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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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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庚子]六年이라
6년(경자 B.C.201)
楚王信 初之國하야 行縣邑할새 陳兵出入하니 人有告信反者
초왕楚王 한신韓信이 처음 나라에 가서 현읍縣邑을 순행할 적에 병력을 진열하고 출입하니, 한신韓信이 배반했다고 고발하는 사람이 있었다.
帝問陳平한대 平曰 古者 天子巡狩하야 會諸侯하니
황제가 진평陳平에게 물으니, 진평陳平이 대답하기를 “옛날 천자天子순수巡狩하여 제후들을 모았으니,
陛下第出하야 僞游雲夢하야 會諸侯於陳이면 聞天子出游하고 其勢必郊迎謁하리니
폐하께서 다만 나가서 거짓으로 운몽雲夢에 유람한다고 하고 제후들을 땅에 모이게 하시면 한신韓信은 천자가 나와 유람한다는 말을 듣고서 그 형세가 반드시 교외에서 맞이하여 배알할 것이니,
而陛下因禽(擒)之하시면 此特一力士之事耳니이다
폐하께서 인하여 사로잡으신다면 이는 다만 한 역사力士의 일일 뿐입니다.” 하였다.
帝以爲然하야 乃會諸侯於陳하다
황제가 그 말을 옳게 여겨서 마침내 제후들을 땅에 모이게 하였다.
謁上이어늘 令武士縛信하야 載後車한대 信曰 果若人言이로다
한신韓信을 뵙자, 무사武士를 시켜 한신韓信을 포박해서 뒷수레에 싣게 하니, 한신韓信이 말하기를 “과연 사람들의 말과 같도다.
狡兎死 走狗烹하고 高鳥盡 良弓藏하고 敵國破 謀臣亡注+[通鑑要解]黃石公之三略中言耳이라하더니 天下已定하니 我固當烹이로다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달리는 사냥개가 삶겨져서 죽고, 높이 나는 새가 다 잡히면 좋은 활이 감춰지고, 적국이 격파되면 모신謀臣이 망한다고 하더니,注+[通鑑要解]이 내용은 황석공黃石公의 《삼략三略》에 나오는 말이다. 천하가 이미 평정되었으니, 내가 진실로 삶겨져서 죽겠구나.” 하였다.
上曰 人告公反이라하고 遂械繫注+[頭註]械者 加以杻械 繫者 加以係索也 형틀을 가하는 것이고, 繫 포승줄을 가하는 것이다.信以歸하다
이 말하기를 “어떤 이가 이 배반한다고 고발했다.” 하고는 마침내 한신韓信에게 형틀을 씌우고 포박하여注+[頭註]2)[頭註]械繫 : 계자械者가이뉴계加以杻械계자繫者가이계색야加以係索也는 형틀을 가하는 것이고, 는 포승줄을 가하는 것이다. 돌아왔다.
〈出史記本傳〉
-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옴 -
[新增]
진계아陳季雅가 말하였다.
人皆謂漢封建無制故 諸侯强大라하야 以爲三代封建之法 不可復이라하니 殊不知三代封建之意 已壞於此
“사람들이 모두 이르기를 ‘나라 때에 봉건封建하는 것이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제후가 강대해졌다.’고 하여, 말하기를 ‘삼대시대三代時代봉건封建하는 법을 다시 시행할 수 없다.’고 하니, 삼대시대三代時代봉건封建하는 뜻이 이미 여기에서 파괴되었음을 전혀 알지 못한 것이다.
何也
어째서인가?
天子適諸侯曰巡狩 諸侯朝於天子曰述職이니 今高祖用僞遊之計하야 以執信이면 則是壞先王巡狩之意 至呂后하야 召諸王하야 至長安이면 以鴆注+[附註]鳥名이라 出南方하니 大如鴞 紫黑色이며 頸長七八寸이니 唯食毒蛇 蛇入石穴이면 於穴外 禹步作法<원주내용 type="附註" 식별자="ID:LW587">禹步法 則三步九跡也 天藏遁法云 先一左足하고 二右足하며 三左足하고 四右足하며 五左足하고 六右足하며 七左足하고 八右足하며 九左足行也이라가 有頃 石碎어든 啄蛇食之하니 鴆在處 草木不生이라 秋冬間 脫羽어든 人以銀箸拾取하야 着甁中하나니 否則人手爛墮着人이면 立死 屎着石이면 石爛이요 翮歷酒飮이면 殺人이니 唯犀角解之殺之하야 遂使後有望京師而泣者하니 則諸侯述職之法 又壞矣니라
천자가 제후국에 가는 것을 순수巡狩라 하고, 제후가 천자에게 조회 가는 것을 술직述職이라 하니, 지금 고조高祖가 거짓으로 유람하는 계책을 써서 한신韓信을 사로잡았으면 이는 선왕先王순수巡狩하는 뜻을 파괴한 것이요, 여후呂后 때에 이르러서는 여러 왕들을 불러 장안長安에 이르면 짐독鴆毒으로注+[附註]은 새 이름이다. 남방南方에서 나오니 크기는 부엉새와 같고 자흑색紫黑色이며 목의 길이가 7, 8촌인데 오직 독사毒蛇만을 먹는다. 뱀이 돌구멍으로 들어가면 새가 구멍 밖에서 우보禹步(겅중겅중 뜀)를 하다가<원주내용 식별자="ID:LW587_T">禹王의 보법步法은 3步에 아홉 번 발을 떼는 것이다. 天藏遁法에 “먼저 왼발을 떼고 두 번째는 오른발을 떼며, 세 번째는 왼발을, 네 번째는 오른발을, 다섯 번째는 왼발을, 여섯 번째는 오른발을, 일곱 번째는 왼발을, 여덟 번째는 오른발을, 아홉 번째는 왼발을 떼는 것이다.” 하였다. 잠시 후에 돌이 부서지면 뱀을 쪼아서 먹으니, 새가 있는 곳에는 초목이 자라지 못한다. 가을과 겨울 사이에 깃이 빠지면 사람들이 은젓가락으로 깃을 주워서 병 속에 담으니,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람의 손이 문드러져서 떨어진다. 새의 똥이 사람에게 닿으면 즉사하고 똥이 돌에 묻으면 돌이 부서지며 깃털을 술에 담갔다가 마시면 사람을 죽이니, 오직 물소 뿔만이 해독할 수 있다. 죽여서 마침내 여러 왕들로 하여금 뒤에는 경사京師만 바라보고도 우는 자가 있게 하였으니, 제후諸侯술직述職하는 법이 또 파괴된 것이다.”
