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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3)

통감절요(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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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己丑]五年이라
건무建武 5년(기축 29)
帝使來持節하야 送馬援歸隴右하다
황제가 내흡來歙으로 하여금 을 가지고 마원馬援을 전송하여 농우隴右로 돌아가게 하였다.
隗囂與援共臥起하야 問以東方事한대 曰 前到朝廷호니 引見數十하사 每接燕語하사되 自夕至旦하시니
외효隗囂마원馬援과 함께 기거하면서 동방東方(洛陽)의 일을 묻자, 말하기를 “지난번 조정에 이르니, 이 수십 번 접견하여 접견할 때마다 사사로이 말씀하시되 저녁부터 아침까지 하였습니다.
才明勇略 非人敵也 且開心見誠하야 無所隱伏하니 闊達多大節 略與高帝同하고 經學博覽 政事文辨注+[頭註]文華辨別也 前世無比러이다
재명才明(재주와 지혜)과 용략勇略은 보통 사람이 대적할 바가 아니고 또 마음을 열어 진심을 보여서 숨기는 바가 없으니, 활달하여 대절大節에 치중함은 대략 고제高帝와 같고 경학經學박람博覽, 정사政事문변文辨注+[頭註]문장이 아름답고 화려하며, 사물에 대한 분별이 있는 것이다.전대前代에 비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였다.
囂曰 卿謂何如高帝
외효隗囂가 말하기를 “이 생각하기에 고제高帝에 비하여 어떠한가?” 하니,
援曰 不如也 高帝 어니와 今上 好吏事하야 動如節度하고 又不喜飮酒러이다
마원馬援이 대답하기를 “고제高帝만 못하니 고제高帝는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거니와, 금상今上은 관리의 일을 처리하기를 좋아하여 번번이 절도節度대로 하고 또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니,
囂意不曰 如卿言인대勝耶아하다
외효隗囂가 마음에 좋아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의 말과 같다면 금상今上고제高帝보다 도리어 더 낫단 말인가?” 하였다.
〈出援傳〉
- 《후한서後漢書 마원전馬援傳》에 나옴-
[新增]胡氏曰
[新增]胡氏가 말하였다.
無可無不可 孔子自謂之言也 以五字成文 當渾全以會其意 不當分析以求其義
“ ‘가함도 없고 불가함도 없다.[無可無不可]’는 것은 공자孔子께서 자신을 두고 스스로 하신 말씀이니, 다섯 글자를 가지고 문장을 이룸은 완전히 한 덩어리로 그 뜻을 이해해야 하고 분석해서 그 뜻을 찾아서는 안 된다.
設有人焉 絶世離俗하야 無一可者 有是理乎
설령 어떤 사람이 세속을 끊고 떠나가서 한 가지라도 한 것이 없다면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行之而善이라도 亦孤介一隅之士爾
이것을 행하여 하더라도 또한 홀로 절개를 지켜 세속을 따르지 않는 협소한 선비일 뿐이다.
設有人焉 和光同塵하야 無一不可者 有是理乎
그리고 설령 어떤 사람이 광채(德)를 감추고 진세塵世에 섞여 있어서 한 가지라도 불가不可한 것이 없다면 이런 이치가 있겠는가.
行之而善이라도 亦委隨苟合之人爾
이것을 행하여 하더라도 또한 나약하고 무능하여 구차히 영합하는 사람일 뿐이다.
蓋聖人 從容中道하야 無所偏倚者也
성인聖人은 저절로 에 맞아서 치우치거나 의지함이 없는 자이다.
後世 有狀人之通儻注+[頭註] 達也 倜儻이니 卓異也不泥者 必曰無可無不可라하나니 窮究要歸하면 則纔足謂之無不可爾니라
후세에 통달하고 초탈하여注+[頭註][通은 통달함이요, 은 뜻이 크고 기개가 뛰어난 것이니 탁이卓異한 것이다. 어느 한쪽에 빠지지 않는 자를 형용할 때에 반드시 ‘무가무불가無可無不可’라 하니, 그 귀결을 궁구해 보면 겨우 ‘불가함이 없다[無不可]’고 이르기에 충분할 뿐이다.”
馬武, 王霸 擊蘇茂, 周建하야 破之한대 於道死하고 犇下邳注+[釋義] 東海邑이니 本在薛이러니 其後徙此 有上邳 故曰下邳하야 與董憲合하고 劉紆 犇佼彊注+[釋義] 姓也 或作姣[頭註]佼彊 梁王永之將이라하다
마무馬武왕패王霸소무蘇茂주건周建을 공격하여 격파하자, 주건周建은 길에서 죽고, 소무蘇茂하비下邳注+[釋義]동해東海이니, 본래 에 있었는데 그 후 이곳으로 옮겼다. 상비上邳가 있기 때문에 하비下邳라 한 것이다. 로 도망하여 동헌董憲과 연합하고, 유우劉紆교강佼彊注+[釋義]佼는 이니 혹은 로도 쓴다.[頭註]佼彊은 양왕梁王 유영劉永의 장수이다.에게로 달려갔다.
○ 彭寵 蒼頭注+[釋義]漢名奴爲蒼頭者하니 (服)[非]純黑以別於良人也子密等三人 殺寵以降이어늘 帝封子密하야 爲不義侯하다
팽총彭寵창두蒼頭(노예)注+[釋義]나라는 노예를 창두蒼頭라 이름하였으니, 순흑색이 아닌 것으로 양인良人과 구별하였다. 자밀子密 등 세 사람이 팽총彭寵을 죽이고 항복하자, 황제가 자밀子密을 봉하여 불의후不義侯로 삼았다.
權德輿議曰
권덕여權德輿가 논하였다.
伯通之叛命 子密之戕君 同歸於亂하니 罪不相蔽
백통伯通(彭寵의 )이 황제의 명령을 배반한 것과 자밀子密이 군주를 해침은 똑같이 에 돌아가니, 죄가 서로 가릴 수 없다.
宜各置於法하야 昭示王度어늘 反乃爵於五等注+[釋義]謂公侯伯子男이라하고 又以不義爲名이라
마땅히 각각 법대로 처치하여 왕의 법도法度를 밝게 보여야 할 터인데, 도리어 다섯 등급注+[釋義]다섯 등급은 을 이른다. 의 작위를 내리고 또 불의不義의 이름으로 삼았다.
且擧以不義 莫可侯也어늘 此而可侯하니 漢爵 爲不足勸矣니라
불의不義한 짓을 거행하였으면 를 시켜서는 안 되는데 이런 사람에게 를 시켰으니, 나라의 관작官爵이 족히 을 권할 수 없게 되었다.”
吳漢 率耿弇等하고 擊富平獲索注+[釋義]地理志 平原 有富平縣이라 獲索 賊名이라於平原하야 大破之어늘 因詔弇하야 進討張步注+[頭註]齊王也하다
오한吳漢경엄耿弇 등을 거느리고 부평富平획색獲索注+[釋義]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평원군平原郡부평현富平縣이 있다.” 하였다. 획색獲索의 이름이다.평원군平原郡에서 공격하여 대파大破하자, 이 인하여 경엄耿弇에게 명해서 나아가 나라 장보張步注+[頭註]장보張步나라 이다. 를 토벌하게 하였다.
○ 帝以郭爲漁陽太守하다
○ 황제가 곽급郭伋어양태수漁陽太守로 삼았다.
承離亂之後하야 養民訓兵하야 開示威信하니 盜賊 銷散하고 匈奴遠迹하야 在職五年 戶口增倍러라
곽급郭伋은 난리를 치른 뒤를 이어서 백성들을 기르고 군사들을 훈련시켜 위엄과 신의를 열어서 보여 주니, 도적들이 사라지고 흉노가 멀리 도망하여 재직在職한 지 5년에 호구戶口가 배로 증가하였다.
〈出本傳〉
- 《후한서後漢書 곽급열전郭伋列傳》에 나옴 -
○ 平敵將軍龐萌 爲人 遜順하니 帝信愛之하야 常稱曰 龐萌 是也라하다
평적장군平敵將軍 방맹龐萌의 사람됨이 겸양하고 공손하니, 황제가 믿고 사랑하여 항상 칭찬하기를 “육척六尺의 어린 군주를 맡길 수 있고, 백리百里(諸侯國)의 명령命令(國政)을 부탁할 수 있는 자는 방맹龐萌 이 사람이다.”라고 하였다.
