종군하여 60세에 이르러서야 병역을 면제받았고, 부병府兵의 집안 또한 각종 요역徭役을 면치 못하여 점점 빈약해지니, 각 부병府兵이 거의 다 도망하였다.
百姓 苦之어늘 張說 建議호되 請召募注+[頭註] 廣招也 以財招之曰募壯士하야 充宿衛注+[頭註]宿 守也하고 不問色役注+[頭註]謂諸色雜徭役也하야 優爲之制하면 逋逃者 必爭出應募하리이다 從之러니
백성들이 이것을 괴롭게 여겼는데, 장열張說이 건의하기를 “청컨대 장사壯士를 불러 모집하여注+[頭註]는 널리 부르는 것이니, 재물로써 부르는 것을 라 한다.숙위宿衛를 충당하고注+[頭註]宿은 지킴이다. 〈모집에 응한 뒤에는〉각종 명목의 요역을 부담하지 않게 하여注+[頭註]색역色役은 각종 명목의 요역徭役을 이른다. 우대하는 제도를 만든다면 도망간 자들이 반드시 다투어 나와 모집에 응할 것입니다.” 하니, 이 이 말을 따랐다.
旬月 得兵十三萬하야 分隷諸衛하야 番上下하니 兵農之分 自此始矣러라
열흘 동안에 13만의 병력을 얻어서 여러 에 나누어 예속시키고 상하군上下軍이 번갈아 가면서 을 서게 하니, 병농兵農의 구분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出張說傳及兵志〉
- 《신당서新唐書》의 〈장열전張說傳〉과 〈병지兵志〉에 나옴 -
范祖禹曰
범조우范祖禹가 말하였다.
唐制 諸衛府兵 有爲兵之利하고 而無養兵之害하야 하니 後世 最近古而便於國者也
나라 제도에 여러 부병제府兵制는 군사가 된 이로움은 있고 군사를 기른 폐해는 없어서 비록 정전법井田法을 시행하지 않았으나 군대가 오히려 백성에게 숨어 있었으니, 후세의 제도 중에 가장 옛 법에 가까워서 나라에 편리한 것이었다.
開元之時 其法寖하니 非其法不善이요 蓋人失之也
개원開元 때에 그 법이 점점 무너졌으니, 이는 그 법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요, 사람이 잘못하였기 때문이다.
張說 不究其所以하고 而輕變之하야 兵農旣分하니 其後 卒不能復古 則說之爲也
장열張說은 그 소이연所以然구명究明하지 않고 가볍게 이를 변경하여 병사와 농민이 이미 나누어졌으니, 그 뒤에 끝내 옛제도로 회복하지 못한 것은 장열張說이 이렇게 만든 것이다.
夫三代之法 出於聖人이로되 及其末流하야는 亦未嘗無弊하니 救之者 擧其偏以補其弊而已
삼대三代의 법이 성인聖人에게서 나왔으나 말류에 이르러서는 또한 일찍이 폐해가 없지 못하였으니, 이것을 바로잡는 자는 편벽된 것을 들어서 폐해를 보완하기만 하면 될 뿐이다.
若幷其法廢之하고 而以私意 爲一切苟簡之制 則先王之法 其存者幾何리오
만약 그 법까지 아울러 폐하고, 사사로운 생각으로 일체 구차하고 간략한 제도를 만든다면 선왕의 법 중에 남아 있는 것이 얼마나 되겠는가.
天下之務 常患於議臣之好改舊章이니 此所以多亂也니라
천하의 일은 항상 의론하는 신하들이 옛 법을 고치기를 좋아하는 것을 걱정하니, 이 때문에 혼란이 많은 것이다.”
역주
역주1 成丁 : 남자가 服役하는 연령에 이른 것을 말하는데, 연령의 규정은 시대마다 달랐다. 당나라 때에는 18세 이상의 남자를 成丁이라 하였다.
역주2 : 경
역주3 田不井而兵猶藏於民 : 평상시에는 농업에 종사하고, 有事時에는 군사가 됨을 말한다.
역주4 : 휴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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