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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2)

통감절요(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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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辛丑]建元元年注+[原註]自古帝王 未有年號러니 始起於此하니라이라
건원建元 원년元年(신축 B.C.140)注+[原註]예로부터 제왕帝王들이 연호가 있지 않았는데, 이때에 처음 시작되었다.
冬十月 詔擧賢良方正直言極諫之士할새
겨울 10월에 조서를 내려 현량賢良하고 방정方正하여 직언直言하고 지극히 간할 수 있는 선비를 천거하게 하였는데,
〈本紀云 丞相奏호되 所擧賢良 或治申, 商, 韓非, 蘇, 張之言하야 亂國政하니 請皆罷라하야늘 奏可라하다
- 《한서漢書 무제기武帝紀》에 “승상이 아뢰기를 ‘현량賢良으로 천거된 자들이 혹 신불해申不害상앙商鞅, 한비자韓非子소진蘇秦, 장의張儀의 말을 공부하여 국정國政을 어지럽히니, 모두 파하소서.’ 하자, ‘아뢴대로 하라.’ 했다.” 하였다. -
親策問以古今治道하니 廣川董仲舒對曰
이 친히 고금古今의 정치하는 방도로써 책문策問하니, 광천廣川 동중서董仲舒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臣觀天人相與之際하니 甚可畏也
“신이 하늘과 사람이 서로 관여하는 사이를 살펴보니, 매우 두려울 만합니다.
自非太亡(無)道之世 盡欲扶持全安之하나니 事在彊勉而已
만일 크게 무도한 세상이 아니면 하늘이 모두 붙들어 주고 잡아 주어 온전히 하고 편안히 하고자 하니, 일은 힘씀에 달려 있을 뿐입니다.
彊勉學問이면 則聞見博而智益明하고 彊勉行道 則德日起而大有功이니이다
학문을 힘쓰면 견문이 넓어져서 지혜가 더욱 밝아지고, 를 행함을 힘쓰면 이 날로 일어나서 크게 공이 있게 됩니다.
道者 所繇(由)適於治之路也 仁義禮樂 皆其具也
라는 것은 말미암아 다스림에 나아가게 하는 길이니, 인의仁義예악禮樂이 모두 그 도구입니다.
聖王已沒이로되 而子孫長久하야 安寧數百歲하니 皆禮樂敎化之功也니이다
그러므로 성왕聖王이 이미 별세하였으나 자손이 장구하여 수백 년을 편안하게 지냈으니, 이는 모두 예악禮樂으로 교화한 공입니다.
夫周道衰於幽, 厲하니 非道亡也 幽, 厲不繇也
나라의 유왕幽王여왕厲王에게서 쇠하였으니, 가 망한 것이 아니고 유왕幽王여왕厲王를 따르지 않은 것입니다.
至於宣王하야 思昔先王之德하고 興滯補敝하야 明文, 武之功業하야 周道粲然復興하니 夙夜不懈行善之所致也니이다
선왕宣王에 이르러서 옛날 선왕先王을 생각하여 침체한 것을 일으키고 해진 것을 보충하여 문왕文王무왕武王공업功業을 밝혀서 나라의 가 찬란하게 다시 일어났으니, 이는 밤낮으로 게을리 하지 아니하여 을 행한 소치입니다.
爲人君者 正心以正朝廷하고 正朝廷以正百官하고 正百官以正萬民하고 正萬民以正四方이니 四方正이면 遠近 莫敢不壹於正하야 而亡(無)有邪氣奸其間者
인군人君이 된 자가 마음을 바루어서 조정을 바로잡고, 조정을 바루어서 백관百官을 바로잡고, 백관百官을 바루어서 만민萬民을 바로잡고, 만민萬民을 바루어서 사방四方을 바로잡아야 하니, 사방이 바루어지면 멀고 가까운 곳이 감히 바름에 한결같지 않을 수가 없어서 간사한 기운이 그 사이에 침범함이 없게 됩니다.
是以 陰陽調而風雨時하고 群生和而萬民殖하야 諸福之物 可致之祥 莫不畢至하야 而王道終矣니이다
이 때문에 음양陰陽이 조화로워 비바람이 제때에 내리고, 여러 생물이 조화로워 만민萬民이 불어나서 여러 된 물건과 이룰 수 있는 상서가 다 이르지 않음이 없어 왕도王道가 끝마쳐지는 것입니다.
