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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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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辛未] 〈梁大寶二年이요 魏大統十七年이요 齊天保二年이라
신미(551) - 나라 대보大寶 2년이고, 나라 대통大統 17년이고, 나라 천보天保 2년이다. -
三月 魏主殂注+[頭註]文帝寶炬也하고 太子欽하다
3월에 위주魏主注+[頭註]위주魏主문제文帝 원보거元寶炬이다. 가 죽고 태자太子 원흠元欽이 즉위하였다.
○ 齊以湘東王繹으로 爲梁相國하야 建梁臺注+[頭註] 하야 摠百揆하고 하다
나라가 상동왕湘東王 소역蕭繹양상국梁相國으로 삼아 양대梁臺注+[頭註]행대行臺이다. 를 세워 백규百揆를 총괄하고 황제皇帝를 받들게 하였다.
○ 九月 侯景 逼梁主하야 禪位於豫章王注+[頭註] 昭明太子統子華容公歡之子也이라가 尋弑之하다
○ 9월에 후경侯景양주梁主를 핍박하여 예장왕豫章王注+[頭註]예장왕豫章王 소동蕭棟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아들인 화용공華容公 소환蕭歡의 아들이다. 에게 양위讓位하게 하였다가 얼마 후 시해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簡文 幼而聰睿하야 多聞博達하고 富贍詞藻러니 不幸하야 正位宸極 受制賊臣하야 卒罹이라
간문제簡文帝는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지혜로워 견문見聞이 많고 널리 통달하며 문장력이 풍부하였는데, 불행히도 나라가 어려운 때를 만나 제왕帝王의 자리[宸極]에서 왕위를 바로잡음에 적신賊臣(侯景)에게 제재당하여 끝내 토낭土囊의 애통함을 당하였다.
當是時하야 太陰晝見하고 天雨黃沙하며 이라가 更日乃止하야 梁祚將傾 天文告變하니 雖以才如周公이라도 猶難戡難이온
이때를 당하여 태음太陰(달)이 낮에 나타나고 하늘에서 황사黃沙가 내렸으며 태백성太白星이 낮에 나타나 하늘에 뻗쳐 있다가 하루가 지나서야 비로소 그쳐서 나라의 국운國運이 기울려 하자 천문天文이 변고를 알렸으니, 비록 주공周公과 같은 훌륭한 재주가 있어도 오히려 난리를 극복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況是 何補滅亡이리오
그러하니 더구나 문장이 궁체宮體를 이루었다 한들 나라가 멸망하는 데에 무슨 보탬이 있었겠는가.
賊景 陰簒弑之謀하고 蕭棟 陽受禪之號하야 而建康之梁 爲景汚矣로다
역적인 후경侯景은 남몰래 찬탈하고 시해할 계책을 세우고, 소동蕭棟은 겉으로 선양禪讓을 받았다는 명분을 내세워 건강建康나라가 후경侯景에게 더렵혀지고 말았다.”
○ 梁王僧辯注+[頭註]大都督이라 聞太宗殂하고 啓湘東王繹하야 請上尊號하다
나라 왕승변王僧辯注+[頭註]왕승변王僧辯대도독大都督이다. 등이 태종太宗(簡文帝)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상동왕湘東王 소역蕭繹에게 아뢰어 존호尊號를 올릴 것을 청하였다.
○ 梁豫章王棟 禪位于景하니 景卽位하야 稱帝于南郊하다
나라 예장왕豫章王 소동蕭棟후경侯景에게 양위讓位하니, 후경侯景이 즉위하여 남교南郊에서 황제를 칭하였다.
大赦하고 改元太始하고 封棟爲淮陰王하다
크게 사면하고 태시太始개원改元하였으며, 소동蕭棟을 봉하여 회음왕淮陰王으로 삼았다.
[二十史略]簡文皇帝 名綱이니 在東宮十八年而後 遇侯景之亂하야 旣立 受制於景而已러라
[二十史略]簡文皇帝는 이름이 소강蕭綱이니, 동궁東宮에 있은 지 18년 만에 후경侯景의 난리를 만나 즉위하였는데, 즉위한 뒤에 후경侯景에게 제재당하기만 하였을 뿐이다.
湘東王繹 鎭江陵하야 自稱假黃越, 大都督이라하야 中外諸軍 承制러니
상동왕湘東王 소역蕭繹강릉江陵진주鎭駐하여 가황월假黃越대도독大都督이라 스스로 칭하여 중외中外의 여러 군대가 그의 통제를 받았다.
岳陽王詧 昭明太子統之第三子也 鎭襄陽하야 與繹으로 相攻할새 遣使降于西魏하야 以求援하니 西魏立梁蕭詧하야 爲梁王하다
악양왕岳陽王 소찰蕭詧소명태자昭明太子 소통蕭統의 셋째 아들인데, 양양襄陽진주鎭駐하여 소역蕭繹과 서로 공격할 때에 소찰蕭詧이 사신을 보내 서위西魏에 항복하고 구원해 줄 것을 청하니, 서위西魏나라 소찰蕭詧을 세워 양왕梁王으로 삼았다.
