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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午]三年이라
3년(갑오 B.C.207)
冬十月 宋義行至安陽注+[釋義]地形志 己氏縣 有安陽城하니 隋改己氏爲楚丘라하니 今宋州楚丘縣西北四十里安陽故城 是也하야 留四十六日注+[頭註]義遣其子襄하야 相齊하고 送之無鹽하야 高會飮酒하니 天寒大雨하야 士卒凍飢 項羽曰 今歲飢民貧하야 卒食芋菽이어늘 而飮酒高會하야 不恤士卒而循其私하니 非社稷之臣也라하고 羽斬之하니라不進이라
겨울 10월에 송의宋義가 행군하여 안양安陽注+[釋義]안양安陽은 《위서魏書》 〈지형지地形志〉에 “기씨현己氏縣안양성安陽城이 있으니 나라 때 기씨己氏를 고쳐 초구楚丘라고 하였다.” 하니, 지금 송주宋州 초구현楚丘縣 서북쪽 40리 안양安陽의 옛 이 이곳이다. 에 이르러서 46일 동안 머물고注+[頭註]송의宋義가 그 아들 을 보내어 나라의 이 되게 하고, 무염無鹽에서 전송할 때에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셨는데, 이때 날씨가 춥고 큰비가 내려서 사졸士卒들이 추위에 떨고 굶주렸다. 항우項羽가 말하기를 “금년은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가난해서 병졸들이 거친 음식을 먹고 있는데, 송의宋義는 술을 마시고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어 사졸士卒들을 구휼하지 않고 사사로움을 따르니, 사직社稷의 신하가 아니다.”라고 하고, 항우項羽송의宋義의 목을 베었다. 전진하지 않았다.
羽曰 國兵 新破 坐不安席하사 掃境內하야 以屬將軍하시니 國家安危 在此一擧어늘
항우項羽가 말하기를 “나라의 군대가 새로 격파됨에 왕이 앉아 있어도 자리가 편치 못하여 경내境內를 모두 총동원해서 장군에게 맡기셨으니, 국가國家안위安危가 이 한 번의 조처에 달려 있다.
不恤士卒而徇其私하니 非社稷之臣也라하다
그런데 지금 사졸士卒을 구휼하지 않고 사사로움을 따르니, 사직社稷의 신하가 아니다.” 하였다.
十一月 項羽卽其帳中하야 斬宋義하고 乃悉引兵渡河하야 皆沈船하고 破釜甑, 燒廬舍하고 持三日粮하야 以示士卒必死하다
11월에 항우項羽가 그의 장막 가운데로 나아가 송의宋義를 목 베고, 마침내 병력을 모두 이끌고 황하黃河를 건너가 모든 배를 침몰시키고 가마솥과 시루를 부수고 여사廬舍를 불태운 다음 3일분의 양식만을 휴대하여 사졸들에게 필사적으로 싸워야 함을 보였다.
於是 與秦軍遇하야 九戰大破之하고 虜王離하다
이에 나라 군대와 만나 아홉 번 싸워 크게 격파하고 왕리王離를 사로잡았다.
○ 當是時하야 楚兵 冠諸侯
○ 이때를 당하여 나라 군대가 제후諸侯의 으뜸이었다.
於是 始爲諸侯上將軍하니 諸侯皆屬焉이러라
이에 항우項羽가 비로소 제후諸侯상장군上將軍이 되니, 제후諸侯들이 모두 그에게 속하였다.
〈出項羽紀〉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 春二月 沛公 北擊昌邑注+[釋義]括地志云 昌邑在曹州成武縣東北三十二里하니 梁丘故城할새 過彭越하니 以其兵從沛公이어늘
봄 2월에 패공沛公이 북쪽으로 창읍昌邑注+[釋義]창읍昌邑은 《괄지지括地志》에 “창읍昌邑조주曹州 성무현成武縣 동북쪽 32리 지점에 있었으니, 양구梁丘의 옛 이 이곳이다.” 하였다. 을 공격할 적에 팽월彭越을 방문하니, 팽월彭越이 그의 병력을 거느리고 패공沛公을 따랐다.
沛公 拜越爲魏相하고 使將兵하야 略定魏地하다
패공沛公팽월彭越나라 정승으로 삼고, 병력을 거느리고 나라 땅을 공략해서 평정하게 하였다.
○ 沛公 引兵西過高陽注+[釋義]陳留圉縣 有高陽鄕이라 括地云 圉城 在汴州雍丘西南이라할새 高陽人爲里監門이러니
패공沛公이 병력을 인솔하고 서쪽으로 고양高陽注+[釋義]진류어현陳留圉縣고양향高陽鄕이 있다. 《괄지지括地志》에 “어성圉城변주汴州 옹구雍丘 서남쪽에 있다.” 하였다. 을 지날 적에 고양高陽 사람 역이기酈食其가 마을의 감문監門이 되었었다.
沛公 麾下注+[頭註] 通作戱하니 大將之旗也 所以指麾騎士 適食其里中人이라
패공沛公 휘하麾下注+[頭註]와 통하니, 대장大將이니 지휘하는 것이다. 기병騎兵이 마침 역이기酈食其의 마을 사람이었다.
