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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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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戊辰] 〈梁太淸二年이요 魏大統十四年이요 東魏武定六年이라
무진(548) - 나라 태청太淸 2년이고, 나라 대통大統 14년이고, 동위東魏 무정武定 6년이다. -
侯景 與東魏戰敗하고 自求貶削이어늘 梁主以景兵新破라하야 未忍移易하고 卽以景爲南豫州牧한대
후경侯景동위東魏와 싸워 패전하고 스스로 직책을 낮출 것을 청하자, 양주梁主후경侯景의 군대가 처음으로 격파되었다 하여 차마 봉지를 옮기거나 바꾸지 못하고 곧 후경侯景남예주목南豫州牧으로 삼았다.
蕭介上表諫曰 竊聞凶人之性不移 天下之惡 一也라하니이다
소개蕭介표문表文을 올려 간하기를 “삼가 듣건대 흉악한 사람의 성품이 변하지 않는 것은 천하의 악한 사람이 똑같다고 하였습니다.
侯景 以凶狡之才 荷高歡卵翼之遇어늘墳土未乾 卽還反噬라가 逃死關西하니
후경侯景이 흉악하고 교활한 재주로 고환高歡의 품어주고 길러주는 우대를 입었는데, 고환高歡이 죽자 무덤의 흙이 채 마르기도 전에 즉시 고씨高氏를 배반하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관서關西 지방으로 피신하였습니다.
宇文不容이라 復投身於我니이다
그런데 우문태宇文泰가 그를 용납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우리 나라에 투신한 것입니다.
棄鄕國 如脫屣注+[釋義]履不躡跟曰屣(躧)니 脫之者 言易棄也하고 背君親 如遺芥하니 豈知遠慕聖德하야 爲江, 淮之純臣乎잇가 梁主不能用이러라
고국故國을 저버리는 것을 헌신짝처럼 여기고注+[釋義]신발을 발꿈치까지 신지 않은 것(신을 발끝에 꿰고 바삐 걷는 것)을 라고 하니, 이것을 벗는다는 것은 쉽게 버림을 말한다. 군주와 친척을 배반하는 것을 초개草芥처럼 여기니, 멀리서 폐하의 성덕聖德을 사모하여 (梁나라)의 충성스러운 신하가 되리라는 것을 어찌 알겠습니까.” 하였으나, 양주梁主가 그 말을 따르지 않았다.
○ 二月 東魏大將軍澄 遣書復求通好어늘
○ 2월에 동위東魏대장군大將軍 고징高澄나라에 편지를 보내어 다시 우호를 맺을 것을 청하였다.
梁主與朝臣議之하니 朱异, 張綰注+[頭註]朱异 右衛將軍이요 張綰 御史中丞이라 皆曰 靜寇息民 和實爲便이니이다
양주梁主가 조정의 신하들과 의논하니, 주이朱异장관張綰注+[頭註]주이朱异우위장군右衛將軍이고, 장관張綰어사중승御史中丞이었다. 등이 모두 말하기를 “병란兵亂을 종식시키고 백성들을 휴식하게 하는 데는 화친하는 것이 실로 상책입니다.” 하였다.
司農卿傅岐獨曰 高澄 何事須和리오
사농경司農卿 부기傅岐만이 홀로 말하기를 “고징高澄이 무슨 일로 화친하려 하겠습니까.
必是設間注+[頭註] 去聲이라하야 欲令侯景自疑 景意不安이면 必圖禍亂하리니
반드시 이간질注+[頭註]거성去聲(이간질하다)이다. 하는 계책을 써서 후경侯景으로 하여금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이니, 후경侯景은 마음이 불안해지면 반드시 반란을 도모할 것입니다.
若許通好 正墮其計中이니이다
만약 동위東魏와 우호를 맺기를 허락한다면 바로 그들의 이간질하는 술책에 빠지는 것입니다.” 하였다.
