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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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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申]武德七年이라 〈是歲 皆敗死하고 唯梁師都 至貞觀二年하야 乃亡하니라
무덕武德 7(갑신 624) - 이해에 모두 패하여 죽고 오직 양사도梁師都만이 정관貞觀 2년(628)에 이르러 비로소 망하였다. -
正月 依周, 齊舊制하야 每州 置大中正一人하야 掌知州內人物하야 品量望第호되 以本州門望注+[頭註]家門物望이라高者하야 領之하고 無品秩하다
정월에 나라와 나라의 옛 제도를 따라 마다 대중정大中正 한 명을 두어 주내州內의 인물을 맡아서 그들의 인망과 등급을 품량品量(品評)하게 하되 본주本州의 문벌과 명망注+[頭註]문망門望은 가문과 물망物望(人望)이다. 이 높은 자를 등용하여 이 일을 맡게 하고 품계를 없게 하였다.
○ 二月 詔諸州하야 有明一經以上未仕者어든 咸以名聞하고 州縣及鄕 皆置學하다
○ 2월에 여러 에 명하여 오경五經 중 한 가지 경서經書 이상에 밝으면서도 아직 벼슬하지 않는 자가 있으면 모두 이름을 아뢰게 하고, 에 모두 학교를 세웠다.
○ 四月 初定均田注+[頭註] 平也 均給天下人田이라租, 庸, 調法하야 丁, 中之民注+[釋義]丁者 當也 當强壯之時 中者 謂上下通也 四歲爲小 十六爲中이요 二十爲丁이요 六十爲老 給田一頃注+[頭註]畝百爲頃이니 六尺爲步 步百爲畝 一畝 又徑一步長百步爲畝 折而方之 則東西南北 各十步하고 篤疾 減什之六하고 寡妻妾 減七호되 皆以什之二하고 爲口分注+[釋義]口分田 人八十畝[附註]食貨志 田多하야 可以足其人 爲寬鄕이요 少者 爲狹鄕이라 凡庶人徙鄕及貧無以葬者 得賣世業田이요 自狹鄕而徙寬鄕者 得幷賣口分田이로되 已賣者 不復授하고 死者 收之하야 以授無田者하니라하다
○ 4월에 처음으로 균전均田注+[頭註]은 균평함이니, 균전均田은 천하 사람들에게 전지田地를 골고루 나누어 주는 것이다. 조법調法을 정해서 정남丁男중남中男의 백성注+[釋義]丁, 중지민中之民:은 당함이니 강장强壯할 때를 당한 것이고, 은 위아래로 통함을 이른다. 4세를 라 하고, 16세를 이라 하고, 20세를 이라 하고, 60세를 라 한다. 은 모두 전지田地 1注+[頭註]100이라 하니, 6이 1이고 100가 1이다. 1는 또 가로 1에 세로 100를 1라 한다. 잘라서 네모지게 만들면 동서남북이 각각 10이다.을 주며, 위독한 병이 있는 자는 10분의 6을 감하고 과부가 된 처첩妻妾은 10분의 7을 감하되 모두 10분의 2를 세업전世業田으로 삼고 10분의 8을 구분전口分田으로 삼게 하였다.注+[釋義]口分田은 사람마다 80묘이다.[附註]《신당서新唐書》 〈식화지食貨志〉에 “전지田地가 많아서 백성들을 풍족하게 할 수 있는 곳을 관향寬鄕이라 하고 전지田地가 부족한 곳을 협향狹鄕이라 한다. 무릇 서민庶民 중에 고을을 떠나거나 가난하여 장례를 치를 수 없는 자는 세업전世業田을 팔 수 있고, 협향狹鄕에서 관향寬鄕으로 옮겨 가는 자는 구분전口分田까지 아울러 팔 수 있으나 이미 판 자에게는 다시 주지 않고, 죽은 자의 것은 회수하여 전지田地가 없는 자에게 준다.” 하였다.
