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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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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巳]二年이라
2년(계사 B.C.208)
二世誚讓李斯호되 居三公位하야 如何令盜如此 李斯恐懼하야 乃阿二世意하야 以書對曰 賢主 必能行督責之術하야 以獨斷於上하나니
이세황제二世皇帝가 자주 이사李斯를 꾸짖기를 “삼공三公의 지위에 있으면서 어찌 도적들로 하여금 이렇게 성하게 하는가?” 하니, 이사李斯가 두려워하여 마침내 이세二世의 뜻에 아첨하여 글로써 대답하기를 “어진 군주는 반드시 독책督責하는 방법을 잘 행하여 홀로 위에서 결단합니다.
群臣百姓 救過不給이어니 何變之敢圖리잇고
이렇게 하면 여러 신하와 백성들이 자신의 과실을 구원하기에도 여유가 없으니, 어찌 변란을 감히 도모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二世說(悅)하야 於是 行督責益嚴하야 稅民深者 爲明吏하고 殺人衆者 爲忠臣이라하니 刑者相半於道하고 而死人 日成積於市
이세二世가 기뻐하여 이에 독책督責을 행하기를 더욱 엄하게 하여, 백성들에게 세금을 많이 거두는 자를 현명한 관리라 하고 사람을 죽이기를 많이 하는 자를 충신이라 하니, 형벌받은 자가 길 가는 사람 중에 반이나 되었고 죽은 사람이 날마다 시장에 쌓였다.
秦民 益駭懼思亂이러라
나라 백성들이 더욱 놀라고 두려워하여 반란할 것을 생각하였다.
〈出李斯傳〉
- 《사기史記 이사전李斯傳》에 나옴 -
○ 趙將李良 襲殺趙王이어늘 張耳, 陳餘注+[附註]張耳, 陳餘一體러니 而羽徙趙王歇하야 爲代王하고 分趙地하야 立張耳爲常山王하다 餘不得封하고하야 乃說齊王榮하야 擊常山하고 趙王하야 以趙爲捍蔽하니 齊王許之하고 遣兵助之하다 彭越 在鉅野하야 有衆萬餘호되 無所屬이러니 榮與越將軍印하야 使擊楚하고 收魏地하니 收散兵擊良하고 乃求趙後하야 立趙爲趙王하다
나라 장수 이량李良조왕趙王(武臣)을 습격하여 죽이자, 장이張耳진여陳餘注+[附註]장이張耳진여陳餘는 본래 한 몸이었는데, 항우項羽조왕趙王 을 옮겨 대왕代王으로 삼고 나라 땅을 나누어 장이張耳상산왕常山王으로 봉하였다. 진여陳餘는 봉함을 받지 못하고는 노해서 마침내 제왕齊王 전영田榮을 설득하여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를 공격하고 조왕趙王(趙歇)을 복위시켜 나라로써 나라의 울타리가 되어 줄 것을 청하니, 제왕齊王이 허락하고 군대를 보내어 그를 도왔다. 이때 팽월彭越거야鉅野에 있어 병력 만여 명을 보유하였으나 소속된 곳이 없었는데, 전영田榮팽월彭越에게 장군將軍을 주어 나라를 공격하게 하고 나라 땅을 거두게 하니, 나라는 곧 나라이다. 흩어진 병력을 수습하여 이량李良을 공격하고 마침내 나라 후손을 구하여 조헐趙歇을 세워 조왕趙王으로 삼았다.
○ 二世益遣司馬欣, 董翳하야 佐章邯擊盜하니 陳王 敗走어늘
이세二世사마흔司馬欣동예董翳를 더 보내어 장한章邯을 도와 도둑을 치게 하니, 진왕陳王(陳勝)이 패주하였다.
其御莊賈 殺陳王以降하다
그 마부인 장가莊賈진왕陳王을 죽이고 항복하였다.
