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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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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乙巳]永泰元年이라
영태永泰 원년元年(을사 765)
以李抱眞으로 爲澤潞節度副使注+[釋義]澤潞 卽昭義藩鎭也 有州五하니 曰彬, 汾, 晉, 澤, 潞 하다
이포진李抱眞택로절도부사澤潞節度副使로 임명하였다.注+[釋義]택로澤潞는 곧 번진藩鎭이다. 다섯 개의 를 보유하였으니, 빈주彬州, 분주汾州, 진주晉州, 택주澤州, 노주潞州이다.
抱眞以山東有變하고 上黨爲兵衝이어늘 而荒亂之餘 土瘠民困하야 無以贍軍이라하야
이포진李抱眞은 ‘산동山東 지방에 변란이 있고 상당上黨은 군대의 요충지인데, 흉년이 들고 난리를 겪은 뒤에 토지가 척박하고 백성들이 곤궁하여 군량을 공급할 수 없다.’고 생각하였다.
乃籍民三丁하고 選一壯者하야 免其租徭하고 給弓矢하야 使農隙習射하고 歲暮都試注+[釋義]都試 謂總閱試習武備也 하야 行其賞罰하니 比三年 得精兵二萬이라
그리하여 마침내 백성 3을 장부에 올리고, 이 가운데 한 명의 건장한 자를 선발하여 조세와 요역(부역)을 면제해준 다음 활과 화살을 지급하여 농한기에 활쏘기를 익히게 하고 세모歲暮(年末)에 모두 시험하여注+[釋義]도시都試는 모두 사열하여 무비武備를 시험하고 훈련시킴을 이른다. 상벌賞罰을 시행하니, 3년 만에 정예병 2만 명을 얻었다.
旣不費廩給하고 府庫充實하야 遂雄視山東하니 由是 天下稱澤潞步兵하야 爲諸道最하니라
그리하여 이미 국고로 지급하는 것을 허비하지 않고 또 부고府庫가 충실해져서 마침내 산동山東 지방의 으뜸이 되니, 이로 말미암아 천하가 택로澤潞의 보병을 칭하여 여러 도의 으뜸이라 하였다.
○ 吐蕃 遣使請和어늘 詔元載, 杜鴻漸注+[頭註]兵部侍郞이라 하야 與盟於興唐寺하다
토번吐蕃이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하자, 원재元載두홍점杜鴻漸에게 명하여注+[頭註]두홍점杜鴻漸병부시랑兵部侍郞이다. 토번吐蕃과 함께 흥당사興唐寺에서 맹약하게 하였다.
問郭子儀호되 吐蕃 請盟하니 何如 對曰 吐蕃 利我不虞注+[釋義]이요 不虞 猶言不意也 我不虞度이면 則彼之利 하니 若不虞而來 國不可守矣리이다
곽자의郭子儀에게 묻기를 “토번吐蕃이 맹약을 청하니, 어떠한가?” 하니, 대답하기를 “토번吐蕃은 우리가 적의 침략을 대비하지 않는 것을 이롭게 여기니,注+[釋義]는 요행으로 여기는 것이요, 는 헤아림이니 불우不虞불의不意라는 말과 같다. 우리가 적의 침공에 대비할 것을 헤아리지 않으면 저들의 이익인 것이다. 만약 대비하지 않고 있다가 뜻밖에 적들이 쳐들어온다면 나라를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하였다.
乃相繼遣河中兵하야 戍奉天하고 又遣兵巡涇原하야 以覘之하다
이에 서로 이어 하중河中의 군대를 보내어 봉천奉天을 지키게 하고, 또 군대를 보내어 경원涇原 지방을 순시하면서 엿보게 하였다.
○ 時 成德節度使李寶臣 魏博節度使田承嗣 相衛節度使薛嵩 盧龍節度使李懷仙 收安史餘黨하야 各擁勁卒數萬하야 治兵完城하고 自署文武將吏注+[頭註] 謂署置之也 하고 不供貢賦호되 朝廷 專事姑息하야 不能復制하니 雖名藩臣이나 羇縻注+[頭註] 馬絡頭也 繫也 而已러라
이때에 성덕절도사成德節度使 이보신李寶臣위박절도사魏博節度使 전승사田承嗣상위절도사相衛節度使 설숭薛嵩노룡절도사盧龍節度使 이회선李懷仙안녹산安祿山사사명史思明의 남은 무리를 수습해서 각각 강성한 병졸 수만 명을 보유하여 군대를 다스리고 성을 완전하게 하고는 스스로 문무文武의 장수와 관리들을 임명하고注+[頭註]서치署置(관리 임명)하는 것을 이른다. 공부貢賦를 바치지 않았으나 조정朝廷에서는 오로지 고식姑息을 일삼아서 더 이상 통제하지 못하니, 비록 번신藩臣이라고 이름하였으나 겉으로만 매여 있을注+[頭註]는 말굴레이고, 는 얽어매는 것이다. 뿐이었다.
