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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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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戌]元年이라
원년元年(임술 B.C.179)
有司請蚤(早)建太子曰 豫建太子 所以重宗廟社稷하고 不忘天下也
유사有司가 일찍 태자를 세울 것을 청하여 아뢰기를 “미리 태자를 세움은 종묘와 사직을 중히 여기고 천하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古者 殷, 周有國 治安 皆千餘歲 니이다
옛날 나라와 나라가 나라를 소유함에 다스려지고 편안함이 모두 천여 년이었던 것은 이 방법을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今子啓最長하고 純厚慈仁하니 請建以爲太子하노이다 乃許之하다
지금 아들 가 가장 나이가 많고 순후純厚하고 인자仁慈하니, 세워서 태자로 삼을 것을 청합니다.” 하니, 이에 허락하였다.
〈本紀〉
-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에 나옴 -
[新增] 東萊曰
동래東萊(呂祖謙)가 말하였다.
按景帝紀注하면 景帝年三十二 卽位하니 然則文帝之元年 景帝方十歲로되
“《한서漢書》 〈경제기景帝紀〉의 를 살펴보면 경제景帝가 32세에 즉위卽位하였으니, 그렇다면 문제文帝원년元年경제景帝가 막 10세가 되었을 때였다.
而平勃所以亟請建太子者 懲惠帝繼嗣不明之禍也
그런데 진평陳平주발周勃이 급히 태자太子를 세울 것을 청한 이유는 혜제惠帝계사繼嗣를 분명히 하지 않은 잘못을 징계하려 해서였다.
蓋踐祚之始 懼不克勝이니 所言 皆發於中心이요 非好名也니라
문제文帝가 굳이 사양한 이유는 즉위한 초기에 감당하지 못할까 두려워해서였으니, 말한 내용이 모두 진심에서 나온 것이고 명예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漢書本紀曰
한서漢書》 〈문제기文帝紀〉에 말하였다.
三月 詔曰 方春和時 草木群生之物 皆有以自樂호되 而吾百姓寡孤獨困窮之人 或阽(墊)於危亡 而莫之省憂하니 爲民父母하야 將何如
“3월에 조서詔書를 내리기를 ‘바야흐로 봄이 화창할 때여서 초목과 여러 생물들이 모두 스스로 즐거워함이 있으나, 우리 백성 중에 홀아비와 과부와 고아와 독신자와 곤궁한 사람은 혹 위태롭고 멸망함에 빠져도 보살피고 근심해 주는 이가 없으니,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장차 어찌하겠는가?
其議所以振貸注+[頭註] 起也 振救振贍義皆同이라 今俗作賑 非也하라
구휼할注+[頭註]은 일어남이니, 진구振救진섬振贍은 뜻이 모두 같다. 지금 세속에서 으로 씀은 잘못이다. 바를 의논하라.’ 하였다.
又曰 老者 非帛不煖이요 非肉不飽
또 조서를 내리기를 ‘늙은 자는 비단옷이 아니면 따뜻하지 않고 고기가 아니면 배부르지 않다.
今歲首注+[釋義]今歲首 句絶이라 春者 歲之首 不時使人存問長老注+[釋義]言不卽於此歲首 時遣使者하야 存問年長老人이라호되 八十已上 賜米肉하고 九十已上 賜帛各二匹, 絮三斤하고 盡除收孥注+[釋義]注見周顯王十年하니라相坐律하라
지금은 연초年初(新年의 초기)이니,注+[釋義]금세수今歲首에서 를 뗀다. 봄은 한 해의 처음이다. 연초年初뿐만 아니라〉 때없이 사람을 시켜 장로長老를 찾아가 안부를 묻되注+[釋義]세수歲首뿐만 아니라 때로 사자使者를 보내어서 나이가 많은 노인을 존문存問함을 말한 것이다. 80세 이상은 쌀과 고기를 하사하고, 90세 이상은 비단 각 2필과 솜 3근을 하사하며, 처자식을 거두어注+[釋義]수노收孥주현왕周顯王 10년조年條에 보인다. 서로 연좌하는 법률을 모두 제거하라.’ 하였다.”