使與蓋延共擊董憲이러니 詔書獨下延하고 而不及萌이라
개연蓋延과 함께 동헌董憲을 공격하게 하였는데, 이때에 조서가 개연蓋延에게만 내려지고 방맹龐萌에게는 미치지 않았다.
萌以爲延譖己라하야 自疑遂反하야 襲延軍破之하고 與董憲連和하야 自號東平王하다
방맹龐萌개연蓋延이 자신을 참소한 것이라고 여겨 스스로 의심하고는 마침내 배반하여 개연蓋延의 군대를 기습 격파하고 동헌董憲과 연합하여 동평왕東平王이라 자칭하였다.
之大怒하야 自將討萌할새 與諸將書曰 吾常以龐萌爲社稷臣이러니 將軍 得無笑其言乎
황제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노하여 스스로 군대를 거느리고 방맹龐萌을 토벌할 적에 제장諸將들에게 편지를 보내기를 “내가 항상 방맹龐萌사직社稷의 신하라고 하였는데, 장군들이 어찌 나의 말을 비웃지 않겠는가.
老賊 當族이니 其各厲兵馬하야 會睢陽하라
노적老賊을 마땅히 멸족滅族해야 할 것이니, 각기 병기와 말을 정돈하여 수양睢陽으로 모이도록 하라.” 하였다.
○ 隗囂問於班彪曰 往者周亡 戰國 竝爭하야 數世然後定하니 意者컨대 從橫之事 復起於今乎
외효隗囂반표班彪에게 묻기를 “예전에 나라가 멸망할 때에 전국戰國군웅群雄들이 함께 다투어서 몇 대가 지난 뒤에야 천하天下가 정해졌으니, 생각건대 합종合從연횡連橫의 일이 오늘날에 다시 일어나겠는가?
將承運迭興 在於一人也 彪曰
아니면 〈나라가 망하고〉 천명天命을 받아 나라를 대신하여 일어나는 것이 한 사람에게 있겠는가?” 하니, 반표班彪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周之廢興 與漢殊異
나라가 망하고 흥함은 나라와는 크게 다릅니다.
周爵五等하야 諸侯從政하야 本根旣微 枝葉彊大
옛날에 나라는 다섯 등급의 관작을 두어서 제후들이 정사에 종사하여 근본根本(天子國)이 이미 미약해지자 지엽枝葉(제후국)이 강대해졌습니다.
其末流 有從橫之事하니 勢數然也어니와
그러므로 말류末流합종合從연횡連橫의 일이 있었으니, 이는 형세와 운수가 그러했던 것입니다.
하니 主有專己之威하고 臣無百年之柄이라
그러나 나라는 나라의 제도를 이어받아 봉건제도封建制度를 고쳐 군현제도郡縣制度를 세우니, 군주는 자기 마음대로 하는 위엄이 있고 신하는 백년百年의 장구한 권세가 없었습니다.
至於成帝하야 假借外家注+[釋義]外家 王氏也 謂以權勢 假貸與諸舅하며 이라
그런데 성제成帝 때에 이르러 외척外戚에게 권력을 빌려 주었으며注+[釋義]외가外家왕씨王氏이니, 권세를 여러 외삼촌들에게 빌려 주었음을 이른다. 애제哀帝평제平帝가 제위를 누린 것이 짧고 국통國統이 세 번이나 끊어졌습니다.
王氏擅朝하야 能竊號位하니 危自上起 傷不及下
그러므로 왕씨王氏(王莽)가 조정을 제멋대로 차지하여 천자天子의 칭호와 지위를 도둑질하였으니, 위태로움이 위에서부터 일어났고 상해傷害가 아래의 백성들에게 미치지 않았습니다.
是以 卽眞之後 天下引領而歎이러니 十餘年間 中外騷擾하고 遠近俱發하야 假號雲合 咸稱劉氏하야 不謀同辭
이 때문에 왕망王莽이 진짜 황제皇帝에 즉위한 뒤에 천하 사람들이 목을 길게 빼고 한탄하였는데, 10여년 사이에 중외中外가 소란하고 원근遠近이 함께 일어나서 명호名號를 빌려 무리들을 구름처럼 모을 적에 모두 유씨劉氏라고 칭하여 상의하지 않고도 똑같이 말하였습니다.
方今 雄桀(傑)帶州域者 皆無六國世業之資하고 百姓 謳吟思仰하니 漢必復興 已可知矣니이다
지금 영웅호걸로서 의 경계를 차지하고 있는 자들은 모두 육국六國처럼 대대로 기업基業을 이어 내려오는 바탕이 없고, 백성들은 나라를 노래하고 그리워하니, 나라가 반드시 부흥하리라는 것을 이미 알 수 있습니다.”
囂曰 生言周, 漢之勢 可也어니와 至於但見愚人 習識劉氏姓號之故 而謂漢復興 疎矣로다
외효隗囂가 말하기를 “나라와 나라의 형세를 말한 것은 하지만 다만 어리석은 사람들이 유씨劉氏과 이름을 익숙히 아는 것을 보았다고 해서 나라가 다시 부흥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고루하다.
秦失其鹿 劉季逐而注+[釋義]按淮陰傳 秦失其鹿 天下共逐之하니 於是 高材疾足者先得焉이라한대 註云 以鹿喩帝位也 劉季 高帝也 諱邦이요 字季 又左傳 譬如捕鹿 諸戎掎之라한대 從後牽曰掎라하니라하니 時民 復知漢乎
옛날 나라가 사슴(帝位)을 잃자 유계劉季(劉邦)가 쫓아가서 잡았으니,注+[釋義]秦失其鹿 유계축이기지劉季逐而掎之:살펴보건대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라가 그 사슴을 잃자 천하가 함께 쫓으니, 이에 재주가 뛰어나고 발이 빠른 자가 먼저 얻었다.” 하였는데, 에 이르기를 “사슴을 가지고 황제의 지위를 비유한 것이다.” 하였다. 유계劉季고제高帝이니, 이고 이다. 또 《춘추좌전春秋左傳》에 “비유하건대 사슴을 잡을 때에 여러 오랑캐들이 뒷다리를 잡는 것과 같다.” 하였는데, 에 “뒤에서 잡아끄는 것을 라 한다.” 하였다. 그 당시 백성들이 다시 나라를 알았겠는가?” 하였다.
彪乃爲之著王命論하야 以風切之하니
반표班彪가 이에 외효隗囂를 위하여 〈왕명론王命論〉을 지어서 풍자하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出彪傳 末句不同〉曰
- 《후한서後漢書 반표전班彪傳》에 나오는데, 말구末句가 같지 않음 -
昔堯之禪舜注+[頭註] 去聲이니 除地爲禪하야 告天而傳位 後因謂之禪이라 改墠曰禪 神之也 曰 天之曆數注+[頭註]帝王相繼之次第 猶歲時氣節之先後在爾躬이라하시고 舜亦以命禹하시며 러니 至湯, 武而有天下
“옛날 임금이 임금에게 선양禪讓注+[頭註]거성去聲이니, 천자天子교외郊外에 나가 땅을 소제하여 을 만들어 하늘에 고하고 천자의 자리를 물려주는 것을 후세에 인하여 이라 하였다. 을 고쳐 이라 한 것은 으로 여긴 것이다. 할 때에 말씀하기를 ‘하늘의 역수曆數(天運)注+[頭註]제왕帝王이 서로 계승하는 차례가 세시歲時절기節氣의 〈변화가 철에 따라 돌아가는〉 순서와 같은 것이다. 가 네 몸에 있다.’ 하였고, 임금 또한 이로써 임금에게 명하셨으며, 에 이르러는 모두 를 도왔는데, 탕왕湯王무왕武王에 이르러서 천하를 소유하였다.
劉氏 承堯之祚하니 堯據火德이어늘 而漢紹之하야
유씨劉氏임금의 옛 국통國統을 이으니, 임금은 화덕火德에 의거하였는데 나라가 이것을 이어서 적제赤帝부서符瑞가 있었다.
