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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9)

통감절요(9)

범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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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9)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癸亥]三年이라
천복天復 3년(계해 903)
正月 茂貞 獨見上하고 請誅韓全誨等하고 與朱全忠和하야 奉車駕還京한대 上喜하야 卽收全誨斬之하고 遣使하야 囊全誨等首하야 以示全忠하다
정월에 이무정李茂貞이 홀로 을 뵙고는 한전회韓全誨 등을 죽이고 주전충朱全忠과 화해하고서 황제의 거가車駕를 받들어 장안長安으로 돌아갈 것을 청하니, 이 기뻐하여 즉시 한전회韓全誨를 체포해서 목을 베고 사자使者를 보내어 한전회韓全誨 등의 머리를 자루에 넣어 주전충朱全忠에게 보여주었다.
鳳翔所誅宦官 已七十二人이요 朱全忠 又密令京兆하야 捕誅九十人이라
이때 봉상鳳翔에서 죽은 환관이 이미 72명이었고, 주전충朱全忠이 또 은밀히 경조윤京兆尹에게 명하여 환관들을 체포해서 죽인 것이 90명이었다.
甲子 車駕出鳳翔하야 幸全忠營이라가 己巳 入長安하다
갑자일甲子日(22일)에 거가車駕봉상鳳翔을 나와 주전충朱全忠의 진영으로 갔다가 기사일己巳日(27일)에 장안長安으로 돌아왔다.
○ 崔胤奏호되
최윤崔胤이 다음과 같이 아뢰었다.
國初承平之時 宦官 不典兵預政이러니 天寶以來 宦官寖盛하고 貞元之末 分羽林衛하야 爲左右神策軍하야 以便衛從이라하야 始令宦官主之하야 以二千人爲定制하니이다
국초國初에 천하가 태평할 때에는 환관宦官들이 병권을 맡고서 정사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현종玄宗천보天寶 연간 이래로 환관들이 점점 강성해지고 덕종德宗정원貞元 말기에 우림위羽林衛를 나누어 좌우신책군左右神策軍을 만들고는 호위와 시종을 편리하게 한다 하여 이때 처음으로 환관으로 하여금 이 일을 주관하게 하여 2천 명을 정제定制로 삼았습니다.
自是 參掌機密하야 奪百司權하고 上下彌縫하야 共爲不法이라
이로부터 환관이 기밀機密사무事務에 참여하여 관장해서 백사百司의 권한을 빼앗고 상하上下가 서로 미봉彌縫하여 함께 불법不法을 자행하였습니다.
大則構扇藩鎭하야 傾危國家하고 小則賣官鬻獄하야 蠹害朝政하니 王室衰亂 職此之由
크게는 번진藩鎭을 선동하여 난을 일으켜서 국가를 경복傾覆하고 위태롭게 하며, 작게는 매관매직하고 옥사를 미끼로 뇌물을 받아 조정을 좀먹고 해쳤으니, 왕실王室이 쇠약하고 혼란해진 것은 진실로 이 때문입니다.
不翦其根이면 禍終不已하리니 請悉罷內諸司하야 使其事務 盡歸之省注+[頭註] 嗣也 理事者 嗣續其中이라 三公所居曰省이요 九卿所居曰寺 하고 諸道監軍 俱召還闕下하소서
그 근원을 잘라버리지 않으면 화가 끝내 그치지 않을 것이니, 청컨대 내시의 여러 를 모두 파하여 그들의 사무를 다 성사省寺注+[頭註]는 잇는 것이니, 일을 다스리는 자가 이 가운데에서 일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삼공三公이 거처하는 곳을 이라 하고 구경九卿이 거처하는 곳을 라 한다. 돌려보내고 제도諸道감군監軍을 모두 불러 대궐 아래로 돌아오게 하소서.”
從之하다
이 그의 말을 따랐다.
是日 全忠 以兵驅第五可範已下數百人於內侍省하야 盡殺之하니 冤號之聲 徹於內外
이날 주전충朱全忠이 군대를 이끌고 환관인 제오가범第五可範 이하 수백 명을 내시성內侍省에서 몰아내어 모두 죽이니, 원통함을 호소하는 소리가 대궐 안팎에 진동하였다.
又出使者 詔所在하야 收捕誅之하고 止留黃衣幼弱者三十人하야 以備洒掃하니라
또 환관 중에 외방外方사자使者로 나간 자는 황제가 소재지에 명하여 체포해서 죽이게 하고, 다만 황의黃衣(환관)로 유약한 자 30명만을 남겨두어 물 뿌리고 청소하는 일에 대비하게 하였다.
溫公曰
온공溫公이 말하였다.
宦者用權하야 爲國家患 其來久矣
“환관들이 권력을 남용하여 국가의 환난이 된 것은 그 유래가 오래되었다.
蓋以出入宮禁하야 人主自幼及長 與之親狎하니 非如三公六卿 進見有時하야 可嚴憚也
이들은 궁중에 출입하여 군주가 어릴 때부터 장성함에 이르기까지 이들과 친압하니, 삼공三公육경六卿이 나아가 뵙는 것이 일정한 때가 있어서 엄격하고 공경할 만한 것과는 같지 않다.
其間 復有性識注+[釋義] 呼緣反이니 慧也 徐廣曰 儇 謂察慧輕薄小才 하고 語言辯給注+[通鑑要解] 捷也 하야 善伺候顔色하고 承迎志趣하야
환관 중에는 다시 재주가 영리하고注+[釋義]호연반呼緣反(현)이니 지혜로운 것이요, 는 날카로움이다. 서광徐廣이 말하기를 “은 살피고 지혜로우며 경박한 작은 재주를 이른다.” 하였다. 언어가 민첩하여注+[通鑑要解]은 민첩한 것이다. 군주의 안색을 잘 살피고 군주의 지취志趣를 받들어 영합하는 자가 있다.
