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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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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 〈宋元嘉二十六年이요 魏太平眞君十年이라
기축(449) - 나라 원가元嘉 26년이고, 나라 태평진군太平眞君 10년이다. -
宋主欲經略注+[頭註]彊(疆)理也中原하니 群臣 爭獻策하야迎合取寵이라
송주宋主중원中原을 경략注+[頭註]경략經略은 경계를 구획하고 다스리는 것이다. 하고자 하니 여러 신하들이 다투어 계책을 올려서 군주의 뜻에 영합하여 총애를 취하였다.
彭城太守王玄謨 尤好進言하니 宋主謂侍臣曰 觀玄謨所陳하면 令人有封狼居胥意注+[釋義]王氏曰 謂令我遂起北伐之意也 狼居胥 匈奴中山名이라[頭註]漢武封狼居胥山하니 見十卷壬戌年이라로다
팽성태수彭城太守 왕현모王玄謨가 더욱 진언進言하기를 좋아하니, 송주宋主근신近臣에게 이르기를 “왕현모王玄謨가 아뢴 것을 보면 나로 하여금 낭거서산狼居胥山에 봉할 마음이 들게 한다.注+[釋義]王氏가 말하였다. “낭거서산狼居胥山에 봉할 마음이 들게 한다는 것은 자신으로 하여금 마침내 북벌할 마음을 일으키게 함을 이른다. 낭거서狼居胥흉노匈奴 지역의 이름이다.”[頭註]漢나라 무제武帝곽거병霍去病낭거서산狼居胥山에 봉하였으니, 10권 임술년조壬戌年條(B.C.119)에 보인다. ” 하였다.
御史中丞袁淑 言於上曰 陛下今當席卷趙, 魏하고 檢玉岱宗注+[釋義]檢玉 註見漢光武建武中元元年하고 岱宗 註見漢章帝元和二年하니라[頭註]岱宗 見漢光武丙辰年이라이라 臣逢千載之會하야 願上封禪書注+[釋義]史記註云 此泰山上 築土爲壇以祭天하야 報天之功이라 故曰封이요 此泰山下小山上 除地以祭하야 報地之功이라 故曰禪이니 言禪者 神之也 白虎通云 或曰 封者 金〈泥〉銀繩이라하고 或曰 石泥金繩하고 封之印璽也라하니라하노이다하다
어사중승御史中丞 원숙袁淑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이제 지방을 석권하고 옥검玉檢을 들고 대종岱宗(泰山)에 올라가 봉선封禪을 행하시게 될 것이니,注+[釋義]檢玉은 나라 광무光武 건무建武 중원中元 원년조元年條(56)에 보이고, 대종岱宗나라 장제章帝 원화元和 2년조年條(85)에 보인다.[頭註]岱宗은 나라 광무제光武帝 병진년조丙辰年條(56)에 보인다. 신은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를 만나 봉선서封禪書注+[釋義]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이 태산泰山 위에 흙을 쌓아 을 만들고 하늘에 제사하여 하늘의 공에 보답하기 때문에 이라 말하고, 이 태산泰山 아래 작은 산 위에 땅을 평평히 닦고 제사하여 땅의 공에 보답하기 때문에 이라 말하니, 이라고 말한 것은 으로 여긴 것이다. 《백호통白虎通》에 이르기를 ‘혹자는 「封이란 금니金泥은승銀繩을 말한다.」 하고, 혹자는 「石泥와 금승金繩을 하고 이것을 인새印璽로써 봉한 것이다.」한다.’ 했다.” 하였다. 를 올리기를 원합니다.” 하니, 이 기뻐하였다.
한대 徐湛之, 江湛, 王玄謨等 竝勸之어늘 沈慶之諫曰 我步彼騎하니 其勢不敵이라
송주宋主나라를 정벌하고자 하니, 서담지徐湛之강담江湛왕현모王玄謨 등이 모두 권하였는데, 심경지沈慶之가 간하기를 “우리는 보병이고 저들은 기병이니, 형세상 이미 적수가 되지 않습니다.