今陛下貴爲天子하시고 富有四海하사 居得致之位하고 操可致之勢하시고 又有能致之資하사 行高而恩厚하고 知(智)明而意美하고 愛民而好士하시니 可謂誼主矣로되
지금 폐하께서 귀함은 천자天子가 되시고 사해四海를 소유하시어 상서로움을 이룰 수 있는 지위에 계시고 상서로움을 이룰 수 있는 권세를 잡으시고, 또 이룰 수 있는 자질을 소유하시어 행실이 높고 은혜가 두터우며 지혜가 밝고 뜻이 아름다우며 백성을 사랑하고 선비를 좋아하시니, 의로운 군주라고 이를 만합니다.
然而天地未應하야 而美祥莫至者 何也닛고
그런데도 천지天地가 응하지 아니하여 아름다운 상서가 이르지 않음은 어째서입니까?
凡以敎化不立하야 而萬民不正也일새니이다
이는 모두 교화가 확립되지 못해서 만민萬民이 바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夫萬民之趨利也 如水之走下하야 不以敎化隄防之 不能止也
만민萬民이 이익에 달려가는 것은 물이 아래로 달려감과 같아서, 교화敎化로써 이를 막지 않으면 그치게 할 수가 없습니다.
古之王者 明於此故 南面而治天下 莫不以敎化爲大務하야
옛날 왕자王者들은 이것을 밝게 알았기 때문에 남면南面하여 천하를 다스릴 적에 교화敎化를 큰 일로 여기지 않음이 없었습니다.
立太學하야 以敎於國하고 設庠序하야 以化於邑하야 漸民以仁하고 摩民以誼(義)하고 節民以禮
그리하여 태학太學을 세워 국도國都에서 가르치고 상서庠序를 설치하여 에서 교화하여, 백성을 으로 젖어 들게 하고 백성을 로 연마시키고 백성을 로써 절제하였습니다.
其刑罰輕而禁不犯者 敎化行而習俗美也니이다
그러므로 형벌이 가벼워도 법금法禁을 범하지 않은 것은 교화가 행해져 습속習俗이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聖王之繼亂世也 掃除其迹而悉去之하나니 竊譬之컨대 琴瑟不調甚者 必解而張之라야 乃可鼓也 爲政而不行甚者 必變而更化注+[通鑑要解]謂權時之宜하야 以質代忠하고 以忠代文하야 以更化之라야 乃可理也
성왕聖王난세亂世를 이을 때에는 그 자취를 깨끗이 쓸어 모두 제거하니, 삼가 비유하건대 거문고와 비파가 고르지 않음이 심한 경우에는 반드시 줄을 풀어서 고쳐 매야 비로소 탈 수가 있고, 정사를 하되 행해지지 않음이 심한 경우에는 반드시 변경하여 다시 교화하여야注+[通鑑要解]경화更化는 때의 마땅함을 저울질하여 로써 을 대신하고, 으로써 을 대신하여 바꾸어 교화함을 이른다. 비로소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得天下以來 常欲治로되 而至今不可善治者 失之於當更化而不更化也니이다
그러므로 나라가 천하를 얻은 이래로 항상 잘 다스려지기를 바랐으나 지금까지 잘 다스릴 수 없었던 것은 마땅히 변경하여 다시 교화하여야만 하는데 변경하여 다시 교화하지 않은 데에서 잘못된 것입니다.
古人有言曰 臨淵羨魚 不如退而結網이라하니 今臨政願治 不如退而更化
옛사람이 말하기를 ‘못에 임하여 물고기를 부러워함은 물러가서 그물을 짜는 것만 못하다.’ 하였으니, 이제 정사에 임하여 다스려지기를 원함은 물러가서 다시 교화하는 것만 못합니다.
更化則可善治 善治則災害日去하고 福祿日來하리이다
다시 교화하면 잘 다스릴 수 있고, 잘 다스리면 재해災害가 날로 사라지고 복록福祿이 날로 올 것입니다.
