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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亥]十二年이라
건안建安 12년(정해 207)
琅邪諸葛亮 寓居襄陽隆中注+[釋義]襄陽 春秋楚邑이러니 秦兼天下하고 自漢以北爲南陽하니 今鄧州是 自漢以南爲南郡하니 今荊州是 襄陽 乃〈南陽南郡〉二郡之地 本傳註 家于南陽鄧縣하니 號曰隆中이라하야自比管仲, 樂毅하니 時人 莫之許也로되 惟潁川徐庶與崔州平注+[頭註]烈之子 謂爲信然이러라
처음에 낭야琅邪 사람인 제갈량諸葛亮양양襄陽융중隆中注+[釋義]양양襄陽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의 이었는데, 나라가 천하를 겸병하고 한수漢水 이북을 남양南陽이라 하였으니 지금의 등주鄧州가 이곳이요, 한수漢水 이남을 남군南郡이라 하였으니 지금의 형주荊州가 이곳이다. 양양襄陽은 바로 남양南陽남군南郡의 땅이다. 《삼국지三國志 촉지蜀志》 〈제갈량전諸葛亮傳〉의 에 “제갈량諸葛亮남양南陽등현鄧縣에 거주하였으니, 융중隆中이라 이름한다.” 하였다. 에 우거하여 항상 자신을 관중管仲악의樂毅에게 비교하니, 세상 사람들은 허여하지 않았으나 오직 영천潁川서서徐庶최주평崔州平注+[頭註]최주평崔州平최열崔烈의 아들이다.만은 진실로 그렇다고 말하였다.
劉備在荊州하야 訪士於襄陽司馬徽한대 徽曰 儒生俗士 豈識時務리오
유비劉備형주荊州에 있을 때에 양양襄陽사마휘司馬徽에게 훌륭한 선비를 묻자, 사마휘司馬徽가 말하기를 “유생儒生속사俗士가 어찌 시무時務를 알겠는가?
識時務者 在乎俊傑하니 此間 自有伏龍, 鳳雛니라
시무時務를 아는 것은 준걸俊傑에게 달려 있으니, 이 지역에 진실로 복룡伏龍봉추鳳雛가 있다.” 하였다.
備問爲誰
유비劉備가 “누구입니까?”
曰 諸葛孔明注+[頭註]亮字 龐士元注+[頭註]統字니라
하고 묻자, “제갈공명諸葛孔明(諸葛亮)注+[頭註]공명孔明제갈량諸葛亮이다.방사원龐士元(龐統)注+[頭註]사원士元방통龐統이다. 이다.” 하였다.
徐庶見備於新野하니 備器之注+[頭註]物之有用者 謂之器라하니 器之者 重之也러니
서서徐庶신야新野에서 유비劉備를 만나 보니 유비劉備는 그를 소중히 여겼다.注+[頭註]유용한 물건을 라고 이르니, 기지器之는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다.
庶謂備曰 諸葛孔明 臥龍也 將軍 豈願見之乎
서서徐庶유비劉備에게 말하기를 “제갈공명諸葛孔明와룡臥龍(숨어 있는 용)이니, 장군은 어찌 그를 만나 보려고 하지 않습니까?” 하였다.
備曰 君與俱來하라 庶曰 此人 可就見이언정 不可屈致也 將軍 宜枉駕顧之하라
유비劉備가 말하기를 “이 그와 함께 오라.” 하니, 서서徐庶가 말하기를 “이 사람은 찾아가서 볼 수는 있을지언정 굽혀서 오게 할 수는 없으니, 장군이 마땅히 왕가枉駕하여 가서 그를 만나야 합니다.” 하였다.
備由是詣亮하야 凡三往乃見하고 因屛人曰
유비劉備는 이로 말미암아 제갈량諸葛亮을 찾아가, 무릇 세 번을 가서야 비로소 제갈량諸葛亮을 만나 보고 인하여 사람들을 물리치고 말하기를
漢室傾頹 姦臣注+[頭註]謂曹操 竊命하니
나라 황실이 기울어짐에 간신姦臣(曹操)注+[頭註]간신姦臣조조曹操를 이른다. 들이 국권國權을 도둑질하니,
孤不度德量力하고 欲信(伸)大義於天下호되 而智術 短淺이라 遂用猖注+[原註] 僵也 失脚貌하야 至于今日이나
나는 자신의 역량力量을 헤아리지 않고 천하에 대의大義를 펴고자 하나 지모智謀가 짧고 얕아서 마침내 좌절과 실패注+[原註]은 쓰러짐이니, 실족失足한 모양이다. 를 겪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然志猶未已하니 謂計將安出 亮曰
그러나 나의 뜻은 오히려 그치지 않으니, 은 장차 어떻게 계책을 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하니, 제갈량諸葛亮이 대답하였다.
今曹操已擁百萬之衆하야 挾天子以令諸侯하니 誠不可與爭鋒이요 孫權 據有江東하야 已歷三世注+[頭註]堅, 策, 權이라 國險而民附하고 賢能 爲之用하니 可與爲援而不可圖也
“이제 조조曹操는 이미 백만의 병력을 보유하고서 천자天子를 끼고 제후를 호령하니 이는 진실로 더불어 예봉銳鋒을 다툴 수 없으며, 손권孫權강동江東 지방을 점거하여 이미 삼대三代注+[頭註]3손견孫堅, 손책孫策, 손권孫權이다.를 지나서 지세地勢가 험하고 백성들이 따르며 덕 있는 자와 유능한 자들이 쓰여지고 있으니 이는 더불어 동맹同盟이 되어야 하고 도모할 수는 없습니다.
荊州 北據漢, 注+[釋義]禹貢荊州注曰 荊州之域 北距南條荊山하고 南盡衡山之陽이라하니 今江陵府是 括地志云 沔水 出武都郡하야 東南入江이라 漢水源出梁州金牛縣東一十八里嶓冢山하니라하고 利盡南海하며 東連吳會注+[釋義]吳都曰吳會 今蘇州是 宋陞平江府하니라[頭註]吳地 爲荊揚交廣之都會하고 西通巴蜀하니 用武之國이로되
형주荊州는 북쪽으로 한수漢水면수沔水를 점거하고注+[釋義]서경書經》 〈우공禹貢〉의 형주荊州 에 “형주荊州 지역은 북으로 남조형산南條荊山에 이르고 남쪽으로 형산衡山의 남쪽을 다한다.” 하였으니, 지금 강릉부江陵府가 이곳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이르기를 “면수沔水무도군武都郡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양자강으로 들어간다. 한수漢水는 근원이 양주梁州 금우현金牛縣 동쪽 18리 지점인 파총산嶓冢山에서 나온다.” 하였다. 남쪽으로 남해南海의 이익을 다 차지하며 동쪽으로 오회吳會注+[釋義]吳都를 오회吳會라 하니, 지금의 소주蘇州가 이곳이다. 나라 때 평강부平江府로 승격되었다.[頭註]吳會는 지방이니, 형주荊州양주揚州교주交州광주廣州도회都會이다. 와 연접하고 서쪽으로 파촉巴蜀과 통하니, 이는 무력武力을 쓸 수 있는 나라입니다.
而其主不能守하니 殆天所以資將軍也
그런데 그 주인이 제대로 지키지 못하니, 이는 아마도 하늘이 내려 주어 장군의 밑천으로 삼게 하려는 것인 듯합니다.
