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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4)

통감절요(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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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酉]十六年이라
영평永平 16년(계유 73)
耿秉 數請擊匈奴어늘 帝從之하야 遣秉與竇固等으로 分道竝出하야 伐北匈奴러니 固獨有功이러라
경병耿秉흉노匈奴를 공격할 것을 자주 청하자, 황제가 그의 말을 따라 경병耿秉을 보내어 두고竇固 등과 함께 길을 나누어 함께 나가서 북흉노北匈奴를 정벌하게 하였는데, 두고竇固만 홀로 공을 세웠다.
固使假司馬注+[釋義]假者 權攝之義 謂軍司馬之副也班超注+[通鑑要解]彪之子 會吏士하고 與共飮酒할새 因激怒하야 曰 卿曹與我俱在絶域이어늘 今虜使纔到 王廣禮敬卽廢하니 如令鄯善 收吾屬하야 送匈奴 骸骨長爲豺狼食하리니 爲之奈何 皆曰 今在危亡之地하니 死生從司馬하리이다 超曰 不入虎穴云云하니라 與從事注+[釋義]從事 大將軍之屬官也 從事 職參謀議郭恂으로 俱使西域이러니 超行到鄯善하니 鄯善王廣注+[釋義]하니 其王之名也 奉詔하야 禮敬甚備라가 忽更疎懈
두고竇固가사마假司馬注+[釋義]는 임시로 대리한다는 뜻이니, 군사마軍司馬부이副貳(輔佐)를 이른다. 반초班超注+[通鑑要解]반초班超반표班彪의 아들이다. 반초班超가 관리와 군사들을 모아 놓고 함께 술을 마시고는 인하여 격노하게 하여 말하기를 “들이 나와 함께 이역異域의 먼 곳에 와 있는데 지금 북쪽 오랑캐의 사신이 이르자, 선선왕鄯善王 이 〈태도가 돌변하여〉 우리에 대한 예우와 공경을 하지 않는다. 만약 선선국鄯善國이 우리들을 잡아서 흉노匈奴로 보낸다면 우리들은 해골이 길이 승냥이와 이리의 밥이 될 것이니, 어찌해야 하겠는가?” 하니, 모두 말하기를 “지금 우리가 위태롭고 멸망하는 곳에 있으니, 죽든지 살든지 사마司馬(班超)를 따르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반초班超가 이르기를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하고 운운云云하였다. 종사從事注+[釋義]종사從事대장군大將軍속관屬官이다. 종사從事는 직책이 모의謀議에 참여한다. 곽순郭恂서역西域에 함께 사신 보냈는데, 반초班超가 길을 떠나 선선국鄯善國에 이르자, 선선국왕鄯善國王 注+[釋義]선선鄯善가 앞에 보이니, 은 그 국왕國王의 이름이다. 조명詔命을 받들어 예우하고 공경하기를 매우 공손히 하다가 뒤에 갑자기 바뀌어 소홀하고 태만히 하였다.
超謂其官屬曰 此必有北虜使來
반초班超관속官屬들에게 이르기를 “이는 반드시 북쪽(北匈奴)의 사신이 왔기 때문이다.
明者 睹未萌이어든 況已著耶아하고 乃會其吏士三十六人하고
현명한 자는 일의 징조가 싹트기 전에 보는데 하물며 이미 징조가 드러남에 있어서이겠는가.” 하고,
不入虎穴이면 不得虎子라하고
관리와 군사 36명을 모아 놓고 이르기를 “호랑이 굴에 들어가지 않으면 호랑이를 잡지 못한다.” 하고는
因夜하야 以火攻虜營하야 斬其使及從士三十餘級하니 餘衆百許人 悉燒死
밤을 틈타 오랑캐 진영을 불로 공격하여 그 사자使者종사從士 30여 명의 수급首級을 베니, 남은 무리 100여 명이 모두 불에 타 죽었다.
明日 乃還召鄯善王廣하야 以虜使首示之하니 一國 震怖
다음 날 마침내 돌아와서 선선국왕鄯善國王 을 불러 오랑캐 사신의 수급首級을 보여 주니, 온 나라가 놀라 두려워하였다.
