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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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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壬午]二年이라
천한天漢 2년(임오 B.C.99)
李廣 有孫陵하야 爲侍中하니 善騎射하고 愛人下士 帝以爲有廣之風이라하야 拜騎都尉하다
예전에 이광李廣에게 손자 이릉李陵이 있어 시중侍中이 되었는데,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하며 사람을 사랑하고 군사들에게 자신을 낮추니, 황제가 이광李廣의 풍모가 있다고 하여 기도위騎都尉에 임명하였다.
貳師擊匈奴할새 陵自請曰 臣所將屯邊者 皆荊, 楚勇士劍客也
이사장군貳師將軍흉노匈奴를 공격할 적에 이릉李陵이 자청하기를 “신이 거느리고 있는 변경에 주둔한 군사들은 모두 형초荊楚 지방의 용사로 기재奇材검객劍客들입니다.
力扼虎하고 射命中하니 願得自當一隊하야 以少擊衆하노이다 壯而許之하니
힘은 호랑이를 잡을 수 있고 활을 쏘면 명중하니, 바라건대 스스로 한 부대를 담당하여 적은 병력으로 많은 적을 공격하게 해 주소서.” 하니, 이 장하게 여겨 허락하였다.
於是 將其步卒五千人하야 至浚稽山하야 與單于相擊하야 殺數千人이라
이에 보병 5천 명을 거느리고 준계산浚稽山에 이르러 선우單于와 서로 공격하여 수천 명을 죽였다.
單于大驚不利하야 欲去러니 陵軍候管敢注+[通鑑要解]續漢志云 凡領軍 皆有部曲하니 部有校尉하고 部下有曲하고 曲有軍候一人이라 爲校尉所辱하고 亡降匈奴하야 具言 陵軍 無後救하고 射矢且盡이라한대
선우單于가 전투에서 불리하자 크게 놀라 떠나고자 하였는데, 마침 이릉李陵군후軍候 관감管敢교위校尉에게 모욕을 당하고는 흉노匈奴로 도망하여 항복하고서 이릉李陵의 군대가 뒤에서 지원하는 부대가 없고 쏘는 화살도 장차 다하였음을 자세히 말하였다.
單于得敢大喜하야 使騎竝攻漢軍하고 疾呼曰 李陵, 韓延年 趣(促)降하라하고 遂遮道急攻陵하니
선우單于관감管敢注+[通鑑要解]속한지續漢志》에 이르기를 “무릇 군대를 거느릴 때에는 모두 부곡部曲이 있으니, 에는 교위校尉가 있고 아래에는 이 있고 에는 군후軍候 한 사람이 있다.” 하였다. 얻고 크게 기뻐하여 기병騎兵들로 하여금 일제히 한군漢軍을 공격하게 하고는 급히 고함치기를 “이릉李陵한연년韓延年은 빨리 항복하라.” 하고, 마침내 길을 차단하고 이릉李陵을 급히 공격하니,
居谷中하고 在山上이라 四面射矢如雨下하니 韓延年 戰死어늘
이릉李陵은 골짜기 가운데에 있고 오랑캐들은 산 위에 있어서 사면에서 쏘는 화살이 비처럼 쏟아지니, 한연년韓延年이 싸우다가 죽었다.
陵曰 無面目報陛下라하고 遂降하니 邊塞以聞하다
이릉李陵은 말하기를 “폐하께 보고할 면목이 없다.” 하고는 마침내 항복하니, 변방에서 이러한 사실을 아뢰었다.
하야 問太史令司馬遷한대 盛言陵事親孝하고 與士信하며 常奮不顧身하야 以徇國家之急 其素所畜(蓄)積也
이 노하여 태사령太史令 사마천司馬遷에게 물으니, 사마천司馬遷이 극구 말하기를 “이릉李陵은 어버이를 효성으로 섬기고 군사들에게 신의를 지키며, 항상 분발하여 자기몸을 돌아보지 않고 국가의 위급함에 목숨을 바치는 것이 그가 평소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뜻입니다.
有國士之風이러니 今擧事一不幸 全軀保妻子之臣 隨而其短注+[釋義] 猶敎 麯也 喩釀成其罪也하니 誠可痛也
국사國士의 풍모가 있었는데 지금 거사擧事하여 한번 불행(실패)하자, 자기 몸을 온전히 하고 처자식을 보전한 신하들이 따라서 그의 단점을 말하여 죄를 만들어 내니,注+[釋義]는 시킴과 같고 은 누룩이니, 그 죄를 빚어 만듦을 비유한 것이다. 진실로 애통할 만합니다.
