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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5)

통감절요(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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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5)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甲申]〈魏咸熙元年이요 吳主元興元年이니 凡二國이라
갑신(264) - 나라 함희咸熙 원년元年이고, 오주吳主 손호孫皓 원흥元興 원년元年이니, 모두 두 나라이다. -
正月 魏詔以檻車注+[頭註]車上 着板四周하고 載囚其中이라 徵艾赴京師하다
정월에 나라가 명령을 내려 함거檻車注+[頭註]함거檻車는 수레 위에 판자를 붙여 사방을 에워싸고 그 안에 죄수를 태운다. 등애鄧艾를 불러 경사京師로 오게 하였다.
會所憚 惟艾러니 艾父子注+[頭註]父子 惠及忠也旣禽 會獨統大衆하니 威震西土決意謀反하다
종회鍾會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등애鄧艾뿐이었는데, 등애鄧艾 부자父子注+[頭註]등애鄧艾 부자父子등애鄧艾와 그의 아들 등혜鄧惠등충鄧忠이다. 가 사로잡힌 뒤에 종회鍾會가 홀로 대군大軍을 통솔하여 위엄이 서쪽 지방에 진동하니, 마침내 모반하기로 결심하였다.
丁丑 矯太后遺詔注+[頭註] 托也하야 使會起兵하야 廢司馬昭하다
정축일(16일)에 태후太后유조遺詔를 사칭注+[頭註]는 칭탁함이다. 하여 ‘종회鍾會로 하여금 군대를 일으켜 사마소司馬昭를 폐하게 한다.’ 하였다.
姜維欲使會 盡殺北來諸將하고 已因殺會하고 盡坑魏兵하야 復立故漢帝러니 會衆兵 作亂하야 格斬姜維하고 爭前殺會하니 鄧艾本營將士 追出艾於檻車하야 迎還이어늘
강유姜維종회鍾會로 하여금 북쪽에서 온 여러 장수를 다 죽이게 한 다음, 스스로 이 기회를 틈타 종회鍾會를 죽이고 나라 군사들을 다 묻어 죽이고서 다시 옛 나라 황제를 세우고자 하였는데, 종회鍾會의 병사들이 난을 일으켜 강유姜維를 쳐 죽이고 앞 다투어 종회鍾會를 죽이니, 등애鄧艾 본영本營의 장병들이 쫓아가 함거檻車에서 등애鄧艾를 꺼내어 맞이하여 돌아왔다.
衛瓘 遣兵襲艾하야 斬艾父子하다
위관衛瓘이 군대를 보내어 등애鄧艾를 습격해서 등애鄧艾 부자父子를 목 베었다.
[新增]尹氏曰
[新增]尹氏가 말하였다.
夫恃强凌弱하야 奪人土地하야 使不得有其臣民하고 毁人宗廟하야 使不得奉其祭祀 非至不仁者 莫之忍爲
“강한 힘을 믿고 약한 자를 능멸하여, 남의 토지를 빼앗아서 신하와 백성을 소유하지 못하게 하고 남의 종묘宗廟를 헐어서 제사를 받들지 못하게 함은, 지극히 불인不仁한 자가 아니면 차마 하지 못하는 것이다.
劉禪庸愚하야 不能死國하고 貪生苟免하니 固可深責이어니와
유선劉禪은 용렬하고 어리석어서 나라를 위해 죽지 못하고 살기를 꾀하여 구차히 죽음을 면하였으니, 진실로 깊이 책망할 만하다.
鍾鄧 臣事弑逆之人하야 呑滅蜀漢하야 以成晉簒하니 有功於昭 大矣 其如漢祀何哉
그러나 종회鍾會등애鄧艾시역弑逆한 사람을 신하가 되어 섬겨서 촉한蜀漢병탄倂呑하여 멸망시켜 나라의 찬탈을 도와 이루었으니, 사마소司馬昭에게 을 세움이 크지만 나라 제사를 어찌한단 말인고.