俗見高祖興於布衣하고 不達其故하야 至比天下於逐鹿하야 幸捷而得之라하고 不知神器有命하야 不可以智力求也하니 悲夫
속인俗人들은 고조高祖포의布衣로 일어난 것을 보고는 그 까닭을 알지 못해서 심지어 사슴을 쫓는 데에 천하를 견주어서 다행히 발이 빨라 얻었다 하고, 신기神器(황제의 지위)가 천명天命이 있어서 지혜와 힘으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니, 슬프다.
此世所以多亂臣賊子也로다
이 때문에 세상에 난신적자亂臣賊子가 많은 것이다.
夫饑饉流隷注+[釋義]蔬不熟曰饉이라 流隷 謂流離之人 之徒也 飢寒道路 所願 不過一金이나 然終轉死溝壑 何則
기근饑饉이 들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노예들注+[釋義]채소가 성숙하지 않은 것을 이라 한다. 유예流隷는 이곳저곳으로 떠돌아다니는 사람과 노예의 무리이다. 이 길에서 굶주리고 추위에 떨 적에 원하는 것이 1에 지나지 않으나 끝내 전전하다가 도랑과 구덩이에서 죽는 것은 어째서인가?
貧窮亦有命也일새니 況乎天子之貴 四海之富 神明之祚 可得而妄處哉
빈궁貧窮천명天命이 있기 때문이니, 하물며 천자天子의 존귀함과 사해四海의 부유함과 신명神明이 복을 내리는 것을 망령되이 차지할 수 있겠는가.
雖遭離阨會하야 竊其權柄하야 勇如信, 布注+[釋義]謂韓信, 黥布하고 强如梁, 籍注+[釋義]謂項梁, 項籍이라하고 成如王莽注+[釋義]謂王莽簒位하야 其勢已成也이라도 然卒潤伏質注+[釋義] 鍼也 伏於鍼上而斬之[頭註]質 本作櫍하니 椹也 古者 斬人 伏於椹上而斫之하야 烹醢分裂이어든 又況注+[釋義]皆微少之稱이라不及數子 而欲闇奸注+[釋義] 隱晦貌 犯非禮也天位者虖(乎)
그러므로 비록 곤궁한 때를 만나 권력을 도둑질하여 용맹함이 한신韓信경포黥布注+[釋義]信, :, 한신韓信경포黥布를 이른다. 와 같고 강함이 항량項梁항적項籍注+[釋義]梁, :, 항량項梁항적項籍을 이른다. 과 같고 형세가 이루어짐이 왕망王莽과 같다注+[釋義]왕망王莽이 천자의 지위를 찬탈하여 그 형세가 이미 이루어짐을 이른다. 하더라도 끝내 가마솥에 들어가고 도끼 모탕에 엎드려서注+[釋義]質은 도끼 모탕(나무를 패거나 자를 때에 받쳐 놓는 나무토막)이니, 도끼 모탕 위에 엎드려 베어지는 것이다.[頭註]質은 본래 로 쓰니 도끼 모탕이다. 옛날에 사람을 베어 죽일 때에 죄인을 모탕 위에 엎드리게 하고서 베었다. 삶겨지고 젓 담가져 육신이 나뉘고 찢기는데, 더구나 저 하찮은 자들注+[釋義]는 모두 매우 작음을 비유하는 칭호이다. 은 위의 몇 사람에게 미치지 못하면서 천자의 지위를 남몰래 범하고자注+[釋義]은 숨기는 모양이고, 가 아닌 것을 범하는 것이다. 한단 말인가.
하고 하니 夫以匹婦之明으로도 猶能推事理之致하고 探禍福之機하야 而全宗祀於無窮하고 어든 而況大丈夫之事乎
옛날 진영陳嬰의 어머니는 진영陳嬰의 가문이 대대로 빈천하였으니 갑자기 부귀해지는 것은 상서롭지 못하다 하여 진영陳嬰을 만류해서 왕이 되지 못하게 하였고, 왕릉王陵의 어머니는 나라가 반드시 천하를 얻을 것을 알고 칼에 엎드려 죽어 왕릉王陵을 굳게 권면하였으니, 필부匹婦의 밝음으로도 오히려 사리事理의 이치를 추측하고 화복禍福의 기미를 살펴서 종사宗祀를 무궁한 후세에 보전하고 책서策書춘추春秋(역사책)에 전했는데, 하물며 대장부大丈夫의 일이겠는가.
是故 窮達有命하고 吉凶由人이라
이 때문에 곤궁하고 영달함은 천명天命이 있고, 길하고 흉함은 사람에게 말미암는 것이다.
嬰母 知廢하고 陵母 知興하니 審此二者 帝王之分 決矣
진영陳嬰의 어머니는 〈진영陳嬰이 되면〉 망할 줄을 알았고 왕릉王陵의 어머니는 나라가 흥할 줄을 알았으니, 이 두 가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제왕帝王의 구분이 결정될 것이다.
加之高祖寬明而仁恕하고 知人善任使
더구나 고조高祖는 활달하고 밝고 어질고 너그러우며 사람을 잘 알아보아 맡겼다.
當食吐哺하야 納子房之策하고 拔足揮洗하야 揖酈生之說하며 擧韓信於行陳하고 收陳平於亡命하야 英雄陳力하고 群策畢擧
밥을 먹다가 먹던 밥을 뱉고서 자방子房(張良)의 계책을 받아들이고, 발을 씻다가 씻던 발을 빼고서 역생酈生(酈食其)의 말을 읍하고 받아들이며, 한신韓信항오行伍에서 들어 쓰고 진평陳平을 망명한 데에서 거두어 써서 영웅들이 힘을 바치고 여러 계책이 모두 거행되었다.
此高帝之大略 所以成帝業也
이는 고제高帝의 큰 지략智略제업帝業을 이룬 것이다.
若乃靈瑞 其事甚衆이라
상서祥瑞부응符應으로 말하면 그 일이 매우 많다.
그러므로 회음淮陰(韓信)과 유후留侯(張良)가 이르기를 ‘하늘이 준 것이지 사람의 힘이 아니다.’라고 한 것이니,
英雄 誠知覺寤하야 超然遠覽하고 淵然深識하야 收陵, 嬰之明分하고 絶信, 布之覬覦注+[釋義] 音冀 音踰 幸也 欲也 謂幸得其所欲이라하면
영웅이 진실로 알고 깨달아서 초연超然히 멀리 보고 연연淵然히 깊이 알아서 왕릉王陵진영陳嬰의 명확한 구분을 받아들이고, 한신韓信경포黥布제위帝位를 엿봄注+[釋義]이 기이고 이 유이니, 는 요행이고 는 하고자 하는 것인 바, 요행으로 그 하고자 하는 바를 얻음을 이른다. 을 끊어 버린다면
則福祚流於子孫하야 天祿 其永終矣리라
복조福祚가 자손에게 전해져 천록天祿이 영원할 것이다.”
〈出前漢敍傳〉
- 《한서漢書 서전敍傳》에 나옴 -
囂不聽이어늘 彪遂避地河西한대 竇融 以爲從事하야 甚禮重之
외효隗囂가 듣지 않자 반표班彪가 마침내 하서河西 지방으로 몸을 피하였는데, 두융竇融이 그를 종사관으로 삼아서 매우 예우하고 존중하였다.
彪遂爲融畫策하야 使之專意事漢焉이러라
반표班彪가 마침내 두융竇融을 위하여 계책을 세워 두융竇融으로 하여금 오직 일념一念으로 나라를 섬기게 하였다.
〈出彪傳〉
- 《후한서後漢書 반표전班彪傳》에 나옴 -
○ 初 竇融 自守河西러니 聞帝威德하고 心欲東向이나 以河西隔遠하야 未能自通이라하야 乃從隗囂하야 한대 囂皆하다
○ 처음에 두융竇融이 스스로 하서河西 지방을 지키고 있었는데, 황제의 위엄과 덕을 듣고는 마음속으로 광무제光武帝에게 귀의하고자 하였으나 하서河西가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통할 수가 없다 하여 마침내 외효隗囂를 따라 건무建武정삭正朔을 받으니, 외효隗囂장군將軍인수印綬를 임시로 맡겨 주어 그 지방을 맡아 다스리게 하였다.
