校書郞楊終이 建言호되 宣帝博徵群儒하야 論定五經於石渠閣하시니
方今天下少事
라 學者得成其業
이어늘 而
章句之徒注+[釋義]意斷處曰章이요 言斷處曰句니 言其專於分章析句之學也라 破壞大體
하니 宜如石渠故事
注+[釋義]三輔黃圖云 石渠閣이 在未央殿北하니 以藏秘書라 其下에 礱石爲渠以導水하야 如今之御溝하니 因以名閣也라하니라 事見宣帝甘露三年하니라하야 永爲後世則
이니이다
帝從之
하야 〈出本傳〉詔太常
하야 博士, 郞官及諸儒
하야 會白虎觀
注+[釋義]在北宮이라하야 議五經同異
할새 帝親稱制臨決
注+[釋義]稱制는 卽制曰이 是已니 自臨視其論議而斷決可否라하고 作白虎議奏
注+[釋義]今白虎通이 是也라 山堂考索曰 白虎議奏는 凡四十篇이니 今所存本은 乃四十四卷이라 篇首於爵하야 終於嫁娶하니라하니 名儒丁鴻, 樓望, 成封, 桓郁, 班固, 賈逵
와 及廣平王
注+[頭註]明帝子也라가 皆與焉
이러라
교서랑校書郞 양종楊終이 건의하기를 “선제宣帝가 여러 학자들을 널리 불러 석거각石渠閣에서 오경五經을 논의하여 결정하게 하셨습니다.
지금
천하天下에 일이 적어서 배우는 자들이 학업을 이룰 수 있는데,
장구章句만 따지는 무리들
注+[釋義]글의 뜻이 끊겨 구분되는 곳을 장章이라 하고 말이 구분되는 곳을 구句라 하니, 장구지도章句之徒는 장章을 나누고 구句를 분석하는 학문만을 오로지 함을 말한다. 이
대체大體를 파괴하고 있으니, 마땅히
석거각石渠閣의
고사故事注+[釋義]《삼보황도三輔黃圖》에 이르기를 “석거각石渠閣이 미앙전未央殿 북쪽에 있었으니, 여기에 비서秘書를 보관하였다. 그 아래에 돌을 쌓아 도랑을 만들고 물을 끌어 와서 지금의 어구御溝와 같이 만들었으므로 인하여 석거각石渠閣이라 이름한 것이다.” 하였다. 이 일은 선제宣帝 감로甘露 3년조年條에 보인다. 와 같이 하여 길이 후세의 법칙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하였다.
황제가 이를 따라 - 《
후한서後漢書 양종전楊終傳》에 나옴 -
태상太常에게 명령하여
박사博士와
낭관郞官과 여러 학자들을
백호관白虎觀注+[釋義]백호관白虎觀은 북쪽 궁궐에 있었다. 에 모이게 하여
오경五經의
동이同異를 논의할 때에 황제가 직접
제制를 칭하고,
임석臨席하여
가부可否를 결정하고는
注+[釋義]칭제稱制는 바로 ‘제왈制曰’이 이것이니, 황제가 직접 임석臨席하여 그 의논을 보고 가부可否를 결단한 것이다. 《
백호의주白虎議奏》
注+[釋義]《백호의주白虎議奏》는 지금의 《백호통白虎通》이 이것이다. 《산당고색山堂考索》에 이르기를 “《백호의주白虎議奏》는 모두 40편이니, 지금 남아 있는 본本은 44권이다. 이 책은 관작官爵에서 시작하여 가취嫁娶(男婚女嫁)에서 끝난다.” 하였다. 를 지으니, 이때 유명한 학자인
정홍丁鴻,
누망樓望,
성봉成封,
환욱桓郁,
반고班固,
가규賈逵와
광평왕廣平王 이羡注+[頭註]광평왕廣平王 이羡는 명제明帝의 아들이다. 가 모두 여기에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