每丁 歲入 粟二碩이요 調 隨土地所宜하야 綾絹注+[釋義]風土不同이라 其宜亦異也 布帛之細曰綾이요 繒如麥稍曰絹이요 絲經枲緯曰絁 經緯皆枲曰布 歲役 二旬이라 不役이면 則收其傭호되 日三尺注+[釋義]王氏曰 傭 通作庸하니 唐用人力 歲二十日이요 閏加二日이며 不役者 則日收綾或絹或絁或布三尺하니 是之謂庸이라이요 有事而加役者 旬有五日이면 免其調하고 三旬이면 租, 調 俱免이라
매 장정마다 1년에 국가에 납입하는 것이 속미粟米 2(石)이요, 調는 그 지방에서 생산되는 물건에 따라 요,注+[釋義]調隨土地所宜 능견시포綾絹絁布:풍토風土가 똑같지 않으므로 지방에 따라 잘 자라는 것 또한 다른 것이다. 포백布帛 중에 고운 것을 이라 하고, 비단이 보리 줄기 끝과 같은 것을 이라 하고, 날줄을 생사生絲로 하고 씨줄을 모시로 한 것을 라 하고, 날줄과 씨줄이 모두 모시인 것을 라 한다. 매년의 부역은 20일인데 부역하지 않으면 그 의 값을 거두되 하루에 3으로 하고,注+[釋義]歲役二旬……日三尺: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으로 통용하니, 나라에서 백성들의 힘을 쓰는 것은 한 해에 20일이고 윤달이 있으면 2일을 더하였으며, 부역하지 않으면 그 대신 하루에 중의 하나를 3척씩 거두었는데, 이것을 이라 일렀다.” 일이 있어 부역을 더 시킬 경우 15일을 더 시키면 調를 면제해 주고, 30일을 더 시키면 調를 모두 면제해 주었다.
水旱蟲霜 爲災하야 損四以上이면 免租하고 損六以上이면 免調하고 損七以上이면 課役 俱免하다
장마와 가뭄, 충해蟲害상해霜害가 재앙이 되어서 10분의 4 이상이 손실되었으면 를 면제해 주고, 10분의 6 이상이 손실되었으면 調를 면제해 주고, 10분의 7 이상이 손실되었으면 調를 모두 면제해 주었다.
〈食貨志〉
- 《당서唐書 식화지食貨志》에 나옴 -
○ 七月 或說上曰 突厥 所以屢寇關中者玉帛 皆在長安故也 若焚長安而不都 則胡寇自息矣리이다 上以爲然이어늘
○ 7월에 혹자가 을 설득하기를 “돌궐突厥관중關中을 자주 침략하는 까닭은 자녀子女옥백玉帛이 모두 장안長安에 있기 때문이니, 만약 장안長安을 불태우고 도읍으로 삼지 않으면 오랑캐의 침략이 저절로 그칠 것입니다.” 하니, 이 그 말을 옳게 여겼다.
秦王世民 諫曰 戎狄爲患 自古有之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이 간하기를 “융적戎狄의 폐해는 옛날부터 있었습니다.
陛下以聖武하야 光宅中夏하시니 精兵 百萬이요 所征 無敵이어시늘
폐하께서 성명聖明함과 용맹함으로 창업創業하여 영광스럽게 중하中夏를 소유하시니, 정예병이 백만이요 정벌하는 곳마다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奈何以胡寇擾邊으로 遽遷都以避之하야 貽四海之羞하고 爲百世之笑乎잇가
어찌 오랑캐가 침범해서 변경을 소란하게 한다 하여 갑자기 도읍을 옮겨서 그들을 피하여 천하에 수치를 당하고 백세의 웃음거리가 된단 말입니까.
彼霍去病 漢庭一將이로되 猶志滅匈奴어든 況臣忝備藩維하니
곽거병霍去病나라 조정의 일개 장수였는데도 오히려 흉노匈奴를 멸하는 데에 뜻을 두었는데, 하물며 신은 외람되이 변경을 맡고 있으니 〈더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願假數年之期 請係頡利之頸하야 致闕下하리니 若其不敵이어든 遷都未晩이니이다 上曰 善하다
원컨대 몇 년의 기한을 빌려 주신다면 힐리가한頡利可汗의 목에 올가미를 매어서 대궐 아래로 끌고 올 것이니, 만약 효과가 없으면 그때 가서 도읍을 옮겨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니, 이 “좋다.” 하였다.
建成 與妃嬪으로 因共譖世民曰 突厥 雖屢爲邊患이나 得賂則退하니 秦王 外託禦寇之名하고 內欲總兵權하야 成其簒奪之謀耳니이다
이건성李建成비빈妃嬪들과 함께 이 틈을 타서 이세민李世民을 참소하기를 “돌궐突厥이 비록 여러 번 변방의 폐해가 되었으나 뇌물을 얻으면 바로 물러갔으니, 이는 진왕秦王이 밖으로 외적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안으로 병권을 총괄하여 찬탈하려는 계책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每有寇盜 輒命世民討之하고 事平之後에는 猜嫌益甚이러라
이 매번 외구外寇의 침략이 있을 때마다 번번이 이세민李世民에게 적을 토벌하도록 명하고는 일이 평정된 뒤에는 그를 시기하고 혐의함이 더욱 심해졌다.
