齊淖齒之亂
에 王孫賈從湣王
이라가 失王之處
러니 其母曰 汝朝出而晩來
면 則吾
이로라
汝今事王이라가 王走어시늘 汝不知其處하니 汝尙何歸焉고
하니 於是
에 齊亡臣
이 相與求湣王子法章
하야 立以爲齊王
하고 保莒城
하야 以拒燕
하다
○ 趙王
이 得楚和氏璧
注+[釋義]卞和는 楚之野民이라 韓子曰 和得璞於楚山中하야 獻之武王한대 王使玉人相之러니 曰 石也라하야늘 刖其左足하고 文王立에 和又奉璞獻한대 玉人曰 石也라하야늘 刖其右足하다 成王立에 和抱璞泣이어늘 王使玉人破之하야 得寶하니라이러니 秦昭王
이 欲之
하야 請易以十五城
이라
趙王
이 以 問
相如
注+[釋義]韓獻子玄孫曰康이니 食邑於藺하야 因氏焉이라 按藺은 趙邑이라한대 對曰
秦以城求璧이어늘 而王不許면 曲在我矣요 我與之璧이어늘 而秦不與我城이면 則曲在秦이니
臣은 願奉璧而往하야 使秦城不入이어든 臣이 請完璧而歸호리이다
相如乃紿秦王하야 復取璧하야 遣使者懷歸趙하고 而以身待命於秦하니 秦王이 賢而弗誅하고 禮而歸之라
제齊나라 요치淖齒의 난리에 왕손가王孫賈가 민왕湣王을 수행하다가 왕이 계신 곳을 잃었는데,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네가 아침에 나가서 늦게 오면 내가 문에 기대어 바라보고, 네가 저녁에 나가서 돌아오지 않으면 내가 마을 문에 기대어 바라본다.
네가 이제 왕을 섬기다가 왕이 도망가셨는데 네가 그 처소를 알지 못하니, 네가 그러고도 어떻게 돌아온단 말이냐?” 하였다.
왕손가王孫賈가 마침내 요치淖齒를 공격하여 죽이니, 이에 제齊나라의 도망한 신하들이 서로 함께 민왕湣王의 아들 법장法章을 찾아 세워 제왕齊王으로 삼고 거성莒城을 지켜 연燕나라에 항거하였다.
조왕趙王이
초楚나라
화씨벽和氏璧注+[釋義]변화卞和는 초楚나라의 시골 백성이다. 《한비자韓非子》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변화卞和가 초楚나라 산중에서 박옥璞玉을 얻어 무왕武王에게 바쳤는데, 왕이 옥공玉工으로 하여금 이것을 감정하게 하니, ‘돌입니다.’ 하였다. 이에 왕이 그의 왼쪽 발꿈치를 잘랐다. 문왕文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또다시 박옥璞玉을 받들고 가서 바쳤으나 옥공玉工이 ‘돌입니다.’ 하니, 왕이 그의 오른쪽 발꿈치를 잘랐다. 성왕成王이 즉위하자 변화가 박옥璞玉을 안고 우니, 왕이 옥공玉工을 시켜 그것을 깨게 하여 보옥寶玉을 얻었다.”을 얻었는데,
진秦나라
소왕昭王이 이것을 욕심내어 15개
성城과 바꿀 것을 청하였다.
조왕趙王이 이것을
인상여藺相如注+[釋義]인상여藺相如는 한헌자韓獻子의 현손玄孫인 강康이니, 인藺을 식읍食邑으로 받았으므로 인하여 씨氏로 삼았다. 살펴보건대 인藺은 조趙나라 읍邑이다. 에게 물으니,
인상여藺相如가 대답하기를
“진秦나라가 성城을 가지고 벽옥璧玉(화씨벽)을 바꿀 것을 요구하는데 왕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잘못이 우리에게 있고, 우리가 진秦나라에 벽옥을 주었는데도 진秦나라가 우리에게 성城을 주지 않는다면 잘못이 진秦나라에 있으니,
신이 원컨대 벽옥을 받들고 가서 만일 진秦나라가 성을 들이지 않으면 신이 벽옥을 온전히 하여 돌아오겠습니다.” 하였다.
인상여藺相如가 진秦나라에 이르니, 진왕秦王은 조趙나라에 성을 줄 뜻이 없었다.
인상여藺相如가 마침내 진왕秦王을 속여 다시 벽옥을 취해서, 사자使者에게 품고서 조趙나라로 돌아가게 하고 자신은 진秦나라에서 명령이 내리기를 기다리니, 진왕秦王이 어질게 여겨 죽이지 않고 예우하여 돌려보냈다.
조왕趙王은 인상여藺相如를 상대부上大夫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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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 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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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인] 3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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