囂外順人望이나 內懷異心하야 使辯士張玄으로 說融等曰 更始事已成이라가 尋復亡滅하니 一姓不再興之效
외효隗囂가 겉으로는 사람들의 바람을 따랐으나 속으로는 딴 마음을 품어 변사辯士장현張玄으로 하여금 두융竇融 등을 설득하기를 “경시更始가 일이 이미 이루어졌다가 얼마 안 되어 다시 멸망하였으니, 이는 한 (劉氏)이 다시 흥왕興旺하지 않을 징험이다.
當各據土宇하야 與隴, 蜀合從注+[釋義] 謂隗囂 謂公孫述이라 以和合爲從이요 以威勢相脅爲橫이라이면 高可爲六國注+[釋義]戰國時 韓, 魏, 趙, 燕, 楚, 齊 戰國之世 各據其地하니라이요 下不失尉佗注+[釋義] 名也 姓趙 秦二世時 南海尉任囂 病且死 召龍川令趙佗하야 語曰 聞項羽, 劉季等 各起兵하야 中國擾亂이라하니 吾欲興兵自備러니 會病甚이라 且南海 東西數千里 可以立國이라하고 卽以佗行南海尉事하니라 囂死 佗卽自立爲南粤(越)武王하니라니라
마땅히 각각 토우土宇(영토)를 점거하여 과 합종注+[釋義]외효隗囂를 이르고 공손술公孫述을 이른다. 화합하는 것을 이라 하고, 위엄과 형세로 서로 위협하는 것을 이라 한다. 한다면 높게는 육국六國注+[釋義]육국六國전국시대戰國時代, , , , , 이니, 전국戰國시대에 각각 그 지역을 점거하였다. 처럼 될 수 있고 낮아도 남해위南海尉 조타趙佗注+[釋義]관명官名이고〉 는 이름이니, 조씨趙氏이다. 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 때에 남해위南海尉 임효任囂가 병들어 죽으려 할 때에 용천령龍川令 조타趙佗를 불러 이르기를 “내 들으니, 항우項羽유계劉季 등이 각각 군대를 일으켜서 중국中國이 소란하다 한다. 내가 군대를 일으켜 스스로 방비하고자 하였는데, 마침 병이 심하다. 또 남해南海는 동서 지방이 수천 리이니, 나라를 세울 수 있다.” 하고는, 즉시 조타趙佗남해위南海尉의 일을 행하게 하였다. 임효任囂가 죽자, 조타趙佗가 즉시 스스로 서서 남월무왕南粤武王이라 하였다.를 잃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融等 召豪傑議之하니 其中識者皆曰 今皇帝姓名 見於圖書하니 漢有之符라하다
두융竇融 등이 호걸을 불러 의논하니, 그 가운데 유식한 자들이 모두 말하기를 “지금 황제皇帝성명姓名도참서圖讖書에 보이니, 나라가 다시 천명天命을 받을 부서符瑞가 있다.” 하였다.
遂決策東向하고 遣長史劉鈞等注+[通鑑要解] 衆推融爲大將軍이라 置長史也하야 奉書詣洛陽한대
두융竇融이 마침내 광무제光武帝에게 귀의하기로 계책을 결단하고 장사長史 유균劉鈞 등을 보내어注+[通鑑要解]이때에 무리들이 두융竇融을 추대하여 대장군大將軍으로 삼았다. 그러므로 장사長史를 둔 것이다. 글을 받들어 낙양洛陽에 이르렀다.
帝見鈞懽甚하야 禮饗畢 乃遣還할새 賜融璽書曰 今益州 有公孫子陽하고 天水 有隗將軍하니 方蜀, 漢相攻 權在將軍이라
황제가 유균劉鈞을 보고는 매우 기뻐하여 로 연향하기를 마친 다음 마침내 돌려보낼 때에 두융竇融에게 내린 새서璽書에 이르기를 “지금 익주益州에는 공손자양公孫子陽이 있고 천수天水에는 외장군隗將軍이 있으니, 이 서로 공격함에 권세(결정권)가 장군에게 달려 있다.
擧足左右 便有輕重注+[通鑑要解]言左投則蜀重하고 右投則漢重也하니 以此言之컨대 欲相厚豈有量哉
발을 들어 왼쪽으로 향하느냐 오른쪽으로 향하느냐에 따라 곧 경중輕重이 그쪽으로 쏠리게 되니,注+[通鑑要解]왼쪽으로 향하면 이 중해지고, 오른쪽으로 향하면 이 중해짐을 말한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두 사람이 서로 후대厚待하고자 함이 어찌 한량이 있겠는가.
欲遂立桓, 文하야 輔微國注+[釋義]齊桓公, 晉文公 春秋時號爲賢君이라 能糾合諸侯하야 尊周室, 治强楚하니 諸侯皆尊之하야 以爲霸主하니라인대 當勉卒功業이요三分鼎足하야 連衡合從注+[釋義]註見周安王十五年이라인대 亦宜以時定注+[頭註] 橫通이라 時定 開兩說以觀融去就하라
마침내 환공桓公 문공文公처럼 이름난 맹주盟主를 세워 미약한 나라를 돕고자 한다면注+[釋義]欲遂立桓文 보미국輔微國: 환공桓公 문공文公춘추시대春秋時代에 어진 임금으로 일컬어졌다. 이들은 제후들을 규합하여 미약한 나라 왕실을 높이고 강한 나라를 다스리니, 제후들이 모두 높여서 패주霸主로 삼았다. 마땅히 힘써 공업功業을 끝마쳐야 할 것이요, 셋으로 나누어 솥발처럼 서서 합종合從하고 연횡連橫注+[釋義] 안왕安王 15년조年條(B.C.387)에 보인다. 하고자 한다면 또한 이때에 결정하라.注+[頭註]連衡合從 역의이시정亦宜以時定:한다. 이때에 결정하라는 것은 합종合從연횡連橫 두 가지 을 말하여 두융竇融거취去就를 살피고자 한 것이다.
天下未幷하니 吾與爾絶域하야 非相呑之國이라
천하가 아직 통일되지 못하였으니, 나와 그대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서로 병탄할 나라가 아니다.
今之議者 必有任囂敎尉佗制七郡之計注+[釋義]秦二世時 南海尉任囂病 敎趙佗以制七郡之謀하다 按七郡 南海, 鬱林, 蒼梧, 合浦, 交趾, 九眞, 日南 是也하리니 王者 有分土하고 無分民注+[釋義]凡裂土以封諸侯하니 其受封者 各有分也 地志註 有分土者 謂立封疆也 無分民者 謂通往來하야 不常厥居하니 自適己事注+[釋義]謂宜自謀順適己身之事而已라하고 因授融爲凉州牧하다
지금 의논하는 자들 중에는 반드시 옛날 임효任囂위타尉佗에게 7을 제압하는 것을 가르쳐 준 계책注+[釋義]나라 이세황제二世皇帝 때에 남해위南海尉 임효任囂가 병들자, 조타趙佗에게 7을 제압하는 계책을 가르쳐 주었다. 7남해南海, 울림鬱林, 창오蒼梧, 합포合浦, 교지交趾, 구진九眞, 일남日南이 바로 이곳이다. 을 내는 자가 있을 것이니, 왕자王者는 땅을 나누어 분봉分封해 줌은 있고 백성을 나누어 줌은 없으니,注+[釋義]王者……無分民:무릇 땅을 나누어 제후를 봉해 주니, 봉지封地를 받은 자가 각각 땅을 나누어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땅을 나누어 줌이 있다는 것은 봉강封疆(국경)을 세움을 이르고, 백성을 나누어 줌이 없다는 것은 마음대로 왕래해서 그 거처가 일정하지 않음을 이른다.” 하였다. 스스로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할注+[釋義]자적기사自適己事는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순하고 맞는 일을 도모해야 함을 이른다. 뿐이다.” 하고는 인하여 두융竇融양주목凉州牧에 제수하였다.
璽書至河西하니 河西皆驚하야 以爲天子明見萬里之外라하더라
새서璽書하서河西에 이르니, 하서河西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이르기를 “천자天子만리萬里 밖까지 밝게 내다본다.” 하였다.
