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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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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丁卯]永嘉元年이라 〈漢元熙四年이라
영가永嘉 원년元年(정묘 307) - 나라 원희元熙 4년이다. -
以琅琊王睿注+[附註]卽東晉元帝也 有牛繼馬後之謠하니 司馬懿忌牛氏하야 酖其將牛金이러니 懿曾孫琅琊恭王覲之妃夏侯氏 通小吏牛氏而生元帝하니 姓冒司馬氏하고 都建業하다 秦時 者 言五百年後 金陵有天子氣라하니 始皇 東遊而壓之하고 改其地曰秣陵이라하고 塹北山而絶其勢하다 後四百三十七年 孫權稱帝하고 自謂當之러니 至元帝하야 乃五百二十六年이니 其言乃驗이라 此云牛金所生 未詳이라[通鑑要解]琅琊王睿 宣帝懿之曾孫이니 是爲東晉元帝 爲安東將軍하야 都督揚州하고 鎭建業하다
낭야왕琅琊王 사마예司馬睿注+[附註][附註]琅琊王 사마예司馬睿는 바로 동진東晉원제元帝이다. 처음에 소[牛]가 말[馬]의 뒤를 잇는다는 동요가 있으니, 사마의司馬懿우씨牛氏를 꺼려 그 장수 우금牛金을 독약을 먹여 죽였다. 그런데 사마의司馬懿증손曾孫낭야공왕琅琊恭王 사마근司馬覲하후씨夏侯氏가 아전인 우씨牛氏와 간통하여 원제元帝를 낳으니, 거짓으로 사마씨司馬氏을 칭하고 건업建業에 도읍하였다. 나라 때에 운기雲氣를 관찰하는 자가 말하기를 “500년 뒤에 금릉金陵에 천자의 기운이 있을 것이다.” 하니, 시황제始皇帝가 동쪽 지방에 가서 이 기운을 누르고 그 지명을 말릉秣陵이라고 고쳤으며 북산에 참호를 파서 산세를 끊었다. 437년 뒤에 손권孫權이 황제를 칭하고 자신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말하였는데, 원제元帝 때가 바로 526년이었으니 그 말이 비로소 맞았다. 여기에서 우금牛金의 소생이라고 말한 것은 미상未詳이다. [通鑑要解]琅琊王 사마예司馬睿선제宣帝 사마의司馬懿증손曾孫이니, 바로 동진東晉원제元帝이다. 안동장군安東將軍으로 삼아 양주揚州도독都督하고 건업建業진주鎭駐하게 하였다.
睿以安東司馬王導 爲謀主하야 推心親信하고 每事咨焉이러라
사마예司馬睿안동사마安東司馬 왕도王導모주謀主로 삼아 마음을 미루어 친애하고 신임하였으며 매사를 자문하였다.
睿名論注+[釋義]名譽議論也素輕하야 吳人不附하야 居久之로되 士大夫莫有至者하니 導患之러라
사마예司馬睿는 명성과 의론注+[釋義]명론名論은 명예와 의론이다. 이 평소 가벼워서 나라 사람들이 따르지 않아 오랫동안 머물러도 사대부士大夫들이 찾아오는 자가 없으니, 왕도王導가 이를 염려하였다.
睿出觀注+[附註]禊者 潔也 鄭國之俗 以上巳采蘭芷하야 跋除不祥하니라 漢禮儀志 三月上巳 官民皆潔於東流水上하야 洗去宿垢하니 祭名이라[通鑑要解]禊 胡計切이니 祓除不祥也 除惡祭名이니 三月上巳 臨水祓除不祥也어늘 導使睿乘하야 具威儀하고 導與名勝으로 皆騎從注+[通鑑要解] 奇寄切이요 才用切이니 竝去聲이라 跨馬曰騎 平聲이요 馬軍則騎 去聲이라 就也, 順也則平聲이요 隨行也則去聲이라하니 紀瞻, 顧榮等 見之驚異하야 相帥拜于道左러라
마침 사마예司馬睿注+[附註][附註]禊는 깨끗함이다. 나라 풍속은 상사일上巳日난초蘭草지초芷草를 캐어 불길한 것을 제거하였다. 《후한서後漢書》 〈예의지禮儀志〉에 “3월 상사일上巳日에 관원과 백성들이 모두 동쪽으로 흐르는 물가에서 깨끗이 씻어 묵은 때를 제거하니, 은 제사 이름이다.” 하였다. [通鑑要解]는 胡計切(혜)이니 불길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나쁜 것을 제거하는 제사 이름이니, 3월 상사일上巳日에 물가에 임하여 불길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다. 를 구경하러 나가자, 왕도王導사마예司馬睿로 하여금 (가마)를 태워 위의(儀仗)를 갖추게 하고, 자신은 유명 인사들과 함께 모두 기병을 데리고 뒤따르니,注+[通鑑要解]는 奇寄切(기)이요 은 才用切(종)이니 모두 거성去聲이다. 말을 탄다는 뜻의 기자騎字평성平聲이고 마군馬軍(騎兵)이라는 뜻의 기자騎字거성去聲이다. 은 나아가다, 따르다의 뜻일 때에는 평성平聲이고, 수행隨行한다는 뜻일 때에는 거성去聲이다. 기첨紀瞻고영顧榮 등이 이것을 보고 놀랍고 신기하게 여겨 서로 이끌고 가서 길가에서 절하였다.