且陵提步卒 不滿五千이로되 深蹂戎馬之地하야 却數萬之師하니 虜救死扶傷不暇하야 悉擧引弓之民하야 共攻圍之
이릉李陵이 거느린 보졸步卒은 채 5천 명이 못 되는데, 오랑캐의 군마軍馬가 있는 땅을 깊숙이 유린하여 수만 명의 적병을 퇴각시키니, 오랑캐들이 죽은 자를 구원하고 부상한 자들을 부축하기에 겨를이 없어서 활을 쏠 수 있는 백성들을 모조리 동원하여 함께 공격하고 포위하였습니다.
轉鬪千里라가 矢盡道窮이어늘 士張空弮注+[釋義]言陵時矢盡이라 故張弩之空弓也 漢書 作拳하니 蓋拳則屈指 不當言張이라하고 冒白刃하야 北首爭死敵注+[釋義] 向也 謂北向爭致死命於敵也하니 得人之死力 雖古名將이라도 不過也
전전하여 천 리 먼 곳에서 싸우다가 화살이 다 떨어지고 길이 막혔는데도 군사들이 빈 활을 당기고注+[釋義]矢盡道窮 사장공환士張空弮:이릉李陵이 이때 화살이 다하였으므로 군사들이 쇠뇌의 빈 활만 당김을 말한 것이다. 《한서漢書》에는 으로 되어 있으니, 주먹[拳]은 손가락을 굽히는 것이니 이라고 말할 수 없다. 흰 칼날을 무릅쓰고서 북쪽을 향해 결사적으로 적에게 맞섰으니,注+[釋義]는 향함이니, 북쪽을 향하여 다투어서 사명死命(목숨)을 적에게 바침을 말한 것이다. 사람들의 사력死力을 얻음은 비록 옛날의 이름난 장수라도 이보다 더하지는 못할 것입니다.
身雖陷敗 然其所摧敗 亦足於天下注+[釋義]王氏曰 暴 音僕이니 言已足以暴露其功於天下也 彼之不死 宜欲得當以報漢也注+[釋義]言彼之所以不盡死節而降匈奴者 意欲立功以報漢而受其罪也니이다
몸은 비록 패전하였으나 그가 흉노匈奴의 군대를 꺾은 것은 또한 충분히 천하에 드러낼 만하니,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은 음이 이니, 이미 그 을 천하에 충분히 드러내었음을 말한 것이다.” 저가 죽지 않은 것은 아마도 여기에 상당相當하는 공을 세워서 나라에 보답하고자 한 것인 듯합니다.” 하였다.注+[釋義]彼之不死 의욕득당이보한야宜欲得當以報漢也:저 이릉李陵사절死節을 다하지 않고 흉노匈奴에 항복한 까닭은 마음속에 을 세워 나라에 보답하고 그 죄를 받고자 하였음을 말한 것이다.
以遷爲誣罔하야 欲沮貳師注+[頭註]貳師將軍李廣利 擊匈奴할새 李陵請自當一隊하야 分單于兵하야 毋令專向貳師城이라하고 爲陵游說라하야 下遷腐刑注+[釋義]景帝紀 死罪欲腐者 許之라한대 如淳註 宮刑也 丈夫割勢하야 不復生子 如朽木之不生實이라하다
사마천司馬遷이 천자를 기만하여 이사장군貳師將軍을 저지하고注+[頭註]이사장군貳師將軍 이광리李廣利흉노匈奴를 공격할 적에 이릉李陵이 스스로 한 부대를 담당할 것을 청하여 선우單于의 군대를 분산시켜 오로지 이사성貳師城으로만 향하지 않게 한 것이다. 이릉李陵을 위해 설득하려 한다고 해서 사마천司馬遷하옥下獄하고 부형腐刑을 내렸다.注+[釋義]사기史記》 〈경제본기景帝本紀〉에 “죽을 죄를 짓고서 부형腐刑을 받고자 하는 자는 허락해 준다.” 하였는데, 여순如淳에 “궁형宮刑이니, 장부丈夫가 거세를 당하여 다시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이 썩은 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하였다.