思昔昭烈君臣 間關隴蜀注+[頭註]間關 猶艱難이라하야 仗義討賊이러니 不幸天不祚漢하야 逆賊逋誅
생각건대 옛날 소열제昭烈帝는 군주와 신하가 농촉隴蜀에서 간관間關(어려움)注+[頭註]간관間關간난艱難과 같다. 을 겪으면서 대의大義를 따라 역적을 토벌하였는데, 불행히도 하늘이 나라를 도와주지 않아 역적이 죽음을 면하였다.
其子承襲一方하야 어늘 鍾鄧 設謀動衆하야 戕民鋒鏑之下하고 自謂不世之功이러니
그 아들 유선劉禪이 한쪽 지방에서 왕위를 물려받아 적제자赤帝子의 제사를 조금 이어 갔는데, 종회鍾會등애鄧艾가 꾀를 내고 병력을 동원하여 칼날 아래에서 백성들을 해치고 스스로 좀처럼 보기 드문 훌륭한 공이라고 여겼다.
未及受賞 皆赤其族하니 然後 知天道昭昭하야 特假手誅夷하야 以償滅漢之罪爾
그러나 미처 상을 받기도 전에 일족一族이 다 죽었으니, 그런 뒤에야 천도天道가 밝아서 다만 딴 사람의 손을 빌려 그들을 죽여 촉한蜀漢을 멸망시킨 죄를 갚았음을 알 수 있다.
이라하니 後之謀欲滅人家國者 可以觀矣니라
논어論語》에 이르기를 ‘멸망한 나라를 일으켜 주고 끊어진 대를 이어 주자, 천하의 민심民心이 돌아왔다.’ 하였으니, 후세에 남의 집안과 나라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자들은 이것을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魏封故漢帝禪하야 爲安樂公하다
나라가 옛 나라 황제인 유선劉禪을 봉하여 안악공安樂公으로 삼았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西漢 自高祖而下 有文有武有宣이요 東漢 自光武以下 有明, 章이요 其餘 無稱焉이라
서한西漢고조高祖 이하로 문제文帝무제武帝선제宣帝가 있었고, 동한東漢광무제光武帝 이하로 명제明帝장제章帝가 있었으며, 그 나머지는 칭할 만한 자가 없다.
하분河汾왕통王通칠제七制로 결단하였으니, 참으로 옳다.
反覆兩漢之世컨대 大抵仁義公恕하고 役簡刑淸하야 如七制之盛者 兩漢之所以興也 母后擅權하고 戚宦用事하야 如七制以下者 兩漢之所以亡也
양한兩漢의 세대를 반복해 보건대 대체로 인의仁義공서公恕를 행하며 부역이 간략하고 형벌이 맑아져서 칠제七制의 전성기와 같았던 것은 양한兩漢이 흥성한 이유이고, 모후母后가 권력을 독단하고 외척과 환관들이 용사用事하여 칠제七制 이후와 같았던 것은 양한兩漢이 멸망한 이유이다.
迨曹氏簒漢而爲魏 昭烈 以帝裔 卽位于蜀하고 孫權 亦自王於吳하야 而天下遂分於三矣
조씨曹氏나라를 찬탈하여 나라가 되자 소열제昭烈帝는 황제의 후손으로 에서 즉위하였고, 손권孫權 또한 나라에서 스스로 왕 노릇하여 천하가 마침내 셋으로 나뉘었다.
