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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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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戌]隆和元年이라 〈秦甘露四年이요 燕建熙三年이라
융화隆和 원년元年(임술 362) - 나라 감로甘露 4년이고, 나라 건희建熙 3년이다. -
正月 桓溫 上疏하야 請遷都洛陽하고 自永嘉之亂注+[頭註]懷帝爲劉聰所執이라으로 播流江表注+[通鑑要解]播流 播越流離也 江表 中原以江南爲江表 請一切北徙하야 以實河南한대 朝廷 畏溫하야 不敢爲異
정월에 환온桓溫상소上疏하여 낙양洛陽으로 천도할 것을 청하고, 영가永嘉의 난리注+[頭註]영가永嘉 회제懷帝나라(前趙)의 유총劉聰에게 사로잡힌 일을 가리킨다. 로부터 강외江外(江南)로 옮겨 온注+[通鑑要解]파류播流는 피난하여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것이요, 강표江表중원中原에서 양자강揚子江 남쪽 지역을 강표江表라 하였다. 자들을 일체 북쪽으로 옮겨서 하남河南을 충실히 할 것을 청하였는데, 조정에서 환온桓溫을 두려워하여 감히 이견異見을 말하지 못하였다.
而北土蕭條하야 人情 疑懼하니 雖竝知不可 莫敢先諫이러라
그러나 북쪽 지방이 황량하여 민심이 의심하고 두려워하니 비록 모두들 옮기는 것이 불가함을 알았으나 감히 먼저 간하지 못하였다.
散騎常侍孫綽 上疏曰 昔 中宗注+[通鑑要解]元帝廟號龍飛 非惟信順注+[通鑑要解]易大傳曰 天之所助者順也 人之所助者信也協於天人이요 實賴萬里長江하야 而守之耳러니
산기상시散騎常侍 손작孫綽이 상소하기를 “옛날 중종中宗(元帝)注+[通鑑要解]중종中宗원제元帝묘호廟號이다.이 즉위하자 성신誠信화순和順注+[通鑑要解]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에 이르기를 “하늘이 돕는 것은 함이요(하늘은 이치를 순히 따르는 자를 도와주고), 사람이 돕는 것은 성신誠信이다.(사람은 성실한 자를 도와준다)” 하였다. 천의天意민심民心에 합하였을 뿐만 아니라 실로 만리萬里장강長江에 의지해서 경계로 삼아 지켰습니다.
今自喪亂已來 六十餘年注+[頭註]自賈后之廢하고 趙王倫之誅 繼而諸王交兵하고 胡羯乘之而起하야 天下大亂 至是六十餘年이라 河, 洛丘墟하고 函夏注+[通鑑要解] 謂函谷關이니 關之東爲中夏也 故曰函夏也 又函 容也 大也 言中原之地 所函容者大也蕭條하야 士民 播流江表하야 已經數世
이제 국가에 난리가 있은 이래로 60여 년인데,注+[頭註]今自喪亂已來 육십여년六十餘年:가후賈后가 폐출되고 조왕趙王 사마륜司馬倫이 죽임을 당함으로부터 계속하여 제왕諸王이 서로 교전交戰하고 이 이 틈을 타고 일어나 천하가 크게 어지러웠는데, 이때에 이르러 60여 년이 되었다. 황하黃河낙양洛陽 일대가 빈 터가 되고 함하函夏(中原 지역)注+[通鑑要解]함곡관函谷關을 이르니, 함곡관의 동쪽이 중하中夏이므로 함하函夏라고 이른 것이다. 또 은 용납하는 것이고 는 큼이니, 중원中原 지역은 포용하는 것이 큼을 말한 것이다. 가 쓸쓸하여 관리와 백성들이 강외江外로 옮겨 온 지 이미 몇 대가 지났습니다.