檀道濟再行無功하고 到彦之失利而返하니
단도제檀道濟가 두 차례 출정했으나 전공이 없었고 도언지到彦之는 실패하고 돌아왔습니다.
今料王玄謨等 未踰兩將하고 六軍之盛 不過往時하니 恐重辱王師하노이다
이제 헤아려 보건대 왕현모王玄謨 등은 두 장수보다 못하고 육군六軍의 강성함은 지난날보다 못하니, 거듭 의 군대를 욕되게 할까 두렵습니다.” 하였다.
宋主曰 王師再屈 別自有由 道濟 養寇自資하고 彦之 中塗(途)疾動하니
송주宋主가 말하기를 “의 군대가 두 번 굴복한 것은 따로 이유가 있으니, 단도제檀道濟는 적을 쉬게 하여 스스로 보충할 수 있게 하였고 도언지到彦之는 중도에 병이 났기 때문이다.
虜所恃者 唯馬
오랑캐가 믿는 것은 다만 말[馬]이 있는 것뿐이다.
今夏水浩汗 河道流通하니 汎舟北下 注+[釋義]註見孝武帝太元九年하니라必走 滑臺注+[釋義]註見孝武帝太元九年하니라小戍 易可覆拔이니
지금은 여름철이라 비가 많이 내려 물이 불어나서 수로水路가 통하니, 배를 띄워 북쪽으로 내려가면 확오碻磝注+[釋義]확오碻磝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9년(384)에 보인다. 의 적군이 반드시 달아날 것이고, 활대滑臺注+[釋義]활대滑臺효무제孝武帝 태원太元 9년(384)에 보인다. 의 적은 병력은 쉽게 공격하여 함락시킬 수 있을 것이다.
克此二城하고 館穀弔民注+[釋義] 舍也 食也 問也 居其軍之館하고 食其軍之穀也이면 虎牢, 洛陽 自然不固하리니
이 두 성을 점령하고 그곳에 머물면서 성의 곡식을 먹고 백성들을 위로한다면注+[釋義]은 머무름이요, 은 곡식을 먹음이요, 는 위문함이니, 그 군대의 관사에 머물고 그 군대의 곡식을 먹는 것이다. 호뢰虎牢낙양洛陽은 자연 견고하지 못할 것이다.
比及冬初하야 城守相接이면 虜馬過河라가 卽成擒矣리라
초겨울이 되어서 을 지키는 수비군과 서로 연결되면 오랑캐의 말이 황하를 지나오다가 우리 군대에게 즉시 사로잡힐 것이다.” 하였다.
慶之又固陳不可한대 宋主使徐湛之, 江湛難之하니 慶之曰 治國 如治家하야 耕當問奴 織當問婢어늘
심경지沈慶之가 또다시 불가함을 굳이 아뢰자, 송주宋主서담지徐湛之강담江湛으로 하여금 논란하게 하니, 심경지沈慶之가 말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 것과 같아서, 밭을 가는 것은 사내종에게 물어야 하고 베를 짜는 것은 계집종에게 물어야 합니다.
陛下今欲伐國而與白面書生注+[頭註]素非更事者 謀之하시니 事何由濟리잇고 宋主不從하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지금 다른 나라를 치고자 하면서 백면서생白面書生注+[頭註]백면서생白面書生은 세상일에는 전혀 경험이 없는 자이다. 의 무리와 모의하시니, 일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하였으나 송주宋主가 따르지 않았다.
秋七月庚午 大起軍旅할새 王公, 妃主及朝士, 牧守 下至富民 各獻金帛雜物하야 以助國用하고
가을 7월 경오일庚午日(12일)에 크게 군대를 일으킬 적에 위로 왕공王公과 왕비와 공주 및 조사朝士목사牧使수령守令으로부터 아래로 부유한 백성들에 이르기까지 각각 금과 비단과 여러 물건을 바쳐서 나라의 재정을 돕게 하였다.
