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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7)

통감절요(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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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戌]四年이라 〈睿宗皇帝景雲元年〉
경룡景龍 4년(경술 710) - 예종황제睿宗皇帝 경운景雲 원년元年 -
夏四月 宴近臣할새 國子祭酒祝欽明 自請作八風舞注+[附註]非春秋所謂者也 特借八風之名하야 而備諸淫醜之態耳 後人 謂淫放不返爲風하니 此則欽明所謂八風也 하야 搖頭轉目하야 備諸醜態하니 上笑러라
여름 4월에 근신近臣들에게 잔치를 베풀 적에 국자좨주國子祭酒 축흠명祝欽明이 스스로 팔풍무八風舞注+[附註]팔풍무八風舞는 《춘추좌전春秋左傳은공隱公 5년조에 이른바 “춤은 팔음八音의 악기를 절주節奏로 삼아 팔방八方풍기風氣를 나타내는 것”이란 것이 아니요, 다만 팔풍八風이라는 이름을 빌려 온갖 음란하고 추한 작태를 보인 것일 뿐이다. 뒷날 사람들이 음란하고 방탕하여 돌아오지 않는 것을 일러 이라 하니, 이것이 축흠명祝欽明이 말한 ‘팔풍八風’이라는 것이다. 출 것을 청하여 머리를 흔들고 눈알을 굴리며 온갖 추태를 다 부리니, 이 웃었다.
欽明 素以儒學著名이라 吏部侍郞盧藏用 私謂諸學士曰 祝公五經 掃地盡라하니라
축흠명祝欽明은 평소 유학儒學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으므로 이부시랑吏部侍郞 노장용盧藏用이 사사로이 여러 학사學士들에게 말하기를 “축공祝公오경五經이 쓸어낸듯 다 없어졌다.” 하였다.
○ 安樂公主欲韋后臨朝하고 自爲皇太女하야 乃相與合謀하고 於餠餤注+[頭註] 杜覽反이라 麪裹菜爲之하고 又麪裹肉爲之 進毒이러니 六月壬午 中宗하다
안락공주安樂公主위후韋后는 조정에 임어하고 자신은 황태녀皇太女가 되고자 하여 마침내 서로 결탁하여 함께 도모하고 떡 속에注+[頭註]은 음이 두람반杜覽反(담)이다. 밀가루로 채소를 싸서 만들기도 하고 또 밀가루로 고기를 싸서 만들기도 한다. 독약을 넣어 올렸는데, 6월 임오일(2일)에 중종中宗이 죽었다.
太平公主注+[頭註]高宗女也 武后之生이라 與上官昭容注+[頭註]卽上官婕妤 하고 草遺制하야 立溫王重茂注+[頭註]中宗子也 是爲殤帝 하야 爲皇太子하고 皇后臨朝攝政하다
태평공주太平公主注+[頭註]태평공주太平公主고종高宗의 딸이니, 무후武后의 소생이다. 상관소용上官昭容注+[頭註]상관소용上官昭容은 바로 상관첩여上官婕妤(上官婉兒)이다. 모의하고 유제遺制를 초안하여 온왕溫王 이중무李重茂注+[頭註]이중무李重茂중종中宗의 아들이니, 바로 상제殤帝이다. 세워 황태자皇太子로 삼고, 황후가 조정에 임어하여 섭정하게 하였다.
殤帝卽位하니 時年 十六이러라
그리하여 상제殤帝(李重茂)가 즉위하니 이때 나이가 16세였다.
○ 相王子臨淄王隆基注+[頭註]玄宗也謀匡復社稷할새 微服으로 與劉幽求等入苑中注+[頭註]在皇城之北하니 東西二十里 南北三十里이러니 向二鼓注+[頭註]持更者 每一更則鼓一聲하야 五更則鼓五聲이라 五鼓而爲五更이라 天星散落如雪이어늘
상왕相王(睿宗 이단李旦)의 아들 임치왕臨淄王 이융기李隆基注+[頭註]이융기李隆基현종玄宗이다.사직社稷을 광복할 것을 도모할 적에 미복微服 차림으로 유유구劉幽求 등과 궁원宮苑 가운데에注+[頭註]궁원宮苑황성皇城의 북쪽에 있으니, 동서로 20리이고 남북으로 30리이다. 들어갔는데, 2이 될 무렵注+[頭註]밤에 숙직하는 자가 매 1마다 북을 한 번 쳐서 5이면 북을 다섯 번 친다. 그러므로 다섯 번 북이 울리면 5이다. 하늘의 별이 눈발처럼 떨어졌다.
