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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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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丑]十三年이라
개원開元 13년(을축 725)
二月 以御史中丞宇文融으로 兼戶部侍郞하다
2월에 어사중승御史中丞 우문융宇文融에게 호부시랑戶部侍郞을 겸하게 하였다.
制以所得客戶稅錢으로 均充所在常平倉本하고 又委使司注+[頭註]勸農使司也 하야 與州縣議하야 作勸農社하야 使貧富相恤하고 耕耘以時케하다
조령을 내리기를, 징수한 객호客戶세전稅錢으로 소재지 상평창常平倉의 본전을 채우고, 또 권농사사勸農使司에 맡겨서注+[頭註]사사使司권농사사勸農使司이다. 주현州縣과 의논하여 권농사勸農社를 만들어서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들로 하여금 서로 구휼하게 하며 밭 갈고 김매는 것을 제때에 하게 하였다.
〈出食貨志〉
- 《신당서新唐書 식화지食貨志》에 나옴 -
命長從宿衛之士曰注+[釋義] 滿張弩也 彍騎 一曰射騎 其法 이라 又擇材勇者하야 爲番頭하야 習弩射하니라 라하고 分隷十二衛하니 總十二萬人이라
황제가 장종숙위長從宿衛하는 친군親軍의 이름을 바꾸어 확기彍騎라 하고注+[釋義]은 쇠뇌를 잔뜩 당긴 것이니, 확기彍騎는 일명 사기射騎이다. 그 법이 10명을 라 하고 5이라 하는데, 모두 우두머리가 있다. 또 재주 있고 용감한 자를 뽑아 번두番頭로 삼아 쇠뇌로 활쏘기를 익히게 하였다. 나누어 12에 예속시키니, 모두 12만 명이었다.
爲六番注+[釋義]唐百官志 八衛各有左右하야 曰左右衛, 曰驍衛, 曰武衛, 曰威衛, 曰領軍, 曰金吾, 曰監門, 曰千牛 共十六衛 自左右衛至領軍 竝掌宮禁宿衛하고 金吾 掌宮中京城警하고 監門 掌諸門禁衛하고 千牛 掌侍衛之番上者 十二衛受其名簿而配以職하니 除監門, 千牛凡左右四衛하야 不須 但十二衛 每衛萬人이니 分爲六番이라 番者 代宿衛也 하다
여섯으로 나누어注+[釋義]신당서新唐書》 〈백관지百官志〉에 “8에 모두 가 있어서 좌위左衛우위右衛, 좌효위左驍衛우효위右驍衛, 좌무위左武衛우무위右武衛, 좌위위左威衛우위위右威衛, 좌영군위左領軍衛우령군위右領軍衛, 좌금오위左金吾衛우금오위右金吾衛, 좌감문위左監門衛우감문위右監門衛, 좌천우위左千牛衛우천우위右千牛衛이니, 모두 16이다. 좌위左衛우위右衛부터 좌영군위左領軍衛우령군위右領軍衛까지는 모두 궁금宮禁숙위宿衛를 관장하고, 좌금오위左金吾衛우금오위右金吾衛궁중宮中경성京城의 경비를 관장하고, 좌감문위左監門衛우감문위右監門衛는 여러 문의 금위禁衛를 관장하고, 좌천우위左千牛衛우천우위右千牛衛시위侍衛를 관장한다. 무릇 오부五府외부外府에서 상번上番하는 자는 12에서 그 명부名簿를 받아 직무를 배속시키니, 좌감문위左監門衛우감문위右監門衛좌천우위左千牛衛우천우위右千牛衛 4를 제하여 대기시키지 않기 때문에 다만 12인 것이다. 매 마다 만 명이니, 이것을 여섯으로 나누어 번갈아 을 서게 하였다. 은 번갈아 교대하여 숙위宿衛하는 것이다. 번갈아 을 서게 하였다.
〈出兵志〉
- 《신당서新唐書 병지兵志》에 나옴 -
○ 張說 草封禪儀하야 獻之하다
장열張說봉선의封禪儀를 초하여 올렸다.
○ 十一月庚寅 祀昊天上帝於山上하고 群臣 祀五帝注+[頭註]東方 靑帝靈威仰이요 南方 赤帝赤熛怒 西方 白帝白招矩 北方 黑帝叶光紀 中央 黃帝含樞紐 百神於山下之壇하고 其餘 倣乾封故事注+[頭註]乾封 高宗年號 丙寅年 封泰山하고 禪社首하니라하다
11월 경인일(10일)에 태산泰山정상頂上에서 호천昊天상제上帝를 제사하고 여러 신하들은 태산泰山 아래의 단에서 오제五帝注+[頭註]동방東方청제靑帝 영위앙靈威仰이고, 남방南方적제赤帝 적표노赤熛怒이고, 서방西方백제白帝 백초구白招矩이고, 북방北方흑제黑帝 협광기叶光紀이고, 중앙中央황제黃帝 함추뉴含樞紐이다. 백신百神을 제사하였으며, 그 나머지는 나라 건봉乾封 연간의 고사故事를 따랐다.注+[頭註]건봉乾封고종高宗의 연호이니, 고종高宗이 병인년(666)에 태산泰山에서 하늘에 제사하고 사수산社首山에서 땅에 제사하였다.