异等 固執宜和어늘 梁主亦厭用兵하야 乃從异言하니 果爲反計러라
주이朱异 등이 화친해야 한다고 굳이 고집하자, 양주梁主 또한 용병用兵하는 것을 싫어해서 마침내 주이朱异 등의 말을 따랐는데, 후경侯景이 과연 모반하려는 계획을 꾸몄다.
臨賀王正德注+[頭註]臨川王宏之子 所至 貪暴不法하야 屢得罪於梁主하니 由是 憤恨하야 陰養死士하고 儲米積貨하고 幸國家有變이러니
임하왕臨賀王 소정덕蕭正德注+[頭註]소정덕蕭正德임천왕臨川王 소굉蕭宏의 아들이다. 은 부임하는 곳마다 탐욕스럽고 포악하며 불법不法을 자행하여 양주梁主에게 자주 죄를 얻으니, 이로 말미암아 분하게 여기고 한하여 남몰래 결사대를 길렀으며 쌀을 비축하고 재화를 모으고서 국가에 변란이 생기기를 바랐다.
景知之하고 致牋於正德曰 今天子年尊 姦臣 亂國하야
후경侯景이 이것을 알고 소정덕蕭正德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지금 천자天子의 춘추가 높으시니 간신들이 나라를 어지럽히고 있습니다.
大王 屬當儲貳어늘 中被廢黜하니 四海業業하야 歸心大王이라
그리하여 대왕大王이 본래 저이儲貳(太子)가 되었어야 하는데 중간에 폐출당하니, 온 천하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대왕大王에게 민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景雖不敏이나 實思自效하노니 願王允副하소서
제가 비록 불민하나 실로 왕을 위하여 스스로 힘을 바칠 것을 생각하니, 바라건대 왕은 민심에 부응하소서.” 하였다.
正德 大喜曰 機事 在速이니 今其時矣로다
소정덕蕭正德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기를 “기밀의 일은 신속함에 달려 있으니, 지금이 바로 기회이다.” 하였다.
反於壽陽이어늘 梁主以臨賀王正德으로 爲平北將軍, 都督京師諸軍事하야 屯丹陽郡하다
후경侯景수양壽陽에서 반란하자, 양주梁主임하왕臨賀王 소정덕蕭正德평북장군平北將軍도독경사제군사都督京師諸軍事로 삼아서 단양군丹陽郡에 주둔하게 하였다.
正德 遣大船數十注+[頭註] 音搔 船之總名이라하야 詐稱載荻이라하고 密以濟景한대
소정덕蕭正德이 큰 배 수십 척注+[頭註]는 음이 소이니, 배의 총칭이다. 을 보내면서 갈대를 실어 온다고 속이고는 은밀히 후경侯景을 건네 주었다.
景自橫江으로 濟于采石하니 有馬數百匹 兵八千人이러라
후경侯景횡강橫江으로부터 채석采石으로 건너오니, 군마軍馬가 수백 필이요 병사가 8천 명이었다.
至慈湖하니 是時 梁興四十七年 境內無事하야 公卿在位及閭里士大夫 罕見兵甲이러니 賊至猝迫하니 公私駭震이라
자호慈湖에 이르니, 이때는 나라가 건국한 지 47년이었는데, 나라 안이 평안하고 무사하여 벼슬자리에 있는 공경公卿들로부터 여리閭里사대부士大夫들에 이르기까지 병기와 갑옷을 본 일이 드물었으므로 적이 갑자기 쳐들어오자 관원과 백성들이 놀라고 진동하였다.
正德 守宣陽門이라가 帥衆하고 於張侯橋 迎景入宣陽門하야 至闕下하다
소정덕蕭正德선양문宣陽門을 지키다가 군대를 거느리고 장후교張侯橋에서 후경侯景을 맞이하여 선양문宣陽門으로 들어와 대궐 아래에 이르렀다.
正德 卽皇帝位하다
소정덕蕭正德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역주
역주1 : 소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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