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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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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己亥]五年이라 〈趙建武五年이라
함강咸康 5년(기해 339) - 나라 건무建武 5년이다. -
七月 王導薨하다
7월에 왕도王導하였다.
簡素寡欲하고因事就功하야 雖無日用之益이나 而歲計有餘
왕도王導는 간략하고 소박하고 욕심이 적으며 일을 따라 공을 이루기를 잘하여 비록 평일平日에 볼 수 있는 큰 유익함은 없었으나 해로 계산하면 유여하였다.
輔相三世注+[通鑑要解]元, 明, 成也 倉無儲穀하고 衣不重帛이러라
3注+[通鑑要解]삼세三世원제元帝명제明帝성제成帝를 이른다. 의 황제를 보필함에 창고에 쌓인 곡식이 없고 옷은 여벌의 비단옷이 없었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東晉中興 王導之功 居多焉이라
동진東晉중흥中興한 것은 왕도王導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方元帝之在藩也 導獨知其可輔하고 陳以興復之計하야 傾心推奉하니 其於中興之功 一也 旣而西都覆沒 四方勸進하고 王敦 憚帝嚴明하야 欲更議所立이라가 賴導固爭하야 厥議遂止하니 其於中興之功 二也 及其輔政 不以江左寡弱이라하야 而爲偸安之計하고 方且大立規模하고 廣連羽翼하야
원제元帝번병藩屛에 있을 때에 왕도王導만이 오직 원제元帝가 보필할 만한 인물이라는 것을 알고 흥복興復할 계책을 아뢰어서 온 마음을 기울여 추대하고 받들었으니 이것이 중흥中興에 있어 첫 번째이고, 이윽고 서도西都(長安)가 함락되자 사방四方에서 황족皇族들에게 제위帝位에 오를 것을 권하였고 왕돈王敦명제明帝의 엄숙함과 밝음을 꺼려서 다시 세울 사람을 의논하려고 하다가 왕도王導가 굳이 만류함에 힘입어서 그 의논이 마침내 중지되었으니 이것이 중흥中興에 있어 두 번째이고, 정사를 보필하게 되자 강좌江左가 적고 약하다 하여 구차히 안주하려는 계책을 세우지 않고 막 규모規模를 크게 세우고 우익羽翼을 널리 연결하였다.
先用顧榮, 賀循하야 以來衆士하고 盡收過江名流하야 以佐謀畫이라
그리하여 고영顧榮하순賀循을 먼저 등용하여 여러 선비들을 오게 하였으며 양자강揚子江을 건너온 명류名流들을 다 수용하여 모획謀畫을 돕게 하였다.
桓彛見其亟談時事而輟憂하고 周顗聞其志復神州而收淚하니 其於中興之功 三也
그러므로 환이桓彛는 그가 세상일을 지극히 말하는 것을 보고는 근심을 거두었고, 주의周顗는 그가 신주神州를 회복하려는 뜻이 있음을 듣고 눈물을 거두었으니, 이것이 중흥中興에 있어 세 번째이다.
是以 賢士競進하고 百姓歸心하야 荊揚晏安 戶口殷實하야 江左立國 幾百餘年하니 導之功 豈小小哉
이 때문에 어진 선비들이 다투어 나오고 백성의 마음이 돌아와서 형주荊州양주揚州가 편안하여 호구戶口가 많아지고 충실하여 강좌江左에 나라를 세운 것이 거의 백여 년 동안 이어졌으니, 왕도王導이 어찌 적겠는가.”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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