〈出禮樂志〉
- 《신당서新唐書 예악지禮樂志》에 나옴 -
○ 初 隋末國馬 皆爲盜賊及戎狄所掠이러니 唐初 纔得三千匹於赤岸澤하야 徙之隴右하고 命太僕張萬歲하야 掌之하다
처음에 나라 말기에 나라에서 기르던 말이 모두 도적과 오랑캐에게 약탈당하였는데, 나라 초기에 겨우 암수 3천 필을 적안택赤岸澤에서 얻어 농우隴右(隴西)로 옮기고 태복太僕 장만세張萬歲에게 명하여 관장하게 하였다.
萬歲善於其職하야 自貞觀으로 至麟德注+[頭註]高宗年號 馬蕃息하야 及七十萬匹하니 分爲八坊四十八監注+[附註]唐制 凡馬五千匹爲上監이요 三千匹以上爲中監이요 一千匹以上爲下監이라 麟德中 置八使하야 分總監坊이라 秦, 蘭, 原, 渭四州及河曲之地 凡監四十八이니 南使有監十五 西使有監十六이요 北使有監七이요 鹽州使有監八이요 嵐州使有監二 自京師西屬隴右 有七坊하니 置隴右三使領之 歐陽脩曰 置八坊하니 豳, 岐, 涇, 寧間 地廣千里 一曰保樂이요 二曰甘露 三曰南浦閏이요 四曰北普閏이요 五曰岐陽이요 六曰太平이요 七曰宜祿이요 八曰安定이라 八坊之田 千二百(二)[三]十頃이니 募民耕之하여 以給蒭秣이라 八坊之馬 爲四十八監이로되 而馬多地狹하야 不能容일새 又(折)[析]八監하야 列置河西豊廣之野하니라 하야 各置使以領之하다
장만세張萬歲가 그 직분을 잘 수행하여 정관貞觀부터 인덕麟德 연간에 이르기까지注+[頭註]인덕麟德고종高宗의 연호이다. 말이 번식하여 70만 필에 이르자, 8 48에 분속시켜注+[附註]나라 제도에 무릇 말 5000필을 상감上監이라 하고 3000필 이상을 중감中監이라 하고, 1000필 이상을 하감下監이라 하였다. 인덕麟德 연간에 팔사八使를 두어서 을 나누어 관할하였다. 진주秦州난주蘭州원주原州위주渭州 등 네 하곡河曲 지방에 이 48명이었으니, 남사南使는 15명의 이 있고, 서사西使는 16명의 이 있고, 북사北使는 7명의 이 있고, 염주사鹽州使는 8명의 이 있고, 남주사嵐州使는 2명의 이 있었다. 경사京師로부터 서쪽으로 농우隴右에 이르기까지 7개의 마방馬坊이 있었는데, 농우삼사隴右三使를 두어 통솔하게 하였다.
구양수歐陽脩가 말하기를 “8을 두었으니, 빈주豳州기주岐州경주涇州영주寧州 지역인데 땅의 넓이가 천 리였다. 첫 번째는 보악保樂, 두 번째는 감로甘露, 세 번째는 남포윤南浦閏, 네 번째는 북보윤北普閏, 다섯 번째는 기양岐陽, 여섯 번째는 태평太平, 일곱 번째는 의록宜祿, 여덟 번째는 안정安定이다. 8의 토지가 1230이니, 백성을 모집하여 경작해서 꼴과 말먹이를 공급하였다. 8의 말을 48으로 만들었으나 말은 많고 땅은 좁아 수용할 수가 없으므로 또다시 8을 쪼개어 하서河西의 풍요롭고 넓은 들에 두었다.
각각 방사坊使감사監使를 두어 관할하게 하였다.
是時 天下以一縑易一馬러니 垂拱注+[頭註]武后年號 以後 馬潛耗太半이라
이때 천하에서는 비단 한 필로 말 한 마리와 바꿀 정도였는데, 수공垂拱 연간注+[頭註]수공垂拱무후武后의 연호이다. 이후로는 말이 점점 감소되어 태반이 없어졌다.