○ 田肯 賀上曰
전긍田肯에게 축하하며 말하였다.
陛下得韓信하시고 又治秦中注+[釋義]王氏曰 秦中 謂定都關中也 山東人 呼關中爲秦中이라하시니 形勝之國이라
“폐하께서 한신韓信을 잡으시고 또 진중秦中(關中)에 도읍을 정하시니,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치진중治秦中관중關中에 도읍을 정함을 이르니, 당시 산동山東 사람이 관중關中진중秦中이라고 불렀다.”나라는 형세가 뛰어난 나라입니다.
帶山河之險注+[釋義]秦地被山帶河하야 爲形勢之勝便하고 地形險固 能勝人也하야 持戟百萬 秦得百二注+[原註]蘇林曰 得百中之二焉이니 秦地險固하야 二萬人 足當諸侯百萬人也이라
험한 산하山河를 두르고 있어,注+[釋義]形勝之國 대산하지험帶山河之險 : 나라의 지형은 산이 뒤덮고 물이 둘러싸서 형세形勢가 뛰어나고 편리하며 지형地形험고險固하기 때문에 남을 이길 수 있었다. 창을 잡은 군사 백만이 쳐들어옴에 나라는 100분의 2인 2만 명만 가지면 막아낼 수 있습니다.注+[原註]持戟百萬 진득백이秦得百二:소림蘇林이 말하였다. “백 중에 둘을 얻는 것이니, 나라의 지형이 험고하여 2만 명만 가지면 제후諸侯 백만 명을 충분히 당해낼 수 있는 것이다.”
地勢便利하야 以其下兵於諸侯 譬猶居高屋之上하야 建瓴水也注+[釋義] 音蹇이니 覆也 盛水甁(缾)也 居高屋之上而翻瓴水 譬其向下之勢易也
지형이 편리하여 제후들에게 출병出兵하는 것이 비유하면 높은 지붕 위에 있으면서 물병의 물을 쏟는 것과 같습니다.注+[釋義]居高屋之上 건령수야建瓴水也:은 음이 건이니 뒤엎는 것이고 은 물을 담는 병이니, 높은 지붕 위에 있으면서 물병의 물을 뒤엎는다(쏟는다)는 것은 아래로 향하는 형세가 쉬움을 비유한 것이다.
夫齊 東有瑯琊, 卽墨之饒하고 南有太山之固하고 西有濁河之限注+[釋義]晉灼曰 齊西有平原郡하니 河水東北過平原孟津하니 號黃河 故曰濁河 踰河卽屬趙 故曰限이라하고 北有勃海之利注+[釋義]王氏曰 勃 通作渤하니 旁跌也 旁跌出者橫在濟北이라 故齊都賦云 海旁出爲勃이니 因名勃海郡하니 有鹽魚之利하야 持戟百萬 齊得十二注+[原註]二十萬人 當百萬이라이라
그리고 나라는 동쪽으로 낭야瑯琊즉묵卽墨의 비옥함이 있고 남쪽으로는 태산太山의 험고함이 있고 서쪽으로는 탁하濁河의 한계가 있고注+[釋義]진작晉灼이 말하였다. “나라 서쪽에 평원군平原郡이 있는데, 하수河水가 동북쪽으로 평원平原맹진孟津을 지나니 황하黃河라고 이름하기 때문에 탁하濁河라고 하였고, 하수河水를 건너면 바로 나라에 속하기 때문에 이라고 한 것이다.” 북쪽으로는 발해渤海의 이로움이 있어,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과 통용되니 옆에서 나오는 것이다. 옆에서 나온 것이 제북濟北에 가로 놓여 있다. 이 때문에 좌태충左太沖제도부齊都賦에 이르기를 ‘바다가 옆에서 나온 것을 이라 하니, 인하여 발해군勃海郡이라 이름했다.’ 하였다. 소금과 어물魚物의 이익이 있다.” 창을 잡은 군사 백만 중에 나라는 10분의 2인 20만 명만 가지면 막아낼 수 있습니다.注+[原註]持戟百萬 제득십이齊得十二:20만 명이 백만 명을 당해내는 것이다.