○ 九月 僕固懷恩 誘回紇, 吐蕃, 吐渾, 党項, 奴注+[頭註]剌音이니 卽渾剌奴也 吐谷渾 自稱渾王이라 以渾奴剌名之하니라數十萬衆하야 俱入寇하고 懷恩 又以朔方兵繼之어늘
9복고회은僕固懷恩회흘回紇, 토번吐蕃, 토욕혼吐谷渾, 당항党項, 노랄奴剌注+[頭註]은 음이 랄이니, 바로 혼랄노渾剌奴이다. 토욕혼吐谷渾이 스스로 혼왕渾王이라 칭하였다. 그러므로 혼노랄渾奴剌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등 수십만의 병력을 유인하여 함께 쳐들어와 침략하였으며, 복고회은僕固懷恩이 또 삭방朔方의 군대를 거느리고 뒤이어 왔다.
郭子儀使諸道節度使 各出兵하야 以扼其衝要하니 從之하다
곽자의郭子儀가 여러 도의 절도사節度使로 하여금 각각 군대를 내어 요충지를 굳게 지키게 하니, 이 그의 말을 따랐다.
懷恩 中途 遇暴疾而歸라가 死於鳴沙하니 范志誠注+[頭註]懷恩之將이라 領其衆하니라
복고회은僕固懷恩이 도중에 폭질暴疾(갑작스럽게 앓는 병)에 걸려 돌아가다가 명사鳴沙에서 죽으니, 범지성范志誠注+[頭註]범지성范志誠복고회은僕固懷恩의 장수이다. 그 무리를 거느렸다.
○ 懷恩 拒命三年 再引胡寇하야 爲國大患호되 猶爲之隱하야 前後制勅 未嘗言其反이러니
복고회은僕固懷恩이 황제의 명령에 항거한 3년 동안 두 번 오랑캐들을 이끌고 침략하여 나라의 큰 환란이 되었으나 은 오히려 그를 위해 숨겨주어서 전후에 내린 제칙制勅에 일찍이 그의 반란을 언급하지 않았었는데,
及聞其死하고 憫然曰 懷恩 不反이요 爲左右所誤耳라하니라
그가 죽었다는 말을 듣자 측은히 여겨 말하기를 “복고회은僕固懷恩은 배반하지 않았고 좌우의 사람들 탓에 잘못되었을 뿐이다.” 하였다.
○ 丙寅 回紇, 吐蕃 合兵圍涇陽이어늘 子儀命諸將하야 嚴設守備而不戰하다
병인일丙寅日(10월 8일)에 회흘回紇토번吐蕃이 병력을 연합하여 경양涇陽을 포위하자, 곽자의郭子儀제장諸將들에게 명하여 엄하게 수비하고 싸우지 않게 하였다.
是時 回紇, 吐蕃 聞僕固懷恩死하고 爭長不相睦하야 分營而居하니 子儀知之
이때 회흘回紇토번吐蕃복고회은僕固懷恩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우두머리 자리를 다투어 서로 화목하지 못해서 진영을 나누어 거처하고 있었는데, 곽자의郭子儀가 이것을 알았다.
回紇 在城西어늘 子儀使牙將注+[頭註] 見二十六卷하니라 李光瓚等으로 往說之하야 欲與之共擊吐蕃이러니 回紇 不信하고 曰 郭公 固在此乎
회흘回紇의 군대가 성 서쪽에 있었는데 곽자의郭子儀아장牙將注+[頭註]는 26 아문牙門에 보인다. 이광찬李光瓚 등으로 하여금 가서 설득하여 회흘回紇과 함께 토번吐蕃을 공격하고자 하였으나 회흘回紇이 믿지 않고 말하기를 “곽공郭公이 참으로 이곳에 있는가?
汝紿我耳로다
네가 나를 속이는 것이다.
若果在此 可得見乎
만약 과연 이 곳에 있다면 만나볼 수 있는가?” 하였다.
