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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楚義帝心元이요 西楚霸王項籍元이요 漢王劉邦元이요 韓三年이라
을미(B.C.206) - 나라 의제義帝 원년元年,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적項籍 원년元年, 한왕漢王 유방劉邦 원년元年, 나라 3년이다.
○ 是歲 秦亡하니 新舊大國三이요 小國十七이니 凡二十國注+[附註]凡二十國 楚, 西楚, 漢大國三이요 韓王成, 雍王章邯, 塞王司馬欣, 翟王董翳, 西魏王豹, 河南王申陽, 殷王司馬卬, 代王趙歇, 常山王張耳, 九江王英布, 衡山王吳芮, 臨江王共敖, 遼東王韓廣, 燕王臧荼, 膠東王田市, 齊王田都, 濟北王田安 小國十七이라 凡二十國이니 皆項王所立이라 是歲 韓, 塞, 翟, 遼東, 膠東, 齊, 濟北七國亡이라이라
○ 이 해에 나라가 망하니, 신구新舊대국大國이 3개국이고 소국小國이 17개국이니, 모두 20개국이다.注+[附註]권지사卷之四 한기漢紀 (懷王), 서초西楚(項羽), 대국大國이 3개국이요, 한왕韓王 , 옹왕雍王 장한章邯,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 적왕翟王 동예董翳, 서위왕西魏王 , 하남왕河南王 신양申陽, 은왕殷王 사마앙司馬卬, 대왕代王 조헐趙歇,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 구강왕九江王 영포英布, 형산왕衡山王 오예吳芮, 임강왕臨江王 공오共敖, 요동왕遼東王 한광韓廣, 연왕燕王 장도臧荼, 교동왕膠東王 전시田市, 제왕齊王 전도田都, 제북왕濟北王 전안田安소국小國이 17개국이다. 합하여 20개국이니, 모두 항왕項王이 세운 것이다. 이 해에 , , , 요동遼東, 교동膠東, , 제북濟北의 7개국이 망하였다. -
冬十月注+[原註]如淳註曰 以高祖十月至霸上이라 故因秦以十月爲歲首 沛公 至霸上하니 秦王子嬰注+[頭註]趙高殺二世하고 曰 秦 古王國이러니 始皇君天下故 稱帝 今六國復立하니 爲王如古라하고 便立子嬰爲秦王也하니라 係頸以組注+[釋義] 天子之韍也 係頸者 以示降服이니 欲其自殺이라하고 封皇帝璽符節하야 降軹道旁注+[釋義]軹道亭 東去霸城觀四里 東去霸水百步 括地志 軹道在雍州萬年東北十六里苑中이라이어늘
겨울 10월에注+[原註]동시월冬十月여순如淳에 이르기를 “고조高祖가 10월에 패상霸上에 이르렀다. 그러므로 나라를 따라 10월을 세수歲首로 삼은 것이다.” 하였다. 패공沛公패상霸上에 이르니, 진왕秦王 자영子嬰注+[頭註]조고趙高이세二世를 시해하고 말하기를 “나라는 옛 왕국이었는데, 시황始皇이 천하에 임금이 되었기 때문에 라고 칭한 것이다. 이제 육국六國이 다시 섰으니, 옛날과 같이 이 되어야 한다.” 하고는 곧 자영子嬰을 세워 진왕秦王이라 하였다. 흰 수레와 흰 말로 목에 인끈을 매고注+[釋義]천자天子(인끈)이다. 목에 매는 것은 항복함을 보이는 것이니, 자살하고자 하는 것이다. 황제의 옥새玉璽부절符節을 봉함하여 지도軹道 가에서注+[釋義]지도정軹道亭은 동쪽으로 패성관霸城觀과의 거리가 4리이고 은 동쪽으로 패수霸水와의 거리가 100보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지도軹道옹주雍州 만년현萬年縣 동북쪽 16리 원중苑中에 있다.” 하였다. 항복하였다.
諸將 或言誅秦王한대 沛公曰 始 固以能寬容이라
여러 장수들이 혹 진왕秦王을 죽일 것을 말하자, 패공沛公은 말하기를 “처음에 회왕懷王이 나를 보낸 것은 진실로 관용寬容하기 때문이었다.
且人已服降이어늘殺之不祥이라하고 乃以屬吏하다
또 사람이 이미 항복하였는데, 죽이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고는 마침내 자영子嬰을 관리에게 맡겼다.
〈出本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史略 史評]司馬公曰
[史略 사평史評]司馬溫公이 말하였다.
孔子曰知(智)及之라도 仁不能守之 雖得之 必失之라하시니 秦之謂也
공자孔子가 말씀하기를 ‘지혜가 거기에 미치더라도 이 그것을 지킬 수 없으면 비록 얻더라도 반드시 잃는다.’ 하셨으니, 나라를 두고 말한 것이다.
善夫
아, 훌륭하다.
曰 秦以區區之地 致萬乘之權하야 八州而朝同列 百有餘年이라
가생賈生(賈誼)의 말에 이르기를 ‘나라가 구구한 옹주雍州 땅을 가지고 만승萬乘 천자天子의 권세를 이룩하여 팔주八州를 점령하고 동렬들에게 조회 받은 지가 백여 년이나 되었다.
然後 以六合爲家하고 殽函爲宮이러니 一夫作難 而七廟隳하고 身死人手하야 爲天下笑者 何也
그런 뒤에 육합六合을 집으로 삼고 효함殽函(殽山과 함곡관函谷關)을 궁궐로 삼았는데, 한 필부匹夫가 난을 일으키자 칠묘七廟가 무너지고 황제의 몸이 남의 손에 죽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어째서인가?
仁義不施하고 而攻守之勢異也라하니라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아서였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하였다.”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攻守無異勢
“공격과 수비는 형세가 다르지 않다.
秦以詐力得之하니 豈有能施仁義之理邪
나라가 속임수와 무력으로 천하天下를 얻었으니, 어찌 인의仁義를 베풀 리가 있겠는가.”
○ 沛公 西入咸陽하니 諸將 皆爭走金帛財物之府하야 分之호되 蕭何獨先入收秦丞相府圖籍하야 藏之注+[原註]藏之 漢書高祖紀云 收秦丞相御史律令圖書藏之
패공沛公이 서쪽으로 함양咸陽에 들어가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다투어 금과 비단과 재물을 보관한 창고로 달려가서 이를 나누어 가졌으나 소하蕭何는 홀로 먼저 나라 승상부丞相府에 들어가서 지도와 호적을 거두어 보관하였다.注+[原註]한서漢書》 〈고조기高祖紀〉에 이르기를 “나라 승상부丞相府어사대御史臺율령律令도서圖書를 거두어 보관했다.” 하였다.
以此 沛公 得具知天下, 戶口多少, 彊弱之處러라
이 때문에 패공沛公은 천하의 요새와 호구戶口의 많고 적음과 강하고 약한 곳을 자세히 알게 되었다.
〈出蕭相國世家〉
- 《사기史記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 나옴 -
朱氏曰
주씨朱氏(朱黼)가 말하였다.
高帝入關 而蕭何獨先收秦丞相府律令圖書하니 其慮深矣
고제高帝관중關中에 들어가자 소하蕭何가 홀로 먼저 나라 승상부丞相府에 보관되어 있던 율령律令도서圖書를 수습하였으니, 생각함이 깊다.
然獨不念治天下之道 非圖籍之所能備 保天下之道 非律令之所能紀者乎
그러나 천하를 다스리는 방도는 도적圖籍(지도와 호적)으로 구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천하를 보존하는 방도는 율령律令으로 기록할 수 있는 바가 아님을 어찌 생각하지 않았는가.