臣聞聖王之治天下也 爵祿以養其德하고 刑罰以威其惡이라
신이 들으니, 성왕聖王이 천하를 다스릴 적에는 관작과 녹봉으로써 덕 있는 이를 기르고, 형벌로써 악한 이를 두렵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民曉於禮義而恥犯其上하나니
그러므로 백성들이 예의禮義를 밝게 알아 윗사람을 범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武王 行大誼하야 平殘賊하시고 周公 作禮樂以文之러시니 至於成, 康之隆하야 注+[釋義]王氏曰 囹圄 秦獄名이니 令之使聆也 語之使悟也空虛 四十餘年하니 此亦敎化之漸而仁義之流也니이다
무왕武王대의大義를 행하여 잔적殘賊한 자를 평정하시고, 주공周公예악禮樂을 만들어 이를 문채나게 하셨는데, 성왕成王강왕康王의 융성함에 이르러 영어囹圄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영어囹圄나라 감옥의 이름이니, 은 명령하여 듣게 하는 것이요, 는 말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다.” 텅 빈 것이 40여 년이었으니, 이 또한 교화가 젖어 들고 인의仁義가 유행한 것입니다.
今陛下幷有天下로되 而功不加於百姓者 殆王心未加焉이로소이다
지금 폐하께서 천하를 모두 소유하셨으나 이 백성에게 더해지지 않는 것은 아마도 왕자王者의 마음을 가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합니다.
曾子曰 尊(遵)其所聞則高明矣 行其所知則光大矣
증자曾子가 말씀하기를 ‘들은 바를 따르면 고명高明해지고 아는 바를 행하면 광대光大해진다.
高明光大 不在乎他 在乎加之意注+[通鑑要解]文章正宗註 武帝徒聞而不尊(遵)하고 徒知而不行하니 此其受病之本이라 仲舒箴之하니라而已라하시니 願陛下設誠於內而致行之하시면 則三王何異哉리잇고
고명高明함과 광대光大함은 다른 데 있지 않고 뜻을 가함에 달려 있을 뿐이다.’注+[通鑑要解]문장정종文章正宗》의 에 “무제武帝는 한갓 듣기만 하고 따르지 않으며 한갓 알기만 하고 행하지 않았으니, 이것이 병통이 생겨나게 된 근본이므로 동중서董仲舒가 경계한 것이다.” 하였다. 하였으니, 원컨대 폐하께서 성의誠意를 안에 간직하시어 지극히 행하신다면 삼왕三王과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夫不素養士而欲求賢이면 譬猶不琢玉而求文采也
평소에 선비를 기르지 않고 어진 이를 구하고자 한다면 비유하건대 옥을 다듬지 않고 문채를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養士之大者 莫大乎太學하니 太學者 賢士之所關也
선비를 기르는 것 중에 큰 것은 태학太學보다 더한 것이 없으니, 태학太學은 어진 선비의 관문關門입니다.
考問하야 以盡其材하시면 則英俊 宜可得矣 徧得天下之賢人이면 則三王之盛 易爲 而堯舜之名 可及也리이다
자주 살펴 물으시어 그 재능을 다하게 하신다면 영재英才준걸俊傑들을 마땅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천하의 어진 사람을 두루 얻는다면 삼왕三王의 융성함을 이루기가 쉽고 요순堯舜의 명성에 미칠 수 있을 것입니다.
道者 萬世亡敝(弊)하니 敝者 道之失也
라는 것은 만세토록 폐단이 없으니, 폐단이라는 것은 를 잃은 것입니다.
所繼之捄(救) 當用此也니이다
나라가 을 숭상하고, 나라가 을 숭상하고, 나라가 을 숭상한 것은 계승한 바의 폐단을 바로잡음에 마땅히 이것을 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道之大原 出于天하니 天不變이면 道亦不變이라
의 큰 근원이 하늘에서 나왔으니, 하늘이 변하지 않으면 또한 변치 않습니다.
是以 禹繼舜하시고 舜繼堯하사 三聖相授而守一道하야 亡救敝之政이라
이 때문에 임금은 임금을 이으시고 임금은 임금을 이으셔서, 세 성인聖人이 서로 전수하여 한 를 지켜서 폐단을 바로잡는 정사가 없었습니다.