受命則無違忤之患하고 使令則有稱之效하니 自非上智之主 燭知物情하고 慮患深遠하야 侍奉之外 不任以事 則近者日親하고 遠者日疎하야 甘言卑辭之請 有時而從하고 浸潤膚受注+[附註]浸潤 如水浸灌하야 滋潤漸漬而不驟也 毁人之行也 膚受 謂肌膚所受 利害切身이니 如易所謂剝牀以膚하야 切近災者也 愬己之寃也 毁人 漸漬而不驟 則聽者不覺其入하야 而信之深矣 愬寃 急迫而切身이면 則聽者不及致詳하야 而發之暴矣 二者 皆難察이니라 之愬 有時而聽이라
그리하여 명령을 받으면 위배하거나 거스르는 근심이 없고, 일을 시키면 군주의 뜻에 맞는 효험이 있으니, 만일 상지上智의 군주가 물정을 훤히 알고 화를 염려함이 깊고 멀어서 시봉侍奉하는 일 이외에 환관에게 일을 맡기지 않는 경우가 아니라면, 군주 곁에 가까이 있는 자는 날로 친해지고 군주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자는 날로 소원해져서, 환관들의 감언이설甘言利說과 겸손한 청탁을 군주가 때때로 따라주고,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와 피부로 받는注+[附註]침윤浸潤은 물이 점점 스며드는 것처럼 점점 젖어들게 하고 갑작스럽게 하지 않는 것이요, 는 남의 행실을 헐뜯는 것이다. 부수膚受는 직접 피부로 받는 것으로 이해利害가 몸에 간절함을 이르니, 《주역周易》에 이른바 “을 깎아 피부에까지 이르러서 재앙에 매우 가깝다.”는 것과 같은 것이요, 는 자신의 원통함을 하소연하는 것이다. 남을 헐뜯을 적에 점점 젖어들게 하고 갑작스럽게 하지 않으면 듣는 자가 그 말에 빠져들어감을 깨닫지 못하여 깊이 믿게 하고, 억울함을 하소연할 적에 급박(절박)하여 몸에 간절하게 하면 듣는 자가 미처 상세함을 다하지 못하여 대번에 성을 내게 되니, 두 가지는 모두 살피기가 어려운 것이다. 하소연을 군주가 때때로 들어주게 된다.
於是 黜陟注+[釋義] 貶也 升也 刑賞之政 潛移於近習이로되 而不自知하나니 如飮醇酒 嗜其味而忘其醉也
이에 관리를 내치고 올려주며注+[釋義]은 관직을 낮추는 것이고, 은 올리는 것이다. 형벌을 내리고 상을 주는 정사가 가깝고 친숙한 환관에게 슬그머니 옮겨가되 군주가 스스로 알지 못하니, 이는 마치 독한 술을 마심에 그 맛을 좋아하여 술에 취함을 잊는 것과 같다.
黜陟刑賞之柄移하고 而國家不危亂者 未之有也
관리를 내치고 올려주며 형벌을 내리고 상을 주는 권한이 다른 사람의 수중으로 옮겨가고서, 국가가 위태롭고 혼란하지 않은 경우는 있지 않았다.
東漢之衰 宦官 最名驕橫注+[釋義] 胡孟反이니 不順理曰橫이라[頭註] 桓帝時 見卄卷하고 又靈帝時曹節侯覽王甫之類 見卄一卷하니라이나
동한東漢이 쇠망할 때에 환관宦官들이 가장 교만하고 횡포하다고 이름났다.注+[釋義]동한지쇠東漢之衰 환관최명교횡宦官最名驕橫:[釋義]호맹반胡孟反(횡)이니, 이치를 따르지 않는 것을 이라 한다. [頭註]환제桓帝 때의 환관인 오후五侯는 20에 보이고, 또 영제靈帝 때의 환관인 조절曹節, 후람侯覽, 왕보王甫의 무리는 21에 보인다.
然皆假人主之權하야 依憑城社注+[釋義]洪容齋曰 城狐不灌하고 社鼠不燻하니 謂其所棲定者 得所憑依 此古語也 議論者 率指人君左右近習하야 爲城狐社鼠 予嘗讀劉向說苑所載하니 孟嘗君之客曰 狐 人之所攻이요 人之所燻이나 臣未見城狐見攻 社鼠見燻하니 何則 所託者然也라하니라 하야 以濁亂天下 未有能劫脅天子하야 如制嬰兒하고 廢置在手하야 東西出其意하야 使天子畏之하야 若乘虎狼而挾蛇 如唐世者也
그러나 모두 군주의 권한을 빌려서 군주 곁에 의지하여注+[釋義]홍용재洪容齋(洪邁)가 말하였다. “에 사는 여우굴에는 물을 대지 않고 에 사는 쥐구멍에는 불을 놓지 않으니, 깃들어 사는 곳이 의지할 곳을 얻었음을 말한 것으로, 이는 옛말이다. 그러므로 의논하는 자들이 대체로 군주의 좌우에 있어서 군주와 가깝고 친숙한 자(환관)들을 가리켜 에 사는 여우와 에 사는 쥐라고 하는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향劉向의 《설원說苑》에 기재된 것을 읽어보니, 맹상군孟嘗君의 문객이 말하기를 ‘여우는 사람들이 공격하는 대상이고 쥐는 사람들이 불을 놓는 대상이지만, 에 사는 여우가 공격당하고 에 사는 쥐가 불에 타는 것을 보지 못했으니, 어째서입니까? 의탁한 곳이 그렇기 때문입니다.’라고 하였다.” 천하를 혼탁하게 하고 어지럽혔을 뿐이요, 천자를 겁박하고 위협하여 어린아이를 제재하듯이 하고 황제를 폐위하고 세움이 그들의 손에 달려 있어서 동쪽으로 가고 서쪽으로 가는 것이 모두 자기들 마음대로 하여 천자로 하여금 호랑이를 타고 뱀을 끼고 있는 것처럼 두려워하게 하기를 나라 때와 같이 한 적은 있지 않았다.
所以然者 非他 漢不握兵하고 唐握兵故也일새니라
이렇게 된 까닭은 다름이 아니라 나라의 환관들은 병권을 장악하지 않았고 나라의 환관들은 병권을 장악하였기 때문이다.
태종太宗전대前代의 폐습을 거울로 삼고 환관을 깊이 억제하여 이들의 벼슬이 4품을 넘지 못하게 하였는데, 명황明皇(玄宗)이 비로소 옛 법을 무너뜨려 이들을 높이고 이들을 조장하였다.