秦人以四方書籍으로 盡付之烈焰之中이로되 而先王遺書 猶幸略存於博士掌故之府하니 使何與高帝少有王天下之志하야 因丞相府하야 以收圖籍하고 因博士學官하야 以收遺書하야 用圖籍之形勢하야 以收效於百戰搶攘之日하고 用帝王之遺書하야 以保治於一定甫安之時런들 則漢之基業 當與商周比隆矣리라
나라 사람들이 사방四方의 서적을 모두 뜨거운 화염 속에 던져 태웠으나 선왕先王유서遺書(남은 책)가 오히려 다행히 박사博士장고掌故(故事를 맡은 관원)의 부고府庫에 남아 있었으니, 만일 소하蕭何고제高帝가 조금이라도 천하에 왕 노릇 할 뜻이 있어 승상부丞相府를 인하여 도적圖籍을 수습하고 박사博士학관學官들을 인하여 유서遺書를 거두어서, 도적圖籍의 형세를 사용하여 백 번 싸워 혼란할 때에 효험을 거두고 제왕帝王유서遺書를 사용하여 한 번 정하여 겨우 편안할 때에 다스림을 보존했더라면 나라의 기업基業이 마땅히 나라, 나라와 함께 똑같이 높았을 것이다.
不知出此하야 遂使先王遺典으로 復灰於項籍之手하야 使天下不見帝王之全書하니 蕭何不得辭其責矣니라
그런데 이렇게 할 줄을 몰라서 마침내 선왕先王의 남은 전적典籍으로 하여금 다시 항적項籍의 손에 불타게 하여, 천하로 하여금 제왕帝王의 온전한 글을 보지 못하게 하였으니, 소하蕭何가 그 책임을 면치 못할 것이다.”
○ 沛公 見秦宮室帷帳 狗馬重寶 婦女以千數하고 意欲留居之러니
패공沛公나라의 궁실宮室유장帷帳과 개와 말과 귀중한 보물과 부녀자가 천으로 헤아려지는 것을 보고는 마음에 그대로 머물러 살고자 하였다.
樊噲諫曰 沛公 欲有天下耶잇가
이에 번쾌樊噲가 간하기를 “패공沛公께서는 천하를 소유하고자 하십니까?
將爲富家翁耶잇가
부잣집 늙은이가 되고자 하십니까?
凡此奢麗之物 皆秦所以亡也 沛公 何用焉이리잇고
무릇 이 사치하고 화려한 물건들은 모두 나라가 멸망하게 된 이유이니, 패공沛公은 어디에 쓰시겠습니까?
願急還霸上하고 無留宮中하소서 沛公 不聽이어늘
원컨대 급히 패상霸上으로 돌아가고 궁중宮中에 머물지 마소서.” 하였으나 패공沛公이 듣지 않았다.
張良曰 秦爲無道故 沛公 得至此하니 夫爲天下除殘賊인대 宜縞素爲資注+[釋義]王氏曰 縞 繒之精白者 謂無采飾也 藉也 欲令沛公으로 反秦奢服하고 儉服以爲藉也어늘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나라가 무도하였기 때문에 패공沛公이 여기에 이를 수 있었으니, 천하를 위하여 잔적殘賊(백성을 괴롭히는 자)을 제거하려고 한다면 마땅히 흰 명주옷(검소함)을 바탕(밑천)으로 삼아야 할 것입니다.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는 비단 중에 곱고 흰 것이고, 는 채색과 꾸밈이 없는 것을 이르며, 는 바탕이다. 패공沛公으로 하여금 나라의 사치한 의복과 반대로 하여 검소한 의복을 바탕으로 삼게 한 것이다.
今始入秦하야 卽安其樂이면 所謂助桀爲虐이니이다
그런데 이제 처음 나라에 들어와서 그들이 즐기던 것을 편안히 여긴다면 이는 이른바 ‘걸왕桀王을 도와 포악함을 한다.’는 것입니다.
且忠言逆耳 利於行이요 毒藥苦口 利於病이니 願沛公 聽噲言하소서 沛公 乃還軍霸上하다
그리고 또 충성스러운 말이 귀에는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롭고 독한 약이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로우니, 원컨대 패공沛公번쾌樊噲의 말을 들으소서.” 하니, 패공沛公이 마침내 패상霸上으로 돌아와 주둔하였다.
〈出留侯世家 及徐廣注〉
-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와 서광徐廣에 나옴 -
○ 十一月 沛公 悉召諸縣父老豪傑하야 謂曰 父老苦秦苛法 久矣
11월에 패공沛公이 여러 부로父老호걸豪傑들을 다 불러 이르기를 “부로父老들이 나라의 까다로운 법에 고생한 지가 오래되었다.
誹謗者하고 偶語者棄市러니 吾當王
정부를 비방하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하고 둘이 모여 말하는 자는 기시棄市하였는데, 내가 마땅히 관중關中에 왕 노릇 할 것이다.
부로父老들과 약속하노니, 은 단지 3일 뿐이다.
殺人者하고 傷人及盜 抵罪注+[釋義] 至也, 當也 除秦酷政하고 但至於罪也 張氏曰 秦法 一人犯罪 擧家及隣伍皆坐之러니 今但當其身坐하고 父子兄弟 罪不相及이라하고 悉除去秦法하노니 諸吏民注+[原註]此用漢書及史記로되 作吏人하니 下同이라 皆案堵如故하라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 사람을 상해하거나 도둑질한 자는 그에 상응하는 죄에 이르게 하고,注+[釋義]는 이르고 해당함이니, 나라의 가혹한 정사를 제거하고 다만 〈죄를 지은 자만〉 죄에 이르게 한 것이다. 장씨張氏(張晏)가 말하였다. “나라 에는 한 사람이 죄를 범하면 온 집안과 인오隣伍가 모두 연좌되었는데, 지금은 다만 그 사람에게만 죄를 해당시키고 부자와 형제는 죄가 서로 미치지 않게 한 것이다.” 나머지는 나라의 법을 모두 제거하노니, 여러 관리와 백성들은注+[原註]이는 《한서漢書》와 《사기史記》의 내용을 인용한 것인데, 이민吏民이 원래 이인吏人으로 되어 있으니, 아래도 이와 같다. 모두 옛날과 같이 편안히 살라.
凡吾所以來 爲父老除害 非有所侵暴 無恐하라
무릇 내가 여기에 온 까닭은 부로父老를 위하여 해로움을 제거하려고 한 것이지 침략하고 포악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니 두려워하지 말라.
且吾所以還軍霸上 待諸侯至而定約束注+[原註]漢書 作要束이라라하고 乃使人으로 與秦吏行縣鄕邑하야 告諭之하니
또 내가 패상霸上으로 돌아와 주둔한 것은 제후들이 이르기를 기다려 약속을 정하려注+[原註]약속約束이 《한서漢書》에는 ‘요속要束’으로 되어 있다. 해서일 뿐이다.” 하고는 마침내 사람을 시켜서 나라의 관리와 함께 을 순행하여 이를 고유告諭하게 하였다.
秦民 大喜하야 爭持牛羊酒하야 獻饗軍士어늘 沛公 又讓不受曰 倉粟多하야 非乏하니 不欲費民이라한대
나라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여 다투어 소와 양과 술과 밥을 가지고 와서 바쳐 군사들에게 먹게 하였으나 패공沛公은 또 사양하고 받지 않으며 말하기를 “창고에 곡식이 많아 부족하지 않으니, 백성의 재물을 허비하고자 하지 않는다.” 하였다.
民又益喜하야 唯恐沛公不爲秦王이러라
백성들이 또 더욱 기뻐하여 행여 패공沛公진왕秦王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出史記本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史略 史評]唐氏曰
[史略 사평史評]唐氏가 말하였다.
不殺子嬰, 約法三章 此理最好하야 爲得天下之根本也 項羽 一切反是니라
패공沛公자영子嬰을 죽이지 않고 삼장三章을 약속한 것은, 이 이치가 매우 좋아서 천하天下를 얻는 근본이 되었으니, 항우項羽는 일체 이와 반대로 하였다.”
