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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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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壬寅]八年이라 〈趙建武八年이라
함강咸康 8년(임인 342) - 나라 건무建武 8년이다. -
五月 帝不豫注+[頭註] 安也하니 帝二子注+[頭註]丕, 奕이라皆在襁褓
5월에 황제가 편찮으니注+[頭註]는 편안함이다. 황제의 두 아들注+[頭註]두 아들은 사마비司馬丕사마혁司馬奕이다. 이 모두 강보에 싸여 있었다.
庾冰注+[通鑑要解]中書監이라 說帝以國有彊敵注+[通鑑要解]漢, 趙也하니 宜立長君이라하야 請以同母弟琅邪王岳爲嗣한대 帝許之하다
유빙庾冰注+[通鑑要解]유빙庾冰중서감中書監이다. 이 황제를 설득하기를 “나라 안에 강한 적注+[通鑑要解]강한 적은 나라와 나라이다. 이 있으니, 나이가 많은 군주를 세워야 한다.” 하여 동모제同母弟낭야왕琅邪王 사마악司馬岳을 후사로 삼을 것을 청하였는데,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成帝頗務簡約하니 雄武之度 雖有慊於前王이나 而恭儉之德 足追蹤於往烈이요 又能敬禮故老大臣하야 有足稱者
성제成帝는 자못 간소함과 검약함을 힘썼으니, 웅무雄武한 도량은 비록 전왕前王에 비해 부족함이 있었으나 공손하고 검소한 은 지나간 전열前烈을 충분히 뒤따를 수 있었으며, 또 원로대신元老大臣을 공경하고 예우하여 칭찬할 만한 점이 있었다.
惜乎 政出 賞刑顚錯하야 殺戮近親하고 貶黜舊傅
그런데 애석하게도 정사가 외숙外叔(庾亮)에게서 나와 상과 벌이 전도되고 잘못되어서 가까운 친척들을 살육하고 옛 사부師傅를 축출하였다.
則庾亮之專國擅權 可知矣
성제成帝가 겨우 여섯 살이었는데도 이미 힐문詰問하고 눈물을 흘렸으니, 그렇다면 유량庾亮이 국정을 독점하고 권력을 독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蘇峻 雖云狂悖 逆謀未彰이어늘 亮處置失宜하야 激成反狀하고 乃奉頭鼠竄하야 僥倖求免이라가 하고 遷帝石頭하니
소준蘇峻이 비록 광패狂悖하다고 하나 역모逆謀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유량庾亮이 잘못 조처하여 격발시켜서 배반하는 상황을 만들고는 도리어 머리를 받들고 쥐처럼 도망하여 요행으로 화를 면하기를 바라다가 마침내 국모國母에게 근심을 끼치고 황제皇帝석두성石頭城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倘非溫嶠, 陶侃諸君子 戮力討賊하야 斬峻平亂이면 則社稷幾非晉有리니 嗚呼危哉로다
만일 온교溫嶠도간陶侃 등 여러 군자君子가 힘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해서 소준蘇峻을 목 베고 난리를 평정하지 않았다면 사직社稷이 거의 나라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니, 아! 위태롭다.”
○ 六月 帝崩하니 琅琊王 卽皇帝位하다
○ 6월에 황제가 하니, 낭야왕琅琊王이 황제에 즉위하였다.
역주
역주1 渭陽 : 外叔을 가리키는 말로, 《詩經》 〈秦風 渭陽〉에 “외숙을 전송하러 渭水 북쪽에 이르렀다.[我送舅氏 曰之渭陽]”라고 한 데서 유래하였다. 이 시는 春秋時代 秦나라 康公이 太子로 있을 적에 외삼촌인 晉나라 文公이 秦나라에 망명해 와 있었는데,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康公이 위수까지 배웅 나와 외삼촌을 이별하는 회포를 읊은 것이다.
역주2 帝僅六歲 已能詰問流涕 : 庾亮이 南頓王 司馬宗을 죽이자, 成帝가 묻기를 “白頭公이 어디에 있는가?” 하니, 庾亮이 대답하기를 “모반하다가 죽임을 당했습니다.” 하였다. 成帝가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기를 “외숙은 남이 반역했다고 말하고는 곧 그를 죽였으니, 만일 남들이 外叔이 반역했다고 말하면 어찌 해야 하는가?” 하니, 庾亮이 두려워 낯빛이 변하였다.
역주3 遂致遺憂國母 : 庾亮은 明帝의 皇后인 庾氏의 오라비이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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