光瓚 還報한대 子儀曰 今 衆寡不敵하니 難以力勝이라
이광찬李光瓚이 돌아와 보고하자, 곽자의郭子儀가 말하기를 “지금 적들은 병력이 많고 우리는 병력이 적어 대적하지 못하니, 힘으로는 이기기 어렵다.
與回紇 契約甚厚하니 不若挺身注+[頭註] 直也 特也 往說
옛날에 우리가 회흘回紇과 맹약하기를 매우 친하게 하였으니, 내가 혼자 가서 설득하는 것만 못하다.注+[頭註]은 곧음이고 혼자이다.
不戰而下라하고 遂與數騎 開門而出하야 使人傳呼曰 令公來라하니 回紇 大驚이러라
이렇게 하면 싸우지 않고 항복시킬 수 있다.” 하고는 마침내 몇 명의 기병과 함께 성문을 열고 나가서 사람을 시켜 전달하여 고함치게 하기를 “영공令公이 오신다.” 하니, 회흘回紇이 크게 놀랐다.
其太帥藥葛羅 可汗之弟也
그의 태수太帥 약갈라藥葛羅가한可汗의 아우였다.
執弓注矢하고 立於陳前이어늘 子儀免冑釋甲하고 投槍而進하니 回紇諸酋長 相顧曰 是也라하고下馬羅拜
활을 잡고 화살을 메기고 진영의 앞에 서 있었는데, 곽자의郭子儀가 투구를 벗고 갑옷을 벗고는 창을 던지고 전진하니, 회흘回紇의 여러 추장酋長들이 서로 돌아보고 말하기를 “영공令公이 맞다.” 하고는 모두 말에서 내려 늘어서서 절하였다.
子儀亦下馬하야 前執藥葛羅手注+[頭註] 進也 하고 讓之注+[頭註] 責也
곽자의郭子儀 또한 말에서 내려 앞으로 나아가 약갈라藥葛羅의 손을 잡고注+[頭註]은 앞으로 나아감이다. 꾸짖기를注+[頭註]은 꾸짖음이다.
汝回紇 有大功於唐注+[頭註]大功於唐 謂擧兵助唐하야 平安史也 하고 唐之報汝 亦不薄이어늘
“너희 회흘回紇나라에 큰 공이 있고注+[頭註]나라에 큰 공이 있다는 것은 군대를 일으켜 나라를 도와서 안녹산安祿山사사명史思明을 평정하였음을 말한다. 나라가 너희에게 보답한 것 또한 박하지 않은데,
奈何負約하고 深入吾地하야 (浸)[侵]逼하야 棄前功하고 結怨仇하야 背恩德而助叛臣하니 何其愚也
어찌하여 맹약을 저버리고 우리 땅에 깊이 쳐들어와서 기현畿縣을 침략하고 핍박하여 전날의 공을 버리고 원한을 맺어 은덕恩德을 저버리고 배반한 신하(僕固懷恩)를 도우니, 어쩌면 그리도 미련한가.
且懷恩 叛君棄母注+[通鑑要解]謂懷恩阻兵汾州러니 旣而 叛歸靈武하야 棄母於汾州也 하니 於汝國 何有리오
복고회은僕固懷恩이 군주를 배반하고 어머니를 버렸으니,注+[通鑑要解]군주를 배반하고 어머니를 버렸다는 것은 복고회은僕固懷恩분주汾州에서 군대를 믿고 있었는데, 얼마 후 배반하여 영무靈武로 돌아가면서 어머니를 분주汾州에 버림을 이른다. 너희 나라에 무슨 상관이 있는가.
今吾挺身而來하야 聽汝執我而殺之하노니 我之將士必致死하야 與汝戰矣리라
지금 내가 혼자 와서 너희가 나를 붙잡아 죽이도록 맡기노니, 너희가 나를 죽이면 우리 장병들이 사력을 다하여 너희와 싸울 것이다.” 하였다.
