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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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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癸丑]元朔元年이라
원삭元朔 원년元年(계축 B.C.128)
詔曰 朕 深詔執事하야 興廉擧孝하야 庶幾成風하야 紹休聖緖注+[原註] 業也注+[通鑑要解] 美也 業也 言紹先聖之休緖러니
겨울에 조서를 내리기를 “짐이 집사執事들에게 간곡히 명하여 청렴한 자를 기용하고 효도하는 자를 천거해서 거의 풍속을 이루어 아름답고 성스러운 기업基業을 이으려고 하였다.注+[原註]이다.注+[通鑑要解]는 아름다움이고 이니, 옛 성인聖人의 아름다운 전통을 이음을 말한 것이다.
夫十室之邑 必有忠信이어늘 今或至闔郡而不薦一人하니 化不下究하야 而積行之君子 壅於上聞也
열 집이 사는 고을에도 반드시 충신忠信한 자가 있는데, 지금 혹 온 에서 한 사람도 천거하지 않음에 이르렀으니, 이는 교화가 아래에 도달하지 못하여 훌륭한 행실을 쌓은 군자가 위로 알려지는 길이 막힌 것이다.
且進賢 受上賞하고 蔽賢 古之道也 其議二千石不擧者罪하라
또 어진 이를 등용하면 상등의 을 받고, 어진 이를 엄폐하면 현륙顯戮을 당함은 옛날의 이니, 이천석二千石으로서 천거하지 않은 자의 죄를 의논하라.” 하였다.
有司奏호되 不擧孝 不奉詔 當以不敬論이요 不察廉 不勝任이니 當免注+[通鑑要解]當以不敬論 謂其不勤求士報國이라 二千石 當率身化下하야 令親宰牧이어늘 無察賢人 爲不勝任也 孝與廉 待之有輕重故 法有輕重이라 罷其職也이니이다 奏可라하다
유사有司가 아뢰기를 “효도하는 자를 천거하지 않음은 조명詔命을 받들어 행하지 않은 것이니 마땅히 불경죄로 논해야 하고, 청렴한 자를 살피지 않음은 임무를 감당하지 못한 것이니 면직에 해당합니다.” 하니,注+[通鑑要解]不擧孝……當免:마땅히 불경죄로 논해야 한다는 것은 훌륭한 선비를 찾아 부지런히 나라에 보답하지 않음을 이른다. 이천석二千石은 마땅히 솔선하여 아랫사람들을 교화해서 재목宰牧(邑宰와 목사牧使)과 친근해야 하는데 어진 사람을 살피지 못함은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이 되는 것이다. 은 대우함에 경중이 있기 때문에 법에 경중이 있는 것이다. 은 그 직책을 파면하는 것이다. 아뢴대로 하라고 하였다.
〈出本紀〉
-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 나옴 -
東萊呂氏曰
동래여씨東萊呂氏가 말하였다.
漢之取士 隨時設目하니 蓋非一科
나라가 선비를 취함은 때에 따라 과목科目을 설치하였으니, 한 과목科目만이 아니었다.
其行之最久而得人爲多者 在學校則有明經하고 在郡國則有孝廉賢良茂才而已
그러나 시행한 지가 가장 오래고 인물을 많이 얻은 것은 학교에서는 명경明經이 있었고 군국郡國에서는 효렴孝廉현량賢良무재茂才가 있을 뿐이었다.
孝廉賢良 始於文帝하고 茂才明經 始於武帝하니 四者之科 終漢世不變하야 而公卿大夫 多由此途出이라
효렴孝廉현량賢良문제文帝 때에 시작되었고 무재茂才명경明經무제武帝 때 시작되었는데, 네 가지 과목科目한대漢代를 마치도록 변하지 않아서 공경公卿대부大夫들이 이 길로 많이 진출하였다.
이나 愚以爲碩大宏博之材 要非科目所能得이니 限人以科目之選이면 則其所得 豈復有異能之士哉
그러나 내가 생각하건대 위대하고 큰 재주는 요컨대 과목科目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인물을 선발할 때에 과목科目의 선발로 제한한다면 얻는 바가 어찌 다시 특이한 재능을 가진 선비가 있겠는가.