不言其所損益也 繇是觀之컨대 繼治世者 其道同하고 繼亂世者 其道變이니이다
그러므로 그 덜하고 더한 바를 말하지 않은 것이니, 이로 말미암아 보건대 다스려지는 세상을 이은 자는 그 가 똑같고, 어지러운 세상을 이은 자는 그 가 변하는 것입니다.
今漢 繼大亂之後하니 若宜少損周之文하고 致用夏之忠者注+[釋義] 至極也 或讀致屬上句하니[通鑑要解] 愚按 致字 當屬下句하니 蓋周文 不可盡變故 宜小損之 夏忠則當極其用故 致也니이다
지금 나라는 크게 어지러운 뒤를 이었으니, 마땅히 나라의 을 다소 덜고 나라의 을 지극히 써야 할 듯합니다.注+[釋義]少損周之文 치용하지충자致用夏之忠者:[釋義]는 지극함이다. 혹은 치자致字를 윗구에 붙여 읽으니 잘못이다. [通鑑要解] 내가 살펴보건대 자는 아랫구에 속해야 하니, 나라의 은 다 바꿀 수 없으므로 조금 줄여야 하고, 나라의 은 그 씀을 지극히 해야 하므로 라고 한 것이다.
春秋大一統注+[釋義]王氏曰 公羊傳 隱元年春王正月 何言乎 王正月 大一統也라한대 始也 王者始受命改制하야 以統天下하야 令萬物無不一一皆奉承之以爲始 故言大一統이라하니라 天地之常經이요 古今之通誼(義)也어늘 今師異道하고 人異論하야 百家殊方하야 指意不同이라 是以 上無以持一統하니
춘추春秋》의 대일통大一統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에 ‘은공隱公 원년元年 춘왕정월春王正月이라고 어찌하여 말했는가? 왕정월王正月일통一統을 크게 한 것이다.’ 하였는데, 에 ‘은 시작이니, 왕자王者가 처음 천명天命을 받고 제도를 고쳐서 천하를 통일하여 만물萬物로 하여금 일일이 모두 받들어서 시작으로 삼지 않음이 없게 한다. 그러므로 대일통大一統이라고 말한다.’ 하였다.” 천지天地의 떳떳한 법이고 고금古今의 공통된 인데, 지금 스승은 를 달리하고 사람들은 의논을 달리해서, 백가百家가 방법을 달리하여 가리키는 뜻이 똑같지 않으니, 이 때문에 위에서 일통一統을 유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臣愚 以爲諸不在之科, 孔子之術者 皆絶其道하야 勿使竝進이니 然後에야 統紀可一하고 而法度可明하야 民知所從矣리이다
어리석은 신은 생각하건대 모든 육예六藝의 과목과 공자孔子학술學術에 들어있지 않은 것들은 모두 그 길을 끊어서 함께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니, 이렇게 한 뒤에야 통기統紀를 하나로 할 수 있고 법도法度를 밝힐 수가 있어서 백성들이 따를 바를 알게 될 것입니다.”
○ 及爲江都相하야注+[頭註] 音亦이라 名非 武帝兄이라 諡法 好改更舊曰易이라하니라하니 帝兄이라 素驕好勇이러니
동중서董仲舒가〉 강도국江都國이 되어 역왕易王注+[頭註]역왕易王은 음이 역이다. 이름이 이니 무제武帝의 형이다. 시호를 짓는 법에 “옛것을 고치기를 좋아하는 것을 이라 한다.” 하였다. 섬기니, 역왕易王은 황제의 형으로서 평소 교만하고 용맹을 좋아하였다.
仲舒以禮匡正하니 王敬重焉이러라
동중서董仲舒로써 바로잡으니, 역왕易王이 공경하고 소중히 여겼다.
嘗問之曰 粤(越)王句踐 與大夫庸, 種注+[頭註]名也 姓文이요 字子禽이라, 蠡 伐吳滅之하니 寡人 以爲越有三仁이라하노니 何如
역왕易王이 일찍이 동중서董仲舒에게 묻기를 “월왕越王 구천句踐대부大夫설용泄庸문종文種,注+[頭註]은 이름이니, 성이 이요 자금子禽이다. 범려范蠡와 함께 나라를 정벌하여 멸망시켰으니, 과인은 나라에 세 인자仁者가 있다고 여기노니, 어떠한가?” 하였다.