[史略 史評]廬陵劉氏曰
[史略 사평史評]廬陵劉氏가 말하였다.
高帝入咸陽하야는 則除秦苛法하고 光武至河北하야는 則除莽苛政하니 二漢之興 宜哉인저
고제高帝함양咸陽에 들어가서는 나라의 까다로운 법령을 제거하였고, 광무제光武帝하북河北에 이르러서는 왕망王莽의 까다로운 정사를 제거하였으니, 전한前漢후한後漢이 일어남이 당연하다.”
○ 項羽旣定河北하고 率諸侯兵하야 欲西入關이러니 秦降卒 多怨言이어늘
항우項羽하북河北을 평정하고 제후諸侯들의 병력을 인솔하여 서쪽으로 관중關中에 들어가고자 하였는데, 나라의 항복한 군사들이 원망하는 말을 많이 하였다.
羽乃夜擊하야 坑秦卒二十餘萬人新安注+[釋義]邑名이니 去弘農東三百餘里 括地志云 新安古城 在洛州澠池縣東二十里城南하다
항우項羽는 마침내 밤에 이들을 공격하여 나라 병졸 20여만 명을 신안新安注+[釋義]신안新安의 이름이니, 홍농弘農 동쪽 300여 리 지점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신안新安의 옛 낙주洛州 민지현澠池縣 동쪽 20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 남쪽에 파묻어 죽였다.
〈出羽本紀〉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胡氏管見曰
호씨胡氏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말하였다.
莫强於人心이로되 而可以仁結이요 可以誠感이요 可以德化 可以義動也 莫柔於人心이로되 而不可以威劫이요 不可以術計 不可以法持 不可以利奪也
“사람의 마음보다 더 강한 것이 없으나 으로 맺을 수 있고 정성으로 감동시킬 수 있고 으로 교화시킬 수 있고 로 감동시킬 수 있으며, 사람의 마음보다 더 유순한 것이 없으나 위엄으로 협박할 수 없고 꾀로 계산할 수 없고 법으로 억누를 수 없고 이익으로 빼앗을 수 없다.
二十萬人不服 羽得而坑之어니와 諸侯王不服하야 四面而起 羽獨且奈何哉
20만 명의 군사가 복종하지 않은 것은 항우項羽가 구덩이에 묻어 죽일 수 있었으나 제후왕諸侯王들이 복종하지 않아 사면에서 일어날 때에는 항우項羽가 홀로 장차 어찌할 수 있었겠는가.”
○ 或說沛公曰 秦富 十倍天下하고 地形彊이라
혹자가 패공沛公을 설득하기를 “나라는 부유함이 천하의 열 배이고 땅의 형세가 강합니다.
聞項羽號秦降將章邯하야 爲雍王하고 王關中이라하니 今卽來하면 沛公 恐不得有此하니
들으니 항우項羽나라의 항복한 장수 장한章邯을 칭호하여 옹왕雍王이라 하고 관중關中에 왕 노릇 하게 한다 하니, 지금 만일 항우項羽가 오면 패공沛公이 이곳을 소유하지 못할까 두렵습니다.
可急使兵守函谷關하야 無內(納)諸侯軍하고 稍徵關中兵하야 以自益하야 距之하소서 沛公 然其計하야 從之하다
급히 병력으로 함곡관函谷關을 지켜 제후諸侯의 군대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고 차츰 관중關中의 병력을 징발하여 스스로 보태어 이를 막도록 하십시오.” 하니, 패공沛公이 그 계책을 옳게 여겨 따랐다.
〈出史高祖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已而 項羽至關하니關門
얼마 후 항우項羽함곡관函谷關에 이르니, 관문關門이 닫혀 있었다.
聞沛公已定關中하고 大怒하야 使黥布等으로 攻破函谷關하다
패공沛公이 이미 관중關中을 평정했다는 말을 듣고는 크게 노하여 경포黥布 등으로 하여금 함곡관函谷關을 공격하여 부수게 하였다.
十二月 項羽進至戲注+[釋義]水名이니 在新豐東이라러니 沛公 左司馬曹無傷 使人言羽曰 沛公 欲王關中하야 珍寶 盡有之하고 欲以求封이라한대
12월에 항우項羽가 전진하여 희수戲水注+[釋義]는 물 이름이니 신풍新豐 동쪽에 있다. 이르렀는데, 패공沛公좌사마左司馬 조무상曹無傷이 사람을 보내어 항우項羽에게 말하기를 “패공沛公관중關中에 왕 노릇 하고자 하여 진귀한 보물을 모두 소유하고 관중왕關中王에 봉해줄 것을 요청하고자 합니다.” 하였다.
羽大怒하야 饗士卒하고 期旦日擊沛公軍하니
항우項羽가 크게 노하여 사졸들을 먹이고 다음날 아침 패공沛公의 군대를 공격하기로 약속하였다.
當是時하야 羽兵 四十萬이니 號百萬이라하야 在新豐鴻門注+[釋義]鴻門 地名이니 在戲西 姚察曰 在新豐古城東하니 未至戲水하야 道南有斷原하니 南北洞門하고 沛公兵 十萬이니 號二十萬이라하야 在霸上하다
이때에 항우項羽의 병력은 40만인데 100만이라 일컬어 신풍新豐홍문鴻門注+[釋義]홍문鴻門지명地名이니 희수戲水 서쪽에 있다. 요찰姚察이 말하기를 “홍문鴻門신풍新豐 고성古城의 동쪽에 있다. 희수戲水에 이르기 전에 길 남쪽에 끊긴 언덕이 있으니 남북南北동문洞門이 이곳이다.” 하였다. 있었고, 패공沛公의 병력은 10만인데 20만이라 일컬어 패상霸上에 있었다.
范增 說羽曰 沛公 居山東時貪財好色이러니 今入關 財物 無所取하고 婦女 無所幸하니 其志不小
범증范增항우項羽를 설득하기를 “패공沛公산동山東에 있을 때에는 재물을 탐하고 여색을 좋아하였는데, 지금 관중關中에 들어와서는 재물을 취하는 바가 없고 부녀자들을 총애하는 바가 없으니, 이는 그 뜻이 작지 않은 것입니다.
吾令人望其氣러니 皆爲龍成五采하니
사람을 시켜 그 기운을 바라보게 하였는데, 모두 ‘이 되어 오채五采를 이루고 있다.’ 하니, 이는 천자天子의 기운입니다.
急擊勿失하소서
급히 공격하여 놓치지 마소서.” 하였다.
[史略 史評]唐氏曰
[史略 사평史評]唐氏가 말하였다.
入關 不取財物하고 不幸婦女하니 此高帝創業規模也니라
관중關中에 들어가서는 재물을 취하지 않고 부녀자들을 총애하지 않았으니, 이는 고제高帝나라를 창업創業한 규모이다.”
項伯者注+[釋義] 其字也 一云名纏이요 字伯陵이라 項羽 季父也
항백項伯이란 자는注+[釋義]이다. 일설一說에는 “이름이 이고 백릉伯陵이다.” 하였다.항우項羽계부季父(叔父)이다.
素善張良이러니 夜馳見良하야 具告以事하고 欲呼與俱去한대
평소 장량張良과 친하였는데 밤에 달려가 장량張良을 보고서 자세히 사태를 말하고 불러내어 함께 떠나가고자 하였다.
張良曰 臣爲韓王하야 送沛公이러니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신은 한왕韓王을 위하여 패공沛公을 전송하는 중입니다.
沛公 今有急이어늘 亡去 不義 不可不語니라 良乃入하야 具告沛公하고固要項伯하야 入見沛公한대
패공沛公이 이제 위급한 일이 있는데, 도망가는 것은 의롭지 못하니,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고는 장량張良이 마침내 들어가 패공沛公에게 자세히 말하고 굳이 항백項伯에게 요청하여 들어와서 패공沛公을 만나 보게 하였다.