晩節 令高力士 省決章奏하고 乃至進退將相에도 時與之議하야 自太子王公으로 皆畏事之하니 宦官 自此熾矣
말년에 환관인 고역사高力士로 하여금 장주章奏를 살펴보고 결정하게 하였으며, 마침내 장수와 재상을 올리고 물리침에 이르러서도 때로 고역사高力士와 상의하여 태자太子왕공王公으로부터 모두 고역사高力士를 두려워하여 섬기니, 환관의 세력이 이로부터 강성하게 되었다.
及中原板蕩注+[頭註]板蕩 謂喪亂이라 肅宗 收兵靈武注+[頭註]肅宗卽位於靈武 見上하니라 할새 李輔國 以東宮舊隷 參預軍謀하니 寵過而驕하야 不復能制하야 遂至愛子慈父皆不能庇注+[頭註]輔國譖肅宗次子建寧王倓而殺之하고 又劫玄宗하야 居西內하니 肅宗畏輔國하야 不能詣西內하니라 하야 以憂注+[釋義] 其季反이니 心動也 이러니
그러다가 〈안사安史으로〉中原이 어지러워 문란하게 되자,注+[頭註]판탕板蕩상란喪亂함을 이른다. 숙종肅宗영무靈武에서 즉위하여 병력을 수습할 적에注+[頭註]숙종肅宗영무靈武에서 즉위한 것은 상권上卷에 보인다. 환관인 이보국李輔國동궁東宮의 옛 관료로 군대의 계책에 참여하니, 황제의 총애가 지나쳐 교만해져서 다시는 제재하지 못하여 마침내 사랑하는 자식과 자애로운 아버지가 모두 비호받지 못하여注+[頭註]수지애자자부개불능비遂至愛子慈父皆不能庇:이보국李輔國숙종肅宗차자次子건녕왕建寧王 이담李倓을 참소하여 죽이고, 또 현종玄宗을 협박하여 서내西內에 거처하게 하니, 숙종肅宗이보국李輔國을 두려워하여 서내西內에 나아가지 못하였다. 근심과 두려움으로 죽게 하기까지 하였다.注+[釋義]기계반其季反(계)이니, 마음이 움직이는 것이다.
代宗踐阼 仍遵覆轍하야 程元振, 魚朝恩 相繼用事하야 竊弄刑賞하고 壅蔽聰明하야 하고 陵宰相如奴虜
대종代宗은 즉위하자 잘못된 전철을 그대로 따라서 환관인 정원진程元振어조은魚朝恩이 서로 이어 용사用事하여 형벌과 상을 내리는 권한을 도둑질하여 농간하고 군주의 총명을 가려서, 천자天子를 보기를 버려놓은 갖옷처럼 여기고 재상을 능멸하기를 종과 포로처럼 여겼다.
是以注+[頭註]山南東道節度使也 元振有所請이로되 不從이어늘 元振 譖殺之하니라 入朝 遇讒賜死하고 吐蕃 深侵郊甸호되 匿不以聞하야 致狼狽幸陝이라
이 때문에 내진來瑱注+[頭註]내진來瑱산남동도절도사山南東道節度使이다. 정원진程元振이 요청한 것이 있었으나 내진來瑱이 따르지 않자, 정원진程元振이 그를 참소하여 죽였다. 들어와서 조회할 적에 정원진程元振의 참소를 만나 사약을 하사받았고, 토번吐蕃교전郊甸을 깊이 침략하였으나 환관들이 숨기고 아뢰지 않아서 황제가 낭패하고 섬주陝州로 파천하게 만들었다.
李光弼 危疑憤鬱하야 以隕其生하고 郭子儀擯廢家居하야 不保丘壟注+[頭註]盜發子儀父塚이어늘 捕之不獲하니 魚朝恩素惡子儀하야 疑朝恩使之 하고 僕固懷恩 寃抑無訴하야 遂棄勳庸하고 更爲叛亂이라
환관들 때문에 이광필李光弼은 위태롭고 의심하여 울분을 느껴서 그의 목숨을 잃었고, 곽자의郭子儀는 배척을 당하고 버려져 집에 거처하여 구롱丘壟(先塋)을 보전하지 못하였고,注+[頭註]도적이 곽자의郭子儀 아버지의 무덤을 파헤쳤는데 범인을 체포하지 못하였다. 어조은魚朝恩이 평소 곽자의郭子儀를 미워하였으므로 사람들은 어조은魚朝恩이 시킨 것으로 의심하였다. 복고회은僕固懷恩은 억울함을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마침내 옛 공훈을 버리고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德宗初立 頗振綱紀하야 宦官稍絀이러니 而返自興元注+[頭註]漢之漢中郡也 晉置梁州러니 德宗改爲興元府하니라 으로 猜忌諸將하야 以李晟, 渾瑊爲不可信이라하야 悉奪其兵하고 而以竇文場, 霍仙鳴으로 爲中尉하야 使典宿衛 自是 太阿之柄 落其掌握矣
덕종德宗은 처음 즉위하자 자못 기강을 떨쳐서 환관의 세력이 다소 꺾였는데 흥원興元에서 돌아온 뒤로注+[頭註]흥원興元나라 한중군漢中郡이다. 나라 때 양주梁州를 설치하였는데 덕종德宗흥원부興元府로 개칭하였다. 여러 장수들을 시기하여 이성李晟혼감渾瑊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들의 병권을 다 빼앗고, 환관인 두문장竇文場곽선명霍仙鳴중위中尉로 삼아 이들로 하여금 궁중의 숙위宿衛를 맡게 하니, 이로부터 칼자루(兵權)가 그들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되었다.
憲宗末年 吐突承璀欲廢嫡立庶하야 以成陳弘志之變注+[頭註]憲宗見弑 하고 寶曆注+[頭註]敬宗年號 狎暱群小하야 劉克明, 蘇佐明 爲逆注+[頭註]見四十七卷하니라 이라
헌종憲宗은 말년에 환관인 토돌승최吐突承璀가 적자를 폐하고 서자를 세우고자 하여 진홍지陳弘志의 변란을注+[頭註]헌종憲宗진홍지陳弘志에게 시해를 당하였다. 빚어냈고, 경종敬宗보력寶曆 연간에注+[頭註]보력寶曆경종敬宗의 연호이다. 여러 소인들을 친압하여 유극명劉克明소좌명蘇佐明이 반역을 하였다.注+[頭註]유극명劉克明 소좌명蘇佐明 위역爲逆:유극명劉克明소좌명蘇佐明이 반역을 한 것은 47권에 보인다.