此東西秦注+[通鑑要解]齊地形勝 與秦抗衡也 非親子弟 莫可使王齊矣니이다 帝曰 善타하다
그러므로 이는 동쪽과 서쪽의 나라인 것이니,注+[通鑑要解]동쪽과 서쪽의 나라는 나라의 지형의 뛰어남이 나라와 대등하다는 것이다.친자親子친제親弟가 아니면 나라에 왕을 시켜서는 안 됩니다.” 하니, 황제가 옳다고 하였다.
〈出史本紀〉
- 《사기史記 고조본기高祖本紀》에 나옴 -
[新增] 唐仲友曰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看田肯說親王子弟王齊하면 便合知齊後於漢 有制呂氏功注+[附註]高后八年 諸呂欲爲亂이러니 朱虛侯章 以呂祿女爲婦하야 知其謀하고 陰告其兄齊王襄하야 令發兵而討之하고 朱虛侯爲內應하니 襄及章 皆齊王肥子이니라
전긍田肯친왕親王자제子弟나라에 왕 노릇 하게 하도록 설득한 것을 보면 곧 나라가 뒤에 나라에 있어 여씨呂氏를 제압한 공로가注+[附註]고후高后 8년에 여씨呂氏들이 난을 일으키고자 하였는데, 주허후朱虛侯 유장劉章여록呂祿의 딸을 며느리로 삼았으므로 그 계획을 알고는 그의 형 제왕齊王 유양劉襄에게 은밀하게 고하여 병력을 동원해서 여씨呂氏 일족을 토벌하게 하고 주허후朱虛侯내응內應하니, 유양劉襄유장劉章은 모두 제왕齊王 의 아들이다.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 上 還至洛陽하야 赦韓信하야 封爲淮陰侯하니 知漢王畏惡其能하야 多稱病不朝하고 羞與絳, 灌等列이러라
이 돌아와 낙양洛陽에 이르러서 한신韓信을 사면하고 봉하여 회음후淮陰侯로 삼으니, 한신韓信한왕漢王이 자신의 능함을 두려워하고 미워한다는 것을 알고서 대부분 병을 칭탁하고 조회하지 않았고, 강후絳侯(周勃)‧관영灌嬰 등과 동렬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였다.
嘗從容與信으로 言諸將能將兵多少注+[原註]漢書本傳云 諸將能各有差러니 上問曰 如我 能將幾何 信曰 陛下 不過能將十萬이니이다
이 일찍이 조용히 한신韓信과 더불어 여러 장수들이 거느릴 수 있는 병력의 많고 적음에 관하여注+[原註]한서漢書》 〈회음후전淮陰侯傳〉에 이르기를 “여러 장수들의 능력이 각기 차이가 있는 것이다.” 하였다. 말하였는데, 이 묻기를 “나와 같은 자는 몇 명을 거느릴 수 있는가?” 하니, 한신韓信이 대답하기를 “폐하께서는 십만 명을 거느림에 불과합니다.” 하였다.
上曰 於君 何如 曰 臣 多多益善耳니이다
이 묻기를 “그대는 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습니다.” 하였다.
上笑曰 多多益善注+[原註]漢書 作益辦이라이면 何爲爲我禽(擒) 信曰 陛下 不能將兵而善將將하시니 此信所以爲陛下禽也니이다
이 웃으며 말하기를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좋다면注+[原註]한서漢書》에는 ‘익선益善’이 ‘익판益辦’으로 되어 있다. 어찌하여 나에게 사로잡혔는가?” 하니, 한신韓信이 대답하기를 “폐하는 병사들을 거느리는 것은 잘하지 못하시나 장수를 잘 거느리시니, 이것이 제(信)가 폐하께 사로잡히게 된 이유입니다.
且陛下 所謂天授 非人力也니이다
또 폐하께서는 이른바 하늘이 준 것이고 인력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였다.
〈出史本傳〉
-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에 나옴 -
○ 始剖符注+[原註]與其符 剖而分之하야 授其半하니 將以合也하야 封諸功臣하야 爲徹侯할새 蕭何封注+[釋義] 今光(華)[化]軍 此南陽酇縣이니 屬荊州 非沛國酇縣也 沛之酇 音祚柯反이라하야 所食邑 獨多
처음에 병부兵符를 나누어注+[原註]부부剖符부절符節을 줄 적에 쪼개어 나누어서 그 반을 주니, 장차 맞추고자 하는 것이다. 여러 공신들을 봉해서 철후徹侯를 삼을 적에 소하蕭何찬후酇侯에 봉하여注+[釋義]은 지금의 광화군光化軍이 이곳이다. 이곳은 남양南陽찬현酇縣이니 형주荊州에 속하고 패국沛國찬현酇縣이 아니다. 은 음이 조가祚柯이다. 먹는 바의 이 유독 많았다.
功臣 皆曰 臣等 身被堅執銳하야 多者 百餘戰이요 少者 數十合이러니
공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신들은 몸소 견고한 갑옷을 입고 예리한 병기를 잡아, 많은 자는 백여 번을 싸우고 적은 자도 수십 번을 싸웠습니다.
今蕭何 未嘗有汗馬之勞注+[通鑑要解]馳逐行陣이면 馬亦汗流하고 徒持文墨議論이어늘 反居臣等上 何也잇고
이제 소하蕭何는 일찍이 말이 땀을 흘린 수고로움이注+[通鑑要解]달려서 행군行軍하면 말 또한 땀이 흐르는 것이다. 있지 않고 한갓 문묵文墨만 잡고 의논하였는데도 도리어 신들의 위에 있음은 어째서입니까?” 하였다.