益州 險塞 沃野千里하야 天府之土注+[釋義]財物所聚曰府 言益州之地 物産饒多하야 可備贍給이라어늘 劉璋注+[頭註]焉之子也 景帝子魯恭王之後 以宗室 拜中郞하고 領益州牧이러니 子璋襲位 闇弱하고 張魯注+[釋義]卽五斗米賊이니 以鬼道惑人하야 久據漢中하니라在北하야 民殷國富로되 而不知存恤하니 智能之士注+[頭註]張松法正之徒 思得明君이라
익주益州는 험한 요새지이고 비옥한 들이 천 리에 이어져 있어 천부天府의 땅注+[釋義]재물이 모이는 곳을 라 하니, 익주益州 땅은 물산이 풍부하여 넉넉히 공급함에 대비할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인데 이곳을 다스리는 유장劉璋注+[頭註]유장劉璋유언劉焉의 아들이니, 경제景帝의 아들인 노공왕魯恭王의 후손이다. 유언劉焉종실宗室로서 중랑中郞에 제수되고 영익주목領益州牧이 되었는데, 아들 유장劉璋이 지위를 세습하였다. 이 어리석고 무능하며, 장로張魯注+[釋義]장로張魯는 바로 오두미교五斗米敎이니, 귀신의 방법으로 사람들을 미혹시켜 오랫동안 한중漢中을 점거하였다. 가 북쪽에 있어 백성이 많고 나라가 부유하나 백성들을 보존하고 구휼할 줄 모르니, 지혜롭고 유능한 선비들注+[頭註]지혜롭고 유능한 선비는 장송張松법정法正의 무리이다. 이 현명한 군주를 얻을 것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將軍 旣帝室之冑注+[頭註]裔也 信義著於四海하니 若跨有荊, 益하야 保其巖阻注+[頭註]巖險也하고 撫和戎, 越하고 結好孫權하야 內修政治하고 外觀時變이면 則霸業 可成이요 漢室 可興矣리이다
장군將軍황실皇室의 후손注+[頭註]는 후예이다. 으로 신의信義사해四海에 드러났으니, 만약 형주荊州익주益州를 차지하여 산천의 험고함注+[頭註]암조巖阻는 높고 험한 것이다. 을 확보하고 융족戎族 지방을 어루만져 화친하고 손권孫權과 우호를 맺어, 안으로 정치를 닦고 밖으로 시변時變을 관찰한다면 패업霸業을 이룩할 수 있고 나라 황실을 부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備曰 善타하다 於是 與亮情好日密하니 關羽, 張飛不悅이어늘
유비劉備가 말하기를 “좋다.” 하고, 이에 제갈량諸葛亮정의情誼가 날로 친밀해지니, 관우關羽장비張飛가 기뻐하지 않았다.
備解之曰 孤之有孔明 猶魚之有水也 願諸君 勿復言하라 羽, 飛乃止하다
유비劉備는 이들에게 해명하기를 “나에게 공명孔明이 있음은 물고기에게 물이 있는 것과 같으니, 제군諸君들은 더 이상 말하지 말라.” 하니, 관우關羽장비張飛가 이에 그쳤다.
[新增]尹氏曰
[新增]尹氏가 말하였다.
自三代衰, 王政廢 士之隨世就功名者 多矣
삼대三代가 쇠하고 왕정王政이 폐해짐으로부터 세상을 따라 공명功名을 이룬 선비가 많았다.
當漢之末하야 群雄雲擾 凡一智一能之士 莫不乘時奮發하야注+[頭註]與祈通이라以自見하니 孰謂一世人龍如孔明者 方且高臥隆中하야 抱膝長吟하야 略無意於當世하고 而又以管樂自許者哉
나라 말기를 당하여 군웅群雄들이 구름처럼 일어나자, 무릇 한 가지 지혜와 한 가지 재능이 있는 선비들이 때를 타고 분발하여 자신을 드러내기를 바라지注+[頭註]와 통한다. 않은 자가 없었으니, 한 세상의 인룡人龍(俊傑)으로서 공명孔明과 같은 자가 막 융중隆中에 높이 누워(은거하여) 무릎을 껴안고 앉아 길게 시를 읊으면서 조금도 당세에 뜻이 없고, 또 관중管仲악의樂毅로써 자신을 허여하는 자인 줄을 그 누가 생각하였겠는가.
向使昭烈 不垂三顧之勤이면 則將槁死巖穴하야 與草木俱腐耳리라
그때 만일 소열昭烈제갈량諸葛亮초옥草屋으로 세 번이나 찾아가지 않았다면 제갈량諸葛亮은 장차 암혈巖穴에서 말라 죽어서 초목과 함께 썩어 없어졌을 것이다.
及其一起하야는 則功名事業 彪炳注+[頭註] 虎文也顯著하야 不可得而泯沒하니 亮豈大言無當者리오
한 번 세상에 나옴에 미쳐서는 공명功名사업事業이 찬란하게注+[頭註]는 호피 무늬이다. 드러나서 매몰될 수가 없었으니, 제갈량諸葛亮이 어찌 큰소리만 치고 부합함이 없는 자이겠는가.
彼其擇理甚精而處己甚明하니 謂枉己 不可以直人也
저 사람은 이치를 가림이 매우 정밀하고 처신함이 매우 분명하였으니, 자기 몸을 굽히면 남을 바로잡을 수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不苟合以求售하고
그러므로 구차히 영합하여 팔리기를 구하지 않았다.
謂托身 不可以非所也
그리고 몸을 의탁하는 것을 올바르지 않은 곳에 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不肯苟仕於僭竊하야 時乎未遇 則高蹈丘園하고 道苟可行이면 則奮志事業이라
그러므로 참람하고 도둑질한 자에게 구차히 벼슬하려고 하지 아니하여, 때를 만나지 못하면 산림山林에 은거하고 를 만일 행할 수 있으면 사업事業에 뜻을 분발하였다.
君臣旣合 魚水相懽하니 則聲大義於天下하야 使興衰繼絶하야 翊扶正統之志 昭如日星이라
군주와 신하가 이미 부합함에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처럼 서로 기뻐하자 천하에 대의大義를 밝혀서 쇠한 것을 일으키고 끊어진 것을 이어서 정통正統을 도와 부지하려는 뜻이 해와 별처럼 밝았다.
然後 簒竊之徒 其罪始白而不可掩하니 是豈區區一智一能之士隨世就功名者 可同日語哉
그런 뒤에야 찬탈하고 도둑질한 무리들이 그 죄가 비로소 크게 드러나서 가릴 수가 없었으니, 이 어찌 구구하게 한 가지 지혜와 한 가지 재능이 있는 선비가 세상을 따라 공명功名을 이룬 것과 똑같이 말할 수 있겠는가.
朱子筆之曰 劉備見諸葛亮於隆中이라하시니 其與聘莘野, 訪渭濱注+[頭註]莘野 伊尹이요 渭濱 太公이라 越千載如出一轍이라
주자朱子가 쓰기를 ‘유비劉備제갈량諸葛亮융중隆中에서 만나 보았다.’ 하였으니, 이는 탕왕湯王이윤伊尹신야莘野에서 초빙한 것과 문왕文王태공망太公望위수渭水 가로 방문한 것注+[頭註]聘莘野 방위빈訪渭濱:신야莘野신야莘野에서 농사지은 이윤伊尹이요, 위빈渭濱위수渭水 가에서 낚시질한 강태공姜太公이다. 과 천 년을 뛰어넘어 한 자취에서 나온 것과 같다.
嗚呼 三代而下 孰謂出處之正 有如孔明者哉
아, 삼대三代 이후로 출처出處의 올바름이 공명孔明과 같은 자가 있을 줄을 누가 생각하였겠는가.
不有君子表而出之 則孔明亦後世人物耳리니
군자君子가 이것을 표출하지 않았다면 공명孔明 또한 후세의 인물일 뿐이었을 것이니, 아! 슬프다.”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三國人才之盛 後世鮮及이라
삼국시대三國時代에 훌륭한 인재가 많음은 후세에 미칠 수가 없다.
이나 孔明則高邁獨出하야 巍然
그러나 제갈공명諸葛孔明은 고매하고 특출하여 우뚝이 삼대시대三代時代의 보좌였다.
亞於伊傅어늘 而以管樂自比者 謙辭也 才與管仲等而德則過之니라
그리하여 이윤伊尹부열傅說에 버금갈 정도였는데 관중管仲악의樂毅로써 자신을 비유한 것은 겸사이니, 재주는 관중管仲과 비슷하였으나 관중管仲을 능가하였다.”