沛公 奉巵酒爲壽注+[釋義] 飮酒禮器也 上酒爲稱壽 非大行酒也하고 約爲婚姻曰 吾入關하야秋毫 不敢有所近하고 籍吏民, 封하야 而待將軍호니 所以遣將守關者 備他盜也
패공沛公이 술잔을 받들어 축수祝壽를 하고注+[釋義]는 술을 마시는 예기禮器이다. 술잔을 올리는 것을 라 칭한 것이요, 크게 술잔을 돌리는 것이 아니다. 혼인할 것을 약속하며 말하기를 “내가 관중關中에 들어와 털끝만큼도 감히 가까이한 바가 없으며, 관리와 백성을 장부에 올리고 부고府庫를 봉함하여 장군을 기다렸으니, 장수를 보내어 관문關門을 지키게 한 이유는 다른 도적을 대비하기 위한 것입니다.
豈敢反乎리오
어찌 감히 배반하겠습니까?
願伯 明言不敢倍(背)德하라
원컨대 항백項伯은 내가 감히 은덕을 배반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말해주십시오.” 하였다.
項伯 許諾하고 謂沛公曰 旦日 不可不蚤(早)自來謝니라 沛公曰 諾
항백項伯이 허락하고 패공沛公에게 이르기를 “내일 아침에 일찍 스스로 와서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하니, 패공沛公이 이를 허락하였다.
於是 項伯 復夜去하야 俱以沛公言報羽하고 因言曰 沛公 不先破關中이면 豈敢入乎
이에 항백項伯이 다시 밤에 가서 항우項羽에게 패공沛公의 말을 자세히 전하고, 인하여 말하기를 “패공沛公이 먼저 관중關中을 격파하지 않았다면 이 어찌 감히 들어올 수 있었겠는가?
今人有大功이어늘 而擊之 不義也 不如因善遇之라한대 項羽許諾하다
이제 이 사람이 큰 공이 있는데 공격하는 것은 의롭지 못하니, 인하여 잘 대우하는 것만 못하다.” 하니, 항우項羽가 허락하였다.
沛公 旦日 從百餘騎하야 來見羽鴻門하고 謝曰
패공沛公이 다음날 아침 백여 명의 기병騎兵을 데리고 홍문鴻門에 와서 항우項羽를 보고 사과하기를
臣與將軍으로戮力而攻秦할새 將軍 戰河北하고 戰河南이러니
“신이 장군과 힘을 다하여 나라를 공격할 적에 장군은 하북河北에서 싸우고 신은 하남河南에서 싸웠는데,
不自意先入關하야 能破秦하고 得復見將軍於此로라
스스로 뜻하지 않게 먼저 관중關中에 들어와서 나라를 격파하고 다시 장군을 이곳에서 뵙게 되었습니다.
今者 有小人之言하야 令將軍與臣有隙이로다 項羽曰 此 沛公 左司馬曹無傷 言之 不然이면何以至此리오
그런데 이제 소인小人의 이간질하는 말이 있어서 장군으로 하여금 신과 틈이 있게 하였습니다.” 하니, 항우項羽가 말하기를 “이는 패공沛公좌사마左司馬조무상曹無傷이 말한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내가 어찌 이에 이르렀겠는가?” 하였다.
羽因留沛公飮할새 范增 注+[釋義]謂頻數動目以諭之하고 擧所佩玉玦注+[釋義] 玉佩也 如環而有缺이라 左閔二年 衛懿公 與石祁子玦이라한대 玉玦也 示以當決斷也라하니 卽此하야 以示之者三이로되 羽不應하다
항우項羽가 인하여 패공沛公을 머물게 하고 술을 마시게 하였는데, 범증范增이 여러 번 항우項羽에게 눈짓을 하고注+[釋義]수목數目은 자주 눈짓을 하여 깨우침을 이른다. 차고 있던 옥결玉玦을 들어 보이기를注+[釋義]옥패玉佩이니, 고리(반지)와 같은데 터진 틈이 있다. 《춘추좌전春秋左傳민공閔公 2년조年條에 “나라 의공懿公석기자石祁子에게 을 주었다.” 하였는데, 에 “옥결玉玦이니 마땅히 결단해야 함을 보인 것이다.” 하였으니, 바로 이것이다. 세 번이나 하였으나 항우項羽가 이에 응하지 않았다.
增起出하야하야 謂曰 君王爲人 不忍하니 入前爲壽하고 壽畢이어든 請以劍舞하야 因擊沛公於坐하야殺之하라
범증范增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와 항장項莊을 불러 이르기를 “군왕의 사람됨이 차마 못하니, 그대가 들어가 앞에 나아가 축수祝壽하고 축수祝壽가 끝나거든 검으로 춤출 것을 청하여, 이 틈을 타서 패공沛公을 그 자리에서 쳐서 죽여라.
不(否)者 若屬 皆且爲所虜하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이 모두 장차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하였다.
入爲壽하고 壽畢 曰 軍中 無以爲樂하니 請以劍舞하노이다 羽曰 諾
항장項莊이 들어가 축수하고, 축수가 끝나자 말하기를 “군중軍中에 오락으로 삼을 것이 없으니, 검으로 춤을 출 것을 청합니다.” 하니, 항우項羽가 이를 허락하였다.
項莊 拔劍起舞어늘 項伯 亦拔劍起舞할새 常以身翼蔽沛公하니 不得擊이라
항장項莊이 검을 뽑아 일어나 춤을 추자, 항백項伯 또한 검을 뽑아 일어나 춤을 추었는데, 항상 몸으로 패공沛公을 좌우에서 엄호하여 항장項莊이 공격할 수가 없었다.
於是 張良 至軍門하야 見樊噲하고 曰 今項莊 拔劍舞하니 其意常在沛公也니라
이에 장량張良군문軍門에 이르러 번쾌樊噲를 보고 말하기를 “지금 항장項莊이 검을 뽑아 춤을 추는데, 그 뜻이 항상 패공沛公에게 있다.” 하니,
噲曰 此迫矣라하고 卽帶劍擁盾注+[釋義]兵也 所以扞身이라하고 入軍門하야 披帷立하야 目視項羽하니 頭髮 上指하고盡裂이라
번쾌樊噲가 말하기를 “이는 매우 급박하다.” 하고는 즉시 검을 차고 방패를 끼고注+[釋義]은 무기이니, 몸을 막아 지키는 것이다. 군문軍門에 들어가 휘장을 헤치고 서서 눈을 부릅뜨고 항우項羽를 보니, 두발頭髮이 위를 향해 서고 눈초리가 모두 찢어졌다.
羽曰 壯士로다
항우項羽가 말하기를 “장사壯士이다.
賜之巵酒하라 則與斗巵酒注+[通鑑要解] 受四升이요 斗巵 受一斗之巵也한대
큰 잔에 술을 주어라.” 하니, 즉시 한 말 들이 큰 술잔注+[通鑑要解]는 4이 들어가고, 두치斗巵는 1가 들어가는 술잔이다. 을 주었다.
噲飮之어늘 羽曰 賜之彘肩하라 則與一生彘肩한대
번쾌樊噲가 이를 마시자, 항우項羽가 “돼지 다리를 주어라.” 하니, 즉시 생돼지 앞다리 하나를 주었다.
噲拔劍切而啗之어늘 羽曰 壯士로다
번쾌樊噲가 검을 뽑아 이것을 베어 먹자, 항우項羽가 말하기를 “장사이다.
復能飮乎 噲曰
다시 더 마실 수 있겠는가?” 하니, 번쾌樊噲가 말하였다.