帝曰 諸君 知獵乎
황제가 말하기를 “제군들은 사냥하는 방법을 아는가?
追殺獸兎者注+[原註]漢書 無兎字 狗也 而發縱指示獸處者 人也注+[原註] 史記 作蹤하고 無音이요 漢書 作縱하고 音子用反이라[釋義] 發縱 解紲而縱放之也 指示 以手指示之也 若依史記하면 發蹤 謂發其蹤하야 指而示之也 孔氏曰 縱音子用反
짐승과 토끼를 쫓아가 잡는 것은注+[原註]추살수토자追殺獸兎者’는 《한서漢書》에는 토자兎字가 없다. 사냥개이고, 끈을 풀어놓아 짐승이 있는 곳을 가리켜 보이는 것은 사람이다.注+[原註]발종發縱이 《사기史記》에는 으로 되어 있고 이 없으며, 《한서漢書》에는 으로 되어 있고 자용子用이다. [釋義]발종發縱은 끈을 풀어서 놓아주는 것이고 지시指示는 손으로 가리켜 보이는 것이다. 만약 《사기史記》를 따르면 발종發蹤은 종적을 발견하여 가리켜 보여줌을 이른다. 공씨孔氏(孔毅父)가 말하였다. “자용子用이라고 한 것은 잘못이다.”
今諸君 徒能得走獸耳 狗也 至如蕭何하야는 發縱指示하니 人也라한대 群臣 皆莫敢言이러라
이제 제군들은 다만 달아나는 짐승을 잡았을 뿐이니 공이 개에 해당하고, 소하蕭何에 이르러서는 끈을 풀어놓아 가리켜 보였으니 공이 사람에 해당한다.” 하니, 여러 신하들이 모두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出史蕭相國世家〉
- 《사기史記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 나옴 -
○ 張良 爲謀臣하야 亦無戰鬪功이러니 帝使自擇齊三萬戶한대 良曰 臣 始起下邳注+[釋義]地志 東海郡下邳縣이라하야 與上會留하니 天以臣授陛下
장량張良모신謀臣이 되어 또한 전투한 공로가 없었는데, 황제가 스스로 지방의 3만 호를 고르게 하자, 장량張良이 말하기를 “신이 처음 하비下邳에서注+[釋義]하비下邳는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에 “동해군東海郡 하비현下邳縣이다.” 하였다.기병起兵하여 땅에서 만났으니, 이는 하늘이 신을 폐하에게 준 것입니다.
陛下用臣計하사 幸以時中하시니 臣願封留足矣 不敢當三萬戶로소이다 乃封張良하야 爲留侯하다
폐하께서 신의 계책을 써서 다행히 때로 맞으셨으니, 신은 에 봉해지면 충분하고 감히 3만 호를 감당하지 못하겠습니다.” 하니, 마침내 장량張良을 봉하여 유후留侯로 삼았다.
〈出留侯世家〉
-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옴 -
○ 封陳平하야 爲戶注+[釋義]秦時戶牖鄕 在陳留陽武縣하니 漢以爲東昏縣이라 括地志 東昏故城 在汴州陳留東北九十里하니 平辭曰 此 非臣之功也니이다
진평陳平을 봉하여 호유후戶牖侯注+[釋義]나라 때의 호유향戶牖鄕진류陳留 양무현陽武縣에 있으니, 나라 때에는 동혼현東昏縣이라고 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동혼東昏의 옛 변주汴州 진류陳留 동북쪽 90리 지점에 있다.” 하였다. 삼으니, 진평陳平이 사양하기를 “이는 신의 공이 아닙니다.” 하였다.
上曰 吾用先生謀計하야 戰勝克敵하니 非功而何 平曰 非魏無知 臣安得進이리잇고
이 말하기를 “내가 선생의 계책을 써서 싸워 승리하여 적을 이겼으니, 이 아니고 무엇인가?” 하니, 진평陳平이 말하기를 “위무지魏無知가 아니면 신이 어떻게 등용될 수 있었겠습니까?” 하였다.
上曰 若子 可謂不背本矣라하고 乃復賞魏無知하다
은 “그대와 같은 자는 근본을 저버리지 않는다고 이를 만하다.” 하고는 마침내 다시 위무지魏無知에게 상을 내렸다.
〈出陳丞相世家〉
- 《사기史記 진승상세가陳丞相世家》에 나옴 -
○ 帝以天下初定하고 子幼, 昆弟少하며 懲秦孤立而亡하야 欲大封同姓하야 以鎭撫天下할새
황제는 천하가 처음 정해졌고 아들이 어리고 형제가 적으며 나라가 고립되어 망한 것을 징계하여, 동성同姓을 크게 봉하여 천하를 진무鎭撫하고자 하였다.
立從兄賈하야 爲荊王하고 弟交爲楚王하고 兄喜爲代王하고 微時外婦之子肥爲齊王注+[通鑑要解]外婦 謂與傍通者 漢書高帝八子 孫夫人 生齊悼惠王肥하니라 齊形勝 次於秦中故 以封子肥也하다
그리하여 봄에 종형從兄 를 세워서 형왕荊王으로 삼고, 아우 초왕楚王으로 삼고, 형 대왕代王으로 삼고, 미천했을 때 외부外婦의 아들 제왕齊王으로 삼았다.注+[通鑑要解]외부外婦는 곁에 있는 자와 간통함을 이른다. 《한서漢書》에 “고제高帝의 여덟 아들 중에 손부인孫夫人나라 도혜왕悼惠王 를 낳았다.” 하였다. 나라 지형의 뛰어남이 나라 관중關中의 다음이기 때문에 아들 제왕齊王에 봉한 것이다.