司馬徽淸雅하야知人之鑑이라
사마휘司馬徽는 깨끗하고 고상하여 사람을 알아보는 감식鑑識이 있었다.
同縣龐德公注+[頭註]統從父也 素有重名하니 徽兄事之러라
동현同縣방덕공龐德公注+[頭註]덕공德公방통龐統종부從父(伯叔父)이다. 이 평소 중한 명망이 있었으니 사마휘司馬徽가 그를 형으로 섬겼다.
德公 常(嘗)謂孔明爲臥龍이요 士元爲鳳雛 德操注+[釋義]司馬徽字爲水鑑이라하니 德操與劉備語而稱之하니라
방덕공龐德公이 일찍이 공명孔明와룡臥龍이라 하고, 사원士元봉추鳳雛라 하고, 덕조德操(司馬徽)注+[釋義]덕조德操사마휘司馬徽이다. 수감水鑑이라 하였으므로 덕조德操유비劉備와 말할 때에 이렇게 칭한 것이다.
○ 秋七月 曹操南擊劉表할새 表卒하고 子琮 爲嗣러니 九月 操至新野하니 遂擧州降操하다
○ 가을 7월에 조조曹操가 남쪽으로 유표劉表를 공격할 때에 마침 유표劉表가 죽고 아들 유종劉琮이 후사를 이었는데, 9월에 조조曹操신야新野에 이르니 유종劉琮이 마침내 를 들어 조조曹操에게 항복하였다.
○ 時 劉備屯樊注+[釋義]城名이니 在襄陽城西北五里하니라이러니 大驚注+[通鑑要解]聞劉琮降於操하니 操之在宛故也하야 呼部曲共議하니 勸備攻琮이면 荊州 可得이라한대
○ 이때 유비劉備번성樊城注+[釋義]의 이름이니 양양성襄陽城 서북쪽 5리 지점에 있다. 에 주둔해 있었는데 〈조조曹操가 공격해 온다는 말을 듣고〉 크게 놀라注+[通鑑要解]유비劉備가 크게 놀란 것은 유종劉琮조조曹操에게 항복했다는 말을 들어서이니, 이때 조조曹操 땅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곡部曲을 불러 함께 의논하니, 혹자가 유비劉備에게 유종劉琮을 공격하면 형주荊州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으나,
備曰 劉荊州臨亡 託我以孤遺하니 背信自濟 吾所不爲로라
유비劉備는 말하기를 “유형주劉荊州(劉表)가 죽을 때에 나에게 그 고아孤兒를 부탁하였으니, 신의信義를 저버리고 자신의 일을 이루는 것은 내 하지 않겠다.” 하였다.
備將其衆去하야 過襄陽하니 荊州人 多歸備하야 比到當陽注+[頭註]縣名이라하야는 十餘萬人이요 輜重 數千兩이라
유비劉備가 그의 무리를 거느리고 떠나 양양襄陽을 지나가니, 형주荊州 사람들이 유비劉備에게 많이 귀의하여 당양當陽注+[頭註]당양當陽의 이름이다. 에 이름에 미쳐서는 무리가 10여만 명이었고 치중輜重이 수천 대였다.
日行十餘里하고 別遣關羽하야 乘船數百注+[頭註] 音騷이니 船之總名이라하야 使會江陵注+[釋義]江陵者 禹貢荊州 春秋楚之郢都 三國 吳立荊州러니 後宋爲江陵府하니라하다
하루에 십여 리를 가고, 따로 관우關羽를 보내어 수백 척의 배注+[頭註]는 음이 소이니, 배의 총칭이다. 를 타고서 강릉江陵注+[釋義]강릉江陵은 《서경書經》 〈우공禹貢〉의 형주荊州이니, 춘추시대春秋時代 나라의 영도郢都이다. 삼국시대三國時代나라가 형주荊州를 세웠는데, 뒤에 나라가 강릉부江陵府로 삼았다.에서 만나기로 하였다.
或謂備曰 宜速行하야 保江陵이니이다 備曰 夫濟大事인댄 必以人爲本이니 今人歸吾어늘 吾何忍棄去리오
혹자가 유비劉備에게 이르기를 “마땅히 신속히 가서 강릉江陵을 지켜야 합니다.” 하였으나, 유비劉備는 말하기를 “대사大事를 이루려면 반드시 사람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니, 이제 사람들이 나에게 귀의하는데 내 어찌 차마 버리고 가겠는가.” 하였다.
習鑿齒注+[頭註]晉人이라論曰
습착치習鑿齒注+[頭註]습착치習鑿齒진인晉人이다. 가 논하였다.
劉玄德注+[頭註]備字 雖顚沛險難이나 而信義愈明하고 勢偪事危 而言不失道하야
유현덕劉玄德注+[頭註]현덕玄德유비劉備이다. 이 비록 전패顚沛하고 험난하였으나 신의信義가 더욱 드러나고, 형세가 절박하고 사정이 위태로웠으나 말이 도리를 잃지 않았다.
追景升之顧注+[頭註]思劉表之托孤幼하야 則情感三軍하고 戀赴義之士注+[頭註]謂人歸而不忍棄去하야 則甘與同敗하니 終濟大業 不亦宜乎
경승景升(劉表)이 죽을 때 돌아보고 부탁한 일을 추념追念하여注+[頭註]경승景升이 돌아보고 부탁한 일을 추념한다는 것은 유표劉表가 어린 고아를 부탁하였음을 생각한 것이다. 진정眞情삼군三軍을 감동시켰고, 를 따르는 선비들을 연연해하여注+[頭註]를 따르는 선비들을 연연해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유비劉備에게 귀의하므로 차마 버리고 떠나지 못함을 이른다. 그들과 환난을 함께 함을 달게 여겼으니, 끝내 대업大業을 이룬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曹操以江陵 有軍實注+[頭註]謂車徒器械芻糧之類하니 恐劉備據之라하야 乃釋輜重하고 輕軍至襄陽하야 聞備已過하고
조조曹操강릉江陵군실軍實(군사와 무기)注+[頭註]군실軍實거병車兵보졸步卒, 기계器械, 꼴과 양식 따위를 이른다.이 있었으니 유비劉備가 점거할까 두렵다 하여 마침내 치중대輜重隊를 버리고 경무장한 군대로 양양襄陽에 이르러 유비劉備가 이미 지나갔다는 말을 들었다.
操將精騎五千하고 往追之할새 一日一夜 行三百餘里하야 及於當陽之長坂注+[釋義]南陽當陽縣이니 今屬荊門州하니 縣在州西北九十里 元和志云 綠林山 在當陽縣東南百二十里하니 卽所謂當陽之長坂也하니 備棄妻子走하다
조조曹操는 정예 기병 5천 명을 데리고 가서 추격할 때에 일주야一晝夜 만에 300여 리를 행군하여 당양當陽장판長坂注+[釋義]당양當陽장판長坂남양南陽당양현當陽縣으로 지금 형문주荊門州에 속하니, 의 서북쪽 90리 지점에 있다. 《원화지元和志》에 이르기를 “녹림산綠林山당양현當陽縣 동남쪽 120리 지점에 있으니, 바로 이른바 당양當陽장판長坂이라는 곳이다.” 하였다. 에서 따라잡으니, 유비劉備가 처자를 버리고 도망하였다.
○ 曹操進軍江陵하다
조조曹操강릉江陵으로 진군進軍하였다.
○ 初 魯肅 聞劉表卒하고 言於孫權호되 請往說劉備하야 使撫表衆하야 共治曹操라하더니 備南走어늘
○ 처음에 노숙魯肅유표劉表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손권孫權에게 말하기를 “가서 유비劉備를 설득하여 유표劉表의 무리를 어루만지게 해서 함께 조조曹操에게 대응하자.”고 하였는데, 마침 유비劉備가 남쪽으로 도망왔다.