其後 絳王注+[頭註]名悟 憲宗子也 宦官劉克明等 殺敬宗하고 立絳王이러니 宦官王守澄等 討克明殺王하고 立文宗하니라及文, 武, 宣, 懿, 僖, 昭六帝 皆爲宦官所立하야 勢益驕橫이라
그 뒤에 강왕絳王 이오李悟注+[頭註]강왕絳王은 이름이 이니 헌종憲宗의 아들이다. 환관 유극명劉克明 등이 경종敬宗을 시해하고 강왕絳王을 세웠는데, 환관인 왕수징王守澄 등이 유극명劉克明을 시해한 것을 토벌하고 문종文宗을 세웠다. 문종文宗, 무종武宗, 선종宣宗, 의종懿宗, 희종僖宗, 소종昭宗의 여섯 황제가 모두 환관들에게 옹립되어서 환관의 세력이 더욱 교만해지고 전횡하였다.
王守澄, 仇士良, 田令孜, 楊復恭, 劉季述, 韓全誨 爲之魁傑하야 自稱定策國老라하고 目天子爲門生이라하야 根深하야 疾成膏注+[釋義] 心下也 膈上也 春秋左傳云 在肓之上, 膏之下하야 攻之不可라하니라 하야 不可救藥矣
왕수징王守澄, 仇士良, 전령자田令孜, 양복공楊復恭, 유계술劉季述, 한전회韓全誨가 환관의 괴수가 되어 자칭 정책국로定策國老라 하고 천자天子를 지목하여 문생門生이라 하여, 뿌리가 깊고 꼭지가 단단하여 고황膏肓注+[釋義]는 심장 아래이고, 은 명치 위이다. 《춘추좌전春秋左傳》에 이르기를 “병이 명치 위와 심장 아래에 있어서 치료해도 낫지 않는다.” 하였다. 병이 되어서 치료할 수가 없게 되었다.
文宗 深憤其然하야 志欲除之 以宋申錫注+[頭註]王守澄誣告하야 貶爲開州司馬라가 卒於貶所하니라 之賢으로도 猶不能有所爲하고 反受其殃하니 況李訓, 鄭注 反覆小人으로 欲以一朝譎詐之謀 翦累世膠固之黨이라가 遂至涉血禁塗하고 積尸省戶하며 公卿大臣 連頸就誅注+[頭註]仇士良等 令禁兵으로 殺王涯等兩省金吾吏卒千六百餘人하고 賈餗舒元輿 皆收繫斬之하니라 하야 闔門屠滅이라
문종文宗은 이것을 깊이 분하게 여겨 마음속으로 이들을 제거하고자 하였으나 송신석宋申錫처럼注+[頭註]송신석宋申錫왕수징王守澄의 무고로 개주사마開州司馬로 좌천되었다가 좌천된 곳에서 죽었다. 어진 자도 오히려 제거한 바가 있지 못하고 도리어 앙화를 받았는데, 하물며 이훈李訓정주鄭注는 반복무상한 소인으로서 하루아침의 음모와 속임수를 가지고 여러 대에 걸쳐 아교로 풀칠해놓은 것처럼 견고한 환관의 붕당을 제거하고자 하다가 마침내 궁중의 길에 유혈이 낭자하고 대성臺省의 문 앞에 시체가 쌓이는 데에 이르렀으며, 공경公卿대신大臣들이 연달아 죽임을 당하여 온注+[頭註]仇士良 등이 금병禁兵으로 하여금 왕애王涯양성兩省금오金吾이졸吏卒 1600여 명을 죽이게 하였고, 가속賈餗서원여舒元輿는 모두 잡혀서 참수당하였다. 가문이 도륙당하고 멸망하였다.
天子陽瘖注+[原註] 於金反이니 不能言也 縱酒하야 飮泣呑氣하야 自比赧, 獻注+[釋義] 謂周赧王이요 謂漢獻帝 하니 不亦悲乎
이에 천자가 거짓으로 벙어리가 되어注+[原註]어금반於金反(음)이니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술을 실컷 마시고 속으로 울면서 슬픈 기운을 삼키고 감히 소리를 내지 못하여 스스로 나라 난왕赧王나라 헌제獻帝에게注+[釋義]나라 난왕赧王을 이르고, 나라 헌제獻帝를 이른다. 비유하였으니, 참으로 슬프지 않은가.
以宣宗之嚴毅明察로도 猶閉目搖首하고 自謂畏之하니 況懿, 僖之驕侈하야 苟聲色毬獵으로 足充其欲이면 則政事一以付之하고 呼之以父 固無怪矣
선종宣宗의 엄하고 굳셈과 명찰함으로도 오히려 눈을 감고 머리를 흔들며 스스로 환관들을 두려워한다고 말하였으니, 하물며 의종懿宗희종僖宗이 교만하고 사치해서 만일 음악과 여색과 격구擊毬와 사냥으로 자신의 욕망을 충분히 채워주기만 하면 정사政事를 한결같이 환관들에게 맡기고 그들을 아버지라고 부른 것은 진실로 괴이할 것이 없는 것이다.
賊汚宮闕注+[頭註] 謂黃巢 하야 兩幸梁, 益 皆令孜所爲也
적(黃巢)이 궁궐을 더럽혀서注+[頭註]황소黃巢를 이른다. 희종僖宗이 두 번이나 양주梁州(興元)와 익주益州(成都)로 파천해 간 것은 모두 환관인 전령자田令孜의 소행이다.
昭宗 不勝其恥하고 力欲淸滌이나 而所任 不得其人하고 所行 不由其道하야
소종昭宗은 이러한 치욕을 견디지 못하여 힘써 소탕하고자 하였으나 임용한 것이 적임자가 아니었고 행한 바가 그 도를 따르지 않았다.