하니 時不可失이라하고 乃攻하야 斬關而入하다
유유구劉幽求가 말하기를 “하늘의 뜻이 이와 같으니 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고, 마침내 백수문白獸門을 공격하여 문의 빗장을 부수고 들어갔다.
韋后惶惑하야 走入飛騎營이어늘 有飛騎斬其首하야 獻於隆基하고
위후韋后가 두려워하고 당혹하여 달아나서 비기영飛騎營으로 들어가자, 비기飛騎가 그의 목을 베어 이융기李隆基에게 바쳤다.
安樂公主照鏡畫眉어늘 軍士斬之하니 比曉 內外皆定이라
안락공주安樂公主는 막 거울을 보며 눈썹을 그리고 있었는데 군사가 그녀의 목을 베니, 새벽에 이르러 안팎이 다 안정되었다.
是日 赦天下하고 以臨淄王隆基 爲平王注+[通鑑要解]固以平州爲國名이나 實平內亂하야 褒以此名이라하다
이 날(6월 1일)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임치왕臨淄王 이융기李隆基평왕平王으로 삼았다.注+[通鑑要解]평왕平王은 본래 평주平州를 나라 이름으로 삼은 것이나 실로 내란을 평정했다 하여 이 평왕平王이란 명호名號로써 기린 것이다.
甲辰 少帝制傳位相王하니 睿宗 卽位하다
갑진일(6월 24일)에 소제少帝가 조서를 내려 상왕相王에게 전위傳位하니, 예종睿宗즉위卽位하였다.
○ 上 將立太子할새 以宋王成器嫡長이요 而平王隆基有大功이라하야 疑不能決이러니
이 장차 태자를 세우려 할 적에 송왕宋王 이성기李成器적장자嫡長子이고 평왕平王 이융기李隆基는 큰 공이 있다 하여 망설이고 결정하지 못하였는데,
成器辭曰 國家安則先嫡長이요 國家危則先有功이니이다
이성기李成器가 사양하기를 “국가가 편안하면 적장자嫡長子를 우선 하고, 국가가 위태로우면 공이 있는 자를 우선 하여 태자로 삼아야 합니다.
苟違其宜 四海失望이니 死不敢居平王之上이라하고 涕泣固請者累日이요 大臣亦多言 平王功大宜立이라하다
만일 마땅함을 잃으면 온 천하가 실망할 것이니, 신은 죽어도 감히 평왕平王의 위에 있을 수 없습니다.” 하고 눈물을 흘리며 여러 날 동안 굳이 청하였으며, 대신들 또한 “평왕의 공이 크니 마땅히 세워야 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다.
劉幽求曰 臣聞除天下之禍者 當享天下之福이라하니
유유구劉幽求가 아뢰기를 “신이 들으니, 천하의 를 제거한 자는 마땅히 천하의 을 누려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平王 拯社稷之危하고 救君親之難하니 論功莫大 語德最賢하니
평왕平王사직社稷의 위태로움을 구원하고 군주와 어버이의 환난患難을 구원하였으니, 공을 논하면 이보다 더 클 수가 없고 덕을 논하면 가장 어집니다.
無可疑者니이다
이러하니 의심할 나위가 없습니다.” 하였다.
上從之하야 立平王隆基하야 爲太子하다
이 그 말을 따라 평왕平王 이융기李隆基를 세워 황태자로 삼았다.
太平公主沈敏多權略하야 與太子共誅韋氏러니 旣立大功 益尊重하야 常與之圖議大政이러라
태평공주太平公主는 침착하고 민첩하며 권모가 많아 태자와 함께 위씨韋氏를 주살하였는데, 큰 공을 세운 뒤에 지위가 더욱 중요해져서 이 항상 그녀와 큰 정사를 도모하고 의논하였다.