〈出陵本傳〉
- 《한서漢書 이릉전李陵傳》에 나옴 -
司馬遷傳曰
한서漢書》 〈사마천전司馬遷傳〉에 말하였다.
初遷父談 爲太史公이러니하고 遷爲太史令十年 遭李陵之禍
“처음에 사마천司馬遷의 아버지 태사공太史公이 되었는데 이 죽고 사마천司馬遷태사령太史令이 된 지 10년 만에 이릉李陵를 만났다.
乃述陶唐以來 迄于麟止注+[附註]武帝獲麟한대 遷以爲述事之端하야 上記黃帝하고 下至麟止하니 猶春秋止於獲麟이라 元狩元年冬十月 獲一角獸하니라하야 變春秋編年하야 爲本紀, 爲表, 爲八書,注+[頭註]禮, 樂, 律, 曆, 天官, 封禪, 河渠, 平準이라 爲世家, 爲列傳하야 自黃帝始
이에 도당씨陶唐氏(帝堯) 이래로 나라 때 기린을 잡는 데注+[附註]무제武帝가 기린을 잡자, 사마천司馬遷은 일을 기술하는 단서라 하여, 위로는 황제黃帝로부터 기록하고 아래로는 기린을 잡은 데까지 이르렀으니, 《춘추春秋》의 기록이 기린을 잡은 데에서 그친 것과 같다. 원수元狩 원년元年 겨울 10월에 한 뿔이 달린 짐승을 잡았다. 이르기까지의 역사를 기술하여 편년체編年體춘추春秋를 바꾸어 본기本紀팔서八書注+[頭註]팔서八書예서禮書악서樂書율서律書역서曆書천관서天官書봉선서封禪書하거서河渠書평준서平準書이다. 세가世家, 열전列傳을 만들어서 황제黃帝 때로부터 시작하였다.
遷死後 其書始出하야 宣帝時 其書 遂宣布焉하니라
사마천司馬遷이 죽은 뒤에 그 책이 비로소 세상에 나와 선제宣帝 때에 그 책이 마침내 반포되었다.”
班固贊曰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사마천전司馬遷傳에 말하였다.
自古書契之作而有史官하야 其載籍 博矣
“예로부터 글(문자)이 나오자 사관史官이 있어서 기재된 것이 넓었다.
司馬遷 據左氏國語하고 采世本戰國策하고 述楚漢春秋하야 接其後事하야 訖于天漢하니 其言秦漢 詳矣
그러므로 사마천司馬遷이 《좌씨左氏(左傳)》와 《국어國語》를 근거하고 《세본世本》과 《전국책戰國策》을 채집하고 《초한춘추楚漢春秋》의 사실史實을 서술해서 그 뒷일을 이어 천한天漢 연간에까지 이르렀으니, 진한시대秦漢時代의 일을 말한 것이 자세하다.
至於采經摭傳하야는 分散數家之事하야 甚多疏略하고 或有牴牾로되 亦其涉獵者廣博하야 貫穿經傳하고 馳騁古今하야 上下數千載間하니 斯已勤矣
그러나 경전經傳을 가려 뽑음에 이르러서는 여러 의 일을 분산하여 소략疏略한 것이 매우 많고 간혹 모순되는 것이 있으나 또한 섭렵涉獵하기를 널리 하고 많이 하여 경전經傳을 꿰뚫고 고금古今을 치달려서 수천 년 사이를 오르내렸으니, 이미 부지런하였다.
又其是非頗謬於聖人하야 論大道則先黃老而後六經하고 敍游俠則退處士而進奸雄하고 述貨殖則崇勢利而羞貧賤하니 此其所蔽也
또 그 옳고 그름이 성인聖人과 자못 어긋나서 대도大道를 논하면 황로黃老를 먼저 하고 육경六經을 뒤에 하였으며, 유협游俠을 서술하면 처사處士를 물리치고 간웅奸雄을 올렸으며, 화식貨殖을 서술하면 세력과 이익을 높이고 빈천貧賤을 부끄럽게 여겼으니,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然自劉向揚雄 博極群書로되 皆稱遷有良史之才하야
그러나 유향劉向양웅揚雄은 여러 책을 두루 보았는데 모두 사마천司馬遷이 훌륭한 사관史官의 재주가 있다고 칭찬해서
服其善序事理하야 辨而不華하고 質而不俚하야 其文直하고 其事核注+[頭註] 與覈通하니 實也하야 不虛美하고 不隱惡故 謂之實錄이라하니
‘그가 사리事理를 잘 서술하여 분별하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질박하면서도 속되지 아니하여 그 글이 정직하고 그 일이 사실적이어서注+[頭註]과 통하니, 진실함이다. 헛되이 칭찬하지 않고 을 숨기지 않았으므로 이것을 실록實錄이라 한다.’고 하였다.