食其見謂曰 吾聞沛公 慢而易人이나 多大略이라하니 眞吾所願從遊로라
역이기酈食其가 그를 보고 말하기를 “내가 들으니 패공沛公은 거만하여 사람을 함부로 대하나 큰 지략이 많다 하니, 이는 내가 참으로 종유從遊하기를 원하는 바이다.” 하니,
騎士曰 沛公 不好儒하야 諸客冠儒冠來者 沛公 輒解其冠하야 其中하니 未可以儒生說也니라
기사騎士가 대답하기를 “패공沛公유생儒生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여러 빈객 중에 유관儒冠을 쓰고 오는 자가 있으면 패공沛公은 그때마다 그 관을 벗겨 그 속에다 오줌을 누니, 유생儒生으로는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하였다.
酈生曰 第言之하라 騎士從容言이러니
역생酈生이 말하기를 “다만 말이나 해보라.” 하였다. 기사騎士가 조용히 말하였더니,
至高陽傳舍注+[釋義]從容 不迫之貌 傳者 轉轉相傳之義 亭也 猶今館驛이라하야 使人召酈生하다
고양高陽역사驛舍에 이르러注+[釋義]종용從容은 박절하지 않은 모양이다. 전전轉轉하여 서로 전한다는 뜻이고 는 머무름이니, 전사傳舍는 지금의 역사驛舍와 같다. 사람을 시켜 역생酈生을 불렀다.
酈生하야 入謁이어늘 沛公 方倨(踞)牀하야 使兩女子 洗足而見酈生한대
역생酈生이 이르러 들어와 뵈었는데, 패공沛公이 이때 막 평상에 걸터앉아 두 여자로 하여금 발을 씻게 하면서 역생酈生을 만나 보았다.
長揖不拜曰 足下必欲誅無道秦인대 不宜倨見니라
역생酈生이 길게 읍만 하고 절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족하足下께서 반드시 무도한 나라를 주벌하고자 하신다면 거만하게 〈걸터앉아서〉 장자長者를 만나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였다.
於是 沛公 輟洗起攝衣하고 延生上坐謝之하다
이에 패공沛公은 씻던 것을 치우고 일어나 옷을 정돈하고 역생酈生을 맞이하여 상좌上座에 앉히고 사례하였다.
酈生 因言六國從(縱)橫時한대 沛公 喜問曰 計將安出 酈生曰
역생酈生이 인하여 육국六國합종合從연횡連橫하던 때를 말하자, 패공沛公이 기뻐하여 묻기를 “계책을 장차 어떻게 내어야 하는가?” 하니, 역생酈生이 대답하였다.
足下起糾合之衆하고 收散亂之兵 不滿萬人이어늘 欲以徑入彊秦하니 所謂探虎口者也
족하足下께서 규합한 무리들을 일으키고 흩어져 혼란한 군사를 수습한 것이 만 명이 채 못되는데, 이들을 데리고 곧바로 강한 나라로 들어가고자 하시니, 이는 이른바 범의 아가리를 더듬는다는 것입니다.
夫陳留注+[釋義]古兗州郡이니 今開封府縣이라 天下之衝이요 四通五達之郊也
진류陳留注+[釋義]진류陳留는 옛날의 연주군兗州郡이니 지금의 개봉부현開封府縣이다. 는 천하의 요충지이고 사통오달四通五達한 들입니다.
今其城中 又多積粟하고 臣善其令하니 請 得하야 令下注+[釋義]彼自歸伏曰下 言我請得爲使而往說之 可令其歸伏이라足下하리니
이제 그 성 안에는 또 쌓아놓은 곡식이 많고 이 그 현령縣令과 친하니, 청컨대 사자使者로 가서 족하足下에게 항복하게 하겠습니다.注+[釋義]저(상대방)가 스스로 귀순하여 항복하는 것을 라고 하니, 자신이 청컨대 사자로 가서 설득하면 항복하게 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卽不聽이어든 足下擧兵攻之하시면 臣爲內應호리이다
만일 듣지 않으면 족하足下께서 군대를 일으켜 공격하면 신이 내응內應하겠습니다.”
於是 遣酈生行하고 沛公 引兵隨之하야 遂下陳留하고 號酈食其하야 爲廣野君注+[釋義]廣野 在河內山陽縣이라하니
이에 역생酈生을 보내어 가게 하고 패공沛公이 병력을 이끌고 뒤따라가서 마침내 진류陳留를 항복시키고는 역이기酈食其를 칭호하여 광야군廣野君이라 하였다.注+[釋義]광야廣野하내河內 산양현山陽縣에 있다.
酈生 常爲說客하야 使諸侯하다
이후로 역생酈生이 항상 유세객遊說客이 되어 제후諸侯에게 사신 갔다.