〈出竇融傳〉
- 《후한서後漢書 두융전竇融傳》에 나옴 -
○ 張步聞耿弇至하고 使其將軍歷下注+[釋義]地理志 歷下古城 枕泰山之麓하야 極爲雄壯하고 又襟帶濟水하고 又分兵屯祝阿注+[原註]註見周烈王六年이라하고 別於泰山, 鍾城 列營數十하야 以待之어늘 渡河하야 先擊祝阿拔之하다
장보張步경엄耿弇이 쳐들어온다는 말을 듣고는 장수로 하여금 역하歷下注+[釋義]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역하歷下의 옛 성이 태산泰山 기슭을 베고 있어서 지극히 웅장하고, 또 제수濟水를 띠처럼 두르고 있다.” 하였다. 에 주둔하게 하고, 또 군대를 나누어 축아祝阿注+[原註]축아祝阿 열왕烈王 6년조年條(B.C.370)에 보인다. 에 주둔한 다음 별도로 태산泰山종성鍾城에 수십 개의 진영陣營을 나열하여 대기하게 하였는데, 경엄耿弇황하黃河를 건너 먼저 축아祝阿를 공격하여 함락하였다.
張步都劇이라
이때 장보張步극현劇縣에 도읍하였다.
至臨淄城하야 出不意하야 半日 拔之하고 入據其城하야 以激怒步러니
경엄耿弇임치성臨淄城에 이르러 이 예상치 못했을 때에 출격하여 반나절 만에 함락하고, 들어가 그 을 점거하여 장보張步를 격노케 하였다.
步兵二十萬 至臨淄大城東하야 將攻弇이어늘 大破之하다
장보張步의 군사 20만이 임치臨淄의 큰 동쪽에 이르러 경엄耿弇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경엄耿弇이 이들을 대파大破하였다.
是時 帝在魯注+[釋義]州曲阜縣 古魯國也 括地志 故〈魯〉城 今兗州許昌縣南四十里 本魯之이라러니 聞弇爲步所攻하고 自往救之할새
이때 황제가 注+[釋義]지금 연주兗州곡부현曲阜縣이 옛날 노국魯國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옛 노성魯城은 지금 연주兗州허창현許昌縣 남쪽 40리 지점이니, 본래 나라의 조숙읍朝宿邑이다.” 하였다. 지방에 있었는데, 경엄耿弇장보張步에게 공격당한다는 말을 듣고는 직접 가서 구원하려 하였다.
未至 陳俊 謂弇曰 劇虜注+[釋義] 張步都劇이라 呼爲劇虜 括地志 菑川劇縣故城 在靑州壽光南三十里兵盛하니 可且閉營休士하야 以須上來니이다
황제가 도착하기 전에 진준陳俊경엄耿弇에게 이르기를 “극현劇縣의 오랑캐注+[釋義]이때 장보張步에 도읍하였으므로 그를 불러 땅의 오랑캐라 한 것이다. 《괄지지括地志》에 “치천菑川 극현劇縣의 옛 성이 청주靑州 수광현壽光縣 남쪽 30리에 있다.” 하였다. 군대가 강성하니, 우선 영문營門을 닫고 군사들을 휴식시키면서 이 오시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였다.
弇曰 乘輿且到하시니 臣子當擊牛注+[釋義]謂以筐篚𣿍(漉)酒也하야 以待百官이어늘 反欲以賊虜遺君父耶아하고
경엄耿弇이 말하기를 “대가大駕가 장차 이르실 것이니, 신하들은 마땅히 소를 잡고 술을 걸러注+[釋義]시주釃酒는 소쿠리(용수)를 가지고 술을 거름을 이른다. 백관百官을 대접하여야 할 터인데, 도리어 저 오랑캐를 군부君父에게 남겨 드리고자 하는가?” 하고는
乃出兵大戰하야 自旦至昏 復大破之하니 殺傷 無數하야 溝塹 皆滿이라
마침내 출병하여 크게 싸워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하여 다시 대파하니, 장보張步의 군사 중에 죽거나 부상당한 자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아서 도랑에 모두 시신이 가득하였다.
知步困將退하고 豫置左右翼注+[釋義]旁引其騎하야 若鳥翼之爲也하야 爲伏以待之러니 人定注+[通鑑要解]日入而群動息故 謂之人定이라 步果引去어늘 復起兵縱擊하야 追至鉅昧水注+[釋義]鉅昧 水名이니 一名巨洋이라 按洋水 在靑州樂安國이라하니 八九十里 僵尸相屬하고 收得輜重二千餘兩하다
경엄耿弇장보張步가 곤궁하여 장차 후퇴하려 할 줄을 알고는 미리 좌익左翼우익右翼注+[釋義]좌우익左右翼은 곁에 기병들을 배치하여 새의 날개처럼 하는 것이다. 을 설치하고 매복하여 기다렸는데, 인정人定(오후 10시경)注+[通鑑要解]해가 지면 모든 움직임이 그친다. 그러므로 갑야甲夜를 일러 인정人定이라고 한다. 때에 장보張步가 과연 군대를 이끌고 떠나가자, 경엄耿弇은 다시 매복했던 군대를 일으켜 크게 공격해서 추격하여 거매수鉅昧水注+[釋義]거매鉅昧는 물 이름이니, 일명 거양巨洋이다. 살펴보건대 양수洋水청주靑州 악안국樂安國에 있다. 가에 이르니, 8, 90리에 죽은 시체가 서로 이어졌으며, 치중거輜重車 2천여 대를 거두어 얻었다.
步還劇後數日 車駕至臨淄하야 自勞軍할새 群臣 大會
장보張步극현劇縣으로 돌아간 뒤 며칠 만에 거가車駕임치臨淄에 이르러서 직접 군사들을 위로하였는데, 여러 신하들이 크게 모였다.
帝謂弇曰 昔 韓信 破歷下以開基러니 今將軍 攻祝阿以發迹하니 皆齊之西界
황제가 경엄耿弇에게 이르기를 “옛날 한신韓信역하歷下를 격파하여 기반을 닦았는데, 지금 장군이 축아祝阿를 공격하여 자취를 드러냈으니, 이는 모두 나라의 서쪽 지역이다.
功足相方이요이어늘 將軍 獨拔勍敵하니 其功 又難於信也로다
이 충분히 서로 비견할 만하고, 한신韓信은 이미 항복한 나라를 습격하였는데 장군은 홀로 강한 을 함락시켰으니, 그 한신韓信보다 더 어렵다.
또 옛날 전횡田橫역생酈生(酈食其)을 삶아 죽였는데, 전횡田橫이 항복하자 고제高帝위위衛尉(酈食其의 아우 역상酈商)에게 명하여 원수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으니, 장보張步가 전에 복륭伏隆을 죽였으나 만약 장보張步가 귀순해 온다면 내 마땅히 대사도大司徒(伏隆의 아들 복담伏湛)에게 명하여 그 원한을 풀게 할 것이니, 또 일이 더욱 서로 비슷하다.
將軍 前在南陽 建此하니 常以爲落落注+[釋義]猶疎闊也 一云言不相入也難合이러니 有志者事竟成로다
장군이 지난번 남양南陽에 있을 때에 이 큰 계책을 세웠는데 나는 항상 소활注+[釋義]낙락落落소활疎闊과 같은 뜻이니, 일설一說에는 “말이 서로 먹혀들지 않는 것이다.” 한다.하여 부합하기 어렵다고 여겼으나 뜻을 가지고 있는 자는 일이 끝내 이루어지는군요.” 하였다.
〈出弇傳〉
-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에 나옴 -
帝進幸劇할새 耿弇 復追張步하니 步犇平壽
황제가 전진하여 에 행차할 때에 경엄耿弇이 다시 장보張步를 추격하니, 장보張步평수平壽로 도망하였다.