初卽位 牧馬有二十四萬匹이러니 以太僕卿王毛仲으로 爲內外閑廐使注+[頭註] 馬闌也 謂京師 謂河隴이라 하고 少卿張景順으로 副之하다
이 처음 즉위하였을 때 국가에서 기르는 말이 24만 필이었는데, 태복경太僕卿 왕모중王毛仲내외한구사內外閑廐使로 삼고注+[頭註]은 마구간이다. 경사京師를 이르고, 하서河西농우隴右를 이른다. 소경少卿 장경순張景順부사副使로 삼았다.
至是 有馬四十三萬匹이요 牛羊 稱是
이때에 이르러 말이 43만 필이었고 소와 양도 이와 비슷하였다.
上之東封注+[頭註]泰山이라 以牧馬數萬匹從하야 色別爲群하니 望之如雲錦이라
이 동쪽으로 태산泰山에 가서 봉선封禪할 때에注+[頭註]동봉東封태산泰山이다. 기르는 말 수만 필을 데리고 갔는데, 말의 색깔에 따라 구별하여 무리를 만드니, 멀리서 바라보면 마치 구름 비단과 같았다.
嘉毛仲之功하야 加毛仲開府儀同三司注+[頭註]卽三公也 하다
왕모중王毛仲의 공을 가상히 여겨 왕모중王毛仲에게 개부開府 의동삼사儀同三司를 가하였다.注+[頭註]삼사三司는 즉 삼공三公이다.
〈出兵志〉
- 《신당서新唐書 병지兵志》에 나옴 -
○ 上還할새 至宋州하야 宴從官於樓上하니 刺史寇泚注+[頭註]上顧刺史寇泚曰 比亦屢有以酒饌不豐으로 訴於朕者하니 知卿不借譽於左右也라하고 自擧酒賜하니라 預焉이라
이 돌아오는 도중에 송주宋州에 이르러 수행한 관원들에게 누대 위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자사刺史 구자寇泚注+[頭註]송주자사宋州刺史 구자寇泚를 돌아보고 말하기를 “근래에 또한 술자리가 풍성하지 않다는 이유로 여러 번 짐에게 을 헐뜯는 자가 있었으니, 이 좌우의 측근들에게 칭찬을 구하지 않아서임을 알겠다.” 하고, 직접 술잔을 들어 하사하였다. 연회에 참여하였다.
酒酣 上謂張說曰 曏者 屢遣使臣하야 分巡諸道하야 察吏善惡이러니 今因封禪하야 歷諸州하니 乃知使臣負我多矣로라
주흥이 무르익었을 때 장열張說에게 이르기를 “예전에 내가 사신使臣을 자주 파견해서 여러 도를 순행하여 관리의 우열을 고찰하게 하였는데, 지금 봉선封禪하는 기회에 여러 를 지나면서 보니, 이제 사신使臣이 나를 많이 기만하였음을 알겠다.” 하였다.
역주
역주1 : 경
역주2 : 확
역주3 十人爲火……皆有酋長 : 《新唐書》 〈兵志〉에 “士는 300인을 團이라 하여 團에는 校尉가 있으며, 50인을 隊라 하여 隊에는 正이 있으며, 10인을 火라 하여 火에는 長이 있다.[士以三百人爲團 團有校尉 五十人爲隊 隊有正 十人爲火 火有長]”라고 하였고, 《舊唐書》와 《資治通鑑》에도 모두 “300인을 團이라 한다.”라고 하여 [釋義]와 차이가 있다.
역주4 五府, 外府 : 唐나라는 隋나라의 16衛府의 제도를 이어받아 16衛를 두어 宿衛를 담당하게 하였다. 隋나라의 16衛府는 大業 3년(607)에 煬帝가 개편한 禁軍 조직으로, 위의 12衛와 4府를 합한 것이다. 唐나라 16衛의 명칭은 高宗과 武后 때 여러 차례 고쳤는데, 각각 府兵을 통솔하는 左衛‧右衛, 左驍衛‧右驍衛, 左武衛‧右武衛, 左威衛‧右威衛, 左領軍衛‧右領軍衛, 左金吾衛‧右金吾衛 등 12衛와, 府兵을 통솔하지 않는 左監門衛‧右監門衛, 左千牛衛‧右千牛衛이다. 府兵은 內府와 外府로 나뉘었는데, 內府는 5府 및 東宮 3府가 통할하는 折衝府를 말하며, 外府는 그밖에 府兵의 여러 府를 말한다. 5府는 親府‧勳一府‧勳二府‧翊一府‧翊二府이며, 3府는 親衛府‧勳衛府‧翊衛府이다.
역주5 : 경
역주6 牝牡 : 빈무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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