仲舒對曰 夫仁人者 正其誼(義)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하나니
동중서董仲舒가 대답하기를 “한 사람은 그 의리를 바르게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를 밝히고 그 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是以 仲尼之門 五尺之童 羞稱五하니 爲其先詐力而後仁義也니이다
이 때문에 중니仲尼의 문하에는 오척五尺동자童子오패五霸를 일컫는 것을 부끄러워하였으니, 이는 속임수와 무력을 먼저하고 인의仁義를 뒤로 하였기 때문입니다.
繇此言之하면 則粵未嘗有一仁也니이다
이것을 가지고 말한다면 나라에는 일찍이 한 사람의 인인仁人도 있지 않습니다.” 하였다.
[新增] 程子曰
정자程子가 말씀하였다.
仁人者 正其誼하고 不謀其利하며 明其道하고 不計其功이라하니 此董子所以卓越諸子也歟인저
“‘한 사람은 그 를 바르게 하고 그 이익을 도모하지 않으며, 그 를 밝히고 그 을 따지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는 동자董子제자諸子들보다 월등히 나은 이유일 것이다.”
又曰
또 말씀하였다.
漢之諸儒 唯董子有儒者氣像이니라
나라의 여러 유자儒者 중에 오직 동자董子유자儒者기상氣像이 있었다.”
尹氏曰
윤씨尹氏(尹起莘)가 말하였다.
三代之興 哲王世有
삼대三代가 일어날 적에 명철明哲이 대대로 있었다.
이나 始終全德하고 表表在人者 亦未易多得이라
그러나 처음부터 끝까지 을 온전히 유지하고 두드러지게 사람들의 이목耳目에 남아 있는 자는 또한 많지 않다.
禹湯文武 皆創業之君이로되 至其子孫하여 不過啓, 少康, 太甲, 盤庚, 武丁, 成, 康, 宣王 此數君而已
우왕禹王, 탕왕湯王, 문왕文王무왕武王은 모두 창업創業한 군주였으나 그 자손子孫에 이르러서는 소강少康, 태갑太甲반경盤庚무정武丁, 성왕成王강왕康王선왕宣王의 몇 명에 지나지 않을 뿐이었다.
太甲 初年 顚覆典刑하고 宣王 未免詩人之刺
그러나 태갑太甲은 초년에 국가의 전형典型을 전복하였고, 선왕宣王시인詩人의 풍자를 면치 못하였다.
三代千八百年 賢君僅止若此하니 況後世耶
삼대시대三代時代 천 8백 년 동안 어진 군주가 겨우 이와 같음에 그쳤으니, 하물며 후세後世에 있어서랴.
漢世開基 再傳而有文景하니 文帝 固盛德之主 至景하얀 已有慙德注+[頭註]景帝刻薄任數하야 以詐力馭天下하야 平居則誅賞肆行하고 緩急則惴懼失錯(措)也이러니 武帝繼之하여 傑然有立이라
나라는 개국하자 두 번 전하여 문제文帝경제景帝가 있었으니, 문제文帝는 진실로 이 훌륭한 군주였고, 경제景帝에 이르러서는 이미 부끄러운 (마음)이注+[頭註]경제景帝가 각박하여 술수術數에 맡겨서 속임수와 무력으로 천하를 어거하여, 평소에는 상벌을 멋대로 행하고 급한 일이 있으면 두려워하여 몸 둘 바를 몰랐다. 있었는데, 무제武帝가 뒤를 이어 우뚝이 성립하였다.
觀其卽位之始 他務未遑하고 首擧賢良方正하여 親策於廷하고 又得一代大儒하여 爲之擧首
즉위하던 초기에 딴 일은 미처 하지 않고 첫 번째로 현량賢良하고 방정方正한 사람을 천거하여 조정에서 친히 책문策問하고 또 한 시대의 큰 학자인 동중서董仲舒를 얻어서 천거된 자들의 으뜸으로 삼았다.