又以兵力不足이라하야 悉發靑, 冀, 徐, 豫 二兗六州三五民丁注+[頭註]三丁發一하고 五丁發二하야 以爲兵이라호되 倩使蹔行注+[釋義] 假也하야 緣江五郡 集廣陵하고 緣淮三郡하고 使王玄謨 進圍滑臺하다
또 병력이 부족하다 하여 청주靑州기주冀州서주徐州예주豫州‧두 연주兗州(南兗과 북연北兗) 등 여섯 민정民丁을 3명 중 1명, 5명 중 2명꼴로 징발注+[頭註]3명의 장정 중 1명을 징발하고 5명의 장정 중 2명을 징발하여 이로써 병졸兵卒을 삼은 것이다. 하되 다른 사람을 고용하여 대신 갈 수 있게 하여注+[釋義]倩(청)使蹔行:은 빌리는 것이다. 양자강揚子江 연안의 다섯 광릉廣陵에 집결하게 하고 회수淮水 연안의 세 우이盱眙에 집결하게 하며 왕현모王玄謨로 하여금 전진하여 활대滑臺를 포위하게 하였다.
九月辛卯 魏主引兵南救之할새 玄謨士衆甚盛하고 器械精嚴이라
9월 신묘일辛卯日(4일)에 위주魏主가 군대를 이끌고 남쪽으로 와서 활대滑臺를 구원하였는데, 왕현모王玄謨의 군대가 매우 강성하고 병기가 정밀하고 삼엄하였다.
河, 洛之民 出穀操兵하고 來赴者 日以千數로되 玄謨不卽其長帥하고 而以配私暱注+[釋義] 就也 言當就用其來赴者之長帥[通鑑要解]言不能就其長帥而用之하고 使各爲部隊하야 而以其人으로 分配私所愛暱者하니 由是 衆心失望하야 攻城數月 不下러라
이때 황하黃河낙수洛水 부근의 백성들이 곡식을 바치고 병기를 잡고 와서 따르는 자가 하루에 천 명으로 헤아려졌는데, 왕현모王玄謨가 그들의 원래 우두머리에게 나아가게 하지 않고 자신의 측근에게 배속시키니,注+[釋義]卽은 나아감이니, 내부來附한 바의 우두머리에게 나아가 쓰게 함을 말한 것이다. [通鑑要解]그들의 원래 우두머리에게 나아가게 하여 그들을 쓰게 하지 않고, 각각 부대部隊를 만들게 하여 그 사람들을 자신의 측근들에게 분배한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민심이 크게 실망해서 성을 공격한 지 여러 달이 되어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冬十月乙丑 魏主渡河하니 衆號百萬이요 鼓之聲注+[釋義] 騎上鼓也 裨也 裨助鼓聲也 震動天地
겨울 10월 을축일乙丑日(9일)에 위주魏主가 황하를 건너니, 병력을 백만이라 칭하고 비고鞞鼓 소리注+[釋義]는 말 위에서 치는 북이다. 는 돕는다는 뜻이니, 북소리를 돕는 것이다.가 천지에 진동하였다.
玄謨懼하야 退走어늘 魏人 追擊之하니 死者萬餘人이러라
왕현모王玄謨가 두려워서 후퇴하여 도망하자 나라 사람이 추격하니, 죽은 자가 만여 명이었다.
十一月辛卯 弘農太守柳元景 使薛安都等으로하니 魏張是連提注+[頭註]洛州刺史 張是 複姓也 帥衆二萬하고 度崤救陝이어늘
11월 신묘일辛卯日(5일)에 홍농태수弘農太守 유원경柳元景설안도薛安都 등으로 하여금 땅을 공격하게 하니, 나라 장시연제張是連提注+[頭註]장시연제張是連提낙주자사洛州刺史장시張是복성複姓이다. 가 군대 2만을 거느리고 효산崤山을 넘어 땅을 구원하였다.
安都等 與戰於城南하니 魏衆 大潰하야 斬張是連提하다
설안도薛安都 등이 이들과 남쪽에서 싸우니, 나라 군대가 크게 무너져 장시연제張是連提를 목 베었다.
甲午 克陝城하고 進攻潼關據之하니 關中豪傑 所在蜂起者 來送款이러라
갑오일甲午日(8일)에 섬성陝城을 함락하고 진격하여 동관潼關을 점령하니, 도처에서 봉기한 관중關中호걸豪傑들이 와서 항복하였다.