藥葛羅曰 懷恩 欺我하야 言天可汗注+[頭註]見三十四卷하니 太宗因四夷之請하야 稱天可汗하니라 已晏駕하고 令公 亦捐館注+[頭註]不欲斥言死故 託云捐館하니 하야 中國無主라하야늘 我是以 敢與之來러니
약갈라藥葛羅가 말하기를 “복고회은僕固懷恩이 우리들을 속여 말하기를 ‘천가한天可汗(당나라 황제)이注+[頭註]천가한天可汗은 34에 보이니, 태종太宗사이四夷청원請願으로 인하여 자신을 천가한天可汗이라 칭하였다. 이미 승하하셨고 영공令公 또한 죽어서注+[頭註]죽음을 곧바로 지척하여 말하려 하지 않으므로 가탁하여 연관捐館이라 하였으니, 은 관사이다. 중국에 군주가 없다.’ 하므로 내가 이 때문에 감히 복고회은僕固懷恩과 함께 중국에 왔었는데,
今知天可汗在上都하시고 令公 復摠兵於此하고 懷恩 又爲天所殺하니 我曹豈肯與令公戰乎잇가
이제 천가한天可汗상도上都에 계시고 영공令公이 다시 이곳에서 군대를 통솔하심을 알았으며 복고회은僕固懷恩이 또 하늘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니, 우리들이 어찌 영공令公과 싸우기를 즐겨 하겠습니까.” 하였다.
子儀乃說之曰 吐蕃 無道하야 乘我國有亂하야 不顧舅甥之親注+[頭註]貞觀二十年 以文成公主 嫁吐蕃하니라하고 呑噬我邊鄙注+[頭註]鄙亦邊也 하고 焚蕩我畿甸하니 其所掠之財 不可勝載
곽자의郭子儀가 마침내 설득하기를 “토번吐蕃무도無道하여 우리나라에 난리가 있는 틈을 타서 구생舅甥간의 친함을 돌아보지 않고,注+[頭註]구생舅甥(장인과 사위)의 친함이란 정관貞觀 20문성공주文成公主토번吐蕃에게 시집보냈으므로 말한 것이다. 우리의 변비邊鄙(변경)를 삼키고注+[頭註] 또한 변방이다. 우리 기전畿甸을 분탕질하니, 그들이 노략질한 재물을 이루 다 싣고 갈 수 없을 정도이다.
天以賜汝시니 不可失也니라
이는 하늘이 너에게 주시는 것이니,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하였다.
藥葛羅曰 吾爲懷恩所誤하야 負公誠深하니 今請爲公하야 盡力擊吐蕃하야 以謝過호리이다
약갈라藥葛羅가 말하기를 “우리가 복고회은僕固懷恩 탓에 잘못되어 을 저버림이 실로 깊으니, 지금 공을 위하여 힘을 다해 토번吐蕃을 공격해서 사과할 것을 청합니다.” 하였다.
回紇觀者 左右爲兩翼稍前이어늘 子儀麾下亦進한대 子儀揮手却之하고 因取酒하야 與其酋長共飮하다
회흘回紇의 구경하는 자들이 양 날개처럼 좌우로 나뉘어 점점 앞으로 나오자 곽자의郭子儀의 휘하 또한 앞으로 나오니, 곽자의郭子儀가 손을 저어 퇴각시키고 인하여 술을 가져다가 그 추장酋長들과 함께 술을 마셨다.
子儀遺之絹三千匹하고 竟與定約而還하니 吐蕃 聞之하고引兵遁去하다
곽자의郭子儀가 비단 3천 필을 회흘回紇에 보내고 끝내 그들과 맹약을 정하고 돌아오니, 토번吐蕃이 이 소식을 듣고 밤에 군대를 이끌고 도망갔다.
藥葛羅帥衆追吐蕃이어늘 子儀使白元光으로 帥精騎하야 與之俱戰於靈臺注+[頭註]縣名이라 西原하야 大破之하고 殺吐蕃萬計하다
약갈라藥葛羅가 군대를 이끌고 토번吐蕃을 추격하였는데, 곽자의郭子儀백원광白元光으로 하여금 정예 기병을 인솔하게 하여 회흘回紇과 함께 영대현靈臺縣注+[頭註]영대靈臺의 이름이다. 서원西原에서 토번吐蕃과 교전하여 크게 격파하고 토번吐蕃을 죽인 것이 만 명으로 헤아려졌다.
[史略 史評]胡氏曰
[史略 사평史評]胡氏(胡寅)가 말하였다.
孔子謂 言忠信, 行篤敬이면 雖蠻貊之邦이라도 行矣라하시니
공자孔子께서 이르시기를, ‘말이 충신忠信하고 행실이 독경篤敬(篤厚하고 공경恭敬)하면 비록 오랑캐 나라라도 행해진다.’ 하셨다.