於是 罷黜百家하여 俾世之學者 知尊孔氏하니 此皆漢世之所未發明者
이에 백가百家를 내쳐서 세상의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공씨孔氏를 높일 줄 알게 하였으니, 이는 모두 한대漢代에 미처 발명하지 못한 것들이었다.
方是時也하여 如水未波하고 如鑑未塵하니 使帝每事若此런들 其盛德 可少訾注+[頭註] 量也 漢書 註 無訾量可以比之也 又毁之也
이때를 당해서 물이 아직 파도가 일지 않고 거울이 아직 먼지가 끼지 않은 것과 같았으니, 만약 무제武帝가 매사를 이와 같이 했더라면 그 훌륭한 이 어찌 조금인들注+[頭註]는 헤아림이니, 《한서漢書에 “헤아려 견줄 만한 것이 없다.” 하였다. 또 훼방하는 것이다. 비난할 것이 있었겠는가.
夫何數年之後 遊宴奢慾하야 宮室神仙 聚斂征伐之事 紛紛交擧
그런데 어찌하여 몇 년 뒤에는 놀고 잔치함에 욕심을 부려서 궁실宮室을 짓고 신선술神仙術을 찾으며 세금을 많이 거두고 사방을 정벌征伐하는 일이 분분紛紛하게 서로 일어났단 말인가.
漢之不爲秦者 幸爾
나라가 나라처럼 망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觀其初年所書淸淨注+[頭註]老氏無爲之學이라簡寡하면 與後來擾擾多事 相去遠甚하니 然後 知人主資稟之高者 未必不有進銳退速之患이요 而始終全德之君 在三代而下 益不易得也
초년初年청정淸淨하고注+[頭註]청정淸淨노자老子무위자연無爲自然의 학문이다. 간략하고 욕심이 적었다고 기록한 것을 보면 후래後來에 분분히 일을 많이 일으킨 것과 거리가 매우 머니, 그런 뒤에야 자품資稟이 높은 군주도 반드시 나아감이 예리하면 후퇴가 신속한 병폐가 없지 못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온전한 군주는 삼대三代 이후에는 더욱 얻기가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詩曰 靡不有初 鮮克有終이라하니 觀此 可不謹終如始云이리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처음은 있지 않은 이가 없으나 끝이 있는 자는 적다.’ 하였으니, 이것을 살펴보아 끝을 삼가서 처음과 같이 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 上 雅向儒術하니 丞相竇嬰 太尉田蚡 俱好儒術하야 注+[原註]言薦擧人 如車轂之推轉이라趙綰하야 爲御史大夫하고 王臧爲郞中令하다
이 평소 유술儒術을 숭상하니, 승상丞相 두영竇嬰태위太尉 전분田蚡이 모두 유술儒術을 좋아하여 조관趙綰을 추천해서注+[原註]퇴곡推轂은 사람을 천거하기를 수레바퀴를 밀어 굴러 가게 하는 것과 같이 함을 말한다. 어사대부御史大夫로 삼고 왕장王臧낭중령郎中令으로 삼았다.