起兵 於注+[釋義]音談이라 東海郯縣이니 古郯國也 今海寧州是이러니 聞陳王軍敗하고 乃立景駒爲楚王하다
땅 사람 진가秦嘉에서注+[釋義]은 음이 담이다. 동해군東海郡담현郯縣으로 옛날의 담국郯國이니, 지금의 해령주海寧州가 이곳이다. 기병起兵하였는데, 진왕陳王의 군대가 패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경구景駒를 세워 초왕楚王으로 삼았다.
景駒在留注+[釋義]地名이라 漢置留城縣이러니 今廢爲鎭하고 屬徐州彭城縣하니 在沛縣東南五十里 張良封留 卽此 沛公 往從之러니 張良 亦聚少年百餘人하야 道遇沛公注+[通鑑要解]沛公 以良爲廐將하니 廐將 卽掌馬之官名也하야 遂屬焉하다
경구景駒注+[釋義]는 지명이다. 나라 때 유성현留城縣을 두었는데, 지금 폐하여 을 만들고 서주徐州 팽성현彭城縣에 소속시키니, 패현沛縣의 동남쪽 50리 지점에 있다. 장량張良에 봉한 것이 바로 이곳이다. 땅에 있을 적에 패공沛公이 가서 따랐는데, 장량張良 또한 소년 100여 명을 모아 도중에서 패공沛公을 만나注+[通鑑要解]패공沛公장량張良구장廐將으로 삼으니, 구장廐將은 곧 말을 관장하는 관직명이다. 마침내 그에게 소속하였다.
以太公兵法注+[釋義]太公 姓姜이요 名牙 蓋牙(太)[本]是字 尙是名也 其先祖封呂하니 從其封姓이라 故曰呂尙이라 文王出獵而遇之하야 載與俱歸하야 立爲師하고 言 吾先君太公 望子久矣라하고 因號太公望하다 太公兵法 一帙三卷이라으로 說沛公하니 沛公 善之하야 常用其策이라
장량張良이 자주 태공太公병법兵法을 가지고注+[釋義]태공太公이고 이름이 이니, 아마도 는 본래 이고 이 이름인 듯하다. 그 선조先祖 땅에 봉해지니 그 봉지封地를 따랐기 때문에 여상呂尙이라 한 것이다. 문왕文王이 사냥을 나갔다가 여상呂尙을 만나 수레에 태우고 함께 돌아와 스승으로 삼고는 말하기를 “우리 선군先君태공太公(太王)이 그대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다.” 하고 인하여 태공망太公望이라고 이름하였다. 태공太公병법兵法은 1 3이다. 패공沛公을 설득하니, 패공沛公이 그를 좋게 여겨 항상 그의 계책을 따랐다.
爲他人言 皆不省하니 良曰 沛公 殆天授
장량張良이 다른 사람에게 계책을 말할 적에는 모두 거들떠보지 않으니,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패공沛公은 아마도 하늘이 내려 주신 듯하다.
遂從不去라하더라 〈出本傳〉
그러므로 마침내 따르고 떠나가지 않는 것이다.” 하였다. -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옴 -
○ 項梁 以八千人으로 渡江而西하다
항량項梁이 8천 명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다.
○ 黥布注+[頭註]布坐黥하야 論輸驪山이러니 亡之江中하야 爲群盜하다 番陽吳芮 甚得江湖心하야 其衆 已數千人이러니 芮乃以女妻하고 使將其兵擊秦하니라 六人也 姓英氏注+[釋義]夏紀 封皐陶之後於英, 六하니 以英布是此苗裔 正義曰 英 蓋蓼字 括地云 光州固始縣 春秋蓼國也 又志云 故六城 在安豐西南百三十二里
경포黥布注+[頭註]경포黥布자자刺字하는 죄에 걸려 논죄되어 여산驪山으로 보내졌는데, 도중에 도망하여 양자강揚子江의 섬으로 가서 도적떼가 되었다. 번양番陽오예吳芮강호江湖 지방의 인심을 크게 얻어 무리가 이미 수천 명이었는데, 오예吳芮가 마침내 딸을 경포黥布에게 시집보내고 그로 하여금 군대를 거느리고서 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자는 땅 사람이니, 영씨英氏이다.注+[釋義]사기史記》 〈하본기夏本紀〉에 고요皐陶의 후손을 에 봉하였다 하였으니, 영포英布는 바로 그 묘예苗裔(먼 후손)이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말하였다. “은 아마도 요자蓼字인 듯하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광주光州 고시현固始縣춘추시대春秋時代 요국蓼國이다.’ 하였고, 또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옛날 육성六城안풍安豐 서남쪽 132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
亡之江中하야 爲群盜러니 聞項梁渡淮하고 引兵屬焉하다
양자강揚子江의 섬 가운데로 도망하여 도둑떼가 되었는데, 항량項梁회수淮水를 건너왔다는 말을 듣고 병력을 인솔하여 그에게 속하였다.