死且不避어든 巵酒 安足辭리오
“신이 죽는 것도 피하지 않는데, 잔의 술을 어찌 사양하겠습니까?
夫秦有虎狼之心하야 殺人 如不能擧하고刑人 如恐不勝하니 天下皆叛之
나라는 호랑이와 이리같이 사나운 마음이 있어서 사람 죽이기를 다 거행하지 못할 것처럼 여기고 사람을 형벌하기를 이루 다하지 못할 것처럼 여기니, 천하가 모두 배반하였습니다.
懷王 與諸將約曰 先破秦入咸陽者 王之라하시더니
회왕懷王이 여러 장수들과 약속하기를 ‘먼저 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함양咸陽에 들어가는 자를 왕으로 삼겠다.’ 하였습니다.
沛公 先破秦入咸陽하야 毫毛 不敢有所近하고 還軍霸上하야 以待將軍하니 勞苦而功高如此어늘 未有封爵之賞하고 而聽細人之說하야 欲誅有功之人하시니亡秦之續耳
이제 패공沛公이 먼저 나라를 격파하고 함양咸陽에 들어가 털끝만큼도 감히 가까이한 바가 없고, 패상霸上으로 돌아와 군을 주둔하고 장군을 기다렸으니, 노고가 많고 공이 높음이 이와 같은데도 관작을 봉하는 은 없고 세인細人(小人)의 말을 듣고서 공이 있는 사람을 죽이고자 하시니, 이는 망한 나라를 답습하는 것일 뿐입니다.
竊爲將軍不取也하노이다
적이 장군을 위하여 취하지 않겠습니다.” 하였다.
須臾 沛公 起如厠할새 因招噲出하야間行趣(趨)霸上하고 留張良하야 使謝羽하다
얼마 후 패공沛公이 일어나 측간에 가면서 인하여 번쾌樊噲를 불러내어 샛길로 달려 패상霸上으로 가고 장량張良을 남겨두어 항우項羽에게 사과하게 하였다.
〈出項羽紀〉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止齋陳氏曰
지재진씨止齋陳氏(陳傅良)가 말하였다.
鄧侯不殺楚文王하야 而楚卒滅鄧하고 楚子不殺晉文公하야 而晉卒敗楚注+[頭註]而晉卒敗楚 魯莊公六年 楚文王伐申할새 過鄧이어늘 鄧侯止而饗之한대 三甥 請殺楚子호되 鄧侯不許러니 後楚伐鄧滅之하니라 魯僖公二十三年 晉公子重耳出奔及楚어늘 楚子饗之한대 子玉 請殺之호되 楚子不聽이러니 後與楚人戰于城濮하야 楚軍敗績也하니라하고 項籍不殺高帝하야 而漢卒誅項하니 志士至今惜之
“옛날에 등후鄧侯나라 문왕文王을 죽이지 않아서 나라가 끝내 나라를 멸망시켰고, 초자楚子나라 문공文公을 죽이지 않아서 나라가 끝내 나라를 패퇴시켰고,注+[頭註]나라 장공莊公 6년에 나라 문왕文王나라를 정벌할 때에 나라를 지나가자 등후鄧侯가 그를 머물게 하여 연향을 베푸니, 삼생三甥초왕楚王을 죽일 것을 청하였으나 등후鄧侯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뒤에 나라가 나라를 쳐서 멸망시켰다. 나라 희공僖公 23년에 나라 공자公子 중이重耳가 망명하여 나라에 이르자 초왕楚王이 그에게 연향을 베푸니, 자옥子玉이 그를 죽일 것을 청했으나 초왕楚王이 듣지 않았는데, 뒤에 나라 중이重耳성복城濮에서 초인楚人과 싸워 초군楚軍이 대패하였다. 항적項籍고제高帝를 죽이지 않아서 나라가 끝내 항적項籍을 죽였으니, 지사志士들이 지금까지 애석해한다.
嗚呼
아!
必殺其所忌하야 而以得國이면 則安知天下之禍 將不出於其所不足忌者哉
반드시 꺼리는 바를 죽여서 나라를 얻는다면 천하의 가 장차 꺼릴 만하지 않은 데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夫變之來也無常하고 而英雄豪傑 其伏也無盡하니 變之來也無常이면 則不可以逆定이요 英雄豪傑 其伏也無盡이면 則必有出於意料之所不及이라
변고가 옴은 일정함이 없고 영웅호걸이 숨어 있음은 무궁무진하니, 변고가 옴이 일정함이 없다면 미리 정할 수가 없고 영웅호걸이 숨어 있음이 무궁무진하다면 반드시 뜻으로 헤아림이 미치지 못하는 데에서 나올 경우가 있는 것이다.
是故 詳於禁者 有法外之遺姦하고 工於謀者 有術中之隱禍
이 때문에 금령禁令을 자세하게 하면 밖에 〈법망을 빠져나가는〉 간사함이 있고, 꾀하기를 공교하게 하면 꾀 속에 숨어 있는 가 있는 것이다.
詩曰 魚網之設 鴻則罹之라하니 網以伺魚也로되 而顧以得鴻하니 天下之事 又焉用專於其所忌하야 而淫怒焉以逞哉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어망魚網을 설치하였는데 기러기가 걸렸다.’ 하였으니, 어망魚網은 물고기를 잡기 위한 것이나 도리어 기러기를 잡았으니, 천하의 일이 또 어찌 꺼리는 바에 오로지 힘을 써서 지나치게 노여워하여 화풀이할 필요가 있겠는가.
彼范增者 滋羽之暴하야 徒欲斃漢於一擊하니 吾恐沛公雖死 而天下之爲沛公者 可得以盡殺耶
범증范增이란 자는 항우項羽의 포악함을 증가시켜 단지 나라를 일격에 패망시키려 하였으니, 내 생각에는, 패공沛公이 비록 죽었더라도 천하의 패공沛公이 될 자를 어찌 다 죽일 수 있었겠는가.”
○ 居數日 項羽引兵西屠咸陽하야 殺秦降王子嬰하고 燒秦宮室하니 火三月不滅이라
며칠 머문 뒤에 항우項羽가 병력을 인솔하고 서쪽으로 가서 함양咸陽도륙屠戮한 다음, 나라의 항복한 자영子嬰을 죽이고 나라 궁실宮室을 불태우니, 불이 3개월 동안 꺼지지 않았다.
보화와 부녀자들을 거두어 동쪽으로 가니, 나라 백성들이 크게 실망하였다.
〈此句 出高祖紀 出項羽紀
- 이 는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오고 나머지는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 韓生注+[原註]漢書云韓生이라하고 史記云 人或說라하니라 說項羽曰 關中阻山帶河하야 四塞之地注+[釋義]戰國秦策 被山帶渭라한대 註言 山關之險阻如被 河渭之圍繞如帶 正義曰 東有黃河, 函谷, 蒲津, 龍門, 合河等關하고 南有南山及武關, 嶢關하고 西有大隴山及隴山關, 大震, 烏闌等關하고 北有黃河, 南塞하니 是謂四塞之地
한생韓生注+[原註]한서漢書》에는 한생韓生이라 하였고, 《사기史記》에는 “어떤 사람이 혹 설득하였다[人或說]”라고 하였다. 항우項羽를 설득하기를 “관중關中은 산이 막혀 있고 황하黃河가 띠처럼 둘러 있어 사방이 막혀 있는 요새의 땅이고注+[釋義]전국책戰國策》 〈진책秦策〉에 “산에 덮여있고 위수渭水가 띠처럼 에워싸고 있다.” 하였는데, 에 이르기를 “관문關門의 험함이 이불과 같고 황하黃河위수渭水가 에워싸고 있는 것이 띠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사기정의史記正義》에 이르기를 “동쪽에는 황하黃河함곡函谷포진蒲津용문龍門합하合河 등의 관문關門이 있고, 남쪽에는 남산南山무관武關요관嶢關이 있고, 서쪽에는 대롱산大隴山농산관隴山關대진大震오란烏闌 등의 관문關門이 있고, 북쪽에는 황하黃河남새南塞가 있으니, 이를 일러 사방이 막혀 있는 곳이라 한 것이다.” 하였다.
