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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6)

통감절요(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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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6)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酉] 〈齊永明十一年이요 魏太和十七年이라
계유(493) - 나라 영명永明 11년이고, 나라 태화太和 17년이다. -
魏主以平城地寒하야 六月雨雪하고 風沙常起라하야 將遷都洛陽할새 恐群臣不從하야 乃議大擧伐齊하다
위주魏主가 수도인 평성平城 지방이 추워서 6월에도 눈이 내리고 바람에 날리는 모래가 항상 일어난다 하여 낙양洛陽으로 천도하려 할 적에 여러 신하들이 따르지 않을까 염려하여 마침내 크게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칠 것을 의논하였다.
秋七月 魏主發平城하니 步騎三十萬이러라
가을 7월에 위주魏主평성平城을 출발하니, 보병과 기병이 30만 명이었다.
○ 七月 齊主不豫하야 以朝事 委西昌侯鸞注+[頭註]齊王兄道生之子이러니 齊主殂하니 奉太孫鬱林王注+[頭註]昭業이라 永明十一年正月 皇太子長懋薨하니 立長懋子昭業하야 爲皇太孫하니라하야 立之하다
○ 7월에 제주齊主가 몸이 편찮아서 조정의 일을 서창후西昌侯 소란蕭鸞注+[頭註]서창후西昌侯 소란蕭鸞제왕齊王(高帝 소도성蕭道成)의 형인 소도생蕭道生의 아들이다. 에게 맡겼는데 제주齊主가 죽으니, 소란蕭鸞태손太孫울림왕鬱林王注+[頭註]울림왕鬱林王소소업蕭昭業이다. 영명永明 11년(493) 정월에 황태자皇太子 소장무蕭長懋하니, 소장무蕭長懋의 아들 소소업蕭昭業을 세워서 황태손皇太孫으로 삼았다. 을 받들어 그를 세웠다.
世祖留心政事하야 務摠大體하고 嚴而有斷하며 郡縣 久於其職하고 長吏犯法이어든 行誅
세조世祖(武帝)는 정사에 유념하여 대체大體를 총괄하는 데 힘쓰고 엄격하고 결단력이 있었으며, 군현郡縣의 관리들이 직책을 오랫동안 맡게 하고 고관高官이 법을 범하면 사자使者에게 보검寶劍을 내려 주벌을 행하였다.
永明之世 百姓豐樂하고 賊盜屛息이라
그러므로 영명永明 연간에는 백성들이 풍요롭고 즐거우며 도적들이 숨을 죽였다.
이나 頗好遊宴華靡注+[通鑑要解] 麗也之事하야 常言恨之 未能頓遣注+[通鑑要解] 遽也 祛也 言未能祛逐遊宴之失也이라
그러나 자못 놀고 잔치하며 화려하고 사치함注+[通鑑要解]는 고움(화려함)이다. 을 일삼기를 좋아하여 항상 이것을 한다고 말하였으나 대번에 제거하지는 못하였다.注+[通鑑要解]은 갑자기이고 은 제거하는 것이니, 놀고 잔치하는 잘못을 제거하여 없애지는 못함을 말한 것이다.
魏主自發平城으로 至洛陽 霖雨不止
위주魏主평성平城을 출발하여 낙양洛陽에 이를 때까지 장맛비가 그치지 않았다.
乃詔諸軍前發注+[頭註]前進也할새 帝戎服執鞭하고 乘馬而出하니
마침내 제군諸軍에 명하여 전진注+[頭註]전발前發은 전진하는 것이다. 하게 할 적에 황제가 군복 차림에 채찍을 잡고 말을 타고서 나가니,
尙書李沖等曰 今者之擧 天下所不願이어늘 唯陛下欲之하시니 不知陛下獨行하야 竟何之也니이다
상서尙書 이충李沖 등이 말하기를 “이번 거조擧措는 천하 사람은 원하지 않고 오직 폐하께서만 하고자 하시니, 신은 폐하께서 홀로 가시어 끝내 어디로 가려 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다.
帝乃諭群臣曰 朕 世居幽朔하야 欲南遷中土하노니 苟不南伐이면 當遷都於此하리라
황제가 마침내 여러 신하들에게 타이르기를 “은 대대로 북쪽 지역에 거주하면서 남쪽인 중원中原 땅으로 천도하고자 하였으니, 만일 남쪽을 정벌하지 않겠다면 이곳으로 천도하겠다.” 하였다.
雖不願內徙 而憚於南伐하야 無敢言者
이때 북쪽에서 온 사람들은 내지內地로 옮겨 가기를 원치 않았으나 남쪽을 정벌하는 것을 꺼려서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다.
遂定遷都之計하다
마침내 낙양洛陽으로 천도하는 계획을 확정하였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武帝纘位之初 詔免逋租하야 革晉宋之敝政하니 中外欣悅이라
무제武帝(蕭賾)가 황제의 자리를 계승한 초기에 조서를 내려 밀린 조세를 면제해 주어 나라와 나라의 폐단이 많은 정사를 개혁하니, 중외中外에서 기뻐하였다.
總攬大體하야 每以富國爲先하고 嚴明有斷하며 郡縣 久於其職하고 長吏犯法 封刃行誅
대체大體를 총괄하여 매번 국가를 부강하게 함을 우선으로 여겼고, 엄격하고 결단력이 있었으며, 군현郡縣의 관리들이 직책을 오랫동안 맡고 고관高官이 법을 범하면 사자使者에게 보검寶劍을 내려 주벌을 행하였다.
永明之世 外表無塵하고 內朝多豫하야 百姓豐樂하고 盜賊屛息하니 雖宮室園囿 頗好華靡 然亦可謂齊之良主也로다
그러므로 영명永明 연간에는 지방에 난리가 없고 조정에 즐거운 일이 많아서 백성들이 풍요롭고 즐거워하였으며 도적들이 숨을 죽이니, 비록 궁실宮室원유園囿를 꾸밀 때 자못 화려하고 사치함을 좋아하였으나 또한 나라의 어진 군주라 이를 만하다.”
역주
역주1 封刃 : 칼을 봉함해 주는 것으로, 使者에게 生死與奪의 大權을 위임함을 이른다. 속칭 尙方寶劍과 같으니, 항상 누런 비단으로 칼을 싸서 봉함하기 때문에 封刃이라고 이르는 것이다.
역주2 舊人 : 舊人은 魏나라와 함께 북쪽 변방에서 일어난 자들의 자손들을 이르니, 곧 이른바 國人이란 것이다.

통감절요(6)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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