蓋明經 止於一藝하야 以射策注+[附註]射之言 投也 策者 書之於策也 爲難問疑義하야 書之於策하고 列置案上호되 不使彰顯이라가 有欲射者 隨其所得而釋之하야 以知優劣하니라爲甲乙하야 非有深探聖人之旨 賢良 止於對策注+[頭註]題問以政事經義하고 令各對之하야 而觀其文辭以定其高下也하야 或迂緩而不切하야 非有直言極諫之實이라
명경과明經科는 한 경서經書에만 그쳐 사책射策으로注+[附註]쏜다[射]는 말은 던진다는 뜻이고 은 책에 쓰는 것이니, 의심스러운 것을 논란하고 뜻을 물어서 이것을 책에 쓰고 책상 위에 나열해 놓되 드러나지 않게 했다가 이것을 맞히고자 하는 자가 있으면 그가 뽑아 얻은 바에 따라 해석하게 해서 우열優劣을 아는 것이다. 갑을甲乙의 등급을 정해서 성인聖人의 뜻을 깊이 탐구한 자가 있지 않고, 현량과賢良科대책對策에만注+[頭註]대책對策정사政事경의經義로써 출제하여 묻고 선비들로 하여금 각각 대답하게 한 다음 그 문장을 관찰하여 고하高下를 정하는 것이다. 그쳐 혹 우활하고 느려 절실하지 못해서 직언하고 극간하는 실제가 있지 않았다.
是以 業明經者 惟志於靑紫之得하고 對賢良者 或雜以申韓之言이라
이 때문에 명경明經을 공부한 자들은 오직 푸른색과 붉은색 관복을 얻는 데에 뜻을 두었고, 현량賢良으로 대책對策한 자들은 혹 신불해申不害한비자韓非子의 말을 섞어 쓰기도 하였다.
진탕陳湯무재茂才로 천거되었으나 아버지의 에 달려가지 않은 일이 있었고, 서숙徐淑효렴孝廉으로 천거되었으나 나이를 속였다는 비난을 면치 못하였다.
以科目取人이면 而得人若是하니 其有卓然不群之才出其中者 特幸耳
과목科目으로써 사람을 취하면 사람을 얻는 것이 이와 같으니, 이 중에 빼어나게 출중한 인재가 그 중에서 나오는 것은 다만 요행일 뿐이다.
雖然이나 漢猶不專倚於科目也
그러나 나라는 그래도 오로지 과목科目에만 의지하지는 않았다.
鄕里有推譽之公하고 而州郡有辟擧之召
향리鄕里에는 인재를 추천하여 칭찬하는 공정함이 있었고, 주군州郡에는 인재를 불러서 천거하는 제도가 있었다.
士之修於鄕者 雖不由科目以進이라도 而辟書踵門하고 選拔州縣하야 等而上之하야 與科目之士 同於擢用하니 此後世之所未講也니라
그러므로 시골에서 수행하는 선비들이 비록 과목科目을 따라 진출하지 않더라도 부르는 글이 집에 이르고 주현州縣에 선발되어서 차례로 올라가 과목科目으로 출신出身한 선비들과 똑같이 발탁 등용되었으니, 이는 후세에서 하지 못한 것이다.”
○ 李廣 召拜爲右北平太守하니 匈奴號曰 漢之飛將軍이라하고 避之數歲 不敢入右北平이러라
이광李廣을 불러 우북평태수右北平太守로 임명하니, 흉노匈奴가 이름하기를 ‘나라의 나는 장군將軍’이라 하고, 그를 피하여 몇 년 동안 감히 우북평右北平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出史記本傳〉
- 《사기史記 이장군열전李將軍列傳》에 나옴 -
○ 臨菑(淄)人主注+[釋義]主父 複姓이니 音甫, 嚴安 無終人徐注+[釋義]無終 燕郡邑이라 在蔚州蜚狐縣北七里하니 本春秋山戎國名이라 徐樂 姓名이니 索隱曰 樂 音岳이라 皆上書言事하다
임치臨菑 사람 주보언主父偃注+[釋義]주보主父복성複姓이니, 는 음이 보이다. 엄안嚴安무종無終 사람 서락徐樂注+[釋義]무종無終나라의 군읍郡邑이다. 울주蔚州 비호현蜚狐縣 북쪽 70리 지점에 있었으니, 본래 춘추시대春秋時代 산융국山戎國의 이름이다. 서락徐樂은 성명이니,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은 음이 악이다.” 하였다. 모두 글을 올려 정사를 말하였다.