〈此一句 出漢書하니 史記 只云 阻山河四塞이라
- 이 한 는 《한서漢書》에 나오니, 《사기史記》에는 다만 ‘조산하사새阻山河四塞’라고 되어 있다. -
地肥饒하니 可都以霸니이다
토지가 비옥하니, 도읍하여 패자霸者가 될 수 있습니다.” 하였으나
羽見秦宮室 皆已燒殘破하고 又心思東歸하야 曰 富貴不歸故鄕이면 如衣繡夜行注+[原註]漢書 作衣錦이라이니 誰知之者리오
항우項羽나라 궁실宮室이 모두 이미 불타 잔파殘破함을 보았고 또 마음에 동쪽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말하기를 “부귀하여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을 입고 밤에 다니는 것과注+[原註]의수衣繡’가 《한서漢書》에는 ‘의금衣錦’으로 되어 있다. 같으니, 누가 이것을 알겠는가.” 하였다.
韓生 退曰 人言楚人 沐猴而冠耳注+[釋義]沐猴 獼猴也人衣冠이나 心不類人이라 索隱曰 言沐猴(獼猴)不任久著冠帶 以喩楚人性躁暴라하더니 果然이로다
한생韓生이 물러가 말하기를 “사람들이 나라 사람은 원숭이에게 을 씌운 것일 뿐이라고 말하더니,注+[釋義]목후沐猴는 원숭이이니, 원숭이가 비록 사람의 옷을 입고 을 쓰더라도 마음은 사람과 같을 수가 없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원숭이가 오랫동안 관대冠帶를 착용할 수 없음을 말하였으니, 나라 사람의 성질이 조급하고 사나움을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과연 그렇다.” 하였다.
羽聞之하고 烹韓生하다
항우項羽가 이 말을 듣고 한생韓生을 삶아 죽였다.
〈出項羽紀〉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 羽使人致命懷王한대 懷王曰 하라
항우項羽가 사람을 시켜 회왕懷王에게 명령을 전하게 하니, 회왕懷王이 “약속과 같이 하라.”고 말하였다.
羽曰 懷王者吾家所立爾 非有功伐하니 何以得專主約이리오 春正月懷王하야 爲義帝하니 實不用其命이러라
항우項羽가 말하기를 “회왕懷王은 우리 집안에서 세웠을 뿐이고 공로가 없으니, 어떻게 자기 마음대로 약속을 주관할 수 있겠는가.” 하고는 봄 정월에 항우項羽가 겉으로는 회왕懷王을 높여 의제義帝라 하였으나 실제로는 그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
〈出史高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 二月 羽分天下하야 王諸將하고 羽自立爲하야 王梁, 楚地九郡하고都彭城注+[釋義]都彭城 猗頓傳曰 夫自淮北沛郡, 陳州, 汝南, 南郡 此西楚也 彭城以東東海, 吳郡, 廣陵 此東楚也 衡山, 九江, 江南, 豫章, 長沙 此南楚也하다
2월에 항우項羽가 천하를 나누어 여러 장수들을 왕으로 삼고 항우項羽는 스스로 서서 서초패왕西楚霸王이 되어 의 땅 아홉 에 왕 노릇 하고 팽성彭城에 도읍하였다.注+[釋義]사기史記》 〈의돈전猗頓傳〉에 “회북淮北으로부터 패군沛郡진주陳州여남汝南남군南郡서초西楚이고, 팽성彭城 이동以東동해東海오군吳郡광릉廣陵동초東楚이고, 형산衡山구강九江강남江南예장豫章장사長沙남초南楚이다.” 하였다.
羽與范增으로 疑沛公이나 而業已講解注+[釋義]業已講解 王氏曰 講 和也 折伏也 漢書作媾解 和也 已然曰業이니 言雖有疑心이나 然事已和解也하고負約하야 乃陰謀曰 巴蜀注+[釋義]今成都, 潼州, 夔州等路 括地志云 巴子城 在台州石鏡縣南五里 蜀都益州 道險하고 秦之遷人 皆居之라하야
항우項羽범증范增과 함께 패공沛公을 의심하였으나 이미 강해講解(講和)하였고,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강화講和이고 는 굴복함이니, 《한서漢書》에는 ‘구해媾解’라고 되어 있는데 에 ‘함이다.’ 하였다. 이미 그러한 것을 이라고 하니, 비록 의심함이 있으나 일이 이미 화해되었음을 이른다.” 또 약속을 저버린다는 말을 싫어하여 마침내 은밀히 모의하기를 “注+[釋義]은 지금 성도成都, 동주潼州, 기주夔州 등의 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파자성巴子城태주台州 석경현石鏡縣 남쪽 5리에 있고, 촉도蜀都익주益州이다.” 하였다. 길이 험하고 나라의 귀양간 사람이 모두 살고 있다.” 하여,
乃曰 巴蜀亦關中地也라하고 故立沛公爲漢王하야 王巴蜀, 漢中하야 都南鄭注+[釋義]漢中郡邑이니 今興元所理縣이라하고
마침내 이르기를 “관중關中 땅이다.” 하고는 일부러 패공沛公을 세워 한왕漢王으로 삼아서 한중漢中에 왕 노릇 하여 남정南鄭注+[釋義]남정南鄭한중군漢中郡이니, 지금 흥원부興元府에서 다스리는 이다. 도읍하게 하고
而三分關中하야 王秦降將章邯, 司馬欣, 董翳하야 以距漢路하다
관중關中을 셋으로 나누어 나라의 항복한 장수인 장한章邯사마흔司馬欣동예董翳를 왕으로 삼아 나라의 길을 막게 하였다.
〈出史項羽紀〉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 漢王하야 欲攻項羽한대 周勃, 灌嬰, 樊噲皆勸之러니
한왕漢王이 노하여 항우項羽를 공격하고자 하니, 주발周勃관영灌嬰번쾌樊噲가 모두 이를 권하였다.
蕭何諫曰 雖王漢中之惡이나 不猶愈於死乎잇가
그런데 소하蕭何가 간하기를 “비록 한중漢中의 나쁜 땅에 왕 노릇 하나 죽는 것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겠습니까?
能詘(屈)於一人之下하야 而信(伸)於萬乘之上者 湯武是也니이다
한 사람의 아래에 굽혀서 만승萬乘의 위에 편 것은 탕왕湯王무왕武王이 바로 이러한 사람입니다.
臣願大王 王漢中하사養其民以致賢人하시고 收用巴蜀하사 還定三秦注+[釋義]雍王章邯, 塞王司馬欣, 翟王董翳 項羽三分關中地而王之하니 是謂三秦이라하시면 天下 可圖也리이다
신은 원컨대 대왕이 한중漢中에 왕 노릇 하시어, 백성을 길러 어진 사람을 초치招致하시며 의 인물을 거두어 등용하시고 돌아가 삼진三秦注+[釋義]옹왕雍王 장한章邯, 새왕塞王 사마흔司馬欣, 적왕翟王 동예董翳항우項羽관중關中의 땅을 셋으로 나누어 왕 노릇 하게 하니, 이를 삼진三秦이라 일렀다. 평정하신다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니,
漢王曰 善타하고 乃遂就國하야 以何爲丞相하다
한왕漢王은 “좋다.” 하고 마침내 나라에 나아가서 소하蕭何승상丞相으로 삼았다.
〈出漢書蕭何傳〉
- 《한서漢書 소하전蕭何傳》에 나옴 -
林之奇曰
임지기林之奇가 말하였다.