蘇茂將萬餘人하야 來救之어늘 帝遣使하야 告步, 茂호되 能相斬降者 封爲列侯라하니 步遂斬茂하고 詣弇軍門降하다
소무蘇茂가 군사 만여 명을 거느리고 와서 구원하자, 황제가 사자使者를 보내어 장보張步소무蘇茂에게 고하기를 “상대방을 베고 항복하면 봉하여 열후列侯로 삼겠다.” 하니, 장보張步가 마침내 소무蘇茂를 목 베고 경엄耿弇군문軍門에 나와 항복하였다.
入據其城注+[通鑑要解]其城 卽平壽城也하니 尙十餘萬이요 輜重 七(十)[千]餘兩이라
경엄耿弇이 들어가 그 注+[通鑑要解]그 성은 곧 평수성平壽城이다. 을 점거하니, 병력이 아직 10여 만이고 치중거輜重車가 7천여 대였다.
皆罷遣歸鄕里하고 封步爲安丘注+[釋義]北海郡安丘縣이니 屬靑州하다
모두 파하여 향리鄕里로 돌려보내고 장보張步를 봉하여 안구安丘注+[釋義]안구安丘북해군北海郡 안구현安丘縣이니 청주靑州에 속하였다. 侯로 삼았다.
復引兵至城陽注+[釋義]地理志 濟陰郡南 有泰山城陽이라 括地志 本濮州雷澤縣하야 降五校餘黨하니 齊地悉平이어늘 振旅還京師하다
경엄耿弇이 다시 군대를 이끌고 성양城陽注+[釋義]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제음군濟陰郡 남쪽에 태산泰山 성양城陽이 있다.” 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본래 복주濮州뇌택현雷澤縣이 이곳이다.” 하였다. 에 이르러서 오교五校의 잔당을 항복시키니, 나라 땅이 모두 평정되었으므로 군대를 거두어 경사京師로 돌아왔다.
爲將 凡所平郡 四十六이요 屠城 三百이라 未嘗挫折焉이러라
경엄耿弇은 장수가 되어서 평정한 이 모두 46개이고 도륙한 이 300개였는데, 일찍이 전투에 패한 적이 없었다.
〈出弇步傳〉
- 《후한서後漢書 경엄전耿弇傳, 장보전張步傳》에 나옴 -
○ 初起太學하고 車駕還宮注+[頭註] 音旋이니 幸魯하여 祀孔子而還宮也幸太學하야 稽式古典하고 修明禮樂하니 煥然文物 可觀러라
○ 처음으로 태학太學을 일으키고 거가車駕(天子)가 궁중으로 돌아와注+[頭註]이 선이니, 지방에 거둥하여 공자孔子를 제사하고 궁중으로 돌아온 것이다.태학太學에 행차해서 옛날 법식을 상고하고 예악禮樂을 닦고 밝히니, 찬란하여 문물文物이 볼 만하였다.
〈出儒林傳〉
- 《후한서後漢書 유림전儒林傳》에 나옴 -
朱黼曰
주보朱黼가 말하였다.
帝方被甲躍馬하야 以平寇亂이어늘 乃首建學校하야 以復三代之盛하니 可謂得致治之本矣
“황제가 막 갑옷을 입고 말에 뛰어올라서 구란寇亂을 평정하였는데 마침내 먼저 학교를 세워서 삼대三代의 거룩함을 회복하였으니, 훌륭한 정치를 이룩하는 근본을 알았다고 이를 만하다.
終漢之衰토록 學校修設하야 儒士半天下하야 獨以淸議 扶持王室하야 姦夫大盜 環視九鼎注+[附註]禹收九州貢金하야 鑄九鼎하야 以象九州之物하니 乃三代傳國之寶 秦昭王取之하니 飛入泗水하고 餘八 入秦中이러니 始皇幷天下而蔑聞焉하니라而不敢動者 蓋權輿注+[頭註]始也 造衡自權始 造車自輿始故也於此歟인저
나라가 쇠하기까지 학교가 닦여지고 잘 베풀어져 유사儒士들이 천하의 반을 차지해서 홀로 청의淸議로써 왕실王室을 유지하여 간사한 지아비와 큰 도둑들이 구정九鼎(황제의 자리)注+[附註]임금이 구주九州에서 바친 쇠를 거두어 아홉 개의 솥[九鼎]을 만들어서 구주九州의 물건을 형상하니, 바로 삼대시대三代時代에 나라를 물려주는 보배였다. 뒤에 나라 소왕昭王이 이것을 취하니, 하나는 사수泗水로 날아 들어가고 나머지 여덟 개는 진중秦中으로 들여왔는데, 시황始皇이 천하를 겸병한 뒤로 알려진 것이 없다. 을 둘러보면서도 감히 동요하지 못한 것은 여기에서 시작되었을注+[頭註]권여權輿는 시초이니, 저울을 만들 때에는 저울대[權]부터 만들고, 수레를 만들 때에는 수레 바탕[輿]부터 만들기 때문이다. 것이다.”
[新增]尹氏曰
[新增]尹氏가 말하였다.
禮王制 王親視學하니 則學謂之視者古也
“《예기禮記》 〈왕제王制〉에 ‘왕이 직접 학교를 시찰한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학교를 시찰한다고 말한 지가 오래되었다.
自漢以來 則爲之幸矣러니 朱子特書曰 初起太學하고 帝還(旋)視之라하니 蓋亦推原古制也
나라 이래로 이것을 ‘’이라 말하였는데 주자朱子가 특별히 쓰기를 ‘처음 태학太學을 일으키고 황제가 환궁還宮하여 시찰했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또한 옛 제도를 미루어 근원한 것이다.
然則崇師重道之意 特嚴於一字之間하니 亦豈無所本歟
그렇다면 스승을 높이고 를 소중히 하는 뜻이 특별히 한 글자의 사이에서 엄격한 것이니, 또한 어찌 근본한 바가 없겠는가.”
馮異治關中하야 出入三歲 上林 成都注+[頭註]時異屯軍上林苑中이라 成都 言歸附者衆也 史記曰 三年成都
풍이馮異관중關中을 다스려서 출입한 지 3년 만에 상림원上林苑이 도읍을 이루었다.注+[頭註]이때 풍이馮異상림원上林苑에 군대를 주둔하였다. 도읍을 이루었다는 것은 귀부歸附한 자가 많음을 말한 것이다. 《사기史記》에 이르기를 “〈임금이 머무는 곳은〉 3년 만에 도읍을 이루었다.” 하였다.
人有上章言호되 異威權至重하니 百姓歸心하야 號爲咸陽王이라하야늘
어떤 사람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풍이馮異의 위엄과 권세가 지극히 중하니, 백성들의 마음이 그에게로 돌아가서 함양왕咸陽王이라고 부릅니다.” 하였다.
帝以章示異한대 異皇(惶)懼하야 上書陳謝어늘 詔報曰 將軍之於國家 義爲君臣이요 恩猶父子하니 何嫌何疑완대 而有懼意리오
황제가 이 글을 풍이馮異에게 보이자, 풍이馮異가 두려워하여 글을 올려 사례하니, 조서로 답하기를 “장군은 우리 국가에 있어서 의리는 군신간이요 은혜는 부자간과 같으니, 어찌 의심하고 혐의하여 두려워하는 뜻이 있는가?” 하였다.
〈出異傳〉
- 《후한서後漢書 풍이전馮異傳》에 나옴 -
○ 隗囂矜己飾智하야 이라
외효隗囂가 자신을 자랑하고 지혜가 있는 것처럼 꾸며서 언제나 자신을 서백西伯(文王)에게 견주곤 하였다.
其將王元 說囂曰 天水完富하고 士馬最强하니 請以一丸泥 爲大王하야 東封函谷關하리니 圖王不成이라도 其敝猶足以霸
그 장수 왕원王元외효隗囂를 설득하기를 “천수군天水郡은 완전하고 풍부하며 군사와 말이 가장 강하니, 제가 청컨대 한 줌의 진흙(소수의 병력)을 가지고 대왕大王을 위해서 동쪽으로 함곡관函谷關을 봉함할 것이니, 왕천하王天下를 도모하다가 이루지 못하더라도 그 종말에는 오히려 패자霸者가 될 수 있습니다.
要之컨대 魚不可脫於淵이니 神龍失勢 與蚯蚓同이니이다
요컨대 물고기는 깊은 못을 벗어나서는 안 되니, 신묘한 용이 형세를 잃으면 지렁이와 같습니다.” 하였다.