○ 項梁 衆至六七萬人이라
항량項梁의 군대가 6, 7만 명에 이르렀다.
軍下邳하고 進擊秦嘉, 景駒하야 殺之하다
하비下邳에 주둔하고 진격하여 진가秦嘉경구景駒를 공격하여 죽였다.
○ 沛公 往見梁한대 予沛公卒五千人하다
패공沛公이 찾아가 항량項梁을 보니, 항량項梁패공沛公에게 병졸 5천 명을 주었다.
○ 項梁 使項羽 別攻襄城하니 襄城 堅守不下
항량項梁항우項羽를 시켜 별도로 양성襄城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양성襄城이 굳게 수비하고 항복하지 않았다.
皆坑之하다
성을 함락한 뒤에 〈항우項羽가〉 고을 사람들을 모두 묻어 죽였다.
○ 梁 聞陳王定死하고 召諸別將하야 會薛計事할새 沛公 亦往焉하다
항량項梁진왕陳王이 참으로 죽었다는 말을 듣고 여러 별장別將들을 불러 땅에 모여 일을 계획하였는데, 이때 패공沛公도 가서 참여하였다.
人范增注+[釋義]絶之勦 然今皆用單巢字하야 讀爲鉏交反이라 地志 廬江有居鄛縣하니 今無爲州 巢縣 是也 〈荀悅 〉 范增 阜陵人이라 年七十이라
거소居鄛 사람 범증范增注+[釋義]는 음이 초절勦絶의 초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두 소자巢字만을 사용하여 鉏交反(소)라고 읽는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여강군廬江郡거소현居鄛縣이 있다.” 하였으니, 지금 무위주無爲州소현巢縣이 이곳이다. 순열荀悅의 《한기漢紀》에 “범증范增부릉阜陵 사람이다.” 하였다. 은 나이가 70이었다.
素居家하야 好奇計러니 往說項梁曰 陳勝 首事注+[頭註]最先起兵也 不立楚後而自立하니 其勢不長이라
평소 집에 있으면서 기이한 계책을 좋아하였는데, 항량項梁을 찾아가서 설득하기를 “진승陳勝이 첫 번째로 거사擧事注+[頭註]수사首事는 가장 먼저 군대를 일으킨 것이다. 함에 나라 후손을 세우지 않고 스스로 서니, 그 형세가 길지 못하였습니다.
今君 起江東 楚蠭(蜂)起注+[釋義]言起兵者衆하야 如蜂之飛起也之將 皆爭附君者 以君世世楚將하야 能復立楚之後也라한대
이제 강동江東에서 기병起兵하자 지방에서 봉기蜂起注+[釋義]봉기蠭起기병起兵하는 자가 많아서 벌이 날아오르는 것과 같음을 말한다. 한 장수들이 모두 다투어 을 따르는 까닭은 이 대대로 나라 장군이어서 다시 나라의 후손을 세울 것이라고 생각해서입니다.” 하였다.