遊齊, 燕, 趙하니 皆莫能厚遇하고 諸生 相與排擯不容하며 家貧하야 假貸 無所得이라
처음에 주보언主父偃, , 에 유세하였으나 모두 후대하는 이가 없었고, 제생諸生들이 서로 배척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집이 가난하여 재화를 빌리려 해도 빌릴 곳이 없었다.
乃西入關하야 上書闕下하야 朝奏 暮召入하니 所言九事 其八事 爲律令이요 一事 諫伐匈奴러라
이에 서쪽으로 관중關中(長安)에 들어가 대궐 아래에서 글을 올려 아침에 글을 아뢰자 저녁에 부름을 받고 들어가니, 그가 말한 아홉 가지 일 중에 여덟 가지 일은 율령律令에 관한 것이었고, 한 가지 일은 흉노를 정벌함을 간한 것이었다.
嚴安 上書言호되 今天下人民 用財侈靡하고
엄안嚴安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지금 천하의 백성들이 재물을 씀이 사치스럽고,
又今 徇南夷하고 朝夜郞注+[釋義]王氏曰 謂夜郞國來朝하고 降羌, 注+[原註] 侯國이니 在馬湖江이라 武帝使唐蒙으로 鑿石開道하야 以通南中하고 置犍爲郡이라[釋義] 羌與僰 竝西南夷 皆來降服이라 三苗 姜姓之別裔하고 略薉(穢)州注+[原註] 古穢字 貉(貊)也 本朝鮮之地러니 武帝滅之하고 置(滄)[蒼]海郡하니라[釋義] 凡言略地 謂行而取之也 薉州 是地名이라하야 建城邑하고 深入匈奴하야 燔其龍城注+[釋義]王氏曰 西胡皆事龍神이라 名大會處하야 爲龍城하니 在上谷郡北이라하니
또 지금 남쪽 오랑캐를 순행하고 야랑夜郞에게 조회 받고,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야랑국夜郞國이 와서 조회함을 이른다.” 를 항복시키고注+[原註]은 제후의 나라이니, 마호강馬湖江에 있다. 무제武帝당몽唐蒙으로 하여금 돌을 뚫고 길을 내어서 남중南中과 통하게 하고, 건위군犍爲郡을 설치하였다. [釋義]은 다 서남쪽의 오랑캐로, 모두 와서 항복하였다. 삼묘三苗이니, 강성姜姓의 별파 후손이다. 예주薉州를 침략하여注+[原註]고자古字이니, 예맥穢貊이다. 본래 조선의 땅이었는데, 무제武帝가 멸하고 창해군蒼海郡을 설치하였다. [釋義] 무릇 약지略地라고 말한 것은 가서 취함을 말한다. 예주薉州는 바로 지명이다. 성읍城邑을 세우고, 흉노에 깊이 쳐들어가서 그 용성龍城을 불태웠으니,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서호西胡가 모두 용신龍神을 섬겼으므로 크게 모이는 곳을 이름하여 용성龍城이라 하였으니, 상곡군上谷郡의 북쪽에 있었다.”
人臣之利 非天下之長策也이니다
이는 신하들의 이익이지 천하의 장구한 계책은 아닙니다.” 하였다.
徐樂 上書言호되 天下之患 在於土崩하니 秦之末世是也
서락徐樂이 글을 올려 말하기를 “천하의 근심은 흙이 무너지는 것(民亂)에 있으니, 나라의 말세가 이것입니다.