囂心然元計하야 雖遣子入侍注+[通鑑要解]囂聞劉永, 彭寵皆已破滅하고 乃遣長子恂하야 隨歙詣闕하니 帝以爲胡騎校尉하고 封鐫羌侯하니라 然負其險阨하야 欲專制方面이러라
외효隗囂가 마음속으로 왕원王元의 계책을 옳게 여겨서 비록 아들을 보내어 입시入侍하게 하였으나注+[通鑑要解]외효隗囂유영劉永팽총彭寵이 모두 이미 파멸되었다는 말을 듣고 마침내 장자長子 을 보내어 내흡來歙을 따라 대궐에 나오니, 황제가 호기교위胡騎校尉로 삼고 전강후鐫羌侯에 봉하였다. 지형의 험함을 믿고서 오로지 한 방면을 통제하고자 하였다.
〈出囂傳〉
- 《후한서後漢書 외효전隗囂傳》에 나옴 -
○ 是歲 詔徵處士太原周黨 會稽嚴光注+[頭註]本姓莊이니 避明帝諱하야 改姓이라 이라하야 至京師하니 入見할새 하고 自陳願守所志
○ 이 해에 명하여 처사處士태원太原주당周黨회계會稽엄광嚴光注+[頭註]엄광嚴光은 본래의 이니 명제明帝를 피하여 을 고친 것이다. 엄광嚴光일명一名 이다. 등을 불러 경사京師에 이르게 하니, 주당周黨이 들어와 뵐 적에 엎드리기만 하고 배알拜謁하지 않고는 스스로 뜻한 바를 지키기를 원한다고 말하였다.
博士范升 奏曰 伏見太原周黨 東海王良 山陽王成等 蒙受厚恩하야 使者三聘 乃肯就車하고 及陛見帝庭 不以禮屈하고 伏而不謁하며 偃蹇驕悍注+[釋義]偃蹇 驕傲貌 猛也하야 同時俱逝하니이다
박사博士 범승范升이 아뢰기를 “삼가 보니, 태원太原주당周黨동해東海왕량王良산양山陽왕성王成 등이 국가의 후한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사자使者가 세 번이나 초빙한 뒤에야 비로소 수레에 오르고, 섬돌에 미쳐 조정에서 뵐 적에 주당周黨로 자신을 굽히지 않고 엎드리기만 하고 배알拜謁하지 않았으며, 교만하고 사나워注+[釋義]언건偃蹇은 교만한 모양이다. 은 사나움이다. 동시에 함께 가버렸습니다.
黨等 文不能演義하고 武不能死君注+[釋義]言其武勇 不能爲君盡死節이라하고 釣采華名하야 庶幾三公之位하니
주당周黨 등은 의리義理를 부연하지 못하고 는 군주를 위하여 죽지 못하면서注+[釋義]무용武勇이 군주를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절개를 다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화려한 명예를 낚아 취하여 거의 삼공三公의 지위에 올랐으니,
坐雲臺之下注+[釋義] 讀作預 雲臺 在南宮하니 明帝永平三年 圖建武中名臣列將於其中하니라하야 考試圖國之道하야 不如臣言이어든 伏虛妄之罪
신은 원컨대 그들과 운대雲臺의 아래에 앉아서注+[釋義]로 읽는다. 운대雲臺남궁南宮에 있으니, 명제明帝 영평永平 3년에 건무建武 연간의 명신名臣들과 여러 장수들의 초상을 여기에 그렸다. 국가를 도모하는 방도를 고시考試해서 신의 말대로 저들이 형편없는 무리가 아니면 신이 허망한 죄를 받을 것이요,
而敢私竊虛名하야 誇上求高어든 皆大不敬이니이다
만일 제 말대로 저들이 감히 헛된 이름을 사사로이 도둑질하여 에게 과시하고 높아지기를 구한 것이라면 저들은 모두 크게 불경不敬한 것입니다.” 하였다.
書奏 詔曰 自古 明王聖主 必有不賓之士하니
글을 아뢰자 조서를 내리기를 “예로부터 명왕明王성주聖主는 반드시 빈객이 되지 않는 선비가 있었다.
伯夷, 叔齊注+[附註]孤竹君之二子 夷, 齊 諡也 黙氏 或曰墨氏 孤竹君 是殷湯所封이니 夷, 齊父 字子朝 伯夷 名元이니 或曰允이요 字公信이며 叔齊 名致 或曰智 字公達이라 伯叔 少長之字也 不食周粟하고 太原周黨 不受朕祿하니 亦各有志焉이라
백이伯夷숙제叔齊注+[附註]백이伯夷숙제叔齊고죽군孤竹君의 두 아들이니, 는 시호이다. 묵씨黙氏요 혹은 묵씨墨氏(墨胎氏)라고 한다. 고죽국孤竹國은 바로 나라 탕왕湯王이 봉한 것으로 고죽군孤竹君백이伯夷, 숙제叔齊의 아버지이니, 이름은 이고 자조子朝이다. 백이伯夷는 이름이 이니 혹은 이라 하고 공신公信이며, 숙제叔齊는 이름이 이니 혹은 라 하고 공달公達이다. 소장少長(연소한 자와 연장자)의 이다. 나라의 녹을 먹지 않았고 태원太原주당周黨의 녹을 받지 않았으니, 또한 각기 뜻이 있는 것이다.
其賜帛四十匹하야 罷之하라
그에게 비단 40필을 하사하여 돌려보내라.” 하였다.
帝少與嚴光同遊學이러니 及卽位物色訪之注+[釋義]畫象其人物顔色以訪求之하야 得於齊國하야 累徵乃至어늘
황제가 젊었을 때 엄광嚴光과 함께 유학遊學하였는데, 즉위하게 되자 엄광嚴光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나라에서 찾아내어注+[釋義]물색物色은 그 생김새와 얼굴 모습을 그려서 찾아 구한 것이다. 여러 번 부르니, 엄광嚴光이 비로소 왔다.
拜諫議大夫한대 不肯受하고하야 耕釣於富春山注+[釋義]新安志云 漢富春縣西 有富春山하니 이라 按嚴光傳컨대 耕於富春山이라하니 圖經 不載此山하고 但云 今名嚴陵山者 是其所耕處 嚴光 富陽人이요 耕於富春山하니 則嚴陵山〈卽富春山〉이 是無疑矣하야 以壽終於家하니라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임명하였으나 받으려 하지 않고 떠나가 부춘산富春山注+[釋義]신안지新安志》에 “나라 부춘현富春縣 서쪽에 부춘산富春山이 있으니, 뒤에 부양富陽으로 이름을 고쳤다.” 하였다. 《후한서後漢書》 〈엄광전嚴光傳〉을 살펴보면 “부춘산富春山에서 밭을 갈았다.” 하였는데, 《도경圖經》에 이 의 이름이 실려 있지 않고 다만 이르기를 “지금 엄릉산嚴陵山이라고 이름한 것이 그가 밭 갈았던 곳이다.” 하였다. 엄광嚴光부양富陽 사람이고 부춘산富春山에서 밭을 갈았으니, 그렇다면 엄릉산嚴陵山이 바로 부춘산富春山임이 의심할 나위가 없다. 가운데에서 밭 갈고 낚시질하여 천수天壽를 누리고 집에서 죽었다.
王良 後歷沛郡太守, 大司徒, 司直하니 在位恭儉하야 布被瓦器하고 妻子 不入官舍
왕량王良은 뒤에 패군태수沛郡太守대사도大司徒, 사직司直을 지냈는데, 지위에 있을 때에 공손하고 검소하여 삼베 이불을 덮고 질그릇을 사용하였으며 처자妻子들을 관사官舍에 들이지 않았다.
以病歸러니 一歲 復徵이어늘
뒤에 병 때문에 돌아갔는데, 같은 해에 다시 부름을 받았다.