〈出突厥及建成傳〉
- 《당서唐書》의 〈돌궐전突厥傳〉과 〈고조제자전高祖諸子傳 은태자건성隱太子建成〉에 나옴 -
○ 八月 突厥 寇原, 忻, 幷, 綏四州하니 京師戒嚴이라
○ 8월에 돌궐突厥원주原州흔주忻州병주幷州수주綏州를 침략하자 경사京師가 삼엄하게 경계하였다.
是時 頡利, 突利二可汗 擧國入寇하야 連營南上注+[頭註] 時掌切이라[通鑑要解]上 時亮切이니 則去聲이라 崇也, 尊也 太上 極尊之稱이라 又上聲이니 時掌切이라 登也 自下而上也이어늘 秦王世民 齊王元吉 引兵拒之하다
이때 힐리頡利돌리突利가한可汗이 거국적으로 쳐들어왔는데, 진영을 연결하여 남쪽으로 올라오자,注+[頭註]南上의 은 時掌切(상)이다. [通鑑要解]은 時亮切(상)이니 거성去聲이다. 높고 존귀한 것이니, 태상太上은 지극히 높은 자의 칭호이다. 또 상성上聲이니 時掌切(상)이다. 오름이니, 아래로부터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진왕秦王 이세민李世民제왕齊王 이원길李元吉이 군대를 이끌고 가서 이들을 막았다.
世民 與虜遇於注+[釋義] 通作邠하니 古西戎地 周時 公劉所居 詩爲豳國이라 漢爲右扶風하고 西魏置豳州러니 唐玄宗 以豳字類幽字故 遂改爲邠하니라하야 勒兵注+[頭註] 猶戒嚴也將戰할새 可汗 帥萬餘騎하고 奄至城下한대
이세민李世民이 오랑캐들과 빈주豳州注+[釋義]과 통하니, 옛날 서융西戎 지역이다. 나라 때 공류公劉가 살았기 때문에 《시경詩經》에 빈국豳國이라 하였다. 나라 때에는 우부풍右扶風이라 하고 서위西魏 때에는 빈주豳州를 두었는데, 나라 현종玄宗빈자豳字유자幽字와 비슷하다 하여 마침내 고쳐서 이라 하였다. 에서 만나 군대를 무장하고注+[頭註]계엄戒嚴과 같다. 싸우려 할 적에 가한可汗이 만여 명의 기병을 거느리고 성 아래에 들이닥치자,
元吉 懼曰 虜形勢如此하니 奈何輕出이리오
이원길李元吉이 두려워하며 말하기를 “오랑캐의 형세가 이와 같으니, 어찌 가볍게 출전할 수 있겠습니까.” 하니,
世民曰 汝不敢出이면 吾當獨往호리라하고
이세민李世民이 말하기를 “네가 감히 출전하지 못하겠다면 내가 마땅히 혼자서 가겠다.” 하였다.
乃帥騎馳詣虜陳(陣)하야 告之曰 國家與可汗和親이어늘 何爲負約하고 深入我地
이세민李世民이 마침내 기병을 거느리고 달려나가 오랑캐 진영에 이르러 말하기를 “우리나라가 가한可汗과 화친을 맺었는데 어찌하여 약속을 저버리고 우리 영토에 깊이 쳐들어왔는가.
秦王也 可汗 能鬪어든 獨出與我鬪하라 又遣騎하야 前告注+[頭註] 進也突利曰 爾往與我盟호되 有急相救어늘 今乃引兵相攻하니 何無香火之情也注+[釋義]謂引神明以懼之也[頭註]古者 盟誓 質諸天地山川鬼神하야 歃血而已러니 後世 誓者 有禮佛立誓者하야 始有香하니라
나는 진왕秦王이니 가한可汗이 싸울 수 있으면 단독으로 출전하여 나와 싸우자.” 하고, 또 기병을 보내 돌리가한突利可汗에게 가게 하여 고하기를注+[頭註]은 나아감이다. “네가 지난번 우리와 맹약할 때에 위급한 일이 있으면 서로 구원하기로 했는데, 이제 도리어 군대를 이끌고 와서 공격하니, 어찌 향불을 피우고 맹세한 이 없단 말인가.注+[釋義]어찌 향불을 피우고 맹세한 이 없느냐는 것은 신명神明을 끌어들여 상대방을 두렵게 함을 이른다.[頭註]옛날에는 맹세할 때에 천지산천天地山川귀신鬼神에게 질정하여 입에 희생의 피를 바를 뿐이었는데, 후세에는 맹세할 때에 예불禮佛을 올려 맹세를 입증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비로소 향을 피우는 일이 있게 되었다. ” 하였다.