存者 老子長孫하고 亡者 丘隴成하니 雖北風之思注+[釋義]詩北風篇曰 北風其喈하니 雨雪其霏로다 惠而好我 携手同歸라하니라[頭註]胡馬 每北風則翹首北望이라 感其素心이나 目前之憂實爲交切이라
그리하여 생존한 자는 자식이 이미 늙고 손자가 장성했으며 죽은 자는 무덤이 행렬을 이루고 있으니, 비록 북방北方에 대한 그리움注+[釋義]시경詩經》 〈북풍편北風篇〉에 이르기를 “북풍北風이 차갑게 부니 함박눈이 펄펄 내리도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이와 손을 잡고 함께 돌아가리라.” 하였다.[頭註]胡馬는 매양 북풍北風이 불면 머리를 들고 북쪽을 바라본다. 이 평소 그들의 마음을 흔들리게 하지만 목전目前의 우환이 실로 더욱 절박합니다.
植根江外注+[頭註]中原以江南爲江外 數十年矣어늘 一朝 頓欲拔之하야 驅踧於空荒之地注+[頭註] 遽也 音祝이니 至也 又行謹敬也하니 提挈萬里 踰險浮深하야 離墳墓, 棄生業이면 田宅 不可復售注+[頭註] 賣物去手 舟車 無從而得이라
강외江外注+[頭註]강외江外중원中原에서 양자강揚子江 남쪽 지역을 강외江外라고 한다. 에 뿌리를 내린 지가 수십 년인데 하루아침에 갑자기 뽑아다가 텅 비고 황량한 땅에 내몰고자 하니,注+[頭註]頓欲拔之 구축어공황지지驅踧於空荒之地:은 갑자기이다. 이 축이니 이르는 것이요, 또 행실을 삼가고 공경하는 것이다. 가솔들을 이끌고 만 리를 감에 험한 산을 넘고 깊은 물을 건너서 선영先塋을 떠나고 생업生業을 버리게 되면 전지田地와 집을 다시 살注+[頭註]는 물건을 팔아서 수중手中을 떠난 것이다. 수가 없고 배와 수레를 얻을 길이 없습니다.
捨安樂之國하고 適習亂之鄕 國家之所宜深慮也니이다
안락한 나라를 버리고 오랫동안 전란을 겪었던 고향으로 가는 것은 국가가 깊이 염려해야 할 바입니다.” 하였다.
王述曰 溫 欲以虛聲威朝廷耳 非實事也 但從之 自無所至리이다 事果不行하다
왕술王述이 말하기를 “환온桓溫이 큰소리쳐서 조정을 위협하고자 한 것일 뿐이지 실제의 일이 아니니, 다만 그대로 따르면 저절로 이르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는데, 일이 과연 행해지지 않았다.
又議移洛陽鍾虡注+[頭註] 音巨 鍾鼓之跗 以猛獸爲飾이라 又作鐻하니 樂器所懸이니 橫曰筍이요 植曰虡어늘 述曰
환온桓溫이 또 낙양洛陽의 종과 종틀注+[頭註]이 거이니 종과 북의 받침에 맹수猛獸를 붙여서 장식한 것이다. 또 로도 쓰니 악기樂器를 매다는 것이다. 가로로 된 것을 이라 하고 세로로 된 것을 라 한다. 을 옮겨 올 것을 의논하자, 왕술王述이 말하기를
永嘉不競注+[釋義] 疆也 懷帝永嘉五年 爲劉聰所獲이라 故云永嘉不競也라니라하야 暫都江左하니 方當蕩平區宇하고 旋軫舊京이요
영가연간永嘉年間에 강성하지 못하여注+[釋義]은 강함이다. 회제懷帝 영가永嘉 5년(311)에 유총劉聰에게 사로잡혔으므로 ‘영가永嘉 연간年間에 강성하지 못했다’고 말한 것이다. 잠시 강좌江左(江南)에 도읍하고 있으니, 바야흐로 구우區宇(온 천하)를 평정하고 곧바로 옛 서울로 돌아가야 할 것이요,
若其不爾 宜改遷園陵이니 不應先事鍾虡니라 乃止하다
만약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선제先帝능묘陵墓를 옮겨 와야 할 것이니, 먼저 종과 종틀을 옮겨 오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하니, 환온桓溫이 이에 중지하였다.
역주
역주1 : 획
역주2 : 항
역주3 鍾虡 : 鍾虡는 나라의 중요한 기물이므로 桓溫이 洛陽에서 建康으로 옮겨 오려 한 것이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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