〈出漢書食其傳〉
- 《한서漢書 역이기전酈食其傳》에 나옴 -
○ 夏四月 沛公 南攻潁川注+[釋義]秦潁川郡 漢獻徙都之하고 改〈曰〉許昌이러니 後周改許州하니라屠之하고 因張良하야 遂略韓地注+[釋義]王氏曰 韓分晉하야 得南陽及潁川之父城, 定, 襄, 潁陽, 潁陰, 長社, 陽翟하니 東接汝南하고 西接弘農하야 得新安, 宜陽이라하다
여름 4월에 패공沛公이 남쪽으로 영천潁川注+[釋義]나라 영천군潁川郡나라 헌제獻帝가 도읍을 옮기고 허창許昌이라고 고쳤는데, 후주後周허주許州라고 고쳤다. 공격하여 도륙하고, 장량張良을 인하여 마침내 나라 땅을 공략하였다.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나라가 나라 땅을 나누어 남양군南陽郡영천潁川부성父城, 정릉定陵, 양성襄城, 영양潁陽, 영음潁陰, 장사長社, 양적陽翟을 점령하니, 동쪽으로 여남汝南과 연접하고 서쪽으로 홍농弘農과 연접하여 신안新安의양宜陽을 얻었다.”
引兵從沛公하야 略南陽郡注+[釋義]屬荊州 括地志 在鄧州東北百二十里하니 南陽 守注+[釋義] 音蟻 郡守之名이니 失其姓이라 音狩 按漢書컨대 景帝中二年郡守하야 爲太守하니라이어늘
장량張良이 병력을 인솔하고 패공沛公을 따라 남양군南陽郡注+[釋義]남양군南陽郡형주荊州에 속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등주鄧州 동북쪽 120리에 있다.” 하였다. 을 공략하니, 남양수南陽守 가 항복하였다.注+[釋義]는 음이 의이니, 군수郡守의 이름으로 그 은 전해지지 않는다. 는 음이 수이다. 《한서漢書》를 살펴보건대 경제景帝 중원中元 2년에 비로소 군수郡守를 고쳐 태수太守라고 하였다.
引兵西하니 無不下者 所過 亡(毋) 得注+[釋義]王氏曰 史記亡作毋 按左傳襄二十一年 云 周西鄙掠之라한대 音亮이니 奪也하니 秦民 皆喜러라
패공沛公이 병력을 인솔하고 서쪽으로 향하니 항복하지 않는 곳이 없었으며, 지나는 곳에 노략질을 못하게 하니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사기史記》에는 자가 자로 되어 있다. 살펴보건대 《춘추좌전春秋左傳양공襄公 21년조年條에 ‘주서비략지周西鄙掠之’라 하였는데, 에 ‘은 음이 량(략)이니 빼앗음이다.’ 하였다.” 나라 백성들이 모두 기뻐하였다.
○ 王離軍 旣沒 章邯 軍棘原注+[釋義]地名이니 在鉅鹿郡南이라하고 項羽 軍漳南注+[釋義]漳水之南也 括地云 漳水 今俗名柳河 在邢州平鄕縣南이라이러니 秦兵 이라
왕리王離의 군대가 이미 패몰함에 장한章邯극원棘原注+[釋義]극원棘原은 지명이니, 거록군鉅鹿郡 남쪽에 있다. 에 군대를 주둔하고 항우項羽장수漳水의 남쪽注+[釋義]장남漳南장수漳水의 남쪽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장수漳水는 지금 속명俗名유하柳河이니, 형주邢州 평향현平鄕縣 남쪽에 있다.” 하였다. 에 군대를 주둔하였는데, 나라 군대가 자주 퇴각하였다.
二世使人讓章邯한대하야 使長史欣으로 請事咸陽이러니 留司馬門注+[釋義]正義[集解]曰 凡言司馬門者 宮垣中兵衛所在 四面 皆有司馬하야 主武事 總言之하면 外門爲司馬門이라 如淳曰 宮衛令 諸出入殿門, 公車司馬門 乘軺傳者皆下호되 不如令이면 罰金四兩하니라三日호되 趙高不見하고 有不信之心이어늘
이세二世가 사람을 시켜 장한章邯을 꾸짖으니, 장한章邯이 두려워하여 장사長史사마흔司馬欣으로 하여금 함양咸陽에 가서 일을 청하게 하였는데, 사마문司馬門注+[釋義]사기집해史記集解》에 말하였다. “무릇 사마문司馬門이라고 말한 것은 궁원宮垣 안의 병위兵衛가 있는 곳이니, 사면에 모두 사마司馬가 있어서 군대의 일을 주관한다. 통틀어 말하면 외문外門사마문司馬門이라 한다.” 여순如淳이 말하였다. “궁위령宮衛令에 ‘전문殿門과 모든 공거사마문公車司馬門을 출입할 때에 초전軺傳을 탄 자를 모두 내리게 하되, 명령대로 하지 않으면 벌금罰金이 4냥이다.’ 하였다.” 에 3일 동안 머물러 있었으나 조고趙高가 만나 보지 않고 믿지 않는 마음이 있었다.