[二十史略]侯景 自稱漢王이라하고 廢梁主弑之하니 不及三年 改元者一이니 曰大寶
[二十史略]侯景이 스스로 한왕漢王이라 칭하고 양주梁主 간문제簡文帝를 폐위하였다가 시해하니, 양주梁主가 자리만 지키고 있은 지가 채 3년이 못 되었고 개원改元한 것이 한 번이니, 대보大寶이다.
立豫章王棟이러니 已而 簒位하다
후경侯景예장왕豫章王 소동蕭棟을 세웠는데 얼마 후 황제의 자리를 찬탈하였다.
先是 始興太守陳霸先 起兵討景하고 湘東王 遣王僧辯討景하니 簒位數月而爲僧辯霸先所敗하야 亡走吳하야 欲入海라가 爲其下所斬이라
이보다 앞서 시흥태수始興太守 진패선陳霸先이 군대를 일으켜 후경侯景을 토벌하고 상동왕湘東王 소역蕭繹왕승변王僧辯을 보내어 후경侯景을 토벌하니, 후경侯景이 황제의 지위를 찬탈한 지 몇 개월 만에 왕승변王僧辯진패선陳霸先에게 패하여 지방으로 달아나서 해도海島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부하에게 참수당하였다.
그의 시신을 건강建康으로 보내어 머리는 강릉江陵에 전달하고 손과 발은 잘라서 북제北齊로 보내었다.
湘東王立하니 是爲元皇帝러라
상동왕湘東王이 즉위하니, 이가 바로 원황제元皇帝이다.
역주
역주1 行臺 : 臺省이 지방에 있는 것을 行臺라고 칭한다.
역주2 承制 : 황제의 뜻을 받들어서 자기 마음대로 일을 처리함을 이른다.
역주3 遭家不造 : 不造는 불행함을 이르는 바, 《詩經》 〈周頌〉에 成王이 상례를 마치고 사당에 參謁하면서 지은 〈閔予小子〉라는 詩에 “불쌍한 나 小子가 집안의 불행함을 만나서 외롭고 외로이 병듦에 있다.[閔予小子 遭家不造 嬛嬛在疚]”라고 보인다.
역주4 土囊之痛 : 土囊은 흙을 담은 자루를 이른다. 簡文帝 大寶 2년(551)에 王偉가 侯景에게 太宗(簡文帝)을 죽여 백성들의 희망을 끊어버리자고 설득하니, 侯景이 그 말을 따랐다. 겨울 10월 壬寅日(2일) 밤에 王偉가 左衛將軍 彭雋‧王脩纂과 함께 太宗에게 술을 올리며 말하기를 “陛下께서 幽置된 지가 오래되었으므로 丞相이 신들을 보내어 폐하를 위해 祝壽하게 하였습니다.” 하니, 太宗이 웃으며 말하기를 “이미 帝位를 선양하였는데 어찌 陛下라고 말하는가. 이 축수하는 술잔은 나의 수명이 여기에서 끝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였다. 이에 彭雋 등이 曲項의 비파를 연주하면서 太宗과 함께 술을 실컷 마셨다. 太宗이 장차 죽임을 당할 줄을 알고 인하여 술에 만취하여 말하기를 “즐거움이 이 정도에 이를 줄은 생각지 못하였다.” 하고는 취한 뒤에 잠이 들었다. 王偉가 나가자, 彭雋이 흙이 담긴 자루를 태종의 몸 위에 올려놓고 王脩纂이 그 위에 앉으니, 太宗이 마침내 죽었다.
역주5 太白經天 : 太白은 저녁 무렵 서쪽 하늘에 보이는 金星을 이르는 바, 옛날에 占星家들은 太白星이 殺伐을 맡은 별이라 하여 兵亂을 나타내는 징조로 생각하였다.
역주6 文成宮體 : 宮體는 梁나라 徐摛가 創始한 문체의 이름으로, 글씨를 화려하고 아름답게 써서 이것을 궁중에서 본받아 썼기 때문에 宮體라고 하였다.
역주7 尸位 : 尸는 제사의 尸童과 같으니, 梁主가 임금의 자리만 차지하고 임금의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시동과 같음을 말한 것이다.
역주8 傳首江陵……送於北齊 : 이 당시 湘東王이 江陵에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侯景의 머리를 江陵에 전달한 것이요, 侯景이 예전에 東魏를 배반하였는데 北齊가 東魏에게 禪讓을 받았기 때문에 侯景의 손과 발을 잘라 北齊로 보낸 것이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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