高祖與項羽爭天下 其勢力才氣 相去遠甚이라
고조高祖항우項羽와 천하를 다툴 때에 그 세력勢力재기才氣의 차이가 매우 현격하였다.
이나 項羽所以終失天下而爲高祖之所斃者 羽能勇而不能怯故也
그러나 항우項羽가 끝내 천하를 잃고 고조高祖에게 죽임을 당한 것은 항우項羽는 용맹하기만 하고 두려워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高祖之封於漢中也 周勃, 灌嬰, 樊噲 乃欲勸之以攻羽하니 曾不知勢力弗敵而與之抗이면 則是蹙之亡耳
고조高祖한중漢中에 봉할 때에 주발周勃관영灌嬰번쾌樊噲가 마침내 고조高祖에게 권하여 항우項羽를 공격하고자 하였으니, 일찍이 세력이 대등하지 못한데 항거하면 이는 멸망을 재촉하는 길임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蕭何以爲能詘於一人之下而信(伸)於萬乘之上者 湯武是也라하니
그러므로 소하蕭何가 이르기를 ‘한 사람의 아래에 굽혀 만승萬乘의 위에 편 것은 탕왕湯王무왕武王이 이러한 사람들입니다.’라고 한 것이다.
高祖隱忍從之하야 卒以巴蜀之衆으로 還取三秦하야 以成漢家四百年之社稷하니 此則能勇而能怯之效也
고조高祖가 분노를 참고 이 말을 따라서 마침내 의 병력을 가지고 다시 삼진三秦을 취하여 나라의 4백 년 사직社稷을 이루었으니, 이는 용맹하면서도 능히 두려워한 효험이다.
項羽之敗於烏江也 亭長 艤船待之하야 以爲江東雖小 亦足王也 願大王急渡하소서하니 此卽蕭何之謀耳
항우項羽오강烏江에서 패했을 때에 정장亭長이 배를 대고 말하기를 ‘강동江東이 비록 작으나 또한 충분히 왕 노릇 할 수 있으니, 바라건대 대왕께서는 급히 건너소서.’ 하였으니, 이는 바로 소하蕭何고조高祖에게 올린 계책인 것이다.
使羽能從其言이면 則天下之事 未可知矣어늘 不勝區區之忿하야 乃曰
만일 항우項羽가 그 말을 따랐더라면 천하의 일을 알 수 없었을 터인데, 구구한 분노를 이기지 못하여 마침내 말하기를
籍與江東子弟八千으로 渡江而西러니 今無一人還하니 縱江東父兄 憐而王我인들 我何面目見之리오하니
‘내가 강동江東자제子弟 8천 명과 장강을 건너 서쪽으로 왔었는데, 이제 한 사람도 돌아가는 자가 없으니, 비록 강동江東부형父兄들이 나를 불쌍히 여겨 왕 노릇 시킨다 한들 내 무슨 면목으로 이들을 만나 보겠는가.’라고 하였으니,
此所謂能勇而不能怯者也
이것이 이른바 ‘용맹하기만 하고 두려워하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是故 高祖 百戰而百敗하니 惟其不勝也일새 一勝則必至於王하고 項羽 百戰而百勝하니 惟其必勝也일새 一不勝則必至於亡하니라
이 때문에 고조高祖는 백 번 싸워 백 번 패하였으니 오직 이기지 못하였기 때문에 한 번 이기면 반드시 왕 노릇 함에 이르렀고, 항우項羽는 백 번 싸워 백 번 이겼으니 오직 반드시 이겼기 때문에 한 번 이기지 못하면 반드시 멸망함에 이른 것이다.”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人有常言호되 皆曰 用賢 所以養民也어늘 蕭相國乃謂養民以致賢人 何也
“사람들이 항상 말할 적에 모두들 말하기를 ‘현자賢者를 등용함은 백성을 기르기 위한 것이다.’라고 하는데, 소상국蕭相國(蕭何)은 도리어 ‘백성을 길러서 현인賢人을 초치한다.’고 말함은 어째서인가?
曰此無所因襲獨見之言也
이는 인습因襲한 바가 없이 홀로 안 말이다.
夫天之立君 以爲民也 君之求臣 以行保民之政也 臣之事君 以行安民之術也
하늘이 군주를 세움은 백성을 위해서이니, 군주가 신하를 구함은 백성을 보호하는 정사를 행하려 해서이고 신하가 군주를 섬김은 백성을 편안히 하는 방법을 행하려고 해서이다.
世主無養民之心이면 則天下之賢人君子不爲之用하야 而上之所得者 莫非殘民害物之人이라
그러므로 세상에 군주가 백성을 기르려는 마음이 없으면 천하의 현인賢人 군자君子가 그를 위해 쓰여지지 않아서 윗사람이 얻는 자는 모두 백성을 해치고 물건을 해치는 사람이다.
是以 民心日離하고 君勢日孤하니 亡秦之轍 可以鑑矣
이 때문에 민심民心이 날로 이반하고 군주君主의 형세가 날로 외로워지는 것이니, 망한 나라의 전철前轍이 거울이 될 만하다.
蕭何有見於此어늘 而高祖聞言卽悟하니 漢業之興 不亦宜哉
소하蕭何가 이것을 알고 있었는데 고조高祖가 그의 말을 듣고 즉시 깨달았으니, 나라의 왕업王業이 일어남이 당연하지 않은가.”
○ 夏四月 諸侯罷戲(麾)下兵하고 各就國할새 項王 使卒三萬人으로 從漢王之國하다
여름 4월에 제후諸侯휘하麾下의 군대를 해산하고 각기 봉해진 나라로 나갈 적에 항왕項王이 병졸 3만 명으로 하여금 한왕漢王을 따라 봉해준 나라로 가게 하였다.
張良 送至褒中注+[釋義]括地志云 漢中郡褒中縣 又名南鄭이니 一云卽褒城也이어늘 漢王 遣良歸韓한대 因說漢王하야 燒絶所過棧道하야 以備諸侯盜兵하고 且示項羽無東意하다
장량張良포중褒中까지注+[釋義]포중褒中은 《괄지지括地志》에 “한중군漢中郡 포중현褒中縣은 또 남정南鄭이라고 이름하니, 일설(《사기정의史記正義》)에는 포성褒城이라고 한다.” 하였다. 와서 전송하자, 한왕漢王장량張良을 보내어 나라로 돌아가게 하니, 장량張良이 인하여 한왕漢王을 설득해서 지나는 곳의 잔도棧道를 불태워 끊어서 제후의 침략군을 대비하게 하고, 또 항우項羽에게 동쪽으로 진출할 뜻이 없음을 보이게 하였다.
〈出漢書本紀及張良傳
-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와 〈장량전張良傳〉에 나옴.
史記同〉
사기史記》도 같음 -
○ 初 淮陰人韓信 家貧하야 釣於城下러니 有漂母見信飢하고 飯信注+[釋義]以水打絮爲漂 飼之也이어늘
처음에 회음淮陰 사람 한신韓信이 집이 가난하여 성 아래에서 낚시질하고 있었는데, 표모漂母(빨래하던 부인)가 한신韓信이 굶주린 것을 보고 한신韓信에게 밥을 먹였다.注+[釋義]물로 솜을 빠는 것을 라고 한다. 은 밥을 먹여 주는 것이다.
하야 謂漂母曰 吾必有以重報母호리라 母怒曰 大丈夫不能自食일새 吾哀王孫注+[釋義]如言公子也 蓋尊稱之耳而進食호니 豈望報乎리오
한신韓信이 기뻐하여 표모漂母에게 이르기를 “내가 반드시 표모漂母에게 중하게 보답하겠소.” 하니, 표모漂母가 노하여 말하기를 “대장부가 자력으로 먹지 못하기에 내 왕손王孫注+[釋義]왕손王孫공자公子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높여서 칭한 것이다. 딱하게 여겨 음식을 올린 것이니, 어찌 보답을 바라겠는가.” 하였다.