至軍報曰 高用事于中하야 下無可爲者注+[釋義]言不可復爲軍旅事也
사마흔司馬欣이 군대에 이르러 보고하기를 “조고趙高가 중앙에서 용사用事하여 아래에서는 일을 할 수가 없습니다.注+[釋義]하무가위자下無可爲者는 아래에서는 다시 군대의 일을 할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戰勝이면 高必嫉吾功이요 不勝이면 不免於死라한대 乃與羽約盟洹水之上하다
이제 싸워서 승리하면 조고趙高는 반드시 우리들의 공을 질투할 것이고, 이기지 못하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니, 장한章邯이 마침내 항우項羽와 약속하고 원수洹水의 가에서 맹약하였다.
已盟 見羽流涕하고 爲言趙高하니 羽乃立章邯爲雍王하야 置楚軍中하고 使長史欣으로 爲上將軍하야 將秦軍爲 前注+[釋義]王氏曰 史記項籍紀註 胡郞이라 漢書本傳하니 置前而行也하다
맹약이 끝나자, 장한章邯항우項羽를 보고 눈물을 흘리며 조고趙高에 대해 말하니, 항우項羽가 마침내 장한章邯을 세워 옹왕雍王을 삼아 나라 군중에 두고, 장사長史 사마흔司馬欣상장군上將軍으로 삼아서 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선봉先鋒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은 胡郞反(항)이다.’ 하였고, 《한서漢書》 〈항적전項籍傳〉에는 행전行前으로 되어 있으니, 에 ‘앞에 배치하여 행군하는 것이다.’ 하였다.” 이 되게 하였다.
〈出史記項羽紀〉
-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나옴 -
朱氏曰
주씨朱氏가 말하였다.
壅蔽之禍 其可畏也哉인저
“군주의 총명을 가리는 화가 참으로 두려울 만하다.
邯鄲之役 邯軍棘原하고 羽軍漳南하야 猶以勢力相持하야 勝負未決也 使二世不加誚譴하고 趙高不懷忌嫉하야 長史欣 請事咸陽 無滯留扞格之苦런들 則陳餘之書 固未足以撼章邯之心이요 雖項羽善戰이나 亦未能旬日之間 盡坑秦卒二十餘萬之衆也리라
한단邯鄲전역戰役(전쟁)에 장한章邯의 군대는 극원棘原에 주둔하고 항우項羽의 군대는 장수漳水의 남쪽에 주둔하여, 오히려 세력을 가지고 서로 대치하여 아직 승부를 결단하지 못하였으니, 만약 이세二世가 견책을 가하지 않고 조고趙高가 시기하는 마음을 품지 않아서 장사長史사마흔司馬欣함양咸陽에 가서 일을 청했을 때에 지체되고 막히는 괴로움이 없었다면 진여陳餘의 편지가 진실로 장한章邯의 마음을 흔들지 못하였을 것이요, 비록 항우項羽가 전쟁을 잘했더라도 또한 열흘 만에 나라의 병졸 20여 만 명을 다 무찔러 죽이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今掃一國之衆하야 付之大將之手하야 存亡成敗 係呼吸瞬息之間이어늘 司馬門奏事 乃留三日而不得報하니 其趣(促)亡也宜哉인저
지금 온 나라의 병력을 총동원하여 대장大將의 손에 맡겨서 국가의 존망과 성패가 숨 한 번 쉬고 눈 한 번 깜빡하는 짧은 시간에 달려 있는데, 사마문司馬門에서 일을 아뢸 때에 마침내 3일 동안 머물러 있었으나 보고할 수가 없었으니, 멸망을 재촉함이 당연한 것이다.”
○ 初 趙高欲專秦權호되 恐群臣不聽하야 乃先設驗하야 持鹿獻於二世曰 馬也라한대
처음에 조고趙高나라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으나 여러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먼저 시험 삼아 사슴을 가져다 이세二世에게 바치며 말하기를 “말입니다.” 하였다.
二世笑曰 丞相 誤耶
이세二世가 웃으며 말하기를 “승상丞相이 오판하였는가?
謂鹿爲馬온여 問左右한대 或黙, 或言馬어늘
사슴을 일러 말이라 하는구나.” 하고 좌우左右에게 물으니, 혹은 침묵하고 혹은 말이라고 하였다.
高因陰中注+[釋義] 陰中害之也諸言鹿者以法하니 群臣 皆畏高하야 莫敢言其過러라
조고趙高는 인하여 사슴이라고 말한 자들을 법으로 은밀히 중상中傷注+[釋義]은 은밀히 중해中害(中傷)하는 것이다. 하니, 뒤에 군신群臣들이 모두 조고趙高를 두려워하여 감히 그의 잘못을 말하는 자가 없었다.
○ 高前言 關東盜 無能爲也라하더니 及項羽虜王離等하고 而章邯等軍 數敗 關東 皆畔이라
조고趙高가 전에 여러 번 “관동關東의 도둑은 상대할 것이 없다.”고 말하였는데, 항우項羽왕리王離 등을 사로잡고 장한章邯 등의 군대가 자주 패하자 관동關東이 모두 배반하였다.
高恐二世怒하야 誅及其身하야 乃謝病不朝하고 陰與其壻咸陽令閻樂으로 謀易置上하고 更立子嬰하다
조고趙高이세二世가 노하여 자기 몸에 주벌이 미칠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병으로 사퇴하여 조회하지 않고, 은밀히 그 사위인 함양령咸陽令 염락閻樂을 바꿔치우고 다시 자영子嬰을 세울 것을 도모하였다.
