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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1)

통감절요(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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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1)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申]〈西楚二年이요 漢二年이라
병신(B.C.205) - 서초西楚 2, 나라 2년이다.
○ 是歲 韓亡하니 凡二大國이요 小國凡十二國이라
○ 이 해에 나라가 망하니, 대국大國이 모두 2개국이고 소국小國이 모두 12개국이다. -
冬十月 項王 密使九江王布等으로 擊義帝하야 殺(弑)之江中하다
겨울 10월에 항왕項王이 은밀히 구강왕九江王 경포黥布 등으로 하여금 의제義帝를 공격하게 하여 강 가운데에서 시해하였다.
〈出黥布傳及漢書高祖紀〉
- 《사기史記 경포전黥布傳》과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에 나옴 -
[新增]愚按尹氏〈起莘〉曰
[新增]내가 살펴보건대 윤씨尹氏(尹起莘)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嗚呼
“아!
君臣 天地之大義也 臣之事君 猶子之事父하야 亘古今而不可易이라
군주와 신하는 천지의 큰 의리義理이니, 신하가 군주를 섬김은 자식이 부모를 섬기는 것과 같아서 고금에 걸쳐 바꿀 수 없는 것이다.
是以 하시니 豈非天地大變이라 人理之所不容故 不忍與之竝立乎世리오
이 때문에 진항陳恒의 일을 공자孔子께서 이미 벼슬을 그만두었는데도 목욕재계하고서 토벌할 것을 청하신 것이니, 〈신하가 군주를 시해함은〉 어찌 천지간의 큰 변고여서 사람의 도리에 용납될 수 없는 것이므로 차마 그와 함께 세상에 서서 살 수 없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此蓋萬世之通義也
이는 만세萬世의 공통된 의리義理이다.
世爲楚將하야 北面事之하니 義帝 懷王之孫이라
항적項籍이 대대로 나라의 장수가 되어 북면北面하여 섬겼으니, 의제義帝회왕懷王의 손자이다.
項梁立以爲君하야 大義已定이어늘 何得以弑之乎
항량項梁이 그를 세워 군주로 삼아서 대의大義가 이미 정해졌는데, 항적項籍이 어떻게 그를 시해한단 말인가.
況籍起自偏裨하야 矯殺卿子冠軍하고 宰割天下하야 率徇己私어늘 義帝不能誅籍하고 而籍反弑帝하니 其惡 可勝道哉
더구나 항적項籍편비偏裨(副將)로부터 일어나 의제義帝의 명령을 사칭하여 경자관군卿子冠軍을 살해하였고 천하를 자기 마음대로 분할하여 자신의 사사로운 뜻을 따랐는데, 의제義帝항적項籍을 죽이지 못하고 항적項籍이 도리어 의제義帝를 시해하였으니, 그 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朱子綱目 揭而書之曰 西楚霸王項籍 弑義帝於江中이라하니 稱國稱爵稱名 所以著籍强暴大逆之罪
주자朱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에 게시하여 쓰기를 ‘서초패왕西楚霸王 항적項籍의제義帝를 강 가운데서 시해하였다.’라고 하였으니, 나라를 칭하고 작위를 칭하고 이름을 칭함은 항적項籍강폭强暴하여 대역무도大逆無道한 죄를 드러낸 것이니,
至是 始無所容於天地之間이니 然後 義兵可擧하야 人皆得而誅之矣
그의 죄가 여기에 이르러 비로소 천지 사이에 용납될 곳이 없는 것이니, 그런 뒤에야 의병義兵을 일으켜 사람들이 모두 그를 죽일 수 있는 것이다.
密擊江中 果可以欺天下乎
은밀히 강 가운데에서 공격한다고 하여 과연 천하 사람들을 속일 수 있었겠는가.”
○ 陳餘襲破常山하니 張耳敗走漢이어늘
진여陳餘가 습격하여 상산常山을 격파하니,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가 패하여 나라로 달아났다.
陳餘迎趙王於代하야 復爲趙王注+[通鑑要解]陳餘擊張耳破走하고 迎趙王하니 王立餘爲代王이어늘 餘留傅趙王하고 而使夏說守代하니라하다
진여陳餘조왕趙王(趙歇)을 대국代國에서 맞이하여 다시 조왕趙王으로 삼았다.注+[通鑑要解]진여陳餘장이張耳를 공격하여 패주시키고 조왕趙王 을 맞이하니, 조왕趙王진여陳餘를 세워 대왕代王으로 삼았는데, 진여陳餘는 남아서 조왕趙王사부師傅가 되고 하열夏說로 하여금 나라를 지키게 하였다.
○ 漢王 立韓襄王孫信하야 爲韓王하니 常將韓兵하야 從漢王이러라
한왕漢王나라 양왕襄王손자孫子을 세워 한왕韓王으로 삼으니, 항상 나라 군대를 거느리고 한왕漢王을 따랐다.
○ 初 陽武人陳平 家貧好讀書러니 里中社注+[釋義]其里名庫上이라 蔡邕 陳留東昏庫上里社碑云 惟斯庫里 古陽武之〈戶〉牖鄕이니 陳平 由此宰社하야 遂相漢高라하니라[頭註]社 后土也 使民祀之하야 春以祈穀하고 秋以報功이라 周制 大夫與民族居百家以上이면 則共立一社러니 秦漢以來로는 雖非大夫라도 民二十五家 則得立社하니라하야 分肉食甚均이어늘
처음에 양무陽武 사람 진평陳平이 집이 가난하였으나 독서하기를 좋아하였는데, 마을 안의 사제社祭注+[釋義]그 마을 이름은 고상리庫上里이다. 채옹蔡邕진류陳留 동혼고상리東昏庫上里 사비社碑에 이르기를 “이 고상리庫上里는 옛날 양무陽武호유향戶牖鄕이니, 진평陳平이 이로 말미암아 사제社祭가 되어서 마침내 나라 고조高祖를 도왔다.” 하였다. [頭註]社는 후토后土이니, 백성들로 하여금 제사하게 하여, 봄에는 곡식이 잘 되기를 기원하고 가을에는 곡식을 거두어들인 것에 감사하였다. 나라 제도에 대부大夫가 백성들과 함께 거하여 100가호家戶 이상이 되면 함께 한 를 세웠는데, 한시대漢時代 이후로는 비록 대부大夫가 아니더라도 백성들이 25가호家戶가 되면 를 세울 수 있었다. 진평陳平가 되어서 고기와 음식을 나누어 주기를 매우 균등하게 하였다.
