將軍薄昭 殺漢使者
어늘 帝不忍加誅
하고 使公卿
으로 從之飮酒
하야 欲令自引分
注+[釋義]引分은 謂引刀〈決〉也라이러니 昭不肯
이라
李德裕以爲 漢文帝誅薄昭하니 斷則明矣나 於義則未安也라
秦康
이 送晉文
할새 興如存之感
注+[附註]興은 起也라 詩秦風渭陽에 康公之舅晉公子重耳 遭驪姬之難하야 出亡在外러니 秦穆公이 召而納之하니 是爲文公이라 時에 康公爲太子하니 母已卒이라 故康公이 送其舅할새 至于渭陽하야 而念母之不見也라하니 況太后尙存
이요 唯一弟薄昭
어늘 斷之不疑
는 非所以慰母氏之心也
라하니이다
臣愚以爲 法者는 天下之公器니 惟善持法者는 親疎如一하야 無所不行하나니 則人莫敢有所恃而犯之也라
夫昭雖素稱長者나 文帝不爲置賢師傅하고 而用之典兵하야 驕而犯上하야 至於殺漢使者하니 非有恃而然乎잇가
舅后之家는 但當養育以恩이요 而不當假借以權이니 旣觸罪法이면 又不得不害라하니
〈古人謂忠孝不兩全이요 恩義有相奪이라하니 非至論也라
忠孝恩義는 一理也니 不忠則非孝요 無恩則無義니 竝行而不相悖라
故로 或捐親以盡節하고 或舍君以全孝하나니 惟所當而已라
唐李衛公이 以爲漢文誅薄昭하니 斷則明矣나 義則未安이라하고
司馬溫公이 以爲法者는 天下之公器니 惟善持法者는 親疎如一하야 無所不行이라하니〉
義旣未安이면 則非明也요 有所不行이라도 豈害其爲公器哉아
蓋不得於義면 則非恩之正이요 害恩之正이면 則不得爲義矣라
使薄昭盜長陵土면 則太后雖不食而死라도 昭不可不誅也요 其殺漢使도 爲類亦有異焉하니 若昭有罪하야 命使往治昭어늘 執而殺之면 太后之心이 可傷也나 昭不可赦也어니와
后若必喪其生이면 則存昭以全后가 可也요 或與忿爭而殺之면 則貸昭以慰母心이 可也니 此之謂能權이라
蓋先王之制也에 八議設而后에 重輕得其宜하니 義豈有屈乎아
장군
박소薄昭가
한漢나라
사자使者를 죽이자, 황제가 차마
주륙誅戮을 가하지 못하고
공경公卿으로 하여금 그를 따라 술을 마시게 하고서 스스로 칼을 들어
注+[釋義]인분引分은 칼을 들어 자결함을 이른다. 자결하게 하고자 하였는데,
박소薄昭가 자결하려고 하지 않았다.
여러 신하들로 하여금 상복을 입고 가서 통곡하게 하자, 마침내 자살하였다.
이덕유李德裕가 말하기를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박소薄昭를 죽였으니, 결단함은 분명하였으나 의리에 있어서는 온당하지 못하다.
진秦나라
강공康公이
진晉나라
문공文公을 전송할 적에 〈외숙인
문공文公을 보고〉 어머니가 살아계신 듯한 감회를 일으켰으니,
注+[附註]흥興은 일으킴이다. 《시경詩經》 〈진풍秦風위양渭陽〉에 강공康公의 외삼촌인 진晉나라 공자公子중이重耳가 여희驪姬의 난을 만나서 진晉나라를 나와 도망하여 밖에 있었는데, 진목공秦穆公이 그를 불러서 본국으로 들여보내니 이가 문공文公이다. 이때 강공康公이 태자가 되었는데, 어머니가 이미 죽었었다. 그러므로 강공康公이 그 외삼촌인 문공文公을 전송할 적에 위양渭陽(渭水의 북쪽)에 이르러 어머니를 보지 못함을 생각한 것이다. 하물며
태후太后가 아직 생존하였고 오직 한 아우인
박소薄昭가 있었는데,
단죄斷罪하고 의심하지 않은 것은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아니다.’ 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신은 생각하건대 법이라는 것은 천하의 공공公共한 기물이니, 오직 법을 잘 유지하는 자는 친소親疎를 똑같이 대해서 법을 시행하지 않는 바가 없으니, 이렇게 하면 사람들이 감히 믿는 바가 있어 법을 범하지 못합니다.