始則張濬 覆軍於平陽하야 增李克用跋扈之勢하고 復恭 亡命於山南하야 啓宋文通不臣之心注+[附註]楊復恭 摠宿衛하야 潛殺上舅王環하니 上恨之하야 出復恭爲鳳翔監軍한대 復恭慍懟하야 不肯行하고 謀反走興元하야 與山南西道節度使楊守亮으로 擧兵拒命하다 茂貞 上言호되 守亮 容匿反臣하니 請出兵討之하소서 朝議以爲茂貞 得山南이면 不可復制라하야늘 下詔和解之러니 茂貞 擅擧兵하야 擊取興元하니 守亮, 復恭等 奔閬州하니라 茂貞 自請鎭興元한대 以茂貞爲山南西道節度使러니 茂貞 不奉詔어늘 遣覃王嗣周하야 討茂貞하니 茂貞拒官軍이라 於是 茂貞 盡有鳳翔, 興元, 洋隴等十五州之地하니라 하며 終則兵交闕庭하고 矢及御衣하야
그리하여 처음에는 장준張濬평양平陽에서 군대를 전복시켜 이극용李克用발호跋扈하는 기세를 더하였고, 양복공楊復恭산남山南으로 망명하여 송문통宋文通의 신하 노릇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계도하였으며,注+[附註]양복공楊復恭이 궁중의 숙위宿衛를 총괄하면서 의 외숙인 왕환王環을 은밀히 죽이니, 이 이것을 통한으로 여겨 양복공楊復恭봉상감군鳳翔監軍으로 내보냈는데, 양복공楊復恭이 성내고 원망하여 임지任地로 가려 하지 않고 모반하여 흥원興元으로 달아나서 산남서도절도사山南西道節度使 양수량楊守亮과 함께 군대를 일으켜 황명을 거역하였다. 이무정李茂貞상언上言하기를 “양수량楊守亮이 배반한 신하를 용인하여 숨겨주었으니, 군대를 출동하여 토벌하게 해주소서.” 하였다. 그러나 조정에서 의논하기를 “이무정李茂貞산남山南을 얻으면 다시는 제재할 수 없다.” 하였으므로 조서를 내려 화해하게 하였는데, 이무정李茂貞이 멋대로 군대를 일으켜서 흥원興元을 공격하여 점령하니, 양수량楊守亮양복공楊復恭 등이 낭주閬州로 도망하였다. 이무정李茂貞흥원興元에 진주할 것을 자청하자, 이무정李茂貞산남서도절도사山南西道節度使로 임명하였는데, 이무정李茂貞이 칙명을 받들지 않았다. 황제가 담왕覃王 이사주李嗣周를 보내어 이무정李茂貞을 토벌하게 하니, 이무정李茂貞관군官軍에게 항거하였다. 이에 이무정李茂貞봉상鳳翔, 흥원興元, 양롱洋隴 등 15의 영토를 모두 차지하게 되었다. 종말에는 병기가 대궐 뜰에서 교전交戰하고 화살이 황제의 어의御衣에 미쳤다.
漂泊莎城注+[附註]李茂貞假子右軍指揮使李繼鵬 作亂하야 謀劫上幸鳳翔이라 中尉劉景宣 與王行實知之하고 欲劫上幸邠州러니 繼鵬 以鳳翔兵으로 攻侍衛하야 矢拂御衣하니 上出宿莎城하고 幸石門鎭하니라 邠州 王行瑜也 하고 流寓華陰注+[頭註]韓建 請幸華州하니라 하며 幽辱東內하고 劫遷岐陽注+[頭註]岐陽 鳳翔也 하니 崔昌遐無如之何注+[附註]崔胤 字昌遐 宋太祖諱故 稱字 全忠 脅帝遷洛하고 長安居人 悉東하니 老幼於路 啼號不絶하고 皆大罵曰 國賊崔胤 導全忠賣社稷하야 使我及此라하니라 하야 更召朱全忠以討之
그리하여 소종昭宗사성莎城으로 떠돌아다니고注+[附註]이무정李茂貞양자養子우군지휘사右軍指揮使 이계붕李繼鵬이 난을 일으켜서 을 위협하여 봉상鳳翔으로 갈 것을 모의하였다. 중위中尉 유경선劉景宣왕행실王行實과 함께 이러한 사실을 알고는 을 위협하여 빈주邠州로 가게 하고자 하였는데, 이계붕李繼鵬봉상鳳翔의 군대를 이끌고 와서 시위侍衛하는 자들을 공격하여 화살이 어의御衣를 스치니, 이 궁궐을 나가 사성莎城에서 유숙하고 석문진石門鎭으로 갔다. 빈주절도사邠州節度使왕행유王行瑜이다. 화음華陰에서 이리저리 우거하였으며,注+[頭註]한건韓建화주華州(華陰)로 갈 것을 청하였다. 동궁東宮에 갇혀 치욕을 당하고 협박을 받아 기양岐陽으로 옮겨가니,注+[頭註]기양岐陽봉상鳳翔이다. 최창하崔昌遐(崔胤)가 어찌할 수가 없어注+[附註]최윤崔胤창하昌遐이니, 나라 태조太祖이기 때문에 를 칭한 것이다. 주전충朱全忠이 황제를 위협하여 낙양洛陽으로 천도하게 하고 장안長安에 거주하는 자들을 모두 동쪽으로 옮기니, 늙은이와 어린아이가 도로에서 울부짖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모두 크게 꾸짖기를 “국적國賊최윤崔胤주전충朱全忠을 유도하여 사직社稷을 팔아먹어서 우리들로 하여금 이 지경에 이르게 했다.” 하였다. 다시 주전충朱全忠을 불러 토벌하였다.
連兵圍城 再罹寒暑하야 御膳 不足於注+[釋義] 去久反이고 又丘救反이라 平秘反이니 乾糧也 하고 王侯斃注+[原註] 蒲墨反이니 僵也 仆也 於飢寒하니
주전충朱全忠이 군대를 연합하여 기양성岐陽城을 포위하자, 황제가 두 번이나 추위와 더위의 고통을 만나고 어선御膳은 말린 밥과 미숫가루도 부족하였으며注+[釋義]거구반去久反(구)이고 또 구구반丘救反(구)이다. 평비반平秘反(비)이니 말린 양식이다. 왕후王侯가 굶주림과 추위에 쓰러져 죽었다.注+[原註]포묵반蒲墨反(북)이니 쓰러지고 눕는 것이다.