雖以昭烈孔明으로 戮力興復이나 而死灰難燃하야 不能復振하니 譬於人家컨대 家道陵夷하고 生業已盡하야 豪奴悍僕 或潛據於內하고 或竊處於外하고 而其家之故子遺孫 伶仃漂泊하야 其氣奄奄殆盡이어늘 而方區區在外하야 收拾寸土하야 以爲興復計하니 亦已難矣로다
비록 소열제昭烈帝제갈공명諸葛孔明으로서 힘을 다하여 흥복興復하였으나 꺼진 재를 다시 타오르게 하기 어려워 다시 떨치지 못하였으니, 이것을 집안에 비유하면 가도家道가 침체되고 생업生業이 이미 다하여 호방하고 사나운 노복奴僕들이 혹은 안에서 몰래 점거하고 혹은 밖에 몰래 숨어 있고, 그 집안의 옛 주인의 아들과 남은 손자들이 외롭게 표박漂泊하여 간신히 숨만 붙어 있어 거의 다 망하게 되었는데, 구구하게 밖에서 한 치 되는 땅을 수습하여 흥복興復할 계획을 세우는 것과 같으니, 또한 너무나도 어렵다.
由是論之컨대 民心思漢而有餘하고 民心去漢 以孔明留之而不可하니 吁可嘆哉인저
이로 말미암아 논해 보건대 민심이 나라(西漢)를 그리워할 때에는 왕랑王郞유씨劉氏라고 사칭하기만 해도 충분했고, 민심이 나라(蜀漢)를 떠난 뒤에는 공명孔明이 부지하려고 해도 되지 않았으니, 아! 탄식할 만하다.”
○ 吳主休殂하니 皓卽皇帝位注+[頭註] 權之孫이요 和之子也하다
오주吳主 손휴孫休가 죽으니 손호孫皓注+[頭註]손호孫皓손권孫權의 손자이고 손화孫和의 아들이다. 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 晉王 立炎爲世子하다
진왕晉王사마염司馬炎을 세워 세자世子로 삼았다.
역주
역주1 孫皓 : 《晉書》와 《資治通鑑》에 ‘孫皓’와 ‘孫晧’가 둘 다 나오는 바, 底本에 ‘孫皓’로 되어 있으므로 底本을 따랐다.
역주2 少延赤帝子之祀 : 赤帝子는 漢 高祖 劉邦을 가리킨다. 《史記》 〈高祖本紀〉에 “劉邦이 밤에 술에 취하여 늪 가운데를 지나는데, 큰 뱀이 길을 막고 있으므로 검을 뽑아 뱀을 베었다. 뒷사람이 오다가 뱀이 있는 곳에 이르니, 늙은 할미가 울면서 말하기를 ‘내 아들은 白帝子로서 뱀으로 변하여 길을 막고 있었는데, 이제 赤帝子가 베어 죽였다.’ 하고는 인하여 갑자기 보이지 않았다.” 하였다. 秦나라는 金德으로 통치하였는데 金은 白色이므로 秦나라를 가리켜 白帝의 아들이라 하고, 火는 金을 이기는데 火는 赤色이므로 劉邦을 赤帝의 아들이라 하여, 漢나라가 秦나라를 대신해서 天命을 받는 징조로 삼은 것이다.
역주3 語曰……歸心焉 : 이 내용은 《論語》 〈堯曰〉에 보인다.
역주4 河汾王通 以七制斷之 : 隋나라 王通이 漢나라의 高帝, 文帝, 武帝, 宣帝, 光武帝, 明帝, 章帝를 七制의 군주로 추대하고 그 글을 帝制라고 하였으니, 그 法制가 後王의 법칙이 될 만함을 이른다. 王通은 漢나라의 法制가 거의 《書經》의 典誥에 가깝다고 여겨 兩漢의 훌륭한 군주를 七制라고 칭하였다.
역주5 王郞假之 : 王莽 때에 長安에 成帝의 아들 子輿라고 자칭하는 자가 있으므로 王莽이 그를 죽였는데, 邯鄲의 점치는 자인 王郞이 이로 인하여 자신이 진짜 子輿라고 사칭하자 백성들이 이를 많이 믿고서 王郞을 세워 천자로 삼으니, 趙나라 이북과 遼東 이서 지방이 모두 風聲만 듣고도 호응하였다.

통감절요(5)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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