肅迎之於當陽長坂하야 謂備曰 孫討虜注+[釋義]孫權爲討虜將軍하니라 敬賢禮士하고 兵精糧多하니 足以立事
노숙魯肅당양當陽장판長坂에서 맞이하여 유비劉備에게 이르기를 “손토로孫討虜(孫權)注+[釋義]손권孫權토로장군討虜將軍이 되었으므로 손토로孫討虜라 한 것이다. 현자賢者를 공경하고 선비를 예우하며 군사들이 정예하고 양식이 많으니 충분히 성공할 수 있습니다.
今爲君計컨대 莫若遣腹心하야 自結於東이니이다
지금 을 위하여 계책을 헤아려 보건대 심복心腹을 보내어 스스로 강동江東과 동맹을 맺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備用肅計하야 進住鄂縣之樊口注+[釋義]在江夏郡鄂縣하니라하다
유비劉備노숙魯肅의 계책을 따라 나아가서 악현鄂縣번구樊口注+[釋義]번구樊口강하군江夏郡 악현鄂縣에 있다. 에 주둔하였다.
○ 曹操自江陵으로 將順江東下어늘
조조曹操강릉江陵으로부터 장차 강물을 따라 동쪽으로 내려오려 하였다.
諸葛亮曰 事急矣
제갈량諸葛亮유비劉備에게 말하기를 “일이 급하게 되었습니다.
請奉命求救於孫將軍이라하고 遂與魯肅으로 詣孫權하다
청컨대 명령을 받들어 손장군孫將軍에게 구원을 요청하겠습니다.” 하고, 마침내 노숙魯肅과 함께 손권孫權을 찾아갔다.
亮說權曰 海內大亂 將軍 起兵江東하고 劉豫州注+[釋義]劉備爲豫州刺史 故云劉豫州라하니라 收衆漢南하야 與曹操 竝爭天下러니
제갈량諸葛亮손권孫權을 설득하기를 “해내海內가 크게 어지러워 장군은 강동江東에서 군대를 일으켰고, 유예주劉豫州(劉備)注+[釋義]유비劉備예주자사豫州刺史가 되었기 때문에 유예주劉豫州라고 이른 것이다. 한수漢水의 남쪽에서 병력을 수습하여 조조曹操와 함께 천하를 다투었는데,
今操注+[頭註]이라大難하야 略已平矣 遂破荊州注+[頭註]劉表子琮 降操하니라하야 威震四海하니 英雄注+[頭註]謂劉豫州 無用武之地
이제 조조曹操가 큰 난리를 평정注+[頭註]은 벰이요, 는 평정함이다. 하여 대략 이미 평정되었고, 마침내 형주荊州를 격파하여注+[頭註]형주荊州를 격파하였다는 것은 유표劉表의 아들인 유종劉琮조조曹操에게 항복하였으므로 말한 것이다. 위엄이 사해四海에 진동하니, 영웅注+[頭註]영웅英雄유예주劉豫州(劉備)를 이른다. 이 무력을 쓸 여지가 없습니다.
豫州遁逃至此하니 願將軍 量力而處之하소서
이 때문에 유예주劉豫州가 도망하여 여기에 이르렀으니, 원컨대 장군께서는 힘을 헤아려 대처하시기 바랍니다.
若能以吳, 越之衆으로 與中國抗衡인댄 不如早與之絶이요 若不能인댄 何不北面而事之릿고
만약 의 병력을 가지고 중국과 맞서려 한다면 일찍 조조曹操와 끊어 버리는 것만 못하고, 만약 이렇게 할 수 없다면 어찌 북면北面하여 그를 섬기지 않습니까.” 하였다.
權曰 劉豫州何不遂事之乎 亮曰 田橫 齊之壯士耳로되 猶守義不辱注+[釋義]七國時 齊王田榮死어늘 橫自立이러니 及項羽滅 橫懼誅하야 與其徒五百人으로 入居海島하다 漢高祖赦而召之한대 橫與其客二人으로 詣洛陽이라가 未至三十里自殺하니 帝拜二客爲都尉하고 以王禮葬하다 田橫旣葬 二客穿其冢旁하고 皆自剄下從之어늘 帝又召其海中五百人하야 使至러니 聞橫死하고 亦皆自殺하니라이어든 況劉豫州 王室之冑 英才蓋世하니 安能爲之下乎잇가
손권孫權이 말하기를 “유예주劉豫州는 어찌하여 마침내 그를 섬기지 않는가?” 하니, 제갈량諸葛亮이 말하기를 “전횡田橫나라의 장사壯士였을 뿐인데도 를 지키고 굴복하지 않았는데,注+[釋義]칠국시대七國時代(戰國時代)에 제왕齊王 전영田榮이 죽자 전횡田橫이 스스로 서서 왕이 되었는데, 항우項羽가 멸망하자 전횡田橫은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하여 그 무리 500명과 함께 해도海島에 들어가 거주하였다. 나라 고조高祖가 사면하고 부르자, 전횡田橫은 그의 문객門客 두 사람과 함께 낙양洛陽으로 오다가 30리 못 미친 곳에서 자살하니, 고조高祖는 두 문객을 제수하여 도위都尉로 삼고 로 장사 지냈다. 전횡田橫을 장례한 뒤에 두 문객은 무덤의 옆을 뚫고 모두 스스로 목을 찔러 죽어서 구천九泉으로 따라갔다. 고조高祖가 또다시 해중海中의 500명을 불러서 오게 하였는데, 이들은 전횡田橫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또한 모두 자살하였다. 하물며 유예주劉豫州는 왕실의 후손이고 뛰어난 재주가 세상을 뒤덮을 만하니, 어찌 그의 아래에 있을 수가 있겠습니까?” 하였다.
權勃然曰 吾不能擧全吳之地하야 受制於人이로다
손권孫權이 발끈하여 말하기를 “내가 나라 전 지역을 들어서 남에게 제재받지는 않을 것이다.
吾計決矣 非劉豫州 莫可以當曹操者
나의 계책이 이미 결정되었으니, 유예주劉豫州가 아니면 조조曹操를 당해 낼 만한 자가 없다.
이나 豫州新敗之後 安能抗此難乎 亮曰 今戰士還者及關羽水軍精甲 萬人이요 劉琦注+[頭註]江夏太守 表子琮兄이라合江夏注+[釋義]春秋時 謂之江汭하고 漢置江夏郡하야 領鄂縣이러니 三國 吳更名武昌하고 隋改鄂州하니라戰士하면 亦不下萬人이라
그러나 유예주劉豫州가 새로 패전한 뒤에 어떻게 이러한 난에 맞서겠는가?” 하니, 제갈량諸葛亮이 말하기를 “지금 돌아온 병사와 관우關羽의 수군 정예병이 만 명이고, 유기劉琦注+[頭註]유기劉琦강하태수江夏太守였으니, 유표劉表의 아들이고 유종劉琮의 형이다. 강하江夏注+[釋義]강하江夏춘추시대春秋時代에는 강예江汭라 일렀고, 나라는 강하군江夏郡을 설치하고 악현鄂縣을 거느렸는데, 삼국시대三國時代나라가 무창武昌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나라는 악주鄂州로 고쳤다. 의 병사를 규합하면 또한 만 명을 밑돌지 않을 것입니다.