然後 全誨就誅하고 乘輿東出하야 翦滅其黨하야 靡有孑遺 而唐之廟社 因以丘墟矣니라
그런 뒤에야 한전회韓全誨가 죽임을 당하고 황제의 승여乘輿가 동쪽으로 나와 한전회韓全誨의 무리를 제거하고 멸망시켜 남김이 없게 하였으나 나라의 종묘와 사직이 이로 인해 빈 터가 되었다.
然則宦者之禍 始於明皇하야 盛於肅, 代하고 成於德宗하고 極於
그렇다면 환관의 화가 명황明皇(玄宗)에게서 시작되어 숙종肅宗대종代宗 때에 흥성하였으며 덕종德宗 때에 크게 이루어지고 소종昭宗 때에 지극하였다.
昭宗이라 라하니 爲國家者 防微杜漸 可不愼其始哉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라고 하였으니, 나라를 다스리는 자가 은미할 때에 막고 점점 번져나가는 것을 막기를 처음에 신중히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此其爲患 章章尤著者也
이는 환관들이 초래한 가운데에 분명하게 더욱 드러난 것이다.
自餘傷賢害能하야 召亂致禍하며 賣官鬻獄하고 沮敗師徒하며 蠹害烝民 不可徧擧
그 나머지 어진 사람과 재능 있는 사람을 해치고 화란禍亂을 부르며, 돈을 받고 관직을 팔고 뇌물을 받고 옥사를 그릇되게 판결하며, 군대를 패하게 하고 백성들에게 해독을 끼친 것을 이루 다 들 수가 없다.
夫寺人之官注+[原註] 奄官也 自三王之世 載於詩, 禮하니
시인寺人(宦官)의 관직은注+[原註]는 환관이다.삼왕三王의 시대로부터 시작되어 《시경詩經》과 《예기禮記》에 기재되어 있다.
所以謹閨闥之禁이요 通內外之言이니 安可無也리오
이는 규달閨闥(궁전)의 통행을 삼가고 내외內外의 말을 통하기 위한 것이니, 어찌 없을 수 있겠는가.
如巷伯之疾惡注+[釋義]巷伯 詩篇名이라 詩曰 取彼譖人하야 投畀豺虎호리라 豺虎不食이어든 投畀有北호리라 有北不受어든 投畀有昊라하니 寺人孟子作爲此詩 文公傳曰 巷 是宮中道名이니 秦漢所謂永巷也 長也 主宮內道官之長이니 卽寺人也 蓋以譖被宮而爲此官이니 孟子 其字也 投棄畀與之而不食不受 言譖讒之人 物所共惡 投畀昊天하야 使制其罪 此皆設言하야 以見欲其死亡之甚也니라 寺人披之事君注+[釋義]寺人 內小臣也 名披 春秋 作勃하니라 史晉世家 晉獻公子重耳 遭驪姬之譖하야 走保蒲한대 獻公 命寺人披하야 伐蒲러니 重耳踰垣而走어늘 寺人披追之하야 斬其衣袪하다 重耳立하니 是爲文公이라 寺人披請見이어늘 文公讓之한대 披對曰 君命無二 古之制也라하니라 鄭衆之辭賞注+[釋義]漢和時 鄭衆 首謀誅竇憲하여 以功遷大長秋러니 策勳班賞할새 每辭多受少하니라 呂彊之直諫注+[釋義]漢靈時 呂彊 諫止封賞하고하고 諫選擧法하니라 曹日升之救患注+[釋義]肅宗時 賊圍南陽甚急이러니 曹日升 請與十騎 冒圍入城하야 宣慰한대 賊不敢逼하니 城中大喜하니라 馬存亮之弭亂注+[釋義]敬宗初 染署工張韶 與卜者蘇元明으로 爲變이러니 存亮 遣神策騎兵하야 射韶及元明하야 皆死하니라 楊復光之討賊注+[釋義]楊復光 僖宗時 帥八都將하야 以敗朱溫하니라 嚴遵美之避權注+[釋義]嚴遵美 昭宗時 歷軍容使 嘗嘆曰 北司供奉官給事 今執笏 過矣라하더니 後隱靑城山하니라 張承業之竭忠注+[釋義]張承業 僖宗時宦者 後唐莊宗 將卽位한대 承業 諫求前唐之後立之호되 莊宗不聽이어늘 遂不食卒하니라 其中 豈無賢才乎
예컨대 나라 유왕幽王항백巷伯이 악한 자를 미워한 것과注+[釋義]항백巷伯은 《시경詩經》의 편명篇名이다. 이 에 “저 참소하는 사람을 취하여 승냥이와 호랑이에게 던져 주리라. 승냥이와 호랑이가 먹지 않거든 북쪽의 불모지에 던져 주리라. 북쪽의 불모지에서 받지 않거든 하늘에 던져 주리라.”라고 하였으니, 시인寺人맹자孟子가 이 시를 지은 것이다. 주문공朱文公(朱熹)의 《시경집전詩經集傳》에 이르기를 “궁중宮中의 길 이름이니, 시대에 이른바 영항永巷이라는 것이요, 은 우두머리이니 궁궐 안의 길을 주관하는 장관인 바, 이것이 바로 시인寺人이다. 참소로 인해 궁형宮刑을 당하고 이 관직을 맡았으니, 맹자孟子는 그의 이다. 던져 버리고 주어도 먹지 않고 받지 않는다는 것은, 참소하고 모함하는 사람은 만물이 함께 미워하는 바이니, 하늘에 던져 주어서 그 죄를 제재하게 함을 말한 것이다. 이는 모두 가설하여 말해서 그가 죽고 망하기를 바람이 심함을 나타낸 것이다.” 하였다. 나라 헌공獻公시인寺人가 군주를 섬긴 것과注+[釋義]시인寺人은 궁중의 낮은 신하로 이름이 이니, 《춘추春秋》에 발제勃鞮로 되어 있다. 《사기史記》 〈진세가晉世家〉에 헌공獻公의 아들 중이重耳여희驪姬의 참소를 만나 달아나서 땅을 지키자, 헌공獻公시인寺人 에게 명하여 땅을 공격하게 하였다. 중이重耳가 담장을 뛰어넘어 달아나자, 시인寺人 가 쫓아가서 옷섶을 베었다. 뒤에 중이重耳가 즉위하니 이가 바로 문공文公이다. 