世民 又前하야 將度(渡)溝水하니 頡利見世民輕出하고 又聞香火之言하고 疑突利與世民有謀하야 乃遣止世民曰 王 不須度하소서
이세민李世民이 또 진격하여 구수溝水를 건너려 하자, 힐리가한頡利可汗이세민李世民이 가볍게 나오는 것을 보고 또 향불을 피우고 맹세했다는 말을 들었으므로 돌리가한突利可汗이세민李世民과 모종의 모략이 있는 것이라고 의심하여, 마침내 사람을 보내 이세민李世民을 만류하며 말하기를 “진왕秦王은 굳이 건너올 필요가 없다.
我無他意 更欲與王申固盟約耳라하고 乃引兵稍却하다
나는 별다른 뜻은 없고 다시 진왕秦王과 옛 맹약을 거듭 견고히 하고자 할 뿐이다.” 하고는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약간 후퇴하였다.
是後 霖雨益甚이어늘 世民 謂諸將曰 虜所恃者 弓矢耳
이후로 장마가 더욱 심해지자 이세민李世民이 여러 장수들에게 이르기를 “오랑캐가 믿는 것은 활과 화살뿐이다.
今積雨彌時注+[頭註] 延也하야 筋膠俱解하야 弓不可用하리니 彼如飛鳥之折翼이요
이제 장마가 오래 계속되어注+[頭註]는 뻗어감이다. 활의 힘줄과 아교가 모두 느슨해져서 활을 쓸 수가 없을 것이니, 저들은 날개 꺾인 새와 같다.
屋居火食하고 刀槊 犀利注+[釋義] 堅也 師古曰 古以犀兕皮爲鎧 故謂堅曰犀라하니라하니 以逸制勞
우리는 편안히 집에 거주하고 화식火食을 하며 칼과 창이 견고하고注+[釋義]는 견고함이니, 안사고顔師古가 말하기를 “옛날에 무소 뿔과 무소 가죽으로 갑옷을 만들었기 때문에 견고한 것을 라 한다.” 하였다. 예리하니, 아군의 편안함으로 피로한 적을 제압해야 한다.
此而不乘이면 將復何待리오
이러한 기회를 이용하지 않고 장차 다시 무엇을 기다린단 말인가.” 하였다.
乃潛師夜出하야 冒雨而進하니 突厥 大驚이러라
마침내 은밀히 군대를 밤에 출동시켜 비를 무릅쓰고 진격하니, 돌궐突厥이 크게 놀랐다.
世民 又遣說突利以利害하니 突利說(悅)하야 聽命이라
이세민李世民이 또 사람을 보내어 이해利害를 가지고 돌리가한突利可汗을 설득하니, 돌리가한突利可汗이 기뻐하여 명령을 따랐다.
頡利欲戰호되 突利不可라하니 乃遣突利하야 來見世民하고 請和親이어늘 世民 許之하다
힐리가한頡利可汗이 싸우고자 하였으나 돌리가한突利可汗이 안 된다고 하자, 마침내 돌리가한突利可汗을 보내어 이세민李世民을 뵙고 화친和親을 요청하므로 이세민李世民이 이를 허락하였다.
突利因自託於世民하고 請結爲兄弟하니 世民 亦以恩意撫之하야 與盟而去하다
돌리가한突利可汗이 인하여 스스로 이세민李世民에게 의탁하고 의형제를 맺기를 청하니, 이세민李世民 또한 은택과 정의情誼로 이들을 어루만져 이들과 맹약을 맺고 떠나갔다.
역주
역주1 世業 : 대대로 이어 내려오면서 경작하는 世業田을 가리키는 바, 公家(國家)에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역주2 : 시
역주3 子女 : 楊伯峻 注에 “子女는 남녀 노예를 가리킨다.[子女蓋指男女奴隷]” 하였고, 또 美女를 가리키기도 한다.
역주4 龍興 : 龍은 天子를 비유하는 바, 龍興은 帝王이 王業을 開創함을 이른다.
역주5 : 빈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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