○ 時 有獻千里馬者어늘 帝曰 鸞旗注+[釋義]師古曰 編以羽毛하야 列繫幢旁하고 載於車上 謂之鸞旗 車駕出이면 則陳於道而先行이라 通作鑾이라 說文 人君乘車 駟馬鑣, 八鑾鈴하야 象鸞鳥聲하니 馬動則鑾鳴以應行節이라 崔氏云 衡上金雀者 朱鳥也 口銜鈴이라하야 謂之鑾이라在前하고 屬車注+[釋義]王氏曰 古者諸侯貳車九乘이러니 秦滅九國하고 兼其車服이라 故大駕屬車八十〈一〉乘이요 法駕半之 屬車 皁蓋赤裏(木)[朱]轓戈矛弩箙 尙書御史所載 最後一車 縣(懸)豹尾하니라 相連屬也在後하야
이때에 천리마千里馬를 바치는 자가 있었는데, 황제가 말하기를 “난기鸞旗注+[釋義]안사고顔師古가 말하였다. “깃털과 털을 엮어서 깃발 옆에 나열하여 매고 수레 위에 싣고 다니는 것을 난기鸞旗라 하니, 거가車駕가 출행하면 길에 늘어놓아 먼저 간다.” 하였다. 과 통용한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임금이 타는 수레는 말 재갈이 4개이고 방울이 8개여서 난새 소리를 형상하니, 말이 움직이면 방울이 울려 수레가 가는 절도節度에 응한다.” 하였고, 최씨崔氏(崔豹의 《고금주古今注》)가 말하기를 “오로五路의 멍에 위의 금참새가 주조朱鳥이니, 입에 방울을 물고 있다 하여 이라 이른다.” 하였다. 앞에 있고 뒤따르는 수레는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옛날에 제후諸侯이거貳車(副車)가 9이었는데, 나라가 구국九國을 멸망시키고 수레와 복식服飾을 겸하였다. 그러므로 대가大駕촉거屬車가 81이요 법가法駕는 그 반이었다. 촉거屬車는 검은 덮개에 속이 붉으며 붉은 가리개와 창과 쇠뇌와 화살통을 상서尙書어사御史가 싣고 간다. 가장 뒤에 있는 한 수레에 표미豹尾를 매달았다. 은 서로 연속함이다.” 뒤에 있어서
吉行 日五十里 師行 三十里 朕乘千里馬하고 獨先安之리오하고 下詔不受하다
길사吉事로 감은 하루에 50리를 가고 군대를 거느리고 감은 30리를 가니, 짐이 천리마를 타고 홀로 먼저 어디로 가겠는가?” 하고는 조서를 내려 받지 않았다.
〈出賈捐之傳〉
- 《한서漢書 가연지전賈捐之傳》에 나옴 -
○ 帝益明習國家事하야
황제가 국가의 일에 더욱 밝고 숙달하였다.
朝而問右丞相勃曰 天下一歲決獄 幾何 謝不知어늘
조회에서 우승상右丞相 주발周勃에게 묻기를 “천하에 한 해 동안 옥사를 결단함이 몇 건이나 되는가?” 하자, 주발周勃이 알지 못한다고 사죄하였다.
又問 一歲錢穀出入 幾何 又謝不知하고 汗出沾背러라
또다시 “한 해 동안 돈과 곡식의 출입이 얼마나 되는가?” 하고 묻자, 주발周勃은 또다시 알지 못한다고 사죄하고 땀이 흘러 등을 적셨다.
問左丞相平한대 平曰 有主者하니 陛下卽問決獄인대 責廷尉하시고 問錢穀인대 責治粟內史하소서
좌승상左丞相 진평陳平에게 묻자, 진평陳平이 대답하기를 “주관하는 자가 있으니, 폐하께서 만일 옥사를 결단함을 물으시려면 정위廷尉에게 요구하시고, 돈과 곡식의 출입을 물으시려면 치속내사治粟內史에게 물으소서.” 하였다.
上曰 君所主者 何事也
이 말하기를 “그대가 주관하는 것은 무슨 일인가?” 하자,
謝曰 宰相 上佐天子하야 理陰陽, 順四時하고 下遂萬物之宜하야
진평陳平이 대답하기를 “재상은 위로는 천자天子를 보좌하여 음양陰陽을 다스리고 사시四時를 순조롭게 하며 아래로는 만물의 마땅함을 이루어서,
外鎭撫四夷諸侯하고 內親附百姓하며 使卿大夫 各得任其職焉이니이다 帝稱善하다
밖으로는 사방 오랑캐와 제후諸侯들을 진무鎭撫하고 안으로는 백성들을 친히 하여 따르게 하며 경대부卿大夫로 하여금 각각 그 직책을 맡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니, 황제가 옳다고 칭찬하였다.
於是 絳侯自知其能 不如平하고 乃謝病하고 請歸相印이어늘 許之하니
이에 강후絳侯(周勃)가 자신의 재능이 진평陳平만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병으로 사직하고 정승의 인수印綬를 돌려줄 것을 청하자, 이 이를 허락하였다.
專爲丞相注+[頭註]惠帝五年 始置二相이러니 至是하야 只置一相하니라하다
그리하여 진평陳平이 혼자서 승상丞相이 되었다.注+[頭註]혜제惠帝 5년에 처음으로 두 승상丞相을 두었었는데, 이때에 이르러 오직 한 승상丞相만을 둔 것이다.
〈出史陳丞相世家
-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옴.