至滎陽하야 疾篤하야 不任進道注+[釋義] 音壬이니 堪也 不堪登途也일새 過其友人한대 友人 不肯見曰
왕량王良상경차上京次 형양滎陽에 이르러 병이 심해져서 길에 오를 수가 없으므로注+[釋義]이 임으로 감당한다는 뜻이니, 길에 오름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친구를 방문하였는데, 친구가 만나려 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不有忠言奇謀하고 而取大位하야 何其往來屑屑不憚煩也오하고 遂拒之한대
“충성스러운 말과 뛰어난 계책이 있지 않으면서 높은 지위를 취하고서 어찌 그리도 자주 왕래하여 번거로움을 꺼리지 않는가?” 하고 마침내 거절하니,
良慙하야 自後 連徵不應하고 卒於家하니라
왕량王良이 부끄러워하여 이후로는 연이어 불러도 응하지 않고 집에서 죽었다.
[史略 史評]高平范氏曰
[史略 사평史評]高平范氏(范仲淹)가 말하였다.
非光武 不能遂子陵之高 非子陵이면 不能成光武之大也니라
광무제光武帝가 아니었다면 자릉子陵의 높은 절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요, 자릉子陵이 아니었다면 광무제光武帝의 큰 도량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本傳曰
후한서後漢書》 〈엄광전嚴光傳〉에 말하였다.
字子陵이니 少與光武 同遊學이러니 及光武卽位 乃變姓名하고 隱身不見하다
엄광嚴光자릉子陵이니, 젊어서 광무제光武帝와 함께 유학遊學하였는데, 광무제光武帝즉위卽位하자 엄광嚴光이 마침내 성명姓名을 바꾸고 몸을 숨겨 나타나지 않았다.
帝思其賢하야 乃令以物色訪之러니 齊國上言호되 有一男子被羊裘하고 釣澤中이라하야늘
황제는 그의 어짊을 생각하여 마침내 물색해서 찾게 하였는데, 뒤에 나라에서 상언上言하기를 ‘한 남자가 양가죽 갖옷을 입고 못 가운데에서 낚시질을 한다.’ 하였다.
帝疑其光하야 乃備安車玄纁注+[頭註] 淺絳色也 玄纁 天地之正色이니 幣帛之色이라하야 遣使聘之러니 三反而後
황제는 그가 엄광嚴光인가 의심하여 마침내 안거安車현훈玄纁注+[頭註]은 옅은 붉은색이다. 현훈玄纁천지天地정색正色이니 폐백幣帛의 색깔이다. 의 폐백을 갖추어서 사자使者를 보내 초빙하였는데, 세 번 갔다 돌아온 뒤에야 엄광嚴光이 이르렀다.
車駕卽日 幸其館하니 光臥不起어늘
거가車駕가 당일로 그가 머무는 관사館舍에 행차하니, 엄광嚴光이 누워서 일어나지 않았다.
帝卽其臥所하야 撫光腹曰 咄子陵
황제는 그가 누워 있는 곳으로 나아가 엄광嚴光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하기를 ‘아, 자릉子陵아.
不可相助爲理耶 光乃張目熟視曰 昔 唐堯著德 巢父洗耳하니 士故有志
서로 도와 정치를 할 수 없는가?’ 하니, 엄광嚴光이 마침내 눈을 크게 뜨고 한동안 자세히 들여다보다가 말하기를 ‘옛날에 당요唐堯을 드러냄에 소보巢父가 귀를 씻었으니, 선비는 본래 뜻이 있는 법입니다.
何至相迫乎잇가
어찌 내버려 두지 않고 서로 핍박함에 이르신단 말입니까.’ 하였다.
帝曰 子陵 我竟不能下汝耶아하고 於是 升輿歎息而去러니
황제가 말하기를 ‘자릉子陵아, 내가 끝내 너를 굴복시킬 수 없단 말인가?’ 하고는 이에 수레를 타고 탄식하며 돌아갔다.
復引光入하야 論道舊故하야 相對累日하고 因共偃臥할새 光以足加帝腹上이라
뒤에 다시 엄광嚴光을 불러 궐 안에 들어오게 해서 옛날 일을 논하고 말하여 여러 날 동안 상대하고, 인하여 함께 누워 잘 적에 엄광嚴光이 발을 황제의 배 위에 올려놓았다.
明日 太史奏호되 客星 犯御座甚急이러이다 帝笑曰 朕 故人嚴子陵으로 共臥爾로라
다음 날 태사太史가 아뢰기를 ‘객성客星어좌성御座星를 침범하여 몹시 급박하였습니다.’ 하니, 황제가 웃으며 말하기를 ‘이 옛 친구인 엄자릉嚴子陵과 함께 잤기 때문이다.’ 하였다.
除爲諫議大夫한대 不屈하고 乃耕於富春山하니 後人 名其釣處하야 爲嚴陵瀨焉이라하니라
엄광嚴光에게 간의대부諫議大夫를 제수하였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마침내 부춘산富春山에서 밭을 가니, 후세 사람들이 그가 낚시질하던 곳을 이름하여 엄릉뢰嚴陵瀨라 하였다.”
致堂管見曰
치당致堂(胡寅)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말하였다.
善哉
“훌륭하다.
光武嚴陵君臣之際也
광무제光武帝엄릉嚴陵의 군신간이여!
曰 光武於是時 當屯之初九하야 陽剛方亨이어늘 而能以貴下賤注+[頭註]屯之爲卦 震下坎上이라 當屯難時하야 以陽下陰하야 爲民所歸하니 侯之象也하고
고평高平범중엄范仲淹이 논하기를 ‘광무제光武帝는 이때에 둔괘屯卦초구효初九爻를 당하여 양강陽剛이 막 형통하였는데 귀한 사람으로서 천한 사람에게 낮추었고,注+[頭註]둔괘屯卦이 아래에 있고 이 위에 있다. 어려운 때를 당하여 으로 에게 낮추어 백성들이 귀의歸依하는 바가 되었으니, 왕후王侯이다.
子陵於是時 當蠱之上九하야 衆方有爲어늘 而獨不事王侯注+[頭註]蠱之爲卦 巽下艮上이라 事也 上九 以剛明之才 無應援而處事之外하야 無所事之地 賢人君子不遇於時而高潔自守하여 不累於世務者也하니
자릉子陵은 이때에 고괘蠱卦상구효上九爻를 당하여 여러 사람들이 막 훌륭한 일을 하였는데 홀로 왕후王侯를 섬기지 않았으니,注+[頭註]고괘蠱卦이 아래에 있고 이 위에 있다. 는 일이니, 상구上九강명剛明재질才質응원應援이 없고 일의 밖에 처하여 일하는 바가 없는 자리이니, 이는 현인賢人군자君子가 세상을 만나지 못하여 고결함으로 스스로 지켜서 세상의 일에 얽매이지 않는 자이다.
非光武 不能遂子陵之高 非子陵이면 不能成光武之大也라하니라
광무제光武帝가 아니었다면 자릉子陵의 높은 절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고 자릉子陵이 아니었다면 광무제光武帝의 큰 도량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하였다.
有言曰 創業垂統與增光前烈之君 待遇臣下 其(體)[禮]雖一이나
선군자先君子(先親, 호안국胡安國을 가리킴)께서 말씀하기를 ‘창업하여 전통을 드리우고 전열前烈을 빛내는 군주가 신하를 대우할 적에 그 가 비록 똑같으나
然嚴威儼恪 常施於爪牙介冑之士하야 以折其驕悍難使之氣하고
위엄 있고 엄숙하고 삼감을 항상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쓰는 조아爪牙의 용사에게 베풀어서 그 교만하고 사나워 부리기 어려운 기운을 꺾었고,
柔巽謙裕 常施於林壑退藏之人하야 以厲其廉靖無求之節이라
유순하고 겸손하고 굽힘을 항상 임학林壑에 물러가 은둔하는 사람에게 베풀어서 청렴하고 안정하여 바람이 없는 절개를 장려하였다.
能駕馭人才하고 表正風俗이라
그러므로 능히 인재人才를 마음대로 부리고 풍속을 바로잡은 것이다.
漢高祖能立召田橫於海島之中이로되 而終身不能致四皓하고 世宗 踞見大將軍靑이로되 而不冠則不見汲黯하고 光武制御功臣 不少假借로되 而詔徵處士嚴光等하야 或陛見帝廷할새 伏而不謁하고 或使者再聘호되 不肯就車
나라 고조高祖전횡田橫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