以王玄謨敗退하야 魏軍深入하니 柳元景等 不宜獨進이라하야 皆召還하다
이 “왕현모王玄謨가 패전하여 후퇴해서 나라 군대가 깊이 쳐들어오니, 유원경柳元景 등이 혼자 진격할 수 없다.” 하여 모두 불러서 돌아오게 하였다.
魏主至彭城하야 引兵南下하니 所過 無不殘滅이라 城邑 皆望風奔潰하다
위주魏主팽성彭城에 이르러 병력을 이끌고 남하할 적에 지나가는 곳마다 잔멸殘滅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성읍城邑이 모두 소문만 듣고도 흩어져 달아났다.
己未 魏軍 至淮上하다
기미일己未日(12월 4일)에 나라 군대가 회수淮水 가에 이르렀다.
魏人之南寇也 不齎糧用하고 唯以抄掠爲資러니 及過淮 民多竄匿하야 抄掠 無所得하니 人馬飢乏이라
나라 사람이 남쪽을 침략할 적에 양식과 물자를 가져오지 않고 오직 노략질한 것을 이용하였는데, 회수淮水를 지나갈 적에 백성들이 양식과 물자를 많이 숨겨서 노략질해도 소득이 없으니, 사람과 말이 굶주리고 궁핍하였다.
至瓜步하야 壞民廬舍하고 及伐葦爲注+[頭註] 桴也 大曰筏이요 小曰桴하야 聲言欲渡江하니 建康 震懼하야 民皆荷擔而立이라
위군魏軍과보瓜步에 이르러서 백성들의 집을 파괴하고, 또 갈대를 베어 뗏목注+[頭註]은 뗏목이니, 큰 것을 이라 하고 작은 것을 라 한다. 을 만들어서 양자강을 건너고자 한다고 소문을 내니, 건강建康이 진동하고 두려워해서 백성들이 모두 이삿짐을 싸고 서 있었다.
宋主登石頭城하야 有憂色하야 謂江湛曰 北伐之計 同議者少러니 今日 士民勞怨하니 予之過也라하고
송주宋主석두성石頭城에 올라 근심하는 기색을 띠며 강담江湛에게 말하기를 “북벌 계획을 찬동하는 자가 적었는데, 오늘 병사와 백성들이 피로하고 원망하니 이는 나의 잘못이다.” 하고,
又曰 檀道濟若在 豈使胡馬至此리오하니라
또 말하기를 “단도제檀道濟가 만약 살아 있었다면 어찌 오랑캐의 말이 이곳에 이르게 하였겠는가.” 하였다.
역주
역주1 封狼居胥意 : 漢나라 때 霍去病이 匈奴를 정벌하여 狼居胥山에 봉해졌는 바, 狼居胥山에 봉할 마음이란 국경을 개척하여 확장하려는 뜻을 이른다.
역주2 檢玉岱宗 : 《漢書》 〈武帝紀〉의 “泰山에 올라 封禪을 한다.[登封泰山]”는 注에 “金策 石函과 金泥 玉檢을 들고 올라가 封禪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玉檢은 玉牒書를 봉함한 궤를 이르며, 玉牒은 帝王이 封禪을 행할 때 쓰는 告天文이다. 岱宗은 모든 산의 宗主라는 뜻으로 泰山을 가리킨다.
역주3 封禪書 : 《五經通義》에 이르기를 “易姓革命하고 帝王이 되어 太平을 이룩하면 반드시 泰山에 封하고 梁父에 禪하여 天命을 받아 임금이 되어서 여러 백성들을 다스리고 하늘에 太平을 告하여 여러 神의 功에 보답한다.[易姓而王 致太平 必封泰山 禪梁父 荷天命以爲王 使理群生 告太平於天 報群神之功也]” 하였다.
역주4 宋主欲伐魏 : 《資治通鑑》에는 이 이하의 記事 내용이 庚寅年條(450)에 보인다.
역주5 碻磝 : 고오
역주6 盱眙 : 우이
역주7 : 비
역주8 : 섬
역주9 : 벌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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