〈出荊王賈及楚元王交等傳〉
- 《한서漢書》 〈형왕전荊王傳〉과 〈초원왕전楚元王傳〉에 나옴 -
[新增] 唐仲友曰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大封同姓 本以制異姓이나 然卒致七國之禍注+[附註]吳王濞 高帝兄仲之子 楚王(武)[戊]는 高帝弟交之孫이요 趙王遂 高帝子友之子 膠西王卬 膠東王雄渠 菑川王賢 濟南王辟光 皆高帝子齊王肥之子 約從謀反하니라하니라
동성同姓을 크게 봉함은 본래 이성異姓을 제압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끝내 칠국七國를 불러들였다.”注+[附註]오왕吳王 고제高帝의 아들이고, 초왕楚王 고제高帝의 아우인 의 손자이고, 조왕趙王 고제高帝의 아들 의 아들이고, 교서왕膠西王 교동왕膠東王 웅거雄渠치천왕菑川王 제남왕濟南王 벽광辟光은 모두 고제高帝의 아들인 제왕齊王 의 아들이니, 〈이들은 경제景帝 때에〉 연합하여 모반謀反하였다.
○ 上 已封大功臣二十餘人하고 其餘 日夜爭功不決이러니
이 이미 큰 공신 20여 명을 봉하고 그 나머지는 밤낮으로 공을 다투어 결단하지 못하였다.
在洛陽南宮하야 望見諸將하니 往往相與坐沙中偶語
낙양洛陽남궁南宮에 있으면서 여러 장수들을 바라보니, 왕왕 서로 백사장 가운데에 앉아서 함께 귓속말을 하였다.
上曰 此何語 留侯曰 陛下起布衣하사 以此屬으로 取天下어시늘 今爲天子 而所封 皆故人이요 所誅 皆仇怨이라
이 묻기를 “이들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하니, 유후留侯(張良)가 대답하기를 “폐하께서 포의布衣로 일어나시어 이들로 천하를 취하셨는데, 이제 천자가 되시자 봉한 것은 다 옛 친구들이고 죽인 것은 모두 원수나 원한이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相聚謀反耳니이다
그러므로 이들이 서로 모여 반란을 도모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憂之曰 爲之奈何 留侯曰 上 平生所憎 群臣所共知 誰最甚者잇고
이 걱정하여 말하기를 “어찌하면 좋은가?” 하자, 유후留侯가 대답하기를 “께서 평소 미워하는 사람 중에 여러 신하들이 함께 아는 것은 누가 가장 심한 자입니까?” 하니,
上曰 雍齒與我有故怨注+[通鑑要解]帝初起 令雍齒守豊이러니 齒雅不欲屬帝하야 卽以豊降魏 帝屢攻之後 克也하니라하야窘辱我하니 欲殺之로되 爲其功多故 不忍이로라
이 말하기를 “옹치雍齒가 나와 옛 원한이 있어서注+[通鑑要解]고제高帝가 처음 군사를 일으켰을 때에 옹치雍齒로 하여금 풍읍豊邑을 지키게 하였는데, 옹치雍齒가 평소 고제高帝에게 소속되기를 싫어하여 즉시 풍읍豊邑을 가지고 나라에 항복하였다. 그리하여 고제高帝가 여러 번 공격한 뒤에야 되찾을 수 있었다. 여러 번 나를 곤궁하게 하고 욕보였으니, 내가 그를 죽이고자 하였으나 공이 많기 때문에 차마 죽이지 못하였노라.” 하였다.
留侯曰 今 急先封雍齒하시면 則群臣 人人自堅矣리이다
유후留侯가 말하기를 “지금 급히 먼저 옹치雍齒를 봉해주시면 여러 신하들이 사람마다 스스로 안정될 것입니다.” 하였다.
於是 乃置酒하고 封雍齒爲什方侯注+[釋義]高祖功臣侯年表 作(計)[汁]邡하고 音什方이라하고 索隱註 又如字讀이라 縣屬廣漢郡하니 今漢州縣이라하고 而急趣(促)丞相御史하야 定功行封하니
이에 이 술자리를 베풀고 옹치雍齒를 봉하여 십방후什方侯注+[釋義]십방후什方侯가 《사기史記》 〈고조공신후연표高祖功臣侯年表〉에는 ‘즙방汁邡’으로 되어 있고 에 “십방什方이다.” 하였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는 또 ‘본래 글자대로 읽는다.’고 하였다. 광한군廣漢郡에 속하였으니, 지금의 한주현漢州縣이다. 삼고, 급히 승상丞相어사御史를 재촉하여 공을 결정해서 분봉分封을 시행하게 하였다.
群臣 罷酒 皆喜曰 雍齒 尙爲侯注+[原註]漢書云 雍齒且侯하니 我屬 無患矣라하더라
여러 신하들이 술자리가 파하자 모두 기뻐하여 말하기를 “옹치雍齒도 오히려 가 되었으니,注+[原註]옹치상위후雍齒尙爲侯’가 《한서漢書》에는 ‘옹치雍齒가 되었다.[雍齒且侯]’로 되어 있다. 우리들은 걱정할 것이 없다.” 하였다.