父老曰 善
부로父老들이 칭찬하기를 “잘한다.
陳孺子之爲宰 平曰 嗟乎 使平得宰天下라도 亦如是肉矣리라하다
진유자陳孺子 노릇 함이여.” 하니, 진평陳平이 말하기를 “아, 만일 내가 천하에 재상이 되더라도 또한 이 고기와 같이 균평하게 하겠다.” 하였다.
及諸侯叛秦 事魏王咎於臨濟하야 爲太僕이러니 說魏王호되 不聽하고 人或讒之어늘 亡去하다
제후들이 나라를 배반하자 진평陳平위왕魏王 임제臨濟에서 섬겨 태복太僕이 되어 위왕魏王을 설득하였으나 듣지 않았으며, 어떤 사람이 그를 참소하자 진평陳平이 도망하여 떠났다.
事項羽하야 拜爲都尉러니 復杖劍歸漢하야 因魏無知하야 求見漢王한대
뒤에 항우項羽를 섬겨 도위都尉에 임명되었는데, 뒤에 다시 검을 짚고 나라로 귀의하여 위무지魏無知를 통해서 한왕漢王을 만나 볼 것을 요구하였다.
與語而悅之하야 問曰 子之居楚 何官 曰 爲都尉니이다한대
한왕漢王진평陳平과 함께 말해 보고는 기뻐하여 묻기를 “그대가 나라에 있을 때에 무슨 벼슬을 하였는가?” 하니, “도위都尉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是日 卽拜平爲都尉하야 使爲參乘注+[頭註] 一作驂이라 乘車之法 尊者居左하고 御者居中하고 又一人處其右하야 以備傾側이라하고 典護軍注+[頭註] 掌也 監領也하다
한왕漢王은 이날 즉시 진평陳平도위都尉로 임명하여 참승參乘注+[頭註]일본一本에는 으로 되어 있다. 수레를 타는 법은 높은 자가 왼쪽에 있고, 말 모는 자가 중앙에 있고, 또 한 사람이 오른쪽에 있어서 수레가 한쪽으로 기우는 것에 대비한다. 하게 하고 군사들을 맡아 감호監護하게 하였다.注+[頭註]은 관장함이고, 는 감독하고 거느리는 것이다.
諸將 盡讙注+[釋義] 譁也 讙囂而議也曰 大王 一日 得楚之亡卒하야 未知其高下而卽與同載하시고 反使監護온여
이에 여러 장수들이 모두 떠들며注+[釋義]은 시끄러움이니, 진환盡讙은 시끄럽게 떠들면서 비난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대왕이 어느 날 나라에서 도망해 온 병졸을 얻어 그 신분의 고하高下도 알지 못하고서 곧바로 그와 수레를 함께 타시며, 도리어 그로 하여금 장자長者들을 감호監護하게 하시는구나.” 하였다.
漢王 聞之하고 愈益幸平이러라
한왕漢王이 이 말을 듣고 더욱더 진평陳平을 총애하였다.
〈出陳丞相世家〉
-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옴 -
○ 漢王 南渡平陰津하야 至洛陽新城한대 三老董公 遮說王注+[釋義]三老 見武帝紀 橫道自言曰遮說曰 臣聞順德者하고 逆德者이라하니
한왕漢王이 남쪽으로 평음平陰 나루를 건너 낙양洛陽신성新城에 이르니, 삼로三老동공董公이 길을 가로막고 왕을 설득하기를注+[釋義]삼로三老는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 보인다. 길을 가로막고 스스로 말하는 것을 차설遮說라 한다. “신이 들으니 순한 을 간직한 자는 창성하고 거스르는 을 가진 자는 망한다고 하였습니다.
兵出無名이면 事故(固)不成이라
군대를 명분 없이 내면 일이 진실로 이루어지지 못합니다.
曰明其爲賊이라야 敵乃可服이라하니이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적이 된 이유를 밝혀야 적이 비로소 복종한다.’고 한 것입니다.
項羽爲無道하야 放殺(弑)其主하니 天下之賊也
항우項羽가 무도한 짓을 해서 그 군주를 추방하여 시해하였으니, 천하의 역적입니다.
夫仁不以勇注+[通鑑要解] 用也 己有仁이면 天下歸之하야 可不用勇而天下自服이요 己有義 天下奉之하야 可不用力而天下自定也이요 義不以力이니 大王 宜率三軍之衆하사 爲之素服하고 以告諸侯而伐之하소서
은 용맹으로 하지 않고注+[通鑑要解]는 씀이니, 자기에게 이 있으면 천하가 돌아와 용맹을 쓰지 않아도 천하가 스스로 복종하고, 자기에게 의로움이 있으면 천하가 받들어 주어서 힘을 쓰지 않아도 천하가 스스로 안정되는 것이다. 는 힘으로 하지 않으니, 대왕은 마땅히 삼군三軍의 무리를 거느리고 의제義帝를 위하여 소복素服을 입고 제후들에게 고하여 정벌하소서.” 하였다.
於是 漢王 爲義帝發喪하고 告諸侯曰
이에 한왕漢王의제義帝를 위하여 을 발표하고 제후들에게 고하기를
天下共立義帝러니 今項羽放殺之注+[釋義] 逐也 讀曰弑 下之殺同이라하니
“천하가 함께 의제義帝를 세웠는데 이제 항우項羽가 추방하여 시해하였으니,注+[釋義]은 쫓아냄이요, 로 읽으니 아래의 도 같다.
寡人 親爲發喪하야 兵皆縞素하고 悉發關中兵하고하야 南浮江漢以下하야 願從諸侯王注+[通鑑要解]諸侯王 謂諸侯及王也하야 擊楚之殺義帝者라하다
과인寡人이 친히 의제義帝를 위해 을 발표하여 군사들에게 모두 흰옷을 입히고 관중關中의 병력을 총동원하고 삼하三河의 군사를 거두어 남쪽으로 강한江漢에 배를 띄워 내려가서 注+[通鑑要解]제후왕諸侯王은 여러 을 이른다. 여러 을 따라 나라의 의제義帝를 시해한 자를 공격하려 한다.” 하였다.
