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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鑑節要(8)

통감절요(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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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감절요(8) 목차 메뉴 열기 메뉴 닫기
[丙午]大曆元年이라
郭子儀以河中軍食 常乏이라하야 乃自耕百畝하고 將校注+[頭註]卽將及校尉也 校本軍壘之稱이라 謂軍之一部曰一校 軍尉, 馬官 皆以校名하니라 以是爲差하니 於是 士卒 皆不勸而耕이라
是歲 河中 野無曠土하고 軍有餘糧이러라


대력大曆 원년元年(병오 766)
곽자의郭子儀하중河中의 군량이 항상 궁핍하다 하여 마침내 스스로 1백묘를 경작하고 장교將校들은注+[頭註]장교將校는 바로 장수와 교위校尉이다. 는 본래 군대 보루堡壘의 칭호이다. 그러므로 의 한 부대部隊를 1라 하니, 군위軍尉마관馬官을 모두 라고 이름하였다. 이를 기준으로 차등을 두니 이에 사졸士卒들이 모두 권장하지 않는데도 경작하였다.
이해 하중河中 지방이 들에는 빈 땅이 없고 군대에는 남은 식량이 있었다.



통감절요(8) 책은 2019.05.15에 최종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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