〈出留侯世家〉
-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에 나옴 -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張良 爲高帝謀臣하야 委以心腹하니 宜其知無不言이어늘 安有聞諸將謀反하고 必待高帝自見偶語然後 乃言之耶
장량張良고제高帝모신謀臣이 되어 심복心腹의 임무를 맡았으니, 마땅히 아는 것을 말하지 않음이 없어야 할 터인데, 어찌 제장諸將이 모반하려 한다는 말을 듣고도 반드시 고제高帝제장諸將들이 무리지어 귓속말을 하는 것을 직접 보기를 기다린 뒤에 비로소 말하였는가?
蓋以高帝初得天下하야 數用愛憎行誅賞하야 或時害至公하니 群臣 往往有觖望自危之心注+[釋義]觖望 猶言怨望也 一說 觖者 缺也 不滿所望而怨耳이라
이는 고제高帝가 처음 천하를 얻고서 자주 애증愛憎의 감정에 따라 을 시행하여 혹은 때로 지극히 공정함을 해치니, 군신群臣들이 왕왕 원망하여 스스로 위태롭게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였다.注+[釋義]결망觖望원망怨望이란 말과 같다. 일설一說에 “이니, 기대하던 바에 못 미쳐 원망하는 것이다.” 하였다.
因事納忠하야 以變移帝意하야 使上無阿私之失하고 下無猜忌之謀하야 國家無虞하고 利及後世하니 若良者 可謂善諫矣로다
그러므로 장량張良이 일로 인하여 충언忠言을 바쳐서 고제高帝의 생각을 바꾸게 하여, 위로는 아첨하는 실수가 없고 아래로는 시기하는 계책이 없어서 국가가 근심이 없고 이익이 후세에 미치게 한 것이니, 장량張良과 같은 자는 잘 간했다고 이를 만하다.”
[新增] 唐仲友曰
당중우唐仲友가 말하였다.
人但知子房爲雍齒言하고 不知爲救雲夢之失이니라
“사람들은 다만 자방子房옹치雍齒를 위하여 말한 것만 알고 운몽雲夢의 잘못을 바로잡은 줄은 알지 못한다.”
列侯畢已受封 詔定元功十八人位次注+[原註]蕭相國世家云 奏位次 ○ 高祖功臣表云 作十八侯之位次라하니라한대 皆曰 平陽侯曹參 身被七十創하고 攻城略地하야 功最多하니 宜第一이니이다
열후列侯가 모두 봉작封爵을 받자, 조칙을 내려 원공元功(元勳) 18명의 위차位次를 정하게 하니,注+[原註]사기史記》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는 “공신功臣위차位次를 아뢴 것이다.” 하였다. ○ 《사기史記》 〈고조공신표高祖功臣表〉에는 “18위차位次를 만든 것이다.” 하였다. 모두들 말하기를 “평양후平陽侯 조참曹參은 몸에 70군데의 상처를 입고 성을 공격하고 땅을 공략하여 공이 가장 많으니, 마땅히 제일이 되어야 합니다.” 하였다.
鄂千秋進曰 群臣議皆誤로소이다
악천추鄂千秋가 나와서 말하기를 “여러 신하들의 의논이 모두 잘못되었습니다.
夫曹參 雖有野戰略地之功이나 此特一時之事니이다
조참曹參이 비록 들에서 싸워 땅을 공략한 공이 있으나 이는 다만 한 때의 일일 뿐입니다.
與楚相距五歲 失軍亡衆하야 跳身注+[釋義] 音調 輕身走去也遁者어시늘 蕭何嘗從關中하야 遣軍補其處하고 又軍無見(現)糧이어늘 蕭何轉漕關中하야 給食不乏하고 陛下雖數亡山東이나 何常全關中하야 以待陛下하니 萬世之功也니이다
나라와 5년 동안 서로 대치하여 군대를 잃고 무리를 잃어 단신單身으로注+[釋義]는 음이 조이니, 도신跳身은 가볍게 경무장하고 달아나는 것이다. 도망한 것이 여러 번이었는데 소하蕭何가 항상 관중關中에서 군대를 보내어 그 빈 곳을 보충하였고, 또 군대가 당장 먹을 양식이 없었는데 소하蕭何관중關中에서 전조轉漕하여 식량을 공급해서 양식이 떨어지지 않았으며, 폐하가 비록 여러 번 산동山東을 잃었으나 소하蕭何가 항상 관중關中을 온전히 하여 폐하를 기다렸으니, 이는 만대의 공로입니다.
今雖參等百數 何缺於漢이완대 奈何欲以一旦之功으로 而加萬世之功哉리잇고
이제 비록 조참曹參 등은 백 명이 없다 한들 나라에 무슨 결함이 되기에 어찌하여 하루아침의 공을 가지고 만대의 공 위에 올려 놓으려 한단 말입니까?
蕭何第一이요 曹參 次之니이다
소하蕭何가 제일이요, 조참曹參은 그 다음입니다.” 하였다.
上曰 善타하고
이 “옳다.”
