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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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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二十一年이라 〈周武氏長安四年〉
사성嗣聖 21년(갑진 704) - 나라 무씨武氏 장안長安 4년 -
春正月 帝在東宮하다
봄 정월에 황제가 동궁東宮에 있었다.
○ 七月 以楊再思爲內史하다
7월에 양재사楊再思내사內史로 삼았다.
再思爲相 專以諂媚取容이라
양재사楊再思가 정승이 되자, 오로지 아첨하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취하였다.
司禮少卿張同休 易之之兄也
사례소경司禮少卿 장동휴張同休장역지張易之의 형이었다.
嘗召公卿하야 宴集할새 酒酣 戲再思曰 楊內史面似高麗라하니 再思欣然하야 卽剪紙帖巾하고 反披紫袍하야 爲高麗舞하니 擧坐大笑
그가 일찍이 공경公卿들을 불러 잔치할 적에 술에 취하여 장동휴張同休양재사楊再思를 놀리기를 “양내사楊內史의 얼굴이 고구려 사람 같다.” 하니, 양재사楊再思가 기뻐하여 즉시 종이를 오려 두건에 붙이고 자주색 도포를 뒤집어 입고서 고구려의 춤을 추자, 온 좌중의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人或譽張昌宗之美하야六郞注+[附註]張昌宗, 張易之兄弟 皆幸하야 出入宮中할새 傅朱粉하고 衣純錦하고 淫蠱顯行하야 無復羞愧 號易之爲五郞하고 昌宗爲六郞하니라 面似蓮花라하야늘 再思曰 不然하다
이때 어떤 사람이 장창종張昌宗의 아름다움을 칭찬하기를 “육랑六郞注+[附註]장창종張昌宗장역지張易之 형제가 모두 총애를 받아서 궁중을 출입할 적에 붉은 분을 바르고 비단옷을 입고는 음란한 짓을 드러나게 행하여 다시는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 당시 사람들이 장역지張易之오랑五郞이라 칭하고 장창종張昌宗육랑六郞이라 칭하였다. 얼굴이 연꽃과 같다.” 하였는데, 양재사楊再思가 이르기를 “그렇지 않다.
乃蓮花似六郞爾라하니라
바로 연꽃이 육랑六郞과 같을 뿐이다.” 하였다.
○ 冬十月 以秋官侍郞張柬之 同平章事하니 年且八十矣러라
겨울 10월에 추관시랑秋官侍郞 장간지張柬之동평장사同平章事로 삼으니, 이때 나이가 장차 80에 가까웠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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