〈本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朱黼曰
주보朱黼가 말하였다.
自昔帝王之興 憂天命之圮絶하야 而求與之保合하고 憫人心之陷溺하야 而思與之拯援하고 無所自容其力하야 不得已焉이어든 而見之兵革之間하니 亦豈其心之所欲哉
“예로부터 제왕帝王이 일어날 때에 천명天命이 끊어짐을 우려하여 그와 더불어 보합保合(변동 없이 계속됨)하기를 구하고, 인심人心이 〈에〉 빠짐을 민망히 여겨 그와 더불어 구원할 것을 생각하고, 스스로 그 힘을 용납하는 바가 없어 부득이하면 전쟁의 사이에 나타냈으니, 또한 어찌 그 마음에 하고자 하는 바였겠는가.
를 배반하고 을 무너뜨리고 업신여기고 태만하여 스스로 어진 체하면 삼묘三苗를 정벌하지 않을 수 없고, 오행五行을 업신여기고 삼정三正을 폐기하면 유호有扈를 정벌하지 않을 수가 없고, 비로소 천기天紀를 어지럽히면 이에 희화羲和를 정벌하는 군대가 있었고, 상제上帝를 속이면 이에 명조鳴條의 공격이 있었고, 제사함은 유익함이 없다고 말하고 포악함이 나쁘지 않다고 말하며 자기가 천명天命을 소유했다고 말하고 을 굳이 행할 것이 없다고 말하면 이에 목야牧野의 전쟁이 있었다.
땅을 떠나도 오랑캐의 성냄이 끊이지 않으면 채미采薇수역戍役(전투하는 군대)을 보내지 않을 수 없고,
불공不恭한 침략자에 대한 노여움이 막 일어나면 침략하러 가는 군대를 막지 않을 수가 없고,
오랑캐가 침입하여 내지內地에 정돈해 사는 가 매우 성하면 유월六月의 정벌을 빨리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誅亂之兵不出이면 則仁義之統紀不明이요 仁義之統紀不明이면 則上下內外紊舛失敍하야 固將淪入禽獸夷狄而不自覺者리니 雖欲私一己而安歲月이나 詎可得乎
난을 토벌하는 군대를 출동시키지 않으면 인의仁義통기統紀가 밝혀지지 못하고, 인의仁義통기統紀가 밝혀지지 못하면 상하上下내외內外가 문란하여 순서를 잃어서 진실로 장차 금수禽獸이적夷狄의 경지에 빠져들어 가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할 것이니, 비록 자기 한 몸을 사사로이 하여 세월을 편안히 보내고자 하나 어찌 될 수 있겠는가.
使高帝不聞新城仁義之說하야 不爲洛陽縞素之擧하고 特以智力으로 與項氏相角하야 使幸而勝之 則是吾與天下人民으로 亦獨以智力相尙耳 智不足以相勝이면 則凡智於我者 孰不反面以相賊이며 力不足以相制 則凡力於我者 孰不交臂以相戕이리오
만일 고제高帝신성新城인의仁義의 말을 듣지 못하여 낙양洛陽에서 소복素服을 입히는 조처를 하지 않고, 다만 지혜와 힘을 가지고 항씨項氏와 서로 경쟁하여 다행히 이겼더라면 이는 내(高帝)가 천하의 인민人民과 더불어 또한 다만 지혜와 힘을 가지고 서로 숭상하는 것일 뿐이니, 지혜가 서로 이길 수 없으면 무릇 나보다 지혜로운 자가 어느 누가 얼굴을 돌려 서로 대적하지 않겠으며, 힘이 서로 제압할 수 없으면 무릇 나보다 힘이 센 자가 어느 누가 팔뚝을 교차하여 서로 해치지 않겠는가.
禍亂之來 曷有窮已리오
이렇게 되면 화란禍亂이 오는 것이 어찌 다함이 있겠는가.
自仁義之言一明으로 使天下曉然知帝王統紀 如日月之不可掩하고 自縞素之師一擧 使天下灼知上下定分 如天地之不可易하야 三綱九疇注+[附註]洪範九疇也 曰五行, 曰敬用五事, 曰農用八政, 曰協用五紀, 曰建用皇極, 曰乂用三德, 曰明用稽疑, 曰念用庶徵, 曰享用五福, 威用六極이라 幾斷而復續하고 天命人心 欲紊而復正이라
인의仁義의 말이 한 번 밝혀짐으로부터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제왕帝王통기統紀가 해와 달처럼 가릴 수 없음을 분명히 알게 하고, 소복素服을 입은 군대를 한 번 일으킴으로부터 천하 사람들로 하여금 상하上下의 정해진 분수가 하늘과 땅처럼 바꿀 수 없음을 분명히 알게 해서, 삼강三綱구주九疇注+[附註]구주九疇는 《서경書經》 〈홍범洪範〉의 구주九疇이니, 첫 번째는 오행五行이고, 두 번째는 공경하되 오사五事로써 함이요, 세 번째는 농사農事팔정八政을 씀이요, 네 번째는 합함을 오기五紀로써 함이요, 다섯 번째는 세움을 황극皇極으로써 함이요, 여섯 번째는 다스림을 삼덕三德으로써 함이요, 일곱 번째는 밝힘을 계의稽疑로써 함이요, 여덟 번째는 상고하기를 서징庶徵으로써 함이요, 아홉 번째는 함을 오복五福으로써 하고 위엄을 보이기를 육극六極으로써 하는 것이다. 거의 끊어질 뻔하다가 다시 이어지고 천명天命인심人心이 문란해지려 하다가 다시 바로잡혔다.
漢雖不純王道 而猶培植扶持하야 至四百年之久하야 旣絶而復振하고 或欲竊取而猶不取者 其由此也夫인저
나라가 비록 순수한 왕도王道는 아니었으나 오히려 북돋워 심고 부지하여 4백 년의 오램에 이르러서 이미 끊어졌다가 다시 떨쳐지고, 혹 도둑질하여 취하고자 하였으나 오히려 취하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가 말하였다.