於是 乃賜蕭何帶劍履上殿하고 入朝不趨注+[頭註]古者 君必帶劍하니 衛身且昭武備也 秦法 群臣上殿 不得持尺寸之兵하니라 草曰菲 麻曰屨 皮曰履 所以從軍이니 軍容不入國이라 故皆不許上殿이라 又趨君前 必崇敬故也 今賜劍履上殿入朝不趨 皆殊禮也하다
하고 마침내 소하蕭何에게 칼을 차고 무신이 신는 신을 신고 대전大殿에 오르며 조정에 들어올 때에 종종걸음으로 달리지 않도록 특전을 내렸다.注+[頭註]옛날에 임금은 반드시 검을 차니, 몸을 호위하고 또 무비武備를 밝히기 위해서이다. 나라의 에 신하들은 대전大殿에 올라갈 때에 한 치나 한 자의 병기도 휴대할 수가 없었다. 짚으로 만든 신을 라 하고, 삼으로 만든 신을 라 하고, 가죽으로 만든 신을 라 하는 바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가는 것이니 군복 차림으로는 국도國都에 들어갈 수가 없으므로 모두 대전大殿에 올라옴을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또 임금의 앞에서 종종걸음 치는 것은 군주를 높이고 공경하기 때문이니, 이제 검을 하사해 주고 가죽신을 신고 대전大殿 위에 올라오며 조정에 들어와 종종걸음 치지 않게 함은 모두 〈소하蕭何에게만은 특전을 내려〉 특별히 예우한 것이다.
上曰 吾聞進賢受上賞이라하니 蕭何功雖高 得鄂君하야 乃益明이라하고 於是 封鄂千秋하야 爲安平侯하다
은 말하기를 “내가 듣건대 어진 이를 추천하면 최고의 상을 받는다고 하였으니, 소하蕭何의 공이 비록 높으나 악군鄂君을 얻어서 더욱 분명해졌다.” 하고는 이에 악천추鄂千秋를 봉하여 안평후安平侯를 삼았다.
〈出蕭相國世家〉
- 《사기史記 소상국세가蕭相國世家》에 나옴 -
○ 初 匈奴畏秦하야 北徙十餘年이러니 及秦滅 匈奴復稍南渡러라
처음에 흉노匈奴나라를 두려워하여 북쪽으로 옮겨간 지 10여 년이었는데, 나라가 멸망하자 흉노匈奴가 다시 차츰 남쪽으로 건너왔다.
單于頭曼注+[釋義]頭曼 單于之名이라 有太子하니이라
선우單于 두만頭曼에게注+[釋義]두만頭曼선우單于의 이름이다. 태자가 있었으니, 이름을 묵특冒頓이라 하였다.
自立爲單于하야 遂滅東胡하고 走月注+[釋義] 驅而走之也 月氏 西域國이니 初在蔥嶺西安息東이러니 後爲匈奴擊破하고 遂分爲兩種하야 遠去過大하야 西擊大夏而臣之하니 都嬀水北者 爲大月氏 其餘小衆 保南山羌者 號小月氏 去陽關幾萬里 或曰 氏 音支 〈字〉或作支 括地志 涼甘(蕭)[肅]延沙等州 本月氏地하고 侵燕, 代하다
그는 스스로 서서 선우單于가 되어 마침내 동호東胡를 멸망시키고 월지月氏를 패주시키고注+[釋義]는 몰아서 달아나게 하는 것이다. 월지月氏서역西域의 나라이니, 처음에 총령蔥嶺의 서쪽, 안식국安息國의 동쪽에 있었는데, 뒤에 흉노匈奴에게 격파당하고 마침내 둘로 나뉘어 멀리 떠나 대완大宛을 지나 서쪽으로 대하大夏를 공격해서 신하로 삼으니, 규수嬀水 북쪽에 도읍한 것은 대월지大月氏이고, 그 나머지 소수의 무리가 남산南山을 보전한 것은 소월지小月氏라고 이름하였는 바, 양관陽關과의 거리가 수만 리이다. 혹자는 이르기를 “는 음이 지이고 글자를 혹 로도 쓴다.” 하였다. 《괄지지括地志》에 “양주涼州감주甘州숙주肅州연주延州사주沙州 등이 본래 월지月氏의 땅이다.” 하였다. 지방을 침략하였다.
是時 漢, 楚相距하야 中國於兵革이라
이때 나라와 나라가 서로 대치하여 중국이 전란에 피폐하였다.
以故 冒頓 得自强하야 控弦之士注+[釋義] 引也 謂能滿引弓弩者 三十餘萬이라
이 때문에 묵특冒頓이 스스로 강해질 수가 있어서 활을 당겨 쏘는 힘센 군사가注+[釋義]은 당김이니, 공현지사控弦之士는 활과 쇠뇌를 가득히 당길 수 있는 자를 이른다. 30여만 명이었다.
圍韓王信注+[頭註]故韓襄王孽子 高祖二年 爲韓王하니라於馬邑한대 以馬邑降하니 匈奴冒頓 因引兵南踰句注하야 攻太原하야 至晉陽하다
한왕韓王 마읍馬邑에서 포위하자 한왕韓王 注+[頭註]한왕韓王 은 옛날 나라 양왕襄王서자庶子이니, 고조高祖 2년에 한왕韓王으로 삼았다.마읍馬邑을 가지고 항복하니, 흉노 묵특冒頓이 인하여 병력을 인솔하고 남쪽으로 내려와서 구주句注를 넘어 태원太原을 공격하여 진양晉陽에 이르렀다.