請立明堂注+[釋義]王氏曰 夏曰世室이요 商曰重屋이요 周曰明堂이니 後世皆因之 明堂者 所以明諸侯之尊卑하고 制禮作樂하고 頒度量而天下服이니 此古制也 三輔黃圖云 明堂者 大道之堂이니 所以順四時, 行月令하고 宗祀先王, 祭五帝也 孝經援神契曰 布政之宮 在國之陽하니 上圓下方이라 八牕 法八風이요 四闥 法四時 九室 法九州 十二(重)[房] 法十二月이요 三十六戶 法三十六(兩)[旬]이요 七十二牖 法七十二候 元封二年 公玉帶上黃帝時明堂圖 胡氏管見曰 其制作之詳 不可得而聞矣 孝經 以爲宗祀之所라하고 孟子 以爲王政之堂이라하니 然則是天子之外朝 猶後世大朝會之正衙也하야 以朝諸侯하고 且薦其師申公하니 天子使使束帛加璧注+[釋義]王氏曰 記禮器 束帛加璧 尊德也라하니 謂下設束帛하고 上加以璧이라 鄭玄曰 貢享所執致命者 君子於玉比德焉이라 尙書玉帛圖 玉也 肉倍於好하니 其形圜이요 其中虛 束帛者 十端帛也 古者制帛 其長丈八이요 其束十端이니 或素, 或玄纁하야 其色不同이라 韓詩外傳 謂卷五匹이라하니 遂見十端也 羅璧識遺曰 大祀用幣 皆一丈八尺爲度라하니라 按 一象陽하고 八象陰하니 寓陰陽不測也 禮聘束帛 用二丈爲端하니 則寓偶數 色尙玄纁하니 天色이요 地色이니 天地偶合也하고 安車注+[釋義]一本 作安車蒲輪이라 王氏曰 用蒲裹車輪이니 取其安也 索隱曰 以蒲裹輪 恐傷草木也 且蒲是草之美者 禮有蒲璧하니 蓋或畫之하야 以爲榮飾이라駟馬 以迎申公하다
조관趙綰명당明堂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나라에서는 세실世室이라 하고, 나라에서는 중옥重屋이라 하고, 나라에서는 명당明堂이라 하였으니, 후세에 모두 이것을 따랐다. 명당明堂이라는 것은 제후의 존비尊卑를 밝히고 와 음악을 만들고 도량형을 반포하여 천하가 복종하게 하는 것이니, 이것은 옛날 제도이다. 《삼보황도三輔黃圖》에 이르기를 ‘명당明堂이라는 것은 대도大道를 밝히는 이니, 사시四時를 순히 하여 월령月令을 행하고 선왕先王을 높여 제사하고 오제五帝에게 제사하는 것이다.’ 하였다. 《효경원신계孝經援神契》에 이르기를 ‘정사를 펴는 국도國都의 남쪽에 있으니, 위는 둥글고 아래는 네모나다. 8개의 창문은 팔풍八風을 본받았고, 4개의 문지방은 사시四時를 본받았고, 9개의 구주九州를 본받았고, 12개의 은 12개월을 본받았고, 36개의 는 36(360일)을 본받았고, 72개의 창문은 72절기節氣를 본받은 것이다.’ 하였다. 원봉元封 2년에 공옥대公玉帶황제黃帝 때의 명당도明堂圖를 올렸다. 호인胡寅의 《독사관견讀史管見》에 이르기를 ‘명당明堂을 제작한 자세한 내용은 들을 수가 없다. 《효경원신계孝經援神契》에는 선왕先王을 높여 제사하는 곳이라고 하였고, 《맹자孟子》에는 왕자王者가 정사를 펴는 이라고 하였으니, 그렇다면 이는 천자天子의 바깥 조정이니, 후세에 크게 조회하는 정아正衙(正殿)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세워 제후들에게 조회 받을 것을 청하고 또 그 스승 신공申公을 천거하니, 천자天子사자使者를 시켜 속백束帛에 구슬을注+[釋義]왕씨王氏가 말하였다. “《예기禮記》 〈예기禮器〉에 ‘속백가벽束帛加璧을 높인 것이다.’ 하였으니, 아래에 속백束帛을 놓고 위에 을 더함을 이른다. 정현鄭玄이 말하기를 ‘공물貢物을 바칠 때에 을 쥐고서 을 전달하는 것이니, 군자는 을 견준다.’ 하였다. 《상서尙書옥백도玉帛圖에 ‘이니, 살이 구멍[好]보다 배나 되니 그 형체는 둥글고 그 가운데가 비었다. 속백束帛은 10끝의 비단이다. 옛날에 비단을 만들 때에 길이는 1 8이고 묶음은 10끝이니, 혹은 흰 비단이거나 혹은 현훈玄纁(검은색과 붉은색)이어서 그 색깔이 똑같지 않았다.’ 하였고, 《한시외전韓詩外傳》에 ‘다섯 필을 만다.’ 하였으니, 〈다섯 필을 말면〉 마침내 10끝을 볼 수 있다. 《나벽식유羅璧識遺》에 이르기를 ‘큰 제사에 쓰는 폐백은 모두 1 8을 도수로 삼는다.’ 하였다. 살펴보건대 1은 을 상징하고 8은 을 상징하는 바, 음양陰陽을 측량할 수 없음을 붙인 것이요, 로 초빙할 때의 속백束帛은 2을 사용하여 끝을 삼으니, 이는 우수偶數를 붙인 것이다. 색은 현훈玄纁을 숭상하니, 은 하늘의 색이고 은 땅의 색이니, 천지天地가 만나는 것이다.” 더하고 안거安車注+[釋義]안거安車일본一本에 ‘안거포륜安車蒲輪’으로 되어 있다. 왕씨王氏가 말하였다. “부들을 사용하여 수레바퀴를 감싼 것이니, 그 편안함을 취한 것이다. 《사기색은史記索隱》에 이르기를 ‘부들로 수레바퀴를 감싼 것은 초목을 상할까 두려워해서이다. 또 부들은 풀 중의 아름다운 것이므로 포벽蒲璧이 있으니, 혹은 수레바퀴에 부들을 그려서 영화롭게 꾸민 듯하다.’ 하였다.” 사마駟馬신공申公을 맞이하였다.