子儀輕騎見虜로되 非惟虜不敢害 又聽其言하야 講解而去하야 賢於數十萬衆力戰之功 惟忠信足以感動之而已矣
곽자의郭子儀경무장輕武裝한 기병으로 오랑캐를 만났으나, 오랑캐가 감히 해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또 그의 말을 듣고서 강해講解하고 떠나가서 수십만 명이 힘써 싸운 보다 나았던 것은 오직 충신忠信이 그들을 충분히 감동시켰기 때문일 뿐이다.
然忠信 非可一日而爲也
그러나 충신忠信은 하루 아침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積之旣久하고 行之旣著하야 名發於實而效見乎遠이면 則其音聲容貌 亦將有孚於人하나니 此回紇諸酋 所以釋兵下馬而拜者也
쌓기를 오랫동안 하고 행한 것이 이미 드러나서 이름이 실제에 나타나고 효과가 먼 곳에 드러나면, 그 음성音聲용모容貌가 또한 장차 남에게 믿어지게 될 것이니, 이것이 회흘回紇의 여러 추장들이 병기를 버리고 말에서 내려서 곽자의郭子儀에게 절한 이유이다.
夫豈可僞而僥倖哉
어찌 거짓으로 설득하여 요행僥倖을 바랄 수 있었겠는가.
在易之師曰 師貞, 丈人吉이라하니 子儀其庶幾歟인저
주역周易》의 사괘師卦에 이르기를, ‘군대의 출동 명분이 바르고 장인丈人(노련한 장수)이 통솔하여야 길하다.’ 하였으니, 곽자의郭子儀가 이에 가까울 것이다.”
○ 初 肅宗 以內侍魚朝恩으로 領神策軍使하야 悉以其軍歸禁中이라이나 尙未得與北軍齒注+[頭註] 謂竝列如齒也 言猶在北軍之下하니 北軍 羽林及萬騎也 見三十九卷丁未年하니라 러니 至是하야 魚朝恩 以神策軍으로 從上屯苑中하니 其勢浸盛이라 分爲左右廂하야 居北軍之右矣러라
처음에 숙종肅宗내시內侍어조은魚朝恩영신책군사領神策軍使로 임명하여 그 군대를 모두 금중禁中에 귀속시켰으나 아직도 북군北軍과 나란히 나열될 수가 없었는데,注+[頭註]는 나란히 나열된 것이 이[齒]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신책군神策軍북군北軍의 아래에 있었으니, 북군北軍우림羽林만기萬騎의 등속이다. 39 정미년丁未年(707) 천기千騎에 보인다. 이때에 이르러 어조은魚朝恩신책군神策軍을 이끌고 을 따라 원중苑中에 주둔하니, 그 형세가 점점 강성해져서 신책군神策軍좌상左廂우상右廂으로 나누어 북군北軍의 위에 있게 되었다.
〈其後 宦官典兵하야 卒以亡唐하니라
- 그 후 환관들이 병권을 맡아서 끝내 나라가 멸망하게 되었다. -
역주
역주1 昭義軍 : 당나라 때 方鎭의 이름이다. 澤潞라고도 이름하였다.
역주2 : 탁
역주3 : 욕
역주4 : 랄
역주5 : 랄
역주6 牙門 : 牙旗를 세운 軍門을 이른다. 옛날에 군대가 출동할 때에는 牙旗가 있었으니 〈牙旗를 세워〉높은 분이 거처하는 곳으로 삼았는데, 後人들이 이로 인해 일을 다스리는 곳을 牙라 하였다. 《韻會》에 “牙는 旗의 이름이니 상아로 깃대를 장식하여 휘장 앞에 세우고 이것을 牙門이라 한다.” 하였다.
역주7 挺身 : 용감하게 혼자 몸을 빼어 나감을 이른다.
역주8 畿縣 : 도성 부근의 縣을 가리킨다. 胡三省의 注에 “京兆府는 20개의 縣을 관할하는데, 萬年縣과 長安은 赤縣이라 하고 그밖의 나머지 縣은 모두 畿縣이라고 한다.” 하였다.
역주9 : 세
역주10 千騎 : 처음에 太宗이 官戶와 蕃民 중에 날래고 용감한 자 백 명을 뽑아 호피무늬 옷을 입히고 표범무늬 언치(안장)를 깐 말을 타게 하고서 황제가 유람하고 사냥할 때에 수행하여 말 앞에서 禽獸를 쏘게 하고 이를 일러 百騎라 하였는데, 武后 때에 숫자를 늘려 千騎라 하여 左‧右羽林軍에 속하게 하였고, 中宗이 숫자를 늘려 萬騎라 하였다.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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