於是 項梁 然其言하야 乃求得楚懷王孫心注+[釋義] 名也 楚懷王槐之孫이라하야 立以爲楚懷王하니 從民望也注+[通鑑要解]懷王槐入秦한대 秦人留之하야 薨於秦하니 今順民望하야 以其祖諡爲號하니라러라
이에 항량項梁이 그의 말을 옳게 여겨 마침내 나라 회왕懷王의 손자인 注+[釋義]은 이름이니, 나라 회왕懷王 의 손자이다. 을 찾아서 세워 나라 회왕懷王이라 하니, 이는 백성들의 바람을 따른 것이었다.注+[通鑑要解]회왕懷王 나라로 들어가자, 나라 사람들이 억류하여 나라에서 죽으니, 이제 백성들의 바람을 따라 그 할아버지의 시호諡號로 삼은 것이다.
〈出史記項羽紀〉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項梁 自號武信君하다
항량項梁이 스스로 무신군武信君이라 하였다.
○ 張良 說項梁曰 君 已立楚後而韓 橫陽君成 最賢하니 可立爲王하야 益樹黨이라한대
장량張良항량項梁을 설득하기를 “이 이미 나라 후손을 세웠는데, 나라 여러 공자公子 중에 횡양군橫陽君 한성韓成이 가장 어지니, 그를 세워 왕을 삼아서 더욱 당여黨與를 만들도록 하라.” 하자,
使良으로 求韓成하야 立以爲韓王注+[原註]漢元年 羽殺之하니라하다
항량項梁장량張良으로 하여금 한성韓成을 찾게 하여 그를 세워 한왕韓王을 삼았다.注+[原註]나라 원년元年항우項羽한성韓成을 죽였다.
○ 章邯 擊魏어늘 齊王儋 及楚將 項注+[釋義]項羽從兄之子皆將兵救魏러니 章邯 大破齊楚軍하고 殺齊王儋하니 魏王咎自燒死
나라 장군將軍장한章邯나라를 공격하자, 제왕齊王 전담田儋나라 장수 항타項它注+[釋義]항타項它항우項羽종형從兄의 아들이다. 가 모두 병력을 거느리고 나라를 구원하였는데, 장한章邯의 군대를 대파하고 제왕齊王 전담田儋을 죽이니, 위왕魏王 는 스스로 불타 죽었다.
其弟豹 亡之楚어늘 楚懷王 予兵數千人하야 復徇魏地하고 立爲魏王하다
그 아우 위표魏豹나라로 도망가자, 나라 회왕懷王이 병력 수천 명을 주어서 다시 나라 땅을 순행하게 하고 세워서 위왕魏王으로 삼았다.
田榮 收兄儋餘兵하야 東走東阿하니 章邯 追圍之어늘
전영田榮이 형 전담田儋의 남은 병력을 수습하여 동쪽으로 동아東阿로 달아나니, 장한章邯이 쫓아가 포위하였다.
武信君 引兵擊破章邯軍於東阿下하고 追至하야 又破之하다
무신군武信君 항량項梁이 병력을 인솔하고 장한章邯의 군대를 동아東阿 아래에서 격파하고, 추격하여 복양濮陽에 이르러 또다시 격파하였다.
○ 郞中令趙高 恃恩專恣하야 以私怨誅殺人 衆多
낭중령郎中令 조고趙高가 은총을 믿고는 전횡하고 방자하여 사사로운 원한으로 사람을 주벌하고 죽인 것이 매우 많았다.
恐大臣 入朝奏事言之하야 乃說二世曰 天子所以貴者 但以聞聲이요 群臣 莫得見其面也
대신大臣들이 조정에 들어가 일을 아뢰다가 이것을 말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이세二世를 설득하기를 “천자天子가 귀한 까닭은 다만 음성만 들을 수 있고 여러 신하들이 그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陛下不如深拱禁中注+[頭註]門戶有禁하야 非侍御者 不得入이라 故曰禁中이라하야 與臣及侍中習法者 待事라가 事來어든 有以揆之 如此 則大臣 不敢奏疑事하야 天下稱聖主矣리이다
폐하께서는 금중禁中注+[頭註]문호門戶에 금함이 있어서 모시는 자가 아니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금중禁中이라 한 것이다. 에서 깊숙이 팔짱을 끼고 앉아서 법률을 숙달한 신하와 시중侍中들과 일을 기다리고 있다가 일이 오면 이를 헤아리게 하는 것만 못하니, 이렇게 하면 대신들이 감히 의심스러운 일을 아뢰지 못할 것이고 천하에서는 성주聖主라고 칭찬할 것입니다.” 하였다.