시인寺人 가 뵙기를 청하자 문공文公이 꾸짖으니, 가 대답하기를 “임금의 명령에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은 옛 제도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나라 화제和帝정중鄭衆을 사양한 것과注+[釋義]나라 화제和帝 때에 정중鄭衆두헌竇憲을 죽이는 일을 주모主謀하여 그 공으로 대장추大長秋에 승진하였는데, 공훈을 기록하고 상을 줄 적에 매번 많은 것을 사양하고 적은 것을 받았다.나라 영제靈帝 때에 여강呂彊직간直諫한 것과注+[釋義]나라 영제靈帝 때에 여강呂彊봉상封賞을 중지하도록 간하였고, 도행비導行費에 대해 간하고 선거법選擧法에 대해 간하였다. 나라 숙종肅宗 때에 조일승曹日升환난患難을 구원한 것과注+[釋義]나라 숙종肅宗 때에 (武令珣)이 남양南陽을 포위하여 매우 위급하였는데, 조일승曹日升이 황제에게 청하여 10명의 기병과 함께 포위를 뚫고 성 안에 들어가 선위宣慰하자 적이 감히 핍박하지 못하니, 성 안의 사람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경종敬宗 때에 마존량馬存亮화란禍亂을 그치게 한 것과注+[釋義]경종敬宗 초년에 염서공染署工장소張韶가 점치는 자인 소원명蘇元明과 함께 변란을 일으켰는데, 마존량馬存亮신책군神策軍기병騎兵을 보내어 장소張韶소원명蘇元明을 활로 쏘아 모두 죽였다.희종僖宗 때에 양복광楊復光이 역적을 토벌한 것과注+[釋義]양복광楊復光희종僖宗 때에 8명의 도장都將을 거느리고 주온朱溫(朱全忠)을 공격하여 패퇴시켰다. 소종昭宗 때에 엄준미嚴遵美가 권세를 사양한 것과注+[釋義]엄준미嚴遵美소종昭宗 때에 군용사軍容使를 지냈다. 일찍이 탄식하기를 “북사北司공봉供奉하는 관원들은 고삼胯衫 차림으로 시봉해야 하니, 지금 을 잡는 것은 너무 지나치다.” 하였는데, 뒤에 청성산靑城山에 은둔하였다.희종僖宗 때에 장승업張承業이 충성을 다한 것과注+[釋義]장승업張承業희종僖宗 때의 환관이다. 후당後唐장종莊宗이 장차 즉위하려 하자 장승업張承業이 예전 나라의 후손을 찾아 세울 것을 간하였는데, 장종莊宗이 듣지 않자 마침내 밥을 먹지 않고 굶어 죽었다. 같은 것은 그들 가운데 어찌 어질고 재주 있는 자가 없겠는가.
顧人主不當與之謀議政事하고 進退士大夫하야 使有威福하야 足以動人耳
다만 군주가 마땅히 이들과 정사를 모의하고 사대부를 올리고 물리치지 않게 해서 이들로 하여금 위엄과 복을 소유하여 충분히 사람들을 놀라지 않게 해야 할 뿐이다.
果或有罪 小則刑之하고 大則誅之하야 無所寬赦 如此 雖使之專橫이나 孰敢哉
그리고 과연 환관이 죄가 있을 경우 죄가 작으면 형벌을 내리고 죄가 크면 죽여서 너그럽게 사면하는 바가 없어야 하니, 이와 같이 한다면 비록 이들로 하여금 전횡專橫하게 하더라도 누가 감히 하겠는가.
豈可不察臧하고 不擇是非하고 欲草而禽注+[釋義]王氏曰 草薙禽獮 謂翦除其根之義也 記月令篇 季夏 燒薙行水하야 利以殺草라한대 芟草也라하니라 殺也 說文 秋獵曰獮이니 應殺氣也라하니라 리오
어찌 착하고 착하지 않음을 살피지 않으며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고서 풀을 베는 것처럼 제거하고 짐승을 죽이는 것처럼 죽이고자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풀을 베는 것처럼 제거하고 짐승을 죽이는 것처럼 죽인다는 것은 그 뿌리를 잘라 제거하는 뜻을 이른다. 《예기禮記》 〈월령편月令篇〉에 ‘계하季夏에 말린 풀을 태워 물을 흘러가게 해서 풀을 썩혀 죽이는 데 이롭다.’라고 하였는데, 에 ‘는 풀을 베는 것이다.’ 하였다. 은 죽이는 것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에 ‘가을사냥을 이라 하니, 가을의 숙살肅殺하는 기운에 응하는 것이다.’ 하였다.” 한단 말인가.
能無亂乎
이렇게 하면 혼란이 없겠는가.
是以 袁紹行之於前 而董卓弱漢하고 崔昌遐襲之於後 而朱氏簒唐하야 雖快一時之忿이나 而國隨以亡하니
이 때문에 원소袁紹가 앞에서 행함에 동탁董卓이 반란하여 나라를 약하게 만들었고, 최창하崔昌遐가 뒤에서 인습함에 주씨朱氏(朱全忠)가 당나라를 찬탈하여, 비록 한때의 분함을 상쾌하게 하였으나 나라가 뒤따라 멸망하였다.
是猶惡衣之垢而焚之하고 惡木之蠹而伐之 其爲害 豈不益多哉
이는 옷의 때를 싫어하여 옷을 불태우고 나무의 좀벌레를 싫어하여 나무를 베는 것과 같으니, 그 폐해가 어찌 더욱 많지 않겠는가.
孔子曰 人而不仁 疾之已甚 亂也라하시니 斯之謂矣니라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시기를 ‘남이 하지 못함을 미워하기를 너무 심하게 하는 것이 난을 불러일으킨다.’라고 하였으니, 이것을 말씀한 것이다.”
[史略 史評]史斷曰
[史略 사평史評]史斷에 말하였다.
昭宗 天姿明雋(俊)하야 有恢復前烈之志
소종昭宗천자天姿가 총명하고 준걸스러워서 전대前代공렬功烈을 회복하려는 뜻이 있었다.