間者 關東不登하야 民多窮困하고 重之以邊境之事注+[通鑑要解]七國反亂而境外無助하니 是爲瓦解하니 推數循理而觀之컨대 民不安者 土崩之勢也
근간에 관동關東 지방이 풍년이 들지 않아서 백성들이 곤궁한 자가 많고 변경邊境의 일까지注+[通鑑要解]칠국七國이 반란했을 때에 국경 밖에서 도와준 이가 없었으니, 이로써 와해된 것이다. 겹치니, 운수運數를 미루어 보고 이치를 따라 관찰하건대, 백성들이 편안하지 못함은 흙이 무너지는 형세입니다.
賢主獨觀萬化之原하고 明於安危之機하야 修之廟堂之上而銷未形之患也하나니 其要 期使天下無土崩之勢而已矣니이다
그러므로 어진 군주는 홀로 만화萬化의 근원을 관찰하고 안위安危의 기미에 밝아서, 묘당廟堂의 위에서 닦아 아직 드러나지 않은 우환을 사라지게 하니, 그 요점은 천하로 하여금 흙이 무너지는 형세가 없게 함을 기약할 뿐입니다.” 하였다.
〈以上出漢書本傳〉
- 이상은 《한서漢書 서락전徐樂傳》에 나옴 -
書奏 天子召見三人하고 謂曰 公等 安在완대 何相見之晩也오하고 皆拜爲郞中하다
글을 아뢰자, 천자天子가 세 사람을 불러 보고 이르기를 “ 등이 어디에 있었기에 어찌 서로 만나 봄이 늦었는가?” 하고, 모두 임명하여 낭중郎中으로 삼았다.
主父偃 尤親幸하야 一歲中 凡四遷하야 爲中大夫하니 大臣 畏其口하야 賂遺累千金이러라
주보언主父偃이 더욱 친애함과 총애를 받아서 한 해 안에 무릇 네 번 승진하여 중대부中大夫가 되니, 대신大臣들이 그의 입을 두려워하여 뇌물을 바친 것이 몇천 금이었다.
〈出史記本傳 文小異〉
- 《사기史記 주보언전主父偃傳》에 나오는데, 글이 조금 다름 -
역주
역주1 顯戮 : 죄가 있는 자를 사람들이 많이 모인 시장에서 죽이고 시체를 길거리에 버려 사람들에게 보임을 이른다.
역주2 陳湯擧茂材而有不奔父喪之事 : 陳湯은 字가 公山으로 山陽 瑕丘 사람이다. 富平侯 張勃이 陳湯의 재능을 훌륭하게 여겨 茂才로 천거하였는데, 陳湯은 승진을 기다리느라 아버지의 상에 달려가지 않았다. 이에 司藝가 진탕이 행실을 닦지 않았음을 아뢰자 하옥하여 논죄하게 하였고, 張勃은 천거를 잘못하였다 하여 200戶를 깎이고 죽은 뒤에 시호를 繆侯라 하였다.
역주3 徐淑擧孝廉而不逃冒年之責 : 徐淑은 字가 伯達로 廣陵 海西 사람이다. 처음에 尙書令 左雄이 건의하기를 “孝廉은 나이가 만 40세가 못 되면 천거할 자격을 얻지 못하나 만약 훌륭한 재주와 특이한 행실이 있다면 꼭 나이에 구애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는데, 廣陵에서 천거된 徐淑의 나이가 만 40이 못 되었으므로 臺郞이 힐책하자, 그는 대답하기를 “詔書에 顔回와 尹子奇와 같은 자는 나이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하였기에 本郡에서 臣을 선발하여 충당한 것이다.” 하니, 臺郞이 더이상 추궁하지 못하였다. 左雄이 힐책하기를 “顔回 같은 이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았는데, 孝廉은 하나를 들으면 몇이나 아는가?” 하자, 徐淑이 대답할 바를 모르니, 마침내 물리쳐 버리고 郡守는 면직되었다.
역주4 : 보
역주5 : 악
역주6 :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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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계축] 원삭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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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계축] 원삭원년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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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계축] 원삭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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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계축] 원삭원년 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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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계축] 원삭원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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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계축] 원삭원년 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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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계축] 원삭원년 75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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