天下苦秦하야 諸侯幷起하니 名其師者曰 誅無道秦 可矣어니와 今秦已滅하고 諸侯各有分地어늘 而漢又起兵하니 雖曰項羽爲政不平이나 顧亦伸己私忿耳 非義兵也러니
“천하 사람들이 나라를 괴롭게 여겨서 제후諸侯들이 함께 일어났으니 그 군대를 이름하여 무도한 나라를 토벌한다고 한 것은 괜찮지만, 지금 나라가 이미 멸망하고 제후들이 각기 영지領地가 있는데 나라가 또다시 군대를 일으켰으니 비록 항우項羽가 정사를 공평하지 않게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나, 돌아보건대 자신의 사사로운 분노를 풀려고 했을 뿐이요, 의로운 군대가 아니었다.
及董公獻言하야 漢王大臨然後 項羽弑君之罪 無所容於天地之間하야 而天下歸於漢王 可坐而策矣
그런데 동공董公이 말을 아뢰어 한왕漢王이 크게 발상發喪한 뒤에야 군주를 시해한 항우項羽의 죄가 천지의 사이에 용납될 곳이 없어서 천하가 한왕漢王에게 돌아올 것임을 앉아서도 미루어 알 수 있게 되었다.
隨何 陳此義而下九江하고 酈生 陳此義而下全齊
그러므로 수하隨何가 이러한 의리를 말하여 구강왕九江王을 항복시켰고, 역생酈生이 이러한 의리를 말하여 나라의 전 국토를 항복시킨 것이다.
於是 楚人 背無所倚하고 右斷其臂하니 雖欲不亡이나 不可得矣니라
이에 나라 사람이 등 뒤에는 의지할 곳이 없고 그 오른팔이 잘렸으니, 비록 멸망하지 않기를 바라나 될 수가 없었다.”
○ 項王 雖聞漢東이나 欲遂破齊而後擊漢하니
항왕項王이 비록 나라가 동쪽으로 진출했다는 말을 들었으나 마침내 나라를 격파한 뒤에 나라를 공격하고자 하였다.
漢王 以故 得率諸侯兵凡五十六萬人하야 伐楚하다
한왕漢王이 이 때문에 무릇 제후의 병력 56만 명을 거느리고 나라를 정벌하게 되었다.
彭越 將兵歸漢이어늘 遂入彭城注+[頭註]羽都 時羽北擊齊하니라하야 收其貨寶美人하고 日置酒高會注+[頭註]皆召尊爵故 曰高會 一說 大會也라하니라러니
팽월彭越이 병력을 인솔하고 나라에 귀의하자, 나라가 마침내 팽성彭城注+[頭註]팽성彭城항우項羽가 도읍한 곳이니, 이때 항우項羽가 북쪽으로 나라를 공격하러 갔었다. 들어가서 그 보화와 미인을 거두고 날마다 술자리를 베풀고 크게 모여 잔치하였다.注+[頭註]높은 작위爵位가 있는 사람을 모두 불렀기 때문에 고회高會라 한 것이다. 일설一說에는 손님을 크게 모으는 것이라고 하였다.
項王 聞之하고 自以精兵三萬人으로 至彭城하야 大破漢軍 於注+[釋義]在彭城靈壁縣하니 東入泗 括地志 睢水首受浚儀縣蕩渠水하고 東經臨慮縣하야 入泗過沛 音雖하니
항왕項王이 이 말을 듣고 정예병 3만 명을 거느리고 팽성彭城에 이르러 한군漢軍수수睢水에서注+[釋義]수수睢水팽성彭城 영벽현靈壁縣에 있으니, 동쪽으로 사수泗水로 들어간다. 《괄지지括地志》에 “수수睢水는 처음에 준의현浚儀縣 낭탕거蒗蕩渠의 물을 받아 동쪽으로 임려현臨慮縣을 경유해서 사수泗水로 들어가 패현沛縣을 지나간다.” 하였다. 는 음이 수이다. 대파하였다.
漢軍 爲楚所擠하야 卒十餘萬人 皆入睢水하야 睢水爲之不流러라
나라 군사들은 나라 군사들에게 밀려서 병졸 10여만 명이 모두 수수睢水로 들어가니, 수수睢水가 이 때문에 흐르지 못하였다.
圍漢王三이러니 大風 從西北起하야折木發屋하고 揚沙石하야 窈冥晝晦하니 楚軍 大亂壞散이어늘 漢王 乃得與數十騎遁去하다
한왕漢王을 세 겹으로 포위하였는데, 마침 큰 바람이 서북쪽으로부터 일어나 나무가 부러지고 지붕이 날아가며 돌과 모래가 날려 캄캄해져서 낮인데도 어두우니, 나라 군사들이 크게 혼란하여 무너져 흩어졌으므로 한왕漢王이 마침내 수십 명의 기병과 도망갈 수 있었다.
其從太公, 呂后하야間行求漢王이라가 反遇楚軍하니 項王 常置軍中하야 爲質이러라
심이기審食其태공太公여후呂后를 따라 샛길로 가서 한왕漢王을 찾다가 도리어 초나라 군사를 만나니, 항왕項王이 항상 이들을 군중에 두어 인질로 삼았다.
〈此用漢書句 以上竝出史高祖紀〉
- 이는 《한서漢書》의 를 인용한 것이고, 이상은 모두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盤水可奉이나 而志難持 六馬可調 而氣難御 使漢王 於是時 兢兢業業하여 如初入關中, 見羽鴻門이런들 則亦何至於敗哉
“쟁반의 물은 받들 수 있으나 뜻은 지키기가 어렵고 여섯 필의 말은 제어할 수 있으나 기운은 제어하기 어려우니, 만일 한왕漢王이 이때에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처음 〈나라를 격파하고〉 관중關中에 들어갔을 때와 홍문연鴻門宴에서 항우項羽를 만났을 때와 같이 했더라면 또한 어찌 패망함에 이르렀겠는가.
志不持而氣爲帥하야 狃於小勝하야 而逸欲生焉이라
지금 뜻을 잡아 지키지 않고 기운을 장수로 삼아서 〈마음이 동요당하여〉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안일과 욕심이 생겨났다.
是以 至於此耳
이 때문에 이 지경에 이른 것이다.