嗚呼 以遷之博物洽聞으로도 而不能以智自全하야 旣陷極刑하고 幽而發憤하니 書亦信矣
아, 사마천司馬遷의 박학과 넓은 문견으로도 지혜로써 자기 몸을 온전히 보전하지 못해서 이미 극형極刑에 빠지고는 분발하여 책을 지었으니, 책이 또한 믿을 만하다.
跡其所自傷悼하면 小雅巷伯之倫注+[頭註] 宮內道名이요 長也 主宮內道官之長也이라 寺人傷於讒하야 而作此詩하야 以保其身이라 謂明於理 謂察於事 保身 蓋順理而守身이요 非趨利避害하야 喩以全軀之謂也인저
그 스스로 서글퍼한 것을 살펴보면 〈소아小雅〉의 항백巷伯의 부류일 것이다.注+[頭註]은 궁 안의 도로 이름이고 은 우두머리이니, 궁 안의 도로를 주관하는 관원의 우두머리인 바, 바로 시인寺人이다. 시인寺人이 중상모략을 당하고는 이 를 지어 그 몸을 보존한 것이다. 은 이치에 밝음을 이르고, 은 일을 살핌을 이른다. 보신保身은 이치를 따라 몸을 지키는 것이요, 이로움을 따르고 해로움을 피해서 몸을 온전히 함을 말한 것은 아니다.
夫惟大雅 旣明且哲하야 以保其身이라하니 難矣哉인저
대아大雅 증민烝民〉에 ‘이미 밝고 또 지혜로워서 자기 몸을 보전한다.’ 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 上 以法制御下하야 好尊用酷吏하니 而郡國二千石爲治者 大抵多酷暴吏
법제法制를 가지고 아랫사람들을 다스려서 혹리酷吏를 높여 등용하기를 좋아하니, 군국郡國이천석二千石으로서 다스리는 자들이 대부분 혹독하고 포악한 관리가 많았다.
民益輕犯法하고 東方 盜賊滋起하야 大群 攻城邑하고 小群 掠鄕里
백성들이 더욱 쉽게 법을 범하고 동방東方에는 도적이 더욱 일어나서, 큰 무리는 성읍城邑을 공격하고 작은 무리는 향리鄕里를 노략질하였다.
乃使范昆, 張德等으로 衣繡衣하고 持節虎符하야 發兵以擊斬하야 或至萬餘級호되 散亡 聚黨하야 無可奈何
이 이에 범곤范昆장덕張德 등으로 하여금 수의繡衣를 입고 부절符節호부虎符(병부)를 가지고 가서 군대를 징발하여 공격해서 목을 베게 하여, 목을 벤 것이 혹 만여 명에 이르렀으나 흩어져 도망한 자들이 도당을 모아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於是 作沈命法注+[釋義] 藏匿也 亡逃也 服虔曰 沈匿不發覺之法也 韋昭曰 沈 沒也라하니 敢蔽匿盜賊者 沒其命이라하고 曰 群盜起 不發覺이어나 發覺而捕 二千石以下 至小吏 主者皆死라하니
이에 침명법沈命法注+[釋義]은 감추고 숨김이요, 은 도망함이다. 복건服虔이 말하기를 “감추고 숨겨주어서 발각되지 않게 한 자를 처벌하는 법이다.” 하였다. 위소韋昭가 말하기를 “침몰沈沒이다.” 하였으니, 감히 도적을 은폐하고 숨겨주는 자는 그 목숨을 없애는 것이다. 만들고 말하기를 “도적떼가 일어났을 적에 발각하지 못했거나 발각했더라도 잡은 것이 (일정한 인수人數)에 차지 못하면 이천석二千石 이하의 낮은 관리에 이르기까지 주관하는 자를 모두 죽인다.” 하니,
其後 小吏畏誅하야 雖有盜 不敢發하고 上下相匿하야 以文辭避法焉注+[釋義]王氏曰 詐爲虛文하야 云無盜賊이라이러라
그 뒤로 낮은 관리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여 비록 도적이 있더라도 감히 드러내지 못하고, 상하가 서로 숨겨서 허위 문서를 꾸며서 법망을 피하였다.注+[釋義]群盜起……以文辭避法焉: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거짓으로 허위 문서를 만들어서 도적이 없다고 말한 것이다.”