旣至 天子問治亂之事한대 申公 年八十餘
신공申公이 이르자, 천자天子치란治亂의 일을 물었는데 신공申公의 나이가 80세가 넘었다.
對曰 爲治者 不在多言이요 顧力行注+[釋義] 念也 力行 謂勉力而行也何如耳니이다
대답하기를 “정치를 하는 것은 많은 말에 있지 않고, 어떻게 힘써 행하느냐를注+[釋義]는 생각함이요, 역행力行은 힘을 써서 행함을 이른다. 생각할 뿐입니다.” 하였다.
是時 天子方好文詞러니 見申公對하고 黙然이라
이때에 천자天子가 막 문사文詞를 좋아하였는데, 신공申公의 대답을 듣고 마음에 들지 않으므로 침묵하였다.
然已招致 則以爲太中大夫하야 舍魯邸하야 議明堂巡狩改服色事하다
그러나 이미 초치招致하였으므로 태중대부太中大夫로 삼아 나라 저택에 머물면서 명당明堂순수巡狩책력冊曆관복官服의 색깔을 바꾸는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出史記武紀及申公傳〉
- 《사기史記》 〈효무본기孝武本紀〉와 〈유림전儒林傳 신공申公〉에 나옴 -
[新增] 胡氏曰
호씨胡氏가 말하였다.
申公之言 當矣 第未知所謂力行者何事耳
신공申公의 말이 합당하나 다만 이른바 힘써 행한다는 것이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하겠다.
申公 開端而未告하고 武帝 咈意而不問하니 惜哉
신공申公은 단서만 열어놓고 고하지 않았고, 무제武帝는 마음에 들지 않아 묻지 않았으니, 애석하다.
이나 明堂巡狩 改曆服色 豈力行之急務哉리오
그러나 명당明堂순수巡狩책력冊曆관복官服의 색깔을 바꾸는 일이 어찌 힘써 행할 일의 급선무急先務이겠는가.
對旣不合이어늘 又留不去하니 其不逮穆公 又可見矣
대답이 이미 부합하지 않는데도 또 머물고 떠나가지 않았으니, 목공穆公(穆生)에 미치지 못함을 또 볼 수 있다.”
역주
역주1 : 경
역주2 囹圄 : 영어
역주3 : 삭
역주4 夏上忠 殷上敬 周上文者 : 夏나라는 忠을 숭상하고 商나라는 質을 숭상하고 周나라는 文을 숭상하였는 바, 忠은 본바탕이고 質은 형질을 이룸이고 文은 문식을 가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玉 그 자체는 忠이고, 玉을 다듬어 물건의 형체를 이루는 것은 質이고, 곱게 다듬고 조각을 가하는 것은 文인데, 여기서는 質을 敬으로 바꾸어 말하였다.
역주5 六藝 : 여섯 가지 경전으로 《詩經》‧《書經》‧《易經》‧《禮經》‧《樂經》‧《春秋》를 이른다.
역주6 : 역
역주7 : 설
역주8 : 패
역주9 : 퇴
역주10 : 繪
역주11 : 다만으로 보아 ‘다만 힘써 행하기를 어떻게 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라고 보아도 될 듯하다.
역주12 : 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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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축] 건원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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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신축] 건원원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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