이나 當是時하야 奸臣擅權하고 藩鎭跋扈하며 而宦官 方恃功驕恣하야 自號定策國老하고 斥天子爲門生하야 疾成膏肓하야 不可捄藥하니 可勝歎哉
그러나 이때에 간신奸臣이 권력을 독단하고 번진藩鎭발호跋扈하였으며, 환관宦官을 믿고 교만 방자하여 스스로 정책국로定策國老라 칭하고 천자天子를 지목하여 문생門生이라 칭하여, 고황膏肓이 되어서 구원하고 치료할 수가 없었으니, 한탄함을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是故 始則張濬覆軍於平陽하야 增李克用不平之志하고 中則楊復恭亡命於山南하야 啓宋文通不臣之心하고 終則兵交闕庭하야 矢及宸衣하야
이 때문에 처음에는 장준張濬평양平陽에서 군대를 전복시켜 이극용李克用의 불평하는 마음을 더하였고, 중간에는 양복공楊復恭산남山南으로 망명亡命하여 송문통宋文通의 신하 노릇을 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계도하였고, 종말에는 대궐 뜰에서 병란이 일어나 화살이 황제의 옷에까지 미쳤다.
漂泊莎城하고 流寓華陰하며 幽辱東內하고 劫遷岐陽하야 流離東都
그리하여 사성莎城에서 떠돌아다니고 화음華陰에서 이리저리 우거하였으며 동궁東宮에 유폐되어 곤욕을 당하고 협박에 의해 기양岐陽으로 옮겨가서 동도東都를 유리하였다.
至不得已하야 遣使持密詔하야 告難於四方이로되 而不聞一人惻然赴難者
심지어 부득이하여 사자使者를 보내어 밀조密詔를 가지고 가서 사방四方을 고하였으나, 한 사람도 측은히 여겨 국난國難에 달려온 자가 있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다.
事勢至此하야 瓦解土崩하니 悲夫
사세事勢가 이 지경에 이르러 기와장이 깨지듯 흙이 무너지듯 나라가 망하였으니, 아! 슬프다.”
역주
역주1 : 시
역주2 : 현
역주3 : 섬
역주4 : 협
역주5 浸潤膚受 : 《論語》 〈顔淵〉에, 子張이 밝음에 대해 묻자, 孔子께서 “서서히 젖어드는 참소와 피부로 받는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는다면 밝다고 이를 만하다.[浸潤之譖 膚受之愬 不行焉 可謂明也已矣]”라고 대답한 내용이 보인다.
역주6 五侯 : 新豐侯 單超, 武原侯 徐璜, 東武陽侯 具瑗, 上蔡侯 左悺, 汝陽侯 唐衡을 가리키는 바, 이들은 모두 환관으로서 後漢 桓帝의 신임을 받아 후작에 봉해지고 권세를 전횡하였다.
역주7 城社 : 성 안에 사는 여우와 사당에 사는 쥐라는 뜻의 城狐社鼠에서 온 말이다. 여우와 쥐는 곧 임금 곁에서 임금의 권세를 이용하는 소인을 비유하고, 성과 사당은 임금을 비유한 것이다.
역주8 : 훼
역주9 太宗……是崇是長 : 《舊唐書》 〈宦官列傳〉에 宋祁가 말하였다. “太宗은 內侍省에 3품의 관원을 두지 않았다. 그리하여 內侍省의 長官을 內侍로 삼되 品階가 4품이고 정사를 맡기지 아니하여 오직 궁궐문을 守禦하고 宮庭 안을 청소하여 녹봉을 먹을 뿐이었다. 그런데 則天武后 때에 차츰 인원을 늘렸고, 中宗 때에 이르러서는 黃衣를 입은 宦官이 2000명에 이르고 7품 이상의 員外가 1000명이었다. 그러나 朱紫의 官服을 입은 자가 아직 적었는데, 玄宗 때에 이르러 태평성대가 오래되고 재물이 풍족하며, 의욕이 커지고 사치를 일삼아서 賞賜와 爵位를 아끼지 않았다. 그리하여 開元과 天寶 연간에는 黃衣를 입은 宦官이 3000명이었고 朱紫의 官服을 입은 자가 1000여 명이었으며, 황제의 뜻에 맞는 자는 매번 3품의 將軍에 임명되었다.
역주10 : 계
역주11 視天子如委裘 : 《漢書》 〈賈誼傳〉에 이르기를 “赤子를 천하의 위에 눕혀 놓아도 편안하며 遺腹子를 세우고 先帝가 남기신 갖옷에 朝會하게 하더라도 천하가 어지럽지 않을 것이다.[臥赤子天下之上而安 植遺腹 朝委裘 而天下不亂]”라고 하였다.
역주12 : 전
역주13 : 체
역주14 : 황
역주15 宋文通 : 李茂貞이 본래 宋文通인데, 軍功으로 姓名을 하사받았다.
역주16 崔昌遐 : 昌遐는 崔胤의 字이니, 《資治通鑑》에서 그의 字를 칭한 것은 宋나라 太祖 趙匡胤의 諱를 피한 것이다.
역주17 糗糒 : 구비
역주18 : 북
역주19 易曰 履霜堅冰至 : 《周易》 坤卦 初六 爻辭에 “서리를 밟으면 단단한 얼음이 이른다.[履霜堅冰至]” 하였는데, 〈象傳〉에 이르기를 “‘서리를 밟으면 얼음이 이른다.’는 것은 陰이 처음 엉기는 것이니, 서리가 내리면 서서히 날씨가 추워져서 단단한 얼음에 이르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며, 〈文言傳〉에 이르기를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자식이 아버지를 시해하는 것은 하루아침 하루저녁의 변고가 아니요, 그 말미암아 온 것이 점점 그렇게 만든 것이다.” 하였다.
역주20 : 제
역주21 導行費 : 郡國에서 貢物을 바칠 때마다 導行費란 명목으로 中署에 먼저 뇌물을 바쳤으니, 이는 공물 바치는 것을 인도한다는 뜻이다.
역주22 胯衫 : 옛날 宦者가 입는 옷으로, 환관을 가리킨다.
역주23 : 비
역주24 : 치
역주25 : 선

통감절요(9)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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