二世用其計하야 乃不坐朝廷見大臣하고 常居禁中하야 事皆決於趙高하다
이세二世가 그의 계책을 따라 마침내 조정에 앉아서 대신을 만나 보지 않고 항상 금중禁中에 거하여, 일이 모두 조고趙高에게서 결정되었다.
高聞李斯以爲言하고 乃曰 丞相長男李由 爲三川守注+[釋義]李斯之子名由 爲三川郡守 按秦三川郡 漢高改河南郡이라 韋昭曰 洛陽 有伊, 洛, 河三水 故名焉이라 或謂涇, 渭, 洛亦爲三川이라하야 與盜通하고 且丞相 居外하야 權重於陛下니이다
조고趙高이사李斯가 자신에 대하여 말한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아뢰기를 “승상丞相의 장남인 이유李由삼천수三川守가 되어서注+[釋義]이사李斯의 아들 이름이 이니 삼천군수三川郡守가 되었다. 살펴보건대 나라 삼천군三川郡한고조漢高祖하남군河南郡으로 고쳤다. 위소韋昭가 말하였다. “낙양洛陽이수伊水, 낙수洛水, 하수河水의 세 물이 있기 때문에 삼천三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혹은 경수涇水, 위수渭水, 낙수洛水를 일러 또한 삼천三川이라고 한다. 도둑들과 내통하였고, 또 승상丞相이 밖에 있어 권세가 폐하보다 무겁습니다.” 하였다.
二世以爲然하야 乃使人으로 按驗三川守與盜通狀하고 下斯吏하니 斯就獄이어늘
이세二世가 그 말을 옳게 여겨 마침내 사람을 시켜 삼천수三川守가 도적과 내통한 상황을 조사하여 징험하게 하고 이사李斯옥리獄吏에게 내리니, 이사李斯가 옥에 나아갔다.
二世以屬趙高治之한대 具斯五刑論注+[頭註]秦法 當三族者 皆先黥劓하고 斬左右趾者 笞殺之하고 梟其首者 葅其骨肉於市하고 其誹謗罵詛者 又先斷舌하니 謂之具五刑이라하야 腰斬咸陽市하니
이세二世이사李斯조고趙高에게 맡겨 다스리게 하니, 이사李斯오형五刑으로 갖추어 논죄하여注+[頭註]나라 삼족三族을 멸하는 죄에 해당하는 자는 모두 먼저 자자刺字하고 코를 베고, 좌우의 발을 벨 자는 태형笞刑을 가하여 죽이고, 머리를 효시梟示할 자는 뼈와 살을 시장에서 젓 담그고, 비방하고 꾸짖는 자는 또 먼저 혀를 잘랐으니, 이를 일러 ‘오형五刑을 갖춘다.’고 한다. 함양咸陽의 저자에서 요참腰斬하게 하였다.
遂父子相哭而夷三族注+[釋義] 滅也 父母兄弟妻子 盡誅滅之也 一說 三族 父母妻族也하다
그리하여 이사李斯는 마침내 부자父子가 서로 통곡하고 삼족三族이 멸하였다.注+[釋義]는 멸함이니, 이삼족夷三族은 부모와 형제와 처자를 모두 죽여 없애는 것이다. 일설一說(如淳의 )에 삼족三族부족父族, 모족母族, 처족妻族이라 한다.
二世以趙高爲丞相하야 事無大小 皆決焉하다
이세二世조고趙高승상丞相으로 삼아 큰 일과 작은 일을 막론하고 모두 결정하게 하였다.