曹操之衆 遠來疲敝하고 聞追豫州하야 輕騎一日一夜 行三百餘里라하니 此所謂强弩之末 勢不能穿魯縞注+[釋義]繒之精白者曰縞 曲阜之俗 善作之하야 尤爲輕細 故謂之魯縞者也
조조曹操의 무리는 먼 길을 오느라 피폐하고, 듣건대 유예주劉豫州를 추격할 때에 경무장한 기병이 일주야一晝夜에 300여 리를 행군했다 하니, 이는 이른바 ‘강한 쇠뇌의 화살이 끝에 가면 형세가 나라의 얇은 비단注+[釋義]비단 중에 곱고 흰 것을 라 하니, 곡부曲阜의 풍속이 이 비단을 잘 만들어서 특히 가볍고 가늘었기 때문에 노호魯縞라고 한 것이다. 도 뚫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兵法 忌之曰 必上將軍注+[釋義] 斃也 大將軍 必致僵仆也이라하니이다
그러므로 《손자병법孫子兵法》에 이를 꺼려 말하기를 ‘반드시 상장군上將軍이 쓰러진다.’注+[釋義]은 쓰러짐이니 급히 행군하면 대장군大將軍이 반드시 쓰러지는 것이다. 고 하였습니다.
且北方之人 不習水戰하고 又荊州之民附操者 偪兵勢耳 非心服也
또 북방 사람들은 수전水戰에 익숙하지 못하고, 또 형주荊州의 백성들이 조조曹操에게 귀부歸附한 것은 군대의 위세에 핍박을 받아서일 뿐이요 마음으로 복종한 것은 아닙니다.
今將軍 誠能與豫州 協規同力이면 破操軍 必矣 操軍敗 則荊, 吳注+[頭註] 謂備 謂權이라之勢强하고 鼎足之形成矣리이다
지금 장군將軍이 진실로 유예주劉豫州와 계획을 같이하고 힘을 합친다면 틀림없이 조조曹操의 군대를 격파할 수 있을 것이며, 조조曹操의 군대가 패하면 형주荊州注+[頭註]유비劉備를 이르고, 손권孫權을 이른다. 의 형세가 강해져서 삼국三國이 솥발처럼 벌여 서는 형세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是時 曹操遺權書曰 近者 奉辭伐罪하야 旌麾南指하니 劉琮 束手
이때 조조曹操손권孫權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근자에 황제의 명령을 받들어 죄 있는 자를 토벌해서 깃발이 남쪽을 향하니, 유종劉琮이 두 손을 들고 항복하였다.
今治水軍八十萬衆하야 方與將軍으로 會獵於吳호리라
이제 수군水軍 80만 명을 다스려서 바야흐로 장군과 지방에서 만나 싸우려 한다.” 하였다.
權以示群下하니 莫不響震失色이라
손권孫權이 이 편지를 여러 부하들에게 보이니, 목소리가 떨리고 낯빛이 변하지 않은 자가 없었다.
長史張昭等曰 將軍大勢 可以拒操者 長江也러니 今操得荊州하야 長江之險 以與我共之矣 不如迎之니이다
장사長史 장소張昭 등은 말하기를 “장군의 대세大勢로 볼 때 조조曹操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장강長江이었는데, 이제 조조曹操형주荊州를 얻어서 장강長江의 험고함을 우리와 함께 나누어 가졌으니, 그를 맞이하는 것만 못합니다.” 하였다.
魯肅 密言於權曰 向察衆人之議하니 專欲誤將軍이라
노숙魯肅이 은밀하게 손권孫權에게 말하기를 “조금 전에 여러 사람들의 의논을 살펴보니, 오로지 장군을 그르치고자 합니다.
不足與圖大事하니早定大計하소서
족히 큰일을 도모할 수 없으니, 큰 계책을 속히 정하소서.” 하였다.
周瑜至이라 勸權하야 召瑜還注+[通鑑要解]瑜已前受命이나 蓋行未遠이라 召還也한대
이때 주유周瑜파양鄱陽에 이르렀는데, 노숙魯肅손권孫權에게 권하여 주유周瑜를 불러 돌아오게 하였다.注+[通鑑要解]주유周瑜가 이미 전에 명을 받고 길을 떠났으나 아직 멀리 가지 않았으므로 불러서 돌아오게 한 것이다.
瑜至 謂權曰 操雖托名漢相이나 其實 漢賊也
주유周瑜가 이르자, 손권孫權에게 이르기를 “조조曹操가 비록 명색은 나라 정승이라고 칭탁하고 있으나 실제는 나라의 역적입니다.
將軍 割據江東하야 兵精足用하니 當橫行天下하야 爲漢家除殘注+[頭註] 賊也 害也 孟子 賊義者 謂之殘이라去穢어든 況操自送死 而可迎之耶잇가
장군將軍강동江東 지방을 할거하여 군사들이 정예로워 충분히 쓸 수 있으니, 천하에 횡행하여 나라를 위해 잔해殘害하는 자들을 제거하고注+[頭註]은 상하게 함이요, 해침이다. 《맹자孟子》에 “를 해치는 자를 이라 이른다.” 하였다. 더러움을 제거해야 할 터인데, 더구나 조조曹操가 스스로 죽으러 왔는데 맞이할 수 있겠습니까.
請爲將軍籌之호리이다
장군將軍을 위하여 계획할 것을 청합니다.
今北土未平 馬超, 韓遂注+[頭註] 靈帝末 與遂 起事於西州하여 鎭關中하니라[通鑑要解]國誌 遂之甥姪也 尙在關西하야 爲操後患이어늘
지금 북쪽 지방이 평정되지 못하여 마초馬超한수韓遂注+[頭註]馬超가 영제靈帝 말년에 한수韓遂와 더불어 서주西州에서 거사擧事하여 관중關中진무鎭撫하였다. [通鑑要解]《삼국지三國志》에 “마초馬超한수韓遂생질甥姪이다.” 하였다.가 아직도 관서關西 지방에 있어 조조曹操의 후환이 되고 있습니다.
而操舍鞍馬하고 杖舟楫注+[頭註] 持也 北人 便於鞍馬하고 南人 便於舟楫하니 言操舍長取所短也하야 與吳, 越爭衡하고 又今盛寒 馬無藁草어늘 驅中國士衆하야 遠涉江, 湖之間하니 不習水土하야 必生疾病하리니
그런데 조조曹操가 안장 얹은 말을 버리고 배와 노에 의지하여注+[頭註]操舍鞍馬 장주즙杖舟楫:은 잡음이다. 북쪽 지방 사람들은 안장 얹은 말(騎馬戰)을 편하게 여기고, 남쪽 지방 사람들은 배와 노(水戰)를 편하게 여기니, 조조曹操가 장점을 버리고 단점을 취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과 다투고, 또 지금 엄동설한에 말은 짚과 마초가 없는데 중국中國의 군사들을 몰아서 멀리 의 사이를 건너오니, 수토水土에 익숙하지 못하여 반드시 질병이 생길 것입니다.
此數者 用兵之患也
이 몇 가지는 용병用兵의 병통입니다.
瑜請得精兵五萬人하야 保爲將軍破之하리이다
제가 정예병 5만 명을 얻어서 보장하고(책임지고) 장군將軍을 위해 격파하겠습니다.” 하였다.
權曰 老賊 欲廢漢自立 久矣로되 徒忌二袁注+[頭註]紹, 術이라, 呂布, 劉表與孤耳러니 今數雄已滅하고 惟孤尙存하니 孤與老賊으로 勢不兩立이라
손권孫權이 말하기를 “노적老賊(曹操)이 나라를 폐하고 스스로 서려고 한 지가 오래되었으나 다만 두 원씨袁氏注+[頭註]원씨袁氏원소袁紹원술袁術이다. 여포呂布유표劉表와 나를 꺼릴 뿐이었는데, 이제 영웅들이 이미 멸망하고 오직 나만 남아 있으니, 나는 노적老賊과 형세가 양립兩立할 수 없다.
君言當擊하니 天以君授孤也로다
그대가 공격해야 한다고 말하니, 이는 하늘이 그대를 나에게 준 것이다.” 하였다.
因拔刀斫案曰 諸將吏 敢復有言當迎操者 與此案同하리라하고 因撫瑜背曰 公瑾注+[頭註]瑜字
손권孫權은 인하여 칼을 뽑아 책상을 내리치며 말하기를 “여러 장수와 관리 중에 감히 다시 조조曹操를 맞이해야 한다고 말하는 자가 있으면 이 책상과 똑같이 될 것이다.” 하고, 인하여 주유周瑜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말하기를 “공근公瑾注+[頭註]공근公瑾주유周瑜이다. 아!