〈酷吏傳 文小異〉
- 《한서漢書 혹리전酷吏傳》의 내용인데, 글이 조금 다름 -
○ 是時 勝之爲直指使者注+[頭註]指事而行하야 無阿私하야 所誅殺二千石以下尤多
이때에 포승지暴勝之직지사자直指使者注+[頭註]일을 가리켜 행하여 아첨하거나 사사로이 봐줌이 없는 것이다. 되어 이천석二千石 이하의 관리를 죽인 것이 특히 많았다.
威振州郡이러니 至勃海하야 聞郡人不疑賢하고 請與相見한대 不疑曰 竊伏海瀕하야 聞暴公子舊矣러니 今乃承顔接辭로다
그리하여 위엄이 주군州郡에 떨쳐졌는데, 발해군勃海郡에 이르러 이 고을 사람 준불의雋不疑가 어질다는 말을 듣고 만나 볼 것을 청하자, 준불의雋不疑가 말하기를 “바닷가에 엎드려 있으면서 폭공자暴公子의 명성을 들은 지가 오래였는데, 이제야 비로소 얼굴을 맞대고 말씀을 나누게 되었습니다.
凡爲吏 太剛則折하고 太柔則廢하나니 威行이어든 施之以恩이니
무릇 관리 노릇 함에 너무 강하면 부러지고 너무 유약하면 폐해지니, 위엄이 행해지면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然後 樹功揚名하야 永終天祿하리이다
그런 뒤에야 을 세우고 이름을 드날려서 하늘의 祿을 길이 마칠 수가 있습니다.” 하였다.
勝之深納其戒러니 及還 表薦不疑한대 召拜不疑하야 爲靑州剌史하다
포승지暴勝之가 그의 경계를 깊이 받아들였는데, 돌아오자 표문表文을 올려 준불의雋不疑를 천거하니, 준불의雋不疑를 불러 임명하여 청주자사靑州刺史로 삼았다.
〈出不疑本傳〉
- 《한서漢書 준불의전雋不疑傳》에 나옴 -
○ 王賀 亦爲繡衣注+[頭註]衣以繡衣 尊寵之也御史하야 逐捕魏郡群盜할새 多所縱捨
왕하王賀가 또한 수의繡衣注+[頭註]수놓은 옷을 입힌 것은 높이고 영광스럽게 한 것이다. 御史가 되어 위군魏郡의 도적떼를 추격하고 체포할 적에 풀어놓아 준 것이 많았다.
以奉使不稱이라하야하고 歎曰 吾聞活千人이면 子孫 有封이라하니
사명使命을 받듦에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하여 파면당하고는 탄식하기를 “내 들으니, 천 명을 살려 주면 자손 중에 작위에 봉해지는 자가 있다고 하였다.
吾所活者 萬餘人이라 인저
내가 살려 준 자가 만여 명이니, 후세에 아마도 흥성할 것이다.” 하였다.
역주
역주1 奇材 : 활을 잘 쏘고 말을 잘 타는 사람을 이른다.
역주2 媒糵 : 매얼
역주3 : 폭
역주4 : 폭
역주5 : 시
역주6 弗滿品 : 品은 비율[率]이니, 사람의 숫자를 비율로 삼는 것이다.
역주7 : 포
역주8 : 준
역주9 後世其興乎 : 王賀는 그의 예언대로 집안이 크게 번창하여 손녀가 元帝의 后인 孝元皇后가 되었으며, 王莽이 황제의 지위를 찬탈하고 國號를 新이라 하였으나, 결국 光武帝에게 토벌당하여 멸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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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오]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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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임오] 2년 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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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임오] 2년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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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임오] 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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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임오] 2년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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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임오] 2년 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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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임오] 2년 97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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