淮陰屠中少年 有侮信者하야 因衆辱之曰 信 能死어든 剌我하고 不能死어든 出 我注+[釋義]王氏曰 袴 一作胯하니 股間也 依字讀 亦通이니 何須作胯下리오하라
회음淮陰의 백정 중에 한신韓信을 업신여기는 자가 있어서 여러 사람 앞에서 모욕을 주어 말하기를 “한신韓信아, 죽을 수 있거든 나를 찌르고, 죽을 수 없거든 내 바짓가랑이 아래로 나가라.”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는 다른 곳에는 로 되어 있으니, 는 다리 사이(사타구니)이다. 고자袴字로 읽어도 또한 통하니, 어찌 굳이 고하胯下로 써야 하겠는가.” 하였다.
於是 俛出袴下하야 蒲伏(匍匐)注+[釋義] 音免이라 亦作匍하니 手行也 亦作匐하니 伏地也하니 一市人 皆笑信以爲怯이러라
이에 한신韓信이 고개를 숙이고 바짓가랑이 아래로 나와 기어가니,注+[釋義]은 음이 면이다. 는 또한 로 되어 있으니 손으로 기어가는 것이고, 또한 으로 되어 있으니 땅에 엎드리는 것이다. 온 시장 사람들이 모두 한신韓信을 비웃으며 겁쟁이라고 하였다.
及項梁渡淮 杖劍從之하야 居麾下注+[釋義] 大將之旗也 所以指麾也호되 無所知名이러니
항량項梁회수淮水를 건너가자, 한신韓信이 검을 차고 따라가 휘하麾下注+[釋義]대장大將의 깃발이니, 지휘하는 것이다. 있었으나 이름이 알려진 바가 없었다.
項梁敗 又屬項羽하니 羽以爲郞中이어늘 以策干羽호되 羽不用이러라
항량項梁이 패하자 또다시 항우項羽에게 소속되니, 항우項羽낭중郎中으로 삼았는데, 여러 번 계책을 가지고 항우項羽에게 써줄 것을 요구하였으나 항우項羽가 써주지 않았다.
漢王之入蜀 亡楚歸漢한대 以爲治粟都尉호되 亦未之奇也러니 與蕭何語 何奇之러라
한왕漢王으로 들어갈 때에 한신韓信나라에서 도망하여 나라에 귀의하니, 한왕漢王치속도위治粟都尉로 삼았으나 또한 기이하게 여기지 않았는데, 한신韓信이 여러 번 소하蕭何와 말할 적에 소하蕭何는 그를 기이하게 여겼다.
漢王 至南鄭하니 諸將及士卒 皆歌謳思東歸하야 多道亡者
한왕漢王남정南鄭에 이르니, 여러 장수들과 사졸士卒들이 모두 노래를 부르며 동쪽(고향)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 도중에 도망하는 자가 많았다.
亡去어늘 何聞信亡하고 不及以聞하고 自追之러니
한신韓信이 도망가자, 소하蕭何한신韓信이 도망갔다는 말을 듣고 미처 왕에게 아뢰지도 못하고 직접 한신韓信을 쫓아갔다.
人有言王曰 丞相何亡이라한대 大怒하야如失左右手러니
어떤 사람이 왕에게 말하기를 “승상丞相 소하蕭何가 도망갔습니다.” 하니, 왕이 크게 노하여 좌우의 손을 잃은 것처럼 여겼다.
居一二日 何來謁王이어늘且怒且喜하야 罵何曰 諸將亡者以十數로되 無所追하니 追信 詐也로다
하루 이틀이 지나 소하蕭何가 와서 왕을 뵙자, 왕이 한편으로는 노하고 한편으로는 기뻐하여 소하蕭何를 꾸짖기를 “여러 장수로서 도망한 자가 열로 헤아려지는데 이 이들을 쫓아간 적이 없었으니, 한신韓信을 쫓아갔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하였다.
何曰 諸將 易得耳어니와 至如信者하야는 國士無雙注+[通鑑要解]漢國之中 僅有信一人也 他無與比 一云 國士 國家之奇士이니
소하蕭何가 말하기를 “여러 장수들이야 얻기가 쉽지만 한신韓信과 같은 자는 국사國士이어서 둘도 없는 사람注+[通鑑要解]나라 안에 겨우 한신韓信 한 사람이 있을 뿐이요, 다른 사람은 더불어 견줄 자가 없는 것이다. 일설一說에 “국사國士는 국가의 기이한 선비이다.” 하였다. 이니,
必欲長王漢中인대 無所事信注+[釋義]謂無所用信이라이어니와 必欲爭天下인댄 非信이면 無可與計事者 顧王策安〈所〉決耳니이다
왕께서 반드시 오래도록 한중漢中에서 왕 노릇 하고자 하신다면 한신韓信을 쓸 곳이 없지만注+[釋義]한신韓信을 쓸 곳이 없음을 이른다. 반드시 천하를 다투고자 하신다면 한신韓信이 아니고는 더불어 일을 계획할 만한 자가 없으니, 다만 왕의 계책이 어디로 결정하시느냐일 뿐입니다.” 하였다.
王曰 吾亦欲東耳 安能鬱鬱久居此乎리오 乃召信하야 拜大將한대
왕이 말하기를 “나도 또한 동쪽으로 진출하고자 하니, 어찌 답답하게 오랫동안 이곳에 거하겠는가?” 하고는 마침내 한신韓信을 불러 대장에 임명하려 하였다.
何曰 王 素慢無禮하사 今拜大將 如呼小兒하시니 此乃信所以去也니이다
소하蕭何가 말하기를 “왕이 평소 거만하고 무례하시어 이제 대장을 임명하시기를 어린아이를 부르듯 하시니, 이것이 바로 한신韓信이 떠나간 이유입니다.
必欲拜之인댄 擇良日齋戒하시고 設壇場具禮라야 乃可耳니이다
왕께서 반드시 그를 대장으로 임명하고자 하신다면 좋은 날을 가려 재계하시고 과 마당을 마련하고 를 갖추어야만 비로소 될 것입니다.” 하였다.
許之하니 諸將 皆喜하야 人人 各自以爲得大將이러니 至拜大將하야는 乃韓信也 一軍 皆驚이러라
왕이 이를 허락하니, 여러 장수들이 모두 기뻐하여 사람마다 각각 자신이 대장을 얻을 것이라고 여겼는데, 대장을 임명함에 이르러서는 바로 한신韓信이었으므로 온 군중이 모두 놀랐다.
拜禮畢 上坐하니 王曰 丞相 數言將軍하니 將軍 何以敎寡人計策
한신韓信이 임명하는 가 끝나자 자리에 오르니, 왕이 말하기를 “승상이 여러 번 장군을 말하였는데, 장군은 무엇으로 과인寡人에게 계책을 가르쳐 주겠는가?” 하였다.
辭謝하고 因問王曰 今東鄕(向)하야 爭權天下 豈非項王邪잇가 漢王曰 然하다
한신韓信이 사례하고 인하여 왕에게 묻기를 “지금 동쪽을 향하여 천하에 권력을 다툴 자가 어찌 항왕項王(項羽)이 아니겠습니까?” 하니, 한왕漢王이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曰 大王 自料勇悍仁强컨대孰與項王이니잇고 漢王 良久 曰 不如也로라
한신韓信이 말하기를 “대왕이 스스로 헤아려 보건대 용맹하고 사납고 인자하고 강함이 항왕項王과 더불어 누가 낫습니까?” 하니, 한왕漢王이 한동안 있다가 말하기를 “내가 그만 못하다.” 하였다.
信曰
한신韓信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信亦以爲大王不如也라하노이다
“저도 또한 대왕이 그만 못하시다고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