且是行也 直欲破羽之國都歟인댄 則宜亟還滎陽하야 可也 若欲致羽而與戰歟인댄 則宜分部諸將하야 據險邀擊 可也어늘
또 이번에 군대를 출동할 때에 곧바로 항우項羽국도國都를 격파하려고 했다면 마땅히 빨리 형양滎陽으로 돌아와서 주병主兵을 거느리고 객병客兵을 기다리는 것이 옳았을 것이요, 만약 항우項羽를 불러들여 싸우려고 했다면 마땅히 여러 장수들을 나누어 배치해서 험한 요새를 점거하고 요격邀擊하는 것이 옳았을 것이다.
今乃淹留引日하야 肆志寵樂이로되 而群臣亦寂無諫者하니 豈良平諸公 不在行歟
그런데 이제 도리어 지체하고 날짜를 끌면서 영화와 향락에 뜻을 두었으나 여러 신하들이 조용하여 간하는 자가 없었으니, 장량張良진평陳平제공諸公들이 어찌 항렬行列에 있지 않았던가.
嗚呼危哉인저
아, 위태로웠다.”
朱氏曰
주씨朱氏가 말하였다.
自後世而觀高祖하면 攻守之心 若出於一하야 未嘗有間이라
후세後世의 입장에서 고조高祖를 살펴보면 공격하고 수비하는 마음이 하나에서 나와서 일찍이 간격이 있지 않은 듯하다.
이나 以史攷之하면 至咸陽則欲懷安하고 至彭城則已驕縱하고 天下旣平이면 則易敵愎諫하야 徑踰句注하야 幾陷不測이러니 自是以還으로 始畏兵厭功하야 不輕動妄作以禍天下하야 後世賴之
그러나 역사책을 가지고 고찰해 보면 함양咸陽에 이르러서는 편안한 마음을 품고자 하였고, 팽성彭城에 이르러서는 이미 교만하고 방종하였으며, 천하가 이미 평정되자 적을 하찮게 여기고 간언을 듣지 않아서 곧바로 구주句注를 넘어가 거의 측량할 수 없는 화에 빠질 뻔하였는데, 이로부터 이후로 비로소 전쟁을 두려워하고 을 싫어해서 경거망동하여 천하에 를 끼치지 아니하여 후세가 이에 힘입었다.
吾嘗爲之說曰 高祖之能取天下 本於彭城之敗 而其能守天下也 則自夫白登之圍라하노라
내가 일찍이 말하기를 ‘고제高帝가 천하를 취한 것은 팽성彭城패전敗戰에서 근본하였고 천하를 지킨 것은 백등白登의 포위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였다.”
○ 漢王 問 吾欲하노니 誰可與共功者 張良曰
한왕漢王이 묻기를 “내 함곡관函谷關 이동以東 지방을 남에게 떼어 주어서 버린 것과 같이 하고자 하노니, 누가 더불어 공을 함께 할 만한 자인가?” 하자, 장량張良이 말하였다.
九江王布 楚梟將注+[釋義] 英布也 言勇倢(捷)이라이어늘 與項王有隙하고 彭越 與齊하니 此兩人 可急使 而漢王之將 獨韓信 可屬大事하야 當一面이니 卽欲捐之인댄 捐之此三人이면 則楚可破也리이다
구강왕九江王 경포黥布나라의 용맹한 장수인데注+[釋義]구강왕九江王 영포英布이다. 는 용감하고 민첩함을 이른다. 항왕項王과 틈이 있고, 팽월彭越나라와 함께 나라 땅에서 배반하였으니, 이 두 사람을 급히 부릴 수 있으며, 한왕漢王의 장수 중에는 오직 한신韓信만이 큰 일을 맡겨 한 방면을 담당하게 할 만하니, 만일 한 지방을 떼어 주고자 하신다면 이 세 사람에게 떼어 주신다면 나라를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出留侯世家〉
-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옴 -
○ 漢王 謂左右호되 無足與計天下事로다
한왕漢王이 좌우의 신하에게 이르기를 “더불어 천하의 일을 계획할 만한 자가 없다.” 하였다.
謁者隨何進曰 不審陛下所謂로이다 漢王曰 孰能爲我九江하야 令之發兵倍楚
알자謁者수하隨何가 아뢰기를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한왕漢王이 말하기를 “누가 나를 위하여 구강九江에 사신가서 구강왕九江王으로 하여금 군대를 내어 나라를 배반하게 할 수 있겠는가?
留項王數月注+[頭註]言擧兵反楚 則楚必留擊矣이면 我之取天下 可以萬全이리라
항왕項王을 몇 달 동안만 묶어 두면注+[頭註]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배반하면 나라가 반드시 머물러 공격할 것임을 말한 것이다. 내가 천하를 취하는 것이 만전을 기할 수 있을 것이다.” 하였다.
隨何曰 臣請使之호리이다 漢王 使與二十人俱하다
수하隨何가 아뢰기를 “신이 사신으로 가겠습니다.” 하니, 한왕漢王수하隨何로 하여금 20명과 함께 가게 하였다.
〈出黥布傳〉
- 《사기史記 경포전黥布傳》에 나옴 -
○ 五月 漢王 至滎陽하니 諸敗軍 皆會하고 蕭何亦發關中老弱未傅者注+[釋義]王氏曰 民年二十三 爲正이니 一歲爲衛士하고 一歲爲材官騎士하야 習射御騎馳戰陣하고 年五十六 爲衰老 乃得免爲庶民하야 就田里 今老弱未嘗傅者 悉詣軍이니 謂未二十三爲弱하고 過五十六爲老 未著名籍給公家徭役者 悉發之하야 以至漢屯이니 所以補其空缺이라하야 悉詣滎陽하니 漢軍 復大振이러라
5월에 한왕漢王형양滎陽에 이르니, 모든 패한 군사들이 다 모였고 소하蕭何 또한 관중關中의 노약자로서 병적兵籍에 올리지 않은 자들을 징발하여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백성의 나이가 23세면 정정正丁이라 하니, 1년 동안 위사衛士가 되고 1년 동안 재관材官 기사騎士가 되어 활쏘기와 말타기를 익히고 전진戰陣을 달리며, 나이 56세가 되면 쇠로衰老라 하니, 비로소 부역을 면제받아 서민庶民이 되어 전리田里로 나아간다. 이제 노약자로서 병적兵籍에 올리지 않은 자를 다 군에 나오게 한 것이니, 23세가 못된 자를 이라 하고 56세가 넘은 자를 라고 함을 이른다. 는 붙임이니 병적兵籍에 올려 공가公家요역徭役을 맡기지 않은 자를 다 동원해서 나라 진영에 이르게 한 것이니, 공결空缺(결원)을 보충하기 위한 것이다. 모두 형양滎陽에 이르게 하니, 나라 군대가 다시 크게 떨쳤다.
