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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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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酉]〈晉, 岐, 吳 稱唐天祐十年하고 梁主瑱乾化三年이라
계유(913) - 나라 천우天祐 10년을 칭하였고, 양주梁主 주진朱瑱건화乾化 3년이다.
○ 是歲 凡五國, 五鎭이라
○ 이해에 모두 다섯 나라이고 다섯 이다. -
梁趙巖注+[頭註]駙馬都尉이니 尙太祖女長樂公主하니라 奉使至大梁이어늘 均王友貞 密與之謀誅友珪할새
나라 조암趙巖注+[頭註]조암趙巖부마도위駙馬都尉이니, 태조太祖의 딸인 장악공주長樂公主에게 장가들었다. 사명使命을 받들고 대량大梁에 이르자, 균왕均王 주우정朱友貞이 은밀히 그와 함께 주우규朱友珪를 죽일 것을 모의하였다.
巖曰 此事成敗 在招討楊令公注+[頭註]師厚爲北面道招討使하야 軍於魏州하니라 得其一言하야 諭禁軍이면 吾事立辦이라한대
이때 조암趙巖이 말하기를 “이 일의 성패는 초토사招討使 양령공楊令公(楊師厚)에게注+[頭註]양사후楊師厚(楊令公)가 북면도초토사北面道招討使가 되어 위주魏州에 주둔하였다. 달려있으니, 그의 한마디 말을 얻어서 금군禁軍을 타이르면 우리 일이 당장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였다.
均王 乃遣腹心馬愼交하야 之魏州하야 說楊師厚曰 郢王簒弑 人望 屬在大梁하니 公若因而成之하면不世之功니라
균왕均王이 마침내 심복인 마신교馬愼交를 보내어 위주魏州로 가서 양사후楊師厚를 설득하기를 “영왕郢王(朱友珪)이 황제를 시해하고 찬탈함에 천하의 인망人望대량大梁(朱友貞)에게 있으니, 이 만약 이 기회를 이용하여 이번 일을 성공시킨다면 이는 세상에 없는 큰 공일 것입니다.” 하였다.
師厚乃遣其將王舜賢하야 至洛陽하야 陰與袁象先注+[頭註]親軍都指揮使 乃太祖之甥也 其父敬初 尙太祖妹萬安大長公主하니라 하다
양사후楊師厚가 마침내 그의 장수 왕순현王舜賢낙양洛陽으로 보내어 은밀히 원상선袁象先注+[頭註]원상선袁象先친군도지휘사親軍都指揮使이니, 바로 태조太祖의 생질이다. 그의 아버지 원경초袁敬初태조太祖의 누이인 만안대장공주萬安大長公主에게 장가들었다. 도모하게 하였다.
庚寅旦 袁象先 帥禁兵數千人하고 突入宮中하니 友珪聞變하고 與妻張氏 及馮廷諤으로 趨北垣樓下하야 將踰城이러니 不免하고 令廷諤先殺妻하고 次殺己하니 廷諤亦自殺이라
경인일庚寅日(2월 17일) 새벽에 원상선袁象先금병禁兵 수천 명을 거느리고 궁중으로 돌입하니, 주우규朱友珪가 변란이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 아내 장씨張氏풍정악馮廷諤과 함께 북쪽 담장의 누대 아래로 달려가서 장차 성을 넘어가려 하였는데, 스스로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을 헤아리고는 풍정악馮廷諤에게 명령하여 먼저 자신의 아내인 장씨張氏를 죽이고 다음으로 자기를 죽이게 하였으며, 풍정악馮廷諤 또한 자살하였다.
象先, 巖 齎傳國寶하야 詣大梁하야 迎均王한대 王曰 大梁 國家創業之地 何必洛陽이리오하고
원상선袁象先조암趙巖전국보傳國寶(옥새)를 가지고 대량大梁에 가서 균왕均王을 맞이하자, 균왕均王이 말하기를 “대량大梁은 우리나라가 창업한 곳이니, 하필 낙양洛陽에 도읍할 것이 있겠는가.” 하고는
乃卽帝位於大梁하야 更名鍠하고 又更名瑱하다
마침내 대량大梁에서 황제에 즉위하여 이름을 으로 고치고 또다시 이름을 으로 고쳤다.
○ 晉李嗣源 分兵하야 徇燕山後八州하야 皆下之하고 進逼幽州하다
나라 이사원李嗣源이 군대를 나누어 연산燕山 뒤에 있는 여덟 를 순행하여 모두 함락시키고 전진하여 유주幽州를 핍박하였다.
晉王 督諸軍하야 四面攻城克之하고 擒劉仁恭及其妻妾하니 守光 帥妻子亡去
진왕晉王제군諸軍을 독려해서 사면으로 성을 공격하여 점령하고 유인공劉仁恭과 그의 처첩들을 사로잡으니, 유수광劉守光이 처자를 거느리고 도망갔다.
晉王 入幽州하야 方宴할새 將吏擒守光適至어늘 王語之曰 主人 何避客之深耶
진왕晉王유주幽州에 들어가서 이 막 잔치하려고 할 적에 장수와 관리들이 유수광劉守光을 사로잡아서 마침 이르자, 진왕晉王이 말하기를 “주인이 어찌 이리도 손님을 심하게 피한단 말인가?” 하였다.
命掌書記王緘하야 草露布注+[釋義]文心雕龍曰 露布者 蓋露板不封하야 布諸視聽也 索隱曰 每戰克이면 欲使天下聞知하야 乃以板書獲捷之由하고 不封之하야 以示明告中外 自後魏以來 乃書帛하야 建於漆竿上하고 名爲露布 初學記曰 露布 人多用之하니 以不知其始 이라하니라 한대 不知故事하야 書之於布하고 遣人曳之하니라
진왕晉王장서기掌書記 왕함王緘에게 명하여 노포露布를 초하게 하였는데,注+[釋義]문심조룡文心雕龍》에 이르기를 “노포露布노판露板을 봉함하지 않아서 여러 사람이 보고 듣게 하는 것이다.” 하였고, 《색은索隱》에 이르기를 “매번 싸워 이기면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이것을 듣고 알게 하고자 하여 마침내 적을 사로잡고 승리한 이유를 판자에 쓰고 이를 봉함하지 않아서 중외中外에 보여 밝게 고하였다. 후위後魏 이래로 마침내 비단에 써서 옻칠한 장대 위에 세우고 노포露布라 이름했다.” 하였다. 《초학기初學記》에 이르기를 “노포露布를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데,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춘추좌조기春秋佐助期》에 이르기를 ‘〈감로甘露가 내릴 적에〉武露는 가벼워서 흩어지고 문로文露는 무거워서 가라앉는다.’라고 하였는데, 송균宋均이 이르기를 ‘감로甘露가 그 나라에 나타날 적에 흩어지면 사람들이 를 숭상하고, 문채를 숭상하게 되면 감로甘露가 엉겨서 무겁다.’라고 했다.” 하였다. 왕함王緘고사故事를 잘 알지 못하여 이것을 삼베에 써서 사람을 보내어 끌고다니게 하였다.
○ 契丹主弟剌葛等이어늘 誅其黨而釋之하다
거란주契丹主의 아우 야율날갈耶律剌葛 등이 배반하자 그 도당을 주벌하고 풀어주었다.
역주
역주1 : 탁
역주2 春秋佐〈助〉期曰……甘露(運)[凝]重 : 《春秋佐助期》를 인용한 것은 오류로 보인다. 여기에 ‘武露布’란 말이 있어 인용한 듯하나 ‘武露布’의 ‘布’는 ‘퍼진다’는 뜻이고 露布와는 상관이 없다.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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