將吏卒하고 入望夷宮注+[釋義]在長陵西北하니 長平觀道東故亭處是也 臨涇水作之하야 以望北夷 括地云 在雍州咸陽東南이라하야 與二世注+[通鑑要解]樂前數二世曰 足下驕恣하야 殺無道故 天下皆反하니 其自爲計하라 二世曰 願得一郡爲王하노라 不許한대 願爲萬戶侯하노라 又不許한대 願與妻子爲黔首하노라 樂曰 臣受命丞相하야 誅足下라하고 麾其兵進하니 二世自殺하다 曲禮註云 猶數也曰 受命於丞相하야 誅足下注+[釋義]群臣士庶相與言 故呼在殿下, 閤下, 足下, 侍者, 執事者하야 而先與之言이니 因卑達尊之義 皆謙辭也라하고 麾其兵進하니 二世自殺이라
염락閻樂이 관리와 병졸을 거느리고 망이궁望夷宮注+[釋義]망이궁望夷宮장릉長陵 서북쪽에 있으니, 장평관長平觀 길 동쪽 옛 정자가 있는 곳이 이곳이다. 경수涇水에 임하여 지어서 북이北夷를 바라본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옹주雍州 함양咸陽 동남쪽에 있다.” 하였다. 에 들어가서 이세二世를 꾸짖어注+[通鑑要解]염락閻樂이 앞으로 나아가 이세二世를 꾸짖어 말하기를 “족하足下가 교만하고 방자해서 사람들을 죽여 무도無道하기 때문에 천하가 모두 배반하니, 스스로 계책을 세우라.” 하였다. 이세二世가 말하기를 “한 을 얻어 왕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만호萬戶가 되기를 원한다.”고 하였으나 또 허락하지 않았다. “처자와 함께 평민이 되기를 원한다.”고 하자, 염락閻樂이 말하기를 “신이 승상에게 명을 받아 족하足下를 죽이겠다.” 하고는 군사를 지휘하여 나아가니, 이세二世가 자살하였다. 《예기禮記》 〈곡례曲禮〉의 에 “(數罪)와 같다.” 하였다. 말하기를 “승상丞相에게 명령을 받아 족하足下注+[釋義]여러 신하들과 사서인士庶人이 서로 함께 말할 적에 〈곧바로 가리킬 수 없기 때문에〉 전하殿下, 합하閤下, 족하足下, 시자侍者, 집사執事에 있는 자를 불러서 먼저 이들과 말을 하였으니, 낮은 자를 통하여 높은 자에게 전달하는 뜻이니, 모두 겸사謙辭이다. 를 죽이겠다.” 하고 군사들을 지휘하여 나아가니, 이세二世가 자살하였다.
趙高乃立爲秦王하고 令子嬰으로 齋當廟見하야 受玉璽注+[附註]始皇 得和氏璧하고 命李斯篆之하고 孫壽刻之하니 方四寸이라 其文曰 受命于天 旣壽永昌이요 字形 如魚龍鳳鳥之狀하니 自漢高以來 遂爲傳國寶하니라라한대
조고趙高는 마침내 자영子嬰을 세워 진왕秦王으로 삼고 자영子嬰으로 하여금 재계하고 사당에 뵈어 옥새玉璽注+[附註]옥새玉璽시황始皇화씨벽和氏璧을 얻고는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전자篆字를 쓰게 하고 손수孫壽에게 이를 새기게 하니, 사방 4이었다. 그 글에 이르기를 “하늘에서 을 받으니 이미 하고 길이 창성하리라.” 하였고, 글자의 모양이 어룡魚龍과 봉황새의 형상과 같았는 바, 한고조漢高祖 이래로 마침내 전국보傳國寶가 되었다. 를 받으라고 하였다.
子嬰 與其子二人으로 謀曰
자영子嬰은 그의 아들 두 사람과 상의하기를
丞相高殺(弑)二世하고 恐群臣誅之하야以義立我하고 使我齋見廟하니 我稱病不行이면 丞相 必自來하리니
승상丞相 조고趙高이세二世를 시해하고 여러 신하들이 자기를 죽일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거짓 의리를 내세워 나를 세우고는 나로 하여금 재계하고 사당에 뵙게 하니, 내가 병을 핑계대고 가지 않으면 승상丞相이 반드시 스스로 올 것이다.
來則殺之라하더니
오면 그를 죽이겠다.” 하였다.
高果自往이어늘 子嬰 遂刺殺高於齋宮하고 三族高家하다
조고趙高가 과연 스스로 오자, 자영子嬰이 마침내 조고趙高를 재계하던 에서 찔러 죽이고 조고趙高의 집안을 삼족三族을 멸하였다.