〈出李斯傳〉
- 《사기史記 이사전李斯傳》에 나옴 -
○ 項梁 已破章邯하고 引兵至定陶注+[釋義]定陶縣 屬濟陰이라 按濟陰 隋改曹州하야 再破秦軍하고 項羽, 沛公 又與秦軍으로 戰於雍丘하야 大破之하고 하니 益輕秦하야 有驕色이라
항량項梁장한章邯을 격파하고는 병력을 인솔하여 정도定陶注+[釋義]정도현定陶縣제음濟陰에 속하였다. 살펴보건대 제음濟陰나라 때에 조주曹州로 고쳤다. 에 이르러서 또다시 진군秦軍을 격파하였으며, 항우項羽패공沛公이 또 진군秦軍옹구雍丘에서 싸워 대파하고 이유李由를 목 베니, 항량項梁이 더욱 나라를 경시하여 교만한 기색이 있었다.
宋義諫曰 戰勝而將驕卒惰者하나니 爲君畏之하노이다 弗聽이러니
송의宋義가 간하기를 “전쟁에 싸워 이기고서 장수가 교만하고 병졸이 나태한 자는 패하는 법이니, 신은 을 위하여 두려워합니다.” 하였으나 항량項梁이 듣지 않았다.
二世悉起兵하야 益章邯하고 擊楚軍하야 大破之定陶하니 項梁하다
이세二世가 군대를 모두 일으켜 장한章邯에게 더 보태 주고 초군楚軍을 공격하게 하여 정도定陶에서 대파大破하니, 항량項梁이 전사하였다.
○ 章邯 已破項梁하고 乃渡河하야 北擊趙하니請救於楚
장한章邯이 이미 항량項梁을 격파하고 마침내 황하黃河를 건너 북쪽으로 나라를 공격하니, 나라가 여러 번 나라에 구원을 요청하였다.
楚王 以宋義爲上將軍하고 項羽爲次將하야 以救趙할새 諸別將 皆屬宋義하고 號爲卿子冠軍注+[釋義]王氏曰 王之孫爲王孫이요 公之子爲公子 卿子 謂卿之子也 卿子 時人相褒尊之辭 上將故 言冠軍이라 張氏曰 冠者 加於首上이니 言功冠諸軍之上也이라하다
초왕楚王송의宋義상장군上將軍으로 삼고 항우項羽차장次將으로 삼아 나라를 구원하게 하였는데, 여러 별장別將들을 모두 송의宋義에게 속하게 하고 경자관군卿子冠軍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天子)의 손자를 왕손王孫이라 하고 의 아들을 공자公子라고 하니, 경자卿子의 아들을 이른다. 경자卿子는 당시 사람들이 서로 기리고 높이는 말이다. 상장上將이기 때문에 관군冠軍이라고 말한 것이다. 장씨張氏(張晏)가 말하기를 ‘은 머리 위에 가하는 것이니, 제군諸軍의 위에 으뜸임을 말한 것이다.’ 하였다.” 이라 하였다.
〈出項羽本紀〉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 初 楚懷王 與諸將約호되 先入定 王之라하더니
처음에 나라 회왕懷王이 여러 장수들과 약속하기를 먼저 관중關中에 들어가 평정하는 자를 왕으로 삼겠다 하였다.
當是時하야 秦兵彊하야 常乘勝 逐注+[釋義]王氏曰 人好陽而惡陰하니 北方 幽陰之地 故軍敗曰北 左傳註云 軍走曰北 如字 一音佩
이때를 당하여 나라 군대가 강하여 항상 승세를 타고 패배하는 자를 추격하였다.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사람은 을 좋아하고 을 싫어하니, 북방北方유음幽陰한 곳이므로 군대가 패하는 것을 라 한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이르기를 ‘군대가 도망하는 것을 라 한다. 은 본래 글자대로 읽고, 또 다른 음은 패(배)이다.’ 하였다.”
諸將 莫利先入關注+[釋義]莫利 謂不以入關爲利호되 獨項羽怨秦之殺項梁하야 奮身하야 願與沛公西入關이라
여러 장수들은 〈나라의 강함을 두려워하여〉 먼저 관중關中에 들어가는 것을 이롭게 여기는 자가 없었으나注+[釋義]막리莫利관중關中으로 들어가는 것을 이롭게 여기지 않음을 이른다. 유독 항우項羽만은 나라가 항량項梁을 죽인 것을 원망하여 몸을 떨쳐 일어나 패공沛公과 함께 서쪽으로 관중關中에 들어갈 것을 원하였다.