卿言 至此하니 甚合孤心이로다
의 말이 여기에 이르니, 나의 마음과 매우 부합한다.
五萬兵 難卒合注+[頭註] 急也이어니와 已選三萬人하니 卿與子敬注+[原註]肅字也, 程公注+[釋義]程公 謂程普으로 便在前發하라
5만 명의 병력은 갑자기注+[頭註]은 갑자기이다. 모으기 어려우나 이미 3만 명을 선발하였으니, 자경子敬(魯肅)注+[原註]자경子敬노숙魯肅이다. 정공程公(程普)注+[釋義]정공程公정보程普를 이른다. 과 함께 앞에서 출발하라.
孤當續發人衆하야 爲卿後援이라하고
나는 계속하여 사람들을 징발해서 의 후원이 되겠다.” 하고는
遂以周瑜, 程普 爲左右督하야 將兵하야 與備幷力逆操하고 以魯肅으로 爲贊軍注+[頭註]使之贊軍謀하고 因以爲官稱이라校尉하야 助畫方略하다
마침내 주유周瑜정보程普좌우독左右督으로 삼아서 병력을 거느리고 유비劉備와 힘을 합해 조조曹操를 맞아 싸우게 하고, 노숙魯肅찬군교위贊軍校尉注+[頭註]찬군贊軍은 그로 하여금 군대의 책략策略을 돕게 하고, 인하여 이로써 관직의 명칭을 삼은 것이다. 로 삼아 방략方略을 도와서 계획하게 하였다.
劉備在樊口하야 日遣注+[頭註] 遊偵也, 探伺也 遊兵也於水次하야 候望權軍이러니 吏望見瑜船하고 馳往白備한대
유비劉備번구樊口에 있으면서 날마다 순라巡邏하는 관리注+[頭註]는 돌아다니며 정탐하고 탐색하여 엿보는 것이니, 정탐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 없이 돌아다니는 병사이다. 를 물가에 보내어 손권孫權의 군대를 정탐하게 하였는데, 순라巡邏하는 관리가 주유周瑜의 배가 오는 것을 멀리서 바라보고 달려가 유비劉備에게 아뢰었다.
備乃乘單하고 往見瑜하고 問曰 今拒曹公 深爲得計 戰卒 有幾 瑜曰 三萬人이로라
유비劉備가 마침내 배 한 척을 타고 가서 주유周瑜을 만나 보고 묻기를 “지금 조공曹公에게 대항하는 것이 참으로 좋은 계책인데, 싸울 병력이 얼마나 되는가?” 하니, 주유周瑜가 대답하기를 “3만 명입니다.” 하였다.
備曰 恨少로다 瑜曰 此自足用이니 豫州 但觀瑜破之하라하고 進與操遇於赤壁注+[釋義]王氏曰 按方輿勝覽黃州註 引水經하야 載赤鼻山하고 齊安拾遺 遂〈以赤鼻山〉爲赤壁山하니 其說乖繆 蓋周瑜自柴桑으로 至武昌縣樊口하고 而後遇於赤壁하니 則赤壁 當臨大江하야 在樊口之上이어늘 今赤鼻山 在樊口對岸하니 何待進軍而後遇之乎 又赤壁初戰 操軍不利하야 引次江北하야 而後有烏林之敗하니 則烏林 當在江之北岸이요 赤壁 在江之南岸이어늘 今乃云赤壁在江之北이라하니 亦非也하다
유비劉備가 말하기를 “적은 것이 한스럽다.” 하니, 주유周瑜가 말하기를 “이것만 가지고도 충분히 쓸 수 있으니, 유예주劉豫州는 다만 이 주유周瑜조조曹操의 군대를 격파하는 것을 구경만 하십시오.” 하고 나아가서 조조曹操적벽赤壁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방여승람方輿勝覽》의 황주黃州 에 《수경水經》을 인용하여 적비산赤鼻山이라 기재하였고, 《제안습유齊安拾遺》에는 마침내 적비산赤鼻山적벽산赤壁山이라 하였으니, 그 말이 잘못되었다. 주유周瑜시상柴桑으로부터 무창현武昌縣번구樊口에 이르고 뒤에 적벽赤壁에서 만났으니, 적벽赤壁은 마땅히 대강大江에 임하여 번구樊口의 위에 있어야 하는데, 지금 적비산赤鼻山번구樊口대안對岸에 있으니, 어찌 진군進軍한 뒤에 만날 필요가 있겠는가? 또 적벽赤壁의 처음 싸움에 조조曹操의 군대가 이롭지 못하여 군대를 이끌고 강북江北에 주둔하여 뒤에 오림烏林패전敗戰이 있었으니, 그렇다면 오림烏林은 마땅히 강의 북안北岸에 있어야 하고 적벽赤壁은 강의 남안南岸에 있어야 할 터인데, 지금 도리어 적벽赤壁이 강의 북쪽에 있다고 하였으니, 또한 잘못이다.” 에서 만났다.
操軍衆 已有疾疫하야 初一交戰 操軍不利하야 引次江北이라
이때 조조曹操의 군사들이 이미 역병疫病을 앓고 있어서 처음 한 번 교전했을 때에 조조曹操의 군대가 불리하였으므로 군대를 이끌고 강의 북쪽에 주둔하였다.
瑜部將黃蓋曰 今寇衆我寡하니 難與持久 操軍 方連船하야 首尾相接하니 可燒而走也라하고
주유周瑜부장部將 황개黃蓋가 말하기를 “이제 은 병력이 많고 우리는 적으니 더불어 지구전持久戰을 하기 어렵고, 조조曹操의 군대는 막 함선艦船을 연결시켜 머리와 꼬리가 서로 이어져 있으니 불을 놓고 도망할 만하다.” 하고,
乃取蒙衝鬪艦注+[釋義]蒙衝 戰船也 所以衝突敵船이니 字與艨艟通이라 釋名 上下重板曰艦이요 外狹而長曰艨艟이라하야枯柴하고 灌油其中하고 先以書遺操하야 詐云欲降이라하니
마침내 몽충蒙衝전함戰艦注+[釋義]몽충蒙衝전선戰船이다. 적의 선박에 충돌하는 배이니, 글자가 몽동艨艟와 통한다. 《석명釋名》에 “위아래에 두꺼운 판자가 있는 것을 이라 하고, 밖이 좁고 긴 것을 몽동艨艟이라 한다.” 하였다. 을 가져다가 마른 갈대와 마른 나무를 가득 실은 다음 그 가운데 기름을 붓고는 조조曹操에게 미리 편지를 보내어 거짓으로 “항복하고자 한다.” 하였다.
東南風이라 蓋以十艦으로 最著前하야 中江擧帆하고 餘船 以次俱進하니 操軍吏士 皆出營立觀하고 指言蓋降이러라
이때 동남풍東南風이 거세게 불자, 황개黃蓋가 10척의 전함을 가장 전면前面에 배치한 다음 강 복판에서 닻을 들어 올리고 나머지 배들은 차례로 함께 나아가니, 조조曹操 군중軍中의 관리와 군사들이 모두 진영을 나와 서서 구경하고 손가락질하며 ‘황개黃蓋가 항복하려 한다.’고 말하였다.
去北軍二里餘 同時發火하니 火烈風猛하야 船往如箭이라
북군北軍(江北의 조조曹操 군대)과 2 남짓 떨어졌을 때 동시에 불을 놓으니, 불이 맹렬하고 바람이 세차서 배가 쏜살같이 갔다.
燒盡北船하고 延及岸上營落注+[頭註] 居也 人所聚居曰村落이라하니 人馬燒溺하야 死者甚衆이라
북쪽의 전선戰船들을 모두 불태우고 강안江岸 위에 있는 진영과 군락群落注+[頭註]은 거처하는 것이니,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을 촌락村落이라 한다. 에까지 뻗치니, 사람과 말이 불에 타고 물에 빠져 죽은 자가 매우 많았다.