〈出本紀〉
- 《사기史記 진시황본기秦始皇本紀》에 나옴 -
○ 子嬰 遣將將兵하야 距嶢關注+[釋義]嶢山關 在京兆南이라 括地志 雍州藍田縣東南 有藍田關하니 卽秦之嶢關也이어늘 沛公 欲擊之러니 張良曰
자영子嬰이 장수를 보내어 군대를 거느리고 요관嶢關注+[釋義]요산관嶢山關경조京兆 남쪽에 있다. 《괄지지括地志》에 “옹주雍州 남전현藍田縣 동남쪽에 남전관藍田關이 있으니, 나라의 요관嶢關이다.” 하였다. 을 막자, 패공沛公이 이들을 공격하고자 하였는데, 장량張良이 말하였다.
秦兵 尙彊하니 未可輕이라
나라 군대가 아직 강성하여 경시할 수가 없습니다.
願先遣人하야 益張旗幟於山上하야 爲疑兵하고 使酈食其, 陸賈 往說秦將하야 注+[釋義]謂以利誘之 如以食餧之하야 令其啗食耳以利하소서
원컨대 먼저 사람을 보내어 더욱 기치旗幟를 산 위에 늘어놓아 의심스러운 군대를 만들고, 역이기酈食其육가陸賈로 하여금 가서 나라 장수를 설득하여 이익으로 유인하게注+[釋義]은 이익으로 유인함을 이르니, 밥(미끼)을 주어 꾀어서 이것을 먹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소서.”
秦將 果欲連和어늘 沛公 欲許之한대 張良曰 此 獨其將欲叛이니 恐其士卒不從이라
나라 장수가 과연 연합하여 화해하고자 하자, 패공沛公이 이를 허락하려 하니,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이는 다만 그 장수가 배반하고자 하는 것이니, 그의 사졸들이 따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不如因其懈怠하야 擊之니이다
그들이 해이해진 틈을 타서 공격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沛公 引兵繞嶢關하고하야 擊秦軍大破之하고 遂至藍田하야 又戰其北하야 秦兵 大敗하다
패공沛公이 병력을 인솔하여 요관嶢關을 에워싸고 궤산蕢山을 넘어 진군秦軍을 공격해서 크게 격파하였으며, 마침내 남전藍田에 이르러 또다시 그 북쪽에서 싸워 나라 군대가 크게 패하였다.
〈出高祖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右秦 自莊襄王으로 至子嬰 合四十三年이니 子嬰爲王四十六日而降于漢하니라
이상 나라는 장양왕莊襄王으로부터 자영子嬰에 이르기까지 모두 43년이니, 자영子嬰은 왕이 된 지 46일 만에 나라에 항복하였다.
賈誼過秦論曰
가의賈誼과진론過秦論에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秦孝公 據殽函之固하고 擁雍州之地하여 有席捲天下, 包擧宇內, 囊括四海, 幷呑八荒之心이라
나라 효공孝公효함殽函(殽山과 함곡관函谷關)의 험고한 요새를 점거하고 옹주雍州의 땅을 차지하여, 천하天下석권席捲하고 우주宇宙 안을 온통 차지하며 사해四海를 주머니 속에 넣고 팔황八荒(八方)을 병탄幷呑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及至始皇하여 奮六世注+[頭註]孝公, 惠公, 武王, 昭王, 孝文王, 莊襄王也之餘烈하여 振長策注+[頭註]乘馬爲喩하니 所以撾馬者而馭宇內하여 呑二周而亡諸侯하고 履至尊而制六合하여 執敲扑以鞭笞天下하니 威振四海
그러다가 시황제始皇帝에 이르러서는 육대六代注+[頭註]육세六世효공孝公혜공惠公무왕武王소왕昭王효문왕孝文王장양왕莊襄王이다. 가 남긴 공렬功烈을 떨쳐 긴 채찍注+[頭註]말을 타는 것을 가지고 비유하였으니, 채찍은 말을 때리는 것이다. 을 휘둘러 우주 안을 제어해서 이주二周병탄竝呑하고 제후들을 멸망시키며 지존至尊의 자리에 올라 육합六合(온 천하)을 제어하여 채찍을 잡고서 천하를 종아리 치고 볼기 치니, 위엄이 사해四海에 떨쳐졌다.
南取百越之地하여 以爲桂林象郡하니 百越注+[頭註]謂非一種也 猶言百蠻이라 韋昭曰 越有百邑故 曰百越也之君 俛首係頸하여 委命下吏
남쪽으로는 백월百越의 땅을 취하여 계림군桂林郡상군象郡을 만드니, 백월百越注+[頭註]백월百越은 한 종류가 아니니, 백만百蠻이라는 말과 같다. 위소韋昭가 말하기를 “나라에 백 개의 읍이 있기 때문에 백월百越이라 한다.” 하였다. 의 군주들이 머리를 숙이고 목에 올가미를 매어 나라의 낮은 관리에게 목숨을 맡겼다.
北築長城而守藩籬하여 却匈奴七百餘里하니 胡人 不敢南下而牧馬하며 士不敢彎弓而報怨이라
이에 북쪽으로 만리장성萬里長城을 쌓아 국경을 지키게 하여 흉노匈奴를 7백여 리나 퇴각시키니, 오랑캐들이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말을 먹이지 못하고, 오랑캐 군사들이 감히 활을 당겨 원수를 갚지 못하였다.