○ 以許州刺史姚元之 爲兵部尙書하고 洛州長史宋璟으로 檢校吏部尙書, 同中書門下三品하다
허주자사許州刺史 요원지姚元之병부상서兵部尙書로 삼고, 낙주장사洛州長史 송경宋璟검교이부상서檢校吏部尙書동중서문하삼품同中書門下三品으로 삼았다.
與姚元之 協心하야 革中宗弊政하야 進忠良하고 退不肖하며 賞罰盡公하고 請託不行하야 綱紀修擧하니 當時 翕然以爲復有貞觀, 永徽注+[頭註]貞觀 太宗이요 永徽 高宗也之風이러라
송경宋璟요원지姚元之와 합심하여 중종中宗의 잘못된 정사를 개혁하여 충성스럽고 어진 이를 등용하고 불초한 이를 물리치며, 상벌賞罰이 모두 공정하고 청탁이 행해지지 아니하여 기강이 닦여지고 거행되니, 당시에 사람들이 모두들 다시 정관貞觀영휘永徽注+[頭註]정관貞觀태종太宗의 연호이고, 영휘永徽고종高宗의 연호이다. 연간의 유풍이 있다고 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睿宗 因其子之功而在位不久하니 固無足稱者
예종睿宗은 아들(玄宗)의 공을 인하고 재위한 지가 오래지 아니하여 칭찬할 만한 것이 없다.
然能任姚宋하야 革中宗弊政하고 罷斜封官하고하야 紀綱修飭하니 當時翕然하야 以爲復有貞觀之風이라
그러나 명재상인 요숭姚崇송경宋璟에게 맡겨서 중종中宗의 나쁜 정사를 개혁하였고, 사봉관斜封官을 파하고 숭은묘崇恩廟를 폐하여 기강紀綱이 닦여지니, 당시 사람들이 모두들 다시 정관貞觀유풍遺風이 있다고 하였다.
未幾 天文示變한대 遂以大位 付之於子하니 實大公之心이요 安社稷之計也어늘
얼마 안 있다가 천문天文이 변고를 보이자 마침내 대위大位를 아들에게 맡겼으니, 이는 실로 공정한 마음이요 사직社稷을 편안히 하려는 계책이었다.
奈何惑於一妹하야 明斷不足하야 雖傳位 而不授之以政하고 自稱太上皇而猶斷大事하야
그런데 어찌하여 한 누이에게 혹해서 분명하게 결단함이 부족하여 비록 아들에게 전위傳位하였으나 정권을 맡겨주지 않고 스스로 태상황太上皇이라 칭하면서 오히려 큰 일을 결단하였다.
卒釀成其妹之惡하야 使奸人黨附하야 幾成逆謀하니 惜哉
그리하여 마침내 그 누이의 양성釀成해서 간사한 자들이 따르게 하여 거의 역모逆謀를 이룰 뻔하였으니, 애석하다.”
역주
역주1 節八音行八風 : 八音은 악기를 만드는 재료에 따라 나눈 악기에 쓰는 여덟 가지 재료를 이르는 바, 金, 石, 絲, 竹, 匏, 土, 革, 木이다. 八風은 팔방의 바람으로, 동방의 谷風, 동남방의 淸明風, 남방의 凱風, 서남방의 涼風, 서방의 閶闔風, 서북방의 不周風, 북방의 廣莫風, 동북방의 融風이다. 八音의 악기가 함께 울리면 樂曲이 갖추어지므로 춤은 八音의 악기를 절주로 삼고, 八方의 風氣는 춤으로 인해 펼쳐지므로 춤은 八方의 風氣를 펼치는 것이다.
역주2 天星散落如雪……天意如此 : 하늘의 별이 눈발처럼 흩어져 떨어지면 변란이 있다 하므로 하늘의 뜻이 이와 같다고 한 것이다.
역주3 白獸門 : 원래는 白虎門인데, 唐 太祖의 諱(李虎)를 피하여 獸로 고쳤다. 궁성 북쪽에 있으며 白獸闥이라고도 하였다.
역주4 崇恩廟 : 則天武后의 사당이다.

통감절요(7)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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