楚與漢戰滎陽南京, 索間注+[釋義]京, 索 二地名也 卽京城이요 索水 在河南之滎陽이라할새 漢王 擊楚騎於滎陽東하야 大破之하니 楚以故 不能過滎陽而西러라
나라가 나라와 형양滎陽의 남쪽 경성京城색수索水 사이에서注+[釋義]은 모두 지명이니, 은 곧 경성京城이고 색수索水하남河南형양滎陽에 있다. 싸웠는데, 한왕漢王나라 기병騎兵형양滎陽 동쪽에서 공격하여 대파하니, 나라가 이 때문에 형양滎陽을 지나 서쪽으로 오지 못하였다.
軍滎陽하고 築甬道注+[釋義]王氏曰 恐敵鈔掠輜重이라 築垣墻如街巷하니 是爲甬道 甬音踊이라하야 之河하야 以取敖倉粟注+[釋義] 地名이니 在滎陽西北山上이라 括地志 敖山 在鄭州滎陽西十五里하니 秦置大(太)倉於此 故名敖倉이라하다
나라가 형양滎陽에 군대를 주둔하고 용도甬道를 쌓아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적들이 치중輜重을 약탈할까 염려하였기 때문에 담장을 쌓아 골목길과 같이 만든 것이니, 이것을 용도甬道라 한다. 은 음이 용이다.” 황하黃河에 연결하여 오창敖倉의 곡식을注+[釋義]는 지명이니 형양滎陽 서북쪽 산 위에 있다. 《괄지지括地志》에 “오산敖山정주鄭州 형양滎陽 서쪽 15리 지점에 있으니, 나라가 이곳에 태군太君을 두었기 때문에 오창敖倉이라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가져갔다.
○ 周勃等 言於漢王曰 陳平 雖美如冠玉이나 其中 未必有也注+[釋義]未必有也 飾冠以玉하면 光好外이나 中非所有[頭註]陳平雖美如冠玉 漢書 作平雖美丈夫如冠玉耳
주발周勃 등이 한왕漢王에게 말하기를 “진평陳平이 비록 아름답기가 관옥冠玉 같으나 그 속은 반드시 있는 것이 없습니다.注+[釋義]冠을 옥으로 꾸미면 광채의 아름다움이 겉으로 드러나지만 속에 반드시 아름다움이 있는 것은 아니다. [頭註]陳平雖美如冠玉은 《한서漢書》 〈진평전陳平傳〉에 “平雖美丈夫 如冠王耳[陳平이 비록 아름다운 장부이나 관옥冠玉과 같을 뿐이다.]”로 되어 있다.
臣聞호니 平居家時 盜其嫂注+[通鑑要解] 猶私也 私奪嫂志而改適也 兄之妻也하고 事魏不容하야 亡歸楚로되 不中하고 又亡歸漢이러니
신이 들으니 진평陳平이 집에 있을 때에 그 형수兄嫂를 개가시켰고,注+[通鑑要解]와 같으니, 형수의 수절하려는 뜻을 사사로이 빼앗아 개가改嫁시킨 것이다. 는 형의 아내이다. 나라를 섬기다가 용납되지 못하자 나라로 도망갔으나 맞지 않자 또 도망하여 나라로 돌아왔다 합니다.
今日 大王 令護軍이어시늘 受諸將金注+[通鑑要解]漢王 召讓平한대 平曰 魏王不用臣故하고 羽王不能信人故러니 聞漢王能用人故 來歸니이다이나 裸身而來하여 不受金이면 則無以資身이니이다 金具在하니 請封輸官하고 得乞骸骨하노이다하니 願王察之하소서
오늘날 대왕이 그로 하여금 군사들을 감호監護하게 하셨는데 여러 장수들의 을 받아먹었으니,注+[通鑑要解]왕이 진평陳平을 불러서 꾸짖으니, 진평陳平이 대답하기를 “위왕魏王을 써 주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떠났고, 항왕項王은 사람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떠났는데, 한왕漢王은 사람을 잘 쓴다고 하였기 때문에 나라에 귀의한 것입니다. 그런데 맨몸으로 떠나왔으므로 을 받지 않으면 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모두 있으니, 청컨대 봉함하여 관청으로 실어 보내고 벼슬을 그만둘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원컨대 왕은 이것을 살피소서.” 하였다.
漢王 한대 無知曰 臣所言者 能也 陛下所問者 行也
한왕漢王위무지魏無知를 불러 꾸짖으니, 위무지魏無知는 말하기를 “신이 말한 것은 재능이고 폐하께서 따지는 것은 행실입니다.
今有尾生, 孝己之行注+[釋義]莊子曰 尾生 與女子期於梁下러니 女子不來한대 水至不去하고 抱梁柱而死하니라 一本作微生이라 或云 卽微生高也 有信行이라 孝己 殷高宗子 有孝行하야 事親 一夜五起러니 母早死어늘 高宗 惑後妻之言하야 放之而死하니라이라도 而無益勝負之數하니 陛下何暇用之乎잇가
지금 미생尾生효기孝己와 같은 훌륭한 행실이注+[釋義]장자莊子》에 “미생尾生여자女子와 다리 아래에서 만나기로 약속하였는데 여자女子가 오지 않자 홍수가 져서 물이 불어나는데도 떠나지 않고 다리 기둥을 안고 죽었다.” 하였는데, 에 “일본一本에는 미생微生으로 되어 있다.” 하였다. 혹자는 이르기를 “곧 미생고微生高이니, 신실한 행실이 있었다.” 하였다. 효기孝己나라 고종高宗의 아들이니, 효행孝行이 있어 어버이를 섬김에 하룻밤에도 다섯 번 일어났는데, 어머니가 일찍 죽자 고종高宗후처後妻의 말에 미혹되어 추방해서 죽게 하였다. 있더라도 승부勝負에는 유익함이 없으니, 폐하께서 어느 겨를에 행실이 훌륭한 선비를 쓸 수 있겠습니까?