叩頭하야 願屬漢하야 無二心하고 遂納子爲質이어늘 還白竇固한대 固大喜하야 具上超功效하고 復使超使于寘注+[頭註] 音田이라 本作闐이니 西域國名이라하니 其王廣德이라
이 머리를 조아리며 “나라에 속하여 두 마음이 없기를 원합니다.” 하고, 마침내 아들을 바쳐 인질로 삼자 반초班超가 돌아와서 두고竇固에게 아뢰었는데, 두고竇固가 크게 기뻐하여 반초班超공효功效를 자세히 올리고 다시 반초班超우치국于寘國注+[頭註]은 음이 전이다. 본래는 으로 되어 있으니, 서역西域의 나라 이름이다. 으로 사신 보내니, 그 국왕 광덕廣德이 항복하였다.
於是 諸國 皆遣子入侍러라
이에 여러 나라가 모두 아들을 보내어 입시入侍하였다.
西域 與漢絶六十五載러니 至是 乃復通焉하다
서역西域나라와 왕래하지 않은 지가 65년이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다시 통교通交하였다.
〈出西域傳序〉
- 《후한서後漢書 서역전서西域傳序》에 나옴 -
○ 北匈奴大入雲中이어늘 太守廉范 拒之할새 吏以衆少라하야 欲移書傍郡求救어늘 不許하다
북흉노北匈奴운중雲中을 크게 침입하므로 태수太守 염범廉范이 이들을 막았는데, 관리가 병력이 적다고 하여 옆 고을에 글을 보내어 구원을 요청하고자 하였으나 염범廉范은 허락하지 않았다.
會日暮어늘 令軍士 各交縛兩炬하야 三頭注+[通鑑要解]用兩炬交縛如十字하야 爇其三頭하고 手持一端하야 使敵人望之하고 疑兵之多하니 營中 星列이라
마침내 날이 저물자, 염범廉范이 군사들로 하여금 각각 두 개의 횃불을 십자十字로 교차시켜 묶어서 〈손으로 한 끝을 쥐고 나머지〉 세 머리에 불을 붙이니,注+[通鑑要解]두 개의 횃불을 십자十字로 엇갈리게 묶은 다음 세 끝에는 불을 붙이고 한 끝은 손으로 잡아서 적들로 하여금 이것을 바라보고 나라 병사들이 많다고 의심하게 한 것이다. 안이 하늘의 별이 나열된 것처럼 환하였다.
虜謂漢兵救至라하야 大驚하고 待旦將退어늘 令軍中蓐食注+[釋義]謂早起就床蓐中食也 王氏曰 蓐 只是軍行時所臥草蓐也하고 晨往赴之하야 斬首數百級하니自相轔藉注+[釋義] 轢車踐也 蹈藉也하야 死者千餘人이라
오랑캐들은 나라의 구원병이 이른 것이라고 여기고 크게 놀라서 아침을 기다려 후퇴하려 하였는데, 염범廉范군중軍中으로 하여금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먹고注+[釋義]아침 일찍 일어나 침상의 자리에서 밥을 먹는 것을 욕식蓐食이라 한다. 왕씨王氏가 말하기를 “은 다만 행군할 때 깔고 자는 풀자리이다.” 하였다. 달려가게 해서 수백 명의 수급首級을 베니, 오랑캐가 저희들끼리 서로 수레에 깔리고 밟혀서注+[釋義]은 수레에 깔려 치이는 것이고, 는 발에 밟히는 것이다. 죽은 자가 천여 명이었다.
由此 不敢復向雲中이러라
이로 말미암아 오랑캐가 감히 다시는 운중雲中을 향하지 못하였다.
〈出范傳〉
- 《후한서後漢書 염범전廉范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鄯善 註見前 : 鄯善은 본래 西域의 樓蘭國인데 昭帝 元鳳 4年에 나라 이름을 바꾸어 鄯善이라 하였다.
역주2 : 설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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