於是 廢先王之道하고 焚百家之言하여 以愚黔首하며 墮(隳)名城, 殺豪俊하고 收天下之兵하여 聚之咸陽하여 鑄以爲金人十二이라
이에 선왕先王를 폐하고 백가百家의 글을 불태워 백성들을 어리석게 만들며, 유명한 성을 허물고 호걸豪傑들을 죽이며 천하의 병기를 거두어다가 함양咸陽에 모아 녹여서 주조하여 금인金人 12개를 만들었다.
然後 踐華爲城하고 因河爲池하여 據億丈之城하고 臨不測之淵하여 以爲固하며 良將勁弩 守要害注+[頭註]在我爲要 在彼爲害之處하고 信臣精卒 陳利兵而誰何하니 天下已定이라
그런 뒤에 화산華山을 밟아 성을 만들고 하수河水를 따라 못을 만들어 억 길이나 되는 높은 성을 점거하고 헤아릴 수 없이 깊은 못에 임하여 이로써 견고함을 삼으며, 훌륭한 장수와 강한 궁노弓弩부대로 요해要害注+[頭註]요해要害는 나에게 있어서는 중요한 곳이 되고, 저(상대방)에게 있어서는 해가 되는 곳이다. 處를 지키고 신임하는 신하와 정예병精銳兵들이 예리한 병기를 들고 통행인을 검문하니,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다.
始皇之心 自以爲關中之固 金城千里 子孫帝王萬世之業也러니라
시황始皇이 마음속으로 스스로 생각하기를 관중關中의 견고함은 금성金城(철옹성) 천리千里이니, 자손들이 제왕의 지위를 만세토록 누릴 수 있는 기업基業이라고 여겼다.
始皇旣沒 餘威震乎殊俗이라
시황始皇이 별세한 뒤에도 남은 위엄이, 풍속이 다른 오랑캐에게 떨쳐졌다.
然而陳涉 甕牖繩樞之子 隷之人而遷徙之徒也
그러나 진섭陳涉은 깨진 옹기로 창문을 내고 노끈으로 문 지도리를 만든 가난한 집안의 자식이고 농노農奴의 천한 사람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무리였다.
躡足行伍之間하고 倔起阡陌之中하여散之卒하고 將數百之衆하여 轉而攻秦할새 斬木爲兵하고 揭竿爲旗하니 天下雲合響應하고 贏粮而景(影)從하여 山東豪俊 遂竝起而亡秦族矣
항오行伍(兵卒)의 사이에서 출발하고 천맥阡陌(밭두둑)의 가운데에서 일어나 피폐하고 흩어진 군사들을 이끌고 수백 명의 무리를 거느리고서 전전하여 나라를 공격할 적에 나무를 베어 병기를 만들고 대나무를 들어 깃발을 삼으니, 천하의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메아리처럼 호응하여, 양식을 싸 짊어지고 그림자처럼 따라와 산동지방山東地方의 호걸들이 마침내 모두 일어나서 나라 일족을 멸망시켰다.
然而秦以區區之地 致萬乘之權하여 八州而朝同列 百有餘年矣
그런데 나라는 구구한 옹주雍州 땅을 가지고 만승萬乘 천자天子의 권세를 이룩하여 팔주八州를 점령하고 동렬들에게 조회 받은 지가 백여 년이나 되었다.
然後 以六合爲家하고 殽函爲宮이러니 一夫作難 而七廟하고 身死人手하여 爲天下笑者 何也
그런 뒤에 육합六合을 집으로 삼고 효함殽函궁궐宮闕로 삼았는데, 한 필부匹夫가 난을 일으킴에 칠묘七廟가 무너지고 몸이 남의 손에 죽어서 천하의 웃음거리가 된 것은 어째서인가?
仁義不施하고 而攻守之勢異也일새니라
인의仁義를 베풀지 않아서였고, 공격과 수비의 형세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止齋先生曰
지재선생止齋先生(陳傅良)이 말하였다.
天下之事 有可畏之勢者 易圖 無可畏之形者 難見이니 易圖者 亦易應이요 難見者 必難支
“천하의 일 중에 두려워할 만한 형세가 있는 것은 도모하기가 쉽고 두려울 만한 형세가 없는 것은 보기가 어려우니, 도모하기 쉬운 것은 또한 대응하기가 쉽고 보기 어려운 것은 반드시 지탱하기가 어렵다.
明智之君 不畏乎方張之敵國하고 而深畏夫未見其隙之民心하나니라
그러므로 총명하고 지혜로운 군주는 막 강성한 적국을 두려워하지 않고 틈을 볼 수 없는 민심民心을 깊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蓋民心之搖 慘於敵國之變이라
민심民心의 동요는 적국의 변란보다도 참혹하다.
古者 有畏民之君하야 是以 無可畏之民이러니 後之人君 狃於民不足畏하야 而民之大可畏者 始見於天下
옛날에는 백성들을 두려워하는 군주가 있어서 이 때문에 두려워할 만한 백성이 없었는데, 후세의 군주가 백성들을 굳이 두려워하지 않음에 익숙해지자 크게 두려워할 만한 백성이 비로소 천하에 나타나게 되었다.