導因說睿曰 顧榮, 賀循 此土之望이라
왕도王導가 인하여 사마예司馬睿를 설득하기를 “고영顧榮하순賀循은 이 지방의 명망 있는 사람입니다.
宜引之하야 以結人心이니 二子旣至 則無不來矣리이다
마땅히 이들을 나오게 하여 인심을 맺어야 하니, 두 사람이 이르고 나면 오지 않는 자가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睿乃使導 躬造循, 榮하니 二人 皆應命而至
사마예司馬睿가 마침내 왕도王導로 하여금 몸소 하순賀循고영顧榮을 찾아가게 하니, 두 사람이 모두 명령에 응하여 왔다.
循爲吳國內史하고 榮爲軍司하야 加散騎常侍하고 凡軍府政事 皆與之謀議하고
하순賀循오국내사吳國內史로 삼고 고영顧榮군사軍司로 삼아 산기상시散騎常侍를 가하고 모든 군부軍府의 정사를 모두 그들과 모의하였다.
又以紀瞻으로 爲軍祭酒注+[通鑑要解]官名이니 在官之長也 賓客得主人饌이면 則老者一人 先擧酒하야 祭之 以祭酒爲稱也 沃也하고으로 爲從事하다
기첨紀瞻군좨주軍祭酒注+[通鑑要解]좨주祭酒는 관직명이니, 관원들 중에 우두머리이다. 빈객이 주인의 음식을 얻으면 늙은 사람 한 명이 먼저 술을 들어 (고수레)한다. 그러므로 좨주祭酒라고 칭한 것이다. 는 술을 붓는 것이다. 로 삼고 변곤卞壼종사從事로 삼았다.
王導說睿하야 謙以接士하고 儉以足用하고 以淸淨爲政하고 撫綏新舊注+[頭註] 謂自中原來者 謂江東人이라
왕도王導사마예司馬睿를 설득하여 겸손함으로 선비들을 대하고 검소함으로 재용을 풍족하게 하며 청정淸淨함으로 정사를 다스리고 중원中原에서 강을 건너온 사람과 강동江東 지역의 옛 사람注+[頭註]새로운 사람은 중원中原으로부터 온 자를 이르고, 옛 사람은 강동江東 사람을 이른다. 을 어루만지고 편안하게 하였다.
江東 歸心焉하니라
그러므로 강동江東의 민심이 돌아왔다.
○ 十一月 以王衍爲司徒하다
○ 11월에 왕연王衍사도司徒로 삼았다.
說太傅越曰 朝廷 危亂하니 當賴方伯이라
왕연王衍태부太傅 사마월司馬越을 설득하기를 “조정이 위태롭고 혼란하니, 마땅히 방백方伯에게 의뢰하여야 합니다.
宜得文武兼資以任之라하야
문무文武를 겸비한 인재를 찾아서 맡겨야만 합니다.”라고 하여
乃以弟澄으로 爲荊州都督하고 族弟敦으로 爲靑州刺史하고 語之曰
마침내 아우인 사마징司馬澄형주도독荊州都督으로 삼고 족제族弟사마돈司馬敦청주자사靑州刺史로 삼고는 이들에게 말하기를
荊州 有江, 漢之固하고 靑州 有負海之險하니 卿二人在外하고 而吾居中이면 足以爲三窟注+[通鑑要解] 穴也 俗云 兎營三窟하니 必背丘相通이라하니 所謂兎三窟矣라하니라
형주荊州양자강揚子江한수漢水의 험고함이 있고 청주靑州는 바다를 뒤에 등진 험준함이 있으니, 두 사람이 밖에 있고 내가 중앙에 있으면 충분히 세 개의 굴注+[通鑑要解]은 구멍이다. 속담에 이르기를 “토끼는 세 개의 굴을 파는데, 반드시 언덕을 등지고 서로 통하게 한다.”라고 하였으니, 이른바 ‘토끼가 세 개의 숨는 굴을 파놓는다.’는 것이다. 이 될 수 있다.” 하였다.
역주
역주1 望氣 : 方士들이 점치는 방법의 일종으로, 雲氣를 관찰하여 吉凶을 예측한다.
역주2 : 계
역주3 : 여
역주4 : 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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