五月
에 帝不豫
注+[頭註]豫는 安也라하니 帝二子
注+[頭註]丕, 奕이라皆在襁褓라
庾冰
注+[通鑑要解]中書監이라이 說帝以國有彊敵
注+[通鑑要解]漢, 趙也라하니 宜立長君
이라하야 請以同母弟琅邪王岳爲嗣
한대 帝許之
하다
成帝頗務簡約하니 雄武之度는 雖有慊於前王이나 而恭儉之德은 足追蹤於往烈이요 又能敬禮故老大臣하야 有足稱者라
惜乎
라 政出
에 賞刑顚錯
하야 殺戮近親
하고 貶黜舊傅
라
蘇峻
이 雖云狂悖
나 逆謀未彰
이어늘 亮處置失宜
하야 激成反狀
하고 乃奉頭鼠竄
하야 僥倖求免
이라가 하고 遷帝石頭
하니
倘非溫嶠, 陶侃諸君子의 戮力討賊하야 斬峻平亂이면 則社稷幾非晉有리니 嗚呼危哉로다
함강咸康 8년(임인 342) - 조趙나라 건무建武 8년이다. -
5월에 황제가 편찮으니
注+[頭註]예豫는 편안함이다. 황제의 두 아들
注+[頭註]두 아들은 사마비司馬丕와 사마혁司馬奕이다. 이 모두 강보에 싸여 있었다.
유빙庾冰注+[通鑑要解]유빙庾冰은 중서감中書監이다. 이 황제를 설득하기를 “나라 안에 강한 적
注+[通鑑要解]강한 적은 한漢나라와 조趙나라이다. 이 있으니, 나이가 많은 군주를 세워야 한다.” 하여
동모제同母弟인
낭야왕琅邪王 사마악司馬岳을 후사로 삼을 것을 청하였는데,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성제成帝는 자못 간소함과 검약함을 힘썼으니, 웅무雄武한 도량은 비록 전왕前王에 비해 부족함이 있었으나 공손하고 검소한 덕德은 지나간 전열前烈을 충분히 뒤따를 수 있었으며, 또 원로대신元老大臣을 공경하고 예우하여 칭찬할 만한 점이 있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정사가 외숙外叔(庾亮)에게서 나와 상과 벌이 전도되고 잘못되어서 가까운 친척들을 살육하고 옛 사부師傅를 축출하였다.
성제成帝가 겨우 여섯 살이었는데도 이미 힐문詰問하고 눈물을 흘렸으니, 그렇다면 유량庾亮이 국정을 독점하고 권력을 독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소준蘇峻이 비록 광패狂悖하다고 하나 역모逆謀가 아직 드러나지 않았는데, 유량庾亮이 잘못 조처하여 격발시켜서 배반하는 상황을 만들고는 도리어 머리를 받들고 쥐처럼 도망하여 요행으로 화를 면하기를 바라다가 마침내 국모國母에게 근심을 끼치고 황제皇帝를 석두성石頭城으로 옮기게 만들었다.
만일 온교溫嶠와 도간陶侃 등 여러 군자君子가 힘을 다하여 역적을 토벌해서 소준蘇峻을 목 베고 난리를 평정하지 않았다면 사직社稷이 거의 진晉나라의 소유가 아니었을 것이니, 아! 위태롭다.”
○ 6월에 황제가 붕崩하니, 낭야왕琅琊王이 황제에 즉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