夫昔秦之先 蓋七國也러니 自孝公以亟耕力戰으로 荐食東諸侯之境하야 歷七世而倂於始皇之手하니 吁亦艱矣
옛날 나라의 선대先代칠국七國이었는데, 효공孝公이 농사를 급하게 여기고 전투를 힘씀으로부터 동쪽 제후들의 영토를 잠식하기 시작하여 7대를 지나 진시황秦始皇의 손에서 제후들을 겸병하였으니, 아! 또한 어려웠다.
始皇 惟知天下之勢難合하고 而其患在六國也
시황始皇은 천하의 형세가 합하기 어렵고 그 근심이 육국六國에 있음을 알았다.
墟其社稷하고 裂其土而守置之하야 以絶內爭之釁하니 中國 不足慮 而所以爲吾憂者 猶有四夷也
그러므로 육국六國사직社稷을 폐허로 만들고 그 땅을 나누어 수령을 두어서 내분內紛의 싹을 끊었으니, 중국中國은 굳이 염려할 것이 없고 자신의 근심거리는 오직 사방의 오랑캐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於是 郡桂林하고 城磧石하며 頸係百粤(越)而却匈奴於千里之外 始皇之心 自以爲天下擧無可虞하니 足以安意肆志하야 拱視乎殽函之上하야 而海內晏然者萬葉矣라하니
이에 계림桂林으로 만들고 적석磧石을 쌓으며 백월百越 군주의 목에 올가미를 매고 흉노匈奴를 천리 밖으로 퇴각시키니, 시황始皇의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기를 천하에 모두 걱정할 만한 것이 없으니, 충분히 안심하고서 뜻을 펼쳐 효산殽山함곡관函谷關 위에서 팔짱을 끼고 내려다보아 해내海內의 편안함이 만대토록 장구할 것이라고 여겼다.
而不知天下之大可畏 伏於大澤之卒하고 隱於鉅鹿之盜注+[頭註]彭越 嘗漁鉅鹿澤中이라가 爲群盜하니라하야 而其睥睨覘覻者 已滿於江之西, 山之東也
천하에 크게 두려워할 만한 것이 대택大澤의 병졸 속에 숨어 있고 거록鉅鹿의 도적떼注+[頭註]팽월彭越이 일찍이 거록鉅鹿의 못 가운데에서 고기를 잡아먹다가 도적떼가 되었다. 속에 숨어 있어서 황제의 자리를 넘보고 엿보는 자들이 이미 양자강揚子江의 서쪽과 산동山東 지방에 가득함을 알지 못하였다.
一呼而起 氓隷雲合하야 雖章邯百萬之師 建瓴而下라도 而全關之地 已稅駕於霸上之劉季矣
그리하여 이들이 한번 고함치고 일어나자 백성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서 비록 장한章邯이 이끄는 백만의 군대가 물동이의 물을 쏟아 붓듯이 내려왔으나 전관全關의 땅이 이미 패상霸上유계劉季(劉邦)에게 들어가게 된 것이다.
嗚呼
아!
秦以七世亡六國이러니 而民以期月亡秦하야 以秦之彊으로 不能當民之弱하니 天下之眞可畏者 果安在哉
나라는 7대 만에 육국六國을 멸망시켰는데 백성들은 기월期月(1년) 만에 나라를 멸망시켜서 나라의 강함으로써 백성들의 약함을 당해내지 못하였으니, 천하에 참으로 두려워할 만한 것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역주
역주1 酈食其 : 역이기
역주2 溲溺 : 수뇨
역주3 [譯註]長者 : 연장자, 즉 酈食其 자신을 가리킨다.
역주4 使 : 시
역주5 因張良 遂略韓地 : 河南 新鄭부터 남쪽으로 潁川까지는 모두 韓나라 땅인데, 張良이 대대로 韓나라에서 재상이 되었으므로 그의 말을 따른 것이다.
역주6 : 의
역주7 : 경
역주8 鹵掠 : 노략
역주9 因張良 遂略韓地 : 河南 新鄭부터 남쪽으로 潁川까지는 모두 韓나라 땅인데, 張良이 대대로 韓나라에서 재상이 되었으므로 그의 말을 따른 것이다.
역주10 : 삭
역주11 : 항
역주12 : 항
역주13 : 행
역주14 : 삭
역주15 足下 : 그다지 높이는 말이 아니니, 二世를 陛下라고 칭하지 않고 足下라고 칭한 것은 그를 업신여긴 것이다.
역주16 [譯註]子嬰 : 秦始皇의 長子인 扶蘇의 아들이다.
역주17 : 양
역주18 足下 : 그다지 높이는 말이 아니니, 二世를 陛下라고 칭하지 않고 足下라고 칭한 것은 그를 업신여긴 것이다.
역주19 : 담
역주20 : 궤
역주21 : 맹
역주22 : 피
역주23 : 교
역주24 : 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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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갑오] 3년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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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갑오] 3년 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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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갑오] 3년 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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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갑오] 3년 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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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갑오] 3년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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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갑오] 3년 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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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갑오] 3년 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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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갑오] 3년 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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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갑오] 3년 333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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