박소薄昭가 비록 평소 장자長者라고 일컬어졌으나 문제文帝가 그를 위하여 어진 사부師傅를 두지 않고 등용하여 병권兵權을 맡게 해서 교만하여 윗사람을 범하여 한漢나라 사자使者를 죽이는 데까지 이르렀으니, 믿는 바가 있어 그러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또 따라서 사면해 준다면 성제成帝와 애제哀帝의 시대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위魏나라 문제文帝(曹丕)가 일찍이 한漢나라 문제文帝의 아름다움을 칭찬하였으나 박소薄昭를 죽인 것을 취하지 않고 말하기를
‘구후舅后(외삼촌과 후비后妃)의 집안은 다만 은혜로써 양육해야 할 것이요 권력을 빌려주어서는 안 되니, 이미 죄와 법을 저촉하면 또 살해하지 않을 수 없다.’ 하였는 바,
이는 문제文帝가 처음에 박소薄昭를 방한防閑(단속)하지 않음을 기롱한 것이니, 이 말이 도리에 맞습니다.
그렇다면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 자는 장차 처음에 삼가야 할 것입니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충忠과 효孝는 둘 다 온전히 할 수가 없고, 은恩과 의義는 서로 빼앗는 경우가 있다.’ 하였으니, 이는 지극한 의논이 아니다.
충忠과 효孝, 은恩과 의義는 똑같은 이치이니, 충성스럽지 못하면 효孝가 아니고 은恩이 없으면 의義가 없으니, 이 두 가지는 아울러 행해지고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혹 어버이를 버리고 군주에게 충절을 다하기도 하고, 혹 군주를 버리고 어버이에게 효孝를 온전히 하기도 하니, 오직 마땅하게 할 뿐이다.
당唐나라 이위공李衛公(李德裕)이 이르기를 ‘한漢나라 문제文帝가 박소薄昭를 죽였으니, 결단함은 분명하였으나 의리에 있어서는 온당치 못하다.’ 하였고,
사마온공司馬溫公이 이르기를 ‘법은 천하의 공공公共한 기물이니, 오직 법을 잘 유지하는 자는 친소親疎를 똑같이 대해서 법을 시행하지 않는 바가 없다.’ 하였으니,
두 분은 모두 한 가지만을 고집한 의논이니 의義를 다하지 못하였다.
의義가 이미 온당치 못하다면 분명한 것이 아니요, 행해지지 못하는 바가 있더라도 어찌 공공公共한 기물이 됨에 해롭겠는가.
의義에 맞지 않으면 은혜의 올바른 것이 아니요, 은혜의 올바름을 해치면 의義가 될 수 없다.
가령 박소薄昭가 장릉長陵의 흙을 도둑질했다면(長陵을 도굴했다면) 태후太后가 비록 밥을 먹지 않고 죽더라도 박소薄昭를 처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요, 한漢나라 사자使者를 죽인 것도 종류에 또한 차이가 있으니, 만일 박소薄昭가 죄가 있어서 문제文帝가 사자使者에게 명하여 가서 박소薄昭의 죄를 다스리게 하였는데 박소薄昭가 사자使者를 잡아서 죽였다면 태후太后의 마음이 슬퍼할 만하나 박소薄昭를 용서해 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태후太后가 만약 반드시 생명을 버리려고 한다면 박소薄昭를 살려두어 태후太后를 온전히 하는 것도 괜찮으며, 혹 분노하여 다투다가 사자使者를 죽였다면 박소薄昭를 용서하여 어머니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도 괜찮으니, 이를 일러 저울질을 잘한다고 하는 것이다.
선왕先王의 제도에 팔의八議를 베푼 뒤에 경중輕重이 마땅함을 얻었으니, 의義가 어찌 굽힘이 있겠는가.
법은 의義를 주장하니, 의義가 마땅한데 법을 굽혔다고 말하는 것은 법을 알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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