〈出匈奴傳〉
- 《사기史記 흉노열전匈奴列傳》에 나옴 -
○ 帝悉去秦苛儀法하야 爲簡易하니 群臣 飮酒爭功하고 醉或妄呼하고 拔劍擊柱어늘 帝益厭之
황제가 나라의 까다로운 의법儀法(의식과 예법)을 모두 제거하여 간이簡易하게 하니, 여러 신하들이 술을 마시고 공을 다투며, 취하면 혹 함부로 고함치고 검을 뽑아 기둥을 치기도 하니, 황제가 더욱 이를 싫어하였다.
叔孫通 說上曰 儒者 難與進取 可與守成이니
숙손통叔孫通을 설득하기를 “유자儒者는 함께 진취進取하기는 어렵고 함께 수성守成은 할 수 있습니다.
願徵魯諸生하야 與臣弟子 共起朝儀하노이다 帝曰 得無難乎
신은 원컨대 지방의 여러 유생儒生들을 불러 신의 제자와 함께 조정의 예의를 기초起草하였으면 합니다.” 하니, 황제가 “어렵지 않겠는가?” 하고 물었다.
通曰 五帝異樂하고 三王不同禮하니 二者 因時世人情하야 爲之者也
숙손통叔孫通이 대답하기를 “오제五帝는 음악을 달리하였고 삼왕三王가 같지 않으니, 두 가지는 시대時代인정人情을 따라 절문節文하는 것입니다.
願采古禮與秦儀하야 雜就之하노이다 上曰 可하다
신은 원컨대 옛날의 나라의 의식儀式을 채택하여 섞어서 만들었으면 합니다.” 하니, 이 “가하다.
試爲之호되 令易知하야吾所能行하야 爲之하라
시험 삼아 만들되 알기 쉽게 하여 내가 행할 수 있는가를 헤아려 만들도록 하라.” 하였다.
魯有兩生 不肯行曰 今 天下初定하야 死者未葬하고 傷者未起어늘 又欲起禮樂하니 禮樂所由起 積德百年而後 可興也注+[頭註]言行德敎百年然後 可起禮樂이라
지방에 두 유생이 가려고 하지 않으며 말하기를 “지금 천하가 갓 평정되어 죽은 자를 아직 장례 하지 못하였고 부상한 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는데, 또다시 예악禮樂을 일으키고자 하니, 예악禮樂이 말미암아 일어나는 것은 을 쌓은 지 백 년이 된 뒤에야 일으킬 수 있는 것이다.注+[頭註]덕교德敎를 백 년 동안 행한 뒤에야 예악禮樂을 일으킬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吾不忍爲公所爲로니 公往矣어다
나는 이 하는 짓을 차마 할 수가 없으니, 은 가라.” 하였다.
叔孫通 笑曰 鄙儒不知時變이라하고 遂與所徵하야 及上左右爲學者 與其弟子百餘人으로하야 野外習之注+[原註] 立竹及茅索營之하야 習禮於其中也[釋義] 緜蕞 表位標準也 一說 謂置設緜索하야 爲習肄處 謂以茅翦植地하야 爲(蕞)[纂]位尊卑之次하다
숙손통叔孫通이 웃으며 말하기를 “비루한 유자儒者가 시대의 변화를 알지 못하는구나.” 하고는 마침내 불러온 30명과 함께 서쪽으로 가서 의 좌우 신하 중에 학문을 한 자와 그의 제자 백여 명과 함께 면최緜蕞을 만들어 야외에서 익혔다.注+[原註]은 대나무와 띠풀의 새끼줄을 세워 자리를 만들어서 그 가운데에서 를 익힌 것이다. [釋義]면최緜蕞은 자리를 표시하는 표준標準이다. 일설一說에 “은 끈을 설치하여 〈조회하는 의식을〉 익히는 곳을 만듦을 이르고, 은 띠풀을 잘라 땅에 세워 존비尊卑의 위차를 자리매김을 이른다.” 하였다.
역주
역주1 [譯註]陳季雅 : 字가 彦章이니 永嘉 사람이다. 氣質이 超邁하고 스스로 자기 재주를 자랑하여 스승에게 배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으며 고금의 문자를 뽑아 외우고 탐색하였는 바, 저서로는 《兩漢博議》 등의 책이 있다.
역주2 : 시
역주3 : 國都의 소재지를 이르는 바, 도읍으로 삼는 것이다.
역주4 : 찬
역주5 : 자
역주6 : 종
역주7 : 종
역주8 : 유
역주9 : 삭
역주10 元功十八人位次 : 元功은 공로가 가장 큼을 이르며, 位次는 지위의 서열을 이르는 바, 18명은 蕭何, 曹參, 張敖, 周勃, 樊噲, 酈商, 奚涓, 夏侯嬰, 灌嬰, 傅寬, 靳歙, 王陵, 陳武, 王吸, 薛歐, 周昌, 丁復, 蟲達을 이른다.
역주11 : 삭
역주12 : 무
역주13 冒頓 : 묵특
역주14 : 지
역주15 : 원
역주16 : 피
역주17 控弦之士 : 匈奴는 弓矢가 주요 무기이므로 士卒들을 控弦之士라 칭하였다.
역주18 [譯註]節文 : 節은 品節로 절도에 맞게 하는 것이고, 文은 文飾을 가하여 문채가 나게 하는 것이다.
역주19 : 탁
역주20 [譯註]三十人西 : 西는 魯 지방으로부터 길을 떠나 서쪽으로 關中(長安)에 들어간 것이다.
역주21 緜蕞 : 면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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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자] 6년 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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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경자] 6년

통감절요(2)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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