瑜等 率輕騎하고 繼其後하야 靁(雷)鼓注+[頭註] 與雷同하니 去聲이니 疾擊鼓也大進하니 北軍 大壞
주유周瑜 등이 정예 기병을 거느리고 그 뒤를 이어서 우레처럼 북을 치며注+[頭註]와 같으니, 거성去聲이니, 뇌고靁鼓는 북을 빠르게 치는 것이다. 크게 전진하니, 북군北軍이 크게 무너졌다.
操引兵從華容道步走어늘 劉備, 周瑜 水陸竝進하야 追操至南郡하다
조조曹操가 군대를 이끌고 화용도華容道를 따라 도보徒步로 도망하자, 유비劉備주유周瑜수륙水陸으로 함께 전진하여 조조曹操를 추격해서 남군南郡에 이르렀다.
操軍 兼以饑疫死者太半注+[頭註]凡三分有二爲太半이요 有一爲少半이라이라
이때 조조曹操의 군사들은 기아饑餓역병疫病까지 겹쳐서 죽은 자가 태반太半注+[頭註]무릇 3분의 2를 태반太半이라 하고, 3분의 1을 소반少半이라 한다. 이었다.
操乃留曹仁, 徐晃하야 守江陵하고 引軍北還하니 於是 將士形勢自倍
조조曹操는 마침내 조인曹仁서황徐晃을 남겨 두어 강릉江陵을 지키게 하고, 군대를 이끌고 북쪽으로 돌아가니, 이에 손권孫權유비劉備 장병들의 형세形勢가 저절로 배가倍加되었다.
瑜乃渡江屯北岸하야 與仁相拒하다
주유周瑜는 마침내 강을 건너 북안北岸에 주둔해서 조인曹仁과 서로 대치하였다.
蘇東坡曰
소동파蘇東坡(蘇軾)가 말하였다.
魏武長於料事而不長於料人이라
무제武帝(曹操)는 일을 헤아리는 데는 뛰어났으나 사람을 헤아리는 데는 뛰어나지 못하였다.
是故 有所重發而喪其功하고 有所輕爲而至於敗
이 때문에 신중하게 대응하여 을 잃은 경우가 있고, 가볍게 행동하여 실패에 이른 경우가 있다.
劉備 有蓋世之才而無應卒之機
유비劉備는 세상을 뒤덮을 만한 뛰어난 재주가 있었으나 별안간에 대응하는 기지機智는 없었다.
方其新破劉璋 蜀人未附하야 一日而四五驚하야 斬之不能禁하니
유비劉備가 처음 유장劉璋을 격파했을 때에 지방 사람들이 따르지 아니하여 하루에도 네댓 차례씩 놀라서 〈지키는 장수들이〉 참형斬刑을 가하여 진압해도 안정시키지 못하였다.
釋此時不取라가 而其後 遂至於不敢加兵者 終其身이라
그런데 조조曹操는 이때 내버려 두고 취하지 않다가 그 뒤에 마침내 감히 군대를 내어 공격하지 못해서 죽을 때까지 그러하였다.
孫權 勇而有謀하니 此不可以聲勢恐喝取也어늘 魏武不用中原之長技注+[頭註]卽鞍馬하고 而與之爭於舟楫之間하고 一日一夜 行三百里以爭利하야
그리고 손권孫權은 용맹하고 지모智謀가 있었으니 이는 성세聲勢공갈恐喝로 취할 수 없는 것이었는데, 무제武帝중원中原장기長技기병騎兵注+[頭註]장기長技는 바로 안마鞍馬(騎兵)를 가리킨다. 을 사용하지 않고 배와 노를 사용한 수전水戰으로 다투었으며 일주야一晝夜 만에 300리를 달려가 이익을 다투었다.
犯此二敗하야 以攻孫權이라
그리하여 이 두 가지 실수를 범하고 손권孫權을 공격하였다.
是以 喪師於赤壁하야 以成吳之强이라
이 때문에 적벽대전赤壁大戰에서 군대를 잃어 나라의 강성함을 이루어 준 것이다.
且夫劉備 可以急取而不可以緩圖
유비劉備는 급히 취해야 하고 늦게 도모해서는 안 되었다.
方其危疑之間하야 卷甲而趨之 雖兵法之所忌 可以得志
사람들이 위태롭게 여기고 의심할 때를 당해서 갑옷을 벗고 급히 달려갔어야 하니, 이는 비록 병법에서 꺼리는 것이지만 무제武帝가 이 계책을 썼으면 뜻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孫權 可以計取而不可以勢破也어늘 而欲以荊州新附之卒 乘勝而取之하니 彼非不知其難이요 特欲僥倖於權之不敢抗也 用之於新造之蜀이라야 乃可以逞이라
그리고 손권孫權은 계책으로 취할 수는 있어도 세력으로 격파할 수는 없는데, 무제武帝형주荊州의 새로 귀부歸附한 군사들을 가지고 승세를 타 손권孫權을 취하고자 하였으니, 저 무제武帝가 그 어려움을 알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만 손권孫權이 감히 항거하지 못하기를 요행으로 바랐던 것이니, 이 계책은 새로 만들어진 촉한蜀漢(劉備)에 썼어야 비로소 뜻을 이룰 수 있었다.
夫魏武重發於劉備而喪其功하고 輕爲於孫權而至於敗하니 此不亦長於料事而不長於料人之過歟
그러므로 무제武帝유비劉備에게는 신중하게 대응하여 을 잃었고 손권孫權에게는 가볍게 행동하여 실패에 이르렀으니, 이것이 일을 헤아리는 데는 뛰어나나 사람을 헤아리는 데에는 뛰어나지 못한 잘못이 아니겠는가.”
李舜臣曰
이순신李舜臣이 말하였다.
擧江東之力이면 足以抗天下之全師者 赤壁之戰 爲之張本也
강동江東 지방의 병력을 다 동원하였으면 충분히 온 천하의 군대에게 맞설 수 있음은 적벽대전赤壁大戰이 그 장본張本이 된다.
當漢之季하야 曹操以陰賊嶮狠之資 潛移漢鼎이라
나라 말기를 당하여 조조曹操는 음흉하고 사나운 자품으로 나라의 국통國統을 몰래 차지하려 하였다.
荊州之役 長驅數十萬衆하야 飄忽奮迅而下江陵하니 目中 已無吳越矣러니
형주荊州의 싸움에 수십만의 군대를 몰아서 폭풍처럼 빨리 강릉江陵으로 내려가니, 오월吳越 지방은 이미 안중眼中에 없었다.
尙賴江東諸將 忠憤激烈하야 出而與劉豫州等으로 合謀倂力하야 一擧而焚之於赤壁之下하니 當此之時하야 老瞞褫魄注+[釋義]老瞞 曹操小字阿瞞也 褫魄 奪也 言喪其魄也하야 顚沛頻[瀕]死하야 義師之勝氣 大振於東南이라
그런데 오히려 강동江東의 장수들이 충분심忠憤心의 격렬함을 힘입어 출동하여 유예주劉豫州 등과 계책을 합하고 힘을 아울러서 일거에 조조曹操의 군대를 적벽강赤壁江 아래에서 불태웠으니, 이때를 당하여 노만老瞞(曹操)은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注+[釋義]노만老瞞조조曹操의 어릴 때의 아만阿瞞이므로 이렇게 칭한 것이다. 는 빼앗음이니, 치백褫魄은 넋을 잃음을 말한다. 엎어지고 자빠지며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러서 의병義兵승기勝氣동남지방東南地方에 크게 떨쳐졌다.