楚漢相距 臣進奇謀之士하니 顧其計誠足以利國家事耳
나라와 나라가 서로 대치함에 신이 기이한 계책을 내는 인재를 올렸으니, 다만 그 계책이 진실로 국가의 일에 이로운가를 따질 뿐입니다.
盜嫂受金 何足疑乎잇가
형수를 개가시키고 금을 받아먹은 것을 어찌 의심할 것이 있겠습니까?”
〈出陳丞相世家〉
-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옴 -
○ 八月 漢王 如滎陽하야 命蕭何守關中한대 計關中戶口하야轉漕調兵注+[頭註]調 謂計發之也하야 以給軍하야 未嘗乏絶이러라
8월에 한왕漢王형양滎陽에 가면서 소하蕭何에게 명하여 관중關中을 지키게 하였는데, 소하蕭何관중關中호구戶口를 헤아려 수레와 뱃길로 식량을 수송[轉漕]하고 군대를 조달해서注+[頭註]調는 계산하여 징발함을 이른다. 군에 공급하여 일찍이 떨어진 적이 없었다.
[史略 史評]張氏曰
[史略 사평史評]張氏가 말하였다.
蕭何佐漢하여 定一代規模하니 亦宏遠矣로다
소하蕭何나라를 도와 한 왕조王朝의 규모를 정하였으니, 또한 크고 원대하도다.
高帝征伐하여 多在外어늘 何守關中하여 營緝根本하니 漢高所以得天下者 以關中根本固故也니라
고제高帝가 정벌하기 위해 외지에 있을 때가 많았는데 소하蕭何관중關中을 지키면서 근본을 잘 다스렸으니, 나라 고제高帝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관중關中의 근본이 견고하였기 때문이다.”
○ 漢王 使酈食其 注+[頭註]徐言이니 引比喩也往說魏王豹하고 且召之호되 豹不聽이라
한왕漢王역이기酈食其로 하여금 잘 비유하여注+[頭註]완협緩頰은 천천히 말하는 것이니, 부드러운 낯빛으로 비유하여 말함을 이른다. 위왕魏王 에게 가서 설득하게 하고 또 불렀으나 위왕魏王 가 듣지 않았다.
於是 漢王 以韓信, 灌嬰, 曹參으로 俱擊魏할새 漢王 問食其호되 魏大將 誰也 對曰 柏直이니이다
이에 한왕漢王한신韓信관영灌嬰, 조참曹參으로 함께 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는데, 한왕漢王역이기酈食其에게 묻기를 “나라 대장은 누구인가?” 하니, 대답하기를 “백직柏直입니다.” 하였다.
王曰 是 口尙乳臭注+[頭註]言其少不經事하고 弱不任事하야 若未離乳保之懷者 安能當韓信이리오
왕이 “이 사람은 입에서 아직도 젖내가 나니,注+[頭註]유취乳臭는 어려서 일을 경험하지 못하고 약하여 일을 맡을 수가 없어서, 유모乳母보모保姆의 품을 아직 떠나지 못한 자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어찌 한신韓信을 당해내겠는가.
騎將 誰也이니이다
기병장은 누구인가?” 하니, “풍경馮敬입니다.” 하였다.
曰 是 秦將馮無擇 子也 雖賢이나 不能當灌嬰이리라
왕이 “이 사람은 나라 장수 풍무택馮無擇의 아들이니, 비록 잘하나 관영灌嬰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步卒將 誰也 曰 項它니이다
보병의 장군은 누구인가?” 하니, “항타項它입니다.” 하였다.
曰 不能當曹參이니 吾無患矣라하더라
왕이 “이 사람은 조참曹參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니, 나는 걱정할 것이 없다.” 하였다.
〈出漢書本紀〉
-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에 나옴 -
○ 遂進兵한대 魏王 盛兵蒲坂注+[釋義]在魏爲垣〈曲〉이요 入秦爲蒲坂이요 漢爲河東邑이라하야 以塞臨晉이어늘
마침내 진군하니, 위왕魏王이 병력을 포판蒲坂注+[釋義]포판蒲坂나라에서는 원곡垣曲이라 하고, 나라에서는 포판蒲坂이라 하고, 나라에서는 하동읍河東邑이라 하였다. 많이 진열하여 임진臨晉 나루를 막았다.
乃益爲하야 陳船欲渡臨晉하고 而伏兵從夏陽하야 以木渡軍注+[釋義] 謂之木柙이니 縛罌缶以渡 罌缶 謂甁之大腹小口者하야 襲安邑한대
한신韓信이 마침내 더욱 의병疑兵을 만들어 배를 앞에 늘어놓아 임진臨晉 나루를 건너려고 하는 것처럼 위장하고, 군사를 숨겨 하양夏陽을 따라 나무통으로 군대를 도하시켜注+[釋義]은 나무궤짝(나무통)을 이르니, 앵부罌缶를 묶고서 물을 건너는 것이다. 앵부罌缶는 배는 크고 주둥이는 작은 항아리를 이른다. 안읍安邑을 습격하였다.
魏王豹驚하야 引兵迎信이어늘 九月 擊虜豹하야 滎陽하고 悉定魏地하다
위왕魏王 가 놀라 군대를 이끌고 한신韓信을 맞아 싸웠는데, 9월에 한신韓信위왕魏王 를 공격하여 사로잡아 역마驛馬로 압송하여 형양滎陽에 보내고 나라 땅을 모두 평정하였다.
〈出漢書高祖紀及信傳〉
- 《한서漢書 고제기高帝紀》와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옴 -
○ 韓信 旣定魏하고 使人請兵三萬하야 願以北擧燕趙하고 東擊齊하고 南絶楚粮道하고 西與漢王會於滎陽이라하야늘 漢王 許之하고 乃遣張耳하야 與俱하다
한신韓信나라를 평정하고는 사람을 시켜 3만 명의 병력을 청해서 북쪽으로 나라와 나라를 함락하고 동쪽으로 나라를 공격하고 남쪽으로 나라의 군량 수송로를 끊고 서쪽으로 한왕漢王형양滎陽에서 만나기를 원한다고 하니, 한왕漢王이 이를 허락하고 마침내 장이張耳를 보내어 함께 가게 하였다.