懷王諸老將 皆曰 項羽 爲人 慓悍猾賊注+[釋義] 疾也 勇也 猾賊 好爲禍害而殘賊也하야 嘗攻襄城 襄城 無遺類하고 諸所過 無不殘滅하니
회왕懷王의 여러 노장老將들이 모두 말하기를 “항우項羽는 사람됨이 사납고 잔인해서,注+[釋義]는 빠름이고 은 용맹함이며 활적猾賊화해禍害를 만들기를 좋아하여 잔인하고 해치는 것이다. 일찍이 양성襄城을 공격할 적에 양성襄城에 남은 무리가 없었고 지나가는 곳마다 해쳐서 멸하지 않음이 없었으니,
不如遣長者하야 扶義而西注+[釋義]言仗大義而西往也하야 告諭秦父兄이니
바꾸어 장자長者를 보내어 를 잡고 서쪽으로 가서注+[釋義]부의이서扶義而西대의大義를 내세워 서쪽으로 감을 말한다.나라 부형父兄들에게 고유告諭하는 것만 못합니다.
秦父兄 苦其主久矣
나라 부형父兄들이 그 군주를 괴롭게 여긴 지가 오래되었습니다.
誠得長者하야 往無侵暴 宜可下 不可遣이요 獨沛公 素寬大長者 可遣이니이다
이제 진실로 장자長者를 얻어 가서 침략하고 포악함이 없게 하면 항복시킬 수 있을 것이니, 항우項羽를 보내서는 안되고, 오직 패공沛公만이 본래 관대한 장자長者이니 보낼 만합니다.” 하였다.
懷王 乃不許羽하고 而遣沛公하야 西略地하다
회왕懷王이 마침내 항우項羽를 허락하지 않고 패공沛公을 보내어 서쪽으로 가서 땅을 공략하게 하였다.
〈出史高祖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역주
역주1 : 삭
역주2 : 복
역주3 張耳……卽梁也 : 본 附註의 내용은 원래 《通鑑節要》 4권의 卷末에 있는 것을 여기에 옮겨 실었다.
역주4 : 알
역주5 [譯註]陳人秦嘉 : 《漢書》 〈陳勝傳〉에는 ‘凌人秦嘉’로 되어 있다. 凌은 縣의 이름이다.
역주6 : 담
역주7 : 삭
역주8 [譯註]拔 : 城邑을 격파하고 취하는 것이다.
역주9 : 소
역주10 : 초
역주11 漢紀 : 東漢의 荀悅이 지은 것으로 30권이다. 袁宏이 지은 《後漢紀》와 구별하여 《前漢紀》라고 부른다. 荀悅은 字가 仲預이고 潁陰 사람이다.
역주12 [譯註]諸公子 : 戰國時代에는 諸王의 아들을 모두 諸公子라고 칭하였다.
역주13 : 타
역주14 : 복
역주15 [譯註]斬李由 : 李由는 李斯의 長男으로 三川守였다. 李由가 도적과 내통하였다 하여 二世皇帝가 사람을 보내어 죄상을 조사하게 하였는데, 도착했을 때에는 李由가 楚나라 군대에게 죽은 뒤였다.
역주16 : 삭
역주17 [譯註]關中 : 동쪽에는 函谷關, 남쪽에는 武關, 북쪽에는 肅關, 서남쪽에는 散關이 있고, 秦나라가 그 가운데에 있으므로 關中이라고 칭하였다.
역주18 : 배
역주19 : 경
역주20 [譯註]長者 : 도량이 넓고 관대한 사람을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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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사] 2년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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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사] 2년 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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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사] 2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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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계사] 2년 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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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사] 2년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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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계사] 2년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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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계사] 2년 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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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계사] 2년 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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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계사] 2년 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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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계사] 2년 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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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계사] 2년 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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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계사] 2년 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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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계사] 2년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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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계사] 2년 482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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