江東君相 儻能乘此之銳하야 蹶彼之困하야 命一二驍將하야 間道㗸枚注+[釋義]似箸 使士卒銜之하야 以止語也하야 以要其歸路하고 而周瑜輩 以大兵躡之런들 則彼衆可盡得이요 而操可生虜리라
강동江東(吳)의 군주와 정승이 만일 이 예기銳氣를 틈타 저의 곤궁함을 쓰러뜨려서 한두 명의 용맹한 장수에게 명하여 샛길로 가되 군사들에게 재갈注+[釋義]는 젓가락과 비슷하니, 병졸에게 이것을 물려 말을 못하게 하는 것이다.을 물려 은밀히 출동하여 조조曹操가 돌아가는 길을 차단하게 하고, 주유周瑜 등은 대군大軍을 거느리고 뒤를 밟았던들 저 조조曹操의 무리를 다 잡을 수 있었을 것이며 조조曹操를 생포할 수 있었을 것이다.
惜夫 孫劉不知出此也
손권孫權유비劉備가 이렇게 할 줄 모른 것이 애석하다.
曹操旣遁하야 荊楚旣平하니 其意謂虎豹豺狼之屬 旣已驅而出境이라하야 不啻便足이라
조조曹操가 이미 도망하여 형초荊楚 지방이 평안해지니, 그들의 마음에 호랑이와 표범과 승냥이와 이리의 무리를 이미 몰아내어 국경 밖으로 내쫓았다고 여겨서 곧바로 만족할 뿐만이 아니었다.
於是 關羽周瑜雜處南郡하고 劉豫州亦駐兵公安注+[頭註]縣名이라하야 聚三雄於荊州하고 而縱曹操於河南하니 則是曹操以荊州爲餌而漁天下也
이때 관우關羽주유周瑜남군南郡에 뒤섞여 있었고 유예주劉豫州 또한 공안公安注+[頭註]공안公安의 이름이다.에 군대를 주둔하여 형주荊州에 세 영웅이 몰려 있었고 하남河南에다가 조조曹操를 풀어 주었으니, 이는 조조曹操형주荊州를 가지고 미끼를 삼아 천하를 낚은 것이다.
嗚呼
아!
以一荊州而縶三雄하야 遽至於頓輿注+[頭註] 次也息轡而倒戈相攻하니 此何爲哉
형주荊州를 가지고 세 영웅을 옭아매어서 별안간 수레를 멈추고注+[頭註]은 주둔함이다. 고삐를 쉬게 하여 창을 거꾸로 들고 서로 공격함에 이르게 하였으니, 이것이 무슨 짓인가.
知此然後 知赤壁之役 所以不能遂入中原者 非江東土綿力注+[通鑑要解]綿 弱也薄之罪 而孫劉縱敵以爭荊州之罪也
이것을 안 뒤에 적벽赤壁의 싸움에 마침내 중원中原으로 쳐들어가지 못한 것은 강동江東 지방이 국토가 작고 힘이 약한注+[通鑑要解]綿은 약함이다. 죄가 아니요, 손권孫權유예주劉豫州을 풀어 주고서 형주荊州를 다툰 죄임을 알 수 있다.
且荊州 吳蜀之衝也
또한 형주荊州의 요충지이다.
天下有變이어든 命一上將하야 將荊州之衆하야 以向宛洛注+[頭註] 南陽宛縣이요 洛陽也이면 則足以衝敵人之胸腹이니 孫劉於此而爭之 固也
천하에 변란이 있어 한 상장군上將軍에게 명하여 형주荊州의 병력을 거느리고서 완현宛縣낙양洛陽注+[頭註]남양南陽완현宛縣이고, 낙양洛陽이다. 으로 향하게 한다면 충분히 적(曹操)의 심복心腹을 찌를 수 있으니, 손권孫權유비劉備가 이때에 다툰 것이 당연하다.
이나 愚以爲孫劉之爭荊州 當爭於赤壁未戰之前이요 不當爭於赤壁旣戰之後라하노라
그러나 어리석은 나는 생각건대 손권孫權유비劉備형주荊州를 다툰 것은 적벽赤壁에서 싸우기 전에 다투었어야 하고, 적벽赤壁에서 싸운 뒤에 다투어서는 안 된다고 여긴다.
何則
어째서인가?
江東之師 聯鑣竝轡하야 才(纔)過襄鄧이면 則荊州已爲筌蹄注+[頭註] 取魚竹器 取兎之具 得魚忘筌하고 得兎忘蹄어늘 奈何 周呂注+[頭註]周瑜, 呂蒙也之徒 眷眷於此
강동江東의 군대가 재갈을 연결하고 고삐를 나란히 하고서 겨우 양양襄陽등주鄧州를 지나가기만 하면 형주荊州는 이미 통발과 올가미가 되어 쓸모없는 것이 되는데,注+[頭註]은 물고기를 잡는 대나무 그릇(통발)이고 는 토끼를 잡는 기구(올가미)이니, 물고기를 잡고 나면 통발을 잊어버려야 하고 토끼를 잡고 나면 올가미를 잊어버려야 한다. 어찌하여 주유周瑜여몽呂蒙注+[頭註]주려周呂주유周瑜여몽呂蒙이다. 의 무리는 이곳을 연연해했단 말인가.
自赤壁旣勝之後 且戰且攻이라가 至荊州而遽止하야 終不肯越荊襄一步하야 以向中原이라
적벽赤壁에서 이미 승리한 뒤로 한편으로는 싸우고 한편으로는 공격하다가도 형주荊州에 이르면 즉시 그쳐서 끝내 형주荊州양양襄陽을 한 걸음이라도 넘어가서 중원中原으로 향하려 하지 않았다.
今日借荊州하고 明日索荊州하며 今日奪荊州하고 明日分荊州하야 六七年間 以一荊州之故 內自相攻하야 而中原國賊注+[頭註]謂曹操 乃置之度外하니 此果何爲者哉
그리하여 금일今日에는 형주荊州를 빌려 주었다가 명일明日에는 형주荊州를 반환할 것을 요구하고, 금일今日에는 형주荊州를 빼앗았다가 명일明日에는 형주荊州를 나누어 주어, 6, 7년 사이에 한 형주荊州 때문에 안으로 자기들끼리 공격하고 중원中原국적國賊조조曹操注+[頭註]국적國賊조조曹操를 이른다. 를 마침내 도외度外에 버려두었으니, 마침내 과연 무엇하는 짓이란 말인가.”
十二月 劉備表劉琦하야 爲荊州刺史하고 引兵南徇注+[頭註]略也하니 武陵, 長沙, 桂陽, 零陵四郡 皆降之하다
12월에 유비劉備표문表文을 올려 유기劉琦형주자사荊州刺史로 삼고 군대를 이끌어 남쪽으로 순행注+[頭註]은 경략함이다. 하니, 무릉武陵장사長沙계양桂陽영릉零陵이 모두 항복하였다.
역주
역주1 : 궐
역주2 : 면
역주3 : 폭
역주4 三代之佐 : 三代는 夏의 禹王, 商의 湯王, 周의 文王‧武王으로 三代之佐는 이들을 보좌한 賢臣을 가리키는 바, 禹王은 伯益, 湯王은 伊尹과 仲虺, 文王‧武王은 姜太公과 周公 旦, 召公 奭이 있었다.
역주5 : 소
역주6 景升 : 劉表의 字이다.
역주7 : 삼
역주8 : 궐
역주9 必蹶上將軍 : 《孫子》 〈軍爭〉에 “하루에 100里를 달려 이익을 취하려 하면 三軍의 장수가 모두 사로잡히고, 50里를 달려 이익을 취하려 하면 上將軍이 쓰러지고, 30里를 달려 이익을 취하려 하면 군대가 3분의 2밖에 이르지 않는다.[百里而爭利則擒三將軍 五十里而爭利則蹶上將軍 三十里而爭利則三分之二至]”라고 보인다.
역주10 : 파
역주11 : 라
역주12 : 가
역주13 : 함
역주14 燥荻 : 조적

통감절요(4)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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