〈出漢書本傳〉
- 《한서漢書 한신전韓信傳》에 보임 -
역주
역주1 [譯註]陳恒之事……沐浴請討 : 이 내용은 《論語》 〈憲問〉에 자세히 보인다.
역주2 [譯註]宰 : 제사에 희생의 고기를 자르는 일을 맡은 사람을 이른다.
역주3 [譯註]長者 : 여러 장수들이 자신을 가리켜 말한 것이니, 여러 장수들이 陳平보다 나이가 많고 漢王을 따른 지가 오래되었으며 또 功이 있으므로 자칭 長者라고 이른 것이다.
역주4 三老董公 : 10里마다 한 亭이 있었는데 亭에는 우두머리가 있으며, 10亭이 1鄕인데 鄕에는 三老가 있어 교화를 맡았다. 董公은 秦나라 때의 隱士로 이름이 자세하지 않다.
역주5 [譯註]三河 : 河南, 河東, 河內를 이른다.
역주6 [譯註]反道敗德……則苗不可以不伐 : 三苗는 堯‧舜 때에 자주 반역하였는 바, 이 내용은 《書經》 〈大禹謨〉에 보인다.
역주7 [譯註]狎侮五行……則扈不可以不征 : 五行은 金‧木‧水‧火‧土를 가리키고, 三正은 子月‧丑月‧寅月을 正月로 함을 이른다. 北斗七星의 자루가 초저녁에 正北方인 子方을 가리키는 달을 子月이라 하고, 丑方을 가리키는 달을 丑月이라 하고, 寅方을 가리키는 달을 寅月이라 하는 바, 周나라는 子月을, 殷나라는 丑月을, 夏나라는 寅月을 正月로 삼았다. 有扈는 夏나라 同姓國으로 禹王의 아들 啓가 즉위하자, 복종하지 않으므로 정벌하여 멸망시켰는 바, 이 내용은 《書經》 〈甘誓〉에 보인다.
역주8 [譯註]俶擾天紀……有羲和之師 : 天紀는 日‧月‧星‧辰‧曆‧數를 이르며, 羲和는 曆相을 맡은 관원인 바, 이 내용은 《書經》 〈胤征〉에 보인다.
역주9 [譯註]矯誣上帝……有鳴條之攻 : 鳴條는 지명으로 商나라 湯王이 夏나라 桀王을 정벌한 곳인 바, 이 내용은 《書經》 〈仲虺之誥〉에 보인다.
역주10 [譯註]謂祭無益……有牧野之戰 : 牧野는 周나라 武王이 商나라 紂王을 정벌한 곳으로, 이 내용은 《書經》 〈泰誓〉에 보인다.
역주11 [譯註]去邠之慍不殄……不可不遣也 : 邠은 周나라 太王이 도읍한 곳으로 당시 북쪽 오랑캐인 獯鬻이 자주 침략하자, 太王은 부득이 邠 땅을 버리고 岐山 아래 周로 천도하였다. 獯鬻은 일명 玁狁이라고 하였는 바, 太王의 손자인 文王 때에도 침공을 계속하였다. 采薇는 《詩經》 〈小雅〉의 편명으로 文王 때에 서쪽으로는 昆夷, 북쪽으로는 玁狁의 침공이 있으므로 이를 막기 위하여 군대를 보내면서 읊은 내용이다.
역주12 [譯註]不恭之怒方張……不可不遏也 : 침략하러 가는 군대라는 것은 阮나라를 침략하기 위하여 共 땅으로 가는 密나라 사람들을 이르는 바, 당시 文王은 不恭하여 침략을 자행하는 密나라를 공격하였는 바, 《詩經》 〈大雅 皇矣〉는 바로 이 내용을 읊은 것이다.
역주13 [譯註]整居之禍孔熾……不可不亟也 : 六月은 《詩經》 〈小雅〉의 편명으로, 당시 북쪽 오랑캐인 玁狁이 매우 강성하여 중국의 焦, 穫 지방에 침입해서 정돈하여 살고 있었으므로 周나라 宣王이 즉위하여 尹吉甫에게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하게 하였는 바, 〈六月篇〉은 바로 이 내용을 읊은 것이다.
역주14 三老董公 : 10里마다 한 亭이 있었는데 亭에는 우두머리가 있으며, 10亭이 1鄕인데 鄕에는 三老가 있어 교화를 맡았다. 董公은 秦나라 때의 隱士로 이름이 자세하지 않다.
역주15 : 수
역주16 : 랑
역주17 : 잡
역주18 : 이
역주19 [譯註]以主待客 : 자기 지역에서 싸우는 군대를 主兵, 남의 지역에서 싸우는 군대를 客兵이라 한다.
역주20 [譯註]捐關以東 等棄之 : 捐은 버리는 것과 같이 하여 자신의 소유로 여기지 않음을 이르는 바, 공을 세워 漢나라와 함께 楚나라를 격파하는 사람에게 關東 지방을 봉해주겠다는 뜻이다.
역주21 [譯註]反梁地 : 頭註에는 “反謂復其地”라고 하여 梁나라 땅을 收復하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역주22 使 : 시
역주23 : 착
역주24 : 촉
역주25 : 현
역주26 [譯註]召讓魏無知 : 魏無知가 陳平을 천거하였기 때문에 漢王이 魏無知를 불러서 꾸짖은 것이다.
역주27 : 협
역주28 : 풍
역주29 [譯註]疑兵 : 적을 속이기 위하여 거짓으로 많은 군대가 있는 것처럼 꾸밈을 이른다.
역주30 : 앵
역주31 [譯註]傳詣 : 傳은 역마를 이르는 바, 파발마로 압송하여 漢王이 있는 곳에 이르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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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병신] 서초2년, 한2년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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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병신] 서초2년, 한2년 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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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병신] 서초2년, 한2년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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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병신] 서초2년, 한2년 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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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병신] 서초2년, 한2년 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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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병신] 서초2년, 한2년 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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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병신] 서초2년, 한2년 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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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병신] 서초2년, 한2년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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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병신] 서초2년, 한2년 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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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병신] 서초2년, 한2년 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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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병신] 서초2년, 한2년 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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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병신] 서초2년, 한2년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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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병신] 서초2년, 한2년 441

통감절요(1)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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