帝稱善下 參用漢書文이라
제칭선帝稱善’ 이하는 《한서漢書》의 글을 참고하여 쓴 것이다.
自此 只置一相하니라
이때부터 오직 한 명의 승상丞相만을 두었다. -
○ 上 聞河南守吳公治平注+[釋義]이니 史失其名이라 稱公이라 治平 言其政治均平이라 爲天下第一하고 召以爲廷尉러니
하남수河南守 오공吳公의 다스림이 공평함이注+[釋義]이니, 역사책에 그 이름이 전해지지 않으므로 이라 칭한 것이다. 치평治平은 그의 정치가 균평均平함을 말한다. 천하에 제일이라는 말을 듣고 불러 정위廷尉로 삼았다.
吳公 薦洛陽人賈誼어늘 帝召以爲博士하니 是時 賈生年二十餘
오공吳公이 낙양 사람 가의賈誼를 천거하므로 황제가 불러 박사博士로 삼으니, 이때 가생賈生의 나이가 20여 세였다.
帝愛其辭博하야 一歲中 超遷至太中大夫하다
황제는 그의 문장과 해박한 지식을 사랑하여 1년 안에 차서次序를 뛰어넘어 승진시켜, 태중대부太中大夫에 이르렀다.
賈生 請改正朔注+[通鑑要解]如夏建寅爲正하고 平明爲朔하며 商建丑爲正하고 鷄鳴爲朔하며 周建子爲正하고 夜半爲朔이러니 至秦하야 始改用十月爲正하고 亥時爲朔하니라, 易服色注+[附註] 謂如有虞氏深衣而養老하고 夏后氏燕衣而養老하고 殷人縞衣而養老하고 周人玄衣而養老 謂如夏后氏尙黑하고 殷人尙白하고 周人尙赤하고 秦尙黑이라, 定官名, 興禮樂하야 以立漢制하고 更秦法하니 帝謙讓未遑也러라
가생賈生정삭正朔注+[通鑑要解]예컨대 나라는 건인월建寅月정월正月로 삼고 평명平明으로 삼았으며, 나라는 건축월建丑月정월正月로 삼고 닭이 울 때를 으로 삼았으며, 나라는 건자월建子月정월正月로 삼고 야반夜半(12시)을 으로 삼았는데, 나라 때에 이르러서 비로소 10월(建亥月)을 정월正月로 삼고 해시亥時으로 삼았다. 고치고 복식服飾의 색깔을 바꾸며注+[附註]유우씨有虞氏심의深衣를 입고 노인을 봉양하고, 하후씨夏后氏연의燕衣를 입고 노인을 봉양하고, 나라 사람은 호의縞衣를 입고 노인을 봉양하고, 나라 사람은 현의玄衣를 입고 노인을 봉양한 것과 같음을 이른다. 하후씨夏后氏는 흑색을 숭상하고, 나라 사람은 백색을 숭상하고, 나라 사람은 적색을 숭상하고 나라 사람은 흑색을 숭상한 것과 같음을 이른다. 관명官名을 정하고 예악禮樂을 일으켜서, 나라 제도를 확립하고 나라 법을 바꿀 것을 청하였으나 황제가 겸양하여 그렇게 할 겨를이 없다고 하였다.
〈出史本傳〉
- 《사기史記 가의전賈誼傳》에 나옴 -
역주
역주1 用此道 : 此道는 이 방법이란 뜻으로 태자를 일찍 세워 후계자를 밝힘을 이른다. 殷나라와 周나라가 장구하게 나라를 전할 수 있었던 것은 태자를 세워 父子間에 서로 계승, 전수하였기 때문임을 말한 것이다.
역주2 文帝所以固讓 : 신하들이 太子를 세워 장차 傳位할 것을 청하자, 文帝는 자기 형제 중에 賢德이 있는 자에게 帝位를 물려주겠다며 太子를 세우는 것을 사양하였으므로 말한 것이다.
역주3 : 환
역주4 收孥 :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그 家屬들까지 아울러 연좌시킴을 이른다.
역주5 五路 : 路는 輅와 통용되는 바, 五輅는 임금이 타는 다섯 가지 수레로 玉輅, 金輅, 象輅, 革輅, 木輅를 이른다.
역주6 易服色 : 服色은 戰國時代 이후로 五行說을 따라 바꾸었다. 周나라는 火德으로 王하였으므로 周나라를 대신한 秦나라는 水德이라 하여 黑色을 숭상하고, 秦나라를 대신한 漢나라는 土德을 따라 黃色을 숭상해야 하나 高祖가 赤帝의 아들이라 하여 赤色을 숭상하였기 때문에 고칠 것을 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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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술] 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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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술] 원년 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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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술] 원년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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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임술] 원년 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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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임술] 원년 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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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임술] 원년 216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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